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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팔팔 이삼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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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학환 전 노인회장의 건강하시던 모습(2년 전 당시 94세).

 


 “이 형, 그동안 수고 많이 해주었지만 이제는 정말 얼마 안 났으니 끝까지 좀 도와줘. 아마 올해 안으로 완공을 보게 될거야…” 

 


 고학환 전 노인회장의 건강하신 모습을 최근에 뵌 것은 석달여 전 어느 주말, 미시사가의 한식당에서였다.

나와 아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에도 몇번 만난 적이 있는 중년의 따님(차녀)과 함께 고 회장님이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당시 고 회장님은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는 계셨으나 여전히 건강해 보이셨고, 96세의 연세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셨다. 우리 내외가 인사를 드리자 고 회장님은 나에게 악수를 건네시는데 손아귀 힘이 중년 밖에 안된 나보다도 더 세신 것 같았다. 

 


 고 회장님 부녀(父女)는 우리의 옆자리에 앉으셔서 식사 주문을 했고 먼저 식사가 끝난 우리 부부는 고 회장님의 식대까지 지불한 후 잠시 합석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고 회장님이 나에게 건넨 말씀이 바로 위와 같은 것이었다. 고 회장님은 5개월여 전에 노인회장직을 떠나신 터였는데, 아직도 당신의 마음 속에는 평생 소원인 노인회관 완공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고 회장님은 먼저 저리를 뜨는 우리 부부의 손을 잡으시면서 “다음엔 내가 꼭 밥 살께.”하셨다.  

 


 그랬던 고 회장님께서 지난주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두달 여 전에 낙상(落傷)을 당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평소에 워낙 건강하시니 곧 회복되실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달여 전 다시 넘어지셔서 부상을 입고 따님 집에서 요양해왔으나, 보름여 전부터 상태가 악화되더니 끝내 회복을 못하시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향년 96세.

 


 내가 고 회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1년 전인 지난 2003년, 토론토 한국노인회장에 당선된 후였다.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할 당시에도 벌써 85세의 고령이셨지만 건강이나 열정은 40~50대 중장년층도 못 따를만큼 왕성하셨다. 고 회장님은 그 왕성한 건강미와 함께 연설솜씨도 대단하셔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하시면 장내(場內)를 완전히 압도하셨다. 또한 각각의 상황에 맞게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풀어나가셨는데, 특히 이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동포노인들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당부하실 땐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가에 물기가 촉촉하게 젖으시는 등, 감성도 참 풍부하셨다. 

 


 고 회장님의 평생 소원은 동포노인들이 편히 쉬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있는 번듯한 공간(노인회관)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포사회를 향해 노인회관 재건축(증.개축)을 위해 십시일반 도와줄 것을 호소하셨다. 한때는 현재의 회관이 너무 비좁아 좀더 널찍한 곳으로 이전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예산이 만만찮아 무산되고 말았다.  

       

          
 고 회장님은 한인사회에서 큰 어르신으로 존경받았다. 고인은 지난 2003년 제20대 노인회장에 당선된 후 올해 5월 차기 회장(김정배)에게 바통을 넘기기까지 10여년간 노인회를 이끌면서, 특히 노인회관(복지회관) 건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으나 평생 소원이던 회관의 완공을 목전(目前)에 둔 채 타계하고 말았다. 이달 초 노인회관 상량식을 갖는 자리에도 고 회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인은 평소 자전거로 노인회 사무실에 출근하는가 하면, 젊은이 못지 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하는 등 왕성한 노익장을 과시하셨다. 항상 명랑 쾌활하고 낙천적이셨으며, 약주도 꽤 즐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고인의 갑작스런 타계가 더욱 놀랍다. 이북(황해도) 출신인 고인은 1981년 이민 후 오타와에서 살다가 16년 전인 98년 토론토에 정착했다. 토론토 거주 년수(年數)로만 보면 그리 길지 않지만 노인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바는 지대하다. 고인은 임종 직전에도 “불쌍한 노인들을 잘 모셔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신학교를 나오신 고인은 교회 장로로서 독실한 신앙생활도 해오셨다.

 


 고학환 전 노인회장님의 타계를 보면서 세인들이 흔히 말하는 호상(好喪)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에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일평생 복된 삶을 누리며 살다가 말년에도 별다른 병치레 없이 떠나는 것이 바로 호상이다. 고학환 회장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요즘 시대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가 만인의 관심사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1.4세에 이른다. 성별로는 여자가 84.6세, 남자는 77.9세로 여자가 남자보다 6.7년 더 산다. 특히 여자는 75.7%가 80세 이상까지 살고, 3.8%는 100세까지 살 것으로 점쳐졌다(남성은 0.9%).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고 있으나, 문제는 오래 살되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자료를 보면 병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은 평균 72.6세에 그쳤다. 이는 노후 8년 이상을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숨을 거둔다는 말과 같다. 인생의 황혼녘을 질병의 고통 속에 보낸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몸이 아프면 본인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고통을 안기게 된다.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각자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    

 


 2년 전에도 위의 제목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거니와, 한국에서는 회식자리에서 건배 구호로 ’구구 팔팔 이삼사(99, 88, 234)’를 외친다고 한다.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고, 2-3일 앓다가 4일 만에 죽자"라는 뜻이다. 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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