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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생각
ywlee

Editor’s Note

 

-잊을래야 잊을 없는

-모든 일이 풀리길 바랄 뿐   

 

                                          한국의 아름다운 봄날

 

 시골출신인 저는 어릴적 주로 자연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어른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라곤 아주  단순 소박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출세하려면 판.검사, 또는 군인(장군)만 있는 줄 알았고 나도 크면 그런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요, 그때로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야말로 최고의 영웅이요 우상이었지요.      

 

0…이래서 나의 꿈은 장차 군인(장군)이 되는 것이었고, 고교부터 일찌감치 진로도 사관학교로 정해졌습니다.

 공부는 어느정도 했기에 육사에 상위권으로 입학했고 출발은 순탄했습니다.

 멋진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올리는 저를 보고 면회 오신 어머니와 형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습니다.

0…그런데 그때는 제가 막 사춘기에서 벗어날 무렵이었지요. 말하자면 내면의 자아(自我)가 깨어나기 시작할 때였던 것입니다.       

 사관생도 시절 주말외출을 나갔는데,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불과 수개월 사이에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더라구요.

 법과 정의와 역사가 어떻고, 문학과 철학이 무엇이며, 장차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까지 얘기를 하는데 나는 별로 끼여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0…내무반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 무수한 번민의 시간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당시만 해도 많은 젊은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관학교를 1년 만에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여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책도 많이 읽기 시작했죠.   

0…하지만 1970년대 중반 당시의 대학은 낭만과 토론이 흐르는 상아탑만은 아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상화되다시피한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침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각하’의 이면을 알게 되면서 모든 우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개발 이면에 가려진 무수한 노동자들의 희생과 어린 여공(女工)들의 눈물이 너무도 무심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0…이때 청계천과 전태일과 YH와 조영래를 알게 됐고 세상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대학 배지도 이때부터 떼어 던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거대한 빌딩 숲을 보면 멋지다는 감탄보다 저런 건물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을까, 이런 생각이 떠올라 하나도 즐겁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하질 않아 외국의 거대한 유적지를 가보면 절대군주의 폭정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참 유치하고 순진한(naive)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0…아무튼 세월은 흘러 어찌어찌 대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군에 입대했습니다.

 한때 사관학교까지 다녔는데 사병으로는 가기 싫어 해군장교 시험을 보았는데 문과출신인지라 해병대로 떨어졌습니다.

 말만 들어도 무서운 해병대! 저에게 다른 건 몰라도 해병대의 의리와 충성심만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0…여기서 충성심을 잘못 해석하면 안됩니다.

 충성이란 상관의 정당한 지시와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는 뜻이지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 따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한창 진행중인 ‘채상병 사건’의 중심에 선 박정훈 대령이 있잖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일처리를 정석대로 처리하고 상관(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한 충성스런 해병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항명죄라는어마무시한 죄를 씌워 옭아매려는 행위가 올바른 것인가요.  

 

0…아무튼, 군 제대 후 대기업 생활도 해보았고 그후 언론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그놈의 알량한 정의감과 의리 때문에 수난도 꽤 겪었습니다.  

 특히 직업의 특성상 비판의식이 더 깊어졌습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비판의식이 없으면 들어서서는 안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0…저는 인천의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를 출입하다 이민을 떠나 왔습니다.

 올해로 이민살이 24년째를 맞습니다.

 타국에 살고 있으니 이젠 이곳 삶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왠지 남의 옷을 걸친 것 같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국 뉴스부터 체크합니다.

 

0…엊그제 총선을 전후해선 더욱 그랬습니다.  제발 나라가 정상화되면 좋겠는데…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마침내 결과가 나오고 저는 “역시 국민들 뜻은 무섭구나!”란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0…외국에 나와서까지 고국 지도자를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현 지도자는 정말로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지요. 현명하신 동포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실테니까요.

 

0…차제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잘못한 행위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진보니 좌파니 함부로 매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 보수, 진보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한국민의 절대다수가 선택한 이번 민심도 ‘좌빨’의 득세로 몰아갈 건가요.

0…이제 한국민은 그리 무지하지도 우매하지도 않습니다. 잘못한 행태에 대해서는 아주 현명하게 회초리를 들줄 아는 선진국민입니다. 

 야권 192석. 참 절묘한 숫자입니다. 지도자가 잘못 했으되 아주 쫓아내지는 않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뜻 아닌가요.

0…꿈결에도 떠오르는 고국의 산하. 아무 것도 기여할 길이 없는 해외동포이기에 그저 모든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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