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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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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5,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지난 호에 이어)
   "그에게 말은 못했지만 기다릴 거에요. 언제까지나… 당신을 잊지 못할 거에요. 그런 행복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며 그의 품에 안기는 마라. "헤어져요. 그리고 자기 길을 가요. 이해 해줘요. 난 '부베의 연인'이에요." 이에 스테파노는 말한다. "당신을 잊지 못할 거야. 죽을 때까지."
   장면은 다시 재판정. 치올피 사제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버스에서 있었던 사건을 시인하고 부베가 자기를 살려주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장면은 재판정을 크레인 샷으로 보여준다. 판결이 늦어지면서 어수선한 그러나 최종(유리한) 판결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포착한 명장면이다.

   이때 마라와 부베의 대화.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저버리지 않을 거에요.   
   부베: 알고 있어. 내 편은 당신뿐이야.
   마라: 친구들을 믿어요. 모두 당신 편이니까. 나쁜 건 이 재판정이에요. 결과만 보기 때문이에요.
   부베: 당신이 있어줘서 큰 도움이 됐어. 그렇지 않았다면 목을 맸을 거야. 빚을 졌군.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 당신에게는 불행이었겠지만…

 

 

   다시 개정된다. "정신 바짝 차려요. 혼자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마라. 드디어 판결을 내리려는 순간, 컷 되고 장면은 달리는 기차로 디졸브 된다. 
   14년 장기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복역 중인 파르티잔 부베. "처음에 들었을 때는 불안했지만 의외로 담담했다"는 마라는 부베의 연인으로 그가 출옥할 날만을 기다리며 주위의 온갖 유혹도 뿌리치며 이곳 저곳 옮겨 다녀야만 하는 부베를 2주에 한 번씩 만나러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7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부베를 면회 가는 기차역에서 예전에 청혼을 했던 스테파노를 우연히 만난다.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서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스테파노에게 부베와의 약속을 말하자 그는 씁쓸히 마라의 곁을 떠난다.
   "7년 있으면 저는 34살, 부베는 37살. 아직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결혼도 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영화는 기차의 속력만큼 빠르게 바깥 풍경을 훑으면서 끝을 맺는다. 마치 기다림의 시간이 살같이 지나가듯….

 

 

   마라의 이 마지막 대사와 첫장면의 독백은 그 당시 애인을 홀로 두고 군대에 가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유행할 때라, 뭇남성들은 부베의 연인, 마라 같은 여자를 이상형으로 들먹이며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순진한 여성상을 강조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명대사로 기억된다.
   그런데 진작 이 영화가 추억의 명화로 기억되는 이유는 이탈리아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사랑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마라가 당시 보편적인 우리 한국 여성의 면모와 가치관과 너무나 흡사했다는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빨치산 활동을 했던 부베를 통해 영화의 시대적 상황과 정서들이 우리나라 해방 후의 사회적인 이념 갈등과 남성 위주의 봉건 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 등과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화로 밝혀졌다. 카를로 카솔라 소설 속의 주인공 마라는 실존 인물 나다 
조르지(Nada Giorgi, 1927~2012). 그녀는 피렌체의 외곽도시인 투스카니 시골인 폰타씨에베(Pontassieve) 출신으로 사춘기 시절에 파르티잔인 레나토 챤드리(Renato Ciandri)를 만났다. 레나토의 가명이 '바포(Baffo)'였는데 소설에서 '부베(Bube)'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레나토는 1945년 5월13일 폰타씨에베 근교인 마돈나 델 사쏘(Madonna del Sasso)에서 헌병과 그의 아들을 죽인 혐의로 프랑스로 도주했다. 궐석재판에서 19년 형을 선고 받고 체포되어 그동안 서로 서신, 면회 등으로 접촉하다가 1951년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약 90km 동쪽에 있는 도시) 감옥에서 결혼했다.
   레나토는 초지일관 결백을 주장했지만 1961년에서야 석방되어 1981년 11월에 사망했다. 나다는 2012년 5월 24일 바뇨 아 리폴리에 있는 병원에서 85세로 사망했다. 

 

 

   나다는 소설 '부베의 연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 자신과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유와 남편의 유죄 부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기 때문. 나다는 남편이 사망한 뒤에 부정적인 요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비록 성사되진 못했지만 마씨미오 비아죠니에게 두 번째 자서전을 쓰도록 의뢰했었다는 후문이다.
   루이지 코멘치니(Luigi Comencini, 1916~2007) 감독은 1960년 연출한 'Tutti A Casa' (Everybody Go Home)이라는 영화로 이탈리아 영화평론가연합의 '은 리본상 최우수제작상' 및 제2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특별금상'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명감독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즐겨 연주되는 '부베의 연인' 주제곡을 작곡한 음악감독 카를로 루스티켈리(Carlo Rustichelli, 1916~2004)는 동갑내기 코멘치니 감독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다. 
   역시 CC가 주연하고 루스티켈리가 작곡했던 1959년 작품 "형사(The Facts of Murder)"의 주제곡인 '죽도록 사랑해서(Sinno Me Moro)'는 그의 딸인 알리다 켈리(Alida Chelli, 1943~2012)가 불러 지금까지도 애창되는 고전이다. '켈리'는 루스티켈리라는 이름이 길어 그냥 켈리로 줄인 예명이다. 
   그녀는 2012년 12월14일에 69세로 사망하여 이제 부녀가 모두 작고했다.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미오…" 그 곡을 들으면 착 가라앉은 저음대의 중년 여자 같은 농익은 목소리로 들리지만 그녀의 나이 불과 16세 때 불렀던 노래이다. 이 노래와의 인연으로 '아모레 화장품'이 우리나라에 등장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곡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은 이 곡 때문에 한국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학과를 선택, 진학했을 정도이다.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이젠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등 유럽 영화나 음악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헐리우드계 상업성에 식상해서인지 예술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오래도록 곱씹어 볼 만한 감칠맛 나는 이런 영화들이 그리운 것은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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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4)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스테파노는 시와 소설도 쓰는 문학도이기도 하다. 인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라가 일하는 세탁소가 있다. 스테파노는 마라에게 직장을 알선하여 자기 인쇄소에서 일하게 한다. 둘은 무도회장에서 춤도 추며 가까워진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진정한 미인은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며 "헤어진 여자 친구는 미인이었지만 기품이 없었다"며 "당신은 나의 운명의 사람"이라고 청혼하는 스테파노. 
   그러나 "이제 그만 만나자"고 제의하는 마라. 왜냐하면 자기는 약혼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청혼을 거절 당한 스테파노가 "약혼자가 없었다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었겠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는 마라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이를 거절하는 마라. [註: 스테파노 역의 마크 미셸(Marc Michel, 1932~2016)은 '부베의 연인(1963)'에서는 이와 같이 청혼이 거절 당하지만, '쉘부르의 우산(1964)'에서 파리의 보석상 롤랑 카사르 역으로 나와, 전장에 나간 연인 기이(니노 카스텔누오보)의 아이를 임신한 쥬느비에브(카트리느 드뇌브)를 책임지겠다며 청혼하여 결혼에 골인한다.ㅎㅎ]

 

 

   장면은 공화정 집회장. 거기서 마라는 경찰에 체포됐다던 리돈니를 만나 1년 동안 소식이 없던 부베가 유고슬라비아에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이때 거리엔 삐라를 뿌리며 공화제에게 표를, 가리발디에게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한다. [註: 이탈리아는 1920년대에 들어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의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무솔리니는 나치 독일과 손잡고 추축국(樞軸國)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였으나, 1945년 연합국에게 격퇴되었다. 2차 대전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3년 9월23일 파시즘 망명 정부를 세운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다. 이 무렵부터 파르티잔과 피에트로 바돌리오 정부에 쫓기던 무솔리니는 1945년 춘계 이탈리아 공세에서 패한 뒤 파르티잔에게 체포되어 4월28일 처형되었다. 이탈리아 민족해방위원회의 결정으로 1946년 6월2일 이탈리아 국가형태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공화제 54.3%, 군주제 45.7%로 이탈리아 왕국은 해체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콜레로 가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고향으로 간 마라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간호한다. 
   마라의 내레이션: 스테파노를 생각하며 그에게 평온함을 느꼈고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베를 생각하면서도 스테파노에게 흔들리는 나… 갑자기 지금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인쇄소로 돌아온 마라. 길거리에는 공화제 승리를 축하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져 모두 일손을 놓고 거기에 합류한다. 스테파노는 마라에 대한 생각으로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무리였다고 말한다. 마라도 당신을 잊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없었던 둘은 드디어 키스를 하는데….
   어느 날, 리돈니와 아버지가 마라를 찾아온다. 부베가 이반과 함께 1년만에 유고 정부로부터 송환되어 국경에서 체포돼 수감돼 있다는 소식이다. 리돈니와 아버지의 설득에도 면회를 가지 않겠다던 마라는 더 이상의 인연을 끊으려고 불과 15분만 허용된 면담을 하러 가는데…. 
   어색한 만남이다. "리돈니와 아빠가 변호사를 만났는데 재판까지 안 갈 거라고 했다"며 "가더라도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안심시키는 마라. 하지만 울먹이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부베. "그만 해요.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남자잖아요. 정신 차리고 낙심하면 안돼요.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친구도 변호사도 있어요. 모두 믿고 있어요. 당신을 구해줄 거라고"라며 의연하게 말하는 마라. 
   "내가 운 것은 절망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서야. 또 만날 수 있다니! 헤어져 있는 동안 계속 당신 생각만 했어"라며 "지금도 날 사랑하냐?"고 묻는 부베. "지금도 곁에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이제 불안이 없어졌다며 다시 와 달라고 요청하는 부베.

 

 

   한편 스테파노는 마라와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구체적이진 않았단다. 마라가 운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숨기지 말고 말해줘. 혼자 고민하지 말고. 힘이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스테파노의 따뜻한 말에 그를 와락 끌어 안으며 "결혼해요.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는 마라!
   마라의 내레이션: 부베를 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쓸쓸해 보이는 그를 보면 그냥 놔 둘 수가 없었다. 그가 무죄가 되어 나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볼테라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된 부베의 증인으로 재판정에 가는 마라. 리돈니, 아빠 그리고 병석에 있는 부베의 어머니 대신 누나가 참석했다. 또 제지공장에서 만났던 부베의 사촌동생 아르나루도도 참석했다. 
   변호사가 이길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한편 죽은 남편과 아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해 치에콜라 헌병 부인이 참석해 있다. 
   부베와 이반이 경찰에 끌려 재판정에 나타난다. 수갑을 풀고 피고석에 앉는다. 중간 휴정 때 누나를 만나고 있는 부베에게 리돈니가 "과잉방어라 3년 이하의 형일 거래요"하고 귀뜸해 주지만 기뻐하지 않는 부베. 왜냐하면 "사면 전에 자수했더라면 지금쯤 자유롭게… 멤모랑 친구들은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않았어. 도망가면 불리하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도."라고 원망하기 때문이다.
   리돈니가 마라에게 말한다. "파르티잔이었던 것을 평가받게 하고 싶지만 이 재판소에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고, 법률로써 억지로 결말을 내려 하고 있어요."라고.
   그런데 증언대에 선 마라가 가슴이 떨려 아무 말도 못하고 퇴석 당한다. 다만 자리로 돌아가다가 부베에게 키스를 하다 제지 당할 뿐, 아버지는 중형이 내리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한편 그때까지 극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테타노를 만난 마라는 "부베의 재판에 가느라고 약속을 지키기 못했다"며 "만나는 건 이게 마지막이며 이번엔 진심이에요."라고 단호히 말하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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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지난 호에 이어)


   이튿날 이른 아침, 친구 리돈니(쟘피에로 베케렐리)가 부베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마라에게 자기는 헌병의 프락치가 아니라며 치에콜라 준위 살해 사건 때문에 부베에게 지명수배가 내려졌다고 말한다. 
   그는 부베에게 파르티잔의 아지트였던 제지공장으로 피신하라며, 어머님과 누님에게는 경찰이 오면 절대 모른다고 말하라고 당부한다. 
   리돈니는 승용차로 부베와 마라를 폐허가 된 제지공장에 내려주고 다시 오겠다며 떠난다. 
   공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술집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재즈곡을 크게 틀어 이곳까지 들린다. 마라는 ‘언제까지나 숨어 지내야 하느냐’고 묻지만 ‘어떻게 될 지 동지를 한 번 믿어보자’고 대답하는 부베. 준위와 그 아들까지 살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마라.
   하지만 “당신이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말하는 부베. “멤모는 내 편은 아니야. 잘난 척 하면서 설교나 하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당신 아버지는 파시스트한테 쫓기고 오빠 산테는 살해당했어! 파시스트 자식들 꼭 뿌리뽑아 버리고 말겠어. 그 준위는 죽어도 마땅해, 자업자득이야. 그치만 아들을 죽인 건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기 때문이었어. 제 정신이 아니었어.” 때 늦은 후회다! 

 

 

   마라의 내레이션: 부베의 강해 보이는 태도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나는 생각했다. 그를 위로하고 지켜주고 싶다고…. 
   아침에 일어난 마라는 부베에게 ‘자기가 좋으면 굿모닝 키스를 해 달라’고 말한다. “버스가 없으니까 날 데리고 온 거냐?”고 묻고 “내가 귀찮으면 솔직하게 말해줘요”라고 매달리는 마라. 그런 게 아니라며 부베는 키스와 애무를 하지만 더 이상을 용납하지 않는 마라.
   밤에 마라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부베.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소다수를 사려고 하자 한켠에 파시스트 헌병들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밖으로 뛰쳐나오는 마라. 
   공장에 당도하니 부베의 사촌동생인 아르나루도(우고 키티)가 찾아왔다. 그는 부베의 집에서 리돈니가 그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고 말한다. 부베가 총을 보여달라고 조르는 마라에게 총을 건네주자 그녀는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며 냅다 연못에 던져버린다.
 

 

 

 아르나루도는 멀리 외국으로 도망가라고 종용하고,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다.    
   떠나기 전날 밤. 부베는 “약혼하기 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라며 안아달라는 마라의 청을 거절하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하니까 안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한다. 사랑과 전쟁 사이에서 인간적 고뇌가 엿보인다.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어요. 당신을 절대로 혼자 있게 하지는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요”라며 힘이 다할 때까지 안아달라고 애원하는 마라.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안타깝고 눈물 나는 이별의 순간이다. 그날 밤 마라는 부베에게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다.
 

   또 다시 부베는 기약없이 떠나고 마을에는 해방 1주기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어린 리도리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헌병에게 쫓기기나 하는 부베는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니까 잊어버리라”고 마라에게 충고한다. 시샘 많은 친구 릴리아나는 ‘마라는 마음이 아프시다’며 히히덕 거리고… [註: 영화 속 해방 1주기 플래카드 글씨로 미뤄볼 때 이 마을은 이탈리아 중북부 투스카니에 있는 몬테구이디(Monteguidi)인 것 같다.]
   부베의 행방을 찾던 헌병이 마라를 취조한다. 헌병대장은 잡히면 러시아로 보내 종신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러시아’ ‘종신형’이라는 말에 겁이 난 마라는 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당이 상황을 바꿔줄 것’이라며 ‘모두 당에 맡기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대답뿐.

 

 

   마라는 남의 동정을 피하고 싶어서 고향을 떠나 스티레리아(Stireria)에 있는 친구 이네스(모니크 비타)의 도움으로 다림질 하는 가게에 취직하고, 그녀의 여동생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네스는 “결혼할 때까지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게 좋은 거야.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피곤해져.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음 편하지. 나는 즐기면서 지내. 일도 힘든데. 내가 너라면 맘놓고 지금을 즐길 거야. 지조를 지킨다고 해도 그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잖아”라고 말하는데….
   거리 좌판에서 따끈따끈한 군것질거리를 사서 둘이 나눠먹는다. 벽에는 영화 ‘애수(Il Ponte di Waterloo)’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註: 이탈리아 해방일(Liberation Day)은 1945년 4월25일이다. 1주기이면 배경은 194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940년 영화인 ‘애수(Waterloo Bridge)’가 이탈리아에서 개봉된 것은 1946년 4월 이후였다고 추정 가능하다. 아무튼 이는 비극적 스토리를 주인공 마라와 대비시키는 장치이다.]
   이네스가 비극적인 영화 내용을 설명하자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는 마라. 극장 앞에 도착하니 이네스의 애인인 마리오와 그의 친구 스테파노(마크 미셸)가 기다리고 있다. 이네스가 춤추러 가기 위해 네 사람을 만들었으나 마라는 오히려 영화를 보고 싶어해 스테파노와 함께 영화관에 간다. 만원이라 입석으로 보는데 스테파노가 선수를 쳐서 한 자리를 잡아 마라를 앉힌다.
   영화가 끝나니 저녁 7시. 식사를 거절하고 집으로 가겠다는 마라를 바래다주는 스테파노. 그는 옛 약혼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바람을 피고 행실이 나빠 헤어졌다고 말한다. “약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도 가끔 서신은 교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날 이네스가 외출하고 혼자 있던 마라는 옆 방 남자의 추근거림을 피해 홀로 거리를 걷다가 스테파노를 만난다.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인쇄소로 데려가 구경을 시켜준다. 라이노 타이프(자동식자주조기)까지 구비한 훌륭한 인쇄소이다. 마라의 이름과 성을 묻고 즉시 ‘마라 카스테루치’를 식자하여 주조해주는 스테파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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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지난 호에 이어)

그로부터 1년 후인 겨울, 우편배달이 가능하게 되자 매주 부베의 편지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어느 날 부베가 느닷없이 찾아온다. 피렌체 근처인 '산 도나토'로 이사한다며 친구들과 같이 운송회사를 시작할 거란다. 먼저 '콜레'에 갔다가 그 다음 피렌체로 갈 예정인데 일단 아버님을 만나고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항상 시간이 없다며 자기 생각만 하는 남자에게 더 이상 상대하기 싫은 마라가 잘 가라는 인사를 하자 부베는 두말 없이 '챠우(ciao)'하며 떠나가는데…
저만치 가다가 되돌아온 부베는 "당분간 못 만날 지 모르니 키스해 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때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되돌아오는 그를 못 본 체하는 클라우디아의 연기가 시골 처녀의 내숭을 잘 표현한 훌륭한 연기다. 다가온 부베가 가벼운 키스를 하곤 쫓기듯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마라는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어린 남동생 리도리(마리오 루피)랑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이때 아버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면서 약혼을 축하한다고 말한다. 당사자인 딸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부베가 좋은 청년이고, 또 파르티잔이기 때문에 승낙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는 파르티잔은 위험하기 때문에 모두 피한다며 딸을 불행하게 만드는 그는 이 집에 얼씬도 못한다고 방방 뛰는데….
아무튼 일방적인 약혼이었다. 마라는 화가 나서 당분간 그를 잊기로 했다. 남성 지배 체제에서 여성의 자유와 선택권이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회와 처지가 비슷한 것 같다.
어느 날 마을 무도장에서 동네 청년들과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마라. 어린 리도리가 부베가 왔다고 전갈을 한다. 부베는 자기 가족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마라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아버지 및 부베와 누나 사이에서 동생 리도리가 몇 번이나 전갈을 넣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친구 릴리아나의 하이힐까지 빌려 한낮 내내 춤을 추고 해가 진 다음에야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마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부베가 돈을 2만 리라 정도 모았다고 하자 마라는 돈도 많으면서 빈손으로 왔냐고 묻는다. 급하게 오느라 그랬다며 사업은 잘 돼 가지만 항상 비밀 파시스트인 헌병대의 치에콜라 준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그는 반(反)파시스트라면서도 벽에는 무솔리니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다고 부연한다. 
이에 마라가 "맹인이라면 헌병은 무리네요"라며 파안대소를 한다. [註: 치에콜라(Ciecola)라는 이름을 '맹인'이라는 뜻의 '치에코(cieco)'와 발음이 비슷한 데서 비롯된 농담이다.]
그런데 이제 그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부베. 어제 이반과 운베르토 등 동료들과 같이 교회에 미사를 보러 갔는데 우리는 복장 때문에 신부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사실 그건 구실일 뿐이고 파르티잔은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말다툼을 하고 있는 동안 치에콜라 준위가 와서 벽에 기대고 있는 운베르토를 총을 쏴 죽여서 우린 즉시 그를 보복, 살해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는데 내 총을 보고 미친 듯이 도망쳐서 민가로 들어가길래 따라가서 숨통을 끊어버렸단다. 그러니까 헌병 부자(父子)를 살해한 것이었다. 

 

 

마라를 데리고 가는 길에 콜레에 들른다. 시골 마을과는 다른 도시 풍경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마라는 노점상에서 구두를 사려고 한다. 하이힐을 신고 싶어하는 마라에게 정식 구두방에 들러 1,200리라의 비싼 뱀가죽 신발을 사주는 부베. 마라는 또 핸드백도 사달라고 조르는데 다음에 볼테라에서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약혼 기념 선물인 셈이다. [註: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에 있는 콜레(Colle)는 피렌체에서 남서쪽으로 약 53km, 산 도나토(San Donato)에서 남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콜레 디 발델사(Colle di Val d'Elsa)'로 '엘사 계곡의 언덕'이란 뜻이다. 지금은 세계 크리스탈 유리제품의 15%를 생산하는 도시로 발전했다. 역시 토스카나 주에 있는 볼테라(Volterra)는 요새화된 산 정상에 있는 중세도시로 '붉은 성벽도시(Walls of Volterra)'라 불리며 3세기 로마 시대의 극장, 목욕탕 등의 유적이 보존된 곳이다.]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없는 마라. 아직 시간이 일러 그동안 술이나 한 잔 마시자며 카페로 가는 중에 머리방을 본 마라는 촌스러운 머리를 손질하고 싶어하지만 그대로가 좋다는 부베. 처음 사 먹어보는 빵을 술과 함께 마시고 있는데, 자기를 너무 잘 아는 사제가 입구에서 서성이자 급히 고개를 돌려 마라를 쳐다보며 딴전을 부리는 부베. 
이제 레스토랑으로 간다. 거기서 해방위원회의 멤버인 멤모(루치아노 마링골라)를 만나는 부베. 부베는 볼테라의 사정을 묻고 멤모는 산 도나토의 사정을 묻는다. 마라가 부베는 돌아가면 형무소에 가야 한다고 어린애처럼 말한다. 멤모가 당분간 볼테라에 숨어있으라고 충고한다.
잠깐 화장실에 간 마라는 뱀가죽 신발을 벗어 거울에 비춰보며 흐뭇해 하고는, 자리에 돌아오니 이미 스파게티를 주문한 후였다. 기다릴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부베.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노숙을 한 다음날, 히치하이크를 해서 가려는데 마침 버스가 온다. 승객 중의 한 여인이 부베를 알아보고 파시스트 사제가 있다며 얼른 타라고 말한다. 그 여인은 자기 조카인 19살 발테니가 이 사제 때문에 살해됐다며 부베에게 복수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닌가. 
그 사제는 어제 카페에서 봤던 바로 그 사람으로 치올피 사제(피에르루이지 카토치)였다. 부베는 울부짖는 여인에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잃었다"고 말하며 진정시키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사제. 그러나 여인이 고함을 쳐서 알리는 바람에 군중들이 '모두 파시스트를 죽여라'며 사제를 따라가는데, 부베가 자기에게 맡기라며 오히려 사제를 잘 보호해서 헌병대로 데려가 넘겨준다. 
볼테라에 도착한 부베와 마라. 사제 얘기를 들은 부베의 어머니는 "아들은 콜레에서 처음으로 친절을 베풀었다"고 말한다. 마라가 혼자서 자고 싶다고 하여 자기 방을 내준 부베는 처음으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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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요즈음에도 한 남자를 바라보고 10여 년을 기다리는 처녀가 있을까. 
카를로 카솔라(Carlo Cassola, 1917~1987)의 1960년 소설 '부베의 연인(La Ragazza di Bube)'을 원작으로 1963년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이 동명(同名)으로 연출한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감옥에 간 애인을 변함없이 기다리는 시골 처녀의 애절한 순정을 그린 멜로 드라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가 항복하던 시기인 1943년 독일과 연합군에 동시 점령되어 혼란을 겪던 시대를 묘사한 이탈리아 영화사의 걸작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1963년 파라마운트(이탈리아), 컨티넨털(미국) 배급 흑백영화. 미국에서는 '베보의 여인(Bebo's Girl)'이란 타이틀로 개봉. 감독 루이지 코멘치니, 출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조지 차키리스, 마크 미셸. 러닝타임 106분. 음악감독 카를로 루스티켈리가 작곡한 주제곡은 이탈리아 저명 음악가인 프랑코 페라라(Franco Ferrara, 1911~1985)가 지휘했다. 
이 영화는 살인죄로 14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약혼자 부베(Bube)를 찾아가는 열차 속 마라(Mara)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2주 간격으로 타는 기차,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여행의 길동무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 과거는 살아있다. 괴로웠지만 슬프지는 않다."

 

 

주인공 부베의 연인, 마라 역은 당시 "형사(刑事)"(Un maledetto imbroglio•1959), "가방을 든 여인"(Girl with a Sitcase•1961) 등으로 인기 절정에 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ia Cardinale•86)가 열연했다. 당시 25세였다. 1960~70년대 유행하던 AA(Anouk Aimee), BB(Brigitte Bardot)와 함께 CC로 불린 그녀는 이 작품으로 이탈리아 전국 영화언론인연합에서 주최하는 나스트로 디아르젠토(은빛 리본상)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함께 한 상대역 부베는 연기, 노래, 춤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인정받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로 잘 알려진 조지 차키리스(George Chakiris•92)가 맡았다.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두 주인공은 아직 생존해 있다.

 

 

줄거리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무렵인 1944년 7월 한여름 축제일.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가난한 마을에 있는 마라의 집에 부베라는 청년이 찾아오면서 마라와 부베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마라는 동네 뭇청년들의 선호 대상으로 무척 인기가 좋지만 호락호락 하지 않다.
부베는 볼테라 출신으로 고향으로 가는 중에 자신의 동지이자 마라의 의붓오빠인 산테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중 독일 나치에게 처형된 사실을 전하러 왔던 것이다. 부베의 본명은 '아르투로 카펠리니'이지만 모두 '부베'로 부른다. 
마라의 아버지(에밀리오 에스포지토)는 부베를 죽은 아들인양 대하지만 어머니(카를라 칼로)는 아들의 죽음에 놀라고 슬픈 듯 부베를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방 2개짜리 집이라 마라의 방에서 하룻밤을 신세지는 부베. 대신 마라는 친구 릴리아나(대니 패리스) 집에서 잔다. 

 

 

다음날 아침에 마라의 아버지는 "아침 식사는 수프와 와인뿐"이라며 "부자는 고기 먹고 가난뱅이는 수프만 먹는다"고 푸념하면서 "소금도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베는 마라에게 전장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낙하산 실크천을 선물로 주고 떠난다. 마라는 그 천으로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겠다고 한다. 둘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이끌린다. 
얼마 지난 후 부베가 마라의 아버지를 찾아온다. 마침 외출하고 없는 사이, 마라가 낙하산 천으로 만든 블라우스를 갈아입고 나타난다. 시골 처녀이지만 여자로서의 미적 감각은 남다른 것 같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당의 활동을 하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 마라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고 이실직고하는 부베. 
그러나 데리러 올 친구를 기다리다 너무 지쳐 마라의 방에서 낮잠을 자는 부베. 옆에서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키스하는 시늉을 하는 마라. 그런데 잠을 깬 부베는 3시 반이 지났다며 마침 도착한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냥 떠나버린다. [註: 참 멋대가리 없다. 이후에도 파르티잔인 부베는 마라를 만날 때마다 항상 잠이 모자란 듯 기회만 되면 졸고, 번번이 뭔가에 쫓기듯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원래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해 있던 시대이고 더욱이 전쟁 중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가을에 부베에게서 소포가 온다. 러브 레터라 생각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마라. 하지만 편지 내용은 엉뚱하다. "직접 전해주지 못해서 유감이지만 어머니께는 소금을, 당신에게는 이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과 또 가족들과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마라는 '바보'라고 중얼거리며 "소금은 이제 살 수 있다"고 거짓말로 편지를 써 보낸다. 다른 것보다도 자기 생각을 더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싫어해서 가을에는 고작 몇 통의 편지를 보냈을 뿐이었다. 
사귄 지 3개월이 흘렀다. 우편 배달이 안 되는 시기에 마우로(브루노 쉬피오니)가 특별 서비스(?)로 부베의 편지, 소포 등을 마라에게 전달해준다. 그는 마라에게 흑심을 품고 "부베의 여자를 건드릴 생각은 없어. 위험하니까"라며 추근거린다. 마라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한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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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카사블랑카(Casablanca)(6?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지난 호에 이어)
   마이클 커티즈가 만든 작품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을 언급해 보면, 'Santa Fe Trail(1940)'에서 에롤 플린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국 제40대 대통령 역임)이 주연했고, 'Life with Father(1947)'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역배우로 출연했으며, 'Romance on the High Seas(1948)'에서 도리스 데이를 데뷔시키기도 했다. 또 '열정의 무대(King Creole•1958)'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월터 매타우(Walter Matthau, 1920~2000)가 공연하기도 했다.
   마이클 커티즈 감독은 평생토록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1944년 3월2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카사블랑카'로 작품상, 각본상을 비롯하여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연설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그는 어눌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So many times I have a speech ready but no dice. Always a bridesmaid, never a mother." 

 

   또 한번은 '카사블랑카' 촬영현장에서 '푸들(poodle)'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지만 사실 그의 의도가 '조그만 물웅덩이(a puddle of water)'였다는 것을 알고 세트디자이너가 당혹해 했다고 한다. 또 영국 배우 데이비드 니븐은 자신의 비망록 두 번째 책의 제목을 'Empty Horses'라고 붙였는데, 그것은 커티즈 감독의 말실수 중에서 사실은 '기수 없이 말만 가져와라(horses without riders)'는 의도였는데 '속이 비어 있는 말을 가져와라'라고 말한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의 금발 벽안(碧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큰 키의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은 17세 때인 1932년 장학금을 받고 스웨덴 왕립연극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고, 스웨덴과 독일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1936년 '간주곡(Intermezzo)'에 출연한 것이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1939년 미국으로 오게 된다. 그해 '간주곡'의 리메이크작 '이별(Intermezzo: A Love Story)'에 출연하며 헐리우드에 데뷔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당시 영어도 못했고 키가 너무 크고 높다란 코와 짙은 눈썹을 가진 외모에 독일식 이름을 가진 그녀였지만 결코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끼 없는 자연미 그대로의 순수하고 신선한 미모와 개성 때문에 헐리우드의 성형미녀들을 제치고 성공하는 비결이 되었다. 

 

 

   그런데 버그만 자신은 '카사블랑카'를 그렇게 썩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해인 1943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그 다음해 '가스등(Gaslight)'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1945년 '세인트 메리의 종(The Bells of St. Mary's)'에서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3년 연속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캐서린 헵번이 세운 4번 연속 기록이 최고이다. 그밖에 2개의 에미상, 4개의 골든글로브상과 토니상을 수상했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도 인연을 맺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오명(Notorious•1946)' 그리고 컬러 작품인 '염소자리(Under Capricorn•1949)' 등 3편에 출연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영화 '이수(離愁•Goodbye Again, 1961)'에 출연 당시 그녀는 45세였다. 하지만 실제 나이보다 너무 젊어 보여 분장사가 오히려 이 배역에 맞도록 눈에 섀도우를 바르고 목에 주름살을 그려 넣을 정도였다고 한다. 
   미모 뿐만 아니라 5개 국어에 능통한 재원인 그녀가 30대 초반에 이탈리아 유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로 인해 벌어진 스캔들은 너무나 유명하다. 
   버그만은 로셀리니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로셀리니 씨, 당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Open City)'와 '전화의 저편(Paisan)'을 봤습니다.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그녀는 영어는 아주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고, 프랑스어는 썩 잘하지는 않고, 이탈리아어는 오직 ‘당신을 사랑해(ti amo)’만 알고 있는 배우인데요, 저는 당신과 함께 일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잉그리드 버그만.”

 

 

   버그만은 이윽고 정말로 로셀리니의 곁으로 달려가 로셀리니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와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로셀리니가 유부남이었고 버그만 역시 남편과 딸이 있는 유부녀였다는 것. 이 불륜 사건은 1940년대 미국에 파란을 일으켰고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으며 버그만은 결국 헐리우드에서 실질적으로 추방당해 배우 경력 최고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로셀리니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쌍둥이 딸을 두었다.    
   그러나 로셀리니와 헤어진 버그만은 다시 미국 영화계로 복귀한다. 6년의 시간이 흐르며 여론도 누그러져 1956년 '추상(아나스타샤)'에 출연하면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절친한 친구 캐리 그랜트가 대신 받아줬다. 
   분장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의 자연미와 웃을 때나 울 때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열의 하얀 이로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이었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1972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으나 연기에 매진, 1974년 추리소설의 대가인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8년 마지막 출연작인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에서 명연을 펼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고 4년 뒤인 1982년 영국 런던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런던에서 화장되어 스웨덴 서안에 뿌려졌고 나머지는 스톡홀름에 있는 부모님 납골당에 같이 안치되었다.
   '카사블랑카'에 출연한 배우 중 2008년에 조이 페이지를 끝으로 생존하는 배우는 없다. 하지만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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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카사블랑카(Casablanca)(5)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릭 블레인 역의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 1899~1957)는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냉소적인 터프 가이로 보이지만 르노 서장의 표현대로 "냉소적인 껍질 속에 타고난 감상주의자"의 면모를 훌륭히 표출한 연기로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9년 후 캐서린 헵번과 공연한 컬러 작품인 존 휴스턴 감독의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1951)'으로 드디어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된다.

   보가트는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1941)'에서 우가티 역의 헝가리 출신 배우 피터 로레와 페라레 역의 영국배우 시드니 그린스트리트와 공연했다. 그리고 역시 존 휴스턴 감독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1948)', 오드리 헵번과 공연한 빌리 와일더 감독의 '사브리나(1954)', 프레데릭 마치와 공연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필사의 도망자(The Desperate Hours·1955)' 등 3세기에 걸쳐 75편의 주로 느와르 스릴러 영화에 출연한 미국 명배우로, 로맨틱 드라마 출연은 '카사블랑카'가 처음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에 기초한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1944)'를 촬영할 때 공연한 로렌 버콜(Lauren Bacall, 1924~2014)과 사랑에 빠져 다음해 1945년에 재혼한다. 그녀 나이 20세,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그 후 보가트가 식도암으로 57세로 죽기까지 함께 했으며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르노 서장 역의 클로드 레인즈는 영국 런던 출신 배우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로빈 후드의 모험(The Adventures of Robin Hood·1938)'에 출연했으며, 베티 데이비스, 라즐로 역의 오스트리아 배우 폴 핸레이드와 'Now, Voyager(1942)'에서 공연했다. 특히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오명(Notorious·1946)'에서 나치 악당 역으로 잉그리드 버그만과 공연했는데, 그의 키가 178㎝의 잉그리드 버그만에 비해 너무 작아 촬영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도 5㎝ 정도 작아 버그만과 함께 있는 장면은 블록 위에 서거나 쿠션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찍었다는 후문이다.

 

 

   카지노 딜러 에밀 역의 마르셀 달리오(Marcel Dalio, 1899~1983)는 프랑스 배우로 1930년대에 장 르누아르 감독의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인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1937)'과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1939)'에 출연하였으며, '소유와 무소유'에서 호텔소유자로 레지스탕스를 돕는 비중 높은 역을 맡았고 이때 도어맨 압둘 역의 댄 시무어(Dan Seymour, 1915~1993)도 공연했다.

   이본느 역의 마델리느 르보(Madeleine LeBeau, 1923~2016)와 1939년 결혼하여 '카사블랑카' 제작 당시인 1942년 이혼했다. 르보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한 배우 중 유일하게 생존하는 프랑스 배우였으나 2016년 93세로 타계했다.

 

 

   피아니스트 샘 역의 둘리 윌슨(Arthur 'Dooley' Wilson, 1886~1953)은 원래 북쟁이(drummer)인데 피아노 연주는 연기에 불과했고 실제는 엘리어트 카펜터라는 스튜디오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것이라고 한다. 노래도 촬영이 끝난 다음 윌슨 목소리를 더빙했다고 전해진다.

   음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맥스 스타이너(Max Steiner, 1888~1971)가 맡았다. 그는 "영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30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으며 24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3번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바람과…'로 후보에 올랐지만 "오즈의 마법사'의 허버트 스토다트에게 돌아갔다. 우리에겐 '킹콩(1933)'과 '피서지에서 생긴 일(A Summer Place·1959)'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이다.

   '카사블랑카'에 삽입된 "As Time Goes By"는 허만 허펠트(Herman Hupfeld, 1894~1951)가 1931년 'Everybody's Welcome'이란 브로드웨이 쇼를 위해 작곡한 노래였기 때문에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맥스 스타이너가 새로 만든 곡으로 대체하기 위해 재촬영을 하려 했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리아 역을 위해 이미 머리를 숏커트한 상태여서 촬영이 불가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대신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와 독일군의 노래의 대결 구도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연진 대부분이 유럽 출신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또는 피난민으로서 실제 절망적이고 눈물겨운 체험을 했던 배우들이라 나치 역을 맡은 배우들은 물론 이 '카사블랑카'의 '국가(國歌) 대결' 장면에서 감정에 북받쳐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또 이 영화를 하버드대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 이 장면에서 '라 마르세예즈'를 모두가 따라서 불렀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1998년에 마이클 월쉬(Michael Walsh)가 위의 노래와 같은 제목으로 쓴 소설 'As Time Goes By'는 11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성공의 요인은 책의 엔딩이 영화의 마지막 귀결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제작된 지 반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카사블랑카'의 열혈 팬이 아직도 많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1886~1962)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유럽에서 50여 편, 미국에서 100여 편을 감독했는데 1930~1940년대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의 전성기에 활약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소돔과 고모라(1922)', '노아의 방주(1928)'를 비롯하여, 에롤 플린 주연의 '로빈 후드의 모험(1938)', 제임스 개그니와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더러운 얼굴의 천사(1938), 제임스 개그니 주연의 '양키 두들 댄디(1942)' 등이 있다. 특히 빙 크로스비와 로즈마리 클루니 주연의 '화이트 크리스마스(1954)'로 우리 기억에 깊이 각인된 명감독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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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카사블랑카(Casablanca) (4)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지난 호에 이어)
   그래서 병든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고 릭을 떠났던 것이라고…. "지금은 어때?"라는 릭의 질문에 "다시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다"며 혼란스러워 "당신이 우리들을 위해 대신 생각해 달라"고 말하는 일사….
   드디어 릭의 쓰라린 상처는 치유되어 그들을 돕기로 결심하는데… 이때 카를과 함께 라즐로가 예기치 않게 카페에 나타난다. 레지스탕스 회의가 경찰에게 적발돼 간신히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릭은 조용히 카를을 불러 라즐로 모르게 일사를 호텔로 배웅하도록 지시한다. 
   릭이 라즐로의 상처를 치료해 주며 그에게 투쟁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는 "그건 숨 쉬는 것과 같아서 숨을 멈추면 죽는 것처럼 투쟁을 포기하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라즐로는 릭의 일사에 대한 사랑을 카페에 오던 첫날부터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며 "우리가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으니까 부탁인데 나는 통행증이 필요 없으니 아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릭에게 간청한다. 

 

 

   이때 경찰이 들이닥쳐 라즐로를 체포해 간다. 뒷모습을 보며 릭이 중얼거린다. "드디어 운명이 작업을 시작했군!"
   다음날, 르노 서장을 찾아간 릭은 벌금과 구류 정도의 죄보다 더 큰 죄명, 이를 테면 '독일병에게서 탈취한 통행증 소지죄'로 붙잡아 라즐로를 수용소로 보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르노 서장의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릭은 자기와 일사가 함께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내 우정에 기대지 말게. 난 경찰이야!"라고 쐐기를 박으며 라즐로를 풀어주고, 저녁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릭의 카페에 들르기로 약속하는 르노 서장. 
   그리고 릭은 '파란 앵무새' 주인 페라레를 찾아가 샘, 압둘, 카를, 사샤, 에밀 등 자기 종업원을 그대로 고용하는 조건으로 카페를 인계한다. 이때 릭이 샘에게는 이익의 25%를 배분해 주라고 하자 페라레는 "실제 10%인 줄 알지만 그대로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자기 카페로 돌아오는 릭.

 

 

   르노 서장이 약속대로 리스본행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카페로 찾아오는데, 이어서 라즐로와 일사가 들어오자 르노는 릭의 사무실에 일단 몸을 숨긴다. 릭이 라즐로에게 비자를 전달하려고 하자 미리 숨어있던 르노가 나타나 "사랑이 양심을 이겼다"며 라즐로를 체포하려 한다. 
   이때 릭이 르노에게 권총을 겨누고 관제탑에 연락하여 리스본행 승객 두 사람을 태우라고 지시한다. 한편 이 통화를 도청하고 있던 스트라사 소령이 차를 대기시키고 경찰을 동원하라고 명령한다. 숨가쁜 위기의 순간!
   공항에 도착한 일행. 릭은 통행증에 '라즐로 부부'로 쓰라고 르노에게 지시한다. 이 말을 들은 일사가 어젯밤 얘기와 다르다며 의아해 하자 릭이 타이른다. "당신은 빅터와 함께 당신이 속한 곳으로 떠나. 만일 우리 둘이 남으면 수용소로 끌려갈 건 뻔한데… 그건 사실이야!" 일사가 "날 보내려고 그러는 거죠?"라고 되묻는다. 

   릭이 계속해서 말한다. "아냐, 진실을 말하는 거야. 당신은 빅터의 세계에 속했고 당신은 그의 일부이고 그를 지속시키는 힘이지. 저 비행기를 떠나 보내면 아마 오늘도 내일이 아니고 지금 당장부터 평생 동안 후회하게 될 거야." "우리 관계는요?"라는 일사의 물음에 "파리의 추억으로 남겠지.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엔 잊었는데 어젯밤 되찾았어!"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요…." "…이렇게 지켜보고 있잖아!"

 

 

   그리고 빅터 라즐로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 릭. "당신은 일사와의 관계를 다 안다고 말했소. 하지만 어젯밤에 일사가 나를 찾아온 일은 모를 것이오. 그녀는 통행증을 부탁하러 왔소. 그녀는 날 사랑한다고도 설득했소.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일이요. 그녀는 안 그런 척 했고 나도 묵인했소." 이 말에 빅터는 용기를 얻고 "이번엔 우리 편이 승리할 거란 걸 확신하오"라며 고마워한다. 
   한편 라즐로 부부를 태운 리스본행 비행기가 활주로로 진입할 무렵 스트라사가 혼자 차를 몰고 나타나 르노 서장에게 무슨 전화였냐고 묻자 르노는 '빅터 라즐로가 탄 비행기'라고 대답한다. '왜 말리지 않았냐'는 물음에 르노는 릭을 가리키며 "저 친구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엿먹은 스트라사가 관제탑에 전화를 하면서 권총을 빼드는 순간 릭이 그를 저격한다. 뒤늦게 몰려온 경찰들. 순간 릭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르노가 "스트라사 소령이 저격 당했다…. 용의자를 검거해 오라(Round up the usual suspects.)"고 지시해 릭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구해준다. 
   르노가 긴장 탓으로 갈증이 나서 공항 탁자 위의 물을 마시려는데 물병에 붙어있는 '비시수(Vichy Water)'라는 레이블을 보자 바닥에 팽개치고 발로 차버린다. 비행기는 떠나고 안개 자욱한 공항을 걷는 릭과 르노. 

 

 

   릭이 르노에게 "자네는 나한테 1만 프랑 빚졌네." 르노의 대답 "우리 둘의 경비로 쓰지 뭐." 이때 릭이 "루이, 이것이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야!"라고 말하면서 둘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며 프랑스 국가가 연주되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카사블랑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로 평가 받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학기 시험 마지막 주에는 이 '카사블랑카'를 상영하는 전통을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마지막에 일사가 남편 라즐로와 옛 연인 릭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데, 당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는 내용을 금지하는 검열 기준 때문에 라즐로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잉그리드 버그만의 특허인 눈물이 흘러내리는 왼쪽 얼굴과 영롱한 푸른 눈동자의 클로스업을 통한 감정적 연기로 인해 관객은 릭을 선택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고전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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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카사블랑카(Casablanca)" (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지난 호에 이어)

   그날 밤 일사를 다시 만난 것에 대해서 마음이 쓰라려 "온 세상 모든 술집 중에서 하필 내 집으로 오다니…." 하며 밤새 술을 마시는 릭.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곁에서 보살피는 샘에게 오늘 일사에게 들려준 노래를 연주하라고 주문한다. 샘이 "기억이…" 하며 주저하자 릭은 "그녀가 견디면 나도 견딜 수 있다"며 "연주하라!"고 강요한다. 샘은 할 수 없어 'As Time Goes By'를 연주하는데….

   이때 플래시백으로 일사와 릭이 파리에 있을 때의 연인관계를 보여준다. 여기서 둘이 있을 때마다 릭이 하는 유명한 대사 "자기를 지켜보고 있잖아(Here's looking at you, kid.)"가 나온다. 결혼까지 약속한 그들은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같이 피난 가기로 하였으나 비가 쏟아지는 기차역에서 샘이 전해준 일사의 못 간다는 편지를 받고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기차에 오르게 된다.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때 일사가 릭의 카페에 찾아온다. 그러나 릭이 차갑게 대하자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그냥 나가버리는 일사.

   다음날, 경찰서에 출두한 라즐로와 일사는 우가티가 죽었다는 사실과 스트라사 소령의 임무를 듣게 된다. 그 임무는 라즐로를 계속 카사블랑카에 붙들어두는 것이다. 스트라사 소령은 지하조직의 이름과 장소를 얘기하면 탈출시켜 주겠다고 하나 라즐로는 자기가 죽으면 중립국 경찰서장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며 자기 뒤에 수많은 사람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경찰서를 나선다.

   이즈음 페라레의 카페에 들른 릭이 라즐로와 일사가 오는 것을 목격하고 밖으로 나간다. 라즐로가 '파란 앵무새' 클럽에 들어간 사이 릭은 잠시 일사를 만나 간밤의 취중의 무례를 사과한다. 이번에는 일사가 그를 차갑게 대하고 라즐로가 남편임을 일러주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의 통행증은 가능하지만 두 사람은 어렵다고 말하는 페라레. 대신, 그는 우가티가 잡혀갔을 때 통행증이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독일군에게서 빼앗은 통행증은 릭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해 준다.

   다시 릭의 카페. 이본느가 어느새 적의 품에 안겨 독일군 장교와 함께 들어와 바텐더 사샤에게 술을 주문한다. 이를 보고 아니꼽다고 빈정대는 프랑스 경찰과 독일 장교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릭이 둘을 떼어놓고 "정치적 얘기를 하려면 이 카페를 나가라"고 하여 사태를 수습한다.

   릭의 카페에 아니나 브란델(조이 페이지)이라는 불가리아 태생의 젊고 예쁜 여자가 찾아와 릭에게 정중하게 그러나 심각하게 '르노 서장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에 대해 물어본다. [註: 조이 페이지(Joy Page, 1924~2008)는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데 실제 워너브라더즈 설립자 잭 L. 워너(1892~1978)의 의붓딸로 첫 데뷔작이다.]

   그녀의 남편 얀 브란델(헬무트 단티네)이 룰렛 도박으로 돈을 다 탕진하여 비자 구입은커녕 불가리아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며 사실은 르노 서장에게 몸을 팔아 비자를 구입하기 위해 릭의 충고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릭은 이들을 도와 룰렛 도박에서 거금을 따게 해 준다. 물론 그만큼 밑지는 장사였지만…. 릭은 항상 약자를 도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를 본 웨이터 카를과 바텐더 사샤가 사장 릭에게 훌륭한 일을 했다며 존경과 감사를 표시한다.

   이때 라즐로와 일사가 카페로 온다. 릭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여 좋은 좌석을 마련해 주고 일사가 파리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음악을 샘에게 부탁하면서 각별히 배려하는데…. 라즐로가 릭에게 은밀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여 릭의 이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라즐로는 비자를 사겠다며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릭은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비자를 팔지 않겠다며 그 이유는 부인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이때 스트라사가 나치 장교들과 함께 흥겹게 '라인강을 수비하라(Die Wacht am Rhein)'란 노래를 합창하여 대화가 끊긴다. 이를 본 라즐로가 분을 참지 못해 카페 밴드에게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연주하도록 주문하자 밴드마스터가 이층에 있는 릭을 힐끔 쳐다본다. 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즐로가 선창하고 이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애국심에 불타서 합창한다.

   이때, 앞에서 라즐로가 베르거와 얘기할 때 'Tango Delle Rose'를 기타 치며 노래했던 여가수(코리나 뮤라)와 특히 적의 품에 안긴 걸 후회하듯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이본느를 클로스업 한다. 그리고 실제 베이스-바리톤 오페라 가수인 조지 런던(George London, 1920~1985, 몬트리얼 출신)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한 보복으로 스트라사 소령은 르노 서장에게 클럽을 즉시 폐쇄하도록 지시하고 일사에게 다가와 협박한다. 파리로 돌아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죽든지 선택하라고….

   밤 늦게 호텔로 돌아온 라즐로는 일사에게 릭의 발언에 대해 말하고는 레지스탕스 비밀회의에 간다. 그 틈에 폐쇄된 카페에 일사가 릭을 찾아오는데… 그때 릭은 카를과 카페의 재정상태를 점검하고 월급은 정상적으로 주겠다고 결정한다. 카를이 고마워하며 레지스탕스 회의에 참석하러 간 후 릭이 사무실로 올라오니 일사가 뒷문 계단을 통해 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놀라는 릭!

   그러나 그는 차갑게 그녀를 대한다. 일사는 세상이 곤경에 빠져있는데 자기 혼자만 생각하는 릭을 나무라고 "한 여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온세상에 대해 복수하려 한다"고 질책한다. 하지만 과거의 생각에 집착한 그가 통행증을 건네주려 하지 않자 일사는 권총을 꺼내 협박한다. 그러나 차마 쏠 수가 없다….

   곧 그녀가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파리 기차역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1940년 그들이 파리에서 처음 만나 사랑했을 때 그녀의 남편은 수용소 캠프에서 탈출하다 사살되었다는 소문을 믿었다. 그런데 릭과 함께 파리 탈출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 라즐로가 살아있으며 모처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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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카사블랑카(Casablanca)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1941년 12월 무렵, 미국 뉴욕 출신 리처드 블레인(험프리 보가트)은 카사블랑카에 이주하여 '릭의 카페 아메리카나'라는 고급 나이트클럽 및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카페에는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독일 장교들뿐만 아니라 미국 이민을 위해 리스본으로 가는 통행증을 얻으려고 몰려든 다양한 국적과 직업의 피난민들과 소매치기, 보석거래상 등의 군상(群像)들로 항상 붐빈다.

   릭의 카페 출입구에서 도어맨 압둘(댄 시무어)이 일일이 손님을 확인하며 안으로 들여보내는데 독일인 은행가(그레고리 가예)가 오자 릭을 힐끔 쳐다보는 압둘. 릭이 고개를 가로젓자 출입을 거절 당한다. 이에 무시한다고 항의하지만 결국 쫓겨나는 은행가….

   과거의 명예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 곳이 카사블랑카다. 잘난 수표도 필요 없고 오로지 현금만 통하는 곳이 카사블랑카다.

 

 

  '파란 앵무새' 클럽의 주인이자 릭의 친구인 페라레(시드니 그린스트리트)가 찾아와 여느 때처럼 릭에게 카페를 팔라고 종용한다. 릭이 거절하자 이젠 릭의 친구이자 클럽 피아니스트인 샘(둘리 윌슨)을 스카우트하려고 하여 릭은 직접 물어보자고 한다. 릭이 "월급을 두 배로 올려준다는데 가겠냐?"고 묻자 "그래도 여기가 좋다"고 대답하는 샘. 페라레는 겸연쩍어 하며 돌아간다.

   한편 네덜란드 은행가(토벤 마이어)가 앉은 테이블에서 서브하는 웨이터 카를(S. Z. 사칼)이 "릭과 한잔 같이 할 수 있냐?"는 여자손님의 질문에 "릭은 절대 손님과 같이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한다.[註: S.Z. 사칼은 오프닝 크레디트에 S. K. Sakall로 오기되었다. 그는 실제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1939년에 독일을 탈출했지만 그의 세 누이동생은 붙잡혀 유대인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어 은행가가 "암스텔담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며 우쭐대자 카를은 "첫 번째 은행가도 우리 카페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 아버지는 급사로 있다"고 익살스럽게 대꾸한다.

   릭은 모든 일에 겉으로는 중립이지만 사실 1935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에티오피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1936년 스페인 내전 때도 파시즘에 맞서서 공화정부파 편에서 싸운 경력이 있기 때문에 르노 서장으로서는 눈엣가시다. 계속 릭을 주의 깊게 살피지만 그는 사실 중립적인 입장인 릭의 친구이기도 한 묘한 캐릭터다. 

   릭의 카페에 난민들에게 엄청난 돈을 받고 비자를 파는 우가티(피터 로레)가 나타나 사실은 독일 병사 두 명을 살해하여 획득한 '통행증(letter of transit)'을 릭에게 잠시 맡긴다. 릭은 바쁜 중이라 공연하고 있는 샘의 피아노 위 악보철 속에 무심코 그것을 밀어넣어 두는데….

   러시안 바텐더 사샤(레오니드 킨스키, 유대계 러시아인)의 바에 그가 짝사랑하는 이본느(마델리느 르보)가 술에 취해 릭을 보고 어젯밤 왜 안 왔냐, 오늘밤은 올 거냐며 횡설수설 하자 릭은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와 사샤를 시켜 택시를 태워 돌려보낸다.

 

   그때 페티오에 앉아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르노 서장이 "쯧쯧, 그렇게 여자를 다뤄서야 붙어있을 여자가 어디 있겠냐?"며 우정 어린 핀잔을 준다.

   르노는 릭에게 카사블랑카에 온 이유를 묻는다. "건강 때문에 좋은 물을 찾아왔지." "물이라니? 여긴 사막 한 가운데야." "누가 잘못 가르쳐 줬군!" 이때 카지노 딜러인 에밀(마르셀 달리오)이 손님이 2만 프랑을 땄는데 줄 돈이 모자란다고 찾아온다.

   릭이 금고에서 돈을 꺼내는 사이에 르노는 오늘밤 여기서 독일병 살인범을 검거할 것이며 라즐로라는 사람이 그 통행증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일러준다. 르노가 라즐로가 이번에는 탈출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자 릭은 "남을 위해 목숨을 걸진 않는다"면서도 "만일 탈출하면 1만 프랑 내기"를 건다.

   그 통행증은 카사블랑카를 떠나 나치 점령하의 유럽을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서류였다. 우가티는 실은 그날 밤 이 통행증을 라즐로에게 팔 계획이었으나 사전 정보를 입수한 르노 서장의 명령으로 붙잡히자 권총을 빼서 저항하다 사살된다. 그러나 그는 통행증의 행방에 대해서는 폭로하지 않았다.

   르노 서장은 비자를 섹스와 맞바꾸는 등 낯두꺼운 부패 관료이지만 그날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나치 독일의 스트라사 소령의 환심을 사고 프랑스 경찰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릭의 카페에 초청하여 다 보는 앞에서 우가티를 체포했던 것이다.

   스트라사와 그의 장교들이 릭에게 정치성을 띤 질문을 하자 릭은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대답하며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런 릭을 르노는 "여자한테도 중립적이죠. 걱정 안 해도 될 사람"이라고 스트라사에게 말한다.

   그때 체코 레지스탕스 지도자 빅터 라즐로(폴 헨레이드)와 그의 노르웨이 출신 부인 일사 란드(잉그리드 버그만)가 릭의 클럽에 나타난다. 라즐로는 우가티를 만나 통행증을 받으려고 왔으나, 보석거래상으로 위장한 레지스탕스 비밀요원인 베르거(존 퀄런, 캐나다 출신 배우)로부터 그가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한다.

   이때 라즐로 부부를 지켜보던 르노가 프랑스인답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합석한다. 이어 스트라사가 와서 내일 10시 경찰서에 출두하라고 명령한다. 르노는 이 부부에게 '명령'이라기보다 '부탁'드리는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일사가 르노에게 노래 부르는 샘에 대해 묻자 이 집 주인인 릭과 함께 파리에서 왔다고 알려준다. 그녀는 샘을 만나 릭이 어딨는지 물어본다. 샘은 그녀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As Time Goes By'를 부르는데, 마침 카페 안으로 들어오던 릭이 그 노래를 듣고 이 곡을 다시는 연주하지 말라는 명령을 거역한 샘에게 다가서다가 일사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리고 손님과 합석하지 않으며 더욱이 계산서를 직접 지불하는 법이 없는 규칙을 스스로 깨버리는 릭!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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