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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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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꽃, 글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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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6일 김후란 시인이 운영하는 남산의 문학의 집 대강당에서 부끄럽게도 저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한국문단의 문사님들 100여 명이 모인 송년회 모임에서 제가 연설을 한 내용을 여기에 옮겨 봅니다. 

 

 문단의 대선배이시며 문학의 집을 운영하시는 김후란 이사장님의 삶의 나루터에 제 삶의 단면이라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의 고유문화 예술이 있음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민족문화 중에서도 그 꽃은 우리 말과 글일 것입니다. 즉 우리 말과 글이 없다면 예술이 꽃 피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 백년 대계를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하시며 후학을 지도 성원하시고 계시는 김 이사장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항시 삶의 좌표를, 어떻게 하면 조국과 해외동포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방인의 생활을 한지가 벌써 45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제가 할 수 있는 일, 저의 역량과 능력으로 조국사랑, 동포사랑에 일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저의 호를 붙인 민초해외문학상을 제정 시행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상을 제정 시행함의 목적은 메말라가는 해외동포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또한 세계 동포들이 우리 문화를 숭상하는 동기(Motivation)를 마련코자 하는 뜻이었습니다. 


이민 1세대들이 떠나면 2, 3세대 등은 우리 글과 말을 잊어버리게 됨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단일 민족인 우리 민족은 외세를 배격해 왔기에 서구 문명의 유입이 늦어졌고 중국에 사대하는 문화만 지속됨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중요시 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중국 민족은 이민 1세들도 그 후손 들에게 자기들 말과 글을 익히고 자기 문화를 지속시키는데, 우리 민족은 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이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속 유지 고양코자 함에 저의 문학상은 2008년 제정되어 현재 13년째를 맞이했고 12년에 걸쳐 수상자를 배출해 왔습니다. 수상자는 북미, 유럽, 아시아, 러시아 등 세계를 일주하며 시행해 왔으며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시상식을 가짐과 동시에 그 곳 우리 동포님들에게 민족 문화의 승계 발전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해왔기에 이제 이 문학상은 저의 생존에 큰 사명감을 느끼게 하며 해가 바뀌어 갈수록 보람감도 느낍니다. 


나아가 수상자의 나라를 방문 시상식을 갖게 됨으로 그 곳 동포들에게 우리 글과 말이 중요함을 전파함은 제 삶에 큰 기쁨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시를 쓰는 시인이기에 제가 읽은 작품 중 저의 변이랄까 저 자신이 팔순을 바라보는 노년의 길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을 소개해 봅니다. 즉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은 그의 시 청춘에서 글과 말은 민족의 몸체이고 음악과 각종 예술은 팔 다리와 같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청춘이 있기에 노래와 춤이 있고 이런 예술은 청춘을 찬양한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이 청춘이란 인류 누구나 간직할 수 있다는 의미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청춘이란 나이와 관계가 없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저는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저대로의 청춘이란 말의 뜻을 말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나이가 많아도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삶에 관한 이상(理想)이 있다면 청춘인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제가 문학상을 제정 시행하지 않고 있다면 저의 삶은 청춘이 아니라는 뜻을 부여하며 청춘이란 작품을 음미한 저의 시평 이었습니다.


제가 나이에 대한 궤변일지 모르지만 저는 항시 역동적인 생존을 영위코자 노력을 하기에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좋아합니다. 저에게 문학상이란 것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상을 시행함이 있기에 아직 저는 청춘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팔순이 가까워 오고 아니 백수가 된다 해도 그 이상 속에 생존을 영위하는 삶, 즉 김형석 교수 같은 삶, 아니면 92살에 26세의 영화 배우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얻고 94에 타계를 한 버트란트 럿셀같은 청춘의 삶, 이는 청춘이란 시의 자극(Incentive)의 소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한편의 시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예컨데 독일 하이델베르크가 좋아서 그곳을 두 번 찾았는데 거기에는 청춘이 숨쉬고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그 유명한 시인 괴테의 거리가 있습니다. 네카르 강을 끼고 30여년의 독불전쟁에서도 한번도 불란서 군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성으로 유명합니다. 이 성안에는 5백만 배럴의 와인드럼이 있고 낮에는 전쟁을 하고 밤에는 와인을 만들고 마시면서 전쟁을 한 성으로 인류 역사에 영원한 금자탑으로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괴테는 75세의 나이에 18세의 마리안나 본 밀레니어와 연정을 나눈 사이로 유명한 괴테의 거리가 있습니다. 마리안나의 양친은 괴테를 만나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감시를 했으나 마리안나는 그의 부모님에게 말을 합니다. 부모님은 이 세상을 떠나면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 마리안나의 이름은 인류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면서 괴테와의 연정을 지속 유지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괴테는 나의 삶은 이상이 있기에 나는 아직 청춘이다, 청춘이기에 청춘으로서의 값어치를 찾는 것은 꿈, 건강, 돈, 친구, 일이라고 일갈을 하며 사회에서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리안나와의 연정은 청춘으로서 당연히 가져 보는 인생이라 정의를 하며 그의 노후를 멋지게 장식했다 합니다. 


이 얼마나 멋진 생존입니까. 이 멋진 삶도 생존의 가치의 정립이 다를 수 있지만 말과 글 시가 없다면 우리 인류에게 멋지고 아름다운 문화 예술도 역사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제가 항시 생각하며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 글과 말이 없다면 청춘이란 시를 이해할 수도 없기에 우리 말과 글이 더욱 중요함을 절감한다는 생각입니다. 겹쳐오는 세계 정치 문화 경제 여건이 암담하다 해도 우리 글과 말을 지속 발전함에 동포 사회가 힘을 모아 우리 이민 2, 3세대 등에 등댓불의 역할을 함이 이민 1세대들의 사명이며 명분 있는 업적임을 잊지 마시기를 기대 합니다.


끝으로 문학의 집 <삶의 나루>가 민족문화 발전과 융성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원드리며 제가 12회까지 시행해 온 민초해외문학상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6ezPca0zZU&t=5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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