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랑] 삶을 삶았더니

삶을 삶았더니
슬픔의 쎈 뼈가
부드럽게 익더라
농골농골

산다는 것은
뜨거운 불판 위에

나를 올려놓고
온종일
삶는 일이더라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삶는다

바글바글 삶아낸
질긴 마음 근육질이
어금니를 물컹 깨문다

내 안의 비릿한
무언가 날 것들이
조금씩 물러지고

마침내
생각의 늑골을 우려낸
뽀얀 육수를

백기 대접에 담아
저녁 식탁에 올린다

식탁 위에 올라온
내 삶은

여전히 바글바글
김을 올리며

사계절이 이미 다
지나가 버린 나의
삶을 삶는다

이름 없는 나의 계절을
기웃거리는
패잔병들 같은 시간들이
방황한다

지난 계절, 난
꽃들이 어떻게 햇살을
잎술에 받아먹고

꽃잎 하나를
더 키워내는지

또 꽃들이 검은 담요를
어떻게 덮고 밤을 자는지를
보았다

이제 그 것들을 그리워하며
나는 곧 이름 없는
나의 계절을 떠나야 하리

평생 우려낸 삶의
더운 육수 한 그릇

목을 적시며
나는 곧 이름 없는
나의 계절을 떠나야 하리
낙엽처럼

 

토론토 거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