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기념일의 마음

아들에게 네 생일에 뭘 갖고 싶냐고 물었더니 손녀 생일을 제외하고 다른 가족 생일에는 그냥 식사만 하자고 한다. “그래도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인데…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라고 말했지만, 나의 주장이 더는 빛을 발할 수 없는 듯하여 씁쓸했다.

​나는 선물을 고를 때 상대가 이걸 받고 얼마나 기뻐할까도 상상하지만, 그 사람만을 온전히 생각하며 선물을 고민하고 고르는 과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누린다. 마찬가지로 나를 위해 선물을 골랐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 내게 불필요한 물건일지라도 선물 받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기념일에 가족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또 다른 마음의 교감이라 여기는 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유난히 기념일을 챙겼다. 가족 생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잊지 않았다. 1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이어지는 우리 집 크리스마스 시즌은 아버지가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기간이었다. 아직도 그 시기가 오면 어릴 때 아버지가 LP 레코드판을 건 전축으로 틀어주던 캐럴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곤 한다. 거실 한쪽에 화려한 장식을 두른 크리스마스트리, 천정을 가로지르는 철사 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크리스마스카드, 거실 중앙 난로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던 주전자…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 언저리에 맴돌며 나를 추억의 시간 속에 빠져들게 한다. 아버지가 해외 친구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 한 뭉텅이를 들고 우체국에 찾아가던 연례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 가운데 하나이다. 애정 어린 문구가 담긴 카드를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상상하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유독 내 생일을 성대하게 열어 주었다. 여름철 과일이 넘쳐 나는 내 생일은, 오빠와 남동생의 생일과는 달리 특별났다. 친척들을 초대하는 파티이긴 했으나 늘 음식과 선물로 풍성했었다. 그날 하루만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생일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게 용납되는 특권을 누렸다. 고등학교 중반에 학업으로 집을 떠나기 전까지 내 생일은 떠들썩하게 열렸다.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직업상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어느 해, 내 생일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랐다. 풍성한 생일상도 선물도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친구들을 불러 종일 화투 놀이를 즐겼고, 가사도우미 언니가 차려준 국수로 생일상을 때우게 했다. 심지어 생일에 국수를 먹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며 속상한 내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나는, 국수를 내다 버림으로써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어머니에게 무언의 항변을 했다. 그날 손님들이 돌아가자마자 생일자의 특권은 끝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손님들 앞에서 버릇없이 몰상식한 행동을 한 내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라고 했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맞았다. 

​기념일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 남편을 만나고서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이 다가와도 남편은 축하 카드 한 장 없이 평상시와 똑같이 넘어갔다. 기념일이 지난 다음, 섭섭함을 표현하는 것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에 불과했다. 몇 번의 기념일을 대충 넘기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처음으로 내 나이만큼의 장미 송이가 가득한 꽃다발을 받을 수 있었다. 해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무심한 남편에게 공공연히 날짜를 되새겨 주고 노골적으로 선물 압력을 넣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비록 엎드려 절 받기지만 잊지 않고 이 과정을 반복해 온 나의 집착도 가히 놀랍다. 괜히 섭섭하다고 투덜대기보다는 미리 알림으로써 축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오히려 좋지 않냐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기념일은 내 존재를 귀하게 여김 받은 날이기도 했고, 가족의 따스한 결속을 느낀 시간이기도 해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습관처럼 챙기는 것일 수도 있다. 기념일에 집착할 때마다 내 안에 혹시 작은 피터 팬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좋았던 기억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결코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자아의 일면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한다.

​기념일에 식사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캐나다에 사는 가족에게 한정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은 캘린더에 기록하여 카톡으로나마 전자 카드를 보내며 축하하고 있다. 내 삶에 선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게 적어도 1년에 한 번 기념일을 빌어 안부를 건네고 싶은 이유는, 그들과의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내 생일에 선물 하지 않는 건 괜찮다고 하면서 가족 생일에 기어이 선물하겠노라고 고집부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내 오래된 습관이고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해도 상대가 부담을 느낀다면 이제는 고려해 봄 직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문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