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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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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 

 

 

 


 ‘처음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한국에서 같은 이름의 소주가 출시된 게 2006년 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2016년 1월 작고)의 시 제목과 글씨가 로고로 사용됐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 중 한분이신 신 교수가 어떻게 소주 이름에 자신의 글씨를 쓰도록 허용했는지 처음엔 의아했다. 당시 소주회사 관계자도 "신 교수님이 존경받는 학자이신데,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글을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제의를 들은 신 교수는 의외로 흔쾌히 '처음처럼'의 문구와 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적 술인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허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침내 신 교수가 쓴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나왔다.


 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소주회사가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치 않다"며 사양했고, 결국 회사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몸 담고 있는 대학교에 1억 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갓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의 인기는 큰 돌풍을 일으켰고 그 덕분에 이 소주는 시장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회사 관계자는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처음처럼'에 담긴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0…‘처음처럼’ 소주가 내 눈에 띈 것은 수년 전 토론토의 어느 한식당에서였다. 벽에 예쁜 여자탤런트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 글귀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후로 소주를 시킬 때면 으레 ‘처음처럼’만 찾곤 했다. 지금도 이 글씨를 볼 때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때 이 글씨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경찰서장이 신 교수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書刻,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제작해 관할 파출소 등에 내걸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이 작품이 과거 시국사건에 관련된 인사의 것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당초 그 서장은 "초심을 잃지 말고 경찰의 본분을 지키자"는 의미로 신 교수의 허락을 받아 작업을 추진했다. ‘처음처럼’ 제목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으로 시작되는 시 구절이 새겨졌으며 미술에 조예 있는 한 경찰간부가 제작을 맡았다. 


 그러나 경찰은 내부검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작품을 경찰관서에 게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 계획을 취소했다. 신 교수는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보수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신 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의 편협한 사고를 질타하는 비판여론이 이어졌다. 


 ‘처음처럼’은 문장과 서예가 뛰어난 신 교수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민체’ 또는 ‘유배체’로 불리는 개성 강한 서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격조높은 서예작품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0…’처음처럼’은 곧 초심(初心)을 유지하자는 다짐이다. 매사를 처음의 자세로 대하고 겸허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엔 욕심을 내거나 사람 간에 서로 다투고 미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부부가 처음 만나 맺은 사랑의 맹약을 잊지 않는다면 평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 첫 직장에 출근할 때의 철석같은 다짐과 각오만 끝까지 간직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도 처음 만났을 때의 굳은 결의만 유지된다면 도중에 갈라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게 생각과 같지 않게 뒤틀려 보이는 것은 처음의 다짐과 각오를 잊어버린 채 너무 큰 기대치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이민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가 바로 이 ‘처음처럼’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견뎌 낼 것이라며 이민봇짐을 쌀 때의 각오만 끝까지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없을 터이다. 


 그런데 ‘처음처럼’의 자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이민 초기의 소박했던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성에 안차고 불만투성이다. 이만하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법도 하건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마음이 늘 허기져 있다.    


 ‘처음처럼’ 의 참뜻만 간직하며 산다면 세상은 축복으로 가득할 것이다. 현실이 고달프다고 생각되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결심으로 돌아가 이 말을 되새기자. 세상이 훨씬 여유있게 보이지 않을까. 신영복 교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0…아침저녁으로 가을 바람이 스산하다. 인간사 아무리 분망해도 때가 되면 찾아오는 대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가 없다. 그러니 범사에 순응하며 겸허한 자세로 살자. 처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일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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