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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 침례교회

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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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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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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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구원 간증] 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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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구원간증] 요한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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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구원간증] 죠지휘크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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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3
[간증] 탈북자 이 순옥 씨 증언
탈북자 이 순옥 여사 간증 저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근 50년을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다음은,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 선고까지 받고 사형 집행날이 되었을 때,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를 받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때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 여명이 수용된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 지휘와 모든 재정 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를 담당하고 있던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하고는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 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기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 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들이 잡혀 왔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 여섯 시간, 열 여덟 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프레스로 찍어도 한 판에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꺼먼 옷을 입고 있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또 떨어지고, 타 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장 안이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백 명의 그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고, 소리 소리 지르며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 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그렇게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수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져 나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만 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쳐 날뛰던 교도관 두 명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면서 달려가더니 용광로의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이 어른거려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까지도 저렇게 거부하지 않고, 저렇게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려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개 처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 처형 시키려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 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못 보게 하라는 김 일성의 특별 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에는 무릎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못 보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못 보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여 대답도 할 수가 없었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분들의 그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그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여 나라에 나갔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 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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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5
[간증] 찰스·스펄죤」
나를 보라 (「찰스·스펄죤」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 대설교가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직접 그 입을 통하여 들어 봅시다. ) 내 나이 겨우 20세 안팎이었지만 내가 겪었던 그 무서운 심적 고민과 고통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고민 가운데서 오년을 헤맸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공포를 직접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 있다면 나야말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요한 번연」이 쓴 『넘치는 은혜』 속에 묘사된 그 실상이야말로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번연」이 빠져들어간 그 구렁 속으로는 내가 디뎌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내가 허우적거렸던 그 깊이 속에 「번연」 역시 들어가보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세계는 태양 없는 하늘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죄가 너무 중하여 다시는 소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하나님만은 아십니다. 그러나 응답은 희미한 별빛만큼도 새어 나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약속은 성경의 모든 무서운 경고보다 더욱 더 내 마음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었고, 내게는 전혀 관계없는 사실임을 나는 확신했던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재고 보아도 죄인이다. 그런 약속은 죄인 아닌 사람들,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것이 아닌가 ! 』 이래서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사연 속으로만 곤두박질해 들어 갔었습니다. 나의 이 고통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복음을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게 하나님을 가리켜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려주었고, 영생과 영멸을 깨닫게 했고, 내가 죄인된 것을 깨우쳐주었으나, 내게 복음을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 국가에서 살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비록 어린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고 누구든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복음의 단순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던 도시의 곳곳에 있는 교회를 다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정 말이지만 복음 그대로를 설교한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자들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설파했습니다. 나는 그 설교에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구원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죄인에게 그런 것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또 한분 훌륭한 목사님은 항상 율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 밭을 갈아놓고 씨 뿌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내 심령에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 나는 죄인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 받을 길만 일심으로 모색하고 있는 터였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은 아주 실제적인 내용의 설교가 였습니다. 마치 임전태세인 군인들 앞에 이것저것 마지막으로 명령하는 사령관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절름발이를 모아놓고 작전명령을 하달하는 것으로 밖엔 내게 들리지않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나같은 자에겐 그런 좋은 권고와 격려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관절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읍니다· 바로 이 사건만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와 같은 미궁 속을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 일요일 아침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큰 눈바람을 보내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던 오늘날도 그 어둠과 실망 속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날 아침도 나는 또다시 나의 영적 해결을 위하여 어떤 교회고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나빠 가던 중도에서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었던 나는 좁은 골목길을 꺾어 부근의 작은 예배실로 들어갔습니다. 초기 감리회의 보잘 것 없는 예배실로서 모인 사람들이래야 고작 열두서너명 되었습니다. 설교자는 그 날 아침 일기 관계로 오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눈보라 때문에 길이 차단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직공 차림의 한 남자가 대신 설교하러 강단으로 나가는 참이었습니다. 재봉공인지 또는 구두장이인지 하여튼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설교자라면 어느 정도 교육을 좀 받아야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표준에서 볼 때는 아주 얼뜨기란 평을 들을 만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택한 본문 외엔 무슨 말을 엮을지 통히 모르는 이였습니다. 그것 빼놓고는 지식이라곤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본문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이사야 45:22)이었습니다. 그는 발음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지요. 그의 말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오래 갈망하던 한줄기의 서광을 던져주는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게도 희망이 비쳐진 듯 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느 모로 보나 이 말씀 참으로 간단하지 않습니까, 「보라!」(이사야 45:22의 국역 『앙망하라』는 영어역으로는 눈을 들어 단순히 『보라』는 뜻으로 되어 있음. 원어인 히브리어 『파나』도 『얼굴을 돌린다』, 『얼굴을 대한다』 등이 주요 뜻으로 되어 있음) 「보라!」 「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본다」는 것 아무 것도 힘드는 일이 아닙니다. 발꿈치를 드는 일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도 놀릴 것 없습니다. 거저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는」데는 단돈 십원도 들지 않습니다. 세상 고금 없는 바보라도 다 「볼」수는 있습니다. 「보기」위하여 대학교 공부하는 사람 없습니다. 여러분들이나, 또는 누구든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라」하십니다.』 열중한 나머지 영국 남동부 지방 사투리가 튀어나왔습니다. 『 거참, 당신네들은 대개 모두 당신네들 자신을 본다말이여 거기 볼 필요 없당께, 아, 아무리 당신네들 자신을 봐두 신기한 꼴 못본다말이여. 어떤 사람은 또 하나님 아부지를 보네그랴. 아부지 하나님은 차츰 보란 말이여. 예수 그리스도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라」 그 말이여 당신네들 중 어떤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네그랴,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보지.」 이런 재변이 있나, 지금 당장은 그일허구 상관이 없다 말이여. 그리스도를 봐요. 여기 있지 않나베, 「나를 보라」구.』 그리고 이 고마운 사람은 자기의 본문 구절을 양 팔을 벌려 제스처를 써가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를 보라. 십자가에 달려 있는 나를 봐. 봐! 죽어, 묻힌 나를 봐 나를 봐, 부활하는 나를 봐. 나를 봐, 승천하는 나를 봐. 아버지의 오른 쪽에 앉은 나를 봐. 나를 봐! 나를 봐! 나를 봐! 』 이 정도로 이어나간 후, 그리고 한 여남은번 되풀이한 후, 그 사람은 이제 밑천이 달렸습니다. 그럴 때 그는 복도 쪽에 웅크리고 앉은 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워낙 적게 모였던지라 그는 단박에 낯선 사람을 가려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시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내게 대한 직접적인 것이었습니다. 『젊은이, 자네 대단히 풀이 죽어보이는군. 』 딴은 사실이었지요. 그러나 강단으로부터 내 몰골을 지적당하기란 과거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겐 실로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자넨 언제나 그 모양일걸세, 살아도 그렇고 죽어도 그렇고, 여기 이 본문을 순종하지 않으면 말일세. 그러나 자네가 이 말씀을 순종하면, 이 순간 구원될 수 있네』 그러자 그는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 젊은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소! 』 나는 『보았』습니다. 그 자리 그 시간에 나의 구름은 걷히었습니다. 흑암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태양을 보았단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그 자리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감격과 희열로 찬송 또 찬송할 수 있을 나의 심령이었단 말입니다. 아아, 이전부터 그 이야기를 진작 내게 전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지긋지긋한 오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원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밖엔 없다는 이야기를 ! (끝) X X X X X 「찰스·스펄죤」의 이생에서의 마지막 설교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오늘날까지 주님을 섬긴지 사십년하고 조금 더 됩니다. 단지 주님의 이름 찬송할 뿐이올시다. 그 동안 나는 주님의 사랑만 받아왔습니다. 주님이 기쁘게 허락하신다면, 이곳 세상에서 다시 사십 년간을 기쁘게 계속하여 봉사할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나의 생활은, 시종일관 생명의 약동과 평안과 기쁨의 충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지금이라도 곧장 이 생활로 들어오시기를 나는 진심으로 희구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오늘이라도 여러분이 예수의 기치 아래 모여들기를 기도하여 마지 않습니다. 』 X X X X X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장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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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부르심 간증] 서충원 목사
출처 : 일산 갈보리 침례교회 서충원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귀한 양들의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너무나 자격이 없는데, 자질도 없는데...어느날 제게 한가지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너 할 수 있겠냐? 가 아니고 "너 원하냐?" 였습니다. 주님 저는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그렇게 말씀드리던 저에게 "아니 아니, 누가 너보고 할 수 있겠냐고 물었냐? 원하냐 원하지 않냐 그걸 묻쟎아...?" 그렇게 물으시던 주님앞에 저의 속마음이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제가 사실은 원하질 않고 있었네요? 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핑계고, 주님 전 주님만을 위해서 전적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있군요..." 이렇게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었을 때, 주님앞에서 죄악된 저의 모습을 보며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주님은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주님...제가 주님 위해 살고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있습니다. 주님이 그 마음을 크게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기꺼이 주님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도록 말입니다. 주님은 저의 고백에 아멘 하시고, 제 삶에 더욱 깊이 날마다 개입하셨습니다. 저의 죄악되고, 열정도 없고, 거칠고, 지혜롭지 못하고, 자질도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날마다 저를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처음보다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거칠고 모난 모습...어리석은 나의 죄악된 모습..여전히 남아 있지만..주님은 조금씩 조금씩 그분께로 이끄십니다. 너무 확 당기면 도망가고 싶어할 저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아시는 그분은 저에게 꼭 맞게 그렇게 이끄셨습니다. 망치로 때리면 더 굳게 닫을 저의 마음을 잘 아시는 주님은 사랑의 부드러운 망치로 저의 굳게 닫힌 이기적이고 나만을 위하는 마음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목사와 선교사 말고 다른 방법으로 주님섬기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했던 저를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부인할 수 없도록 확고한 증거와 부르심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의 주변상황과 자신을 잘 아는 저로서는 또다시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아멘하지 못하고...계속 따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거 해야 하쟎아요...주님이 이거 시키신거쟎아요...왜 지금와서 딴거 하라고 하세요...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말씀과 자신의 성령과 자신의 교회를 통하여 저를 부르셨고 그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또 물으셨습니다. 내가 언제 너보고 할 수 있겠냐고 물었냐? 너 내가 시키는거 그거 하기를 원하냐? 또다시 내게 닥친 그 질문...처음에 저를 당신께로 이끄신 그 질문이 또다시 던져질 때, 저는 다시 한번 주님앞에서 깨어졌습니다. 주님은 제게 어떤 거창한 말씀으로 부르시지 않으시고, 너는 나의 일꾼으로 긍휼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하고 실수하고 일을 망치기 때문에 나의 긍휼이 mercy 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어 이 사역을 맡았은즉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후서 4장 1절 말씀입니다. 주님이 저를 이 사역으로 부르시며 주신 것은 긍휼입니다. 어떤 능력과 지혜를 주시기에 앞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넌 긍휼을 얻어 이 사역을 맡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제 모습비록 악하고 추해도, 한가지...제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 고백을 드리던 어느 날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싶습니다. 아마도 예상컨대, 양들을 먹이려다가 낙담하고, 양들을 미워하고, 힘들다고 불평하고...그럴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저의 약한 육신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아...주님이 제게 긍휼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양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양들을 먹이라고 나를 부르셨음을 일깨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힘입어 저는 다시 주님의 양들을 먹이려고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제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주님께로 이끌고 저또한 주님께로 함께 이끌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게 주신 양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모두 함께 그분께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떼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주님의 양떼임을 제가 압니다. 주님께 간구함으로 그들을 신실하게 먹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많은 영혼들이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납덩이가 물속으로 빠지듯이 영원한 지옥을 향하여 빠져가고 있습니다. 저는 양떼를 주님의 교회를 먹이고 함께 성장하여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건지고 싶습니다. 혼자는 힘이없고 약해서 잘 안됩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그들을 건지고 싶습니다. 주님.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어느새 주님은 저의 원함 자체를 바꾸셔서 주님의 원함이 저의 원함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원함이 저의 원함이 될때...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주님...저를 날마다 바꾸시고 바로잡으셔서 주님의 원함이 저의 원함이 되게 하셔서 주님의 길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 김익현 (2005-01-09 05:10:05) 아멘!!! 벤쿠버 그레이스 침례교회를 세워주신 주님께서 주님의 착하고 신실한 종을 목자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원하심에 순종하신 형제님으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어리고 약한 지체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은 형제님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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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2
[간증] 변화된 삶- 허드슨 테일러가
LA 말씀침례교회 변화된 삶이란 교환된 삶이다. 이는 단순히 changed life 가 아니라 exchanged life이다. 이 예를 간증한 생생한 한 편의 간증문이 있기에 실었다. ============================================================ 변화된 삶 - The Exchanged Life - 허드슨 테일러가 누이 아멜리아에게 보낸 편지 친키앙(鎭江), 1869년 10월 17일 사랑하는 누이에게 사랑이 넘치는 네 편지 매우 고맙게 받아 보았다..... 우리가 중국에 온 이후 내게 그러한 편지를 쓴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알기로 너 역시 나와 마찬가지라고 본다. 마음과 몸은 어느 정도 이상의 과로는 견디지 못할 것이며 어느 정도 이상의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로 말한다면, 내 일이 너무 많거나, 책임이 너무 무겁거나, 너무 힘든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담과 중압감은 모두 사라졌다. 아마도 지난달이나 그 이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것에 관해 조금이나마 네게 말해 주고 싶다. 나 자신에 관해 얼마나 너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새롭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롭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것이다.” 조금만 돌이켜 보면 나에 관해 더 잘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아멜리아, 지난 6개월에서 8개월 동안 내 마음은 몹시 괴로웠다. 개인적으로와 사역을 위하여 내 혼에 더 많은 거룩과 생명과 권능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러나 개인적인 필요가 우선이었고 가장 컸다. 좀더 하나님 가까이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배은망덕과 위험과 죄의식을 느끼고, 기도하고, 괴로워하고, 금식하고, 애쓰고, 결심하고, 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더 많은 시간을 드려 은둔하고 묵상하며 애썼지만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일, 거의 매 시간마다 죄의식이 나를 억눌렀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한 순간도 그분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무감이 주는 중압감이 때로는 나를 몹시 괴롭히고, 끊임없이 나를 지치게 하여 자주 그분을 잊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신경이 너무나 예민해져서 화를 잘 내거나 거친 생각과 때로는 불친절한 말을 하게 하여 더욱 통제하기 어렵게 하였다. 그 결과 나는 매일 죄와 실패와 능력의 부족을 낳았다. 참으로 내게 원함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 그러자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정녕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승리 대신에 항상 끊임없는 갈등과 패배로 끝나야만 하는가?” 나의 체험에서는 그렇지 않은 데도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다”고 진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강해지는 대신에 점점 약해졌으며 죄에 대항하는 권능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믿음뿐 아니라 소망조차 매우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나의 죄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항하는 힘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려 했으나 나는 전적으로 무능했다. 나는 거룩, 곧 실제적인 거룩은 은혜의 방법을 부지런히 사용하여 서서히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없으며, 크게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실제적인 거룩에 조금이라도 도달 하기는 커녕, 추구하고 애쓸수록 더욱 붙잡을 수 없었다. 소망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하늘을 더 달콤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 땅에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힘으로 그 거룩에 도달하고자 애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주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으며 도움과 힘을 달라고 구했다. 때로 나는 그분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저녁에 돌이켜 보면, 슬프게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슬퍼해야 할 죄와 실패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그 길고 지루한 날들 동안 내가 매일 체험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구나. 내 혼은 너무나 자주 그러한 상태에 이르렀고, 대부분 절망으로 끝났다. 더 이상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분, 곧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으며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구주로 여겨지지 않았다! .....때로 주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거나 기쁨을 갖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었으며, 고작 아무런 권능도 없었다. 오, 이러한 갈등을 끝내게 해주신 주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 나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였다. 실로 그분은 부요하시지만 나는 가난하였다. 그분은 강하셨지만 나는 약하였다. 나는 뿌리와 줄기에 풍부한 부요함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잘 것 없는 나의 작은 가지 안으로 얻어내느냐는 것이었다. 빛이 서서히 나를 비추었다. 나는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충만을 붙들고 그 충만을 나의 것이 되게 하는데 유일하게 필요한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 믿음을 갖지 못했다. 믿음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내게 임하지 않았다. 힘써 얻고자 시도하였지만 헛수고였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의 놀라운 공급과 보배로운 구주의 충만을 보면 볼수록 나의 무능함과 죄악이 커지는 것 같았다. 범한 죄는 그 죄의 근원인 불신의 죄와 비교할 때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분을 취할 수 없거나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불신을 세상에 속한 저주받은 죄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불신의 죄에 빠졌다. 믿음을 구했지만 임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만 했던가? 내 혼의 고뇌가 최고에 도달했을 때 친애하는 멕카디(McCarthy)로부터 온 편지에 담긴 한 문장이 내 눈에서 비늘을 제거하는데 쓰였다. 하나님의 영께서 이전에 결코 안 적이 없던 예수님과의 하나됨의 진리를 계시하였다. 동일한 실패를 체험하였고, 나보다 먼저 빛을 보았던 멕카디는 (내가 기억하기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나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만일 우리가 믿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변함없이 신실하시니.”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분께서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았을 때, 오, 얼마나 기쁨이 넘쳤던가!) “오, 거기에 안식이 있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기 위해 헛되이 애써 왔구나. 이제 결코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결코 나를 저버리시지 않으시겠다고 -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사랑하는 아멜리아, 그분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보여주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반도 되지 않았다. 내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복되신 성령께서 어떠한 빛을 내 혼에 쏟으셨던가! 그분으로부터 수액(樹液), 곧 그분의 충만을 얻고자 했던 일에서 나는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던가. 나는 예수님께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내가 그분의 몸과 살과 뼈의 한 지체라는 사실을 보았다. 이제 내가 보는 포도나무는 단지 뿌리만이 아니라 모든 것, 곧 뿌리, 줄기, 가지, 어린 가지, 잎, 꽃, 열매이다. 예수님은 그것만이 아니시다. 그분은 흙이요, 빛이요, 공기요, 소나기요, 우리가 꿈꾸고, 원하고, 필요로 했던 것보다 수만 배 더한 분이시다. 오, 이 진리를 보는 기쁨이여! 부디 너의 지각의 눈이 밝아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부요함을 알고 누리기를 기도한다. 오, 사랑하는 누이여, 부활하시고 높여지신 구주(救主)와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것,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신데 나는 가난할 수 있는가? 너의 오른 손은 부요한데 왼손이 가난할 수 있는가? 너의 머리는 잘 공급받는데 몸은 굶어 죽을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기도하는 가운데 이것에 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은행원이 고객에게 “그 수표를 쓴 것은 당신의 손이지 당신이 아니요.” 라거나 “나는 이 금액을 당신 손에 지불할 수 없으며, 당신에게만 지불할 수 있소.”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신용의 한도는 엄청나게 넓으며, 그 범주를 지키는 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름이나 단지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께 속한 자요 그분의 지체라는 기초 위에) 드리는 너의 기도나 나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비성경적이거나 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어떤 것을 요구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응답하실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이라.....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가진 줄로 아느니라.” 다른 어느 몫보다도 가장 달콤한 몫이 무엇인지를 말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가 가져오는 안식이다. 이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뜻을 성취하실 수 있으며 그분의 뜻은 나의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나를 어느 곳에 어떻게 두시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반드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도 내게 은혜를 주시며 가장 어려운 상태에서도 그분의 은혜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인에게 값싼 물건을 사러 보내건, 가장 비싼 물건을 사러 보내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경우이든 그는 내게 돈을 요구하며, 산 물건을 내게 가져온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몹시 당혹스러운 경우에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내게 많은 지침을 주시지 않겠는가? 몹시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많은 은혜를 주시지 않겠는가? 큰 압박과 시련 가운데 처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큰 힘을 주시지 않겠는가? 긴급한 경우를 당했을 때 그분의 것으로 감당치 못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그분의 것은 나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의 것이며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믿는 이와 그리스도의 하나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안에 거하셨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에 관해 글로 쓰는 대신 말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전과 다를 바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거나 그렇게 되고자 애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또한 부활하였고 승천하였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며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 나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와 같이 간주하시며, 나에게도 그렇게 간주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잘 알고 계신다. 과거의 나의 모든 경험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에 대해 말씀하시기에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는 옛 것들이 지나갔음을 느끼고 안다. 나는 이전과 같이 죄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결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다르게 깨닫는다. 그분은 죄를 범할 수 없으시다. 그분은 내가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지키신다. 내가 이 빛을 본 이후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죄를 범할 필요가 없었다고 느낀다. 게다가 빛 가운데를 걸으면 걸을수록 나의 양심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죄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고백했고, 용서를 받았다. 그리고 완전히 고백을 하지 않고 자아를 정당화 하려고 시도했던 때의 몇 시간 동안 화평과 기쁨이 돌아오지 않았던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평과 (겸손이 함께 한) 기쁨이 즉시 회복되었다. 이제 내가 이해하기로 믿음은 단순히 그림자가 아니라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이다. 그것은 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보는 것은 단지 사물의 외적 형태를 볼 뿐이다. 믿음은 실체를 준다. 너는 실체를 의지할 수 있으며, 실체를 양식(糧食)으로 살 수 있다. 믿음(신뢰할만한 그분의 약속의 말씀)에 의해 마음 안에 거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실로 권능이시며, 실로 생명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죄는 함께 거할 수 없으며, 세상을 사랑하거나 “많은 것들”을 염려하면서 그분의 실재(實在)를 가질 수 없다 . 이제 이만 맺어야겠다.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었더라면 하고픈 말을 다 했을 터인데 반도 하지 못한 것 같구나. 부디 하나님께서 이 복된 진리들을 붙잡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요컨대 더 이상 계속해서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에서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과 하나요 바로 그분의 몸의 지체로 만드셨다면, 더 이상 그 분이 멀리 떨어져 계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이 체험, 이 진리들을 소수의 몇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하자. 이러한 진리들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상속권이다. 이러한 진리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죄로부터의 구원이나 참된 섬김을 위한 유일한 권능은 그리스도이시다. 너의 사랑하는 오빠, J. 허드슨 테일러
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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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7
[부르심 간증] 방 효일형제
출처: 갈보리침례교회 방효일 형제 1. [구원 간증]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저에 대해 긍휼과 자비로 참아주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은혜와 사랑으로 대신 죽으셔서 저를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 안에 있는 믿음을 따라 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늘 동행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조부모에 의해 예수님을 알게 된 저의 가족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 있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시골에서 출석하는 교회가 멀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정예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을 대하고 할머니의 훈육가운데서 자라면서 성경을 배우며 기독교적으로 매우 건전하게 성장을 했습니다. 매우 어릴 때부터 할머니는 저에게 "너는 목사감이다, 크면 목사가 될 것이다"라고 자주 말씀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천안에서 목회를 하시는 숙부의 집 근처로 이사를 해서 그 교회(새천안교회)에 출석을 하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장래희망을 목사로 정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저를 "방목사"라고 불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형이 신학대학에 다니다가 군대 제대 후 복학하지 않으면서 갖게 된 목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비량 선교사(의료)가 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비염과 두통으로 공부를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어 휴학을 하고 지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려고 하다가 군입대 영장(보충역)이 나와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경비대 방위병이라 출 퇴근하며 행정병과 군종병을 하며 지내고 청년회 총무로 교회생활도 할 수 있었던 것도 은혜였습니다. 방위소집 해제를 보름 정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회장이었던 형이 저에게 던진 질문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똑바로 믿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부패되어 가는 종교를 개혁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매일 밤 9시에 청년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올해 초에 숙부님을 만나보았는데 지금은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저의 숙부께서 성경에 눈을 뜨시고 복음을 알고 성경대로 믿음을 갖고 실행하기를 소망하고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한사람의 제자를 세우기 위해 애쓰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잘못된 실행과 믿음과 설교로 많은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목회를 하였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숙부께서도 과거에는 너무 모르고 목회를 잘못했었다고 저에게 고백하시면서 이제 70이 가까운 나이에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시며 주님을 얻고자 하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귀했습니다. 1990년 11월 11일 주일에 저를 포함한 청년들 14명은 목사님에 의해 무조건 이단으로 출교를 당했고 나온 청년들은 '제자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가정에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장로 권사였던 부모님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이 일로 인해 가정 안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과정을 잘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청년들이 따로 모임을 갖다가 교회의 한 분을 통해 12월에 천안교회(형제회)에 계신 류정열형제님(현,수지교회)을 소개로 만나서 4번의 교제를 갖게 되면서 점점 성경말씀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는데 이는 구약에 등장하는 유월절, 짐승의 피를 통한 속죄의 제사와 관련이 있으며(출 12:13; 레 17:11; 사 53:5; 요 1:29)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얻는 다는 말씀(롬 3:23,24; 엡 2:8)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저에게 구원의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성경말씀으로 하나하나 알고 믿도록 인도해두셨습니다. 저는 장로교 칼빈주의 예정론의 바탕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중학교 1학년 때에 입교식을 거치면서 예정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침을 받았기에 구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거의 많은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가끔씩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해 막연히 구원받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있다가도 죄와 연루되면 구원이 흔들려 지옥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날마다 짓고 사는 죄를 용서해 달라고 보통 회개기도라는 것을 하지만 하나님께 사죄하는 기도를 통해 용서가 된다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고 사실 기억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회개하지 못한 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에는 하늘나라에 갈 믿음이 있었지만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늘 구원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12월 20일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류형제님과 교제를 하면서도 그 동안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을 너무 강하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이해가 되지 않아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은혜를 주시어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은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완전한 구속과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게 보장된다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성경말씀으로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벧전 1:23~25) 제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지옥 불에서 영원히 죽게 될 저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사면)가 없기 때문에(히 9: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귀하신 피는 저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씻기 위한 것이었고 그분이 단번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셔서 이제는 또다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히 9:12 ; 10:14) 제가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나 선행으로 해결해야 할 죄를 남겨 놓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지불하셨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골 1:14) 죄로 인한 심판의 두려움에서 죄의 사슬이 더 이상 저를 얽어맬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 안에서 솟아나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롬 8:2) 즉시로 제 안에서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하사 은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한번 구원은 영원하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 저에게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다가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거나 죄를 짓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제를 하면서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성경적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요 10:28,29; 롬8:38,39)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요 3:16)은 그 누구도 심지어 저 자신까지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원받으면 믿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는데 이름을 기록했다가 죄를 짓거나 해서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이름을 지웠다가 회개하면 다시 기록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너무나 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곧 바로 저에게 베푸신 주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영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저를 죄 가운데 거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죄에 대한 자각과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살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죄 사함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알고 나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당시 모임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을 점검하며 자매들의 가족이나 직장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구원을 기도하던 중에 부모님은 그 후에 복음을 알게 되셨고 지금은 두분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듬 해 신학원에서 흠정역을 알게 되고 바른 성경에 근거한 진리를 배우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더욱 순종하며 제 자신을 드리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해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저의 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23살에 되던 해에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보혈로 깨끗하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어 지극히 높으신 새로운 영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갖도록 해주신 하나님과 그 사랑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저를 사랑하사 인내하시고 긍휼과 자비의 손길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 2. [부르심 간증]주님의 뒤를 따라 썩어져 죽지를 않으면… 방효일형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를지니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4-26) 제가 23살 되던 해인 1990년 12월 20일은 기쁘고 기쁜 날, 제가 거듭난 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복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날입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죽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떨어져야 마땅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하신 대가는 지극히 높고 위대하신 그분의 생명이었습니다. 우주보다 귀하신 그분의 귀하신 생명을 아무것도 아닌 저를 위해 내어놓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큰 은혜를 받은 저는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저를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위해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위의 말씀을 통해 한 알의 밀이 되어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날 동안 주님을 향한 저의 마음과 세상의 향한 저의 마음 사이에서 많은 방황과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저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자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가운데 갖는 상황들 속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 누리고 싶은 욕망들은 주님을 향해 나나가는 저의 발목을 붇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믿음으로 이기지 못하고 그냥 무기력하게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2003년에 선교팀이 나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헌신의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언젠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상황들이 좋아지면 선교팀에 합류할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그 형제들의 섬김의 자리에서 함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일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교회의 사역에 관심하고 동역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20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복음전파하는 일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섬김을 통해 주님은 저에게 조금씩 주님을 섬기는 자의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한가운데에서 나도 이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스스로 만족하는 잘못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의 교만한 마음 불순종, 그리고 세상의 염려로 인한 믿음 없음은 온전히 복음에만 드려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했지만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받는 공급과 은혜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99년, 2000년에 교회에서 국내 순회선교팀인 "A팀"에 합류하면서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맛보았기때문입니다. 해외 선교팀의 형제들이 주님께 헌신을 할 때에 저도 동참을 하였고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주님이 보내시면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제들과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헌신의 길을 가는 형제들과 저는 분리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저의 삶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절대적인 헌신의 길을 가는 형제들과 그들과 동일한 헌신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언젠가 이들과 분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일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보낸 교회의 지체들이나 보냄을 받은 선교팀이 하나됨을 잃어버리는 것은 있어서는 않 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며칠간 생각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 그분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길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생활은 다르지 않으며 교회의 존재 목적과 그리스도인의 존재목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2004년 여름수련회의 주제로 이어지면서 저에게 주님의 은혜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수련회 총진행을 맡으라고 할 때에 사실 저에게는 너무나 큰 일이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일과 기타 여러 가지 일들로 감당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졌지만 주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있어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온 성도님의 기도와 격려, 그리고 동역자들의 헌신된 섬김이 함께하여 주님께서 수련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2004년 여름수련회기간에 세 번에 걸쳐 나눈 교제에서 나눈 내용,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구원받지 않은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며칠 동안 생각하면서 이것이 저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을 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회 3일전에 수련회의 주제가 복음과 선교이며 이와 관련한 교제내용을 보면서 저 안에 많은 갈등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너무나 좋은 내용이지만 먼저 저에게 적용이 되고 실제적인 삶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셋째 날 복음과 선교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주님께 제 자신을 주님의 원하심에 드리지 안고서는 인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복음과 선교에 온전히 드려지지 않고 형제, 자매들에게는 복음과 선교에 드리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형제 자매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은 복음전파에 대한 것임을 말하면서 제 안에 실제가 없다면 그 말은 공허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괴로왔습니다. 왜 주저하는가? 나를 관심하며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는가? 하나님께서 가장 가치있게 여기시는 것은 사람의 혼인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값주고 사신 혼을 위해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강하신 원함에 얼마나 관심하고 있는가? 저는 우리 교회가 세계선교의 불길을 당긴 모라비안 교회처럼 모두가 복음과 선교에 드려진 교회로 주님의 관심을 받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교제를 준비하면서 누가복음 12장 31절을 보면서 저보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거부할 수 없는 주님의 초청이 저의 마음에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조금씩이나마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일에 실제적인 드려짐이 없이는 주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저의 마음에 주시는 주님의 부담에 대해 확정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 둘 째날 금요일 밤 목사님들과 형제님들의 교제를 통해 주님이 저를 부르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저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를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불러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간은 저의 시간과 달랐습니다. 그 교제 가운데 저를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주님께서 저를 향한 새로운 계획을 갖고 계심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길을 가는 가운데 누리는 은혜를 더욱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는 단순한 믿음이 없이는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잃어버리고 주님을 얻는 길에 기꺼이 저를 드리고 싶다는 고백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나오고 있었습니다. 세번 째날 조원들에게 복음과 선교에 대한 내용을 교제하면서 그 가운데 저에게 성령님의 부으심이 있었고 저 안에 실제가 있기를 간구하게 되면서 저에게 먼저 은혜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저의 믿음을 더해주셔서 부족한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에 기꺼이 아멘! 하며 주님의 희생제단에 몸을 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쓰시기에 합당하게 빚으셔서 사용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수련회를 마치고 그 다음 주일에 있었던 주님의 초청에 저와 미리 교제하며 준비했던 아내가 귀한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원하심에 자신을 드리기로 헌신을 했습니다. 마당쇠의 마음을 품고 이렇게 하라하면 하고 저렇게 하라하면 하고 어디든지 주님이 가라 하시면 무엇이든 하고 어디든 갈 준비는 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닌 자신을 복음에 합당한 삶에 내어 드리고 주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살아갈 것을 고백했습니다. 저도 한 알의 밀이 되어 썩어져 죽지 않으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 길을 가고자 주님께 저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 부족한 자이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배운 것은 주님의 사역은 자신의 능력만을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개인적인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보냄을 받은 형제, 자매들과 같이 하는 팀을 이루어 동역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부족한 형제, 자매들이 함께 격려하고 사랑하며 주님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일이 선하게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님들 사랑합니다.
lhyunsik
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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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7
[부르심 간증] 강 희수 형제
출처 : 갈보리침례교회 강희수 형제 1. [구원 간증]인내로 구원하신 하나님 저는 예수님을 믿고 계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던 저는 형식적으로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으로 모든 종교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타지방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너무도 당연하게 교회에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죄와 허물 속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관념적인 생각과 언젠가는 교회를 다녀야 할텐데 하는 종교적인 죄책감 같은 것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학교생활과 군대생활 그리고 직장생활. 이렇게 인생은 바쁘게 흘러갔고 오직 저는 어떻게 인생을 나름대로 가치있고 즐겁게 살아갈까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허덕이던 내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어서 은혜와 자비로 대해주셨고 자신의 교제 안으로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께서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기까지 수 차례에 걸쳐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을 들려주셔서 거듭날 기회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거듭난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제가 복음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지금 기억나는 사건조차 하나님은혜의 일부분일지 모릅니다. 저는 모르지만,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통하여 주님은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부흥회에서 복음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어느 친구가 수 차례에 걸쳐 전도를 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20대 중반기의 어느 날 서울에서 집으로 가는 열차에서 대전에서 목회하신다는 목사님과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인사를 건넨 후 이런 저런 질문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야기. '나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귀찮게 자꾸 이야기 하시네' 그런 마음으로 마지못해 듣고 있었고 그 분이 제게 믿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교회에 다니니까 이런 얘기를 듣지 누가 그런 얘기를 믿겠습니까? 저를 믿게 해보세요?" 이것이 저의 대답이었고,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사님에게 반항하듯이 기도가 끝날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서, 내가 기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의 완악함을 주님 용서하소서. 주님은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계시건만, 저는 그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으로 주님의 은혜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런 저를 주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은혜와 자비로 대해주시고 인내로 참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로 하여금 마침내 복음을 통하여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서른 살 되던 해에 어릴적 교회동기였던 친구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친구들과 병문안을 가게 되었습니다. 병문안 중에 같은 교회동기였던 한 친구가 성경을 꺼내들고 내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가끔 만날 때마다 복음을 전한다고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겉으로는 그의 말을 듣는 척했지만 마음으로는 모든 것에 대해 반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성경을 꺼내들고 성경구절을 보여주며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감히 거부할 수 없고 죄인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심판과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전 12:14) 저는 지옥에 가기 싫었고 그 고통의 장소에서 구해지길 원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저 같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요 3:16) 저를 구하기 위해 저를 대신하여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았습니다.(벧전 2:24) 하지만 그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음을 들었습니다.(고전 15:3,4) 또한 이 예수님을 마음으로부터 구주로 받아들이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로 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 1:12)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씌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저에게 엄중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하셨고, 그 말씀은 내게 능력있게 역사하여 거부할 수 없게끔 하셨습니다. 저는 복음의 말씀을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를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감사히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말씀에 따라(롬 10:9,10) 그 친구와 함께 한적한 병원 뒷계단에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겠노라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예전에는 복음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던 저를 하나님께서 그 동안 다루시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주셔서 복음을 받게 하시니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자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인내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 2. [부르심 간증]주님 따르기 원합니다. 강 희수 형제 세상 속에서 주님 없이 의미없는 삶을 살던 저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구원하시고 그 이후의 삶들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저는 교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진리를 알게 되는 기쁨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생활이 어색하고 세상으로의 관심도 많았지만 점점 하나님과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을 공부하고 주님을 경배하고 또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 역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주님을 섬기는 길로 갔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땅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복음에 헌신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는 교회적인 초청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주님의 일을 만질 만한 사람이 못됨을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 영광스러운 일에 불러만 주신다면 그 일을 통하여 많은 배움을 갖고 싶다며 복음에 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저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저는 여러 가지 많은 부족한 점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함께 동역하는 형제 자매님들이 잘 감싸주었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2년여 동안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 뒤에 주님은 다시 다른 배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말씀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성령의 인식과 인도를 받는 것에 대하여서도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실제적으로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 자신은 헌신되어있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모든 것이 주님의 손안에 있기를 다만 원했습니다. 어떤 직장을 가져야 하는 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든지 전일하여 주님을 섬기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고 단지 저는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어진 환경 안에서 부족하지만 주님을 섬기길 원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되 주어진 은사와 부르심 안에서 섬겨야 하기에 저 역시 어떤 섬김으로 부르셨는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은 계속해서 저를 복음으로 부르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안에는 복음에 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곳곳에 황폐하게 버려진 영혼들이 복음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제게 인식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복음에 관련된 섬김을 가질 때가 많았고, 다른 선교팀과 연결을 갖고 계속 교제하는 속에서도 저의 부르심을 더 확정시키셨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주님은 교회안에 선교에 대한 부담을 강하게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부담이기에 교회전체가 복음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되고 선교에 대한 필요성과 헌신의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외 선교사 파송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내 선교에 많은 마음이 있었지만, 해외이든지 국내이든지 복음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였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때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주님의 때와 시기를 기다리며 배우고 준비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해외 선교사가 파송되고 나서 얼마 후에 국내에도 선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님이 교회에 주셨고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원하심이기에 여러 환경과 상황들이 국내선교를 위해 인도되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자원하였고 주님께서 국내선교로 부르심을 확정하여 주셨습니다.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었기에 파송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많이 미숙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기에 선교를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된 듯이 여기는 마음이 행여나 있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서 배움의 길을 가기를 원하고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을 더 많이 알고 얻길 바랄 뿐입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입술로만 복음을 전하였다면 이제는 제자신이 복음의 삶을 통하여 능력있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복음 안에 계시된 주님의 겸손함과 섬김을 배우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을 배워서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사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해외에 있거나 국내에 있거나 상관없습니다. 국내선교팀에서 이런 일을 하거나 저런 일을 하거나 상관없습니다. 오늘 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신실한 주님의 종으로서 끝까지 주님 뒤를 따르길 원할 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자비하심 안에 늘 머물기 원하며 주님이 국내선교팀 사역을 축복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lhyu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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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7
[부르심 간증]송 은석형제
송은석형제 (일산갈보리침례교회) [구원간증]죄인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나는 한 백화점 내의 컴퓨터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도 예전과 같이 세일 기간 판매를 마치고 집에가 쉴 것을 생각하며 폐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나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다. 서 있는 것이 너무도 힘들지만 무사히 세일 기간을 마치고 퇴근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가볍다. 그런데 주임님이 피아노 코너에 있는 소파로 나를 불렀다. 평소에 주임님에 대한 인상은 좋았다. 주임님은 오전에 출근을 하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3명의 직원과 함께 찬송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했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보기 좋았다.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마디로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라면서 하나님, 교회, 예수님... 이러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한 가지 기억이 나는 것은 중학교 때 전주에 있는 누나를 방문했을 때 누나가 다니는 교회(형제회 모임)에 데리고 가서 한 형제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성경을 펴고 지도를 보여 주시면서 성경에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설명하신 것 같다. 그때 나는 나이도 어린데다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성경은 무엇인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 사건이 후에 구원을 받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막연한 인식이라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자 주임님(박형제님)이 나에게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 전도지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인생에 있어 가장 귀한 계기를 맞게 되었다. 주임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로 시작을 하셨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특별히 죄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좋은 평을 받았기에 나는 비교적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나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전해 주실 때, 내가 사람들 앞에서는 죄인이 아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나는 누구 앞에서도 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내 자신을 보았더니 내 자신이 너무나도 큰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죄들을 열거하실 때에 그런 죄들이 동일하게 내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예...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감사한 것은, 처음 복음을 듣는 그 순간에 그것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왔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기준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인이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자리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또한 죄인은 자신의 선행과 종교적인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려고 해도 절대로 하나님의 기준인 거룩함과 의에 이를 수 없음을 들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씀을 들을 때에 때 너무도 순수하게 이 놀라운 복음을 듣고 믿었다. 내가 거듭나게 된 것이다. 죄인인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주님의 빛으로 비추어 주셔서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였는지! 일생에서 가장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 내 안에 은혜가 넘쳤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몰라도 하나님이 내게 찾아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도 이상한 것은 왜 이런 귀한 소식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에게 전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느냐는 것이다. 이런 귀한 복음을 더 빨리 들었더라며 하나님을 더 빨리 알고 믿었을 텐데...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나처럼 복음을 몰라서 못 믿는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구원을 받은 후에 나는 자연스럽게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형제님들과 함께 경건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경배하며 주님을 알아가는 귀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죄인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신 주님께 영광을! -------------------------------------------------------------- [부르심 간증]영광스러운 부르심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간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인지... 그리스도인의 가는 길은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있다고 믿는다. 주님은 세상의 영을 따라 어두움 가운데 방황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오라'(계 22:17)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 부르심이 없다면 주님을 알 수도 없으며 주님을 따를 수도 없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감사를 드린다. 추하고 더러운 죄인을 향한 사랑이 내게 나타나 주님의 자녀 삼아 주셨음을 감사드린다. 일산에 교회를 세운지 5년이 되어가면서 교회 내에 전진하는 느낌보다 뭔가 답답함이 계속되었다. 주님의 축복으로 처음에 교회가 시작될 때는 젊은 형제들이 많이 있었고, 다른 많은 교회들과는 달리 이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주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자신을 관심하며 세상에 머물러 있는 지체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회 내에는 항상 두 부류가 있기 마련이지만 전체적인 교회의 분위기가 처음 교회를 세웠을 때 보다는 많이 무거워지고, 전일하여 주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내게도 주님을 따르려는 분투는 계속되었다. 단지 지식을 추구하는 것에서 참된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관심하는 길로 주님이 인도하셨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에 대한 진리와 성령을 인식하게 되었고,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풍성한 생명의 길을 주님이 조명하시면서 한 걸음 씩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실제적인 길을 제시하며 형제자매들을 인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게 되었다. 내 자신 역시 주님의 사람으로 잘 준비되어 가고 있는가 생각할 때 뚜렸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안주하게 되었으며 일반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주님이 부르셨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주님의 놀라운 부르심에 응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를 인도하는 형제님을 비롯하여 앞서 있는 지체들이 교회가 이렇게 가서는 길이 없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며 분투하고 있을 때, 목사님으로부터 해외에 선교 훈련 센타를 만들고자 하는 부담을 듣게 되었다. 저와 몇 명의 형제들을 거론하면서 좋은 형제들이기는 하지만 아직 많이 준비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전일하여 훈련을 받을 것에 대해 교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러한 교제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주님의 부담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교회는 계속 하늘의 흐름을 따라 길을 가야 하는데 앞서서 길을 가는 사람이 없이는 교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보게되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실행하며 절대적으로 길을 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있었던 헌신과 경험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주님을 얻을 수 없음을 지난 날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새롭게 주님을 얻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더 깊은 십자가로 내어 놓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발을 내딛어 전진하지 못하면 모두 길을 잃게 된다는 강한 부담이 내 안에도 생기게 되었다. 해외에 선교 센타를 세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길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젊은 형제들에게 주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인지 본을 보이고, 이들을 훈련시켜야 할 필요들이 교회 안에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인원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형제자매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섬겨야 하기에 몇 가정이 파송 받아야 함을 공감하게 되었고, 그러한 전제하에 교회적으로 선교사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의 부담이었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누가 파송을 받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구든지 지원을 할 수 있으며 간증을 듣고 성도들이 판단하기로 했다. 처음에 나는 반드시 파송을 받아서 훈련을 받길 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을 했던 것이 있었다. 내가 나가는 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인데, 막상 내가 떠나게 된다면 나의 섬김을 메꾸어 교회를 섬길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님이 나를 부르셨는지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인데 교회에 실제적으로 남아서 사역을 돕고 섬길 사역자가 없다면 그것이 과연 교회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주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교회에 남아야 한다는 부담을 더 많아졌다. 당시 내가 섬기고 있던 중고등부 사역과 주일 오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 교회를 인도하시는 형제님과의 동역, 교회 행정적인 면들, 지체들을 돌보는 것 등을 생각할 때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커지게 되었다. 파송을 받든 파송을 하는 자가 되든 모두 교회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을 지금도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러한 마음을 주님이 주셨기에 언제나 교회를 생각하면 우리 팀이 가는 길과 교회가 가는 길이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 항상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 안에 교회를 향한 사랑이 있으며 간구와 사모함이 있다. 최종적으로 교회 앞에서 선교사 간증을 하게 되었을 때 주님 앞에서 기도한 것은 주님이 처음 주셨던 사모함(파송을 받아 훈련을 받고 교회의 길을 새롭게 여는 일)이 있지만, 그러나 무엇이든 가장 선한 것을 이루어 주시길 기도했다. 그래서 만약 남으라시면 기쁜 마음으로 교회 안에서 섬기겠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주님이 배우게 하신 것은 교회 안에 주님이 임재하셔서 주님의 뜻과 길들을 분명히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내게 분명한 확신이 없을 때도 교회 가운데 함께 계신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뜻을 구할 때, 주님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히 보이셨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누가 파송을 받아야 할지는 성도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 확신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부담과 여러 형제들의 부담을 교회에게 말할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주님께서는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 나를 선교팀으로 부르셨고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날의 축복과 주님의 가득한 임재와 성도들의 하나됨을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주님의 부담을 먼저 보이시고, 필요을 알게 하셔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신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억지나 당위성으로 하게하지 않고 자원함과 사모함으로 행하게 하신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이 땅에 있는 것을 사모하지 않고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한 도성을 향해 믿음의 길을 갔다. 상 주시는 분을 바라보고 이 땅에 있는 것을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을 주께 드리며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 갔던 것이다. 이러한 길로 주님은 지금도 부르고 계시며 초청을 하신다. 언제 어떤 환경 가운데서 살고 있든 주님은 하늘에 속한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에 주의하며 하늘에 속한 것을 소망하며 하늘의 하나님의 의지하길 원하신다. 나의 부르심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동일한 부르심을 받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한 무리를 이루도록 부르셨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이 팀은 먼저는 교회를 위하고 그리고 온 땅을 위하는 길을 가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다. 한국에 있는 갈보리교회의 파송이 없이는 해외개척선교팀은 존재 할 수 없다. 팀은 교회를 위한 것이며, 교회와 다른 사역을 가지거나 다른 길을 가지 않는다. 오직 교회와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며 교회에 새로운 길을 열길 원하며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을 훈련시켜 주님을 위한 사역자로 양성하길 원하다.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아낌 없이 내어주셔서 아들의 생명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이 생명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낳기 위해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길 원한다. 이러한 길을 걷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노력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있음을 고백한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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