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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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함-타이틀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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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토론토주재 한국 지상사 임직원들과 골프대회를 치르면서 사전준비를 위해 주재원들과 몇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인사차 명함을 주고 받다가 다소 생소한 직함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군가의 명함에 ‘책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나같이 20여 년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타이틀이어서 이런 직책이 언제부터 생겼느냐고 물으니 2년 정도 됐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전의 중간직책(과장, 차장, 부장)을 ‘책임’이라는 직함으로 단순화하고 호칭도 통일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책임’이란 직책은 이전의 부장급 정도 되는 위치인 것이다.   


 이같은 호칭 변화는 복잡했던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업무 효율성 위주로 조직을 개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에 대해 두가지 느낌이 들었다. 권위의식과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직책을 줄인 것은 잘한 반면, 업무에 관한한 ‘절대책임’을 지라는 말같아 직원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겠다는 느낌이다. 


 0…내가 기업체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일반적인 조직은 평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에 이어 임원인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 타이틀이 첩첩산중이었다. 그래서 평사원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러니 대부분의 흙수저들은 평사원에서 출발해 임원까지  오르려면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승진에서 누락되면 퇴사할 수밖에 없고. 그 스트레스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군대도 마찬가지. 사관학교 동기들보다 승진이 느리면 중간에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타이틀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주요 기업체마다 타이틀 변화 바람이 일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복잡한 호칭이 사라지고 업무 전문성을 중심으로 인사제도를 개편, 수평적•자율적 문화를 확산하는 추세다. 이는 세계 시장의 환경 변화로 과거 같은 위계와 연공서열주의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고민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의 경우 2년 전부터 당시 5단계였던 사무직 직급을 3단계로 단순화했다. 사원 직급만 기존과 같고 대리•과장은 '선임'으로, 차장•부장은 '책임'으로 통합했다. 삼성전자는 기존 7단계 직급을 4단계로 줄였다. 임직원 간의 호칭은 '님', '프로' 등으로 바꿨다. 존칭 없이 영어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SK텔레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직위를 팀장과 매니저로 단순화했다.


 CJ그룹은 20여 년 전부터 '님'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공식자리에서도 회장을 부를 때 '이재현 님'이라고 부른다. 다른 기업들도 잇달아 호칭파괴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복잡한 직함을 다 치우고 그냥 ‘매니저’라고 부르는 곳도 많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다. 직급에 따른 보고체계를 간소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격의없는 소통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전에는 먼저 입사한 선배가 승진도 먼저하는 게 관례였으나 이제는 그런 ‘연한’ 개념도 사라지고 능력있는 사원이 과장, 부장보다 더 높은 직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직급을 중시하는 한국이 호칭 변화를 통해 조직문화도 바뀌고 상대방과의 소통도 좀더 원만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0…나는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하기 전에 2년여간 대기업 생활을 했는데, 당시 우리 부서에는 나같은 평사원 위에 (과장)대리, 그 위에 과장, 차장, 부장에 이어 소위 ‘기업체의 별’로 불리는 임원인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이어 오너 일가로 짜여진 사장과 부회장, 최고 정점에 회장이 존재했다. 나는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획일적이고 위압적인 회사 분위기가 맞질 않아 나와서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타이틀을 열거해보면 그 이력을 알 수 있다. 내가 처음 타이틀을 가져본 것은 군 장교로  임관해서부터다. 이 소위(소대장), 진급해서 이 중위, 보직이 부관이니 이 부관, 기업에서는 평사원이니 그냥 이씨(또는 미스터 리), 출판사에서는 이 과장, 그후 언론계 들어와서는 이 기자, 진급해서 이 차장, 이 부장, 그러다 이민와서 계속 언론생활을 하면서 이 편집국장, 이 부사장(편집인), 이 사장 등으로 이어져 왔다. 언뜻 보아서는 대단한 출세가도를 달려온 듯 하지만 알고보면 그만큼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피곤했다는 의미다.           


 한국 남자들 중에는 특히 타이틀(title-직함)에 집착하는 분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이민사회인데도 유난히 단체도 많고 ‘회장’이란 타이틀이 넘쳐나는 느낌이다. 개중에는 회원도 없는 단체를 만들어 혼자서 회장이란 직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작은 이민사회에서 회장 타이틀이 이렇게 많은 커뮤니티도 드물 것이다.      

                                
 이곳 캐나다 사회에서는 단체나 조직에서 대개 이름을 부르거나 조금 경어를 붙여 미스터, 미즈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조금 더 직급이 높아지면 매니저, 혹은 수퍼바이저로 부른다. 과장님, 부장님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0…한국 남자들은 타이틀을 잃어버리면 힘이 풀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에서 한때 부장님, 국장님,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이민와서 갑자기 ‘아무개씨’라는 소리를 들으면 거기서부터 맥이 탁 풀린다. 그래서 툭하면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다고 자랑하며 현실을 덮으려 위안 삼는다. 


 아무 타이틀도 없는 사람은 대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분이 많다. 하늘의 뜬구름 같은 타이틀이란 게 무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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