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남]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3)

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譯述 윤경남

(지난 호에 이어)

1월4일. 금요일. 몹시 추운 날씨. 상해.

리쳐드 씨를 방문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 선량하고 섬세한 하느님의 사자가 말했다.

“어떤 위대한 영국사람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그는 자신에게 다섯가지 규칙을  세워놓고 지켰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실제적인 것이었어요. ‘邪敎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직설적으로 공박 하지말라.’ 내가 믿건대 우리 선교사들은 이 규칙을 조심하기만 한다면 보다 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권면하는 일에 전력을 다 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대상을 적대시 한다는 반감을 갖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이들은 적대하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임금보다 더 강력한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당신의 지성이나 감성 속엔 위대한 권세가 역사해 왔고 앞으로 보다 높은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상해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도 당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기도에 늘 동참 할 것입니다.”

내가 리처드씨에게서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북경 <가젯트>는 세상에서 가장 낡은 소식지라는 것.
  2. 그 간행물은 황제의 모든 칙령과 일정한 수준의 기록만 발행한다. 간행물 복사본들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관아에 들어간다. 간행물은 이들이 가능한 목재 타이프기로 인쇄한다. 예수회가 언젠가 보급한 적이 있는 동판 종류다. 그러나 그 목판 글자판을 훔친 관리들의 욕심은 더 비싼 동판 타자기를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3. 상해에 있는 3개의 중국 본토 신문 중에 신보와 읍보 두 신문은, 외국 자본과 외국인이 운영하는 신문이며, 신완보는 외국인이 경영하되 중국자본으로 운영하는 신문이다. 그 신문들은 모두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람을 계몽하는 일은 두 번째 목표일 뿐이다. 중국엔 현재 신문이라고 할만한 게 없다. 북경간행물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압류할 것이 두려워서 본토신문은 아예 한 장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1월5일. 토요일. 춥지만 맑은 날씨. 상해.  

오후 4시부터 오후 8시까지 사랑하는 자매, 애퐁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자매의 생일이다.

1월6일. 일요일. 억세게 추운 밤이지만 아름다운 날씨. 상해

알렌 박사 댁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들었다. 오후 4시, 성찬식에 참예하려고 트리니티 교회에 갔다. 그 후 트리니티 기숙사의 숙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콜리에르 씨가 5시30분에 리처드슨 선생을 방문하여 서재에서 멋진 저녁시간을 보냈다. 리처드슨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비기독교인들을 교육시키는 사역을 아주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동양인 가정에 교육받으러 가는 일엔 아주 거부감을 느낍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비싼 교육을 받고도 불량배가 되었거나 배은망덕한 사람이 된 예를 수 없이 보았거든요. 심지어는 각자가 선교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네 중국사람보다 더 높은 봉급을 요구하는 중국인 보조사역자도 있으니까요. 나는 그들이 중국사람에게 더 열심인 마샬 씨를 본받았으면 좋으련만, 중국 보조 교역자들은 중국사람들과 접촉하지도 않고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답니다. 순 씨를 보세요. 그가 좋은 영향을 끼치기만 바래요. 그 사람은 그가 받은 교육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고 있으니까요.”

비록 내가 ‘국내’에서 동양식 선교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리쳐드슨 선생은 아주 교양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나를 파렴치 하다거나 동맹 휴학이나 선동하는 자로 여기지는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경우, 나는 중서학원 선교부에 어떠한 보수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보수를 받은 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내가   상해에 머무는 동안 대학이나 선교부에서 일했어도 봉급이고 뭐고 받은 것이 없었다.

외국 선교사와 중국 보조인 사이의 끊임없는 마찰을 생각한다면, 봉급에 대해 오직 해결 방법은 중국보조 목회자들이 자급자족하는 것 뿐이다. 왜? 본토 교역자들이 품는 불만은 그의 빈약한 보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는 생계비가 외국 선교사들의 생활방식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호르 씨가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자기 하인들에게 매달 35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매달 8불 씩 주고 4명의 중국인 보조목회자를 채용할 수가 있는 돈이다. 자, 생각해 보라! 중국인 목회자는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만일에 중국 목회자인 선교사가 친구와 즐겁게 지내야 하는데, 그들과 차 한 잔을 마실 돈도 없어야 하나?  그건 그렇다 치고, 선교사가 적어도 합리적으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목회자만이 생활비나 용돈을 자급자족해야 한단 말인가? 

어떤 선교사역도 시장에서 흥정하듯이 성스럽지 못하게 대가를 치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추구해야할 임무란 무엇인가?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본토 교회들이 각기 그들의 중국인 목회자를 부양해야 하는 일이다. 성실한 목표를 가지고 선교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누구나 외국 선교부로부터 16불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급자족으로 교회에서 8불을 받고 만족하는 것이 더 떳떳하지 않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