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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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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7.끝)

 

(지난 호에 이어)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더욱이 영국군은 애당초 아랍국의 독립 따위는 허용할 마음이 없었다. 18세기 중반~19세기 초반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주요 동력원이었던 석탄을 대체할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 석유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고 아랍 민족의 독립을 논의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자 열강국들은 아랍의 분할통치 음모를 기도하는데…. 급기야 로렌스는 대령으로 진급되면서 곧바로 제대 명령을 받는다.

 

 파이살이 말한다. "늙은이들이 협상해서 이제 전쟁을 끝냈소. 젊은이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용기와 희망이 느껴지고 생기가 있소. 그러나 늙은이들은 평화를 원하지. 평화 속에는 불신과 경계라는 늙은이들의 악덕이 숨어 있다오. 피할 수 없지." 그리고 물러나가는 로렌스의 등 뒤에 대고 "자네에게 진 신세는 이루 말로 다 못한다."고 말하는 파이살. 그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파이살이 '아랍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는 제목으로 로렌스의 사진과 함께 톱기사로 난 시카고 데일리 신문을 알렌비 장군과 드라이든 자문관에게 내민다. 그 때 알렌비가 "영국장교에 의한 해방이었다."고 강조하자 파이살 왕자는 "그럼 로렌스는 다용도 칼이었군. 이젠 우리 모두에게 필요없게 됐군요."라며 "당신은 평범한 장군에 불과하오. 난 왕위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오."하고 위엄있게 나무란다. [註: 파이살 왕자는 아랍 수니파로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을 지냈다. 이 이면에는 '여성판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불리는 거트루드 벨(Gertrude Margaret Lowthian Bell, 1868~1926)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고학자, 탐험가이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최초의 여성 정보장교로 카이로에 근무했던 벨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영국을 도와 오스만 터키 제국과 싸웠던 파이살을 이라크의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라크를 사랑하고 영원한 고향 바그다드에 묻힌 여인' 벨은 새로 탄생한 이라크를 위한 헌법을 만들고 이라크와 요르단의 국경선을 획정(劃定)하는 데 일조하면서 왕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가 이라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타계하기 한 달 전인 1926년 6월16일 개관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이다. 평생을 미혼으로 산 거트루드 벨을 소재로 한 영화가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79) 감독, 니콜 키드만 주연의 '사막의 여왕(Queen of the Desert·2015)'이다. 이 타이틀은 벨의 별명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이라크 왕정은 1958년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된 이래로 지금은 아랍 수니, 아랍 시아, 쿠르드 세 파로 나뉘어 혼란을 겪고 있다. 80여 년 동안 권좌를 무력으로 지키다 아랍 시아에 권력을 빼앗긴 아랍 수니가 IS(이슬람 국가) 극단주의자로 되어버린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로렌스는 아랍인들과 동화되어 항상 아랍인 의상을 입고 진정으로 아랍인들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본래 영국 정부의 의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적국 오스만 터키 제국의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해 그들의 지배를 받고있던 아랍 민족들을 선동해 '사막의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정치·외교적 필요성이 존재했을 뿐 약소국과 약소민족에 대한 배려는 물론 언감생심 독립시켜준다는 약속을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음이 드러난다.

 

 또 한편으로 아랍민족은 물론 로렌스의 신념(信念)에 의한 인간적인 노력이, 힘과 권력이 정의인 정치적 게임에 의해 그저 전쟁의 소모품이자 장기판의 말로 이용 당해 토사구팽(兎死狗烹) 되는 처지가 왠지 서글프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무릇 개척자, 선구자의 삶은 따로 있고, 그것을 향유(享有)하는 사람은 뒤에 따로 있는 법이다!

 

 이들의 대화를 부동자세로 듣고 있던 브라이튼 대령이 울컥하며 급히 밖으로 뛰쳐 나간다. 눈물을 글썽이며 로렌스를 찾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다.

 

 한편 기가 죽은 로렌스를 태운 지프차 운전병이 "고향으로 돌아가시나 보죠?"하고 묻지만 대답을 않는 로렌스. 그의 차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이는 오토바이 사고로 그가 죽을 것임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첫 시작 장면과 연결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엄청난 제작비와 명배우들의 명연기, 웅장한 연출이 돋보이는 대작이지만,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이 혼재해 있으며, 그 내용에 깔려있는 은근한 서구 문명 및 백인 우월주의는 개봉 당시부터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이해하면 전혀 반대이지 싶다.

 

 요컨대 영국의 모험가이자 지식인 군인이었던 로렌스의 일대기를 통해 사막이라는 대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식민제국주의의 전쟁과 정치적 배신이 얼마나 치졸(稚拙)한 것이며, 인류의 정의와 세계관이라는 잣대로 보면 인간의 국지적(局地的)이고 단견적(短見的)인 탐욕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 명작으로 기억된다.

 

 T. E. 로렌스의 오토바이 사고가 난 지점인 영국 돌셋(Dorset) 군 웨어럼(Wareham) 읍의 Clouds Hill 길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가 묻힌 Moreton 묘지에는 시편 27장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Dominus illuminatio mea)"라고 새긴 묘비가 있다. 이는 그가 졸업한 옥스퍼드 대학의 모토이기도 하다.

 

 실제 T. E. 로렌스가 타던 오토바이는 최고시속 160㎞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롤스 로이스'로 불리는 '브라우 슈피리어 SS100' 모델로 런던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고가 난 지 6일 후인 1935년 5월19일에 아깝게도 46세로 사망했는데 그 원인은 치명적인 뇌손상이었다. 그로부터 헬멧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사막 장면은 요르단의 와디 럼 및 모로코에서, 사령부 등 건물은 주로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됐다. [註: '와디(Wadi)'는 비가 오는 우기에 물이 흐르는 곳을, '럼(Rum)'은 물이 모여 넘치는 곳을 뜻하는데, 와디럼 사막의 샘물 이름이 '로렌스의 샘'이라고 불린다.]

 

 영국 배우 피터 오툴(Peter O'Toole, 1932~2013)이 출연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로드 짐(1965)'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 때 봐서였는지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후로 그의 열렬팬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백만장자의 사랑(1966)' '굿바이, 미스터 칩스(1969)' '라만차 돈키호테(1972)' '칼리굴라(1979)' '마지막 황제(1987)' 등을 봤지만 위의 두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피터 오툴은 아카데미상에 8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끝)

 

▲ 전후의 터키와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통치한다는 밀약(密約)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은 드라이든 아랍 군사자문관(클로드 레인즈)

 

▲ 로렌스는 아랍인이라는 동기보다는 현상금이 걸린 죄수 등 돈에 눈먼 사람들로 군대를 만들어 다마스쿠스를 공격한다.

 

▲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터키군에 의한 타파스 마을 학살 현장을 목격하고 치를 떠는 아우다(앤서니 퀸), 로렌스와 알리(오마 샤리프).

 

▲ 타파스에서 '죄수는 없다!'며 터키군에게 돌진하다 죽은 부하의 분루를 삼키며 이성을 잃고 모조리 학살해 버린 로렌스의 모습. '이에는 이로!'라는 사막의 율법을 따른 것이다.

 

▲ 뒤늦게 도착한 벤틀리 기자는 "당신의 역겨운 모습을 찍어 빌어먹을 신문에 내겠다."며 로렌스의 이 모습을 찍는다.

 

▲ 아우다(앤서니 퀸)가 다시 돌아가자고 권하지만 "다시는 사막을 안 보겠다"고 말하는 로렌스.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했지만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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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WWI 배경 영화(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6)

 

(지난 호에 이어)

 도둑이나 할 짓이라고 반발하는 로렌스에게 드라이든 자문관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은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숨기지만 자네 같은 위선자는 진실 자체를 잊어버리지." 로렌스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자체가 진실입니다! 내게 말해줬어야 했어요!"라며 저항한다.

 

 잠시 후 알렌비 장군은 다마스쿠스 점령과 더불어 아랍인들을 달래기 위해 로렌스를 다시 아랍으로 파견하려 한다. 다시 정상적인 인간성을 되찾고 싶다는 로렌스와 그를 파견·이용하려는 장군 사이에 갈등이 인다.

 

 이때 알렌비 사무실 밖에서 자기가 만든 영웅 로렌스 소령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던 벤틀리 기자가 드라이든 자문관이 나오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다. 드라이든이 질문을 회피하자 항상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 버린다고 비아냥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말한다. "상이한 두 기질이 서로 부딪쳤지. 반미치광이 기질과 비양심적인 기질이 말이오!"


 한편 데라에서의 고문의 상처 때문에 등에서 피가 흐르는 로렌스에게 알렌비 장군이 말한다.

 "자네 이름은 유명해질 거야. 날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 없어도 말야. 자넨 범상치 않아.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많지 않아. 닥친 운명을 회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까? 추측이겠죠…. 네 하겠습니다. 장군이 원하시는 건 터키를 이기는 거겠지만 전 아랍인들에게 다마스쿠스를 넘겨줄 거고 다신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올 겁니다." 비록 알렌비 장군과 로렌스의 목적이 서로 다르지만 필요에 의해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로렌스는 아랍독립이라는 동기보다는 현상금이 걸린 죄수 등 돈에 눈먼 사람들로 군대를 구성한다. 알리 족장, 아우다 족장 등도 합류한다. 벤틀리 기자도 참가하여 취재한다. [註: 아랍 항쟁군은 영국 군인·외교관인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 1879~1919)가 만들어준 적색, 백색, 흑색으로 된 삼색기를 들고 싸웠다. 이 깃발은 오늘날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을 포함하여 아랍 9개국의 국기의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아녀자를 포함한 타파스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퇴각하는 터키군인들을 목격한다. 로렌스가 잠시 망설인다. 망설이는 이유는 이 인류애에 반하는 행동과 여기서 멀지 않은 데라에서 터키군에게 당한 성적 모욕에 대한 반감 사이에서의 번민 때문이었으리라.

 

 알리는 힘을 아끼고 그냥 지나치자고 조언한다. 그때 로렌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죄수는 없다!"고 부르짖으며 터키군으로 돌진하다 멍에를 홀로 지고 사살된다. 로렌스는 죽은 부하의 분루(憤漏)를 삼키며 이성을 잃고 모조리 학살해 버린다. '이(齒)에는 이로!'라는 사막의 율법을 따른 것이다. [註: 1918년 9월27일 시리아 남부 소읍(90가옥, 주민 400명)인 타파스(Tafas)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으로, 로렌스의 군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군 뿐만 아니라 그 동맹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군인을 포함한 약 250명의 포로들까지 모조리 사살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915~1923년에 있었던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도끼로 두개골을 쪼개 죽이고, 젊은 여자는 몸에 구멍을 뚫어 반으로 갈라 죽였고, 임산부는 배를 째 아기를 끄집어 내는 등 피가 강물을 이루었으며, 인간이 얼마나 악랄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잔인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참상이었다. 당시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구의 절반이 죽은 대학살은 터키 청년투르크당의 3인방, 즉 엔베르, 탈라트, 제말 등 투르크족 우월주의에 빠진 3파샤(Pasha)가 종교적 편견으로 세계 최초(AD301)의 그리스도 국가인 아르메니아 종족을 말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도착한 벤틀리 기자가 그 처참한 광경에 경악한다. 알리는 "이제야 아랍인들이 얼마나 야만스럽고 극악무도하다는 걸 확인했군. 다른 사람도 다 똑같아."하고 말한다. 이에 벤틀리 기자는 "당신(로렌스)의 역겨운 모습을 찍어 빌어먹을 신문에 내겠다."며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의 얼굴에 플래시를 터트린다.

 

 드디어 로렌스의 아랍부대는 1918년 10월 기계화된 알렌비의 영국 군대가 도착하기 하루 반 전에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여 마을회관에 사령부를 만든다. 뒤늦게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영국군은 아랍군대의 사기를 꺾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군악대를 앞세워 시내를 행군하며 강력한 무력 시위를 보인다. [註: 1918년 10월1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에 가장 먼저 도착한 부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제4기병 연대였고, 다음이 제3기병 연대, T. E. 로렌스는 같은 날 3번째로 도착했다. 이틀 뒤인 10월3일에 파이살 왕자가 이끄는 아랍 반군과 영국군이 도착했다.  다마스쿠스는 현존하는 도시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며 이슬람 문화의 4대 도시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중의 하나로 예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대상(隊商) 무역로이자 로마 시대의 전략적 요지로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의 수련장이었고 예수의 제자 아나니아가 사도 바울의 눈을 치료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랍인들은 도시를 장악할 아랍국가의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맞지 않는 버려진 종족들이었다. 로렌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화·전기·병원·소방서 등 공공 유틸리티를 관리·유지하는 방법을 몰라 배울 생각은커녕 서로 다투기만 하고 아우다는 숫제 피를 보기 전에 다시 돌아가자고 권하는 게 아닌가.

 

 로렌스가 "다시는 사막을 보지 않기로 기도했다."고 하자 아우다는 "당신은 다시 돌아올 거요. 사막은 당신에게 어울리지."라고 내뱉고는 나가버린다.

 

 알리에게 묻자 자기는 남아서 정치를 배우겠다고 한다. 로렌스가 '정치는 몹쓸 직업'이라고 하자, 알리는 다마스쿠스를 아랍인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그 동안의 로렌스의 노력을 이해하고, 대단한 일을 했다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뛰쳐나온다. 알리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것은 로렌스가 자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아랍지도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워, 분열된 아랍국을 통합하고 마침내 다마스쿠스를 점령, 아랍 민족으로부터 다시 한 번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되지만, 이 일을 이루기까지 이방인 로렌스의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가 얼마나 컸겠느냐는 인간적인 우정에서 나온 사랑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다마스쿠스를 순순히 영국군에게 내준다. 오랫동안 부족 단위 이상의 정치의식을 발휘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막부족들에게는 대도시를 운영할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단위로서의 민족의식의 각성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밥상을 차려주어도 먹지 못하는 자업자득이랄까…. (다음 호에 계속)

 

▲ 권총으로 로렌스의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히고 아우다의 칼에 맞아 죽은 터키군을 노려보는 로렌스와 벤틀리 기자(아서 케네디).

 

▲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황금 총알 밖에 없다."며 열차 위로 올라가는 로렌스. 대중의 환호와 승리를 즐기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 말을 실은 터키 보급열차를 강탈하여 수백 마리의 말을 노획한 아우다(앤서니 퀸)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얻었다며 전장을 떠나버린다.

 

▲ 터키군이 점거하고 있는 북부 데라 지역으로 진출했던 로렌스는 알리와 함께 마을을 걷다가 혼자 여러 아랍 주민들과 함께 붙잡힌다.

 

▲ 터키 베이(호세 페러)에게 심한 고문을 받고 능욕까지 당하는 로렌스. 이 경험은 로렌스의 마음에 큰 충격과 상처를 준다.

 

▲ 데라의 고문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허탈감에 빠진 로렌스를 정성껏 보살피는 알리(오마 샤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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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30
WWI 배경 영화(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5)

 

(지난 호에 이어)

이 광경을 촬영하던 벤틀리 기자에게 아우다가 자기 사진도 찍었냐고 묻는데 그렇다고 하자 카메라를 뺏어 박살낸다. 로렌스가 그는 사진이 찍히면 혼이 나가 힘을 쓰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랍군이 로렌스를 환호하며 외치는데 알리 족장과 브라이튼 대령이 찾아온다. '도둑질이 도둑을 만드는 법, 약탈은 중지해야 한다'고 대령이 말하자 알리는 '이들의 관습이며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답한다. 브라이튼 대령이 로렌스에게 "상처가 괜찮느냐?"고 묻자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황금 총알 밖에 없다."며 "멀쩡하다."고 대답하는 로렌스!

 

 벤틀리 기자가 알리 족장이 읽고 있는 어린이용 책을 보고 무얼 배우느냐고 묻자 '정치학'이라고 대답하는 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겁니까? 의회라도 세우게요?" "국가가 생긴 뒤 말해 주겠소."라고 대답하는 알리. "공허한 말장난이죠. 그게 바로 정치고요. 빨리 배우시는군요."라고 빈정대는 벤틀리.

 

아마 기자는 아랍인들이 정치적으로 변화하는 걸 순수성을 잃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알리가 "내겐 좋은 선생이 있다."고 말하자 이미 알았다는 듯 이내 로렌스에게 가는 벤틀리 기자.

 

 돌아가기 전에 단도직입적인 질문 두 가지만 하겠다는 벤틀리. 첫째 "이 사람들은 전쟁에서 뭘 얻길 원하죠?" "자유!" "말은 그렇게들 하죠." "자유를 얻게 될 거요. 내가 찾아줄 거요." 두 번째 질문 "사막에 끌리는 이유는 뭡니까?" "깨끗하니까요!" "계몽적인 대답이군요." [註: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사막의 삶과 아랍문화는 근대적 이성(理性)과 문명으로 거부할 어떤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의 자아도취적이고 어리석은 근대 문명의 탈을 쓴 식민제국주의의 사악하고 더러운 행동에 대한 패러독스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正義)를 가치있게 보는 로렌스의 세계관 및 역사관을 통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누구보다 인도주의적이었던 로렌스도 상황에 따라 신념이 변한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대중의 환호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승리를 즐기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아무튼 벤틀리 기자가 그의 무용담을 공개함으로써 로렌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그때 아우다가 램프 2개와 맞바꿨다는 괘종 시계를 들고 와서 시계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부숴버리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실룩거린다. 그의 가치는 고상한 자유나 독립이 아니다.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이득이 없다는 뜻이다.

 

 이윽고 군마를 실은 터키 보급열차가 온다. 브라이튼 대령도 가담하여 장갑차에 장착된 기관총을 이용하여 열차를 강탈하고, 아우다 군사들이 총출동하여 수백 마리의 말을 노획한다. 그리고 아우다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얻었다면서 전장을 떠나버린다. 이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로렌스에게 좌절이 온다.

 

 어느 날 철로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던 중 몸에 지닌 기폭장치가 폭발하여 파라지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자 로렌스는 적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퇴각하기 전에 그를 사살한다. 가심에 이어 두 번째 일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패배에 아랍인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로렌스는 고작 남은 20여 명을 이끌고 북쪽 '데라'로 가려고 한다. 알리가 아우다 등 사람들을 곁에 붙들어 두지 못했음을 나무라자 로렌스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며 "날 그렇게 못 믿겠소?"하고 화를 낸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누가 나와 함께 물 위를 걷겠소? 데라로 동행할 사람은 없소?"하고 묻는다. 그들은 데라는 점령됐으며 20명으로 2천 명을 대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여, 그는 오히려 영국 장군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한다는 오해까지 받게 된다. [註: 데라(Deraa)는 요르단 국경에서 북쪽 13㎞, 다마스쿠스에서 남쪽 90㎞ 떨어져 있는 시리아의 남서부 도시이다.]

 

 터키군이 점거하고 있는 북부 데라 지역으로 무리하게 진출했던 로렌스는 알리와 함께 마을을 걷다가 혼자 여러 아랍 주민들과 함께 붙잡혀 '터키 베이'(호세 페러)에게 끌려간다.

 

 심문하는 터키 베이가 나이를 묻자 27살이라고 대답하는 로렌스. 터키 베이는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며 자기는 3년 반 동안 데라에 고립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 로렌스를 발가벗기고 피부가 깨끗하다며 입맛까지 다시는 베이를 한방 치자 그 대가로 심한 고문을 받고 능욕까지 당하는 로렌스! 그리고는 길거리에 내버려진다. 이 경험은 로렌스의 일생에 큰 충격과 상처를 준다.

 

 그동안 밖에서 감시를 피해 동정을 살피며 기다리던 알리가 로렌스를 구출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허탈감에 빠진 로렌스에게 "당신도 똑 같은 인간이요."라며 식사를 권하는 알리.

 

 이제 잠도 자고 한결 나아진 로렌스는 갑자기 떠나겠다고 말한다. 알리가 왜냐고 묻자 "나 자신의 한계를 느껴서요."라는 로렌스. "그럼 아랍 반란도 끝이요? " "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난 아랍인도 아니잖소." "간절히 원하면 다 된다고 했잖소?" "나도 그런 줄 알았소." "당신이 증명했었지."

 

 그러자 로렌스는 자기 피부를 내 보이며 "이게 나요. 피부색이 다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소. 그러나 원하는 게 바뀌었지. 피부색이 맘을 바꿔놨소. 나도 평범한 사람이오."

 

 그는 평범하고 쉬운 일을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알렌비 장군에게 돌아가지만 그 곳은 이미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이제 영국인들이 보기엔 그는 아랍인에 가까운 이방인이었다.

 

 알렌비 장군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파이살 왕자를 발견하고 저윽이 놀라는 로렌스. 그리고 드라이든 자문관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의 터키와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통치한다는 밀약(密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밀약이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註: 공식적으로 '소아시아 협정(Asia Minor Agreement)'으로 알려진 '사이크스 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협상국이 아라비아 반도 외 아랍 지역과 터키를 미래의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로 나눠먹기 위한 밀약이었다. 이 조약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와 영국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가 1915년 1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협상하여 5월16일에 결론지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은 국제 공동관리 구역으로 두고,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영국은 그 외 아랍 지역을, 러시아는 터키 지역 및 아르메니아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로 했다. 영국이 아랍인에게 약속한 아랍 독립국은 영국의 힘이 미치는 지역으로 한정됐으나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은 애초부터 제외된 상태였다. 이 밀약으로 아랍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T. E. 로렌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극단주의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IS)의 목표 중 하나가 이 협정을 무위(無爲)로 돌리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아카바를 점령한 후 알리는 로렌스를 정복자로 격찬한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밀어붙인 신념의 승리였다.

 

▲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당하는 것과 똑같은 괄시와 수모를 경험하며 겨우 얻은 레모네이드를 파라지(미셀 레이)에게 마시게 하는 로렌스. 가운데에 브라이튼 대령(앤서니 퀘일)이 보인다.

 

▲ 알렌비 장군은 로렌스 중위를 소령으로 승진시키고 그의 작전을 채택한다. 뒷줄에 앉아있는 드라이든 자문관과 브라이튼 대령은 로렌스의 아카바 점령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 미국 시카고 데일리지 소속 종군 기자 잭슨 E. 벤틀리(아서 케네디)가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를 인터뷰한다.

 

▲ 터키군의 보급 열차를 폭파시키는 로렌스. 그는 아랍항쟁군을 통해 게릴라전을 펼쳐 터키군을 교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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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4)

 

(지난 호에 이어)

 로렌스 또한 아랍통일이라는 자신의 순수한 바램과 역행하는 아우다지만 필요에 따라 그가 원하는 황금이라는 미끼를 쓸 수밖에 없다. 정치의 속성인 셈이다.

 

 그리고 알리에게 옌보의 파이살 왕자에게 아무 배나 구해서 아랍군을 아카바로 보내라고 연락하도록 조치하고, 자기는 아랍 군사자문관 드라이든과 새 사령관인 에드먼드 알렌비 장군(잭 호킨스)에게 그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카이로로 향한다.

 

 한편 아우다는, 다우드와 파라지만 데리고 모세처럼 시나이 사막을 건너 카이로로 가겠다는 로렌스에게 '모세는 예언자였고 신의 보호를 받았다'며 말리려 하지만 그는 금세 낙타를 타고 사라지고 없다.

 

 사막을 지나면서 로렌스는 다우드와 파라지에게 내일이면 이불과 침대가 있는 카이로 일급 호텔에서 자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세찬 회오리 바람에 모래기둥이 휘몰아치는 사막을 건너가다가 그만 다우드가 유사(流砂)에 빠져 죽는다.

 

 온갖 역경 끝에 수에즈 운하에 도착한 로렌스와 파라지! 그러나 문명의 상징인 수에즈 운하의 모습은 그들에겐 더 이상 장관이 아니었다. 운하의 건너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군인이 이들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소리친다. [註: 이 고함소리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목소리로 알려졌다.]

 

 카이로 영국군 사령부. 트럭을 타고 간신히 도착한 로렌스는 파라지를 데리고 장교 클럽으로 들어간다. 아랍인 복장을 하고 있는 로렌스를 보고 모두들 '어쩌다 저 꼴이 됐냐'며 조롱한다. 그가 레모네이드 두 잔을 주문하자 바텐더가 단박에 거절하며 나가라고 하자 멱살을 붙잡고 명령하는 로렌스. 그는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영국인에게 당하는 것과 똑같은 괄시와 수모를 경험한다.

 

 실랑이가 벌어져 소란스런 그때, 브라이튼 대령이 나타나자 로렌스는 아카바를 점령하고 터키 주둔군을 모두 포로로 잡았으며 자기가 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는 브라이튼 대령은 머레이 장군 후임으로 온 알렌비 장군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명한다.

 

 먼저 파라지를 잠 재우기 위한 방을 준비해 달라고 브라이튼 대령에게 주문하고 면도를 한 뒤 알렌비 장군을 대면하는 로렌스. "규율을 어기고, 시간도 안 지키고 지저분함.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음. 박학다식함. 흥미로운 친구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누가 아카바를 점령하랬지?"하고 묻는 장군.

 

"아무도 안 그랬죠."하고 대답하는 로렌스. "그럼 왜 그랬나?" "아카바는 중요한 곳이죠." "왜 그렇지?" "운하로 가는 통로죠. 우린 가자지구로 갔죠. 아카바는 우측 후방에 있어요. 예루살렘으로 가면 더 우측 후방이 되죠."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자네는 명령 없이 행동했다." "장교가 그만한 재량권도 없습니까?"하고 반문하는 로렌스!

 

 장군은 일개 중위에 불과했던 로렌스를 소령으로 승진시키고 그의 작전을 채택한다. 그의 아랍인 부대의 중요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렌스와 영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궁극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서로 이용할 뿐이다.

 

 로렌스는 다우드를 잃은 것과 가심을 죽인 것에 괴로워하는데, 알렌비 장군은 신경과민이라며 돌아가서 열심히 근무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자기는 이 일에 맞지 않는다며 사양하는 로렌스. 때로는 신념이 있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희생은 성공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이며, 그 희생을 이겨내는 것도 자신을 운명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과정일진대…. 운명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사고력(思考力)이다!

 

 알렌비 장군이 아마추어 연극배우 같다며 그의 아랍 복장을 나무라곤 드라이든 자문관의 의견을 묻는다. 그는 로렌스가 해 내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대답한다. 이어 브라이튼 대령의 의견을 묻자 그는 동감이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훈장을 달아줄 일이고, 본인의 동기야 어쨌든 훌륭한 전술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축하주를 한 잔 사겠다며 알렌비 장군이 일행과 함께 장교클럽으로 옮기면서 "난 클라우제비츠처럼, 자넨 삭스처럼 싸운다."고 말하자 "우린 정말 잘 해야겠죠."라고 화답하는 로렌스 소령! [註: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프로이센의 군인이며 군사학자로 그의 유작인 '전쟁론'으로 유명하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전쟁의 심리적·정치적 측면을 강조한 내용은 전쟁의 본질을 꿰뚫은 유명한 말이다. 모리스 드 삭스(Maurice de Saxe, 1696~1750)는 프랑스 육군 대원수가 된 인물로 소수 정예부대에 의한 속전속결의 기습공격으로 유명했다. 그는 귀족의 서자로 태어나 출신 배경도 로렌스와 닮았다.]

 

 그러나 로렌스는 "아랍인들이 터키를 몰아내면 영국이 거기를 차지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장군에게 "영국이 아라비아에 대한 이런 의심을 살 만한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알렌비 장군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에 고무된 로렌스 소령이 20만 파운드의 금화 등 군자금 지원과 장갑차, 포병 등 무기와 훈련 지원을 요청하는데, 모든 것에 동의하는 알렌비 장군. 그러나 드라이든 자문관과 브라이튼 대령은 대포 등 최신 무기 지원에 대해서 장군에게 이견(異見)을 토로하는데….

 

 여기까지가 제1부 이야기이다. 2시간 18분이 걸렸다. 약 5분의 휴게시간 후 2부가 시작된다. 이 시간을 빼면 본 영화 러닝타임은 216분.

 

 미국 시카고 데일리지(紙) 소속 종군 기자 잭슨 E. 벤틀리(아서 케네디)가 파이살 왕자를 인터뷰한다. 대포를 받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는 벤틀리가 알렌비 장군을 '요주의 인물'로 표현하자 이에 호감을 보인 파이살은 기사거리를 제공하겠다고 화답한다.

 

 그는 "이 나라에선 그 누구보다 승리를 안겨주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며 지난 넉달 동안 부상자는 37명, 사망은 156명인데, 부상자와 사망자의 차이가 큰 이유는 심한 부상자는 터키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손으로 죽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적군에게 우리는 반역자에 불과하고 제네바 협정도 통하지 않는 적군이 반역자나 부상자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파이살 왕자.

 

 파이살 왕자가 카이로로 떠나기 전에 끝으로 기자에게 로렌스 소령을 찾는 이유를 묻는다. 기자가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모험적인 영웅을 찾기 위해서'라고 답하자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대표적 인물을 찾는다면 로렌스가 적격'이라고 추천하는 파이살.

 

 로렌스는 아랍항쟁군을 통해 게릴라전을 펼쳐 기차를 날려버리는 등 터키군을 교란시킨다. 터키군의 열차를 폭파한 후 아랍 의상을 입은 채 기차 지붕 위에 올라가 걷는 로렌스. 그때 아직 목숨이 붙어있던 터키군 한 명이 권총으로 로렌스를 쏘아 그의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힌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자 그는 헛방을 여러 발 쏘다가 아우다의 칼에 맞아 죽는다. (다음 호에 계속)

 

▲ 낙오자 가심을 구출해 오는 로렌스는 일약 영웅이 되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칭호를 받는다.

 

▲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에게 베니워시 족장의 아랍 의상을 선물하는 알리(오마 샤리프).

 

▲ 아랍족장의 의상을 입고 혼자서 왕이 된 듯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들고 폼을 잡아보는 로렌스. 피터 오툴의 푸른 눈동자와 유난히 파란 빛을 띄는 비수의 칼날이 하얀 의상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 하리스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와 하위탓 족장 아우다(앤서니 퀸) 간의 싸움 때문에 동맹이 깨지기 직전, 어느 부족에도 속하지 않는 로렌스가 살인자를 처벌하겠다고 선포하여 사태를 수습하는데…

 

▲ 전사들을 환송하는 하위탓족 아낙네들의 독특한 괴성이 와디 럼 협곡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전투에 나서는 아랍동맹군. 이 협곡바위의 형상을 '지혜의 일곱 기둥'으로 부른다.

 

▲ 아카바의 터키군 대포는 바다로 조준, 고정돼 있을 뿐 육지 쪽은 무방비 상태이므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는 로렌스의 판단이 적중하여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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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3)

 

 그들은 신이 창조한 최악의 장소라는 네퓨드 사막(Nefud or Nafud desert)을 횡단한다. 목숨을 건 지옥의 행군이며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도전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자기 자신을 믿고 베두인들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사막을 밤낮으로 여행하여 마지막에 오아시스에 당도한다.

 

 그런데 가심(I. S. 요하르)이 탔던 낙타가 주인 없이 홀로 대열을 따라오는 게 아닌가. 가심은 밤 사이에 피로에 지쳐 낙타에서 떨어져 낙오자가 된 것이다. 로렌스는 알리 족장과 다른 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결국 가심을 구출해 온다.

 

 알리가 "정말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 같다."며 "엘 오렌스!"라고 부르자 로렌스는 그냥 그대로가 좋다며 칭호를 사양한다. [註: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이 장면은 '로드 짐(1965)', '엘 시드(1961)'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엘 오렌스(El Aurens)'는 '로렌스'를 아랍식으로 발음한 것이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뜻으로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자 그의 별명이다.]

 

 어쩌면 그의 마음 한 편에는 아랍인들보다 근대적인 문명을 지닌 대영제국의 지식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우월감의 한 구석엔 자신의 태생, 즉 귀족인 토머스 채프먼 경의 친자이면서도 서자(庶子)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 칭호를 받을 수 없었던 과거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註: 영국·아일랜드계 준남작(Baronet)이었던 토머스 채프먼 경(Sir Thomas Robert Chapman, 1846~1919)은 첫 부인 사이에 딸만 넷을 두었는데, 15살 연하의 가정부 새라 로렌스(Sarah Lawrence, 1861~1959)와 열애에 빠져 아예 이름까지 '토머스 로버트 로렌스'로 바꾸고 새살림을 차려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며 1885~1900년 사이에 아들만 다섯을 낳았다. 그 중 둘째가 1888년 8월16일에 태어난 T. E. 로렌스이다. 그후 1896년에 애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옥스퍼드에 정착했지만 서자인 아들들에게는 귀족 칭호와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새라 로렌스는 98세까지 살다 옥스퍼드에서 사망했다.]

 

 이 얘기를 듣던 알리가 "그러면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칭호를 받아들인 로렌스는 과거를 괴로워하며 돌아눕는다. 이때 이불을 덮어주던 알리는 몸종이 빨아 불에 말리고 있는 그의 군복을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다음 날 알리는 로렌스에게 베니워시 족장의 아랍 의상을 선물한다. 모두들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은 족장의 복장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낙타 타기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하자 직접 시승을 해보는 로렌스.

 

 멀리까지 타고 가서 혼자 왕이 된 듯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들고 폼을 잡아보는데, 어쩌면 영국에서 못 이룬 귀족의 꿈을 아랍에서 비로소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에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장면은 피터 오툴의 푸른 눈동자와 유난히 파란 빛을 띠는 비수의 칼날이 하얀 의상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때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는 로렌스. 그 자는 "내 우물을 축내고 있는 사람들과 한 패냐?"고 물으며 자기는 하위탓 족장인 아우다 이부 타이(앤서니 퀸)라고 소개한다. 로렌스는 자기가 아는 아우다는 네퓨드 사막을 건너온 사람들과 물 따위를 가지고 시비 거는 졸장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한껏 치켜세워 주고, 파이살 왕자의 친구라는 로렌스의 말에 아우다는 선뜻 하위탓 족이 거주하는 '와디 럼'의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註: 하위탓(Howeitat)족은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요르단에 살고 있는 베두인 아랍 종족(Bedouin Arabs) 중 하나이다. 그 족장인 아우다 아부 타이(Auda Abu Tayi, 1874~1924)는, 파이살 왕자가 '이슬람의 선지자'였다면 그는 '아랍 항쟁군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격하기 쉬운 성격이지만 관대하고 겸손하고 정직하며 따뜻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은밀한 거처인 '와디 럼(Wadi Rum)'은 로렌스와 파이살 왕자가 찾던 바로 그 장소였고, 결과적으로 오스만 터키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아카바(1917년 7월) 및 다마스쿠스(1918년 10월)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의 무덤은 요르단 수도인 암만(Amman)에 있다. 이 역의 앤서니 퀸도 실제 아우다 아부 타이와 너무나 닮았다.]

 

 그날 밤 만찬을 하는 동안 로렌스는 터키군과 적당한 거래를 하고 있는 아우다를 '터키를 섬기는 하인'으로 묘사하여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리고 아카바의 터키 진지에 엄청난 금괴가 있다고 설득하여 드디어 아카바 공격에 참여시킨다. 아랍 통일보다 황금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그에게는 명분보다 실리(實利)를 미끼로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렌스의 계획은 알리의 부하가 아우다의 부하 한 명을 죽인 사건 때문에 거의 틀어지게 된다. 부족 간의 싸움 때문에 동맹이 깨지기 직전, 로렌스는 자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아무도 감정 상하지 않을 터이니 스스로 그 살인자를 처벌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그 살인자가 그가 사막에서 천신만고 끝에 구출해줬던 가심임을 알고 놀란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괴롭지만 그를 사살하는 로렌스. [註: 이때 알리가 차고 있던 권총을 사용했는데, 첫 장면 우물가에서 탈취했던 바로 로렌스의 권총이다. 또한 이 장면은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우다는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고 하고, 알리는 당신이 구했던 사람이었으니 그의 운명도 당신 것이라며 처형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자신이 구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로렌스의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도 서구와 사막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전투에 나서는 전사들을 환송하는 하위탓족 아낙네들의 독특한 괴성이 와디 럼 협곡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출전한 아랍연맹군들이 아카바의 터키군 수비대를 공격한다. 로렌스의 예상이 적중하여 아카바를 점령한 후 알리는 로렌스를 정복자로 격찬한다. 1917년 7월의 일이었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밀어붙인 신념의 승리였다. 성공은 행하는 자가 얻을 수 있으며, 운명을 탓하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한편 아우다는 아카바 터키 요새에 황금은커녕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한 지폐뿐이라며 로렌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핀다. 그러자 로렌스는 영국 황제가 5천 기니 금화를 아우다 이부 타이에게 주겠다는 서약서를 써주고 달래며 10일 안에 자기가 금이든 대포든 갖고 오겠다고 약속하는데….(다음 호에 계속)

 

▲ 로렌스는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오른쪽)에게 50명의 정예 군인을 요청하는데 그 리더가 알리 족장(오마 샤리프·가운데)이다.

 

▲ 10대 고아소년인 파라지(미셀 레이)와 다우드(존 디메치)가 로렌스의 몸종이 되겠다고 하자, 그는 알리 족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다 고용한다.

 

▲ 로렌스 일행이 낙타를 타고 신이 창조한 최악의 장소라는 네퓨드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출발을 서두르고 있다.

 

▲ 네퓨드 사막 횡단은 목숨을 건 지옥의 행군이며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도전이었다.

 

▲ 로렌스가 낙오자가 된 가심을 구출하러 가려고 하자 알리 족장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며 한사코 만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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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2)

 

(지난 호에 이어)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동안 왕자의 막사에선 대령과 중위를 앉혀놓고 마지드(가밀 라티브)가 코란 강론을 한다. "코란은 많이 암송할수록 쉬워지고 많이 읽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보상받는 최상의 방법입니다."고 말하는데 아까 우물에서 만났던 알리 족장이 들어온다.

 

 앉아있던 로렌스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살기가 돈다. 이를 간파한 파이살 왕자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진정시킨다.

 

 다시 마지드의 강론이 이어지는데 파이살이 "미래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오."라고 부연(敷衍)하자 로렌스가 즉각 코란의 구절을 암송한다. "결국 신은 당신을 풍족케 해주고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끝맺음을 해 파이살 왕자와 알리 족장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때까지 오랜 강론에 지루함을 느끼던 브라이튼 대령이 헛기침을 한 후 '옌보'로 후퇴하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화제를 돌린다. 파이살 왕자가 "수에즈 운하는 영국에게나 중요하지 아랍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자 브라이튼 대령은 "영국과 아랍의 관심은 동일하다."고 항변하는데 옆에 있던 알리 족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투로 경멸한다.

 

 이에 대령이 "옌보로 후퇴하면 영국은 무기, 전략, 훈련 등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재차 다짐하자 파이살과 알리는 그러면 대포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실 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랍인들에게 대포 등 최신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 때문에 브라이튼 대령이 '대포보다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설득하려는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영국이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훈련이 잘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훈련을 재차 강조하자, 파이살은 '해군과 대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는데, 이 말에 로렌스가 동의하자 대령은 "자네는 군사 조언가가 아니다. 누구의 명령을 듣는거냐?"며 화를 낸다.

 

 이에 파이살이 그냥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무마한다. 양측의 이익을 얻기 위한 정치적 암투는 이렇게 치열하다. 옆에 있던 마지드가 "여기서는 파이살 왕자님을 따라야 한다."고 점잖게 일침을 놓는다. [註: 에미르 파이살(Emir Faisal, 1883~1933) 왕자는 메카의 대종주 후세인 빈 알리(1854~1931)의 셋째 아들로 1920년 시리아 아랍 왕국의 왕이었고,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으로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통합을 장려하여 인종, 종교를 초월한 '범아랍 독립국가'를 창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3년 9월8일 48세의 나이에 스위스 베른에서 건강진단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개인 간호사는 죽기 직전 비소 중독의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역의 알렉 기네스는 실제 파이살 왕자와 너무도 닮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로렌스가 말한다. "폐하 생각이 맞습니다. 사막은 '노가 필요없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선 베두인이 우위를 차지할 겁니다. 지리에 익숙하니까요. 옌보로 후퇴하면 아랍군은 영국군의 예하(猊下)부대로 전락합니다." 그러자 브라이튼 대령이 "자넨 배신자야!"하고 몰아붙인다. [註: 옌보(Yenbo)의 정식 명칭은 Yanbu' al Bahr (Spring by the Sea)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서부에 있는 홍해의 주요항구이다. 석유화학 및 정유 산업 단지가 집결돼 있어 주로 외국 근로자들로 인구가 형성돼 있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서유럽으로 오일을 수송할 수 있는, 그 이름처럼 '바다의 샘'인 주요 거점이다.]

 

 영국이 아라비아에까지 욕심이 있음을 간파하고 있는 파이살 왕자가 "한창 젊을 때라 열정으로 가득해서 그러니 할 말은 하게 놔둡시다."라며 이를 수습한다. 그리고 후퇴에 관한 결정은 내일까지 하겠다며 모두 물러가게 한다.

 

 로렌스와 독대한 파이살 왕자는 그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한다. [註: 대영제국의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 장군은 열렬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였으며, 1885년 1월26일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을 함락시켜 수단 총독이 되었지만 반란 토민을 토벌하던 중에 총독 관저에서 토민병이 던진 창에 찔려 죽어 효수(梟首) 당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1966년 찰턴 헤스턴,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하르툼 공방전(Khartoum)'이다. 또 하르툼에 파병된 이른바 영국 고든구원군을 다룬 영화가 히스 레저 주연의 '네 개의 깃털(The Four Feathers·2002)'이다.]

 

 그리고 이어서 "9세기 전 '코르도바'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영국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무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영국의 이익에 반하여 아랍을 위해 "지금이 다시 위대해질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로렌스의 비범한 식견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 파이살 왕자. [註: 코르도바(Cordoba)는 711년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 당한 후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완료된 15세기 말까지 7세기 반 동안 인구 50만 명에 이베리아 반도의 수도 구실을 한 번영의 도시였다. 중세의 유려한 이슬람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의 도시다.]

 

 그의 막사를 나온 로렌스는 사막을 걸으며 홀린 사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 곳은 물자를 하적할 수 있는 항구가 있는 곳이며 또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요새화된 곳으로 터키군 대포는 바다로 조준, 고정돼 있을 뿐 육지 쪽은 무방비 상태이므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 로렌스의 판단이었다. [註: 아카바(Aqaba)는 홍해의 북동단, 아라비아 반도의 최서단에 위치한 전략적 산업 도시로 '홍해의 신부(新婦)'로 불리는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이다. 1917년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이 곳을 T. E. 로렌스와 아우다 이부 타이가 주도한 '아랍 반란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지금은 와디 럼, 페트라와 더불어 요르단 3대 황금 관광지의 허브다.]

 

 로렌스는 파이살 왕자에게 50명의 정예 군인을 요청하는데 그 리더가 알리 족장이다. 물론 50명의 특공대가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카바를 점령함으로써 아랍에 돌아올 이익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조차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사막횡단을 이끈 것은 아라비아를 위하는 로렌스의 진심이었다.

 

 사막에 들어서기 전 오아시스에서 여장을 풀고 있는데 10대 고아소년인 다우드(존 디메치)와 파라지(미셀 레이)가 뒤따라와 로렌스의 하인이 되겠다고 한다. 그는 알리 족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몸종으로 고용한다. 로렌스는 장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듯 신분의 차이가 문제될 것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로렌스와 베두인 안내인 타파스(지아 모혜딘)가 파이살 왕자를 만나러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 허가 없이 마스투라 우물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안내인을 멀리서 장총으로 쏴 죽이고 나타나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왼쪽 로렌스 발 앞에 안내인에게 주었던 권총이 떨어져 있다.

 

▲ 로렌스가 안내자에게 선물로 주었던 권총을 챙기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로렌스로 상징되는 서구 문화와 알리로 상징되는 아랍 문화의 첫 충돌 장면이다.

 

▲ 터키군의 무장 경비행기 2대가 나타나 파이살 왕자의 진영을 무차별 공격한다. 현대식 무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랍군은 말과 낙타를 타고 칼로 무모하게 싸운다.

 

▲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하는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

 

▲ 사막에서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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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2
WWI 배경 영화(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

 

 제1차 세계대전 배경영화 시리즈 10편을 연재한지 거의 1년이 되었다. 이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소개하고 WWI 시리즈를 끝맺음 할까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차 대전 종전 후인 1918년으로,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열강이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오스만 터키 제국, 아라비아 반도 외 아랍 지역 간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무렵이다. 이 점에서 보면 WWI 시리즈의 후속 작품이라고 하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의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A Triumph·1935)'을 바탕으로 만든 역사적 대서사극이다. 제작비 1,500만 달러, 전세계 흥행수입 7천만 달러를 기록한 대작.

 

 이 영화는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던 작품으로 1991년 미의회도서관 소속 국립영화보관소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제작된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2007년) 중 7위에 올라있는 명작으로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있다.

 

 1962년 수퍼 파나비전 70mm 와이드 스크린. 컬럼비아사 배급. 제작 샘 스피겔. 각본 마이클 윌슨, 로버트 볼트. 감독 데이비드 린. 음악감독 모리스 자르. 촬영감독 프레디 영. 출연 피터 오툴, 알렉 기네스, 앤서니 퀸, 오마 샤리프, 앤서니 퀘일, 잭 호킨스, 클로드 레인즈, 아서 케네디, 호세 페레 등 호화 캐스팅.

 

\ 러닝타임이 222분이라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지는데 서곡이 있고 중간에 휴게시간이 있다.

 

영화는 1935년 T. E. 로렌스(피터 오툴)가 오토바이를 몰고 스피드를 즐기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자전거를 끌고오는 두 소년을 피하려다 사고로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 바울 대성당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 취재하기 위해 온 한 기자가 조문객들에게 이 베일에 가린 유명인 로렌스에 대해 탐문하지만 모두 코끼리 다리만지기 식으로만 알고 있다.

 

 장면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8년 카이로. 당시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오스만 터키 제국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을 무렵, 영국 정보국 소속의 육군 중위 로렌스는 지도를 그리고 동료들에게 성냥불을 손으로 끄는 장난을 해보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註: 이 성냥불 끄는 장면은 그의 다가올 운명에 대한 암시이기도 한데, 린 감독은 '라이언의 딸(1970)'에서는 오히려 성냥불을 켜는 장면으로 죽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때 아키벌드 머레이 장군(도널드 월핏)의 호출을 받고 간 로렌스가 인터뷰에서 아라비아에 대한 전략을 건의하자 장군은 처음에는 그를 건방지게 생각한다. 로렌스는 얽매이기 싫어하는 '개성' 때문에 명령에 복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다보니 오만하게 보일 뿐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고, 고고학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아랍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까지 능통하여 한마디로 박학다식한 장교이다. [註: 그는 당시 오스만 터키 지배하의 시리아를 3개월간 1,600㎞를 걸어서 답사하여 쓴 '유럽의 군사건축 양식에 십자군이 끼친 영향'이란 논문으로 옥스퍼드 대학을 수석 졸업한 인재였다.]

 

 그러나 아랍 정치자문관 드라이든(클로드 레인즈)이 "큰 일도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며 머레이 장군을 설득하여 오스만 터키에 대항하는 아랍 파이살 왕자의 참전 및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결국 로렌스에게 안내자 한 명을 붙여 3개월 간 아라비아 파견을 명한다.

 

 로렌스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카이로보다 매력적인 사막을 더 동경했다. 사막 횡단 여행 중 해돋이의 장관과 청량한 별과 은하수가 또렷한 밤하늘, 그리고 사구(砂丘)의 풍광은 너무 아름답다. CG도 없던 시절, 이런 장면들을 포착하기 위해 그렇게 제작 기간이 많이 걸렸으리라.

 

 로렌스의 베두인 안내인 타파스(지아 모혜딘)가 마스투라 우물 물을 마시는데 저 멀리 신기루 같은 물체가 다가온다. 한참 후에 실체가 나타난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는 허가 없이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멀리서 타파스를 장총으로 쏴 죽인다.

 

 로렌스가 "나도 마셨소. 그는 내 친구였소."라고 하자 "당신은 괜찮소. 그는 하찮은 인간이었소. 우물이 중요하지."라며 이름을 묻는 알리. 그러나 안내자의 죽음에 분노한 로렌스는 친구에게만 가르쳐준다며 자기는 '살인자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생명보다 귀한 물을 둘러싼 사막 부족 간의 오랜 영역싸움에 기인한 살상이다. 이방인 로렌스는 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지만 베두인이었던 안내인은 마실 수 없다는 얘기다.

 

 로렌스가 안내자에게 선물로 주었던 권총을 챙기고 떠나는 알리 족장에게 로렌스는 '아랍 부족끼리 서로 싸우는 한 힘을 키울 수 없다'며 '그 이유는 당신처럼 탐욕적이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라고 배짱 있게 말한다.

 

 그 말에 호감을 보인 알리가 다시 돌아와 여기서 하루 걸리는 파이살 왕자가 있는 와디 사프라까지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로렌스는 호의를 거절하는데…. [註: 우리는 여기서 로렌스로 상징되는 서구 문화와 알리로 상징되는 아랍의 문화가 첫 충돌을 일으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혼자서 두 낙타를 끌고 나침반에 의지하여 사막을 건너는 로렌스. 협곡을 지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메아리친다. 거기서 뜻밖에 파이살 왕자의 군사자문관인 브라이튼 대령(앤서니 퀘일)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대뜸 부하인 로렌스에게 메디나 전선에서 터키군에게 완패하여 아랍인들의 사기가 꺾인 상황이니 입다물고 조용히 평가만 하고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때 터키군의 무장 경비행기 두 대가 나타나 파이살 왕자의 진영을 무차별 공격한다. 현대식 무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랍군은 말과 낙타를 타고 칼로 무모하게 대항하는데….

 

 그 와중에 브라이튼 대령과 로렌스 중위가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를 알현(謁見) 한다. 파이살 군대는 자문관인 브라이튼 대령의 지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962)' 영화포스터

 

▲ 1935년 T.E. 로렌스(피터 오툴)가 오토바이를 몰고 스피드를 즐기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사고로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 성냥불을 손으로 끄는 장난을 해보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는 로렌스(맨 우측). 이 장면은 그의 다가올 운명에 대한 암시이다.

 

▲ 아랍 정치자문관 드라이든(클로드 레인즈)이 머레이 장군을 설득하여 로렌스에게 3개월 간 아라비아 파견을 명한다.

 

▲ CG도 없던 시절, 자연 그대로의 사구(砂丘)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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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WWI 배경 영화 (X)-‘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5.끝)

 

(지난 호에 이어)

 이 사건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형과 동생은 앙금을 풀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동안 냉대했던 장남 알프레드를 힘껏 끌어 안는다. 그리고 크게 웃는다. 다시 방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트리스탄은 마지막으로 형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알프레드는 '영광'이라며 기꺼이 받아준다.

 

 단칼이 춤을 추며 죽은 세 녀석들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그가 직접 죽인 게 아니기 때문에 두피를 벗길 수 없어 그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그날 밤 우리는 시체와 차를 미주리 주 어느 깊은 웅덩이에 버렸다." 이로써 알프레드의 정치적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제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단칼의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시간은 흐르고 트리스탄이 사랑했던 거의 모든 이들이 마치 바위같은 그에게 부딪쳐 깨져 버리듯이 일찍 죽었다. 이때 장면은 빼곡히 들어찬 가족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오래 못 살거란 자기의 예상이 틀렸고, 그 자식들의 가정까지 지켜보면서 존경받는 긴 삶을 살았단다. 그는 야생의 삶을 살았고 사냥이 한창이던 북부에서 1963년 9월에 죽었다고 한다. 어느 숲에서 곰과 대결을 벌이다가 다시 자연으로 영원히 돌아간 장려한 죽음이었다고. 그의 무덤은 찾을 수 없으나 그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거라며 '가을의 전설'은 전설처럼 막을 내린다.

 

 영화 "가을의 전설"은 시대가 길고 이야기가 방대한 만큼 단 몇 줄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잔나라는 한 여인을 둘러싼 삼 형제의 운명과 한 가문의 몰락을 애절한 주제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배경과 서사적인 스토리, 등장인물들의 촘촘한 감정선이 어우러져 스산하고 처연한 가을 분위기의 전설로 끌어간 명작이다.

 

 특히 야성미 넘치는 풍운아이자 수잔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사로잡는 주인공 트리스탄을 비롯하여 삼형제를 다 거쳐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수잔나는 뇌리에 오래오래 남는다.

 

 하지만 가장 슬픈 이는 장남 알프레드가 아니었나 싶다. 동생 때문에 아버지로부터도,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진정한 사랑은커녕 냉대와 홀대를 받으며 갈등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은 역설적으로 원칙에 충실하며 대의를 위해 깨끗하게 사는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일까….

 

 트리스탄 역의 브래드 피트(Brad Pitt·58)는 이 영화에서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1992)'에서 첫 주연을 맡고, 톰 크루즈와 공연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를 거쳐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2002년에 영화사 'PLAN B'를 설립하여 '노예 12년(12 Years a Slave·2013)'의 제작자로써 작품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및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0)'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2019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까지 25년여의 배우 생활 동안 50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했다.

 

 2005년 영화 'Mr. & Mrs. Smith'에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46)와 공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연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사실혼 관계로 있다가 2012년 4월13일 약혼하고 2014년 8월23일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했다.

 

 사실혼 관계에 있을 때인 2006년 5월27일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졸리는 피트의 딸 샤일로 누벨 졸리-피트를, 2년 후인 2008년 7월12일에 이란성 쌍둥이 아들 녹스 레온 졸리-피트와 딸 비비엔 마르셀린 졸리-피트를 프랑스 니스에서 출산했다.

 

 이 3명의 친자녀 외에 2002년 캄보디아 태생의 매독스 치반(남·20), 2005년에 에티오피아 태생의 자하라 말리(여·16), 2007년에 베트남 태생의 팍스 티엔(남·18)을 법적 자녀로 입양하여 현재 3남3녀를 키우고 있다.

 

 2006년에 졸리-피트 재단(Jolie-Pitt Foundation)을 설립하여 아프리카,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에 거주지, 수자원, 교육, 의료 시설 등을 지원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수잔나 역의 줄리아 오먼드(Julia Ormond·56)는 영국 배우로 1993년 '마콘의 아기'로 영화에 데뷔했고, 1995년 빌리 와일더 감독의 '사브리나(1954)'를 리메이크한 시드니 폴락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인 사브리나 페어차일드 역으로 전격 캐스팅되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서 캐롤린 풀러 역으로 잘 알려진 청순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그녀는 2005년 12월 유엔친선대사로 활동했고, 2007년 '노예 및 인신매매 방지 동맹(ASSET)' 기구를 설립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에이던 퀸(Aidan Quinn·62)은 아일랜드 출신 배우로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 1984년 'Reckless'로 데뷔. '수잔을 찾아서(1985)'에서 마돈나와 공연한 데즈 역, '미션(1986)'에서 로드리고 멘도사(로버트 드 니로)의 동생 펠리페 멘도사 역, 2011년 '언노운'에서 마틴B 역 등으로 우리와도 안면을 튼 배우.

 

 퀸은 스포츠광으로 시카고 야구팀인 시카고 커브스, 위스콘신 풋볼팀인 그린 베이 패커스, 농구 마이클 조던, 테니스 로저 페더러, 프로 골퍼 로리 매킬로이 등을 후원하고 있다.

 

 끝으로 이 영화에 출연하는 곰은 실제의 곰으로 이름이 바트 더 베어(Bart the Bear, 1977~2000)이다. 소유주이며 조련사인 덕과 린 세우스 부부가 유타 주 허버 시에 있는 Wasatch Rocky Mountain Wildlife Ranch에서 키운 곰이다. 바트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1988년 영화 'The Bear'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Labatt Blue, Tums, Kodiak 등의 기업광고에도 등장하였다.

 

 키 290cm, 몸무게 680kg의 바트는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연하여, 사회를 보던 마이크 마이어스에게 수상자 명단 봉투를 건네주기도 하여 사랑을 받았다. 2000년 5월10일 오른쪽 발톱에 생긴 종양이 퍼져 23살에 안락사하여 세우스 랜치에 묻혔다.

 

 세우스 부부는 바트가 죽기 전 2000년생인 알래스카 갈색곰을 사들여 같은 이름을 붙이고 'Little Bart'라고 부르며 1990년 몬태나에 설립한 'Vital Ground' 재단에서 훈련을 시키고 있다. <끝>

 

▲ 수잔나(줄리아 오스먼드)가 화장대에서 곱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트리스탄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권총으로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

 

▲ 트리스탄의 복수전에 대비하는 단칼(고든 투투시스)과 로스코 데커(폴 데스몬드). 단칼은 아들 새뮤얼을 티피에 데리고 가서 인디언 치장을 해주며 의식을 치르고, 데커는 높은 언덕에 숨어서 경찰차와 경찰관을 장총으로 정확히 저격한다.

 

▲ 존 T. 오베리언(로버트 위즈든)과 티너트 보안관(케네스 웰쉬)과 기관총을 든 경찰이 들이닥쳐 모두 인질로 붙잡는다.

 

▲ 긴 외투 속에 감춰온, 트리스탄이 선물했던 장총으로 먼저 오베리언을 저격한 뒤 곧바로 기관총을 든 경찰을 향해 불을 뿜는 러드로우 대령(앤서니 홉킨스).

 

▲ 세 악당 중 마지막 남은 보안관을 사살하는 알프레드(에이던 퀸). 이 일로 트리스탄과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고, 동생의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쾌히 승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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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9
WWI 배경 영화 (X)-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4)

 

 [註: 알 카포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든 술을 '밀주'라고 부르던 인간들이, 그걸 은쟁반에 담아서 내놓으니까 '접대'라고 부르면서 기뻐한다. 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정치인들처럼 비싼 옷을 입고 개소리를 지껄이는 한심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법으로 금지가 되니까 사람들은 그로 인해 생긴 술의 희소성에 집착해 오히려 전보다 더 마셔댔고, 그런 행위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마피아를 필두로 한 불법적인 세력들이 손을 뻗쳐서 그들에게 막대한 자금력과 힘을 실어주는 등 금주법은 긍정보다는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어느 날, 트리스탄 식구와 페트 데커 부인 그리고 단칼이 밀주 사업차 헬레나로 간다. 아들 새뮤얼 데커 러드로우(데이비드 케이)를 목말을 태우고 가던 트리스탄 일행은 길거리에서 형 알프레드 부부를 만난다. 수잔나는 '새뮤얼'이라는 이름에 옛추억을 떠올리고, 예쁜 딸 이자벨(크리스틴 하더)을 안아보며 마치 자기 아이인 것처럼 느끼는 듯하다. 옛날에 그녀가 트리스탄에게 아들을 낳으면 새뮤얼, 딸을 낳으면 이자벨이라고 이름 짓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이 장면도 참 애련하다!

 

 헬레나 시내에서 가게에 밀주를 공급하고 돈을 받아 챙긴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이를 엿본 제임스 오베이넌과 보안관 및 경찰들에 의해 바위계곡의 좁다른 산길에서 검문을 받는 트리스탄 일행.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한 경찰관이 바위 절벽으로 기관총을 난사하고, "당신이 금주법에 위배되는 물건들을 유통한 정보가 있소."라고 검문 이유를 말한다.

 

 이에 트리스탄이 차에서 내려 "제 아버지를 위한 위스키 얘기라면 맞소"라고 말하는 순간 데커 부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차에 타고 있던 이자벨이 산 절벽으로 발사한 총의 유탄에 맞아 절명한 것이다.

 

 이에 분개한 트리스탄이 그 경찰관을 개 패듯 반쯤 죽여 놓지만 중과부적으로 오베이넌의 곤봉세례를 맞고 쓰러진다. 그의 안주머니에서 아까 받은 돈봉투를 빼앗아 돌아가는 제임스 오베이넌과 그 일당들.

 

 이자벨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니 형 알프레드가 와있다. 형은 동생에게 '정말 끔찍한 비극'이라며 눈물로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대령은 보고 싶지 않다며 돌아서 버린다. 이자벨의 죽음 때문에 또 정부를 원망하기 때문이리라.

 

 알프레드는 동생이 때린 경찰관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며 이해는 하지만 죄값은 치러야 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총을 쏜 그 녀석은 재판을 받아야 하고 오베니언 형제들은 '무죄'라며, 자신도 모르게 말려든 것이기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알프레드. 이에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는 트리스탄….

 

 폭행죄로 한 달 간 구류처분을 받고 감옥에 있는 트리스탄에게 수잔나가 면회를 온다. 그녀는 '여성의 의무'에 대해 처음으로 연설을 했단다. 잘 만나지질 않지만 이렇게라도 보니까 좋다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수잔나. 둘은 철창 너머로 포옹한다. 그가 선물했던 팔찌를 차고 있는 그녀는 "아직도 당신 아이들의 엄마인 꿈을 꾼다"고 말한다. 그러나 알프레드가 있는 집으로 가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트리스탄. 하지만 이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드디어 출옥한 트리스탄은 원주민 단칼 및 데커와 함께 이자벨의 복수에 나선다. 이때 장면은 네 가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숨가쁜 순간들을 보여준다.

 

 첫째는 단칼이 트리스탄의 아들 새뮤얼을 티피(천막집)에서 트리스탄의 어렸을 적처럼 그의 얼굴에 인디언 분장을 해주고 노래를 부르며 의식을 치르고 있다.

 

 둘째 장면은 로스코 데커가 높은 언덕에 숨어 있다가 저멀리 지나가는 경찰차와 경찰관을 장총으로 정확히 저격한다.

 

 셋째 사건은 트리스탄이 제임스 오베리언의 밀주 창고에 잠입해 그를 때려눕히고 그의 얼굴을 칼로 살짝 긁는 선에서 그친다. 한데 그가 역습으로 트리스탄을 죽이려고 달려들자 그를 벽쪽으로 밀어붙이는데 그만 네 갈퀴의 쇠스랑에 찔려 그는 피를 토하고 죽는다.

 

 넷째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이다. 수잔나가 화장대에서 곱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그리고 트리스탄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 기구한 운명에 절망하여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수잔나의 트리스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인정한 알프레드는 트리스탄에게 수잔나를 보내주겠다는 편지와 함께 그녀의 시신을 관에 넣어 보낸다. 그녀의 시신은 새뮤얼과 이자벨이 묻힌 가족묘에 안치된다.

 

 형이 트리스탄에게 말한다. "나는 원칙을 따르며 살아왔지. 인간과 신의 원칙. 넌 그 어떤 것도 따르지 않았지. 그러나 모두 너를 더 사랑했지. 새뮤얼, 아버지 그리고 내 아내까지도…"

 

 한편 삼 형제의 사진을 보고 있는 트리스탄. 수잔나가 처음 몬태나 농장으로 오던 날 찍었던 색바랜 사진이다. 추억을 간직한 채 또 방랑길에 오르려는 트리스탄. 떠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말한다. "새뮤얼이 죽었을 때 저는 신을 저주했었죠. 모두를 원망했지요. 저 자신까지도요." 아버지는 "넌 잘못없어. 절대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출발하려고 집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에 들이닥친 존 T. 오베리언과 티너트 보안관과 기관총을 든 경찰에 의해 모두 인질로 붙잡혀 있다. 그리고 오베리언이 어린 새뮤얼에게 권총을 내보이며 "이게 바로 신사의 총이다. 작지만 훨씬 강력하지. 너도 크면 강해지고 싶지. 이 총처럼."이라고 어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트리스탄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니고 피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다. 트리스탄은 아들이 보게 할 순 없으니 숲으로 데려가 죽이라며 데커 부인으로 하여금 새뮤얼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이때 러드로우 대령이 어눌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언성을 높이며 거실에서 절뚝거리며 걸어 나온다. 이를 비웃는 오베리언 일당들…. 그러나 그 순간 투박한 긴 외투 속에 감춰온, 트리스탄이 선물했던 장총으로 먼저 오베리언을 저격한 뒤 곧바로 기관총을 든 경찰을 향해 불을 뿜는다.

 

 그때 타이너트 보안관이 권총으로 대령을 쏘려하자 트리스탄이 몸을 날려 아버지를 커버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그런데 한 방의 총성과 함께 보안관이 쓰러지는 게 아닌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알프레드가 나타나 장총으로 쏜 것이다. 장남 알프레드의 극적인 도움으로 악의 무리를 물리치면서 트리스탄 등 러드로우 가족과 원주민 친구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 결혼식을 올리는 트리스탄(브래드 피트)과 이자벨2세(카리나 롬바르드). 아들 새뮤얼과 딸 이자벨을 낳는다.

 

▲ 아들 새뮤얼 데커 트리스탄(데이비드 케이)을 목말을 태우고 가던 트리스탄 일행은 길거리에서 형 알프레드 부부를 만난다.

 

▲ 수잔나는 '새뮤얼'이라는 이름에, 트리스탄과 아들을 낳으면 새뮤얼, 딸을 낳으면 이자벨이라고 이름 짓자고 약속한 옛추억을 떠올리는 듯하다. 참 애련한 장면이다!

 

▲ 제임스 오베이넌(존 노박)과 결탁한 타이너트 보안관(케네스 웰쉬) 일행이 좁다른 산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한 경찰관이 바위 절벽으로 기관총을 난사한다.

 

▲ 데커 부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차에 타고 있던 이자벨이 산절벽으로 발사한 총의 유탄에 맞아 절명한 것이다.

 

▲ 감옥을 찾아온 수잔나(줄리아 오스먼드)는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철창 너머로 포옹한다. 트리스탄이 준 팔찌를 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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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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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2
WWI 배경 영화 (X)-‘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3)

 

(지난 호에 이어)

 단칼의 내레이션 - "그것은 깊고 어두운 비밀스런 그의 안에서 들려온 곰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트리스탄은 다시 내면의 야수성을 드러내면서 정처없는 유랑길을 떠나려고 한다. 연인이 자신 곁에 있길 바라면서 수잔나는 여자로서의 결정적인 질문을 한다. "아이가 있다면, 아님 내가 임신 중이라도 떠나겠냐?"고…. 그러나 트리스탄의 대답은 "예스". 그럼에도 "영원히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수잔나!

 

 아버지와 수잔나, 원주민들의 배웅을 받고 말을 타고 떠나는 트리스탄을 이자벨 데커가 한참을 뒤쫓아 간다. 오로지 '단칼'만이 그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1918년 4월20일, 수잔나가 트리스탄에게 보내는 편지. 소 값은 떨어지고 겨울은 끝없이 이어진다. 수잔나는 이자벨을 데리고 헬레나에 있는 알프레드를 방문한다. 그는 시카고, 워싱턴에도 투자하는 등 잘 나가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이자벨을 시카고 기술학교에 보내려 하나 그녀는 농장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아마 트리스탄을 기다리기 때문인 듯.

 

 1919년 12월12일. 트리스탄이 수잔나에게 보낸 편지. 화면은 야생마같은 모습으로 변해 사냥꾼으로 생활하고 있는 트리스탄을 보여준다. 그의 편지는 석 줄의 짤막한 내용 ― "우리 사랑이 끝났듯이 나도 죽은 것이오. 다른 사람과 결혼해요!"

 

 한편, 알프레드가 미합중국 하원의원 출마에 즈음하여 아버지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다른 정치인들과 함께 농장을 방문한다. 그러나 대령은 자신이 종군한 인디언 전쟁에서 죄없는 마을을 쓸어버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싸그리 죽이라고 명령한 정부를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혜도 상식도 인간성도 없는 정부를 비난하며 아들에게 "진정으로 순수한 애국심에서 네 가치를 믿고 널 밀어준다고 생각하는가 자문(自問)해 봐라!"고 충고하며 매몰차게 협조를 거절한다. 이에 러드로우 대령의 아들로서 지혜와 인간성을 찾게 하겠다고 공언(公言)하는 알프레드!

 

 아버지에게 거절 당하고 집을 나서던 알프레드는 마침 트리스탄에게서 온 결별 통보의 편지로 실의에 빠진 수잔나를 발견하고 그녀를 위로한다. 그때 이 광경을 목격한 대령이 동생의 아내를 건드린다고 흥분하여 "동생 새뮤얼은 군인이길 선택했으나 정부가 그를 도살장에 보내 죽인 거다. 너같은 기생충들이!"라며 "벼락 맞을 놈, 망할 놈 같으니"라고 욕을 퍼붓는다. 그제서야 트리스탄의 편지를 보여주는 알프레드.

 

 수잔나는 마침내 알프레드와 결혼한다. 이 사건 이후 알프레드는 아버지와 대립하게 되어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평화로웠던 가정. 세 아들과 아름다운 여인은 떠났고, 대령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집안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몇 해의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이 찾아온 어느 날, 수십 마리의 말떼를 몰고 말쑥한 신사복 차림으로 돌아오는 트리스탄. 그러나 그 사이 중풍에 걸린 아버지는 말을 못해 목에 건 조그만 흑판에 '행복하다'고 적는다.

 

 아버지에겐 최신 윈체스터 장총을, 단칼에겐 '자비의 천사'라는 유명인이 만든 멧돼지 송곳니 목걸이를 선물한다. 그리고 데커 부부에게도 선물한 다음, 이자벨과 수잔나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고 말하자 갑자기 조용해진다. 로스코 데커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수잔나는 몇 년 전에 알프레드와 결혼했으며 하원의원이 돼 헬레나의 큰 저택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쟁 직후 소값이 최저로 내렸지만 제때에 조치를 하지 않아 거의 전재산을 잃어버렸음에도 대령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령이 필담으로 알프레드가 '금주법'에 찬성했다고 알리자 트리스탄이 밀주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는데, "조심만 한다면 밀주는 수입이 좋지. 정부놈들 골탕 좀 먹여봐!"라고 오히려 격려하는 대령. [註: '금주법(禁酒法, Prohibition Act)'은 1919년 1월16일 비준된 수정헌법 제18조와 볼스테드 법(Volstead Act)에 의해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을 못하게 하였고, 1933년 12월5일 미국 수정 헌법 제21조가 수정헌법 제18조를 대체하면서 폐지되었다. 이 금주법 시기에 마피아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가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이 흑역사의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 'The Untouchables(1987)' 등이 있다. 또 '초원의 빛(1961)'에는 이 시기에 밀주 클럽 'speakeasy club'을 만든 여장부 텍사스 귀난(Texas Guinan, 1884~1933)이 등장하기도 했다.]

 

 헬레나에 가서 수잔나를 만나는 트리스탄. "당신을 영원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고 말하는 수잔나가 그가 선물했던 팔찌를 돌려주려 하자 '마법의 팔찌'라며 되돌려주는 트리스탄. 아직도 마음 속으로 트리스탄을 사랑하고 있던 그녀는 에둘러 형을 만나겠냐고 묻는다.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며 안부 전하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며 떠나는 트리스탄….

 

 사랑했던 연인을 마주했지만 이제 형의 아내, 즉 형수가 된 수잔나 역의 줄리아 오먼드의 안타까운 표정 연기가 빛을 발하고 심금을 울린다. 영화 첫 장면에서 맘껏 소리내 웃는 웃음이 좀 천박하지만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애교 웃음으로 들리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비련의 여인이 되어 눈물이 많아졌다.

 

 수잔나에 대해 남아있던 미련을 체념하고 자신이 너무 늦었음을 인정한 트리스탄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좋아해왔던 원주민 데커 부부의 딸 이자벨(카리나 롬바르드)을 만나 준비했던 선물을 준다. 그리스 크레타섬의 이에라페트라 산(産) 반지이다.

 

 1921년 6월2일 어머니 이자벨이 돌아온다. 트리스탄과 결혼할 20살의 신부, 이자벨 2세의 웨딩드레스를 선물로 가져왔다. 드디어 아들이 태어나자 '새뮤얼 데커 러드로우'라고 동생 이름을 붙였다. 수잔나의 축하편지에는 자기는 아기를 갖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후 또 딸을 낳으면서 이렇게 트리스탄은 행복하게 사는가 했는데….

 

 때는 금주법 시대였고, 캐나다산 스카치 위스키를 몰래 반입하여 마을 가게에 공급하던 트리스탄은 경쟁자인 존 T. 오베이넌(로버트 위즈든)과 제임스 오베이넌(존 노박) 형제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타이너트 보안관(케네스 웰쉬)으로부터 협박을 당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아버지에게 거절 당하고 집을 나서던 알프레드(에이던 퀸)는 트리스탄의 편지 때문에 실의에 빠진 수잔나를 위로하는데, 이를 본 아버지로부터 욕지거리를 당하지만, 결국 수잔나와 결혼한다.

 

▲ 원주민 가족들이 트리스탄의 귀향을 보고 기뻐한다. 왼쪽부터 이자벨(카리나 롬바르드), 페트 데커(탄투 카디널), 로스코 데커(폴 데스몬드), 단칼(고든 투투시스).

 

▲ 트리스탄이 돌아오자 중풍에 걸린 아버지(앤서니 홉킨스)는 말을 못해 목에 건 조그만 흑판에 '행복하다'고 적는다.

 

▲ 트리스탄에게 "조심만 한다면 밀주는 수입이 좋지. 정부놈들 골탕 좀 먹여봐!"라고 격려하는 대령(앤서니 홉킨스).

 

▲ 왼쪽부터 페트 데커(탄투 카디널), 딸 이자벨2세(카리나 롬바르드), 단칼(고든 투투시스), 어머니 이자벨(크리스티나 피클스), 러드로우 대령(앤서니 홉킨스), 로스코 데커(폴 데스몬드). 이자벨이 선물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이자벨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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