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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독립전쟁 배경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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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들이 마을로 돌아오니 영국 육군이 IRA 게릴라전에 대한 보복으로 시네이드 니 설리반의 농장을 약탈하고 불을 지른다. 시네이드는 영국군의 총구 앞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잘리고 그 과정에서 머리에 상처를 입는다.

 

 숲속에 숨어 이 광경을 목격하던 데미언이 뛰쳐나가려고 하지만 형 테디가 극구 말린다. 그들은 실탄이 다 떨어진 상태여서 속수무책으로 관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다. [註: 당시 여성이 IRA를 돕다가 발각될 경우 영국군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다. 한편 IRA도 영국 경찰 또는 군인과 내통하는 여자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1970)'에도 여주인공 로지 라이언(새라 마일즈)이 IRA 대장 팀 오레리(배리 포스터)를 영국 경찰에 밀고한 것으로 오해한 마을사람들이 그녀를 발가벗기고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 집단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의 관견(管見)으론 이는 영국·아일랜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나라들의 공통된 전통적 관습이지 싶다. 예컨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2000)'에서도 여주인공 말레나(모니카 벨루치)가 애국심을 내세운 광기의 이탈리아 파시스트 여자들에 의해 구타 당하고 머리칼이 잘리고 발가벗기는 잔혹한 린치를 당한다.]

 

 블랙&탠즈가 떠나자 데미언은 시네이드를 부축하여 위로한다. 버나데트(메리 머피)에게 다음 몇 주 동안 머물 곳을 부탁하는 데미언. 그녀는 맥카시집을 추천하는데 그녀의 어머니 페기는 자녀 5명을 낳아 키운 이 집에 남아 닭장을 청소하겠다고 말한다. 그 닭장은 아들 미하일 오 설리반이 고문 당하고 죽었던 바로 그 장소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온 소년 토마스가 동료 핀바(데미언 기어니)가 테디 앞으로 보낸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침내 투쟁 결과 1921년 12월 영국과 아일랜드 간에 정전 협정(Anglo-Irish Treaty)이 체결되고 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얼스터(Ulster) 6주(현재의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남겨두고, 아일랜드는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영제국의 자치령인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으로 남으며, 아일랜드 자유국 의원들은 영국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註: 이 점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똑같은 영국 연방국가(The Commonwealth)가 됨을 의미한다. 아일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1931년 12월11일에 코먼웰스에 가입했으나 1948년에 아일랜드 의회가 '아일랜드 공화국법'을 제정하면서 영국 연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그 다음해에 영국 의회가 '1949년 아일랜드법'을 제정, 이를 승인함으로써 1949년 4월18일에 영국 연방에서 탈퇴했다.]

 

 아일랜드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다는 것과,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는다는 것은 그동안 독립 투쟁을 했던 원칙파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테디, 레오(프랭크 버크)를 비롯한 조약 찬성론자들은 현실적으로 대영제국과 정면 승부하기는 어려우며 '완전 독립을 위한 점진적 발판'이라는 논리로 평화조약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데미언과 시네이드, 댄 등 원칙파는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모든 산업과 농업을 집단화하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찬반 양편의 논쟁을 비교적 긴 시퀀스를 통해 편파없이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형 테디는 실용성과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외강내유형(外剛內柔型)인 반면, 그에게 큰 힘이 되었던 동생 데미언은 이상적인 외유내강형(外柔內剛型)의 사회주의자로 비친다.

 

 데미언에게 있어 조국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은 타협될 수 없는 단 하나의 목표이다. 영국이 제시한 평화조약은 아일랜드를 분열시키려는 비열한 술수일 뿐이다. 그는 더 나은 아일랜드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그는 영국과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자는 형 테디를 이해하지만 그에게 동의할 수는 없다. 이념의 대립으로 형제는 이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조약 찬성론측인 테디는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군 육군 장교가 되고, 데미언은 이를 거부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조약 반대파 공화국군 IRA에 몸담는다. 결국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데, 바로 '아일랜드 내전(Irish Civil War, 1922~1923)'이라는 집안싸움이다.

 

 드럼을 울리며 거리를 행진하는 영국 육군 뒤로 자유국 정부군 군복을 입은 테디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블랙&탠즈가 물러가니 이제 '그린&탠즈(Green and Tans)'가 왔다고 수군거린다.

 

 한편 조약 반대파 동지들에게 더블린 포 코트(Four Courts)의 항쟁 소식이 들려오자 격노한 이들은 로리(마일즈 호건)의 지휘 아래 게릴라전으로 아일랜드 자유국 군인을 습격해서 무기를 빼앗고, 저항하는 그들을 사살한다. 이때 정부군 간부가 복면을 한 그를 알아보고 "로리, 어떻게 같은 동포를 살해할 수 있느냐?"며 분노한다. 복면을 해도 알아볼 수 있는 옛 동지가 이제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이 처절한 내전!

 

 독립전쟁 당시보다 더 악랄한 전쟁으로 치닫자 테디는 "놈들이 한 놈을 빼내면 우리도 한 명을 데려와야지. 무슨 빌어먹을 군법회의…"이라며 자기들이 공화국파를 저지하지 못하면 영국군이 다시 개입할까봐 전전긍긍한다.

 

 한편 영국 정부와의 평화협정이 조인된 뒤 이루어진 미사에서, 데니스 신부(숀 맥긴리)는 급진파의 협정 반대 움직임과 토지몰수 및 무상분배의 사회주의적 선동을 맹렬히 규탄한다. 데미언이 강론 중간에 일어나 "이 조약은 인민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인민의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며 "가톨릭 교회는 부자들 편에 서서 예외적인 부귀영화를 누리는 집단"이라고 성토한다.

 

 조약 반대파의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군에 대한 습격행위에 대해 테디는 강압적인 수색 및 진압을 지시한다. 이 과정에서 예전에 무장독립운동 당시 자신들을 숨겨주고 식사를 제공했던 민간인들의 집을, 과거의 영국군과 다를 바 없는 폭압적인 방식으로 수색한다.

 

 독립운동 때 같이 싸웠던 영웅이 살인자로, 서로 이름과 얼굴을 알던 동지가 희생자로 전락하여 영국군보다 더 격렬하게 부딪치는 이 잔혹한 내전 장면은 우리나라의 처지와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가장 진하고 처절한 슬픔을 자아낸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까? (다음 호에 계속)

 

▲ 재판을 지켜보는 데미언과 댄.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테디와 지주계급 지원에 반대하는 데미언 사이에 이념의 갈등과 대립이 처음으로 암시된다.

 

▲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 들판길을 중무장을 하고 아일랜드 반란 행진곡을 부르며 행군하는 IRA.

 

▲ 매복해 있던 IRA가 RIC의 호위부대를 공격한다. 작전은 성공했으나 감옥에서 탈출을 도왔던 조니 고건이 사망한다.

 

▲ 영국 육군이 IRA 게릴라전의 보복으로 시네이드 니 설리반의 농장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시네이드의 머리칼을 자른다.

 

▲ 숲속에서 블랙&탠즈의 만행을 목격하던 데미언이 뛰쳐나가려고 하자 테디가 말린다. 그들은 실탄이 다 떨어진 상태여서 속수무책으로 관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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