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환] 명품(9) 명품의 경제학(3)- 은밀한 품격 vs 화려한 로고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지난 십수 년간 세계 명품 시장을 지배한 풍경은 단연 거대하고 대담한 로고의 향연이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구찌의 더블 G 버클, 발렌시아가의 큼직한 타이포그래피는 대중문화와 소셜 미디어(SNS)의 폭발적 확산 속에서 소비자의 지위와 정체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언어로 군림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지를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가슴팍이나 가방 전면에 박힌 로고 하나로 증명하던 ‘로고마니아(Logomania)’와 ‘과시적 팝 럭셔리(Pop Luxury)’의 시대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럭셔리의 중심축이 정반대 방향으로 요동치고 있다. 화려한 로고와 번쩍이는 장식을 옷감 안쪽으로 완전히 감춘 채, 은밀하고 정제된 우아함을 내세우는 이른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 조용한 럭셔리)’ 혹은 ‘스텔스 럭셔리(Stealth Luxury)’의 거대한 물결이다.

이 새로운 조류의 선두에는 로로 피아나(Loro Piana),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더 로우(The Row) 같은 하우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옷에는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는 어떠한 엠블럼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안데스산맥 해발 4,000미터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야생 비쿠냐(Vicuña) 섬유, 몽골 고원의 아기염소에서 얻은 최상급 베이비 캐시미어, 손끝에서 전해지는 무결점 테일러링과 은은한 천연 원색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평범해 보이는 짙은 남색 캐시미어 니트 한 벌이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백화점 일반매장의 제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직접 입어본 사람, 그리고 최고급 소재의 미세한 결을 감별할 줄 아는 소수의 동류(同類)만이 그 가치를 알아볼 뿐이다.

Loro Piana Bags

이러한 현상이 대두된 배경에는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사회심리학적 반작용이 맞물려 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자산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대중적인 ‘엔트리 럭셔리(소비자가 처음 진입하는 비교적 저렴한 명품)’를 소비하던 중산층의 지갑이 얇아졌다. 

반면 자산가치 상승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초고액 자산가(UHNW)들은 대중화된 로고 제품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구나 무리해서 카드 할부로 살 수 있게 된 명품은 더 이상 배타적 지위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짙어질 때 부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촌스럽거나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역시 이러한 은폐된 소비를 부추겼다.

Brunello Cucinelli bags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일찍이 부를 증명하기 위해 재화를 낭비하는 ‘유한계급론’의 과시적 소비를 갈파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콰이어트 럭셔리’는 베블런의 명제를 한 단계 더 정교하게 비튼다. 그것은 더 이상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Conspicuous Consumption)’가 아니라, ‘아는 사람끼리만 알아채는 비과시적 과시(Inconspicuous Consumption)’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로고)를 지워버림으로써, 물건을 소유하는 물질적 능력뿐만 아니라 안목과 미적 취향이라는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을 동시에 검증하는 배타적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결국 콰이어트 럭셔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소비의 본질과 직결된다. 우리는 과연 제품 본연의 완성도와 내면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기 위해 화려한 브랜드의 이름을 빌려 입고 있는가?

The Row Bags

소란스러운 로고의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 남겨진 것은 소재와 만듦새, 그리고 개인의 고유한 취향이라는 본질적인 캔버스다.

콰이어트 럭셔리는 명품 산업의 단순한 유행 변화를 넘어, 보여주기식 과시의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품격이란, 굳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나는 법’이라는 오랜 미학적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우리말 ‘아름다움’의 깊은 어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15세기 문헌 『석보상절』 등에 나타나듯, 당시 ‘아ㄹㆍㅁ’은 ‘나(私, 개인)’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아름답다’의 뿌리는 다름 아닌 ‘나답다’에 닿아 있다. 남의 시선에 억지로 맞추거나 화려한 겉치레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내면의 가치를 오롯이 지켜내는 상태를 선조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보았던 것이다.

결국 ‘콰이어트 럭셔리’가 향하는 종착역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는 화려한 로고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가장 나다운 품격과 내면의 멋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완성이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

CFP, DY&Partners In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