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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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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WWI 배경 영화 (X)-'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

 

 제1차 세계대전(WWI) 배경 영화 시리즈의 열 번째로 '가을의 전설'을 꼽아보았다. 이 영화는 188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의 긴 시간대에 걸쳐, 미국 몬태나 주의 한 농장에 정착한 러드로우 가문(The Ludlows)이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굳이 WWI 카테고리에 넣은 까닭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평화롭고 부요(富饒)하던 러드로우 집안의 비극과 쇠락이 이 전쟁으로 인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원작은 짐 해리슨(Jim Harrison, 1937~2016)의 동명의 소설. 해리슨은 세 편의 단편을 묶어 그 제목 중 하나인 '가을의 전설'을 타이틀로 하여 1979년 출간했는데, 이 작품의 탄생 이면에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그는 부도가 난 상태였는데 그 얘기를 들은 그의 친구이자 유명 배우인 잭 니콜슨이 3만 달러를 송금해 줌으로써 이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1994년 트라이스타 픽처스 제작 및 배급. 감독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의 제작자 및 '영광의 깃발(1989)' '라스트 사무라이(2003)' 감독으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69). 출연 브래드 피트, 앤서니 홉킨스, 에이던 퀸, 줄리아 오먼드, 헨리 토머스 등.

 

 음악감독은 1995년 작 '브레이브하트' 및 '아폴로 13'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 및 '아바타(2009)' 등으로 유명한 제임스 호너(James Horner, 1953~2015). 러닝타임 133분.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존 톨)을 수상하고, 미술상 및 음향상이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원제 'Legends of the Fall'에서 'fall'을 우리나라 및 프랑스(Legendes d'automne)에서는 '가을'로 해석한 반면, 독일에서는 '열정의 전설(Legends of Passion)'로, 중국에서는 독일어와 어감이 비슷한 '연정세월(燃情歲月)'로 옮기는 등 오역의 논란이 있었다.

 

 어쨌든 영화 내용상 단란했던 러드로우 가문이 전쟁을 겪으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 과정이 마치 풍요의 계절이 끝나고 적막하고 쓸쓸한 가을로 접어드는 느낌이라 '가을의 전설'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단칼(One Stab)'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어떤 이는 크고 분명하게 자신의 내부 소리를 듣고, 들리는 그대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전설이 된다."며 늙은 단칼(고든 투투시스)의 회상이 나온다. 트리스탄이 태어나던 9월은 혹독하게 추워 그의 어머니 이자벨(크리스티나 피클스)은 거의 죽어가며 그를 낳았다.

 

 육군 대령이던 아버지 윌리엄 러드로우(앤서니 홉킨스)가 핏덩이 트리스탄을 단칼에게 데려와 그를 안고 밤을 지샜단다. 그가 성장함에 따라 단칼은 사냥의 기쁨을 가르쳤고, 짐승의 뜨거운 심장을 쥘 때 그들의 영혼은 비로소 자유가 된다고 가르쳤다. 러드로우 대령은 트리스탄(키건 매킨토시)을 가장 아꼈다.

 

 대령은 미합중국 정부의 인디언을 학살하는 정책에 불만을 느끼고 스스로 퇴역한 후, 몬태나 주의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외딴 농장에 정착하여 새 삶을 시작하였다. [註: 실제 촬영지는 캐나다 알버타 주 로키 산맥이다.]

 

 장남 알프레드(랜덜 슬래빈)는 나이보다 성숙했고, 형들은 막내 새뮤얼(덕 휴즈)에게 뭐든 해주며 그를 보물처럼 아꼈다. 천혜의 자연에서 숲과 들판을 뛰놀던 소년들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밝고 씩씩하게 성장했다. [註: 이 영화에는 아역 배우가 따로 캐스팅 됐는데, 특히 트리스탄 역에는 성장 시기에 따라 두 명의 아역 배우가 등장한다.]

 

 특히 둘째 트리스탄(에릭 존슨)은 남들처럼 기다리지 않고 그의 운명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어느 날 아버지와 단칼과 함께 사냥을 나섰다가 혼자서 곰의 습격을 받자 단검으로 곰의 발톱을 찍어 날카로운 곰발톱 하나를 증거로 남긴다. 이로써 "곰과 피를 나누면 평생 방랑을 하게 된다"는 인디언의 저주에 따라 트리스탄은 야수성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어머니 이자벨은 겨울은 잔인하다며 집을 떠났는데 그 후 가족을 만나러 거의 오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어머니에게 많은 편지를 썼지만 트리스탄은 말하기도 싫어했다.

 

 지금까지 단칼의 내레이션으로 188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 간의 옛이야기를 끝내고 장면은 1913년 4월13일 시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훌쩍 자라 다들 청년이 된 어느 날, 해맑고 의협심 강한 막내 새뮤얼(헨리 토머스)이 하버드대 어느 강연에서 만난 약혼녀 수잔나 핀캐논(줄리아 오먼드)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모범생인 장남 알프레드(에이던 퀸), 강하고 열정적인 성격과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차남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등 모두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수잔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새뮤얼이 '여명과 안개'를 노래한다.

 

 "저녁이 되자 한 소녀가 나무 옆에 서서 손에 말고삐를 들고 있네. 이렇게 고운 소녀를 봤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멋진 음성의 속삭임. 그녀는 다른 이에 속했구나. 그래, 그녀는 영원히 여명과 안개(Twilight and Mist)에 속했구나."

 

 삼 형제 사이에서 수잔나가 겪을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이 가사의 선율은 바로 제임스 호너가 작곡한 주제곡으로 영화 전반에 걸쳐 변주되며 애잔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곡이다.

 

 러드로우 대령은 남자들만 있는 이 집에 교양있는 여성이 다시 오니 얼마나 기쁘고 이상한 느낌인지 모르겠다며 그 애들과 함께 있으니 깊고 잔잔한 만족감이 충만 돼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중얼거린다.


 수잔나는 평화로운 농장에서 말타는 법, 총 쏘는 법 등을 배우며 새뮤얼의 약혼녀이면서도 트리스탄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데….

 

 그러나 당시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새뮤얼은 캐나다군에 입대하겠다고 나선다. 이를 말리지 못한 수잔나는 트리스탄에게 대신 못 가게 막아달라며 그의 품에 안겨 우는데, 그때 알프레드가 이 광경을 목격하여 형제간의 오해와 갈등이 시작되고….

 

 1914년 10월14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새뮤얼이 전쟁에 참가한다. 대령의 아들들답게 세 형제는 단칼과 함께 아버지와 약혼녀 수잔나를 남겨두고 모두 전쟁에 참가한다. (다음 호에 계속)

 


▲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994)' 영화포스터

 

▲ 러드로우 삼형제는 창으로 물고기를 잡는 등 천혜의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밝고 씩씩하게 성장했다.

 

▲ 떠나는 어머니를 배웅하는 어린 삼형제. 왼쪽부터 장남 알프레드(랜덜 슬래빈), 차남 트리스탄(에릭 존슨), 막내 새뮤얼(덕 휴즈).

 

▲ 막내 새뮤얼의 약혼녀 수잔나 핀캐논(줄리아 오먼드)이 러드로우 대령(앤서니 홉킨스)과 함께 농장으로 가고 있다.

 

▲ 저녁식사 후 수잔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새뮤얼(헨리 토머스·맨우측)이 '여명과 안개(Twilight and Mist)'를 노래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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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5
WWI 배경 영화 (IX)-'영광의 길'(Paths of Glory)(하)

 

(지난 호에 이어)

 한편 세 명의 병사들이 감방에 갇혀 있을 때 덱스 대령이 찾아와 마지막 대면을 하는 모습은 애처롭다.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해 까닭없이 죽어야 하는 무고한 병사들은 말한다. "내일 아침이면 여기 있는 바퀴벌레는 살아남고 우리는 죽는다!…"

 

 다음날 청명한 새벽 사형장. 페롤 일병은 흐느끼며 눈가리개를 원하지만 파리 상병은 거부한다. 로제 중위의 어색한 사과에 대해 말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파리 상병… 한편 아르노 일병은 간밤에 감옥에서 싸움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들것에 실려 나왔지만 남자답게 죽기 위해 나무판자로 몸을 묶고 처형대에 선다.

 

 이때 신의 대리인인 뒤프레 신부(에밀 마이어)가 등장하여 마지막 기도를 한다. 진정한 위안을 주지 못하는 종교가 과연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남긴 채… 로제 중위가 "준비, 조준, 발사!"를 외친다. 드디어 희생양으로 결정된 세 병사는 총살 당하고 만다.

 

 처형 후 브롤라드 장군은 미로 장군과 덱스 대령을 부른 조찬 자리에서, 덱스 대령의 고발을 근거로 미로 장군에게 사퇴를 요구한다. 미로 장군이 "속죄양이 됐다"며 "자네의 뒷통수를 칠 사람도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화를 내고 나가자 브롤라드 장군은 덱스 대령에게 미로 장군의 자리를 맡기려고 한다. 의아해하는 덱스 대령에게 "이것이 자네가 바란 바가 아니었나? 계획대로 훌륭하게 이루어졌다네!"라고 말하는 브롤라드 장군….

 

 이 말에 분노한 덱스 대령은 장군에게 험한 말을 내뱉고, 브롤라드 장군이 대노하여 사과를 요구하자 "제가 솔직하지 못한 것, 제가 진심을 드러내지 않은 것, 당신을 타락자이며 잔혹하고 교활한 늙은이라고 말하지 않은 점을 사과 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사과하기 전에 당신은 영원히 지옥에 갈 겁니다!"라고 일갈한다.

 

 브롤라드 장군이 그런 덱스 대령을 "군인이 아니라 시골뜨기 이상주의자"라고 힐책하면서 "우린 전쟁 중이고 전쟁은 이겨야 하는 거야. 그 병사들은 싸우지 않았기에 사형에 처해졌고, 자네가 미로 장군을 고발해서 나는 그를 문책했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라고 이죽거리자 덱스 대령은 "장군님이 그 해답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라고 답한다. [註: 여기서 프로이센의 군인이며 군사학자로 '전쟁론'을 썼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가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전쟁의 심리적·정치적 측면을 강조한 이 말은 전쟁의 본질을 꿰뚫은 명언이다.]

 

 장면은 바뀌어 처형 이후 덱스 대령의 일부 병사들이 선술집에 모여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있다. 카페주인(제리 하우스너)이 흥을 돋우기 위해 겁에 질린 독일 여자 가수(수잔느 크리스티안)를 소개하며 노래를 주문한다. [註: 독일 배우인 본명 크리스티아네 하를란(89)은 이 영화를 계기로 다음해인 1958년에 큐브릭 감독과 재혼하여 딸 둘을 낳고 그가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첫 딸 아냐 레나타는 암으로 2009년에 50세로 사망했고, 비비안 바네사(61)와 전 남편에게서 난 딸 카테리나(68)가 있다. 크리스티아네는 미술가로 큐브릭의 많은 영화, 예컨대 '아이즈 와이드 셧' 등의 장면에 그녀의 그림들이 삽입되었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자를 보고 야유를 보내며 시끌벅적 떠들던 군인들은 그녀가 감상적 독일 민요인 '충실한 군인(The Faithful Hussar)'을 부르자 집중하기 시작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콧노래로 흥얼거리다가 드디어 그녀처럼 눈물들을 흘린다. 국적도 신분도 계급, 지위도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여성(모성)을 통해 내면에 잠재돼 있던 순수한 인간성이 발현된 때문이리라. [註: 이 노래는 '충실한 군인(Der treue Husar)'이라는 독일 전통민요로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으나 1825년 이래로 여러 버전이 존재하다가 1920년대에 쾰른 축제 때부터 지금의 형태로 전해지게 됐다고 한다. 내용은 전쟁터에 있던 한 젊은 병사가 사랑하는 연인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그녀가 위급하다는 급보를 받고서야 찾아가서 임종을 지켜본다는 슬픈 내용이다.]

 

 덱스 대령은 바깥에 서서 노래를 들으며 엷은 미소를 짓는데, 마치 미로 및 브롤라드 장군을 비롯한 장성들에 대한 혐오감과 환멸을 느끼는 듯하다. 이때 충직한 불랑제 상사(버트 프리드)가 찾아와서 전선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고 알린다. 덱스는 술집에 있는 부하들에게 시간을 좀 더 주라는 명령을 하고는 표정이 굳어지는데, 이때 음악이 첫 장면과 같이 스네어 드럼 소리로 바뀌고 문을 박차고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과연 덱스 대령이 가는 길은 달콤한 영광의 길인가, 가시면류관의 길인가, 아니면 토머스 그레이가 말한 무덤으로 가는 길인가?…

 

 이 영화는 1992년에 미의회도서관에 의해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심미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미국립영화등기소(NFR)에 영구 보존되었다.

 

 브롤라드 장군 역의 아돌프 멘쥬(Adolphe Jean Menjou, 1890~1963)는 헬렌 헤이스, 게리 쿠퍼 주연의 '무기여 잘 있거라(1932)', 마를렌 디트리히, 게리 쿠퍼 출연의 '모로코(1930)' 그리고 재닛 게이너, 프레드릭 마치 주연의 '스타 탄생(1937)' 등으로 기억되는 미국 배우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감독은 주로 전쟁 이야기를 많이 제작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에서는 전쟁은 불합리하고 코미디같은 무의미한 소극(笑劇)임을, '공포와 욕망(Fear and Desire, 1953)'에서는 전쟁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인해 군인들이 정신적 붕괴를 일으켜 민간인에 대해 미친 듯이 전쟁 범죄를 저지를 수 있으며, 그 결과 보수 높은 직장으로 보는 전쟁의 목적이 절멸(絶滅)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후 '풀 메탈 재킷(1987)'에서도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여 흔히 듣는 것과는 다른 전쟁의 공포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스파르타쿠스(1960)' 역시 전쟁의 공포를 보여주며,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배리 린든(1975)' '시계태엽 오렌지(1971)'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쟁의 갈등을 다루었다.

 

 '영광의 길'에서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에 의한 흑백의 시각적 이미지와 음향과 미장센을 모두 사용하여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감을 만들어 관객이 덱스 대령의 시각에서 피고인의 곤경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참호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참호에서의 삶'과 '명령자의 삶'을 냉철하게 대비하여 관객의 감정이입을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자유·평등·정의라는 미명 아래 권력집단의 전횡(專橫)을 정당화한 문명국으로서의 민낯을 드러낸 내용인지라 19년만인 1975년에서야 개봉되었다. 그밖에 독일·스위스·스페인 등 유럽국가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기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개봉되었다. (끝)

 

▲ 독일 뮌헨의 쉴라이스하임 궁을 배경으로 맨 앞 저격수들 뒤 오른쪽엔 브롤라드 및 미로 장군이 사형집행을 지켜보고 있다.

 

▲ 사형장에서 뒤프레 신부(에밀 마이어)가 기도문을 읽고 있다. 좌로부터 피에르 아르노 일병(조 터켈), 모리스 페롤 일병(티모시 캐리), 필립 파리 상병(랄프 미커).

 

▲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해 까닭없이 죽어야 하는 무고한 희생양으로 결정된 세 병사는 결국 총살 당하고 만다.

 

▲ 브롤라드 장군(아돌프 멘쥬·왼쪽)이 미로 장군의 자리를 맡기려하자 분을 못참고 "타락자이며 잔혹하고 교활한 늙은이"라며 "당신은 영원히 지옥에 갈 겁니다!"라고 내뱉는 덱스 대령(커크 더글러스).

 

▲ 카페주인(제리 하우스너)이 소개한 독일 여자 가수(수잔느 크리스티안)가 겁에 질려 감상적 독일 민요인 '충실한 군인'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 군인들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콧노래로 흥얼거리다가 드디어 그녀처럼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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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WWI 배경 영화 (IX)-‘영광의 길’(Paths of Glory)(중)

 

(지난 호에 이어)

 작전사령부인 어느 성에서 군단장인 조지 브롤라드 장군(아돌프 멘쥬)은 휘하 사단장인 폴 미로 장군(조지 맥레디)을 불러 독일군이 점거중인 요충지 '개미 고지(Ant Hill)' 탈환을 명령한다. [註: 여기 나오는 성은 독일 뮌헨의 쉴라이스하임 궁(Schleissheim Palace)이다.]

 

 처음에는 성공 불가능을 앞세우며 난색을 표하던 미로 장군은 브롤라드 장군의 은근한 압력과 성공할 경우 승진할 것이라는 달콤한 조건에 작전을 승낙한다.

 

 미로 장군은 부관인 상토방 대위(리처드 앤더슨)를 대동하고 전선의 참호를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일일이 "독일군을 죽일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묻는데, 이때 포격쇼크 증상을 보이는 한 얼빠진 사병(프레드 벨)이 대답을 못하고 횡설수설 하자 그의 따귀를 때린다.

 

 그는 이제 휘하의 701연대장인 덱스 대령(커크 더글러스, 1916~2020)의 벙커에 들러 돌격 작전의 지휘관을 맡을 것을 명령한다.

 

 덱스 대령 역시 작전상 도저히 무리라며 "부하 목숨 하나가 프랑스의 영예나 국기보다 더 중요하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자 미로 장군은 "나에게 애국심을 보여주면 정직한 사람을 보여주지."라고 말하는데 '애국심이란 불한당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새뮤얼 존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반발하는 덱스 대령! [註: 영국의 시인·평론가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이 1774년 '애국자(The Patriot)'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면서 당시 유명 정치가인 윌리엄 피트(1708~1778)가 언급한 '애국주의(patriotism)'에 대해 "말만 하는 '자칭 애국자'가 아니라 '진정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존슨은 175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영어사전을 출간하였는데, 그로부터 150년 후 옥스포드 영어사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영국의 대표적인 사전이었다. 이때 조수로 편찬을 도운 이가 프란시스 바버(Francis Barber, 1742~1801)라는 하인이었다. 바버는 자메이카 출신 노예로 영국으로 팔려와 자유인이 되어 학교도 다녔는데, 1752년 존슨의 부인이 사망한 2주 후 존슨 집에 하인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1784년 존슨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 존슨은 당시 영국 및 미국의 노예제에 적극 반대했던 인물로, 바버에게 당시로선 파격적인 70파운드(현재가치 약 9천파운드) 및 그의 서적, 논문 그리고 금시계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러나 난색을 표명하던 그도 계급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쟁터에서 결국 명령에 굴복하고 만다.

 공격 개시 전날 밤, 야간 정찰 임무를 이끄는 중대장 로제 중위(웨인 모리스)가 술취한 상태에서 두 사람 중 르준 일병(켐 딥스)을 먼저 정찰 보낸다. 그런데 그의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공포에 휩싸인 로제는 돌아오는 그를 독일군으로 오인하여 수류탄을 던져 죽이고 후퇴한다. 임무를 수행하는 다른 병사인 필립 파리 상병(랄프 미커)이 이를 알고 로제 중위에게 항의하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고발은 단념한다. 로제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덱스 대령에게 허위 보고를 하는데….

 

 다음날 아침, 개미고지 첫 돌격 작전이 개시되었으나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와 포격 앞에 무인지대에는 프랑스군의 시체만 쌓여갈 뿐이었다. 이 와중에 B중대는 독일군의 집중 포격 때문에 아예 참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이를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미로 장군은 분노한 나머지 포병대에게 B중대가 위치한 아군 참호에 포격을 하라는 정신나간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공격 좌표를 받은 포대장인 루소 대위(존 스타인)가 그곳이 아군 기지임을 알고 "그런 명령은 장군님의 친필 서명 지시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함으로써 결국 아군 진지에 대한 포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편 덱스 대령이 참호로 돌아와 B중대를 독려하고는 스스로 앞장 서 사다리를 타고 참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머리 위로 죽은 한 병사의 시체가 떨어져 그만 쓰러지고 만다….

 

 애초부터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작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로 장군은 "여려빠진 놈들, 독일군 총알을 맞기 싫다면 프랑스 총알 맛을 보여주겠다"며 오히려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장교가 아닌 '병사들의 비겁함'으로 돌린 뒤 701연대원 중 100명을 본보기로 공개 처형할 것을 주장한다. 덱스 대령은 기가 막혀 "차라리 연대원들 다 총살에 처하시죠? 아니면 차라리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항의하는데….

 

 결국 브롤라드 장군의 중재 하에 미로 장군이 중대당 1명씩 뽑아 3명을 본보기로 처형할 것을 제안하고, 브롤라드 장군은 이를 승낙한다. 이에 따라 군사 재판이 열리고 덱스 대령은 그 변호인을 맡게 된다.

 

 이윽고 병사들이 뽑혀온다. 첫째는 필립 파리 상병이다. 그의 상관인 로제 중위가 부하를 죽인 사실을 완전히 은폐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모리스 페롤 일병(티모시 캐리)으로 그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이유로 그의 상관에 의해 뽑히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피에르 아르노 일병(조 터켈)은 두 번이나 무공훈장까지 받은 용맹한 병사였음에도 단순히 제비뽑기에 의해 선택되었다. 덱스 대령은 이들에게 싸울 때처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한다.

 

 이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사회에서 형사 전문 변호사였던 덱스 대령은 자원하여 세 명을 필사적으로 변호하지만 이미 재판은 시작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었고, 재판 과정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증거나 속기사도 없었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죄 석방을 위한 모든 변론이 무시당하자 덱스 대령은 마지막으로 재판관 및 미로 장군에게 경고한다. "법정에 있는 신사분들, 무고한 사람들을 유죄 판결하면 당신들은 두고두고 죽는 날까지 괴롭힐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은 결국 총살형이 선고된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대에서 이성이나 감성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그날 밤, 자포자기한 덱스 대령은 이미 파리 상병을 개인적인 이유로 죽이려 함을 알고, 의도적으로 로제 중위를 불러 총살 집행 임무를 맡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난색을 표하는 로제 중위에게 덱스 대령은 "그거 간단한 거야. 그냥 사형수를 기둥에 묶고, 원하면 눈을 가려 주고, 칼을 든 뒤 준비, 발사만 외치면 되는거야!' 라고 묵살하며 집행 임무를 떠맡긴다.

 

 그런데 로제 중위가 나간 뒤, 미로 장군의 아군 포격 명령을 거부했던 루소 대위가 덱스 대령을 찾아와 장군의 상식 이하의 명령 내용에 대해 고발한다. 이에 브롤라드 장군을 찾아간 덱스 대령이 재판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며 증인의 서약서가 첨부된 자료를 제시하는데….

 

 그러나 "너무 오래 있으면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실례가 된다"며 덱스를 홀로 남겨놓고 교묘하게 자리를 떠는 브롤라드 장군! (다음 호에 계속)

 

▲ 다음 날 첫 개미고지 돌격 작전이 개시되었으나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와 포격 앞에 무인지대에는 프랑스군의 시체만 쌓여갈 뿐이었다.

 

▲ 망원경으로 독일군의 집중 포격 때문에 아예 참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고 있는 B중대를 지켜보던 미로 장군은 분노한 나머지 포병대에게 아군 참호에 포격을 하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리지만…

 

▲ 미로 장군은 오히려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장교가 아닌 '병사들의 비겁함'으로 돌리고 결국 701연대원 중 3명의 병사를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촬영지는 독일 뮌헨의 쉴라이스하임 궁의 대회랑이다.

 

▲ 무죄 석방을 위한 모든 변론이 무시당하자 덱스 대령(커크 더글러스)은 마지막으로 군사재판을 비난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유죄 판결하면 당신들은 두고두고 죽는 날까지 괴롭힐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해 까닭없이 죽어야 하는 무고한 병사들은 말한다. "내일 아침이면 여기 있는 바퀴벌레는 살아남고 우리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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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WWI 배경 영화(IX)-'영광의 길’(Paths of Glory)(상)

 

 제1차 세계대전 배경영화 시리즈의 아홉 번째로 '영광의 길'을 소개한다. 사실 1차 대전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는 첫 작품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30)'에서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기관총과 철조망,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무인지대'에서의 참혹한 전투 및 엄청난 희생만 치른 무의미한 전쟁에서 '생존이 곧 승리'를 의미하는 1차 대전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게 된다.

 

 그리고 계급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쟁터에서 부조리한 상부 권력 집단의 횡포와 인간성 상실 등을 통해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초기 작품이자 커크 더글러스가 46세 때 출연했던 수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7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 배급. 출연 커크 더글러스, 아돌프 멘쥬, 조지 맥레디, 랄프 미커 등. 원작은 험프리 코브가 1935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 러닝타임 88분. [註: 14살 때 '영광의 길(Paths of Glory)'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큐브릭 감독은 그후 영화제작을 위해 험프리 코브의 미망인으로부터 당시 1만 달러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10만 달러 상당)에 저작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험프리 코브(Humphrey Cobb, 1899~1944)는 이탈리아 시에나 태생이나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다니다 때려치고 17세 때 캐나다 몬트리올로 가서 캐나다원정 보병연대(CEF)에 자원하여 프랑스 서부전선에서 3년간 복무하며 1차 대전 종료 직전 '아미엔 전투(Battle of Amiens)'에 참전했다. 그후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광고회사 'Young & Rubicam'에 근무 중 36세 때 '영광의 길'을 출간했다.

 

 그런데 '영광의 길'이란 제목은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의 유명한 시 '시골 묘지에서 쓴 비가(悲歌)'(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1751) 중 다음의 9연(聯)에서 따온 것이다.

 

 The boast of heraldry, the pomp of pow'r,

 And all that beauty, all that wealth e'er gave,

 Awaits alike the inevitable hour.

 The paths of glory lead but to the grave.

 (자랑할 만한 가문, 화려한 권세,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과, 그 모든 재산도,

 피할 길 없는 시간은 똑같이 기다리고 있으니.

 영광의 길이 이르는 곳은 무덤일 뿐이다.)

 

 토머스 그레이는 시골묘지에 잠들어 있는 이름없고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자들의 죽음을 노래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의 세계에 대한 경험과 사색을 공유하고 죽음 앞에 만민이 동등하다는 인류애적 평등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안락한 장소에서 꼬냑과 화려한 식사,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파티를 즐기면서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사지(死地)로 뛰어들라고 강요하며, 다음 진급 심사에서 하나의 별을 더 달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는 고급 장성들. 그들이 별을 달 때 수많은 이름 없는 병사들은 지옥의 강을 건너며 다치고 정신병자가 되거나 참혹하게 죽는다.

 

 병사들은 장기판의 말(馬)에 불과하고 쉽게 잊혀지지만 장군은 전투에서 죽을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영웅으로 떠받들리며 온갖 호사를 누린다. 한마디로 전쟁은 그들을 위한 놀이터이며 보수 높은 직장이다. 그들은 포격으로부터 안전한 벙커나 후방에서 전쟁이 가져올 이득을 계산하며 점령할 고지의 좌표를 찍고 돌격명령만 내리면 된다….

 

 표현이 좀 지나칠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실화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1915년 3월17일,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수앙 마을에서 제로 리벨라크(Geraud Reveilhac, 1851~1937) 장군의 명령에 의해 336보병연대의 상병 4명이 총살 당했다. 이른바 '수앙마을 상병 처형 사건(Souain Corporal Affair)'으로, 총살 당한 뒤 곧바로 테오필 모파 상병의 미망인 블랑셰 모파가 인권위원회에 호소한 이래로 결국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어 19년만인 1934년에 비로소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배경은 이렇다. 두 달 동안의 전투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리벨라크 장군은 서부전선인 수앙 마을 공격을 명한다. 그러나 첫 공격을 개시하자마자 프랑스 포병대의 연발사격이 독일군 참호가 아닌 프랑스군 참호 속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게다가 독일군의 막강한 화력으로 수많은 병사가 죽음으로써 첫 돌격이 좌절되는 것을 본 21중대의 병력이 참호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실 21중대원들은 임무 교대 없이 몇 날 며칠 동안 싸운 나머지 완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들은 리벨라크 장군은 그들이 공격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사단 포병으로 하여금 아군 진지에 포를 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포병 지휘관인 라울 베루베(Raoul Berube) 대령이 서면 명령 없이는 그럴 수 없다고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그러자 리벨라크 장군은 공격 실패의 책임을 21중대의 병사들에게 돌리고 이퀼베(Equilbey) 중대장에게 명하여 각 분대에서 상병 2명과 일병 6명씩 모두 24명의 명단을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3월15일에 리벨라크 장군은 24명을 '명령불복종'의 본보기로 군법재판에 회부 하겠다고 공표했다. [註: 당시 군사재판은 3명의 재판관이 결정했고, 항소는 인정되지 않으며, 집행은 보통 선고 다음날 바로 행해졌다. 이런 엉터리 재판을 '캥거루 법정'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은 1916년 4월24일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틀 후인 3월17일에 20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면되고 상병 4명만 총살형에 처해졌다. 테오필 모파(Theophile Maupas, 당시 40세, 자녀 2명) 상병은 제비뽑기로 선택되었다. 한데 처형 후 2시간 뒤에 프랑스 최고위사령부로부터 총살형 대신 강제노역으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때는 늦었다. [註: 1차 대전 당시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집단 전체의 죄에 대한 처벌로 제비뽑기 등에 의해 개인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총살시키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로마군율의 십분형(decimation)에서 유래했다. 이 점에서 보면 프랑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프닝 크레디트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유'가 흐른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참혹한 참호전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스네어 드럼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다음 호에 계속)

 


▲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7)' 영화포스터


▲ 폴 미로 장군(조지 맥레디)은 부관인 상토방 대위(리처드 앤더슨·왼쪽)를 대동하고 참호를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일일이 "독일군을 죽일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묻는데…

 

▲ 미로 장군(조지 맥레디·왼쪽)은 연대장인 덱스 대령(커크 더글라스)에게 불가능한 개미고지 점령을 명령한다.

 

▲ 공격 개시 전날 밤, 중대장 로제 중위(웨인 모리스·왼쪽)가 술취한 상태에서 르준 일병(켐 딥스·가운데)을 먼저 정찰 보낸 후 공포에 휩싸여 그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본 필립 파리 상병(랄프 미커)은 유일한 목격자로서 나중에 총살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 독일군의 개미고지 점령을 위해 호루라기와 권총만으로 첫 돌격 작전을 지휘하는 덱스 대령(커크 더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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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WWI 배경 영화 (VIII)-'여로(旅路)'(The Voyage)(하)

 

(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그들의 험담에 전혀 개의치 않고 호텔로 가는 마차 안에서 체사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아드리아나!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타려다가 아드리아나의 마음이 변해 베니스로 향하는 두 사람. 곤돌라, 음악회, 호텔에서의 포근한 안식…. 지금까지 둘은 호텔방을 따로 잡았으나 이때부터는 한 방을 쓴다.

 

 드디어 곤돌라 위에서 체사레가 청혼을 하고 아드리아나는 이를 쾌히 승락하는데…. 호텔로 돌아오니 베니스 시내에는 사라예보 암살 사건의 호외가 나돈다. [註: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피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 초테크 여공작을 암살한 사건을 지칭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기만 한 두 사람에게 시칠리아의 아드리아나 어머니로부터 전보가 날아드는데…. "상복을 입고 있는 터에 딴 사내와 한 달 동안이나 여행을 하다니…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썩 돌아오너라!"

 

 이때 체사레는 전보 같은 것은 본인이 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자기가 읽어내려가다 돋보기가 필요하다며 딴전을 부리자 아드리아나는 끝까지 읽으라고 재촉한다.

 

 마침 청혼의 사실을 전하기 위해 신청해 놓은 장거리 전화가 연결됐다는 교환원의 연락을 받고 체사레는 전화부스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때 방에 남아있던 아드리아나는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창문을 연다. 밖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호외 배달꾼의 외침이 들린다.

 

 이래저래 감정이 격해진 그녀는 체사레의 이름을 부르지만 목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몸에 해로운 나쁜 소식들 때문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침대 옆으로 쓰러지는 아드리아나!

 

 한편 전화기를 붙들고 아드리아나의 어머니와 결혼 문제를 놓고 격한 입씨름을 하고 있는 체사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체사레가 결론 없는 실랑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드리아나는 이미 일생에 단 한 번의 행복을 그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띤 채 호텔방 바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내 사랑 언제까지나!(Always, My Love!)"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의 10년 여정(旅程)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마지막 운명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25~1984)은 1963년 '클레오파트라'에서 공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눈이 맞아, 버튼은 재혼, 테일러는 다섯 번째로 결혼하였다. 1964년 캐나다 몬트리올 리츠 칼튼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10년 후인 1974년에 이혼했다가 16개월 뒤에 다시 보츠와나 초베국립공원에서 거창하게 재혼식을 올렸지만 결국 1년도 안 된 1976년에 또 이혼하고 만다.

 

 버튼은 8살 때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하여 하루에 100개피를 입에 물고 다녔으며 12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하루에 서너 병의 보드카 같은 독주를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로 다진 건장한 체구의 버튼은 심장마비로 5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카데미상에 총 7차례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리처드 버튼은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 선정되었다.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은 1934년 9월생으로 올해 87세가 된다. 그녀가 17세 때인 1951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쿼바디스(Quo Vadis)'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이 영화와의 첫 인연이었고, 2년 뒤인 1953년 베르디의 오페라 영화 '아이다(Aida)'에서 주연을 맡았다.

 

 일반적으로 소피아 로렌 하면 이탈리아의 유명한 글래머 스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과시한 역할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두 여인(Two Women·1960)'에서였다. 이 작품으로 외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962년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22개의 국제영화상들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그 후 '엘 시드(El Cid·1961)', 화제의 작 '이탈리아식 결혼(Marriage Italian-Style·1964)'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더 높였으며, '로마제국의 멸망(The Fall of the Roman Empire·1964)' '크로스보우 대작전(Operation Crossbow·1965)' '아라베스크(Arabesque·1966)' '해바라기(Sunflower·1970)' 등으로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배우이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유명 글래머 배우치고는 드물게 현모양처 타입이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딱 한 번만 결혼했다. 그녀는 22살이나 연상인 이탈리아 영화제작자인 카를로 폰티(Carlo Ponti, 1912~2007)와 1966년 정식 결혼하여 그가 94세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으며, 그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 '여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지만 재혼한 마리아 메르카데르 사이에서 난 아들인 마뉴엘 데 시카가 음악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마뉴엘은 아버지의 1968년 멜로드라마 작품 '연인들의 장소(Amanti, 영어제목 A Place for Lovers. 한국에는 5년 뒤인 1973년에 단성사에서 상영되었다)'에서 음악감독으로 첫 데뷔를 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줄거리도 주인공 줄리아(페이 더너웨이)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얘기가 났으니 얘기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페이 더너웨이가 상대역인 발레리오 역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에 반해 결혼하고 애기도 낳겠다며 찰떡같이 붙었으나, 로만 가톨릭 신자였던 마스트로얀니의 첫 부인과의 이혼수속이 지지부진하여 3년을 더 기다린 끝에 1971년 결국 마음을 바꾸고 그의 곁을 떠나버린 일이 있었다. (끝)

 

▲ 심근팽창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는 남은 삶을 못다 이룬 사랑의 불길에 불사르려 한다.

 

▲ 나이트클럽에서 둘이 캉캉쇼를 보다 자리를 뜨자 그들을 알아 본 몇몇 관객들이 입방아 거리가 생긴 듯 수근거린다.

 

▲ 팔레르모에서 베니스로 온 두 사람은 이제 한 방을 쓴다.

 

▲ 베니스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와 체사레(리처드 버튼).

 

▲ "내 사랑 언제까지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는 아드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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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WWI 배경 영화(VIII)-'여로(旅路)'(The Voyage)(상)

 

 이제 1차 대전 배경 영화 시리즈의 여덟 번째로, 시대적으로 190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약 10년의 세월을 섭렵하는 멜로드라마인 '여로(旅路·The Voyage, 원제 Il Viaggio)'를 소개한다.

 1974년 이탈리아 인테르필름 배급 컬러 작품. 러닝타임 102분. 주연 리처드 버튼, 소피아 로렌.

 

 그런데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1901~1974) 감독이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인 만큼 어딘지 운명적인 상징이 전편에 감돈다. 어쩌면 데 시카는 이 작품을 만들 때 이미 스스로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註: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에 대하여는 '무기여 잘 있거라'(398회 2020.12.4) 참조.]

 

 아무튼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04년, 성당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칠리아 섬의 부호 브랏지가 두 아들을 남기고 죽자 변호사 돈 리보리오(다니엘 바르가스)가 가족, 친지들 앞에서 유언장의 내용을 공개한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동생 안토니오(이안 배넨)는 양복점의 딸 아드리아나 디 마우로(소피아 로렌)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아드리아나는 그의 형인 체사레 브랏지(리처드 버튼)와 깊이 사랑하는 사이다.

 

 아드리아나의 어머니 시뇨라 디 마우로(바바라 필라빈)는 찌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별볼일 없는 체사레보다 안토니오가 더 낫다고 딸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칼라브리아, 메씨나에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호외가 길거리에 뿌려진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이탈리아 안팎의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깔아가며 시대적 흐름을 조명하고 있다. [註: 이 지진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및 칼라브리아에서 1908년 12월28일 진도 7.1 규모로 발생했는데 12만3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지진이다. 주요 도시인 메씨나(Messina) 및 레지오 칼라브리아(Reggio Calabria)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고향을 등졌던 체사레가 아드리아나의 임신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그러니까 고향을 떠난지 4년만이다.

 

 드디어 아드리아나가 사내아이 난디노를 출산하는데 산파의사가 체사레에게 심장이 약해서 난산이었다고 은밀히 말해준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충실한 안토니오의 아내이며 평화로운 가정의 주부로서 겉으로는 나무랄 바 없이 행복해 보이지만 일상은 마냥 권태롭기만 하다.

 

 그로부터 5년 후, 객지에서 농장사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한 체사레가 동생 부부를 방문한다. 다섯 살이 된 난디노(파올로 레나)에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그를 데리고 항구로 간다.

 

 거기엔 군인들이 '아름다운 사랑의 땅, 트리폴리로!'라는 노래를 부르며 리비아의 트리폴리로 가는 배에 승선하고 있다. [註: 이 장면을 통해 1911~1913년 이탈리아가 터키 오토만 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북 아프리카

 

 리비아를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일련의 리비아 전쟁(Libyan War, 1911년 9월29일~1912년 10월18일)과 제1차 발칸 전쟁(First Balkan War, 1912년 10월8일~1913년 5월30일) 시기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부두에 안토니오에게 선물할 자동차가 도착한다. 체사레는 자동차 운전법을 가르쳐주며 다소 의기소침해 있는 동생 안토니오에게 "나는 행운아다. 나는 행복하다.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매일 아침 거울을 쳐다보고 외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어느날 형의 조언대로 인생을 기뻐하며 그 자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던 안토니오는 운전 실수로 가파른 벼랑길에서 굴러 떨어져 어이없이 죽는다.

 

 졸지에 과부가 된 아드리아나는 난디노가 학교에 첫 입학하는 날에도 대신 체사레를 보내며 두문불출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체사레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옥상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햇살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와 그 속을 거니는 아드리아나의 검정옷이 마치 삶의 명암(明暗)을 묘하게 대비시키는 듯 실루엣으로 잡은 카메라웍이 돋보이는 한폭의 파스텔화 같은 장면이다.

 

 이때 체사레가 "아이가 있는 엄마이지만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인데 마치 수도원에 있는 것처럼 지내는 것은 무모하다"고 충고한다. 이에 한껏 고무된 듯 아드리아나는 체사레의 떨어진 양복단추를 시종인 클레멘티나(올가 로마넬리)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꿰매주는데….

 

 아드리아나가 홀몸이 된 일에 일말의 책임과 가책을 느끼는 체사레는 애인 시모나(아나벨라 인콘트레라)에게 가족사업을 핑계로 결별을 선언하고 밤늦게 아드리아나 집으로 돌아온다.

 

 병에 시달리지만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는 아드리아나를 설득하여 두사람은 팔레르모의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 위해 기차여행에 나선다. 병원측의 검사 결과, 그녀의 심장은 이제 얼마 더 견디지 못한다는 냉엄한 진단이 내려진다. 이때 청진기가 없던 시절이라 긴 대롱을 귀에 대고 심장을 진찰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내친 김에 더 정밀한 검사를 위해 나폴리에 있는 전문의를 찾아간다. 아드리아나는 남겨둔 아들 난디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성깔을 부리지만….

 

 정밀 진단 결과 병명은 '심근팽창증'으로 심장의 우심실(右心室)이 부어있다는 것. 의사는 "불치의 병이므로 약은 없고, 믿음과 용기와 사랑만이 유일한 처방"이라며 "젊고 미래가 있으며 아들까지 두었으니 인생을 유리병 안에 가두지 말고 걷고 또 걷고 여행하라!"고 조언하는데….

 

 그 사실을 깨달은 아드리아나는 남은 삶을 못다 이룬 사랑의 불길에 불사르려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캉캉쇼를 즐겁게 보는 사이 그녀가 또 어지럼증이 일어나 둘은 먼저 자리를 뜬다. 이때 시숙(媤叔)과 제수(弟嫂) 사이인 관계를 알고 있는 몇몇 관객들이 입방아 거리가 생긴 듯 수근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불과 1세기 전이지만 사회적·도덕적 관념이 이렇게 달랐다. (다음 호에 계속)

 


▲ '여로(The Voyage·1974)' 영화 포스터

 

▲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안토니오(이안 베넨)는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와 결혼하지만 그녀는 그의 형인 체사레와 사랑하는 사이다.

 

▲ 아드리아나의 외아들 다섯 살짜리 난디노(파올로 레나)는 체사레 삼촌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받고 기뻐한다.

 

▲ 안토니오(이안 베넨·오른쪽)는 형 체사레(리처드 버튼)가 사준 차를 선물받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외치며 삶의 의욕을 불태우지만 그만 사고로 죽는다.

 

▲ 햇살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 속에 비치는 검정상복을 입은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의 실루엣이 한폭의 파스텔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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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0
WWI 배경 영화(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6·끝)

 

(지난 호에 이어)

 '닥터 지바고'를 보고나면 역시 오마 샤리프의 눈동자 연기가 인상에 남는다. 그는 이집트 풍의 용모를 바꾸기 위해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쓰고, 피부에 왝스를 바르는 등 분장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의 말없는 눈빛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白眉)다.

 

 어느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본다. "도덕성과 열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우수(憂愁)에 찬 눈동자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있는 눈동자, 전선에서 떠나는 라라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던 눈동자와 마지막 이별하는 라라를 얼음궁전 유리창을 통해 애틋하고 안타깝게 지켜보던 눈동자, 비밀경찰의 감시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끼면서 라라와의 마지막 나날들을 절박하게 보내는 초조한 눈동자"… 이러한 눈빛과 웃음기 없는 연기로 악착같이(?) 살아남은 생존자 유리 지바고를 마치 그를 위해 태어난 듯 훌륭하게 연기하여 오마 샤리프는 골든 글로브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마 샤리프(Omar Sharif, 1932~2015)는 유명한 이집트 여배우 파텐 하마마(1931~2015)와 1954년 결혼했다가 1974년 이혼한 뒤엔 재혼하지 않았다. 하마마는 절대로 키스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는데, 오마 샤리프가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 'Struggle in the Valley(1954)'에서 그와 키스를 하였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다.

 

 하마마는 2015년 1월에 만83세로, 오마 샤리프는 같은 해 7월에 알츠하이머로 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 심장마비로 역시 만83세로 타계했다. 슬하에 타렉 엘 샤리프(64)라는 외아들이 있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8살의 어린 유리 지바고 역을 깜찍하게 연기했다. 타렉과 캐나다인 데비 샤리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마 샤리프 2세(37)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하는 인물이 지조 있고 애정 넘치는 유리의 아내 토냐였지 싶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이를 묻어두고 혁명 직후 불우해진 환경 속에서도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와 가정을 지키는 품위와 기품이 있는 여성! 아마도 남편 유리가 얼마나 순수하고 올곧은 사람인지를 어렸을 때부터 잘 알기 때문에 그 마음을 존중하고 믿어 준 탓이 아닐까….

 

 한편 이 불륜은 '프라하의 봄(1984)'을 떠올리게 한다. 체코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인텔리 외과의사 토마스(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두 여인 사비나(레나 올린)와 테레사(줄리엣 비노쉬) 사이를 오가며 오로지 사랑의 탐닉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현실과 닮았기 때문이다.

 

 유리도 토냐를 깊이 사랑했다. 토냐가 임신했을 때 라라와 절교하는 것이 그 한 예다. 토냐는 유리에게 아내이자 친구이고 후원자이자 동지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엄마였다. 유리는 라라를 '여성'으로 사랑했지만 토냐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덕목을 갖춘 이상향의 어머니'같이 그를 사랑했다. 여기서 토냐가 울고불고 하면서 둘의 불륜을 비난했더라면 또다른 전쟁(?)이 일어났겠지만 의연한 토냐 덕분에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미화된 게 아닐까. [註: 제랄딘 채플린은 토냐 역을 아버지 때문에 고생한 어머니를 롤모델로 삼아 연기했다고 술회했다.]

 

토냐 역을 연기한 제랄딘 채플린(Geraldin Chaplin·77)은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영국 희극배우이자 제작자이며 작곡가인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과 노벨문학상 및 퓰리처상 수상자로 유명한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의 딸인 우나 오닐(Oona O'Neill, 1925~1991) 사이에서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제랄딘이 8살 때 아버지가 매카시즘 열풍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스위스로 망명의 길에 오르는 바람에 그녀는 학교기숙사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통달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미국보다는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배우이다.

 

 8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제랄딘은 모델로도 활동했는데 영어권 첫 데뷔작인 '닥터 지바고'에 캐스팅되어 골든 글로브 신인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고, 그 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내쉬빌(Nashville·1975)'에서 두 번째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 리처드 아텐버러 감독의 전기영화 '채플린(Chaplin·1992)'에서 (그녀의 할머니인) 한나 채플린 역으로 세 번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유리의 이복형 예프그라프 지바고 역의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 1914~2000)는 1959년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예술공로상으로 기사 작위가 수여되어 경(卿·Sir)으로 불린다. 그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총아로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위대한 유산(1946)'에서 허버트 포켓 역, '올리버 트위스트(1948)'에서 파긴 역, '콰이강의 다리(1957)'에서 니콜슨 중령 역,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아랍 파이잘 왕자 역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토록 절친한 관계였던 둘 사이가 '닥터 지바고' 촬영 때 생긴 불화 때문에 단절되고, 20여 년이 지난 다음에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1984)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로드 스타이거(Rod Steiger, 1925~2002)는 말론 브랜도와 공연한 '워터프론트(1954)', 시드니 포이티에와 공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1967)', '워털루(1970)'에서 나폴레옹 역, '사막의 라이온(1981)'에서 무솔리니 역 등으로 기억되는 배우다. '닥터 지바고'에서는 아마도 유일한 미국 배우였지 싶다.

 

 끝으로 '닥터 지바고'의 촬영감독 프레디 영(Freddie Young, 1902~1998)은 데이비드 린 감독과 호흡을 같이 하여 '아라비아의 로렌스', '라이언의 딸(1970)' 등 3편에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영국의 저명한 촬영기사이다. 영국에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그는 130여 편의 영화를 촬영했는데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면 '굿바이 미스터 칩스(1939)', '아이반호(1952)', '모감보(1953)', '원탁의 기사(1953)', '열정의 랩소디(1956)', '로드 짐(1965)', 007시리즈 5편 '두번 산다(1967)' 등이다.

 

※ 데이비드 린 감독, 모리스 자르 음악감독에 대하여는 2015년 8~9월 칼럼 '라이언의 딸' 참조. (끝)

 

▲ 장갑을 낀 손을 호호 불며 얼어붙은 잉크를 녹여 잠을 설치며 라라를 위한 시를 쓰는 유리 지바고. 그러나 영화속에서 그의 시를 접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 시를 짓는 작업도 포기하고 비밀경찰에 붙잡혀 서로 헤어질 운명을 기다리며 불안 초조해 하는 유리와 라라.

 

▲ 운명을 기다릴 때, 다시 찾아온 코마로프스키를 보고 놀라는 유리와 라라.

 

▲ 지바고는 라라와 딸 카챠를 빅토르와 함께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은 곧 뒤따라 가겠다며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발랄라이카를 그녀에게 건네준다.

 

▲ 라라가 탄 썰매가 눈덮인 들판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얼음궁전 2층의 창문을 깨고 바라보는 안타까운 유리의 눈빛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 모스크바에서 유리를 발견한 이복형 예프그라프(알렉 기네스)는 동생에게 새옷 한 벌을 사주고 병원에 일자리까지 주선해 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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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5)

 

(지난 호에 이어)

 라라가 탄 썰매마차가 눈덮인 들판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얼음궁전 2층의 창문을 깨고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는 유리의 안타까운 눈빛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기차는 떠나고 유리가 오지 않을 것을 이미 예견했던 라라는 빅토르에게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긴 회상의 장면은 다시 첫 장면의 타냐 코마로바로 돌아온다. 그녀는 극동 지방 어딘가에서 태어난 사실은 기억하지만 실종된 곳이 몽골리아인지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프그라프의 회상과 더불어 장면은 다시 플래시백.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스탈린 시대가 오고, 장군이 된 예프그라프는 어느 날, 가족이 있는 파리로 가지 않고 사랑하는 조국의 모스크바에 남아있는 유리를 발견한다. 그는 초라한 행색의 유리에게 새옷 한 벌을 사주고 병원에 일자리도 알선해 준다.

 

 어느 날 전차를 타고 가던 유리가 저만치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라라를 발견하고 황급히 다음 역에서 내려, 그녀를 부르려 하나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허공에 안타까이 헛손질하며 쫓아가지만 그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비틀비틀 따라가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유리…. 그것도 모르고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기 위해 기웃거리며 사라지는 라라의 뒷모습…. 안타깝고 처절하고 어쩌면 또 다른 잔인한 순간이다!

 

 유리의 장례식에는 놀랍도록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그의 시 작품이 정치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그 장례식장에 참석한 라라는 예프그라프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리의 딸을 낳았는데 그 후 몽골리아에서 백군이 이끄는 정부의 실각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서다. 그의 도움으로 수백 명의 고아들을 둘러보았지만 다 허사였다.

 

 그런데 라라는 그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때 사라져 버린다. 예프그라프의 말에 의하면 노동자수용소에서 죽었거나 어디론가 행방불명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공산주의의 잔혹한 비극사이다.

 

 이 얘기를 듣던 타냐 코마로바는 눈물을 흘린다. 예프그라프는 그녀가 어쩌다 길을 잃었는지를 다시 묻는다. "폭격에 집이 무너지고 불바다가 된 거리를 아빠와 함께 달리다가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말하자, 예프그라프는 '아빠'가 아니고 빅토르 코마로프스키라며 진짜 아버지는 시집의 사진에 나와 있는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라고 힘주어 말한다.

 

 예프그라프는 타냐가 유리와 라라 사이에서 난 딸이라는 믿음은 가지만 아직 확신을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타냐가 떠날 때 발랄라이카를 갖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것은 유리의 어머니가 즐겨 연주하던 악기로 유리가 라라에게 준 바로 그 악기였다.

 

 예프그라프가 타냐에게 연주할 줄 아느냐고 묻자, 그녀의 젊고 잘 생긴 댐 엔지니어(마크 에덴)인 약혼자가 타냐의 발랄라이카 연주는 '예술가의 경지'라고 치켜세우며 '혼자서 배웠다'고 대답한다. 이에 예프그라프는 "아, 그럼 타고난 재능이구먼!"이라고 말하면서 그때서야 타냐를 정말 유리와 라라의 딸임을 확신하게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註: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있는 알데아다빌라 댐(Aldeadavila Dam)이다. 그런데 댐 하류의 물보라에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장면이 롱샷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 소비에트 연방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댐은 2019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온다.]

 

 '닥터 지바고'는 800명의 기능공을 동원, 2년에 걸쳐 당초 예산보다 두 배가 넘는 1,400만 달러를 들여 완성했지만, MGM사 사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이후 두 번째로 많은 흥행수입을 올린 작품으로 기록된다.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록 감독상과 작품상을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 뺏겼지만, 다른 5개의 상을 휩쓸면서 린 감독 생애 최고의 대표작이 되었다.

 

 18개월에 걸쳐 크렘린 궁과 거리 그리고 전차 레일까지 세밀하게 재현해 낸 마드리드 인근의 카니야스(Canillas) 세트장, 그리고 왝스로 얼음궁전을, 대리석 가루로 설원을 창조한 소리아(Soria) 세트장 등을 만든 미술감독 존 박스(John Box, 1920~2005)가 미술감독상, 토냐의 분홍색 코트, 라라의 진홍색 드레스 등을 선보인 의상디자인상(필리스 달튼), 촬영상(프레디 영), 작곡상(모리스 자르), 그리고 592쪽 분량의 원작소설을 224쪽으로 각색한 로버트 볼트가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 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러시아의 대평원과 설원을 배경으로 혁명기가 만들어내는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을 통해 마치 러시아 혁명의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실감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전쟁과 혁명의 격동기 가운데 주인공 닥터 지바고의 기막힌 인생유전과 비련(悲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리 지바고와 라라 안티포바 사이에 여러 번의 이별과 만남이 있다. 간호사와 의사로 만나 전장을 누비다가 헤어지고,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서관에서 만났지만 빨치산에 붙잡혀 또 헤어진다. 탈출 후 다시 만났지만 비밀경찰의 추적 때문에 다시 떠나보내고, 마지막으로 모스크바에서 걸어가는 그녀를 뒤쫓다가 쓰러져 죽는다.

 

 한편 라라는 아름답고 열정적이며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으로 빅토르 코마로프스키의 욕망의 대상이었고, 파샤(스트렐니코프)의 아내, 그리고 유리의 정부(情婦)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운명적 사랑을 불태웠다. [註: 그런데 영화에서 라라의 어머니와 딸 카챠의 운명에 대한 얘기는 없다.]

 

 라라 역의 줄리 크리스티(Julie Christie·81)는 1960~70년대에 이름을 날렸던 영국 배우로, 화가인 아버지가 차(茶)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던,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아삼의 차부아(Chabua, Assam)에서 태어났다. 크리스티는 1965년 '달링(Darling)'에서 상류사회를 꿈꾸는 자유분방한 여성 다이애너 스캇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한 해 두 번 수상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같은 해 제작된 '닥터 지바고'에서는 수상을 못했다.

 

 최근에 캐나다 영화 'Away from Her(2006)'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피오나 앤더슨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음 호에 계속)

 

▲ 좌파 빨치산은 종군 의사가 필요해 무고한 유리 지바고를 강제 연행하여 입산시킨다.

 

▲ 2년 뒤, 지바고는 탈출에 성공하여 눈 덮인 설원을 걷고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의 라라의 집에 당도하는데….

 

▲ 유리는 비밀경찰을 피해 라라와 딸 카챠를 데리고 유리아틴을 떠나, 버려진 얼음궁전 같은 바리키노 별장으로 옮긴다. 이 장면은 왝스와 대리석 가루로 재현했다.

 

▲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생을 즐기며 의미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열기로써 서로를 데우는 유리와 라라. 그러나 비밀경찰에 쫓기는 그들의 표정은 초조하고 어둡다.

 

▲ 온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 밤, 한 무리의 늑대가 밤새도록 울어재끼는 얼음궁전은 음산하기만 한데… 둘에게 닥칠 어두운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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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4)

 

(지난 호에 이어)

 이윽고 일행들이 탄 기차가 악명 높은 볼셰비키 사령관 스트렐니코프의 무장열차에 의해 호송되고 있으며 분쟁 지역인 우랄산맥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차가 완전 정지하자 유리가 기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던 중 중무장한 열차를 발견하는 순간 체포되어 스트렐니코프(톰 코티네이)에게 끌려간다.

 

 유리는 단박에 그가 바로 실종됐다는 '파샤' 안티포프임을 알아챈다. [註: 여기 등장하는 무장기관차는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대열차 작전(The Train·1964)'에서의 중무장 열차를 연상시킨다. 1, 2차 대전 때 실제 사용했던 열차의 완벽한 복사품으로, 애초의 목적은 트럭이나 탱크가 진입할 수 없는 폭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삶은 역사에 의해 죽었다."며 집중 심문을 하던 스트렐니코프는, 유리가 6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부인(라라)의 총격 사건 때 '사내다운' 그를 봤다고 말하자 어떻게 아내를 아느냐고 묻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같이 복무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는 유리. 전쟁 후 아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녀가 한때 반공산주의 백군(白軍)이 점령했던 유리아틴 마을에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스트렐니코프.

 

 유리는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폐허의 '밍크' 마을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은 '사내다움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용감하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유리를 다시 가족품에 돌려보내는 스트렐니코프. 사령관의 오른팔인 장교가 "억수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심문 받은 사람은 모두 총살 당했다는 암시를 주면서….

 

 우여곡절 끝에 바리키노 역에 도착하는 일행. 역장인 페챠(잭 맥가우런)가 알렉산데르를 알아보고 넙죽 "주인님!"하고 인사를 한다. 페챠가 끄는 마차를 타고 바리키노 별장에 당도하니 현관 입구에 '유리아틴의 혁명위원회가 인민의 이름으로 징발했다'는 팻말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별채를 거처로 정하는 지바고 가족. 어렵사리 구해온 밀가루, 소금, 커피 등과 함께 스트렐니코프가 만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페챠. 그가 구해준 신문에 니콜라이 2세 황제와 그 가족이 총살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거대한 혁명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알렉산데르…. 아, 옛날이여…! [註: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14번째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Nicholai II Alexandrovich Romanov, 1868~1918)와 그의 가족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세워진 볼셰비키정부에 의해 폐위되고 투옥됐다가 시베리아로 유배된 후 1918년 7월에 총살되었다.]

 

 바리키노 산골에서 궁핍하지만 전원 생활을 통해 평화를 만끽하는 네 식구. 유리가 가까운 마을 유리아틴에서 라라를 찾을 때까지는…. 성에가 두껍게 낀 겨울 유리창 그리고 계절은 바뀌어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註: 네덜란드에서 4천 송이의 수선화를 수입하여 스페인 산악지대 소리아(Soria)에 설치한 세트장에 심었다고 한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유리아틴에 있는 도서관을 찾은 유리. 거기서 라라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이때부터 유리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토냐가 임신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은 유리가 라라에게 '관계 단절'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좌파 빨치산에 붙잡혀 강제 입산을 당해 종군 의사로 일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막힌 인생유전(人生流轉)이다.

 

 2년 뒤, 지바고는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여 눈 덮인 설원을 걷고 또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의 라라의 집에 당도하여 쓰러진다.

 

 의식을 회복하자 라라는 토냐가 유리를 찾는 중에 집으로 찾아와 서로 만난 적이 있었다며 가족은 지금 모스크바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토냐가 6개월 전에 유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편지를 건네준다. 토냐는 딸을 분만했고 이름은 안나, 아버지 알렉산데르와 아이들은 추방 당해 파리에 가서 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라라 안티포바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추신이 있었다. 다시 만난 유리와 라라는 그들의 관계를 새로이 시작하는데….

 

 어느 날 몹시 추운 겨울밤, 뜻밖에 빅토르 코마로프스키가 찾아와 두 사람에게 비밀경찰 체카가 미행하고 있다고 알린다. 그 이유는 라라는 스트렐니코프와의 혼인 관계 때문에, 그리고 유리는 빨치산 5사단에서 탈영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은 파리의 망명자 조직과 연루됐고, 또 그가 쓴 반혁명적인 시작(詩作) 때문이라며, 둘을 도와 러시아를 떠나도록 돕겠다는 빅토르. 사실 그는 자치주 극동 공화국의 법무성 장관으로 임명되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에 유리아틴을 들렀던 것이다.

 

 그러나 둘은 거절한다. 왜냐하면 빅토르는 급변하는 러시아 사회에서 수많은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약삭빠른 사람일 뿐만 아니라 라라를 겁탈한 자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구하기 힘든 설탕을 주고 돌아가려던 빅토르는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두 사람에게 "사람은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며 "고상한 채 굴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사라진다.

 

 둘은 다시 바리키노로 돌아가, 버려진 얼음궁전 같은 집을 거처로 정하고 거기서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생을 즐기며 의미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열기로써 서로를 데운다.

 

 어느 겨울밤, 온세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는데 늑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장갑을 낀 손을 호호 불며 얼어붙은 잉크를 녹여 라라를 위한 시를 쓰기 시작하는 유리. 그 시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였다. [註: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의 시를 접할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비밀경찰이 언제 두 사람을 붙잡아 처형장으로 보낼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들. 운명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을 예감하는 절박한 삶속에서 이제 시 쓰기도 포기하고 운명을 기다릴 때, 다시 코마로프스키가 찾아온다.

 

 그는 스트렐니코프가 라라를 만나러 오다가 8㎞ 전방에서 체포되었는데 심문 중에 끝까지 자기는 파벨 안티포프라고 고집했고 스트렐니코프라는 이름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며, 사형장으로 향할 때 보초의 총을 뽑아 자기 머리를 쏴 자살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그동안 체카는 스트렐니코프를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해 라라를 자유롭게 놔두었는데, 이제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라라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절박한 설명이었다.

 

 마침내 지바고는 라라와 딸 카챠를 빅토르와 함께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은 다른 썰매로 곧 뒤따라 가겠다며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발랄라이카를 그녀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결국 자기가 싫어하는 자와 함께 떠나지 않겠다며 혼자서 그의 운명과 맞닥뜨리기로 결심하는 유리! (다음 호에 계속)

 

 

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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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0
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3)

 

(지난 호에 이어)

 라라가 쏜 총이 코마로프스키의 왼손에 가벼운 총상을 입힌다. 그러나 그는 라라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말고 경찰도 부르지 말 것을 부탁하는데, 이때 뒤따르던 파샤가 용감하게 들어와 그녀를 부축해 데리고 나간다.

 

 라라를 마주친 것이 유리에게는 두 번째였고, 토냐는 처음이었다. 이 인연은 나중에 유리 지바고가 맞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빅토르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유리는 그가 이복형 예프그라프와도 연락이 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볼셰비키가 맘에 들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한다며 그 이유는 그들이 이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유리 부친의 임종을 지켜본 친구로써 특히 부친이 유리 어머니에게 헌신적이었다고 귀띔해준다.

 

 둘 사이의 화제는 라라의 얘기로 바뀐다. 빅토르가 그녀와의 관계 얘기를 소문내지 말라는 뜻으로 유리에게 빙 둘러 말하자 "그런 여자를 버리면 어떡하냐?"고 되묻는 유리에게 "관심이 있다면 자네한테 넘겨주겠네. 결혼 선물이야."하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는 코마로프스키. 여자를 마치 성노리개쯤으로 생각하는 그의 비뚤어진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하기야 당시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보편적인 시대였다.

 

 한편 새벽까지 라라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라라가 털어놓은 과거사에 괴로워하는 파샤. 이즈음 유리는 라라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순수함과 요염함, 성숙함과 천진함,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여인으로 한껏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장면은 바뀌어 1914년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예프그라프 지바고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의해 제국주의 볼셰비키 육군을 타파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이즈음 토냐는 유리의 아들 사샤를 낳고, 라라는 파샤와 결혼하여 딸 카챠를 낳는다.

 

 라라의 과거사에 상처받아 군에 입대한 파샤는 독일 나치에 대항하여 싸우다 실종되고, 라라는 그를 찾기 위해 종군간호부로 자원한다. 유리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참전했는데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히 간호사가 된 라라와 해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총격사건 이후 4년 만이다. [註: 영화 시작부터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둘은 처음으로 대화한다.]

 

 1917년 모스크바에 10월 혁명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정부가 수립되면서 러시아 전체가 좌파, 우파로 나뉘어져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전선(戰線)에서 유리가 토냐에게 보낸 편지에는 구구절절 토냐와 양부모님에 대한 안부와 사랑이지만 라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토냐의 어머니 안나는 이미 사망했다.

 

 라라와 유리가 함께 6개월 동안 야전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토냐를 속일 만한 일은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라라는 남편 파샤를 찾지 못한 채 어린 딸 카챠가 있는 그라도프로 떠난다. 전선에서 라라를 떠나 보내며 홀로 남은 유리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라라의 주제곡'과 함께 화병에 꽂혀 있는 해바라기꽃의 잎사귀가 시들어 하나 둘 떨어지는 장면은 유리의 마음속 애틋한 이별의 아픔을 상징한다. 하지만 유리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아내 토냐와 아들 사샤가 있는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알렉산데르의 집은 새로운 소비에트 혁명정부의 인민위원회에 의해 접수되어 13가구가 함께 사는 집단수용소로 변해 있었다. 모스크바 귀족집안의 품위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인 토냐의 아버지는 그 사이에 정권교체와 사회적 변혁에 의해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제 '체카'의 비밀경찰이 된 예프그라프가 처음으로 이복 동생 유리를 만난다. [註: 체카(CHEKA)는 KGB(소련 국가안보위원회)의 전신으로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만든 첩보수사 기관. 냉전시대의 유물인 KGB는 1995년 4월 이후 연방보안청(FSB)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예프그라프의 긴 내레이션이 나온다.) 변한 시류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는 동생 유리에게, 그가 쓴 시가 검열에서 '부르주아의 방종'같다는 악평을 받아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고 알려 준다. 예프그라프는 유리를 배려하여 그의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 수도인 모스크바를 떠나 머나 먼 우랄 산맥의 오지인 바리키노 마을로 피신시키며 그에 필요한 통행허가증과 증명서 등 서류를 만들어준다. 유리는 감사의 표시로 그의 시집 한 권을 주고 서로 헤어진다. [註: 이 시집이 첫 장면에 타냐에게 보여준 바로 그 시집이다.]

 

 유리, 토냐, 사샤 그리고 장인 알렉산데르는 우리의 6·25전쟁 때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가축 운반 열차에 가까스로 몸을 싣는다. [註: 이 열차 장면 시퀀스는 캐나다 알버타주에서 촬영했다.]

 

 이때 알렉산데르가 '멋진 시설이군.'하고 비아냥거리자 동승하고 있던 무정부주의자 죄수인 코스토예드 아무르스키(클라우스 킨스키)가 맞장구를 치며 자기는 '지식인이지만 막노동꾼'이라며 왼팔에 차고 있는 붉은 완장을 가리킨다.

 

 차장이 올라타서 위생규칙 등을 설명하고, "열흘 간에 걸쳐 외국의 지원을 받는 반동범죄자들인 우파가 출몰하는 위험한 우랄 산맥을 통과하지만 좌파 적군(赤軍)의 지도자인 인민사령관 스트렐니코프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듣던 아무르스키가 '스트렐니코프 사령관'이라는 이름에 존경의 박수를 치며 '나 만이 자유의 몸이며 나머지는 모두 가축'이라며 수갑찬 손을 허우적거리며 절규한다. [註: 클라우스 킨스키는 혁명에 관해서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이 장면에만 등장한다.]

 

 모두가 곤히 잠든 중에 일어나 눈곱만한 크기의 여닫이 창을 열어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유리. 보름달이 중천에 떠있고 기차가 눈 덮인 끝없는 대평원을 가로질러 하얀 연기를 숨가쁘게 내뿜으며 철로에 쌓인 눈을 헤치고 달리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같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자신들에게 또 어떤 일이 닥칠 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기차 안에서는 춤사위가 벌어지는데, 이때 갑자기 열차가 서행을 하기 시작하고 바깥에 비치는 마을 풍경은 깡그리 불에 타고, 사람들은 학살 당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공포에 떠는 아비규환 그 자체다. 달리는 열차에 겨우 올라탄 한 마을여자(릴리 무라티)가 스트렐니코프가 저지른 짓이라고 항변한다. 과연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기까지가 1시간 58분. 약 3분의 중간 휴식시간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남편 파샤를 찾기 위해 종군간호부로 자원한 라라와 군의관으로 참전한 유리는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히 해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총격사건 이후 4년 만이다.

 

▲ 라라와 유리가 6개월 동안 함께 야전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라라는 어린 딸 카챠가 있는 그라도프로 떠난다.

 

▲ 비밀경찰이 된 예프그라프가 처음으로 이복 동생 유리를 만난다. 그는 유리의 가족에게 필요한 통행허가증 등을 만들어주며 오지인 바리키노로 피신시킨다.

 

▲ 눈 덮인 끝없는 대평원을 하얀 연기를 품으며 달리는 열차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아날로그 영상의 진수다.

 

▲ 볼셰비키 사령관 스트렐니코프가 탄 중무장열차. 이 열차는 실제 존재했던 열차로 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복원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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