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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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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 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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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하고 살자>

 우리네 인생살이가 몇 천년이 되나. 백수를 넘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 보다 어려움을 누구나 다 알면서도 그 생존의 욕망은 백수를 하고 천년을 살 것 같은 생의 집착을 버릴 수 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기실 생각을 하면 광막한 우주 속에 나라는 존재는 미세 먼지에 지나지 않고 이 미세먼지가 죽음이란 것에 도달하면 다시 윤회를 하여 또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도 모르게 생로병사의 순환을 일삼고 있음을 망각할 수 없음을 각인하면 생존이란 참 허망스럽다.

 살아있는 나라는 존재는 가끔 나대로의 삶의 목표를 철학자와 같은 지혜, 예술가와 같은 정열, 신념에 불타는 신앙인의 삶의 길로 살아 갈 수 있다면 내 생존의 빛깔의 결실은 아름다우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 왔고 살아 가려 노력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결실이 없는 황혼길에서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넘기고 있는 자신을 뒤돌아 보면 서글퍼짐을 어찌할 수 없다. 이는 쇠퇴하고 녹이 쓴 나의 영육이 흙을 향한 진행형임을 각인함에서 오는 의욕과 용기의 상실의 병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미세먼지가 흙에서 환생한 나라는 존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하는 사회인이 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낌은 우리가 어이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만 만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뿐만아니라 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을 만나며, 사랑했던 사람, 친한 벗들도 나를 멀리하고 나에게 듣기 싫은 말을하거나 환경과 입장에 따라 가변한다 해도 그러려니 하는 아량으로 받아 포용을 하면서 살아 갈 수있다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나아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배신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섭섭한 생각보다 내 잘못으로 파생된 일로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인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자.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공자의 말씀만 한다거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웃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말은 사회생활에서 나를 괴롭히고 섭섭히 대하는 사람들과 맞 붙어 감정을 표출했을 때의 결과는 무엇을 잉태할까를 생각해서 해 본 나의 잡설일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건전한 삶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열심히 배우고, 끝 없이 베풀고 남을 사랑하며, 능력껏 성실히 일한 결과를 얻는 결실에서 만족을 찾아 생을 영위함이 건실한 삶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옛날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인생은 언제나 오늘이 내 인생의 최후의 날이라는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철학을 좋아해서 이책 저 책 읽고 읽은 기억이지만 이 명상록의 글 한줄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자유에서 불안과 고독이 온다. 이 말은 불안한 가운데 행동한 잘 잘못에 대한 결과는 절망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나의 졸견은 인생사에서 어떠한 난관과 절망을 맞이한 순간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자는 제언을 함에 있다.  인생사 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자.

이 유식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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