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譯述 윤경남
(지난 호에 이어)
1월12일. 아주 추운 날씨. 이따금 희미하게 햇빛나다. 상해.
미야게(三宅)씨를 방문하다. 대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청국이 조선을 중국의 일개 주로 포함시켰다면 전쟁이 터졌으리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다시 말해서, 청국이 그렇게 비켜간 것은, 나라의 어둡고 쓸모없는 정책이나 방어할 힘조차 없는 조선의 여건 때문이 아니라, 일본과 다른 세력들과 전쟁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감정을 상하지 않고도 침략해서 착복하면 조선반도가 공식적으로 먹혀들어올 텐데, 청국이 무엇 때문에 아무한테나 감정을 건드리겠습니까? 구걸하는 조선정부에 돈을 조금 꿔 준후에 관세나 통신기 등의 중요한 것을 담보로 잡고, 저주받고 운명이 다한 조선의 목을 서서히 그러나 지긋이 곧장 조여왔지요. 이런 식으로 조선은 몇해를 두고 왕과 조정이 들어내지는 않았어도 청국의 속국이 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청국의 계획을 깨 버린 거지요.”
“그러면 당신은 청국이 시도한 일들을 일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당신은 조선정부가 일본한테서 5백만엔을 차관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으셨지요? 조선의 남쪽 3개 도의 쌀을 속국공물로 바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나는 아주 확신하고 있어요. 일본이 조선의 개혁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한은 조선을 도우리라는 점을요. 일본의 개입이 조선에 고마운 일이 될지 저주가 될지는 전적으로 조선의 조정이 지혜로운 애국심을 발휘 할것인지 아니면 어리석게 이기주의 를 택할것인지에 달렸지요. 조선은 이제 상황을 개선할 좋은 기회를 맞았습니다. 만일 조정과 국민이 올바른 정신으로 성실하게 실천하지 못하면 이 절호의 기회를 모조리 망칠 가능성이 있지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라를 지킨들 무슨 소용입니까?”
F씨가 인도하는 가정기도회 모임에 참석하다. 그후에 헬렌 선생과 오랫동안 환담을 나누다.
1월13일. 일요일. 상해.
어제 밤엔 무척 추웠다. 대야에 담은 물이 1인치 이상 바닥까지 거의 얼어붙었다. 주일학교가 종강하게 되어 본넬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강연을 하다. 그는 많이도 옮겨 다녔다. 그는 가버렸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의 젊은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과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필요하게 느껴지는 이 시간에, 그에게 나의 사랑에서 울어나오는 중요한 기념표시라도 보여줄 힘이 있으면 좋겠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낮잠 자다. 곧바로 중국인 교회의 저녁예배 시간에 참석하다. 알렌 박사댁에서 저녁을 들다. 친절하고 어머니 같은 모습을 한 알렌 박사 부인을 보고 나는 내 모든 고충을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알렌 박사와 그의 가족들과 따뜻한 난롯가에 둘러 앉자 나의 귀국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간 사실이 믿어지질 않는다.
그때,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로호르 씨가 내게 영문법을 공부했는가 물었었지. 알렌 박사는 <뉴스>지에 실리지는 않았으나 내가 쓴“조선의 대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높이 칭찬 해주었었지.
1월14일. 월요일. 춥고 구름 낀 날씨. 상해
오늘 아침에 본넬 교수가 내게 편지 한 통을 보여주다. 난킨 대학의 퍼거슨 씨가 그 학교에서 본넬 교수에게 한 자리 주겠다고 제안한 내용이다. 본넬 교수가 그 제안을 꼭 받아들이면 좋겠다.
오후 늦게 미야께(三宅) 씨가 나를 방문하다. 그는 내게 조선에서 관직을 받는다면 유길준 보다 낮은 직위를 받지 않도록 충고한다. 그가 중국으로 오기전에 김옥균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갈 때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게 말하기를, 김옥균은 비밀 특사로서 지낼만한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두 소년이 내게 바나나와 귤을 세 바구니나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선물을 아주 고맙게 받았다. 애퐁 자매의 집에서 저녁을 먹다. 자매의 계부 피터 중씨가 와 있었다. 그는 아주 명랑한 사람이다.
1월15일. 화요일. 비교적 개인 날씨. 해가 나다. 상해
아침 11시에 학교 교사와 장학생들 모두 학기 말 종강 예배를 보기 위해 예배실에 모이다. 알렌 박사가 외국인의 시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인사말을 하다. 그리고는 상금으로 7불에서 1불 사이에 해당하는 돈을 각기 다른 학급에 맞게 시상하다.
그 시상제도는 본넬 교수가 도입한 제도였다. 알렌 박사와 L씨는 이번 학기만 지나면 그 제도는 없앨라거라고 한다. 내 생각에 이 제도는 학생들에게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도 지속이 되어야 할텐데, 생각한다.
오늘은 애퐁 자매를 두 번이나 봤다. 지난 주에 매일 자매를 찾아간 일은 내게 기쁘고 신선한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자매를 보러 갈 때마다 내 발 걸음이 빨라진다.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