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譯述 윤경남
(지난 호에 이어)
2월12일. 화요일. 좋은 날씨. 조선 제물포.
배가 어제 밤 11경에 제물포에 닿았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춥고 어두어 해안에 들어서지 못했다.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부두에 닿았다.
10년 만에 내 모국 땅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당연히 나는 행복해야 하고 지금 아주 행복하다. 이곳에서는 내가 어디든지, 언제든지 갈 수가 있다. 하지만, 어쩐담! 지금처럼 슬픈 적은 또 별로 없었거늘. 조선의 막노동꾼들은 이상하게 만든 흰 옷에 새까맣게 쪄든 옷을 입고 일하고 있고, 중국에선 아주 지저분해 보이던 집들이 조선의 움막같은 시골 초가집과 비교해 보니 오히려 궁성 같구나. 사방에 쌓여있는 쓰레기 썩는 냄새에, 비참하게 가난하고, 천대 받고 사는 무지한 백성들, 보기 흉하게 벌거벗은 산, 무방비 상태의 조선을 잘 보여주는 이 광경들은 조선사람의 애국심을 병들게 하기에 충분하구나. 절망스런 탄식 말고는 웃음도 나오지 않는구나.
환영하라! 그리스도인이건 다신교도 이건, 조선의 여건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열 번이라도 환영하자! 주님은 내가 도움을 구하는 이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가톨릭 교회나 영국성공회 선교부는 깨끗한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소서!
타운센드 씨를 방문하다. 십 년 전에 내가 그와 헤어졌을 때와 다름없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미국인이다. 그의 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다. 그가 말하기를, 감자 몇개를 밥상에 올려 놓는 일은 제물포에선 이제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이러한 나라에서 살아 가려면 굉장한 참을성이 필요하단 얘기다. NCDN의 유명한 주재원에게서 배운 것은, 영국교회의 선교방침이다.
제물포에서 유일하게 명랑해 보이는 것은 일본 여성들과 일본 아이들 뿐이다.
상해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알렌 부인에게, 본넬 교수와 리쳐드슨 선생에게 편지를 썼다.
제물포에서 가장 좋은 호텔방엔-아마도 조선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 겠지만-세 겹으로 된 것이 있다. 종이와 먼지와 맷트이다. 고약한 냄새가 온 방 안에 풍기고, 가구는 지린내 나는 쩌든 오줌 자국이 그대로 있고, 더러워진 놋그릇이나 나무 판대기를 담배 재털이로 쓰고 있다. 여섯 조각도 더 되는 나무조각들을 붙여서 만든 못 생긴 목침들…
타운센드씨의 소개로 김교삼을 만나다. 조선 가톨릭 신자인데 한 때 알렌의 시종이었던 사람이다. 아주 착실한 조선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만, 알렌 박사와 타운센드씨의 전적인 신임을 받을 만큼 신실한 사람이다.
2월13일. 수요일. 제물포에서 서울로.
어제 밤에 고베야(神戶屋)에서 마에다(前田) 씨와 한 방에서 자다.
6시30분에 일어나다. 오전 9시에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인력거를 타고 가다. 아름다운 날씨이다. 인력거에서 내려 길을 한참 걸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길은 걷기가 아주 나쁘고, 어떤 길은 막일꾼 중의 한 사람이 문제가 생겨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보통 때도 전형적인 건달임을 증명해야만 조선사람이 된다는 듯이 구는, 조선 막노동꾼 중의 한 사람 때문이다.
강 가에 집에서 보낸 하인이 나와서 나를 마중하다. 서울 집에 오후 4시에 도착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어머님이 건강하셔서 내가 걱정한 것처럼 늙지도 않으셨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와 나는 몇 분 동안 말 문을 열지 못했다. 다만 서로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말 없는 사랑의 언어를 나눌 뿐이었다. 아버지는 시골 집에 가 계셨다.
어머니는, 작년에 아버지께서 귀양 가는 재판 받으신 이야기와 그 가혹한 과정을 간간히 들려주셨다. 나는 어머니께, 제발 그만 말씀하시도록 간청했다.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은 끔찍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7시에 미국 공사관의 비서관인 호레스 알렌 박사를 방문하다. 그는 나를 한없이 반기며 진심으로 환대한다. 언더우드 박사와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곧 조정의 전직 관리들의 몰염치한 탐욕에 대해 정보를 주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병원은 처음부터 장로교 선교부가 책임지고 시작하였으며, 고종께서 연 5천불을 지원하기로 약속하셨다는 것. 그런데 그 돈은 한 번도 병원에 들어오지 않았고, 미국공사가 그 일로 전하에게 알현할 때마다, 통역관은 문제가 많은 관리의 횡포가 두려워 감히 사실대로 아뢰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언더우드 목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원세개가 대원군의 손자(이준용 역자주)를 왕위에 옹립하려는 그의 음모에 대해 얘기했다. 그 음모는 민영익에게 발각되었는데, 민영익은 전하에게 그 사실을 말씀드렸고, 미국 공사에게도 통보했다는 것이다.
서광범을 방문하다. 그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현재 조정에 대해 몇 마디 말을 전해주다. 그의 말은, 내각은 지금 대원군 파와 왕당 파로 갈라져 있다는 것. 대원군 파는 어윤중 탁지, 김윤식 외무, 김홍집 총리이며, 서광범과 박영효는 왕당 파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서광범은, 대원군이 지금 자유주의 파 혹은 왕당 파에 대적할 음모를 꾸미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다. 그리고 유길준은 대원군 파라는 것이다.
박영효씨는 내가 기대한 것만큼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았으나 친절하게 대해 준다. 그는 뭔가 주저하는 듯 하더니, 나를 학무 참의(국장급 역자주)로 임명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조정을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참의가 된 것이고 그렇게 여기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바랄 게 뭔가! 이것이 남자로서 내리막 길에 있지 않고 출세길에 올랐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내가 공직에서 모범적인 일을 할 수있다는 가정을 제외하고는 공직에서 더 바라는 건 없다. 그러면 내가 이 직책에서 잘 하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오늘 오후 내내 들은 이야기들은, 결코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볼수 없다. 내가 이곳에 와서 기쁜 일은 오직 사랑하는 어머님과 함께 있는 일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