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남]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4)

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譯述 윤경남

(지난 호에 이어)

1월6일. 일요일. 억세게 추운 밤이지만 아름다운 날씨. 상해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동양인 선교사에 대한 비난은 이런 일들 때문이다; 

  1. 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일본, 중국, 인도 기타 선교지에서도 볼 수 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는 오히려 은인들에게 대드는 비열한 젊은이들에 대하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유형은 비교적 아주 적다. 한 명의 선한 니이시마(新島 동지사 대학 설립자 -옮긴이)는 열 명의 배신자들이 저지르는 못된 짓을 막아낼 만한 영향력이 있다.

  1.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동양인은 높은 봉급을 요구한다. 

내 생각에, 한 젊은이가 고등교육을 바라면서 선교단체에 자원하여 참여했거나 관심을 가졌다면,  아무리 적은 봉급일지라도 아예, 보수에 대하여는 절대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선교부가 외국에서 교육받은 교역자에게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과 같이 적은 봉급을 지불한다면 그것은 공평한 처사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가 교육받기 이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그는 선교부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그 교육 혜택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선교부가 그들의 예산을 무엇에 쓰는가를 가장 잘 판단할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사실인 한편, 그것은 아주 평범한 상식문제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교육받은 한 젊은이가 그들 때문에 왔다고 해도, 그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칼은 현재 가지고 있는 성능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지 ‘비교육’상태인 보통 쇠조각이었을 때의 무게로 판단하는 건 아니다.

  1. 국민성의 상실. 

외국 교육을 받고 와서 우쭐대는 동양인은 썩은 계란보다 더 나쁜 경우이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이나 유럽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모든 영예가 자기 것인양 알기 때문이다. 그는 뽐내거나 분위기를 꾸며내고 구미식 음성으로 나불댄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의식을 가진 모든 사람을 싫어하고 그가 런던, 보스턴, 베를린 등에서 얻은 견문이나 승리감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는 자기나라 물건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은데 외국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경멸한다. 일본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나마이끼(주제넘다)’ 혹은 ‘풋내기’라고 부른다. 남자건 여자이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경멸감이 앞선다. 하지만 때로는 국제화에 대한 비난은 외국에서 교육 받은 동양인에게도 던져지는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은 본토박이에 대한 호감으로 어떤 물건이나 방법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본토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국제화한 것이다. 왜 당신은 가난한 봉급에 만족하지 않는가? 당신은 국제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렇게 국제화해서 어떤 집에서 건 살고 싶지 않아진다면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이 모든 일들은 그 사람이 봉급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교부 안에서 주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결심이 서 있지 않는 한, 선교부 혹은 동양인의  국내교육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1월11일. 금요일. 구름이 끼고 아주 추운 날씨. 상해 

북풍이 요 며칠을 두고 불어대어 난로불도 소용없게 만든다. 애퐁 자매의 집에서 몇 시간을 즐겁게 지내다. 아,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 자매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양 터놓고 맡기는구나.

오후 5시에 옌 부인을 방문하다. 옌부인 집을 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러 갔다. 시엔숭은 내가 없는 동안 부모와 함께 지내기로 했기 대문이다. 옌부인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 그녀는 자기 둘째 아들을 내게 인사시킨다. 외국에서 공부 하고 와서 못 쓰게된 중국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이다. 나는 미국 남부에만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경멸하는 태도로 말하기를. “당신은 뉴욕에 가봤어야 하는데. 남부에서는 뉴욕보다 더 큰 도시가 없지요”하면서, 난로 앞에 있는 안락의자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의 발엔 맵씨나는 스립퍼를 꿰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서. 그의 어머니는 내가 샹해 사투리를 못알아 듣는줄 알고 나를 잘 대접하려고 애쓰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에게 말한다.

“넌 어째 벙어리처럼 거기 앉아 있는 게냐? 에미보다 네가 영어를 더 잘 하쟎니. 어서 손님을 즐겁게 해드려야지.”

아들은 아무 말도 안한다. 그 젊은이는 내가 영국이나 뉴욕에 가본 일이 없다고 나를 깔보고 가련하게 여기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리어 내게는 그가 우습게만 보인다. 그리고 아들이 런던이나 뉴욕에 정말 가 본것으로 알고 있는 착한 어머니가 측은해 보인다.

리쳐드씨와 저녁나절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 나라의 구호를 ‘전진과 박애정신’으로 하면 어떨까요. 난 중국인의 국민성은 별로에요. 기독교문화에서 좋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 그네들이 선량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외국의 세력에 스스로 대항하기 위해서라고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머뭇거리더니, 저녁식사로 중국 음식을 함께 먹자고 한다. 음식은 쌀밥에 생선과 야채 한 공기를 중국식으로 요리했다. 그는 깡통에 데운 소흥주를 마셨다. 나는 다루기 힘든 친구와 신경쓰며 밥상에 마주앉아 있는 것보다는 그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대접 받은 것이 더 즐거웠다. 

(다음 호에 계속)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