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파리, 그 늦은 여행의 기억

파리를 다녀온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여행 후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오래전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서야 겨우 펜을 든다. 그러고 보면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던 듯하다. 남들이 너도나도 다녀와 ‘식상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도시,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만 할 것 같은 도시. 그런 마음의 밀고 당김 끝에 늦게나마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기대는 크지 않았다. 파리에 관한 글과 사진, 수많은 여행 정보가 인터넷 곳곳에 널려 있었으므로 내가 새삼 무엇을 더 알고 느끼겠나 싶은 마음이 컸다. 다만 나이가 더 들어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전에, ‘유럽을 두루 섭렵하겠다’던 오래된 바람의 첫 장을 열기 위해 떠난 길이었다. 출발을 앞두고는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을 뒤적였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며 여행에 대한 설렘을 돋우려 애썼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파리는 의외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은 그야말로 기분 좋은 역설이 되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현대의 일상과 나란히 호흡하는 도시, 몇백 년 전의 시간이 여전히 거리를 거닐고 있는 듯한 분위기. 옛 파리와 지금의 파리가 겹쳐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오래된 필름과 새로운 영상이 맞물리듯 탄성을 자아낼 만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파리를 찬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의 방식도 그때를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때는 남는 게 사진이라며 낯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는데, 그때부터는 눈과 마음으로 오래 보고 느끼고자 했으니 말이다. 사진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테지만, 그 순간의 공기와 소리, 눈앞의 빛깔은 오직 나만이 누릴 수 있기에 셔터를 되도록 누르지 않기로 했다. 파리 여행에서는 억지웃음의 기념사진 대신, 매일 저녁 일기를 쓰는 일에 공을 들였다. 나중에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사진첩 대신 일기장을 펼치면서 파리를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은 이름난 명소답게 압도적이었으나, 끝내 모든 곳을 다 둘러보려 하지는 않았다. 대신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한참을 머물며 상념에 잠겼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나란히 잠든 묘역, 그리고 내가 머무는 동안 장례가 치러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새로운 안식처까지… 그곳은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파리를 역사와 철학의 도시로 다시금 각인시켜 주었다. 그 순간, 파리는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 시대의 호흡이 스며든 공간으로 내게 다가왔다. 옛것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 있게 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관광객에 지칠 법도 한데 친절을 잃지 않았고, 우리 부부가 철도편을 몰라 헤맬 때도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었다. 장애인과 약자를 향한 배려 역시 도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당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보행이 불편했던 남편은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오르세 미술관 입장을 위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긴 줄에 서 있었는데, 경비원이 다가와 우리를 별도 문으로 안내했다. 덕분에 함께 있던 뉴욕 여행객까지 행운을 얻었다며 고마워했고, 우리는 마치 특별한 인물이 된 듯했다. 루브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모나리자 관람 행렬을 건너뛰어 곧장 그림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과분한 배려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 정작 그림은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여행은 늘 ‘왜 떠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책이 정신의 감각을 흔든다면, 여행은 정신과 육체 모두를 흔들어 깨우는 경험일 것이다. 한적한 야외카페에서 파리지엔느처럼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오후, 손녀를 위해 크레파스와 작은 하모니카를 고르던 시간, 공연히 낭만적이고 싶어 샹송의 선율을 떠올리며 흥얼거리던 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여행지에서의 매 순간은 일상의 연장이면서도, 동시에 일상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다른 빛깔의 조각임이 확실했다.

​돌아온 지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오히려 지금에서야 파리에서 보냈던 짧은 시간이 기억 저편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위로처럼 피어오른다. 다시 간다면 이번에는 한층 천천히, 더 깊이 파리를 새기고 싶다. 파리가 내게 어떤 인상을 새롭게 줄지 궁금해하며 언젠가 이 도시를 찾게 되기를 꿈꾼다. 오래전 영화 속 주인공의 딸이 남겼던 “프랑스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쪽에서 잔향처럼 울려 퍼진다.

​파리 여행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파리의 시간이 예기치 않게 맞닿았던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뒤늦게 써 내려가는 이 글은, 그 시간을 기억 속에서 되살려내는 또 한 번의 여행이기도 하다.

문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