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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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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알제리 배경 영화(II)-‘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3)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이런 저런 압박에 마히디의 FLN은 가페즈를 떠난다. 사실은 알제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위해 새로운 무기로 무장하여 세력을 재규합하려는 의도로 알제 인근지역으로 잠시 근거지를 옮긴 것이다.

 

 한편 튀니지에서 대량 무기가 유입되어 반란군 약 500명에게 지급될 것이라는 첩보를 접한 멜리에스 장군은 무기가 어디에 보관될 지 모르니 민간인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찾아내라는 지시를 한다.

 

 이에 레스페기 대령은 "우리는 군인이며 경찰이 할 일을 할 수 없다"고 항의하고, 게다가 에스클라비에 대위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다. 멜리에스 장군은 강한 어조로 명령하고, 성공할 경우 승진시켜 주겠다는 달콤한 조건에 내키진 않지만 승낙하는 라스페기.

 

 이윽고 도시는 경찰 대신에 제10공수부대가 통제하면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신분증이 없는 시민이나 허가증이 없는 차량은 통행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이때 장면은 검문소 앞에 몰려있는 군중들을 보여주는데 그 옆 시멘트 벽에 페인트로 그려져 있는 영화포스터가 재미있다. [註: '셰인(Shane·1953)'으로 유명한 앨런 래드(Alan Ladd, 1913~1964) 주연의 1954년 영화 '0점 하의 지옥(Hell Below Zero)'인데 프랑스어 제목인 'L'Enfer au-dessous de zero'로 쓰여있다. 또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 1924~2004)의 이름이 보이는데 영화제목은 잘 보이지 않지만 추정컨대 같은 1954년도 작품인 엘리어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0점 하의 지옥'은 바로 '로스트 코맨드'의 감독인 마크 롭슨의 작품으로, 이 대비 장면을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한 '워터프론트'를 간접적으로 까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둘 다 흑백영화이다.]

 

 외출한 에스클라비에 대위가 카스바 카페의 페티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 길거리 데모 군중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한 여인을 구해준다. 대위는 아니제트 칵테일을 주문하고 대위의 호의로 그녀는 위스키 더블을 주문하는데, 필립은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샤(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모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이샤가 먼저 떠난다. 그 이유는 여자가 남자 뒤를 따라가면 그 남자가 남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사실 그녀는 첫 장면에 나왔던 마히디의 여동생으로 매춘부로 위장한 FLN요원이다.

 

 알제 곳곳에서 폭탄테러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대부분 성냥갑에 장치한 교묘한 시한폭탄에 의해서였다. 이에 공수부대원들이 테러범을 색출하기 위해 경찰서를 급습하여 극비서류인 개인신상 파일을 탈취해간다.

 

 한편 필립과 아이샤는 해변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다. 아이샤는 필립 대위의 사랑과 우정을 이용하여 검문을 받지 않고 카스바에 FLN대원들이 사용할 폭발물을 거리낌 없이 전달하게 된다.

 

 경찰의 비밀파일을 취득한 공수부대는 저항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심문한다. 어느 날 봄베 가 22번지에 사는 벤 사드의 이름과 사진을 찾아내 그를 체포한다. 마히디의 이웃인 치과의사 알리 벤 사드는 심문 중 수갑 채인 손으로 뒷호주머니에서 기폭제가 든 성냥갑을 끄집어내 얼른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이때 봄베 22번지에 살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을 연행해 오는데 거기엔 아이샤도 끼어있다. 다들 내보내고 아이샤를 취조하는 레스페기 대령과 브와퍼라 대위. 이때 브와퍼라가 직업이 매춘부라고 우기는 아이샤의 손목시계를 보고 이런 고급시계를 어떻게 매춘부가 차고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옷도 프랑스 여자들이 즐겨입는 상표인 'Jean Ladies, Paris'제의 고급옷을 입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가 길에서 주웠다고 하자 옷도 그랬냐며 옷을 찢어버리는 대위. 그는 유럽인처럼 보이는 미인 아랍여자들을 이용하여 FLN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완강히 부인하던 아이샤가 엉겁결에 "'대위님'에게 모두 말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에스클라비에 대위와 아까 아이샤의 약혼자라고 말한 남자 모두 불러오라고 명령하는 라스페기 대령. 브와퍼라 대위가 이름을 묻자 '마리 앙트와네트'라고 대답하는 아이샤. [註: 마리 앙투와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16명의 자녀 중 15번째로, 프랑스 루이 16세에게 시집갔다가 프랑스 혁명 때 38살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여인이다.]

 

 약혼자라고 둘러댔던 남자가 들어오자 대뜸 그에게 그녀와 키스하라고 명령하자 영문을 모르는 그가 엉거주춤하자 아이샤가 먼저 적극적으로 키스를 한다. 더 진하게 하라고 주문하는데 필립 대위가 들어온다. 그는 대뜸 '아이샤'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낚아채 그의 사무실로 데리고 올라간다.

 

 이때 라스페기 대령이 파일이 없어졌다며 필립 사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그에게 5분 내로 벤 사드와의 관계를 알아내라고 명령한다. 이때 벤 사드가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성냥갑 기폭제가 폭발하고 이 틈을 이용해 탈출하려는 벤 사드가 사살된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편 필립이 아이샤를 추궁하며 본명과 집주소를 묻는다. 이때 브와퍼라 대위가 드디어 유세프가 불었다며 "그녀는 FLN의 중요한 인물이며 필립을 이용해 카스바를 들락거렸고 가방 속에 기폭제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이에 필립은 그녀를 매몰차게 때리지만 자기는 '매춘부'라고 끝까지 고집하는 아이샤!

 

 이때 라스페기 대령은 벤 사드가 죽어 이제 무기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아마도 그 여자는 알 거라고 생각하고 필립에게 가는데… 그때 느닷없이 12구역 헌병대장이 라흘렘 학살 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라스페기 대령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소환장을 보여주곤 오늘밤 7시에 군용기로 파리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에스클라비에 대위를 만난 라스페기 대령은 정치인들이 자기를 노린다며 만일 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기는 죽는다고 절박하게 말한다. 이에 필립은 마히디를 죽이지 않고 생포한다면 은신처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필립 대위는 전우였던 마히디를 살려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FLN의 첩자인 가페즈 시장 비서가 공명심으로 마히디의 명령없이 독단적으로 공수연대 메를 중위 일행 3명을 라흘렘(Rahlem)으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 제10 공수연대는 마히디의 근거지를 알아내기 위해 FLN동조자들에 대한 고문을 자행한다.

 

▲ 느닷없이 나타난 아메드(앙드레 모레알)가 권총 한 자루를 대장 총이라며 내민다. 그러나 마히디(조지 시걸)는 살해 당한 옛 동료 메를 중위의 총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그를 쏴 죽인다.

 

▲ 멜리에스 장군(쟝 세르베)은 무기고를 찾기 위해 민간인 가가호호를 수색하라는 지시를 한다. 내키진 않지만 성공할 경우 승진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조건에 승낙하는 라스페기 대령.

▲ 검문을 받는 알제리인들이 몰려있는 담벼락에 재미있게도 앨런 래드 및 말론 브랜도 주연 영화포스터가 그려져 있다.

 

▲ 카스바에서 길을 가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 매춘부로 위장한 아이샤(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구해주고 페티오에서 음료를 권하는 필립 에스클라비에 대위(알랭 들롱). 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는데…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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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알제리 배경 영화(II)-‘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2)

 

(지난 호에 이어)

 알제리(Algiers)의 수도 알제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마히디. 그러나 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친구인 치과의사 알리 벤 사드(그레구와 아슬란)는 알제리가 독립 저항운동에 불타고 있음을 알린다. [註: 그레구와 아슬란(Gregoire Aslan, 1908~1982)은 '왕중왕(1961)'에서 헤롯왕, 특히 '25시(1967)'에서 미모의 부인 수잔나(비르나 리시)를 가로채기 위해 그 남편인 루마니아인 요한 모리츠(앤서니 퀸)를 허위로 유대인으로 만들어 강제수용소로 보냄으로서 평화롭고 행복하던 한 가정에 비극의 씨앗을 뿌린 경찰서장 도브레스코 역으로 우리와 안면을 튼 배우다.]

 

 그런데 한밤중에 10대의 어린 남동생 샤이브가 통행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벽에다 페인트로 '독립(Independence)'이란 구호를 쓰다가 이를 발견한 프랑스 경찰의 기관총 사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마히디는 프랑스군 복귀를 포기하고 알제리 FLN에 합류하여 게릴라 대장이 된다.

 

 한편 바스크 농촌 출신인 라스페기 대령은 전투에서 훌륭한 지휘관이지만 상사들에 대한 정치력이 부족하여 이 영화의 제목처럼 '로스트 코맨드', 즉 '지휘권을 박탈' 당하고 대기상태가 된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담배, 술 등 밀수업을 하는 동생 및 어머니와 해후(邂逅)하는데, 어머니(마리 버크)는 반가우면서도 대뜸 "잘 낳아줬는데 아직 장군도 못 됐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반문한다.

 

 다른 한편 파리에 도착한 에스클라비에 대위는 클레어폰 소령의 동상제막식에 참석해 미망인 나탈리 클레어폰 백작부인(미셸 모르강)을 만나 사단의 사서로서 휴가 기간 중 소령에 대한 전기를 쓰겠다고 약속하면서 라스페기 대령의 지휘권 복직을 로비한다.

 

 에스클라비에의 도움으로 나탈리 백작부인을 만나는 라스페기 대령. 처음엔 군인처럼 쌀쌀맞던 부인은 "부인같은 엘리트 병사가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농촌 출신다운 꾸밈 없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 드디어 유수한 군인집안인 그녀 삼촌의 배려로 라스페기는 제10 공수연대의 지휘권을 얻는다.

 

 그런데 공수연대는 알제리 12사단에 배속되며 그 책임자가 이를 갈던 멜리에스 장군이 아닌가. 멜리에스 장군은 라스페기에게 이번이 군대생활의 마지막 기회이며 맡은 연대가 실패하면 군대생명은 끝장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이에 "행운보다는 전략을 믿는다"고 말하는 라스페기!

 

 그날 밤 백작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라스페기 대령은 그녀와 통정(通情)을 하고는, 이번 임무가 성공하여 별을 달면 결혼하겠다고 제의하자 이에 동의하는 백작부인!

 

 라스페기 대령은 에스클라비에 대위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전쟁의 옛 전우들을 모으고 포슈(Foch) 캠프에서 실전과 같은 속전속결의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새롭게 편성된 강력한 제10 공수연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마히디 중위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알제리에 도착한 라스페기 대령의 공수연대는 피에느와르인 농장주 등을 보호하기 위해 가페즈에 배치된다. 보고는 가페즈 시장(자크 마랭)에게 직접 하라고 명령하는 멜리에스 장군. 그러나 이들이 가페즈로 배치되는 과정에서 알제리 FLN의 매복공격을 당해 예기치 않은 치열한 첫 전투를 치른다. [註: 시장은 알제리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피에느와르(pied noir)의 정체성(正體性)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자크 마랭(Jacques Marin, 1919~2001)은 스탠리 도넌 감독의 '샤레이드(1963)'에서 프랑스 경찰수사관 역, '대열차작전(The Train·1964)'에서 자크 역장 역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드디어 마히디의 거처를 알아내고 방문하는 라스페기 일행. 그러나 집은 화재가 났는지 몽땅 타버렸고 마히디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때 이웃집인 봄베 가(Rue de la Bombe) 22번지에 산다며 자신을 벤 사드라고 소개하는 치과의사가 다가와서 연유를 설명한다.

 

 마히디의 아버지는 버스 회사를 운영했는데 택시회사를 소유한 행정관이 벌금과 과중한 세금을 물게 했다며 회사를 헐값에 팔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집을 이렇게 파괴해 버렸다고…. 벤 사드에게 마히디를 보면 인도차이나 친구들이 방문했다고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나는 라스페기 일행.

 

 알제리무장세력은 프랑스 경찰서의 무기고 등을 습격하여 노획한 무기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전직 프랑스 공수부대 장교였던 마히디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라스페기 대령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적이 인도차이나에서 같이 싸운 전우였던 마히디 중위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한편 마히디는 "약속은 없다. 단지 명령만 있을 뿐"이라며 그의 반대파로 하여금 제10공수연대의 정체를 알아오라고 명령한다.

 

 이즈음 FLN의 첩자인 가페즈 시장의 비서가 공명심으로 마히디의 명령없이 독단적으로 공수연대 메를 중위(모리스 사르파티) 일행 3명을 라흘렘(Rahlem)으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뒤늦게 도착한 에스클라비에 대위와 브와퍼라 대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에스클라비에는 "아무도 라흘렘 마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내가 대장이며 이것은 명령이다"며 권총을 겨누는데… 브와퍼라 대위는 복수를 하겠다며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로 쳐들어가 알제리 민간인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보복살해한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 온갖 테러와 학살과 고문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음날 라스페기는 '이건 복수가 아니라 무의미한 학살이다. 전장을 학살터로 바꿔버렸다니 한심한 놈들!'이라며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그러나 라스페기 대령은 이왕 벌어진 상황을 이용하여 알제리무장세력에 대해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에스클라비에 대위와 대립한다.

 

 제10 공수연대는 마히디 저항세력을 잡기 위해 동조자들에 대한 고문을 자행한다. 이로써 마히디의 근거지를 알아낸 공수부대는 419고지로 이동한다.

 

 한편 마히디를 배반했던 아메드(앙드레 모레알)가 느닷없이 탈취한 무기들을 갖고와서 권총 한 자루를 대장 총이라며 내민다. 이를 받은 마히디가 살해 당한 옛 동료 메를 중위의 총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그를 쏴 죽인다. (다음 호에 계속)

 

▲ 마히디 중위(조지 시걸)가 치과의사 친구인 알리 벤 사드(그레구와 아슬란)와 포옹하고 있다. 오른쪽은 동생 아이샤(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 나탈리 클레어폰 백작부인(미셸 모르강)을 만난 라스페기 대령(앤서니 퀸)은 "부인같은 엘리트 병사가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 지휘권을 회복한 라스페기 대령은 에스클라비에 대위(알랭 들롱)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전쟁의 옛 전우들을 규합한다.

 

▲ 라스페기 대령은 포슈(Foch) 캠프에서 실전과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새롭게 편성된 강력한 제10 공수연대를 만들어낸다.

 

▲ 가페즈로 오는 도중 알제리 FLN의 매복공격을 당해 치열한 첫 전투를 치른 라스페기 대령은 가페즈 시장(자크 마랭)에게 항의하는데 …

 

▲ 집은 몽땅 불타버렸고 마히디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때 이웃집에 산다며 자신을 알리 벤 사드라고 소개하는 치과의사(그레구와 아슬란)가 다가와서 연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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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알제리 배경 영화(II)-‘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1)

 

 우리는 앞에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군사적 절대우위의 프랑스가 1954년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이 이끄는 베트남독립동맹, 즉 월맹(Viet Minh)에게 패전함으로써, 프랑스는 급기야 그 해 제네바에서 휴전 협정을 맺게 되었음을 보았다.

 

 또한 이 사실이 똑같이 프랑스 식민지인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알려지자 알제리인들은 1954년 11월1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을 결성하여 알제리의 독립을 선포하고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하여 1954~1962년간 알제리 전쟁(Algerian War)이 일어났음을 보았다.

 

 8년 간의 전쟁의 결과로 알제리는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가 1830년 아프리카 횡단정책의 발판으로 알제리를 식민지화 한 후 132년 만에 독립하였으며, 프랑스는 석유와 가스 등 막대한 국부(國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 프랑스 제4공화국(1946~1958)이 붕괴되고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이 이끄는 제5공화국이 탄생했다.

 

 아무튼 알제리 독립전쟁은 현대 알제리 역사의 시작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탈식민지화의 대세와 흐름을 무시하고 프랑스군의 게릴라전, 민간인에 대한 테러·강간·고문 행위 등 복잡한 성격을 띠고 벌어졌던 전쟁이었다.

 

 위의 일련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가 '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이다. 1966년 컬럼비아 픽처스 배급. 감독 마크 롭슨. 출연 앤서니 퀸, 알랭 들롱, 조지 시걸, 미셸 모르강, 모리스 로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쟝 세르베 등 호화 캐스팅. 러닝타임 129분.

 

 이보다 앞선 1964년에 나온 뉴웨이브 감독 자크 드미의 뮤지컬 로맨틱 드라마 '쉘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의 배경이 알제리 전쟁 시기이다. 20세의 남주인공 기이 푸셰(니노 카스텔누오보)가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2년의 복무를 마치고 다리를 부상 당해 고향 쉘부르로 돌아오지만 그동안에 사랑했던 연인 쥬느비에브(카트리느 느뇌브)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떠난다는 비극적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알제리 전쟁 참전으로 인해 궁핍해진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줄 뿐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프랑스 영화로서 알제리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은 2007년에 개봉된 "친밀한 적(L'Ennemi intime)"이 사실상 최초이지 싶다.

 

 '로스트 코맨드'는 프랑스 소설가 쟝 라테기(Jean Larteguy, 1920~2011)가 1960년 출간한 소설 '백부장(百夫長)'(Les Centurions)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프랑스 공수부대가 겪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및 알제리 독립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는 정작 프랑스에서는 10년 동안 상영되지 못했다. 아마도 패전의 역사를 되새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의 시작은 1954년 5월7일 북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 상당히 인상적인 전투 장면이 전개된다. 프랑스 유격대 대장 피에르 라스페기 대령(앤서니 퀸)은 공산주의인 베트민(월맹) 정규군의 마지막 공격을 예상하고 본부의 멜리에스 장군(쟝 세르베)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요청한다. [註: 쟝 세르베(Jean Servais, 1910~1976)는 벨기에 출신 배우로 특히 '프랑스 범죄영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줄스 다신 감독의 유명한 "리피피(Rififi·1955)"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그러나 멜리에스 장군은 그의 부관인 클레어폰 소령이 지휘하는 소수의 프랑스 공수부대를 단 한 대의 비행기에 달랑 태워 파견한다. 설상가상으로 라스페기 부대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클레어폰 소령을 비롯한 공수부대원들은 착지(着地)를 하자마자 전멸 당한다.

 

 이에 라스페기 대령은 멜리에스 장군이 단 한 대의 비행기 정도의 소수 병력만 보낸 사실과, 더 나아가 디엔비엔푸 전쟁 패배의 전적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다.

 

 이미 전세는 기울어 베트민 정규군의 대규모 공세로 겨우 살아남은 수많은 공수부대원들이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라스페기 외에 포로로 붙잡힌 프랑스 군인 중엔 역사학자로 사단의 사서(史書)인 필립 에스클라비에 대위(알랭 들롱), 인도차이나 태생인 브와퍼라 대위(모리스 로네), 외과의사인 디아 대위(고든 히스) 그리고 알제리 출신인 벤 마히디 중위(조지 시걸) 등이 있다. 특히 마히디는 베트민 포로수용소장(버트 곽)이 그가 같은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인이므로 특혜대우를 제의하지만 이를 거부한다.

 

 그들은 진흙탕 길에 처박힌 지프차를 끌어내라는 베트콩의 명령에 할 수 없이 응하면서, 라스페기 대령은 슬쩍 차 열쇠를 빼내 행군 도중 흙탕길에 버려 골탕을 먹이는데….

 

 라스페기의 영도 하에 이들은 뜻을 같이 하고 그해 7월22일 제네바 평화 협정에 의해 전쟁이 종료되어 풀려난다. '인도차이나 해방(Vive la paix en Indochine)'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베트콩 포로수용소장이 "프랑스가 마침내 진실을 깨닫고 휴전협정을 맺었다"며 "이번 실수를 거울 삼아 알제리를 탄압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드디어 프랑스 구역으로 넘어오니 방역캠프에서 DDT 소독을 실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라스페기 일행은 자유를 만끽하며 이를 거부하자 책임자는 상급부대에 보고하겠다고 하는데….

 

 프랑스군을 태운 선박이 마르세유로 귀환하던 도중 알제(Alger)에 정박하자 마히디 중위는 휴가를 받아 귀향한다. 그가 "친구들의 용기에 힘을 얻는다"는 아랍 속담을 언급하고 준비된 지프차를 타고 떠나자 그를 배웅하던 전우들이 "적의 용기가 너의 명예를 세운다"는 중국 속담도 있다고 말한다. [註: 여기서 마히디의 전우애와 그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은유가 숨어있다. 말하자면 디엔비엔푸에서 같이 싸운 전우들이 알제리인과 프랑스인으로 나뉘어져 서로 적으로 알제리 전쟁에서 만나게 된다는 프랑스 현대사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1966)' 영화포스터.

 


▲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레스페기 부대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클레어폰 소령 지휘하의 공수부대원들은 착지(着地)를 하자마자 전멸 당한다.

 


▲ 마히디 중위(조지 시걸·왼쪽)는 베트민 포로수용소장(버트 곽)이 그가 같은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인이므로 특혜대우를 제의하지만 이를 거부한다.

 


▲ 진흙탕에 처박힌 지프차를 밀라는 베트콩의 명령에 할 수 없이 응하면서 라스페기 대령은 슬쩍 차 열쇠를 빼내 흙탕길에 버려 골탕을 먹이는데….

 


▲ 프랑스군을 태운 선박이 마르세유에 도착하자 이를 환영하는 군악대. 마히디 중위는 중간에 알제에서 내려 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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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6·끝)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불을 붙이는 프랑스군. 이때 자파르가 할리마에게 '이렇게 죽는 건 헛되다'고 말하고 매튜 대령에게 "이 집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가겠다"고 다급히 알리는데….

 

 장면은 자파르와 매튜 대령이 탄 차 속. 자파르가 말한다. "나를 산 채로 잡아서 만족하는군. 그러나 후회할 거야. 별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매튜 대령이 말한다. "짐 던 데 만족하고 있어. 죽이고 싶진 않았어. 전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없어. 게임은 끝났어!"

 

 이때 할리마가 울면서 항의한다. "악마, 위선자! 아냐, 아직도 알리 라 프안트가 카스바에 있어!"

 

 장면은 알리의 은신처를 보여준다. 알리는 자신과 마무드, 하시바가 있는 자리에서 꼬마 오마르에게 내일 폭탄을 설치하는 일을 지시한다. 그런데 새벽에 거사를 치르기 전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프랑스군들. 마무드의 아내 파티하가 그들이 숨은 타일벽에 붙어있는 침대에 위장하기 위해 얼른 드러눕는다. 그러나 붙잡혀 밖으로 끌려 나온다. 임신한 상태여서 몸가누기가 불편하다.

 

 장면은 타일벽 속에 숨어있는 네 사람을 보여준다. 첫 장면의 바로 그 모습이다. 고문에 못이겨 누설한 늙은 밀고자의 고뇌하는 모습이 교차된다. [註: 늙은 밀고자는 날품팔이인 라크난 압둘라(Laknan Abdullah)로 세 자녀를 두고 카스바의 테베 가 8번지에 살았다. 알제리 전쟁 중 프랑스군에 의해 FLN요원으로 지목되어 고문에 못이겨 알리 라 프안트의 은신처로 안내했다. 그런데 정작 은신처를 알려준 사람은 프랑스군 측에서는 사디 야세프였다고 주장하고, 사디 야세프는 조라 드리프가 알려주었다고 했으나 본인들 둘다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프랑스군들은 타일벽 앞에 폭탄을 설치한다. 매튜 대령이 "30초를 주겠다. 어쨌든 너는 졌다!"고 선언한다. 결국 현장에 4명의 군인을 남겨놓고 모두 자리를 떠난다.

 

 장면은 건물 바깥 카스바의 하얀 지붕들 위에 프랑스군인들과 이를 지켜보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쫙 깔렸다. 시민들은 모두 합장 기도를 하고 있다.

 

 카를 장군이 현장에 도착한다. 네 명의 군인도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제 폭파 준비가 완료되었다.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아기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드디어 건물이 폭파된다.

 

 그 30초 동안 은신처에 숨어 공포에 질린 13세 소년 '작은 오마르'와 하시바, 마무드와 알리 라 프안트 등 마지막 4명의 반군은 끝까지 버티다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장렬히 산화(散華) 한 것이다. [註: 이 중 유일한 여성인 하시바 벤 부알리(Hassiba Ben Bouali, 1938~1957)는 리세이 들라크로와 고등학교 때 스카우트 운동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에 시달리는 알제리인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게 되어 16살 때인 1954년 알제리 대학의 '알제리 무슬림 학생 총연맹'에 가입하여 FLN요원이 되었다. 1957년 10월8일 이 폭발로 그녀는 꽃다운 나이 19세에 사망했다. 그녀는 배우 못지 않은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빈민가의 잡범 출신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일자무식 알리가 혁명군에 가담하면서 최후를 맞는 순간까지를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피라미드형으로 조직된 반군의 지도부는 괴멸되고 알제리 FLN(인민해방전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7년 10월의 일이다. [註: 필립 매튜 대령은 실제 알제리 제10 공수사단장 자크 마쉬(Jacques Massu, 1908~2002) 장군과 그의 부하였던 마르셀 비제아르(Marcel Bigeard, 1916~2010) 중령과 로저 트랑키어(Roger Trinquier, 1908~1986) 중령의 복합적 모델이다. 마쉬 장군은 '르 몽드'지에 "고문은 1957년 당시 알제리에서는 흔한 일이었다"며 공수부대에 의한 수사과정 중 발생한 고문과 강간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한편 비제아르 장군은 알제리 전쟁 중 고문을 '필요악'으로 정당화했으나 그 자신은 고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죽을 때까지 부정하고 2010년 94세로 사망했다.]

 

 현장을 떠나는 카를 장군이 매튜 대령에게 "이제 촌충의 머리가 없어졌지. 만족하는가 매튜? FLN은 이제 알제리에서 없어졌어."

 

그렇다고 대답하자 "여기가 알제리 전부는 아니니 나머지 놈들을 잡으러 산으로 옮겨야지. 전쟁은 산이 더 쉽지."라고 말하는 장군. [註: 실제 비제아르 중령은 FLN 소탕을 위해 1957년 4월에 애틀라스 산(최고봉 4167m)까지 추격하여 300여 명의 주누드(아랍계 농민군) 중 100여 명을 사살하는 악바리로 그의 상관인 마쉬 장군은 '애틀라스 산의 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956년 6-9월 중 두 번에 걸쳐 FLN 암살단에 의해 가슴에 세 발의 총을 맞았으나 모두 심장을 가까스로 비켜나가 살아남을 만큼 건장한 체구였다고 한다.]

 

 내레이션: 1960년 12월11일. 전쟁은 산에서 지속된 채, 2년 동안 잠잠하다가 알 수 없는 동기로 동요가 다시 터졌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이유와 상태를 모른다.

 

 장면은 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하고, 이를 저지하는 프랑스군을 보여준다. 그리고 밤새 급조한 듯한 헝겊, 수건, 옷가지 등에 아무렇게나 만든 초승달과 별의 알제리 국기가 물결을 이룬다. '자유를 찾아 행진하자. 알제리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는 프랑스군.

 

 1960년 12월21일 군중봉기 마지막 날. "독립을, 긍지를, 자유를 원한다!"며 괴성과 함성을 지르는 데모 군중. 그 중에는 앞에 나왔던 세 여인의 얼굴과 마무드의 아내 파티하도 보인다. 항쟁은 2년 더 지속되었다.

 

 알리 라 프안트 등 10대, 20대였던 네 명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알제리인들은 '전쟁'에서는 졌지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그들이 죽은지 5년 후인 1962년 7월2일 꿈에 그리던 자유독립을 쟁취하였다. 이는 프랑스가 전술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역사의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알제리 전쟁이 끝난 지 37년 만인 1999년 6월에 프랑스 의회는 이것이 '전쟁'이었음을 인정하였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얻어진 자유·평등·정의라는 미명 아래 식민 지배 및 억압, 고문, 강간을 정당화 했던 프랑스는 문명국으로서의 민낯을 드러냈을 뿐이며, 꼼수같은 '선택적 청산'으로는 알제리인들의 아픔과 슬픔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교묘한 논리로 회피해온 일본의 과거 청산에 대한 타산지석이다. (끝)

 

▲ 꼬마 오마르로 하여금 폭탄을 설치하는 거사를 치르기 전 아침 차를 마시고 있는 사이에 프랑스군들이 들이닥친다.

 

▲ 프랑스군들은 타일벽 앞에 폭탄을 설치한다. 매튜 대령이 "30초를 주겠다. 어쨌든 너는 졌다!"고 선언한다.

 

▲ 타일벽 속에 숨어있는 10대, 20대의 네 사람(좌로부터 무마드, 하시바, 꼬마 오마르, 알리 라 프안트)은 최후까지 버티다 장렬하게 산화한다. 1957년 10월8일이었다.

 

▲ 건물 바깥 카스바의 하얀 지붕들 위에 프랑스군인들과 이를 지켜보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쫙 깔렸다. 시민들은 모두 합장 기도를 하고 여인들은 눈물을 흘린다.

 

▲ 알리 라 퐁 등 네 명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알제리인들은 '전쟁'에서는 졌지만, 그들이 죽은지 5년 후인 1962년 7월2일 꿈에 그리던 자유독립을 쟁취하였다. 역사의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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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5)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리틀 오마르가 차도르를 걸친 여자로 변장한 자파르 일행을 안내한다. 그러나 군화를 신은 발을 보고 제지하는 프랑스 공수부대와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고 자파르와 알리는 가까스로 어느 민간인 집으로 숨어든다. 주인 여자는 "형제여 들어오세요, 신이 도우실 겁니다"며 그들을 우물 속에 숨겨준다.

 

 1, 2, 3 조직이 무너지고 이제 제4조직만 남아있는 상황! 1957년 2월 25일. 경마장에 폭발이 일어나 무수한 관람객이 다치고 죽는데 격분한 프랑스인이 알제리 어린이를 공격한다.

 

1957년 3월 4일. 라르비 벤 미디가 체포돼 기자들의 인터뷰에 나온다. 기자가 질문한다.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폭탄을 운반하는데 여자의 바구니와 핸드백을 사용한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요?"

 

 벤 미디의 대답.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네이팜 폭탄으로 방어력 없는 마을을 공격하는 것이 더 비겁하지 않은가요? 분명히 우리에게 비행기가 있었다면 더 수월했을 겁니다. 우리에게 당신네 폭탄을 주십시오. 그럼 당신네에게 우리 바구니를 주지요."

 

 다음 기자의 질문. 영어로 질문하고 불어로 통역한다. "FLN은 프랑스를 이길 기회가 있는지요?"

 

 벤 미디의 답변. "프랑스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보다 FLN이 프랑스군대를 쳐부술 기회가 더 많습니다."

 

 여기자의 질문. "매튜 대령의 발표에 따르면, 당신은 우연히 체포됐다는데 정말 실수인지요? 왜 드비시 길의 아파트에 있었는지 말해주시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서 잡히지 않길 바랬다는 것입니다."

 

 매튜 대령이 시간이 늦었고 우린 할 일이 있다며 기자회견의 종료를 알린다. 그러자 "그럼 쇼는 끝났소?"라는 벤 미디의 물음에 "역효과가 나기 전에 끝났소"라고 대답하는 매튜 대령.

 

 장면은 프랑스군이 카스바 주민들에게 방송을 통해 호소한다. "폭동자들을 쫓아내라. 폭동조직과 연계를 끊어라. (프랑스)군대가 당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를 믿어라."

 

 이 방송과는 달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체포되고 죽고 부모를 잃은 어린애들은 울고 있고….

 

 별도의 매튜 대령의 단독 기자회견 장면. 한 기자가 묻는다. "벤 미디가 도망 못 치게 손과 발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셔츠로 줄을 만들어 자기 감방에서 창문난간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가요?"

 

 이에 "그는 용기있고 실천성있는 사람이며 그의 사상을 칭찬하고 싶다."고 에둘러 대답하는 매튜 대령.

 

 다른 기자의 질문. "공수부대의 작전의 결과뿐만 아니라 방법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결과는 그 방법의 결과물입니다. 서로 연관이 있지요." 그때 한 기자가 일어서서 단도직입적으로 '고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매튜 대령의 대답. "'고문'이란 용어는 우리 명령에 없습니다. 우리는 경찰방식처럼 정당한 심문을 합니다. FLN은 모든 조직에게 잡혔을 경우 24시간 침묵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FLN이 어떠한 정보도 쓸모없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FLN은 악랄한 집단입니다. 우린 단지 몇몇 문제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미치광이가 아닐뿐더러 가학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인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되레 질문을 하겠습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 머물러야 하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모든 결과를 인정해야 합니다." [註: 1957년 3월4일 알제리 경찰본부에 근무하던 FLN의 첩보원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벤 미디를 체포한 마르셀 비제아르 중령은 심문과정에서 그가 존경할 만한 전사라는 이유로 고문하지 말도록 했는데, 상관인 자크 마쉬 장군이 별 성과가 없자 그를 프랑스의 고문 기술자 폴 오사르스(Paul Aussaresses, 1918~2013) 대위에게 송치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불복한 비제아르는 더 이상 벤 미디를 보호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날 밤에 벤 미디를 처형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오사르스는 벤 미디를 고문한 후 알제에서 18km 떨어진 남부의 어느 농장으로 데려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목을 매달았다. 3월6일 벤 미디가 옷을 찢어 헝겊 줄을 만들어 스스로 목매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자크 마쉬는 벤 미디가 밤 사이에 전기 플렉스줄로 목을 맺기 때문에 시신이 말로병원(Maillot hospital)에 도착했을 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2000년에 오사르스 장군은 벤 미디가 '국가'에 의해 살해됐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벤 미디를 존경했던 비제아르 장군은 프랑스군대가 그를 암살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늘날 벤 미디는 알제리의 국민적 영웅이며 프랑스 식민지주의를 종료시킨 혁명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알제리에서 야만적 고문 체제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만들었던 폴 오사르스는 그의 치명적인 고문 기술을 미국의 CIA와 칠레 피노체트의 비밀 경찰 등에게 전수했다.]

 

 장면은 바뀌어 숱한 알제리인들을 공개적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를 보는 여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물고문, 불고문, 전기고문 등등. 프랑스군인들은 담배를 피우며 미소짓고 있다. [註: 알제리 전쟁 당시 고문은 공공연히 행해졌다. 특히 작은 발전기의 전선을 남녀의 생식기에 연결하여 실토를 할 때까지 전압을 올리는, 이른바 '제제느(gegene)'라는 고문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알제리 전쟁 중 이러한 고문으로 얻은 정보에 의해 제10공수부대는 약 24,000명의 무슬림 용의자를 체포하였고 그 중 약 4,000명이 살해됐는데 완곡하게 '실종'되었다고 발표했다. 고문센터는 알제 교외에 있는 '빌라 세시니' 건물이었다고 한다.]

 

 1957년 8월26일. 라멜, 시 무라드의 은신처를 포위한 매튜 대령은 확성기로 "항복하라.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서면으로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라. 그러면 항복하고 바구니로 총을 내려주겠다"고 대답하는 라멜. 이에 서면약속서를 쓰는 대령과 바구니를 준비하는 라멜.

 

 라멜과 시 무라드는 바구니에 총과 함께 30초짜리 시한폭탄을 넣어 내려 보낸다. 그러나 가까이 오던 매튜 대령이 폭발 직전에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무위로 끝난다.

 

 1957년 9월24일.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서류를 불태우는 자파르와 할리마. 한편 매튜 대령은 자파르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자키아'라는 여인을 은신처로 보내면서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집과 모두를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자파르는 항복하지 않겠으니 폭파하라고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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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7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4)

 

(지난 호에 이어)

 1957년 1월10일. 드디어 프랑스 공수부대가 알제리에 파견된다. 10공수부대의 카를 장군은 알제리 법과 질서 유지, 시민보호, 사유재산 보호를 목적으로 매튜 대령에게 특수 임무를 명한다.

 

 필립 매튜 대령, 1907년 8월5일 보르도 태생. 이탈리아와 노르망디전 참전. 반나치 레지스탕스 멤버. 마다가스카르 수에즈전 참전. 인도차이나, 알제리전 참전.

 

 매튜 대령이 공수부대원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알제리에 40만 아랍인이 있다. 소수파가 테러와 폭력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우리는 공개적으로 지하에서 활동하는 이 위험한 소수파들을 다루어야 한다."

 

 이어서 경찰이 몰카로 촬영한 기록영화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매튜 대령. "기본 전술로써 혁명적 방법을 띠고 있는 이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얼굴 없는 적이고, 여러 부류 사람들이 섞여 있으며 카페든 카스바 골목이든 유럽지구의 큰길이든 어느 곳이나 나타난다. 따라서 신분증 검사는 실효성이 없다."

 

 이제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계속하는 매튜 대령. "조직은 피라미드 구조를 띠며 여러 구역으로 만들어져 각 구역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접촉은 오직 서면이고 한 사람은 3명만 알고 있다. 뽑은 윗사람과 자기가 임명한 두 사람. 그게 우리가 적을 모르는 이유다. 한편 저들도 서로를 모른다. 저들을 안다는 것은 저들을 제거한다는 거다. 피라미드의 조직을 알아내고 집행부를 파헤치는 것! 방법은 심문! 이것이 해답이다."

 

 장면은 바뀌어 카스바의 미로를 보여준다. 그리고 학교, 식당, 이발소, 과일가게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거치면서 뭔가 비밀리에 전달된다.

 

 모든 투사에게: 도시와 산에서의 피나는 투쟁의 2년 동안 알제리 국민은 위대한 승리를 얻었다. 1월28일 월요일. 유엔은 알제리 문제에 대해 회의를 시작할 것이다. 사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우리 전조직은 행동할 것이다. 월요일부터 FLN은 일주일간 총파업을 공고한다. 이 기간 동안 군사행동은 지양될 것이다.

 

 꼬마가 '르 몽드' 신문을 돌리면서 '총파업'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내레이션: 식민주의자들은 유엔 알제리문제의 토론방어에 실패했으며 FLN이 단지 소수민족을 대표하고 있다고 증명하려 할 것이다. 세계 여론은 우리편이다. 우리의 단결을 보여주자. FLN에 의해 천명된 파업을 지지하라. 이 주간 동안은 유럽지구에 근접하지 말라. 카스바를 떠나지 말라. 비밀회의를 하지 말라. 이건 적들을 돕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에게 쉴 곳을 제공하라. 일주일간의 음식과 물을 비축하라.

 

 이때 여러 군상들을 보여주는데 모두 웃음짓는 얼굴들이다. 즉 남녀노소 모두가 환영한다는 뜻이겠다.

 

 한편 매튜 대령이 망원경으로 시내를 살펴본다. 조용하지만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때 배 한 척에 페인트로 칠한 '샴페인을 마시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본 매튜는 즉흥적으로 카를 장군에게 '샴페인 작전'을 펼치겠다고 보고한다.

 

 다른 한편 자파르가 알리에게 라르비 벤 미디를 다른 은신처로 모셔가라고 명령한다. FLN의 총수장인 벤 미디는 안내하는 알리에게 그의 소신과 신념을 얘기해주며 "우리가 빌미를 줬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대놓고 아주 심하게 공격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전쟁과 테러 등 폭력행위는 처음에는 유용하겠지만 결코 승리를 이끌지 못한다"며 "국민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파업의 목적은 우리 힘을 보여줘 알제리 국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혁명이란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지속하기는 더 어렵고 승리하기는 턱없이 힘들다. 그러나 이건 전진이야.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말 어려운 시작이지. 아직 할 일이 많아…." [註: 라르비 벤 미디(Larbi Ben M'hidi, 1923~1957)는 FLN 창설 6멤버 중 한 사람으로 제5조직(오랑 지역 무장군)을 담당하였고, 1955년 11월2일 사디 야세프를 알제리 자치구(ZAA) 담당으로 지명했던 인물이다. 1956년 8월20일 비밀리에 모여 알제리의 독립에 대한 골격과 새로운 조직기구를 만든 이른바 '수맘회의(Soummam conference)'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알제리 전쟁을 이끈 '조정 구현 위원회(CCE)'의 마지막 수장이었다. 알제리 전쟁 중 2천 명의 프랑스 공수부대가 투입되자 그는 카스바의 은신처를 바꿔가며 한 곳에 이틀 이상 머물지 않았다. 벤 미디는 "혁명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장면은 하얀 지붕과 모스크, 항구 등 카스바의 모습을 원경으로 보여주다가 근경으로 시내 곳곳에 무장한 프랑스군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수부대가 가가호호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 FLN 요원으로 의심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여 그 조직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양국간 프로파간다 경쟁이 치열하다. "프랑스는 여러분의 조국입니다. FLN은 일하지 말라 하며 여러분을 굶기고 빈곤하게 만듭니다. FLN의 요구에 반대하세요."

 

 "FLN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FLN은 당신 편입니다."

 

 1957년 2월5일. 파업 마지막날. 강제로 상점 문을 열게하는 프랑스군.

 

 내레이션: UN총회는 절대다수를 얻지 못한 채, 알제리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기로 의결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유엔은 유엔 헌장의 취지에 따라 평화적이고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때 프랑스 군악대가 골목길을 누비며 행진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거리에 나온 아이들에게 과자와 빵을 나눠준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를 거절한다.

 

 장면은 메튜 대령 상황실. 칠판에 그려진 FLN의 피라미드 조직에 그동안 파악된 조직원의 이름들이 적혀있다. "파업이 끝나도 달라진 것은 없다. 임무는 같다. 우리는 24시간 내 카스바를 점령해야 한다. 사람 몸속의 촌충은 몸뚱이를 잘라내도 머리가 살아있는 한 무한정으로 다시 자라고 번식하지. FLN도 같은 조직이야. 머리가 집행부의 몇 사람이지. 수뇌부가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는 헛수고야. 그들 중 4명이야. 시 무라드, 라멜, 자파르, 그리고 알리 라 프안트!"

 

 한편 포위망은 좁혀오고 하나 둘 체포되자 자파르는 흩어져서 은신처를 바꾸고 접촉루트를 다시 세우기를 제안한다. 체포된 자와 죽은 자들 그리고 우리 체제를 아는 사람들을 대체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매튜 대령(장 마르탕)이 공수부대원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FLN의 피라미드 조직을 알아내고 집행부를 파헤치는 것! 방법은 심문! 이것이 해답이다."

 

▲ 매튜 대령이 망원경으로 카스바 시내를 살펴본다. 조용하지만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 FLN 총수장 라르비 벤 미디는 알리에게 말한다. "…혁명이란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지속하기는 더 어렵고 승리하기는 턱없이 힘들다…"

 

▲ 무장한 프랑스 공수부대는 가가호호 FLN 요원으로 의심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여 그 조직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 리틀 오마르(모하메드 벤 카쎈)가 차도르를 걸친 여자로 변신한 자파르 일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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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1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3)

 

(지난 호에 이어)

 1956년 7월 20일 11시20분. 한 아랍여인이 검문차 몸수색을 하는 프랑스 경찰에게 만지지 말라며 고함을 지르자 혼겁한 경찰은 그냥 통과시키는데, 그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나 키스하는 척 하면서 숨겨온 권총을 전달하고 그 남자는 페티오에 앉아 있는 경찰을 등 뒤에서 사살한다.

 

 11시50분. 붐비는 시장통. 호객을 하던 과일노점상 남자가 상자 속에 숨겨둔 총으로 순찰중인 경찰을 등 뒤에서 사살한다. [註: 핸드헬드 카메라의 사용도 영화의 사실감을 더해주지만, 때로는 카메라의 초점을 일부러 흐릿하게 찍는다든지, 제멋대로 줌인, 줌아웃을 사용하는 장면들 역시 극 중 사실감을 더하는 요소들이다.]

 

 13시30분. 아랍인 젊은이가 프랑스 경찰을 자꾸만 뒤따르자 경찰이 몸수색을 하곤 '꺼지라'고 말하는데, 그 젊은이는 쓰레기통에 숨겨둔 권총을 끄집어내 그 경찰을 쏘아 죽이고 총을 다시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망친다. 이와 같이 알제리남자들은 교묘하게 총을 숨겨놓고 절대로 몸에 지니지는 않는다. 총의 운반은 대신 부르카(burkas)를 입은 여자들이 담당했다.

 

 무장경찰이 동원된다. 이때 마침 프랑스인(피에느와르) 거주지역에 있던 한 늙은 알제리인 노동자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연행된다. 곧 밤이 되고 통행금지 시간인데 프랑스 경찰이 아랍인 구역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범인으로 잡은 늙은 노동자가 사는 집 앞에 네이팜 폭탄을 장치하여 쑥대밭으로 만드는 프랑스 경찰들….

 

 다음날 이 폭발로 카스바의 게딱지 집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많은 무고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이 죽어 구조대원들과 시민들은 울분을 삼키지 못한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알제리인들은 알리의 선동에 의해 항의행진을 하는데 자파르가 보낸 소년 '작은 오마르'가 알리에게 이러다간 군대에게 다 죽는다며 나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윽고 자파르가 직접 나서서 'FLN이 꼭 복수하겠다'고 설득해서 데모는 진정된다.

 

 장면은 바뀌어 세 명의 알제리인 여자가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용모와 의상을 프랑스 여자처럼 꾸민다. 이윽고 자파르가 들어와서 시한폭탄 부품이 든 손가방 세 개를 나눠준다. 그들은 카스바 외곽 지역에 폭탄테러의 임무를 부여받고, 폭탄 조립을 위해 수산시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탈렙을 접촉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프랑스 여자로 변장한 할리마(푸시아 엘 카데르)가 무난히 검문소를 통과한다. 아이를 데리고 간 다른 여인도 무사히 통과한 후 한 노인에게 애를 맡긴다. 한편 파티아(사미아 케르바쉬)도 경찰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유만만하게 검문소를 통과한다.

 

 세 여자는 수산시장에 집결하여, 기다리고 있던 탈렙이 시한폭탄을 조립한 후 먼저 할리마가 출발하는데 모두 행운을 빈다. 그녀는 미셀레 가의 카페로 간다. 시계가 4시36분을 가리키고 있다. 붐비는 실내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어린애도 있다. 들고 온 핸드백을 카운터 밑으로 밀어넣는 할리마. 다시 시계를 본다. 5시36분.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다. [註: 미셀레(Michelet) 가에 폭탄을 설치한 할리마는 실제 조라 드리프 비타트(Zohra Drif Bitat·88)로 알제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당시 22세의 변호사였다. 1956년 9월30일 이 폭발로 젊은 프랑스 여성 3명이 죽고 수십 명의 성인과 어린이가 다쳤다. 조라는 1957년 9월24일에 사디 야세프와 함께 체포되어 다음해 8월 군사재판에서 테러리즘으로 20년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62년 해방과 함께 샤를 드 골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감옥에 있는 5년 동안 법률공부를 계속하여 형사담당 변호사가 되었고, 알제리 국민의회의 최초 여성위원으로 선출되어 부의장으로 15년간 봉사했다. 1962년 알제리 유명정치인 라바 비타트(Rabah Bitat, 1925~2000; 1978년 12월27일~1979년 2월9일간 알제리 대통령 역임)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1954년 11월1일부터 FLN의 일원으로 초지일관 "우리는 프랑스인들이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군대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주장했다.]

 

 한편 디슬리의 밀크 바 카페로 간 파티아도 한참 춤을 추고 있는 피에느와르 젊은이들 틈에 끼어있다가 슬며시 쥬크 박스 옆에 핸드백을 밀어넣고 밖으로 나간다. [註: 실제 밀크 바 카페(Milk Bar Cafe)에 폭탄을 설치한 이는 사미아 라크다리(Samia Lakhdari)로 3명이 죽고 50여 명이 다쳤다. 1956년 9월 이 임무를 위해 사디 야세프에 포섭되었으나 이 사건 이후 그녀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또 다른 여인은 모리태니아 건물의 프랑스 항공사 카운터로 간다. 파리행 에어프랑스 432편이 20분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시계가 5시41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녀도 대합실 의자 밑에 가방을 밀어놓고는 공항 밖으로 나온다. [註: 이 임무를 맡은 실제 인물은 쟈밀라 부히레드(Djamila Bouhired·87)이며 사디 야세프의 조력자로 활동했다. 에어 프랑스 카운터에 설치한 폭탄은 불발되었지만, 이보다 앞선 7월에 알제리 여성 자유투사인 당시 19살의 쟈밀라 부아자(Djamila Bouazza, 1938~2015)와 함께 카페에 폭탄을 설치하여 11명이 사망했다. 부히레드는 체포돼 재판에서 길로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이때 '악마의 변호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프랑스 변호사 자크 베르제스(Jacques Verges, 1925~2013)가 자원하여 국내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모로코 왕자 라일라 아예샤가 당시 르네 코티 프랑스 대통령을 접촉함으로써 비로소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그녀는 1962년까지 복역하다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1963년에 두 사람은 그 인연으로 결혼하여 슬하에 남매를 두었으나 1970년에 이혼했다. 그녀는 알제리 독립투쟁뿐만 아니라 알제리 여성협회장을 지내면서 여성인권 투쟁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윽고 세 군데에서 동시에 폭발사건이 일어나자 프랑스 경찰은 혼비백산 경악한다. 온 거리가 아비규환이고, 양국 간에 벌어진 테러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탈리오의 법칙으로 대응하는 양국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여유가 없다.

 

 선동적이며 급진적이고 무자비하게 테러에는 테러로 맞서는 장면들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이 영화가 한국에는 40여 년이 넘은 2009년에서야 개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 아랍인 젊은이가 프랑스 경찰을 자꾸만 뒤따르자 경찰이 몸수색을 하곤 '꺼지라'고 말하는데, 그 젊은이는 쓰레기통에 숨겨둔 권총을 끄집어내 그 경찰을 쏴죽이고 도망친다.

 

▲ 프랑스 경찰들이 범인으로 잡은 늙은 노동자가 사는 집 앞에 네이팜 폭탄을 장치하여 많은 무고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이 죽어 알제리 시민들은 울분을 삼키지 못한다.

 

▲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알제리인들은 알리의 선동에 의해 항의행진을 하지만 자파르가 보낸 꼬마 오마르가 알리에게 이러다간 다 죽는다며 그만 두라고 당부한다.

 

▲ 수산시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탈렙이 시한폭탄 타임세팅을 해주고 있다. 할리마(푸시아 엘 카데르)가 가장 먼저 출발한다.

 

▲ 머리를 자르고 용모와 의상을 프랑스 여자처럼 꾸민 세 여자는 폭탄테러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좌로부터 파티아, 쟈밀라, 할리마. (오른쪽 사진) 파티아가 경찰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바리케이드가 쳐진 검문소를 여유만만하게 통과한다.

 

▲ 세 군데에서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자 프랑스 경찰은 혼비백산 경악한다. 온 거리가 아비규환이고, 양국 간에 벌어진 테러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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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4
알제리 배경 영화 (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2)

 

(지난 호에 이어)

 민족해방전선(FLN) 강령 1: 알제리 동포들이여! 우리는 식민주의통치에 대항한다. 우리 목표는 독립이며 알제리 국가의 재건설이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알제리인의 존엄 회복 및 종교·인종에 관계 없이 기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유혈사태를 막고자 우리는 프랑스에 알제리 자결권 협상을 제의한다. 알제리 동포여, 조국을 지키고 자유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나아가라 형제여! 단결하라! 무장하라!

 

 알리 암마르(Ali Ammar, 1930~1957), 1930년 1월 15일 밀리아나 라 프안트(La Pointe, Miliana) 출생. 별명 알리 라 프안트. 노동자, 야바위꾼, 권투선수로 주직업 없음. 군에서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했고, 1942년 반사회죄 재활 2년 형으로 알제리 소년원을 거쳐, 1944년 폭행죄 2년을 선고받고 오랑 소년원에 있었으며, 1949년 공무집행 경찰 폭행으로 알제리 법원에서 8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이와 같이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던 그는 실직 상태의 문맹인데다 공공기물 파괴, 치안문란 행위, 매춘 알선, 공무 집행 방해 등 잡범으로서의 범죄경력이 화려했다.

 

 어느 날 야바위를 하다 경찰에 들켜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알리는 자신을 넘어뜨리고 조롱하는 프랑스 남자와 드잡이를 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알라 신은 위대하다! 알제리 만세!"를 외치며 끌려가던 정치범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것을 감방 창을 통해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지켜본 것이다. [註: 이 감옥은 알제에 있는 세르카지 감옥(Serkadji Prison)으로, 당시에는 바버루스 감옥(Barberousse Prison)으로 불렸으며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58명이 길로틴으로 처형됐으며 장차 역사박물관으로 개조될 예정이라고 함.]

 

 그로부터 5개월 후 석방된 알리는 어느 소년(모하메드 벤 카쎈)이 전해준 편지를 못 읽어 그로 하여금 대신 읽게 한다. [註: 이 소년의 별명이 '작은 오마르(Petit Omar)'로 본명은 오마르 야세프(Omar Yacef, 1944~1957). 그는 사디 야세프의 사촌으로 알리 라 프안트 등과 함께 타일벽 속에 숨어있다 1957년 10월8일 프랑스군의 폭파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13세 때였다.]

 

 "카스바 랜던에 무어인의 카페가 있는데 주인 메라비가 경찰 끄나풀이다. 매일 5시에 프랑스 경찰이 잠깐 들러서 커피 마시고 정보를 얻는다. 떠나면 그 경찰을 죽여라. 실수해선 안 된다. 카페 오른쪽에 바구니를 든 여자가 있을 것이다. 둘 다 경찰을 뒤따른다. 그리고 그녀가 총을 건네주면 제때에 즉시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장면은 이 편지의 내용대로 보여주는데 막상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없다. 알리는 경찰을 주먹으로 녹다운시킨 다음 도망치는 여자를 뒤쫓아간다.

 

 여자의 안내로 엘하디 자파르(사디 야세프)를 만나는 알리. 자파르는 알리를 경찰의 끄나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그랬다며, 만일 메라비를 죽였거나 경찰을 죽이지 못했다면 경찰 끄나풀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자파르는 증명이 된 알리에게 이제 조직을 강화하고 은신처를 보호해야만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조직을 깨끗하게 하여 나라를 조직화해야 적을 쳐부술 수 있다고 역설한다. [註: 사디 야세프(Saadi Yacef, 1928~2021)는 FLN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알제리 국민의회의 상원위원을 지냈다. 1957년 9월24일 여성지도자 조라 드리프와 함께 체포되어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다음해 샤를 드 골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야세프는 비록 문맹이었지만 1962년에 옥중원고인 '알제리 전쟁의 기억(Souvenirs de la Bataille d'Alger)'을 출간하여 이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장면은 1956년 4월로 바뀐다.

 FLN 강령 24: 알제리 국민들이여! 식민지정부는 우리 국민들을 궁핍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근면성을 잃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부패, 타락케 하고 있다. FLN은 이 불행을 뿌리째 뽑기 위해 켐페인을 이끌고 국민의 도움과 협조를 요청한다. 이것은 독립을 향한 첫걸음이다. 오늘로서 FLN은 알제리 국민의 육체적·윤리적 건강을 위해 책임을 통감하고 일체의 마약과 술의 판매 및 사용, 그리고 매춘행위를 금하기로 결정했다. 제공자는 반역으로 처벌될 것이며 죽음으로 처형될 것이다.

 

 FLN요원으로 거듭난 알리는 골목에서 옛 잡범들의 보스로 활약하던 놈팽이를 만난다. 그는 예처럼 거만한 태도로 알리를 비웃으며 다시 합류하길 권한다. 하지만 옛날의 알리가 아니다. 코트 속에 감추어둔 기관총으로 그를 사살하고 나머지 똘마니들에게 FLN을 위해 일하라고 훈시하는 알리!

 

 장면은 1956년 6월10일. 마무드(프랑코 모루치)와 파티하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이슬람식으로 모두가 축복한다. 주례는 "FLN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말한다. [註: 마무드 부하미디(Mahmoud 'Hamid' Bouhamidi)는 파티하와 1956년 프랑스 지배하에서 첫 번째로 공개 결혼을 했는데, 결혼 1년여 만인 1957년 10월8일에 알리 라 프안트 등과 함께 카스바의 압데라메스 5번가 집의 타일벽 속에 숨어있다 프랑스군의 폭파로 사망했다.]

 

 장면은 1956년 6월20일 10시32분. 한 사내가 시내를 순찰하고 있는 프랑스 경찰을 칼로 찔러 죽이고 권총을 빼앗아 도망친다. [註: 이 영화는 연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까지 표기함으로써, 마치 '기록영화' 같은 사실감을 더해준다.]

 

 11시40분. 한 무리가 경찰서로 몰려와 서장을 뵙기를 청한다. 조금 후 서장과 안내하던 경찰을 사살하고 무기와 권총을 강탈해 달아난다.

 

 15시30분. 차를 타고가면서 프랑스 경찰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FLN대원들. 그러나 무장경찰에 의해 한 명이 사살된다.

 

 16시15분. 정부포고령이 내린다.

 1항: 총기 부상자 치료를 위한 약품 구매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항: 부상자 치료 병원은 경찰서에 통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질서를 잡기 위해 경찰은 아랍인 거주지역을 봉쇄키로 결정하고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린다.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 및 검문소가 설치되고 시민들은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며 검사에 응해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 끌려가던 정치범이 '알제리 만세'를 외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끔찍한 장면을 감방 창을 통해 목격한 알리는 이후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 석방된 일자무식의 알리 라 프안트(브라힘 하쟈즈)는 어느 소년, 즉 '작은 오마르'(모하메드 벤 카쎈)가 전해준 편지를 못 읽어 그로 하여금 대신 읽게 한다.

 

▲ 바구니 든 여자가 건네준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없다. 알리는 경찰을 주먹으로 녹다운시킨 다음 도망치는 여자를 뒤쫓아가는데…

 

▲ 여자의 안내로 엘하디 자파르(사디 야세프)를 만나는 알리. 자파르는 알리를 경찰의 끄나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그랬다며 이제 FLN요원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지침을 설명해준다.

 

▲ 마무드(프랑코 모루치)와 파티하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이슬람식으로 모두가 축복한다. 주례는 "FLN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말한다.

 

▲ 경찰서로 몰려와 서장을 만나기를 청한 후 잠시 뒤 서장과 안내하던 경찰을 사살하고 무기와 권총을 강탈해 달아나는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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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1)

 

 1945년 5월8일은 프랑스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프랑스는 반파시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며 춤을 추었지만 같은 날, 식민지 알제리에서 해방을 부르짖는 민간인 4만5천 명이 살해되는 피로 강을 이루는 이른바 '세티프 대학살(Setif massacre)' 참극이 벌어졌다.

 

 애초 이 학살의 발단은 프랑스가 2차 대전 중에 알제리인들에게 제시한 약속, 즉 북아프리카의 연합군 작전에 참여하면 '해방'으로 보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때문이었다.

 

 한편 1883년 이래로 캄보디아, 라오스를 포함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고 불렸던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이 이끄는 월맹(Viet Minh), 즉 베트남독립동맹이 소총과 권총, 소비에트제 낡은 대포만 갖고도 지형·지세에 뛰어난 전략과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여, 전차·장갑차·대포 등 군사적 절대우위의 프랑스를 1954년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이겨 독립을 쟁취하였다.

 

 베트남의 독립 사실이 똑같이 프랑스 식민지인 북아프리카의 알제리(Algerie)에 알려지자 알제리인들은 9년 전 세티프 학살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무장 투쟁 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1954년 11월1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FLN)을 결성하여 알제리의 독립을 선포하고 결사 항전의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다급해진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 독립운동을 유혈폭동으로 규정하고 베트남을 비롯하여 튀니지·모로코 등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철수한 프랑스군들(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 중 북아프리카인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12만2,920명이었다),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파견된 정예사단까지 긁어모아 알제리에 투입해 무력진압을 개시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수많은 해외식민지들이 죄다 독립해서 알제리는 프랑스 최후의 해외 영토나 다름없었기에 아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다(튀니지와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고 민심 확보에도 실패하여 결국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전하였으나,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보급과 병력 보충이 훨씬 쉬웠다. 80만 병력과 5조 프랑의 군사비를 투입했다.

 

 이리하여 1954년부터 1962년까지 FLN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쟁이 이른바 '알제리 전쟁(Algerian War)'이다. 알제리 입장에선 독립 전쟁이고, 프랑스 입장에선 본토와 다름 없는 알제리 식민지의 반란군 진압 작전이었다.

 

 아무튼 알제리 독립전쟁은 현대 알제리 역사의 시작점이었으며, 8년 간의 전쟁의 결과로 알제리는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가 1830년 아프리카 횡단정책의 발판으로 알제리를 식민지화 한 후 132년 만에 독립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 중 약 2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알제리 전쟁은 드골 정권에서 진행되었고 종료되었다. 그렇기에 프랑스 영웅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은 알제리에서는 히틀러와 같은 이름이다.

 

 이쯤에서 영화를 살펴보자. 타이틀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 원제 La bataille d'Alger)"로 196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백 작품.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註: 질로 폰테코르보(Gillo Pontecorvo, 1919~2006)는 피사 대학 출신으로, 홀로코스트 영화 '카포(Kapo·1960)'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6~2015년간 이탈리아 대통령을 역임했고 2009년 9월14일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을 수상했던 조르지오 나폴리타노(Giorgio Napolitano·97)와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출연 브라힘 하쟈즈, 장 마르탕, 사디 야세프 등. 출연자 중 프랑스 공수부대 매튜 대령 역의 장 마르탕(Jean Martin, 1922~2009)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며, 엘하디 자파르 역의 사디 야세프(Saadi Yacef, 1928~2021)는 실제 FLN 리더로 활약했던 인물로 1962년에 출간된 그가 쓴 '알제리 전쟁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의 경험을 모델로 직접 연기했다.

 

 러닝타임 120분. 그런데 음악감독이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이다. 그러니까 '황야의 무법자(1964)'보다 2년 후인 초창기 역량이 잘 배어있는 작품이다. 위기의 장면마다 갑자기 우리의 다듬이질 하는 방망이 소리처럼 효과음을 넣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에는 5년 후인 1971년에서야 개봉되었고, 영국·미국에서는 고문 장면이 삭제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1957년 알제리(Algiers)의 수도 알제(Alger). 영화는 고문에 못 견뎌 마지막 남은 FLN 지도자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후회하는 한 늙은 밀고자의 괴로운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심한 고문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밀고자는 한 프랑스 군인의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진작에 털어놨으면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험한 꼴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을 아랍인 밀집 지역인 카스바로 안내한다.

 

 여기서 오픈크레디트가 나오면서 중무장한 얼룩무늬 군인들이 트럭으로 운반돼 무수히 많은 희고 네모난 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카스바 압드라메스 5번가의 어느 집을 완전 장악한다.

 

 마지막 혁명군 지도자 알리 라 프안트(브라힘 하쟈즈)는 매튜 대령(쟝 마르탕)이 이끄는 공수부대에 포위돼 최후의 순간을 맞는다. 순순히 나오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는 매튜의 회유는 딱 30초의 여유밖에 없다.

 

 장면은 분노와 증오로 이글거리는 알리의 눈동자와 얼굴을 클로스업 하며 영화는 3년 전인 1954년 알제의 카스바로 되돌아간다.

 

 1954년 11월1일 민족해방전선(FLN)의 성명 1호가 발표됐다. 알제리 독립 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1966)' 영화포스터.

 

▲ 1957년 알제. "진작에 털어놨으면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험한 꼴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문에 못견뎌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을 카스바로 안내하는 늙은 밀고자.

 

▲ FLN 마지막 지도자를 체포하기 위해 중무장한 프랑스 공수부대가 무수히 많은 희고 네모난 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카스바의 어느 집을 완전 장악한다.

 

▲ 마지막 혁명군 지도자 알리 라 프안트(브라힘 하쟈즈·맨우측) 일행은 매튜 대령이 이끄는 공수부대에 포위돼 최후의 순간을 맞는다. 딱 30초의 여유밖에 없다.

 

▲ 어느 날 야바위를 하다 경찰에 들켜 도망치던 알리는 자신을 넘어뜨리고 조롱하는 프랑스 남자와 드잡이를 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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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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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0
아일랜드 독립전쟁 배경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5·끝)

 

(지난 호에 이어)

 어느 날 지하활동을 하던 데미언과 댄은 정부군의 무기를 탈취하다가 댄은 사살되고 데미언은 생포되어, 전에 영국군이 가두었던 바로 그 감방에 수감된다.

 

 형 테디는 동생 데미언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끈질기게 설득한다. "너같은 애는 이런 데서 죽으면 안 돼… 부탁이니 집에 돌아가서 시네이드랑 사랑하고 아들 딸 낳고 그냥 네 인생 살아라…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늘 바랬던 대로 내일 당장 병원, 학교에서 가르치며 살아라."고 말하는 테디. 이어서 "나도 이 군복 벗고 평화롭게 살기 원해. 데미언, 내 평생에 남에게 이렇게 애원해 본 적 없었어. 하지만 지금 네게 애원할게. 내 영혼과 마음을 다해서!"

 

 이에 대해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던 데미언이 "뭘 바라냐?"고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형 테디는 "전향하고 로리를 비롯한 동료들 및 무기은닉처를 밝히면 사면해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데미언은 "내가 크리스 레일리의 심장을 쐈어. 왜 그랬는지 형도 알잖아?"라는 말로 이를 거부한다.

 

 자신의 전부를 건 선택인 만큼 데미언에게 있어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은 절체절명의 목표이었기에 동료를 팔아넘기지 않는다. 

 

 말 하지 않으면 내일 새벽에 처형된다며 눈물로 감방을 떠나는 테디! 이념과 형제애 사이에서의 심적 갈등! 참 애잔한 부분이다.

 

 데미언은 시네이드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나는 이 전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됐지. 이젠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우린 참 이상한 존재야. 우리 자신에게조차 말이야. 널 가슴에 소중히 간직할게. 너의 몸과 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말야. 언젠가 넌 태어날 자식들이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랬지. 그날 이후로 나도 기도했어. 하지만 그날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걱정이야…."

 

 그리고 자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댄의 말을 인용한다. "무엇에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신념을 알고 있으며 그걸 위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며 끝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전하면서, 내면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형 테디를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다음날 새벽, 처형장에 끌려나온 데미언. 테디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자 "내가? 아님 형이?"라고 되묻는 데미언. 눈물을 삼키는 테디에게 부관이 자기가 대신 명령하겠다고 하지만 거절하고 직접 처형을 명하는 테디.

 

 데미언은 이렇게 처절한 죽음을 맞고, 형 테디는 오열하며 그의 묶인 손을 풀면서 손에 꼭 쥐고 있는 메달을 발견하고 간직한다.

 

 테디는 동생의 연인인 시네이드에게 그의 편지와 메달을 전달한다. 그녀는 절망하고 비탄에 잠겨 테디를 공격하고 자기 땅에서 꺼지라고 하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다.

 

 이는 데미언이 크리스를 죽인 뒤 크리스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은 구도를 이루며 슬픔을 배가시킨다. 아일랜드 노래가 흐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영화는 끝난다.

 

 독립운동을 위해 서로 의지하며 싸워온 두 형제, 데미언과 테디는 영국이라는 목표물에만 전념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서로를 적수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켄 로치(Ken Loach·86) 감독은 두 형제 중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냉정한 중립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전달하기 위해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을 기용해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상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진실되며 마음의 경적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켄 로치 감독은 2006년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를 탄압하는 미국과 영국의 구도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이러한 모순들을 비판하고 싶었다."며 이 작품을 통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보리밭을…'을 보면서 1920년대의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과 내전은 아일랜드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니고, 인류 역사상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거의 반드시 제기되었던 식민제국주의의 수법, 즉 '분할정복법(Divide and Conquer)'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 때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남의 나라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처지 때문에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에 합류했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끝없는 위기 속에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좌우도 모르고 일신의 영달을 마다하고 싸웠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좁은 땅의 조국에 돌아온 선열들은 공동의 목표가 없어지니 묻혀있던 이념들이 고개를 들면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서로를 적수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서처럼 정치적인 비난의 화살과 사회주의적 이상(理想)의 포기는 식민제국주의의 '파괴의 씨앗'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했지 싶다.

 

 물론 한국 현대사가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 재미독립운동 세력 등으로 복잡하게 분할되어 있었고,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시초가 됐다지만 영화에서처럼 정작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비극적 동족상잔인 한국전쟁의 원인이었으리라.

 

 역사란 살아 있는 시간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단서일진대 아직도 이념 때문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마음 고생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그런 역사의 굴레를 본모습 그대로 보여줘 후세들이 역사를 바로 인식하게 해야 할 것이다.

 

 데미언 역의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46)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콜드 마운틴(2003)' '선샤인(2007)' 등으로 우리와도 안면을 튼 파란눈의 아이리시 배우. 최근작은 '앤트로포이드(Anthropoid·2016)'.

 

 댄 역의 리암 커닝엄(Liam Cunningham·61)은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전직 밀수꾼 다보스 시워쓰 역으로 더 유명세를 탄 배우. (끝)

 

▲ 영국과 아일랜드 간에 정전 협정이 체결되고 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소식에 마을에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연주되는 곡이 'The Doon Reel'이라는 아이리시 전통 민요이다)

 

▲ 데미언(킬리언 머피)은 영국과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자는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를 이해하지만 그에게 동의할 수는 없다. 

이념의 대립으로 형제는 이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데…

 

▲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는 동생 데미언(킬리언 머피)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끈질기게 설득하는데…

 

▲ 새벽 처형장에 끌려나온 데미언. 테디(맨 오른쪽)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자 "나를 위해 또는 형을 위해?"라고 되묻는 데미언. 테디는 눈물을 삼키며 직접 처형을 명한다.

 

▲ 데미언의 편지와 메달을 전달받은 시네이드(올라 피츠제럴드)는 절망과 비탄에 잠겨 테디에게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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