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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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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언론과 권력- 스스로 포기한 정의의 최후 보루

  

 

 외형적으론 강해 보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낯간지럽기 그지없는 것이 바로 언론이란 존재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겐 따스한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요 사명이지만 지금 한국의 언론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에 맞서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할 언론인이란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 편에 빌붙어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가관이다.


 이래서 한국에서는 언론과 사법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0…언론인 출신의 정치권 입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 요직에도 예외없이 언론인들이 대거 중용됐다. 특히 보수언론 출신들이 윤 정부의 핵심 참모진에 즐비하게 포진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이란 사람은 새정부 출범 직전까지 현직기자로 일했다. 정치·외교 기사와 칼럼 등을 쓰다가 불과 사흘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신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대로 새 정부 초대 대변인에 임명됐다.


 부대변인도 마찬가지. 종편채널 뉴스를 진행한 그는 이임 직전 “대통령실 대변인실에 참여하기로 했다. 최근까지 기자로 방송 활동을 하다가 특정 정부에 참여하게 돼 송구하다”고 밝혔다. 그나마 미안한 줄은 아는 모양이다.


 홍보수석실은 모두 기자 출신으로 채워졌다. 홍보수석은 D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S방송사 개국 멤버로 합류해 정치부장, 보도본부장 등을 지냈다. 특히 S 방송사 출신 홍보수석 임명은 최근 10년 사이 벌써 다섯번째다. 정무비서관에 임명된 사람 역시 같은 방송사 기자 출신이다.


 내각 중 언론인 출신으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있다. J일보에서 잔뼈가 굵은 이 사람은 2020년 쓴 칼럼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두고 “그의 직위는 파괴됐다. 하지만 윤석열은 패배하지 않았다”고 썼다. 일찌감치 권력의 흐름을 예견하고 눈도장을 찍어둔  것이다. 그 혜안(慧眼)이 놀랍다.  

0…언론의 정치권 이동은 수적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양상도 다변화하고 있다. 기존 국회권력에서  이제는 대통령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언론의 정계 진출과 언론의 신뢰 문제는 깊이 맞물려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역사적 국면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독재정권 하에서 언론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고 동시에 회유의 대상이기도 했다.


 회유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정관계 자리로의 이직으로, 언론사 인사들을 스카웃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이다.


 현 21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언론인 출신은 24명으로 전체의 8%를 차지한다. 단일직종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이전에도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은 7~12%를 점해왔다. 그나마 선출권력인 국회는 나은 편이다. 문제는 민의(民意) 검증과정도 없이 곧바로 핵심권력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해 검증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인이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그 권력층과 손잡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제정신 가진 사람들이 할 노릇인가.
 

 특히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언론인이란 사람들은 진부하고 고루한 보수사상에 찌들어 있다. 이래서 권력층이 부르면 기다렸다는듯 달려가 무릎을 꿇는다.         


 한국은 언론과 정치를 오가며 대리인 역할을 하는 언론인이 다수 존재해 왔다. 여러 이유를 내세워 정치권의 부름에 호응하는 이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제 폴리널리스트(정치적 언론인)의 문제는 정치 이념이 아닌 직업윤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0…한편 언론인이 기업으로 이동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언론인에게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회적 자본의 교환과 결합은 지배적 동맹, 즉 카르텔을 형성하여 각 집단 이익을 강력하게 구축한다. 이런 언론인은 기득권을 수호하고 공고히 하는 대리인(agent)으로 기능하는데 그 행위는 직업적 본질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역행하게 된다.  


 “존경하는 사장님(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그동안 배려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제가 부장이 되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꾸벅. 이번 토요일 점심 클럽하우스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00 올림.”


 이것은 4년 전 한국 최대 경제지를 자처하는 신문사 간부가 삼성 간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다른 언론사 간부가 보낸 문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사장님, 오늘 가까이 뵈니 삼성이 왜 강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초대했는데 되려 과분한 선물까지 챙겨주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00경제 산업부장 000 드림".
 

 이런 사람들이 그 기업에 대해 올바른 기사를 쓸 수 있겠는가.


0…기자를 일컬어 무관(無冠)의 제왕이라 했다. 정식 관직은 없지만 국가와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사실을 전하고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세상에 전하기에 왕 못잖은 영향을 사회에 끼치기 때문이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이 권력과 자본 앞에 굴복하는 시대가 됐다. 그것도 스스로.


 언론은 사법부와 함께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다. 그런데 이런 사명과 역할을 언론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이런 언론인은 부끄러운 줄 알고 일찌감치 떠나야 한다.


 한없이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존재가 바로 오늘날 한국의 언론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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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아버지의 술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중)

 

 한국은 자고로 엄부자친(嚴父慈親)이 전통적 부모상(像)이었다.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게 보통이다. 부성애(父性愛)는 강하다. 아버지에겐 나약한 눈물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남몰래 숨어서 울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다.   

 

0…아버지가 드러나게 자식사랑을 표하는 것도 한국적 가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오늘날 ‘아빠’들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놀아주지만 옛날 아버지들은 기뻐도 표정없이 그냥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구한말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는 당시 조선의 실상을 기록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Corea-The Hermit Nation)’에서 부자(父子)관계를 이렇게 적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안 되고 자세를 흐트려도 안 된다. 밥상에서도 아버지가 먼저 들기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잠자리를 보아드린다. 아버지가 늙으셨거나 와병 중이면 옆에서 잠을 자며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예전 늙으신 아버지들은 막걸리와 담배 냄새에 찌들어 목에 가래가 그렁거리던 모습이었으나 그럼에도 범접하기 어려운 근엄함이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서는 아버지의 장죽(長竹) 담뱃대 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0…나는 여섯 살 무렵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지금은 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복막염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러 주로 밖으로 도셨기에 살갑게 말을 붙여 볼 기회도 적었다.


 아버지 상여가 나가던 날 나는 깡충깡충 뛰어 놀았고 어른들은 그 모습에 눈시울을 훔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쓸 일이 없었기에 지금도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다만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아버지는 옛날인데도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웃으시는 모습이 멋진 쾌남아셨다. 둘째 형님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젊고 고운 어머니와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셨는지. 아버지는 대청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산기슭에 어머니와 합장돼 있다. 선산(先山)의 묘는 수몰(水沒)지역이라서 호수에 물이 차면 조각배를 타고 가야 한다.


 왜 그리 외지고 먼 곳에 가족 묘를 썼는지 원망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성묘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런 불효가 없다.


0…아버지가 오래 살아계셔 효도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우리 아버지가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아버지로부터 권력이나 부(富)를 물려받은 이들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것도 나의 이런 성장 배경 때문이다. 허무주의 경향에 빠져든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아빠 찬스(Chance)’란 말이 유행이란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회적 명성과 부, 권력, 인맥을 지렛대 삼아 배타적 혜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나같은 사람은 아빠 찬스는 고사하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체가 희미하다. 


 나이 들수록 건강에 신경쓰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우리 애들만큼은 애비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아버지로서 최소한 딸내미들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줄 정도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자면 내 몸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평균수명 정도는 살아주는 것이 가장(家長)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0…‘아버지’란 말엔 왠지 외롭고 고달픈 이미지가 스며있다. 한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측은해만 보인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이 드실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선 내색 않고 미소만 지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오로지 가정과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한국의 아버지 상(像)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자식들이 무시하고 대화에 끼여주지 않아도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 우리의 아버지.


0…6월 세번째 일요일(올해는 19일)은 캐나다에서 정한 아버지날(Father’s Day)이다. 어머니날은 선물이다 외식이다 하여 떠들썩하지만 아버지날은 대충 넘어간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드리는 것이 어떨까.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이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자. 그들의 기를 살려드리자. 가장(家長)의 빈자리는 없을 때 더 큰 법.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릴 일이다. 


 ‘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 나이가 들수록 작은 동산의 둔덕/ 흔들림 없는 아름드리였다가/ 누구보다 연약한 갈대/ 수많은 감정들을 가슴에다 채우고/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휘청대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인 것을!’   (김향숙 ‘아버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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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18%의 대표성- 투표율, 왜 중요한가

 


승리가 확정된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조성훈 후보

 

 6.2 온타리오주 총선이 예상대로 보수당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진보좌파 성향의 NDP가 그나마  선전(善戰)해 야당의 명맥을 이어가게 됐고 한때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며  해체위기까지 몰렸다. 민심(民心)이 무섭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보수당 바람을 업고 쉽게 이길 것만 같았던 노스욕(윌로우데일) 선거구의 조성훈(Stan Cho) 후보가 의외로 고전하면서 자칫 위험한 고비를 맞았으나 다행히 재선에 성공했다.

 

0…전통적으로 자유당 텃밭인 윌로우데일 선거구에서 만약 조후보가 보수당이 아닌 다른 당이었다면  아무리 본인의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당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87표의 차이는 당 바람이 없었다면 사실상 무너졌을 것이다.

 

 이래서 정치를 하려면 어떤 정당을 선택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됐다. 앞으로 부지런한  의정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속 정당이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해줘야 정치인 개인도 생명이 오래 갈 수 있다.

 

 이번 선거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덕 포드라는 별로 인기없던 당대표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면서 다른 당을 압도했다. 자유당 대표는 존재감이 거의 없이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0…윌로우데일은 캐나다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산다는 점 때문에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 이곳에서 한인후보가 나왔으니 당연히 밀어줘야 한다는 생각 역시 자연스럽다. 또한 한인들의 투표율도 확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윌로우데일 선거구에는 총 인구가 11만9천여 명(2016년 센서스 기준)이고 인종은 백인이 39.5%, 중국계 22.9%, 한국계 10.3%(1만2천여 명), 서아시아(이란 등) 9.7%, 필리핀 4.9%, 남아시아 4.5% 등이다.

 

 이중 총 유권자는 대략 8만1,300여 명이고 한인유권자는 8천~7,500여명으로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4년 전인 2018년 온주 총선거 당시 무명의 Stan Cho 후보는 17,732표(43.63%)를 얻어 4선 중진인 자유당의 데이빗 지머(10,815표, 26.61%)를 쉽게 따돌리고 첫 MPP를 거머쥐었다. 

 

0…당시 총 투표자는 40,646명으로 투표율 49.9% 였고 이중 한인투표자는 2,200여명으로 전체의 5%, 그리고 한인 유권자 대비 투표율은 29%로 저조했다. 그래서 올해는 제발 한인유권자들께서 투표 좀 해달라고 읍소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4년 전보다도 투표율이 더 낮았다(1,585명 투표에 투표율 21% 남짓). 윌로우데일의 전체 투표율 역시 35.9%(총 29,149명)로 확 낮아졌지만 한인들 투표율은 전체에도 훨씬 못 미쳤다.

 

 4년 전 총선에서 Stan Cho에게 투표했던 지지층이 다소 이탈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번에 한인들 표가 50%(4천표) 이상만 나와준다면 비교적 안정권이라고 호소했지만 결과는 더 실망적이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명색이 캐나다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노스욕에서 자존심 상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소셜미디어(카카오톡)를 통해 제발 투표 좀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선거구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노스욕만큼은 한인 투표율이 최소한 50%는 넘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허사였다. 카톡방에 들어있는 550여 명과 이들이 주변친지 3명 정도에게 투표를 권유한 숫자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0…평상시 정치에 관심이 없고 현지 뉴스도 접하지 않는 분들은 여전히 캐나다의 선거는 남의 일이다.    

 

 캐나다 역시 정치 무관심 현상이 심각하다. 2022 온주총선에선 전체 유권자 1,070만 명 중 460만 명이 투표해 43.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사상 최저치다. 4년 전의 57%보다 13.5% 포인트나  낮았다.

 

 보수당이 유효표의 40%를 득표해 압승하긴 했지만 온타리오 주의 1,070만 명이 넘는 유권자 중 18%만이 지지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투표 전에 이미 보수당 대세로 기울어 유권자들 관심이 적었던 것도 주요인으로 보인다.

 

0…투표율을 높이자고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권리를 높이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각 정당은 모든 투표상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 사전투표 기간에도 일일 투표기록이 고스란히 정당에 넘어갔다.

 

 물론 드러내놓고 출신민족이 표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한국인은 성(姓)씨만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사전투표 기간 내내 한인들의 투표율은 좀처럼 올라가질 않았다. 

 

 투표율이 높아야 각 정당과 정치권에서 그 민족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올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지금 한인사회 현안인 양로원 인허가만 보더라도 한인커뮤니티 파워가 세야 정치권이 움직여 줄 것이다.

 

 한인들 투표율이 낮다고 한탄만 할 것도 아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선거 때만 아쉬운 소리 하면서 머리를 조아릴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꾸준히 지역사회 일에 관심을 갖고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0…이번 선거를 보면서 한국이나 캐나다나 보수 바람이 거세게 부는 현상에 입맛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캐나다는 한국처럼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없긴 하지만 우리같은 이민자들은 아무래도 소수민족과 약자를 배려하는 진보정당에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캐나다에서 한인들이 거의 대부분 보수당으로 나섰던 것이 꼭 반길만한 현상은 아니다. 이젠 자유당이나 NDP 의원이 나올 법도 한데 말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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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부유한 시인-예술과 생계 사이

 


▲수년 전 캘거리를 방문한 고은 시인(왼쪽)과 자리를 함께 한 이유식 시인

 

*독자들께서 이 글을 보실 즈음이면 6.2 온주 총선 결과가 나온 후일 것이다. 타이밍상 오늘은 조성훈 후보에 대한 글이 실려야 할텐데 신문은 원고마감이란 제한이 있어 그럴 수 없음이 아쉽다. 양해를 구합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김광규 ‘묘비명’)

 

 시인의 말대로 이 세상엔 한 줄의 시도, 한 권의 소설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큰 재산을 모아 잘 살게 되면 주위에 추종자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굳이 문화 예술 같은 고상한 식견(識見)이 없어도 많은 예술인과 교류하며 상류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개중에 ‘돈밖에 없는’ 사람이 뒤늦게나마 문화 예술에 눈을 떠 그들을 돕고 후원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      

 

 예로부터 예술가와 문인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애당초 돈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11년 전 80세로 별세한 한국 문단의 큰별 박완서 작가  빈소에는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고인은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0…문화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의 후원이 절대 필요하다. 여기서 메세나(Mecenat)라는 말이 나왔다. 기업의 문화 및 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뜻하는 용어다.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예술가들을 활발히 지원한 부호이자 정치가인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본래는 문화 및 예술분야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의미했으나 점차 스포츠 및 각종 사회단체에 대한 지원까지 의미가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메세나 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14세기부터 왕, 귀족, 자본가들이 예술인을 후원하는 제도(patronage)가 존재했다.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기에 궁정인들(courtiers)의 후원은 문화예술을 꽃피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는 부와 권력을 지녔어도 문화자본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지도층이라 할 수 없었다. 후원제는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이르는데 필요한 열쇠였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The Medicis)은 지독하게 돈을 모아 우아하게 썼던 대표적인 예다. 평민 출신으로 환전상을 통해 부를 모은 로렌조 메디치는 축적한 부를 단테, 갈릴레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의 문인, 과학자, 조각가, 화가 등을 후원하는데 썼다.

 

 덕분에 피렌체는 오늘날까지 아름답고 수려한 문화예술 도시로 존재하게 됐다.  

 

0…무릇 세상사가 그러하듯 문화예술도 자본의 지원이 있어야 발전하고 반대로 자본도 문화예술이 뒷받침돼야 정신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여유도 있으면서 문화예술 취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할 것이다.

 

 캘거리의 이유식 시인(81)이 그런 분이다. 48년 전 단돈 200달러를 들고 캐나다로 온 그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무역업과 부동산 투자에 손을 대 상당한 부를 모았다.

 

 그는 단지 돈 버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한인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했다. 여러 단체장을 맡아 일했고 모국의 불우한 농어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많은 훈장과 상도 받았다.

 

 분주한 일상에도 고상한 문학취향을 지닌 그는 오래 전부터 시를 써왔으며 많은 시집도 냈다. 특히 2008년에는 사재(私財)를 털어 자신의 아호를 딴 ‘민초(民草) 해외문학상’을 제정, 국내외 문인을 후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상금은 처음엔 3천불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5천불로 늘었다. 해외동포사회에서 개인이 제정한 문학상은 이 상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제1회 시상식 때 캘거리로 취재를 갔는데 이 시인은 생각과 달리 무척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이면서도 그의 시 저변에는 타국생활의 서글픔이라든가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다. 특히 ‘변방’ ‘나그네’ ‘무상’ 같은 단어들을 즐겨 쓰는데 그것은 오랜 이민 삶의 애환을 함축한 것이라 생각된다.    

 

0…억척스레 돈을 번 사람은 대개 쓰는데 인색한데 이 시인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 같다. 춥고 배고픈 문인들을 후원하는데 개인 사재를 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아무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때 골수 사회주의자였던 박노해 시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가난한 시인의 전형이었던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노력해 먹고 살 궁리는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부유한 시인’, 웬지 잘 맞지 않는 말 같지만 가장 이상적인 단어가 아닌가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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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한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조성훈을 키워야 하는 이유

 

<조성훈(Stan Cho)은…>

-생년월일: 1977년 9월 14일(만 44세)

-출생지: 토론토(이토비코)  

-학력: 욕밀스 고교(학생회장),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주요 경력:

-2018년 온주총선에서 보수당(PC) 후보로 첫 당선

-보수당 재정위원(재정 및 회계 책임자)

-재무차관보(Parliamentary Assistant to the President of the Treasury Board)

-교통부 부장관(Associate Minister of Transportation)(현재)

 

 우리는 흔히 한국 정치에 관해서는 관심도 높고 열성적인 데 반해 정작 캐나다에서는 그런 얘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것은 심정적 동정이요 술자리 안주감일 뿐, 그들이 우리 이민동포들에게 해주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현지에 살면 현지에 맞게 현지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흔히들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그것은 이념적 대립 혹은 극단적 편향 때문에 그런 것이지 정치야말로 우리 생활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 보건, 주택, 교통, 교육, 노후 등 어느 것 하나 정치와 무관한 것이 없다.

 

 특히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인종편견이나 인권문제 등에 부닥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길은 바로 정치인이 나서주는 것이다. 법과 논리로 해결이 어려운 일을 풀어줄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정치인을 통하는 것이다. 그것도 힘 있는 정치인의 한마디가 결정적 도움이 된다.

 

0…그동안 강력한 정치인을 갈구하던 캐나다 한인사회에 적임자가 나타났다. 바로 조성훈(Stan Cho.44)이다. 그야말로 고달프게 타국살이를 하는 한인사회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치인의 덕목 중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인간에 대한 애정, 사람을 끌어당기는 리더십, 그리고 대화술이다.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이 바로 조성훈이다.

 

 조성훈은 우선 사람이 되었다. 겸손하다 못해 조금은 수줍어 하는 듯한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연단에 오르면 180도 돌변하다. 어디서 그런 탁월한 연설이 용솟음 치듯 나오는지.

 

0…그는 특히 초선으로서 교통부 부장관(Associate minister)의 중책을 맡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소관업무를 상세히 파악해냈다. 좌중을 압도하는 연설의 힘은 바로 업무를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자신만만하게 발언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타고난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된다.

 

 그는 또한 한국과 한인들에 대한 사랑이 특출나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모들님들이 이민 와서 어렵게 가게를 꾸려가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자신은 이민자의 자식으로서 서민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래서 더 친근감이 더 간다. 

 

0…아직 40대 중반의 젊은 조 후보가 재선에 성공해 착실히 경륜을 쌓으면 장관은 물론, 주총리 등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한민족의 자존심으로 승화될 것이다. 캐나다 한인 이민사 반세기, 진작에 이런 2세 정치인이 나올만도 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실제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인 최대 밀집지역이라는 노스욕(윌로우데일) 선거구 현황을 보면 총 인구는 12만여 명(2016년 센서스 기준), 인종 분포는 백인이 40여%, 중국계 23%, 한국계 10.3%(1만2천여 명), 서아시아(이란 등) 9.7%, 필리핀 4.9%, 남아시아 4.5% 등이다.   

 

 이 가운데 총 유권자는 대략 8만2천여 명이고, 이중 한인유권자는 8천~7,500여명으로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4년 전인 2018년 6,7 온주 총선거 당시 한인투표자는  2,200여 명으로 전체의 5% 에 불과했고 한인유권자 대비 투표율도 30% 미만으로 매우 저조했다.

 

0…이런 결과가 말해주듯 한인들의 투표참여도는 그리 높지 않다. 각 민족 커뮤니티의 투표율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한인행사에 주류정치인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정치 참여도가 낮다.

 

 특히 현재 윌로우데일 지역은 자유당이 전략지역으로 정해 집중공력하고 있어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조 후보의 강력한 라이벌로 나선 필리핀계 자유당 후보 캠프는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한인 유권자들의 투표율 제고만이 승리의 확실한 길이다. 명색이 캐나다 한인 최대 밀집지역이라는 노스욕에서 우리 후보가 밀린다면 말이 안 된다. 이는 한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0…이민사회에서의 투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부디 조성훈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 역사상 최초의 2세 중견 정치인을 탄생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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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내 마음의 천적(天敵)-사람이 죽도록 미울 때

 

 

 “이번 모임에 그 사람 오나요? 미안하지만 그 사람이 오면 난 안 갑니다…” 최근 어느 한인모임에서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친교 모임과 행사가 있을 때 심심찮게 보고 듣는 모습이 바로 누구는 누구 때문에 모임에 오기 싫다는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대꾸를해야 할지 난감하거니와, 한편으론 수긍도 간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일을 겪어왔고 그러기에 무어라 조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0…우리는 흔히 어떤 행사나 모임에 갔을 때 평소 싫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즐겁던 기분이 싹 가시면서 그날 하루는 속을 썩이며 망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겪는다. ‘하필이면 저 인간이 왜 이 자리에…!”

 

 특히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것을 보면 속이 뒤틀리는 표정이 역력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사람과 친해요…?’ 이러다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꼬이게 된다.

 

 언젠가 골프대회를 하는데 나와 친하게 지내는 분이 기부금만 내고 참가는 않겠다고 한다. 왜 그러냐니까 “00 인간이 보기 싫어 안 한다”는 것이다. 평소 성격이 원만해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만 같은 분이 그러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 분들처럼 이른바 ‘천적(天敵)관계’에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0…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모든 것이 관계(relationship) 속에 이루어지며 살다 보면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누굴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이 참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내가 한때 그랬다.

 

 어떤 사람은 하는 짓마다 미운 짓만 골라해 그를 보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때 나의 마음고생은 엄청났다. 식사를 하다가도 그 인간만 생각하면 밥맛이 떨어지고 잠을 자다가도 그 얼굴만 떠오르면 잠이 달아났다. 나중엔 생병(生病)이 날 지경이었다.

 

 교류 폭이 좁은 이민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더욱 그렇다. 어딜 가나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꼭 있다.

 

 천적(natural enemy)은 특정 생물을 먹이제물로 삼는 생물을 말한다. 자연생태계는 각 생물이 자연의 원칙에 따라 먹고 먹히는 천적관계(먹이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쥐와 고양이, 진딧물과 무당벌레, 곤충과 새, 새와 뱀, 올빼미…

 

 이러한 먹이사슬은 자연이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유지되는 원칙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관계가 인간 사이에서 ‘하늘(天)이 정해준 원수(敵)’로 쓰일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0…‘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프랑스의 종교화가이자 판화가인 조르주 루오(1871∼1958)의 판화작품 제목이다.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 죽음까지 주는 도끼날일지라도 독을 묻히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

 

 자신을 멸시하고 죽이려는 자들을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삶이 그러했을 것이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찍으려는 수 많은 도끼날들이 사방에 번뜩이고 있다. 그러나 수천 수만 번을  찍히더라도 오히려 내 마음 속에 있는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주고, 아무리 아프더라도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용서의 향기를 나누어 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0…우리는 언제나 인간관계 속에서 고민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히는 향나무처럼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한세상을 살아가라는 그 힘든 주문을 어찌 감당할까만 노력을 하다 보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것이다.

 

 관계의 폭이 제한된 이민생활에서는 특히 미움의 정서가 큰 문제로 작용한다. 주로 동족끼리 만나다 보니 허구한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그렇게 자주 접하다보니 약점만 눈에 들어오기 십상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꿈치까지 미워 보인다고, 하나하나가 모두 밉다. 이는 참 피곤한 일이다.

 

 처음엔 좋은 관계로 시작했던 동업이 깨지는 일도 흔하고,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다. 연애시절엔 예쁜 점만 보여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았으나 살아가면서 차츰 흠집만 보이니 싸울 일 천지다. 

 

 그러나 누굴 미워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참 안 좋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 이를 확대시켜 볼 것을 권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장점과 미덕이 있게 마련이며 그 장점만 보면 그 사람이 좋게 보일 것이다.

 

 사소한 일로 갈등을 빚더라도 서로 상대의 좋은 점만 보도록 노력하면 결국 원만한 결론을 맺게 될 것이다.

 

0…누군가가 죽도록 미우신가요. 이를 해소할 가장 좋은 방법은 나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상대방에게도 분명히 장점이 있을 것이니 노력해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다.

 

 내가 먼저 내미는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용서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너희게 원한 품은 형제 생각나면/어서 가 그 형제와 화해를 하고 /돌아와 그 예물 바쳐 드려라…’ (가톨릭 성가 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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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타는 목마름으로?-덧없는 변절의 세월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민주주의여…//…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시는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같은 세대는 이 시를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고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0…1960년 4·19 혁명 후 학생운동에 참여한 김지하는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으로 불리는 6·3 항쟁에 참가했다가 수감돼 4개월간 첫 옥고를 치렀다.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이듬해 풍자시 ‘오적(五賊)'으로 다시 구속되는 필화를 겪기도 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군사정권에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풀려나면서 반체제 저항시인의 상징으로 불렸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의 대표작이다.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친 이 시는 군부독재에 맞서다 여러 차례 옥살이를 한 그의 저항정신이 담겨 있다. 1980년대 가수 김광석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고 민주화운동 집회에서 자주 불리기도 했다.


0…나같은 세대에게 김지하는 영웅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의 시를 읽고 많은 민중들이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웬 ‘생명’ 타령을 늘어놓더니 180도 변(변절)하기 시작했다. 한때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반민주 세력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날은 그 언제인가?” 1991년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에서 김지하는 이런 서문을 남긴다. 


0…그는 한걸음 더 나가 1991년 신공안정국(노태우 시절 대학생들 분신으로 촉발된 정국)에서 보수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해 민주진영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김지하는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면서 운동권 세력이 연이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심지어 학생들처럼 죽음을 강요당했던 자신의 경험이 스며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를 든든한 민주화 동지로 여겨온 운동권과 진보진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근거도 없이 자신들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매도하며 군부독재에 아부하는 데 넋을 잃었다.


 김지하는 한술 더 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까지 했다. 한 시대의 저항 영웅시인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0…당시 운동권 중엔 심재철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유시민은 같은 학교 대의원회 의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이맘때 전국 대학생 10만여 명이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유시민은 여기서 물러서지 말고 강력 저항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심재철은 반대했다. 학생들은 청와대까지 행진하자고 했으나 심재철은 후퇴를 결정하고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질풍노도 같은 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서울역 회군'으로 민주화의 절호기회를 놓쳤고  전두환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사흘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다.


 당시 심재철은 겉으로는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이미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삶이 망가질 때 심재철은 오롯이 양지만 쫓으며 승승장구한다.


0…심재철과 비슷한 인간이 김문수다. 그 역시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활동가였으나 그 후 행보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변절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2012년에 나온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동형)이란 책이 있다. 와주테이란 국회가 있는 여의도 윤중제(輪中堤)의 일본식 발음인데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 정치인들 실체를 박쥐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변절자로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손학규 등 6명, 가장 기회주의적 정치인으로 홍준표, 전여옥 등  4명을 꼽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운동권 경력을 가진 자들이 철저히 변절해 보수꼴통 정치인이 되었거나 이른바 뉴라이트가 된 자들이다.
 

 이들은 애당초 보수 정치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진영 공격에 앞장선다. “한번 돌아선 자는 그 반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법이다. 누구보다 악독하게 그 자들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더 철저하게 반대편에 서야 입지가 다져지기 때문이다.  


0…이들을 비롯해 한때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김동길과 김지하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 저렇게 될까. 나도 저렇게 노망이 들까.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김지하 씨가 엊그제 눈을 감았다. 요즘따라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미운 인간들 모두 앞세우고 느긋하게 뒷짐 지고 따라가기 위해서 말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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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두 얼굴의 검찰-권력의 시녀 흑역사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용되면 선배검사들이 후배검사의 기(氣)를 살려준다며 폭탄주 마시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이 관례였다. 검사는 무엇보다 위엄과 기개가 있어야 피의자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목에 힘주는 법부터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피의자든 일단 검사실에 들어오면 기가 죽게 돼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데 익숙한 고위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의 경우 검사들은 그들의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이래서 반말은 보통이고 때론 책상을 내리치거나 손찌검을 하는 것도 예사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대우만 받던 고위층 사람이 아들뻘의 새파란 검사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며 밤샘수사를 받고 나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인간적인 굴욕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다. 이래서 개중에 심약(心弱)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0…한국의 최고 권력집단으로 군림해온 검찰, 말만 들어도 으스스하다. 언론은 줄여서 검(檢)이라 한다. 그게 더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다. 사기를 쳐도 다른 곳은 몰라도 검찰이라며 윽박지르면 상대방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일단 새파랗게 질리고 기가 죽는다.

 

 왜 그럴까. 한번 검찰에 불려가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검찰은 (피의자의) 웬만한 신상이나 약점을 상당히 확보한 상태에서 소환하기 때문에 한번 검찰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수갑찬 모습으로 나오게 된다. 맨손으로 나오는 모습은 검찰의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죄지은 게 없는 사람은 검찰같은 기관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없는 죄도 만들어 생사람을 뒤집어 씌우기 때문에 한번 그 조직에 걸려들면 여간해선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검찰에서 부르면 겁을 먹게 돼있다. 

 

 특히 이런 덮어 씌우기 식의 악랄한 수사는 정권에 밉보인 정치인들에게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이래서 검찰을 일컬어 권력의 시녀(侍女)라 하는 것이다.

 

0…유능한 검사는 사람을 많이 잡아 넣는 검사다. 그것도 특수부(특별수사부)에 재직하며 정치인과 사회 고위층, 유명인사를 많이 구속시켜야 출세한다. 이러니 무리한 강압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생리적으로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고상한 수사(修辭)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걸 감안하다간 수사 진척이 안된다. 또한 정치적으론 진보와도 애당초 코드가 맞질 않는다. 따라서 입바른 소리 하는 진보정치인을 엮어 넣으려 혈안이다. 보수정권에 대드는 진보정치인은 검찰의 단골 먹잇감이다.

 

 반면에 검찰은 정권 중에도 보수정권에 한없이 관대하다. 이들은 DNA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보수정객이나 자기네와 한통속인 법조인이 저지르는 웬만한 비위는 그냥 없던 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이래서 검찰이야말로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끝까지 악랄하게 구는 암적(癌的) 존재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0…한국 검찰의 근본적 폐단은 기소독점주의에서 비롯된다. 피의자를 제멋대로 수사하고 자기들이 기소한다. 그러니 애당초 수사가 중립적일 수 없다.

 

 2년 전 한국에서 ‘가장 신뢰하는 국가기관’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검찰이 꼴찌를 차지했다(2.2%). 지난 10년 동안 같은 설문에서 검찰은 거의 매번 가장 불신받는 기관으로 지목됐다. 이는 오랜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이 몸소 겪은 체험 때문이다.

 

 검찰은 미 군정기 이래로 정치권력의 중요한 일부로 군림하며 특히 보수체제 수호에 앞장서온  억압기구다. 그들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무수한 공안사건을 조작해냈다. 중앙정보부 등과 짜고 무고한 민주인사에 대해 무차별 기소를 남발했다. 검찰 손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부지기수다.

 

 반면 검찰은 지배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1987년 5공 비리 수사는 대부분 혐의 없음, 공소시효 완료 등을 이유로 흐지부지 처리해버렸다. 1994년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광주학살 수사에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추잡한 성접대를 받은 것이 드러났지만 사법부는 그를 단죄하지 않았다.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로 기소가 늦어진 탓이다. 이 사건은 검찰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0…국회를 통과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정당한 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검찰은 자기네 입맛대로 수사하고 기소여부를 제멋대로 결정했다. 정치적 사안에서 검찰의 손아귀를 벗어난 인사(특히 진보진영)가 없다.

 

 열명의 도둑을 못 잡아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드는 실수는 말아야 하거늘, 한국 검찰은 진짜 도둑은 놔두고 생사람만 잡아 범인으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이러면서 정의와 공정사회를 외치는 것은 낯간지럽다.  

 

 미리 짜여진 틀 안에 피의자를 가두어 놓고 법을 어거지로 짜맞추는 악질 수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캐나다 같은 정상적인 사회에선 검사라는 존재 자체를 의식도 안하고 산다. 한국도 이런 나라가 돼야 한다.

 

 한국엔 유능한 경찰대 출신이 많다. 이들에게 사건 수사를 맡기면 된다. 그동안 엘리트 의식에 절어있던 검사들은 이참에 왜 이렇게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되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금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분개하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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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함께 맞는 봄비- 더불어 사는 세상

 

 

 고 신영복 교수가 쓴 ‘함께 맞는 비' 붓글씨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뜨락에 서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잔디와 튤립 새싹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거센 눈보라와 얼어붙은 대지의 땅을 뚫고 기어이 올라 오고야 마는 그 놀라운 생명력에 새삼 경외감을 느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엔 우산없이 그냥 거리를 걸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시인은 ‘여름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지만 봄비는 둥글둥글 내리는 꿀비, 단비, 약비, 복비… 풀 나뭇잎 파릇파릇 돋우는 녹우(綠雨)’라고 했잖은가.

 

0…우산 없이 처량하게 비를 맞고 간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실연(失戀) 당한 사람? 마음이 몹시 울적한 사람? 혼자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은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우산이지만 함께 쓰도록 받쳐줄까, 아니면…

 

 이에 고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비를 맞고 가면 처량합니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맞으며 걸어가면 덜 처량합니다.”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그와 같은 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처지가 같지 않고 정이 같지 않은 사람의 동정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에게, 또는 극도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고만 하면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함께 실컷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한 계단도 오르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하면 된다”고 몰아부치는 것은 도움도 격려도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다른 우회길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가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다. 

 

 신교수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면 우선 당장은 작은 위안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정받는 사람에게 상심(傷心)이 된다 했다.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동정받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래서 ‘함께 맞는 비'는 신교수가 즐겨 쓰던 붓글씨 문구였다.

0…지난 2016년 1월에 세상을 뜬 시대의 참 지성 신영복 교수. 논어, 맹자, 장자, 노자를 비롯해 동서양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고뇌어린 성찰과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투영해낸 그의 저술은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금언(金言)이다. 그 중에도 신교수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와 관계’였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37℃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더 절망적인 것으로 만든다.

 

 신교수의 말대로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0…신교수는 생전에 늘 ‘관계와 연대’를 강조했다. 그중에도 ‘처지와 입장의 동일함’이야말로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역설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 깨닫게 해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중시한 것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가슴으로 함께 나누는 공부였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도 처한 입장이 같아야 진정성을 담게 된다.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처지가 다르면서 돕거나 위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함께 맞는 비는 누굴 도와도 그 정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0…서예가로도 명성이 높았던 신교수.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 ‘북악은 5천년간 무심하고, 한수는 유정하게 700리를 흐른다’. 서울 정도(定道) 600주년을 기념해 쓴 작품이다.

 

 북악은 왕조권력을,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한다. 왕조권력은 권력투쟁에 몰두해 백성들의 애환에 무심하지만 한강 물은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유정하게 흘러간다는 의미다. 현 위정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0…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친구와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진정한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봄꽃도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황석영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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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쓸쓸한 그대 뒷모습-물러가는 모든 것은 슬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29일 가을비가 내리는 경남 양산시 사저 뒷산에서 산책하며 사색에 잠겨 있던 모습 

 

 인파로 혼잡한 도심 거리에서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집에서 늘 얼굴을 대하며 사는 아버지이건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뒷모습은 왜 그리도 낯설고 쓸쓸하기만 한지. 갑자기 코끝이 찡해 온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말이다.

 

 아무리 꼭꼭 숨기고 덮으려 해도 결코 감춰지지 않는 신체 부분. 바로 '뒷모습'이다.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모자를 쓰고 화려한 치장을 해도 일단 돌아서고 나면 모두가 평등해진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존재의 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가끔은 너무 솔직해서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나의 곁을 무심히 지나쳐가는 낯모를 타인들의 뒷모습들. 그들은 모두가 정직하다.

 

 하지만 뒷모습은 대개 쓸쓸하고 초라하고 슬프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뒷모습만큼은 그리 당당하지가 않다. 한 인간의 허약함이 어깨 위에 버겁게 드러난다.

 

0…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나 군대에 갔을 때나 종종 고향집에 들르면 홀로 계신 어머님은 나를 위해 온갖 먹을 것을 챙겨주시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을 나설 때 어머님은 버선발로 나오셔서 버스에 오르는 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어머님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오셔서 멀어져가는 나를 향해 언제까지고 쓸쓸히 손을 흔드셨다. 차창 밖으로 흐려져가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물 속에 선하다.

 

 어머님은 그때 내 앞에서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시면서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메이셨을까.

 

 어머님은 아마 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오래토록 바라보고 계시다가 돌아서서 이내 눈물을 훔치셨을 것이다.

 

0…내가 아무 미련 없이 훌쩍 이민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도 떠나는 나의 뒷모습에 눈물 흘릴 어머님이 안 계시다는 홀가분함도 한몫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주변에 어머님을 홀로 남겨놓고 이민 온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한 강심장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한편, 22년 전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죽마고우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던 옛친구의 속가슴은 또 어떠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서 먼저 가라며 손을 흔들던 기억이 아련하다. 친구는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넋나간 듯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0…이처럼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늙으신 어머님의 가녀린 뒷모습에선 아무도 모르게 사위어간 세월의 서글픈 간극(間隙)을, 아버님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선 가장(家長)의 책무에 짓눌려 사느라 잃어버린 청춘의 허무함이 묻어난다.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도, 권력을 주무르던 사람도, 강단에서 열기를 내뿜던 노(老) 학자도, 덧없는 세월이 흘러 무대에서 내려와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쓸쓸하고 왜소하게만 보인다.    

 

 0…이제 곧 뒷모습을 보이게 될 문재인 대통령. 이 사람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기득권 세력과 음습한 자본권력이 한통속으로 미쳐 날뛰는 모순 투성이 한국사회를 바꾸어보자고 외치며 분연히 일어섰던 사람,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약자들에게 손을 뻗쳐 평등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절규하던 그 사람.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검찰과 언론 권력을 개혁해보려 무던히도 애쓴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런 순진무구한 이상(理想)만으로는 결코 바꿀 수가 없었다. 철옹성같은 기득권 절벽 앞에  문재인의 희망과 꿈은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결단력과 추진력이 약해 보였던 사람, 한번 믿으면 끝까지 신뢰를 놓지 않았던 사람, 거대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 앞에서도 끝내 인내와 설득으로 참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던 사람. 하지만 그건 한갖 일장춘몽으로 끝이 났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발탁하고 키워준 인간에게 처절하게 배신당한 채 오히려 앞날을 걱정해야 할 운명이 됐다. 그 인간은 언제 자신의 임명권자에게 비수를 들이댈지 모른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들 모두의 뒷모습이 그러했다.  

 

0…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문재인의 뒷모습은 너무 쓸쓸해 보인다. 평범한 삶마져 짓밟히지 않을까 걱정돼서 더 그렇다. 사저(私邸)가 지척인 고향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노무현의 뒷모습이 겹쳐 더욱 안쓰럽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낙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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