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譯述 윤경남
(지난 호에 이어)
1월17일. 목요일. 거친 바람- 몹시 추운 날씨. 상해.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하루 이틀이 지나,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내 사랑이 12시 경에 매킨타이어 홈에 도착하다. 그녀가 온다는 기쁜 소식은 ‘인력거’로 매킨타이어 홈에 달려가는 시간보다 더 빨리 내게 전해졌다. 사랑하는 아내는 개더 부인의 서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그녀의 몸이 내 팔 안에 무너지듯 안겨왔다.
창백한 얼굴, 무척이나 아름답고 고운 모습, 나를 무아경에 빠지게 하는 더할 나위없는 그 미소를 띄고 안겨 왔다. 내가 10년 만에 귀국하는 계획을 뒤로 돌려 놓는 듯한 느낌이다. 오, 하느님,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 어여쁜 아내와 아기를 다정하게 돌보아 주소서!
오후 2시에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은 북풍이 부는 듯 너무 추워서 난로도 소용없을 지경이었다.
밖에는 한 겨울 삭풍이 윙윙 거리는데, 나는 편편찮은 내 방에 앉아 있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여인,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지쳐 있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네.
나에게 온통 매달려 있는 그녀의 불안함과 고통과 마음 씀씀이를 생각 하면서,
내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와 모험을 깊이 깊이 생각해 보네.
아무도 헤아려 주는 이 없이 오랫동안 내 사랑이 나 없이 홀로 겪었을 외로움과 불안감을 깊이 생각해 보았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상념 속에 휩싸여 앉아 있네.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이 넘치는 ‘시’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으리.
인생의 ‘산문’이 이런 것임을 알게되기 이전에는.
어여쁜 내 사랑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나는 춥고 배고픈 곳이라도 기꺼이 달려 가리라.
헤이굿 선생에게서 즐거운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받다. 하느님, 고귀한 저 여인을 축복하소서!
1월18일. 금요일. 맑은 날씨. 바람이 불고 몹시 춥다.-하루 종일 땅까지 얼어붙다. 상해.
나가미에게서 편지를 받다. 도쿄에 있는 내 사촌 치오가 우편으로 내게 보내준 60불을 받았음을 알려주다.
우리들의 귀여운 친구가 나의 보배인 아내와 함께 하루를 지내다. 아내와 그의 자매 애퐁! 이 두 여인을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오, 하느님, 내 사랑 시엔숭과 그의 자매 애퐁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헤드릭 양을 방문하여 50불을 꺼내어 맡기다—그녀의 이름이 적힌 영수증을 받다.
1895년 2월의 상황
1. 윤치호는 10년 만에 상해에서 귀국하다.
2. 제물포 부두에서 본 조국의 피폐한 모습.
3. 서울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하고 자신의 선교의 사명이 확고함을 말씀 드림.(2월14일)
4. 윤치호의 기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 교육을 통하여 민중을 깨우치는 일, 정치에 참여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참신한 개화정책을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5. 미국 공사관 방문; 미국공사 씰, 비서관 호레스 알렌, 언더우드 박사 내외 만나다.
6. 유길준-이노우에 백작-박영효 방문하다.
7. 가족회의와 아버지의 ‘행세론’
등장인물
유길준:(대신급 관료, 정무비서관격으로 연립내각의 실권자, 미국외교관으로부터 미국의 도움을 받고 유학을 하고 왔는데도 배은망덕한 인물로 비난을 받고 있음)
박영효:(갑신정변의 주역, 갑오개혁을 사면을 받고 귀국해서 연립내각의 신파 지도자, 내부대신, 인사권을 갖고 있음).
이노우에:(井上,조선공사로 부임한 일본 원로 정치인, 명치유신과 조선책략의 주역)
알렌 박사: (미국공사관 외교관, 제중원 설립, 우정국사건 때 상해를 입은 민영익을 치료해 준 미국 의사, 고종의 신임 받음. 상해의 중서서원 교장 영. 알렌 박사와는 다른 분)
윤참의:(국장급, 교육부 학무국장 격)
협판:(차관급)
조희연:(군부대신)
감리교 학교:(배재 학당)
2월 9일. 토요일. 좋은 날씨. 나가사키, 벨록스 호.
기다리는 일도 끝날 날이 있나보다.
드디어 제물포로 가는 기선, 벨록스 호가 나타났다. 오후 1시30분에 친절한 MN가족들과 로호르에게 작별 인사를 하다. 그의 여동생이 내게 아주 예쁜 돈 지갑을 주었다. 그녀가 오색비단 조각보로 손수 만든 주머니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왼손으로는 선물을 건네고 오른손으로 내게 악수를 하며 배웅해주었다. MN과 곤도씨가 기선을 타는 데까지 배웅해주다.
꼭 십 년 전 오후 2시에, 나는 나가사키를 떠나 상해에 닿았다. 그날 밤은 서늘하고 달 빛이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밤중의 정적 속에 노 젓는 소리만 구슬프게 뱃전을 때렸지. 정다운 벗들을 멀리하고, 내게 정다웠던 사람들과 황망하게 집을 떠난 나는 비감에 젖어있었지. 나는 울고 말았지.
오늘 나는 아주 착잡하게 내 성격 속에 십 년을 두고 엮어낸 빛과 그늘의 세월을 안고 귀향하는 것이다. 나는 중국에, 미국에, 일본에도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애정과 걱정 어린 마음으로 내 장래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필요할 때 친구가 되어주고 내 성실함을 알아주는 영원히 감사해야할 친구들이다. 오 하느님, 주님께서 선한 길로 예비해 주셨음을 감사 하나이다.
승객을 태우려고 만들었다고 볼 수없는 아주 초라한 벨로스 호가 저녁 6시 30분에 닻을 올렸다.
상해 사투리는, 내가 따라하기엔 어렵지만 아주 매력있게 들린다. 내 사랑하는 아내의 언어 이기에.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