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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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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
"카사블랑카(Casablanca)"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과 여인의 운명'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꼽아보았다. 본보에도 10년 전에 연재된 바 있고, 역대 최고의 헐리우드 영화라 아마 안 보신 분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란 뜻)'라는 점에서 적어도 제목만이라도 다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시켰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및 각색상을 수상하였다. 1942년 워너브라더즈사 배급. 흑백 로맨틱 드라마.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헨레이드, 클로드 레인즈 등, 러닝타임 102분.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1944년 기간 동안 프랑스 필리프 페탱 원수가 이끄는 비시(Vichy) 정권 통제 하에 있던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1942년 상영 몇 주 전인 11월8일에 미·영 연합군의 북아프리카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즉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이 진행되어, 미국은 다음날인 9일 모로코, 10일 알제리를 점령하고, 영국도 10일에 튀니지를 점령하게 되자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11월26일에 개봉하여 큰 인기몰이를 했다고 한다.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뉴욕시에서 처음 개봉한 후 그 다음해인 1943년 1월23일에 전국 개봉을 했을 때, 마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 당서기장 등이 참석한 정상회담이 실제 카사블랑카에서 열렸던 것이다. '카사블랑카'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보다 더 절묘한 마케팅 호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진작 촬영은 캘리포니아 버뱅크 소재 워너브라더즈 스튜디오에서 전부 이루어졌고, 다만 공항 장면은 LA의 밴 나이스 공항(Van Nuys Airport)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머리 버네트와 조앤 앨리슨이 쓴 소설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Everybody Comes to Rick's)’를 원작으로 각색하였는데, 줄거리와 대사가 소설의 내용과 달라져서 배역진들은 마지막까지 결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40년에 쓴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는 당시 미출판된 상태였는 데도 워너브라더즈사의 제작자 할 B. 월리스는 인기를 끌만한 줄거리로 평가하여 당시로서는 사상 유례 없는 2만 달러(현재가치로 300~400만불)를 주고 작가로부터 이 작품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을 1938년 히트영화인 '알제(Algiers)'를 모방하여 '카사블랑카'로 이름 붙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알제'는 그 전 해인 1937년 프랑스의 거장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망향(Pepe le Moko)'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당시 어느 누구도 이 영화로 노다지를 캘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정작 영화가 히트하여 상영 첫해에 370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2만불의 대가는 일종의 사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원작자가 로열티 소송을 걸어 결국 워너브라더즈사는 1997년에 두 작가에게 각각 10만불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하도 유명한 전설적인 영화이다 보니 이렇게 그 뒤에 숨은 숱한 일화들이 많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깊이 있게 서술하고자 한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아프리카 지도를 배경으로 오프닝 크레디트가 나온 다음, 몽타주 시퀀스를 통해 내레이션으로 당시의 상황이 설명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인들의 가장 큰 희망은 나치가 점령한 조국을 떠나 자유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당시 탈출구는 중립국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으나 바로 가긴 힘들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피난민이 줄을 이었다."

이때 장면은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지중해를 건너 알제리 오랑으로, 거기서 열차, 자동차로 또는 걸어서 아프리카를 서쪽으로 가로질러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가는 루트를 보여준다. [註: 이 시퀀스는 돈 시겔(Don Siegel, 1912~1991)이 창안한 것인데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1971)' 1편 및 '알카트라즈 탈출(1979)', 존 웨인 마지막 영화인 '최후의 총잡이(The Shootist·1976)' 등의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알제리 오랑(Oran)은 알베르 카뮈의 명작 '페스트'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카사블랑카에서 돈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운좋게 비자를 구하여 리스본으로 가서 미국으로 갈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끝없이…, 끝없이…."

장면은 카사블랑카의 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이색적인 거리를 보여주다가 프랑스 경찰의 방송에서 독일 서류전달병 2명이 오랑발(發) 기차에서 살해되었으며 용의자가 카사블랑카로 향하고 있으니 검문 검색을 강화하여 문서를 찾으라는 지령이 내린다. 카사블랑카의 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프랑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든다.

이때 불법체류자로 들통나 도망가던 한 난민이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필리페 페탱 장군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담장 앞에서 사살된다. 그리고 연행된 숱한 사람들이 경찰서로 끌려간다. 정문 아치에 새겨져 있는 프랑스 국가 이념인 '자유·평등·박애'가 무색하다. [註: 필리페 페탱(Henri Philippe Petain, 1856~1951)은 프랑스의 군 장성(將星)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무훈으로 한때 프랑스의 국부(國父)로 칭송 받았으며, 비시(Vichy) 정부의 수반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함으로써 프랑스 국민들의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고령을 감안 총살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인물이다.]

이때 군용기 한 대가 날아오자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미국으로 갈 꿈에 들떠있는데 사실은 독일 나치의 스트라사 소령(콘라드 파이트)이 타고 온 비행기였다. 그는 카사블랑카를 지배하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경찰서장 루이 르노(클로드 레인즈)의 영접을 받고 독일병 살해범에 대해 묻는다. 르노 서장은 이미 범인을 알고 있으며 오늘밤 '릭의 카페'에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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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
"25시" (The 25th Hour)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최후의 시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기구한 인생유전

 

 

원고 측 검사(알렉산더 녹스)가 요한 모리츠는 총 3,728개 잡지의 모델로 나와 현대 역사상 나치의 가장 사악한 본보기가 되었으며, 그를 모델로 하여 뮐러 대령을 비롯한 나치는 우수인종의 우월성과 타민족에게는 잔인함을 가르쳤다고 강변한다.

피고측 변호인(마이클 레드그레이브)의 질문.   

"모리츠 씨, 오늘 왜 이 법정에 서게 된 지 아십니까?"

"8년 동안 영문도 모르고 끌려다녔습니다."

"재판장님, 요한은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바랍니다. 내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정의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아니 피고인의 부인 수잔나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그리고 수잔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변호인. 집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경찰서장의 강압에 못 이겨 이혼장에 서명했고, 요한의 독일군 사진 때문에 독일로 피신했다가 러시아군에 잡혀 성폭행을 당하여 이듬해 낳은 2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는 기막힌 내용이었다.

그리고 "재판장님, 이 여인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판결이 그녀에 대한 답장일 것입니다. 이 부부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세상의 평화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미 전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하고 끝을 맺는다.

 

 

순박한 루마니아 농부 요한 모리츠는 거대한 역사무대에서 이름 없는 엑스트라로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타의에 의해 유대인이 되고, 헝가리인도 되었다가, 아리아인이 되어 나치 협력자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다시 루마니아인으로 돌아오는 처절하고 기구한 인생유전의 주인공이다.

아내 수잔나에게 정욕을 품은 마을 경찰서장의 한 장의 날조된 서류가 개인의 주장이나 의지에 우선하여 무려 만 8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전쟁의 모든 고통을 혼자 다 겪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요한 모리츠는 햇수로 10년 만에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해후하는데….

1949년 11월 독일의 어느 역에 기차가 들어온다. 요한 모리츠가 내린다. 기차는 떠나고 잘못 내렸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요한. 역사(驛舍)쪽에서 3명의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수잔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이가 들은 모습이지만 둘은 옛날 그대로라며 반긴다. 셋째 아이에게 이름을 묻지만 수줍어하며 대답을 못하자 수잔나가 마르코라고 알려준다.

 

이때 뉘른베르크 재판 담당 기자(폴 맥스웰)가 취재하러 나타나 사진을 몇 장 찍겠다며 "웃어요! 계속 웃어요!"라고 주문하면서 연방 플래시를 터뜨리자, 두살배기 마르코를 안고 억지웃음을 짓던 요한 역의 앤서니 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기막힌 표정 연기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때 나오는 주제음악은 루마니아 전통민속 현악기인 코브자(Cobza)로 연주되었는데 오프닝 크레디트 및 여러 장면에서 연주되어, 주인공 요한 모리츠가 겪은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대변하듯 잔잔하면서도 슬픈 분위기로 묘사되었다.

 

 

음악감독 조르쥬 들르뤼(Goerges Delerue, 1925~1992)의 작곡이다. 그는 프랑스 국립음악원 출신으로 약 20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으며, 특히 '신의 아그네스(1985)', '플래툰(1986)' 등에서처럼 클래식 음악 한 곡씩을 삽입하여 인간 내면심리를 잘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프닝 크레디트에 이름이 나오진 않았지만 모리스 자르와 공동 작업을 했다.

비르나 리시(Virna Lisi, 1936~2014)는 테렌스 영 감독, 윌리엄 홀든과 공연한 '크리스마스 트리(1969)' 그리고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1969)'에서 또다시 앤서니 퀸과 공연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 배우.

 

 

원작자인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는 루마니아의 인텔리 작가로서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유학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루마니아가 소련 공산당의 지배를 받자, 1946년에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여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제목을 지어주었다는 이 '25시(La Vingt-Cinquieme Heure)'를 3년 뒤인 1949년에 출간하였다.
그리고 1963년에는 그의 아버지처럼 파리에 있는 루마니아 정교회의 사제가 되어 공산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을 벌여나가던 중, 이 영화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는 한국의 반공정책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하면서, 1974년부터 모두 5번이나 내한하며 우리나라를 '제2의 고향'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게오르규는 '트라얀 코루가'로 상징되었는데, 그는 '25시'를 '최후의 마지막 시간', 즉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절망과 불안의 시간'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가 1958년 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폴만 교수 역으로 출연하여 "시험 당하지 않으면 믿음도 없다"며 "(전쟁은) 하느님이 뜻하신 일이 아니야. 우리가 저지른 실수이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결국 '인간이 선택하는 일은 신도 어쩔 수 없다'는 "25시"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 여겨진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총 42편을 연출한 앙리 베르누이 감독(Henri Verneuil. 1920~2002)은 1915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 직후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민하여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자서전적 영화 "나의 어머니(Mayrig·1991)"로 잘 알려진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이다. 그의 작품 중 알랭 들롱, 장 가뱅 주연의 "지하실의 멜로디(1962)", "시실리안(1969)" 등이 대표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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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5시" (The 25th Hour)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V)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최후의 시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기구한 인생유전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밤, 기다리고 있던 트럭을 타러 가는데 운전수가 바로 그 지휘관이다. 돈으로 매수 당한 것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박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1940년 11월20일 부다페스트. 4일 만에 세체니 다리에서 내린 일행은 걸어서 박사의 여동생 로사와 매제 이삭 나기(해롤드 골드블래트)의 집에 당도한다. 아런 스트룰(마르셀 달리오)과 얀켈 모리츠 등 일행을 소개하는 박사.

   저녁을 식탁에서보다는 굳이 부엌에서 혼자 먹겠다는 요한에게 하녀 줄리스카가 루마니아인, 헝가리인이 다를 게 뭐 있냐며 겸손이 지나치다는 듯이 쏘아붙인다.

   다음 날 아드라모비치 박사가 요한을 불러 유대인 자선단체에 알아봤는데 '모리츠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금팔찌를 주며 팔아서 돈을 챙기라며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박사는 취리히 행 열차를 탄다. "스위스는 여기서 먼가요?"하고 묻는 요한에게 "쫓기는 사람에겐 먼 곳이란 없다"며 "자네가 그리울 거야. 자네는 자유인이야. 행운을 비네"라고 말하고 떠난다.

  

 

그러나 박사를 전송하고 기차역을 나오다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헝가리 경찰에 체포되는 요한. 갖고 있던 금팔지가 러시아제라며 루마니아 비밀경찰이 보낸 첩자로 몰린 요한은 다시 '쟝 모리츠'로 개명이 되어 헝가리인 지원자로 독일로 강제 송출된다.

   기차 속에서 기차를 타니 좋다고 말하는 요한에게 팔려가는 게 그렇게도 좋으냐고 옆사람이 묻는다.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라며 '그래도 걷는 것보단 낫죠'하고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영문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불쌍한 요한….

   독일 오렘부르크 수용소에서 또 다시 힘든 노동으로 2년을 보낸 1942년 12월 어느 날, 정치범 죄수들 중에 있는 동향인 작가 트라얀을 본 요한이 자기는 폰타나의 '요한 모리츠'라며 소리친다. 그러나 힐끔 쳐다만 볼 뿐 그는 행렬을 따라 급히 지나쳐 사라진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요한에게 감시병이 "더럽고 천한 마자르족 헝가리인, 노란 몽골놈!"하며 경멸한다. 이때 뮐러 대령(마리우스 고링)이 모리츠를 목격하고 머리와 얼굴을 만지고, 그리고 입을 벌려보라며 간단히 조사한 후 그는 헝가리인이 아니라며 대뜸 회의실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인류사회학 권위자인 뮐러 대령은 수하생 장교들을 집합시켜 놓고 요한의 옷을 벗기고 자로 재 가면서 전형적인 아리안족의 얼굴과 골격을 갖춘 순수한 혈통이라고 자신 있게 단정하고는, 그에게 베르펠 SS 복장을 입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광고모델로 만든다. 요한은 일약 유명스타가 되어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독일군 경비가 된다. 기막힌 인생 유전이다!

 

  

 

또 이렇게 1년 반이 지난 1944년 4월20일, 러시아가 루마니아를 침공한다. 이제 유격대원이 된 마르코 골든버그 변호사가 자기를 유대인 수용소로 보냈던 폰타나의 도브레스코 상사를 체포한다.

   한편 마차를 몰고 수잔나 집으로 찾아온 코루가 신부가 요한의 독일 선전 포스터를 보여준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있음에 기뻐하면서 아들 페드레와 안톤에게도 보여주는 수잔나. 그러나 신부는 가족이 위험하다며 빨리 폰타나를 떠나라고 충고한다.

   한편 포로 수송임무를 맡은 요한이 독일 감시병을 죽이고 포로들과 함께 미군 24사단 3여단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반독일 연맹국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렘부르크 수용소로 다시 후송되는 요한. 오렘부르크 수용소가 이제는 독일군 포로수용소로 바뀌어 미군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트라얀을 또 발견한 요한은 그를 자기 막사로 데리고 가는데…. 19개월 후인 1946년 9월. 동향인 농부 '요한 모리츠'를 위해 수용소 사령관에게 일주일에 한 통씩 64번째 석방탄원서를 대신 써온 트라얀 코루가. 그는 영화 초반부에 그의 어머니와 '25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 작가로 원작자 게오르규 자신을 상징하는 가공인물로 등장한다.

   트라얀에게 폰타나에서 온 편지가 배달된다. 적십자사 덕분이었는데, 신부인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교회는 문을 닫았으며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요한에게 말한다. 그리고 수잔나는 살아있고 아들과 함께 폰타나를 떠났다고 전해주는 트라얀.

   늦은 밤,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던 트라얀이 마침 잠이 깬 요한에게 끼고 있던 안경을 건네며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우리 모두를 쓴다고 한 책이 있잖아요?!"하며 요한이 의아해 한다. "어머니가 제목을 선물로 주셨어. '25시'야. 요한, '25시'는 마지막 시간이야!"라며 혼자 산책을 하겠다고 밖으로 나가는 트라얀.

   자살을 각오한 듯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철조망으로 가던 트라얀은 이윽고 경비원의 총격을 받고 쓰러진다. 총소리를 들은 요한이 웃통을 벗고 맨발로 뛰어간다. 그가 남긴 오렘부르크 수용소 사령관 그린필드 대령 앞으로 쓴 쪽지가 전해진다. "이것이 벌써 65번째 석방탄원서"라고 썼는데 사령관은 이 탄원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지만 이제 요한은 전범 나치의 협조자가 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이른바 '뉘른베르크 재판'이다. [註: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 재판(Nuremberg Trials)으로 1945년 11월에 시작되어 1946년 10월까지 40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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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25시" (The 25th Hour) (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V)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최후의 시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기구한 인생유전

 

 

 

   우리나라를 '제2의 고향'이라고 언급할 만큼 잘 알려진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The 25th Hour·1949)"가 1967년 앙리 베르누이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MGM사 배급. 제작 카를로 폰티. 주연 앤서니 퀸, 비르나 리시. 러닝타임 113분. [註: 물론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니만큼 내용은 큰 줄거리만 따라가고 곁 이야기는 생략했음을 인정하고 보아야 한다.]

   배경은 1939년 3월15일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 폰타나.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앤서니 퀸)의 둘째 아들 안톤의 세례식이 있는 날이다. 세례식이 끝나자마자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루마니아 민속춤으로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

 

   그때 마을 경찰서장 도브레스코(그레구와 아슬란)가 말을 타고 와서, 춤추고 있는 요한의 아름다운 아내 수잔나(비르나 리시)에게 눈독을 들이고 음흉한 웃음을 짓다가 떠난다. [註: 그레구와 아슬란(Gregoire Aslan, 1908~1982)은 '왕중왕(1961)'에서 헤롯왕,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여왕을 독살하려다 발각돼 죽는 꼽추 포티누스 역, '로스트 코맨드(1966)'에서 알제리 반군의 치과의사로 나오는 등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스위스 태생 아르메니아계 배우이자 음악가이다.]

   이 때 승용차 한 대가 마을에 들어온다. 작가인 트라얀과 부인 로라가 세례식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 아기를 보러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라디오에서 독일이 체코를 침공했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발광적인 연설이 흘러나온다.

 

 

   루마니아 정교회의 신부(神父)인 코루가(리암 레드몬드)가 아들 트라얀(세르지 레기아니)에게 "성경에도 있듯이 사람이 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며 소설을 계속 쓰기를 권하는데, 트로얀은 "큰 태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디서 우리를 날려버릴 지 알려야 할 시간이에요"하고 대답한다.

   어머니가 "하루는 24시간 밖에 안 되니 부디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고 타이르자 트라얀은 "24시는 이미 낭비해 버렸어요. 이젠 25시인데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 걱정입니다"하고 대답한다. [註: 영화의 첫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런 심각한 대화는 '25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먼저 풀어주려는 의도이지 싶다.]

 

 

   며칠 후, 요한이 제분소에 가고 없는 사이에 도브레스코 경찰서장이 요한의 집에 찾아와 벽돌을 만들고 있는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딴죽을 걸지만 퇴짜를 맞자 언젠가는 자기를 필요로 할 지 모른다고 내뱉곤 떠난다. 그 날 오후 여느 때처럼 싱글벙글 돌아온 요한은 경찰서로부터 출두명령서를 받는데….

   그 다음날, 마차를 끌고 경찰서로 가는 요한….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수잔나….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이야!

 

 

   변호사인 30세 마르코 골든버그(조지 로더윅)와 44세의 농부 요한 모리츠를 유대인과 불순분자 검속법(檢束法, 재판도 없이 미리 검사하여 단속하는 반인권법)에 따라 노동수용소에 송치한다는 폰타나 경찰서장 니콜라이 도브레스코 명의로 된 공문을 읽던 부하가, 요한은 유대인이 아니며 단지 코루가 신부가 총애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내가 바로 이곳의 법'이라며 경찰서장이 서명하는 즉시 마차에 실려 송출되는 두 사람….

   그런 후, 틈만 나면 수잔나 집을 찾아와 집적대는 경찰서장은 번번이 쫓겨나지만,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여 무고한 사람을 해코지하는 전형적인 부패의 표상이다. 미모의 부인을 가로채기 위해 그 남편을 유대인으로 만든 경찰서장의 허위 문건 때문에 평화롭고 행복하던 한 가정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변호사 골든버그와 수용소에서 헤어지고 유대인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간 요한은 자기는 유대인이 아닌 루마니아인이며 행정 실수로 끌려왔다며 항변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수용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비겁한 유대인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스스로 노예는 아니라고 자위하며 오히려 이 수로가 개통되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와 자랑스럽게 보여주겠다는 순진한 요한.

 

 

   한편 수잔나는 장관실을 찾아가 하소연 하는 등 숱한 탄원을 하지만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한편 모리츠도 계속 편지를 보내지만 사전검열에서 모두 폐기된다. 이리하여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 생사 여부도 모르게 된다.

   1940년 10월7일 독일군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여 폰타나 군사본부가 세워진다. 상사로 진급한 도브레스코가 수잔나의 집에 찾아온다. 총으로 이들을 위협하는 수잔나. 그는 유대인 집은 모두 몰수당한다며 (유대인인) 요한과의 이혼장 서류에 서명하지 않으면 집을 잃게 된다고 위협한다.

   한편 이름도 유대인식 이름인 '얀켈 모리츠'로 바뀐 요한. 지휘관이 부른다고 해서 이제 석방이 되려나 보다 하고 신이 나서 찾아가는 요한. 지휘관은 "여자는 다 그래!"라고 말하며 뜻밖에 수잔나의 이혼서류에 서명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며 철석같이 수잔나를 믿는 요한….

   1년 반 동안 운하를 파는 막노동 일을 해오던 요한에게 날아든 수잔나의 이혼 통고에 상심하여 허탈해 하는 그에게,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선의를 베풀어 주었던 것을 고맙게 생각한 아드라모비치 박사(마이어 첼니커)가 조심스럽게 내일 밤 탈출할 몇몇 유대인들과 합류하자고 은밀히 제안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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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5·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2. 제2부 (계속)

   하르트만 대위는 "나는 이를 잊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시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또렷하게 생각이 나요. 우리 모두는 정말 살인하는 것밖에 몰라요. 우리는 전 유럽에 시체를 널부러 놓았지요.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억제할 수 없는 증오가 솟구치고 있으며 그 증오가 우리를 집어삼킬 것이며 희망이 없어요. 최소한의 희망도 없이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오"라고 자책감을 털어놓는다.

   소령이 화를 내며 "닥쳐라! 넌 독일 장교임을 잊고 있다!"고 말하는데 부하가 찾아와서 고문실로 간다. 만프레디가 말을 하지 않을 뿐더러 실토시키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피투성이가 돼 실신한 만프레디에게 주사를 놓아 정신이 들게 한 뒤 소령은 갑자기 유연한 목소리로 "페라리스 씨, 내가 아까 말한 것처럼 난 당신을 대단히 존경하오. 또한 당신의 용기와 희생정신에 감탄하오. 그러나 이 점을 이해해야 하오. 당신은 공산주의자이고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당신의 당은 반동적인 당이오. 당신들 모두 우리에게 대항하고 있소. 하지만 내일이면 로마는 점령되거나 당신 말대로 '자유화' 될 것이오. 이 군주주의자들이 아직도 당신의 동맹자라고 생각하오? 난 당신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오."라며 만프레디를 회유하지만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만프레디!

 

 

   소령은 채찍으로 그를 사정없이 때리며 "보도글리오 장군의 사람들 이름을 대라!"고 고함을 지른다. 처음부터 이를 지켜보는 신부. 이제 불로 지지고, 손톱을 뽑는다. 고문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잉그리드가 고문실이 보이는 신부의 방으로 들어온다. "잘 돼 가나요? 내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요?"라며 담배를 피는 잉그리드. 소령은 갑자기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신부를 고문실로 데려간다. "신부 이제 만족하는가? 이게 크리스천의 자비인가? 그리스도의 형제에 대한 당신의 사랑인가? 말하는 것보다 이 같은 꼴을 보는 걸 더 좋아하지? 당신 스스로 구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 위선자야!"

   끝끝내 침묵을 지킨 만프레디는 죽임을 당한다. 신부가 성호를 긋고 독일군들에게 말한다. "이제 끝났다…. 당신들은 그의 영혼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의 육체만 죽였을 뿐이오. 당신들 모두에게 저주를! 당신들은 벌레처럼 먼지 속에 짓밟힐 것이오. 주여 용서하소서!"

   이때 하르트만 대위와 함께 고문실로 건너온 마리나가 죽은 애인 만프레디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다 쇼크사한다. 곁에서 지켜보던 잉그리드가 선물로 줬던 코트를 얼른 걷어가 버린다.

 

   소령은 신부를 데리고 가라며 모두 나가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잉그리드에게 "빌어먹을 이탈리아놈들! 우리가 졌다"며 "저 신부가 날 당혹스럽게 했다"고 말한다.

   잉그리드가 말한다. "또 다른 순교자가 생겼네요. 이미 너무 많긴 하지만…" 이를 듣고 있던 하르트만 대위가 "잠깐만. 다음 번에는 우리가 우수 종족이 될 걸세!"하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장면은 바뀌어 어느 공터. 독일병들이 사형집행 준비를 하고 있고 돈 피에트로 신부가 끌려나온다. 신부는 엄숙하게 말한다. “죽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오. 바르게 산다는 일이 어려운 것이오.” 그리고 하느님께 이들 사형집행자들을 용서해 줄 것을 간구한다. [註: 이 장면은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나오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군인들은 신부를 의자에 묶는다. 독일병 사수들의 표정이 어둡다. 철조망 바깥에는 마르첼로와 로몰레토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레지스탕스의 노래인 '모닝 인 플로렌스'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다.

   드디어 총살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은 그에게 독일군 장교가 다가와 권총으로 머리에 한 방을 쏜다.

   가슴에 저항심을 품고 있는 아이들은 죽어가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절규한다. 그들은 도시를 향해 걸어간다. 영화는 첫 타이틀 장면에서 성베드로 대성당의 돔에서 패닝하면서 도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성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로마, 무방비 도시'이다.

 

 

3. 맺는 글

    이 작품은 로셀리니 감독의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그 다음은 '전화의 저편(Paisan,

1946)'과 '독일 0년(Germany, Year Zero, 1948)'이다. 나치가 1944년 6월 로마에서 철수하고 두 달 뒤에 촬영을 시작한 로셀리니 감독은 당시에 활약하던 레지스탕스의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화면에는 날카로운 현실감과 박력이 넘쳐나, 네오 리얼리즘의 제1작품으로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현실도피적 환상을 부추겨온 전쟁 전 부르주아적 연출을 벗어나, 로케이션 촬영이 돋보이는 액추얼리티를 보여주는 영화가 곧 그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거의 80년 전의 영화라 아무래도 썩 어필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 '무방비 도시'는 두 여배우의 희비극이 깃들어 있다. 이 작품을 보고 반한 유부녀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이 헐리우드를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날아와 유부남인 로셀리니 감독과 결혼하여 쌍둥이 자매를 낳아 세기의 가십이 되었다.

   그런 반면 이 작품을 위해 로셀리니 감독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가장 이상형으로 사랑했던 안나 마냐니(Anna Magnani, 1908~1973)는 그가 갑자기 잉그리드 버그만과 결혼해 버리자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실연에 의한 불면증, 거식증 등으로 시달리다 65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한 비운의 여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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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4)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2. 제2부 (계속)

   만프레디: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야.  

   마리나: 말은 그럴 듯 하지요! 인생은 더럽고 잔인한 거예요. 난 가난이 뭔지를 알아요. 그게 두려워요. 만일 전차 운전기사와 결혼했더라면 가족들이 오늘 당장 굷어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만프레디: 오 가엾은 마리나. 행복은 훌륭한 아파트, 멋진 옷, 하인을 부리는 부자 애인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마리나: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변화시켜 줬어야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지요. 아니 더 나빠요. 적어도 그들은 나에게 설교 따윈 하지 않지요.

   만프레디: 당신 말이 맞아. 용서해 줘!

 

   프란체스코에게 아스피린을 전해주고 침실로 돌아온 마리나는 로레타가 자는 줄 알고 전화 다이얼을 돌리다 그녀가 깨자 그만 두는데….

   당시 아스피린은 정말 구하기 힘든 비싼 약이다. 이 부분과 위의 대화를 통해 곤궁과 궁핍 속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군에게 몸을 팔아야 하는 게 여인들의 운명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서글픈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만프레디와 프란체스코가 위조 신분증을 받기 위해 교회로 간다. 교회에서 프란체스코는 마르첼로를 우연히 만난다. 엄마는 죽었고, 새아버지가 될 뻔한 그를 만나자 기뻐서 마르첼로가 '아빠!'하고 부르는 바람에 프란체스코는 그를 꼭 안아준다.

 

 

   그런데 그때 신부와 만프레디 그리고 탈영병이 급습한 게슈타포에게 붙잡혀간다. 마르첼로와의 작별인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현장에 없었던 프란체스코는 체포되지 않는다.

   한편 베르크만 소령은 세 명을 체포했다는 전화 보고를 받고 정보가 정확했다며 잉그리드에게 큰 돈으로 보상해준다. 잉그리드는 밀고에 대한 보상으로 마리나에게 자기가 입던 값비싼 털코트를 선물하며, 만프레디가 정보를 주면 풀려날 거라고 안심시킨다. 마리나가 "그렇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이라고 묻자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자비로운 언니처럼(?)' 타이른다.

   장면은 만프레디와 탈영병과 신부가 취조실을 지나 감방으로 들어온다. 인정 사정없이 다루다 보니 신부의 안경이 떨어져 깨진다. 셋이 갇힌 감방에서 고문 당하는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만프레디는 교회를 찾아간 일을 후회하지만 때늦은 후회다. 탈영병이 심적 동요를 일으키자 만프레디는 조용히 있어야 목숨이 부지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베르크만 소령의 집무실. 소령은 "고문을 하면 영웅에서 겁쟁이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만프레디도 인간이다"라며 부하에게 몇 시냐고 묻는다. 오후 8시30분. 그는 "(9시) 통행금지 시간 전에 발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결의를 보인다.

   먼저 만프레디가 소령 집무실로 불려간다. 만프레디가 자기는 (위조여권에 쓴 가명인) 조반니 에피스코포이며 바리 출신으로 직업은 오일과 와인 거래상이라고 말하자 소령은 실명과 과거 정치적 행적을 다 알고 있다며 '민족해방위원회 우두머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직의 디테일한 것을 털어놓으라며 족치다 고문실로 넘긴다.

 

 

   다음은 신부 차례다. 신부는 탈영병에게 조용히 기도나 하라고 타이르고 끌려간다. 소령은 레지스탕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서류를 위조하여 독일제국 군인들을 공격하도록 해를 끼쳤으며, 게다가 벌 받아야 마땅한 독일 탈영병을 숨겨줬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 친구인 에피스코포는 군사조직 타도가 목적이었고 당신은 그 자세한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실토를 하거나 친구를 설득하면 당신은 사제로써 그리고 시민으로써 당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눈감아주고 국제조약에 따라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제의하는 베르크만 소령.

   신부가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사적 정의에 입각한 탈주자들입니다. 소령의 말씀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말씀드릴 게 없으며 또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건 고해성사를 통해 알게된 부분적인 것일 뿐이며 그나마 그 비밀은 나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제들의 맹세입니다."

   소령이 호통을 친다. "그럼 네 친구를 설득하란 말이야!"

   신부: 내가 아는 한 그는 당신이 찾는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소령: 신부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나보고 믿으란 건가?

   신부: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가 나의 겸허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소령: 그는 파괴적이며 무신론자로 당신의 적이다.

   신부: 난 다만 가톨릭 사제일 뿐입니다. 난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주님의 길은 무한정입니다.

   소령: 나에게 설교 따윈 집어치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지 않을 텐가? 그리고 친구를 설득하지도 않을 텐가?

   신부: 그가 소령님이 얘기한 바로 그 사람이라면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기도하는 수밖에요.

   소령: 그래?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칭찬받지 못할 테니까… 그럼 내가 실토하게 해주지!

  

 

그때 보고가 들어온다. 공포에 질린 탈영병이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것이다.

   소령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일부러 문을 열어제끼고 만프레디의 고문장면을 보게 한다. 이 장면은 관객이 있는 쪽에 신부가 앉아서 관객들은 그 광경을 볼 수밖에 없도록 세팅했다.

   소령은 장교클럽으로 가서 다른 장교인 하르트만 대위(요프 판 휠젠, 1898~1971, 암스테르담 출신 배우)에게 레지스탕스 지도자와 신부에 대해 얘기한다. 하르트만은 "노예 종족의 피와 우수 종족의 피는 차이가 없다"며 "25년 전 프랑스에서 처형장을 담당했었는데 그땐 난 젊은 장교였었지요. 그때 나 역시 우리 독일인들은 우수 종족이라 믿었죠. 그러나 프랑스 애국자들은 실토보다는 죽음을 택했어요. 우리 독일인들은 사람들이 자유를 원한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했어요."라고 말한다.

   소령은 "당신은 취했구먼!" 이때 모든 장교들이 카드놀이를 그만 두고 경청하고, 잉그리드와 마리나도 이를 듣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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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1. 제1부 (계속)
   침대에 누운 한 노인이 프란체스코에게 이웃집 엘리데가 내일 결혼식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며 피나와 결혼하면 싸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한편 잠자리에 든 똑똑이 마르첼로가 "로몰레토가 '여자는 항상 말썽이다'"라고 말했다며, 비밀이라서 얘기할 수 없다면서도 이제 엄마와 결혼할 프란체스코와는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듯 폭탄 폭발은 아이들의 레지스탕스 활동이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마르첼로는 "내일부터 '아버지'라고 불러도 괜찮으냐?"고 묻고는 잠이 든다. 
   프란체스코가 마르첼로를 재우고 방을 나오니 피나가 지친 표정으로 나타난다. 내일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당장 짐을 싸서 떠나겠다는 동생 로레타와 싸웠기 때문이다. 만프레디가 있어 조용히 얘기할 수 없는 둘은 문밖 층계에 앉아 2년 전 둘이 처음 만났던 옛 이야기를 도란도란 속삭인다. 

 

   전쟁 때문에 모든 게 변했다며 걱정하는 피나. 그러나 전쟁은 끝날 테고 봄이 다시 올 것이며 그러면 자유가 오고 당신은 더 예뻐질 거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프란체스코. 
   길은 멀고 험해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보게 될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의연한 결의를 보이는 프란체스코는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장면은 바뀌어 하숙집 나니나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마리나. 할머니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전화를 끊고는 "병신같이 전화로 만프레디의 행방을 묻다니… 게슈타포에게 다 붙잡히겠다!"라고 중얼거린다.
   다음 날 아침. 베르크만 소령의 집무실에 경찰 수사관이 찾아와 만프레디가 프레네스티노 부근에 나타났다고 알린다. 베르크만이 바로 그 곳에서 가솔린 탱크차가 폭파됐다고 말한다. 수사관은 더 센세이셔널한 얘기가 있다며 어제 오후에 기록실에서 아주 흥미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바로 루이지 페라리스(Luigi Ferraris)의 사진. 1906년 10월3일 토리노 출생. 1928년 2월4일 볼로냐에서 체포됨. 국가음모죄로 1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감옥소로 이동 중 탈주하여 파리 또는 마르세유에 은신 중. 페라리스는 바로 만프레디의 다른 이름이다.
   소령이 잠시 자리를 뜬 다음, 잉그리드를 데리고 돌아와 수사관에게 인사를 시키며 "꽃과 커피를 갖다 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내 직원들을 부패시킨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하고는 잉그리드에게 "수사관은 아주 흥미 있는 발견을 했소"라고 치켜세우며 말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얘기는 끝났고 즉각적인 행동만 남았다"고 덧붙이는 소령. 이에 잉그리드는 문제 없다는 듯 "저한테 맡겨두세요"라고 대꾸한다. 역시 자신만만한 태도다.
   드디어 결혼식 날 아침. 만프레디와 프란체스코는 면도를 한 후 분장을 하고 있고, 이탈리아 경찰 상사가 축하꽃다발을 들고 방문하는데, 갑자기 독일군과 파시스트들이 들이닥쳐 건물을 에워싼다. 그리고 주민들 모두를 밖으로 내모는 게 아닌가. 

 

   한편 장면은 성당 안. 아이들 중 한 명이 자기들이 사는 건물이 군인들에 의해 포위됐다고 알린다. 신부는 안전을 위해 아이들 모두 교회에 머물 것을 주문하지만 마르첼로는 로몰레토가 건물의 다락에 폭탄을 숨겨놓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장면은 다시 아파트 건물. 만프레디가 뒷창문을 통해 도망친다. 부녀자도 병자도 모두 붙잡혀 끌려나온다. 이때 돈 피에트로 신부가 중환자 노인의 병자성사를 하러 왔다고 하자 독일군은 들여보내지 않는다. 이탈리아 경찰 상사가 잘 구슬러 허락을 받은 신부는 다락에 올라가 로몰레토로부터 얼른 폭탄을 뺏어 숨긴다. 

 

 

   한편 독일군이 못 참겠다는 듯 경찰 상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노인병자를 직접 만나겠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다락에서 내려오던 신부는 이들을 발견하고 얼른 한 노인이 거주하는 방으로 들어가 폭탄과 소총을 숨긴다. 라틴어로 기도를 하고 있는 신부를 목격한 독일군은 그냥 지나치는데, 사실은 100살까지 살 거라고 장담하는 멀쩡한 노인을 신부가 프라이팬으로 때려 실신시킨 것이다. 
   한편 부녀자들을 감시하던 한 독일군이 피나를 보고 눈이 예쁘다며 딴지를 거는 순간 독일군에게 붙잡혀가는 프란체스코를 목격하는 피나. 피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끌려가는 그를 따라가려는 그녀를 가로막는 독일군의 빰을 때리고, 프란체스코를 태운 트럭을 뒤쫓아가는 피나. 
   달려가는 그녀를 향해 독일군들이 뒤에서 총을 쏜다. 그녀는 길거리에 쓰러지고 만다. 마르첼로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고 신부가 그녀를 부축하지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결혼식도 못 치르고… 안타깝고 피가 솟구치는 비극이다!
   장면은 바뀌어 군용트럭이 지나가는 길 언덕에 잠복하고 있던 레지스탕스들이 총격전을 벌여 독일군에게 잡혀가던 프란체스코를 비롯한 이탈리아인들을 구출한다. 여기까지가 1부이다. 58분여가 걸렸다.

 

 

2. 제2부
   탈출에 성공한 프란체스코는 만프레디와 함께 마리나의 집으로 간다. 라디오 미국 방송에서 재즈음악이 흘러나오고 마리나는 커피 등을 대접한다. 프란체스코가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린 듯 하여 쉴 수 있는 이부자리를 만들고 '아스피린'을 구해주겠다고 말하는 마리나. 이때 로레타가 들어온다. 그녀는 술에 취해 남자 둘과 농담을 걸다가 마리나에 의해 쫓겨난다.
   이때 마리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잉그리드다. 옆에는 SS 베르크만 소령이 지켜보고 있다. 마리나는 자기 애인인 만프레디를 밀고하는데…. 
   마리나가 애인 만프레디에게 말한다. "연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내가 가구, 옷, 모든 것을 어떻게 장만했다고 생각하나요? 월급으로요? 월급은 스타킹과 담배 살 돈도 안 되요. 그런데도 난 다른 여자들처럼 생활하지요. 그게 인생이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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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1. 제1부 (계속)

   한편 피나는 만프레디에게 프란체스코와 내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며 임신 상태라 좀 늦긴

했지만, 전쟁 중이라 돈 피에트로 신부가 한 마디만 하면 결혼식은 끝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시청의 파시스트보단 낫다며. 자기는 전기퓨즈 제조공장에 다녔는데 나치가 점령하는 바람에 쫓겨났단다.

 

   이때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도착한다. 만프레디는 신부에게 군사위원회로부터의 자금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타글리아코조(Tagliacozzo, 이탈리아 중부 지역 아브루조의 아킬라 주에 속한 도시로 로마에서 약 80km 동쪽에 위치)에 있는 언덕에 500명의 레지스탕스가 있다며 자기는 쫓기는 몸이라 갈 수가 없단다. 통행금지가 5시에 있으니 티부르티나 다리에서 6시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모닝 인 플로렌스(Morning in Florence)'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된단다. 신부는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은 오히려 적다고 말한다.

   신부가 조각상 가게에 들른다. 흥정하는 척하다가 '꽉 낀 신발(tight shoes)'(만프레디의 암호명?)이 보냈다고 하자 주인이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 사이에 마주 보고 진열돼 있는 누드 조각과 성인(聖人) 조각을 서로 등을 보게 재배치해 놓는 신부. 시니컬하고 코믹한 장면이다. 또한 세속과 종교 간 상충하는 갈등을 절묘하게 묘사한 장면으로도 볼 수 있겠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안쪽 문을 통해 지하통로로 내려가는 신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는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그란드자케트)를 만난 신부는 간밤에 만프레디 하숙집을 게슈타포가 수색했다며 지금 피나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알린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전달한다.

 

 

   쪽지에 의하면 만프레드가 로마를 떠나 파시오니스트 수도원에 보내지길 원한다. 프란체스코는 두꺼운 책을 신부에게 건넨다. 그 책 속에는 지하운동 지원금 100만 리라가 감추어져 있다. 공산주의와 가톨릭의 제휴! 독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물과 기름 같은 사상과 종교마저도 결합된다.

   장면은 바뀌어 마리나의 분장실에 로레타가 찾아와 대뜸 오늘 아침에 만프레디를 만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른 집을 찾을 때까지 같이 지내도 괜찮은지 묻는 로레타.

  

이때 다음 출연을 위해 마리나가 떠난 분장실에 언니로 불리는 잉그리드(조반나 갈레티)가 들어온다. 그리고 분장실 거울에 붙여놓은, 앞에서 이미 봤던 스페인 광장에서 찍은 마리나와 만프레디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 잉그리드. 그녀는 게슈타포의 첩자이다.

   한편 피나가 신부를 만나러 온다. 양배추 수프를 만들고 있는 교회지기인 아고스티노(난도 브루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마침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돌아온다.

   아고스티노가 책을 들고 오는 신부에게 "자꾸 책만 사고 식료품은 사 오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신부는 "산 로렌조에게 전달할 책"이라며 손도 못 대게 하고 또 외출하려고 하자 아고스티노가 통금 20분 전이라며 의아해 묻는다. 이에 "의사와 신부는 괜찮다"고 대답하는 신부. 아고스티노가 "산파"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때 피나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외출해야 하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말하는데 그럼 같이 걸어가면서 얘기하겠다며 따라 나선다. 그러면서 책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신부는 기겁을 하고 말리는데….

   성당에 기도한 후 피나와 함께 성당을 나서는 돈 피에트로 신부에게 한 독일군(아코시 톨네이)이 찾아와 얘기할 게 있다고 한다. 피나가 들고 있던 책보따리를 전해주려고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긴 신부는 도로 맡기고 저만치 가 있으라고 타이른다. 요리를 하고 있던 아고스티노를 나가게 하고 독일군을 독대하는 신부.

 

   그 독일군이 대뜸 총을 빼들자 잔뜩 긴장하는 신부. 한데 그 독일군은 탄창을 빼내어 그 속의

탄환을 입으로 물어뜯은 뒤 탄피 속에서 꼬깃꼬깃 말아놓은 쪽지를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그것은 민투르노(Minturno, 이탈리아 남부 라치오 주에 있는 고대도시)의 사제인 돈 사베리오 데리시가 쓴 편지였다.

   신부가 안경을 벗고 깨알같은 글씨를 읽고 있는 동안 독일병은 "내가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다행히도 씨노(Cassino)에서 도주한 탈영병이었던 것이다. 신부가 상심하지 말고 내가 도와주겠다며 그를 숨겨준다. [註: 2차 대전 종전 무렵인 1944년 5월 프랑스 원정군(French Expeditionary Corps·FEC)과 독일군 사이의 몬테카씨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둘러싼 치열한, 이른바 '몬테카씨노 전투'에서 FEC가 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FEC 외인 부대인 모로코 군인들에 의해 이탈리아 치오치아라(Ciociara)에서 저질러진 집단 살인과 강간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이를 다룬 영화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두 여인(1950)'이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거의 폐허가 된 카씨노는 1950년대 초반 이탈리아 공화국의 루이지 에이나우디(Luigi Einaudi, 1874~1961) 대통령 시절(재임기간 1948~1955) 때 재복원되었고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축성식을 거행했다.]

 

 

   한편 교회 의자에서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피나. 가방 위에 올려놓은 하얀 포장은 레지스탕스의 자금인 걸 모른 채…. 드디어 레지스탕스 대원을 만나서 무사히 자금을 전달해주는 신부.

   밤늦게 프란체스코가 귀가한다. 통행증을 제시해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집에 당도했을 때 잉그리드가 독일군 지프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는데….

   만프레디가 귀가한 프란체스코를 반가이 맞는다. ?????????돈 피에트로 신부가 타글리아코조에서 온 지노를 만났다고 하자 기뻐하는 만프레디. 그러나 '만프레디가 당분간 모든 접촉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지노의 당부를 전하는 프란체스코.

   이때 피나가 걱정스레 들어와서 온 동네를 다 뒤져도 마르첼로를 못 찾겠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로몰레토와 다른 두 아이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때 시내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포탄이 터진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없어졌던 마르첼로와 위층에 사는 로몰레토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우루루 달려 들어온다. 아이들이 나름의 저항군 활동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집에 도착하는 족족 부모들에게 야단을 맞는다. 마르첼로도 엄마에게 혼줄이 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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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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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무방비 도시(Rome, Open City. 원제 Roma citta aperta)'이다. 1945년 미네르바 영화사 배급. 이탈리아 흑백 스탠더드 영화. 감독·제작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 그리고 '길(La Strada, 1954)'로 유명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등이 참여하여 세르지오 아미데이의 '지난 날의 이야기(Stories of Yesteryear)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출연 알도 파브리치, 안나 마냐니, 마르첼로 파글리에로. 러닝타임 105분. [註: 본 칼럼은 2013년에 디지털로 복원된 원판의 영어 자막을 참고하였다.]

   194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 오름으로서 로셀리니 감독과 당시 각색가였던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여주인공 안나 마냐니가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바티칸은 1995년 영화 1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 가치, 예술 등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45편의 '위대한 영화'를 선정했는데, 이 작품은 '가치(values)' 부문에 들어가 있다. 또한 이 영화는 '길'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이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도 꼽혔다.

 

   그런데 '무방비 도시'라는 제목은 1943년 8월14일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군에 대해 로마를 'open city'로 선언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그런 타이틀이 붙었다. [註: 'Open City' 즉, '무방비 도시'는 "군사시설 및 주둔하고 있는 부대가 없는 것으로 선언된 도시"를 일컫는다. 주로 적에 의한 함락이 거의 확실시 되는 도시에서 무의미한 전투 및 문화유산 등의 파괴와 무고한 시민들의 학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언되는데, 이건 항복 선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상 이 경우 공격당사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방비의 도시를 포격, 공습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무방비 도시 선언 사례는 1940년에 벨기에가 브뤼셀을, 그리고 같은 해 프랑스가 파리를 독일군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1942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의 마닐라를 일본군에 대해 무방비 도시로 선언했다.]

   필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무방비 도시'를 '전쟁과 여인의 운명'이란 카테고리에 끼워넣은 이유는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희생물이 되기 때문이다.

   편의상 2부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1. 제1부

   배경은 1944년 3월 로마.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 나치 점령하에 있던 로마의 민중들은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나치에 대항하는 지하운동을 펼친다. 다양한 캐릭터 중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가톨릭 사제의 도움으로 로마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과정이 줄거리의 중심이다.

 

 

   영화의 도입부. 독일군들이 조르조 만프레디(마르첼로 파글리에로)가 묵고 있는 하숙집을 급습한다. 도우미인 나니나 할머니에게 그의 행방을 묻는다. 그러나 하숙집 여주인은 만프레디가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때 옥상을 통해 도망치는 만프레디. 마침 그때 그의 연인 마리나 마리(마리나 미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데….

   독일군 바우어 상사가 옥상으로 올라가 확인한다. 바로 옆집에 스페인 대사관저가 내려다 보인다.

   한편 게슈타포 베르크만 소령(해리 파이스트)이 이탈리아 경찰 수사관(카를로 신디치)에게 로마를 14개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입수한 사진― 만프레디와 한 여자가 스페인 광장을 배경으로 찍은 ―을 보여주는 베르크만. 경찰수사관이 만프레디는 민족해방위원회의 리더이며 옆의 여자는 카바레 댄서인 '마리나 마리'라고 말한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이제 체포는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이때 옆방에서 고문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하가 들어와서 교수를 고문하고 있는데 조용히 하도록 하겠다고 정중히 보고한다.

   장면은 빵배급소. 이탈리아 경찰 상사(에두아르도 파사렐리)가 피나(안나 마냐니)의 짐을 들어준다. 배급 받은 빵 두 덩어리를 경찰에게 주는 피나. 이때 지나가던 한 신사가 피나에게 계란을 16리라에 팔라고 하자 경찰 상사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진다.

   아파트로 돌아오니 레지스탕스의 주요인물인 만프레디가 그의 동료인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그란드자케트)를 만나러 온다. 프란체스코와 결혼을 앞둔 피나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어주자 그의 아파트로 들어온 만프레디는 대뜸 돈 피에트로 펠레그리니 신부(알도 파브리치)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어린 아들 피콜로 마르첼로(비토 아니키아리코)를 불러 교회로 심부름을 보내는 피나.

 

 

   한편 피나의 여동생인 로레타(카를라 로베레)가 노크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와 카바레 동료인 마리나의 애인 만프레디가 와 있는 것을 목격한다. 만프레디는 로레타에게 마리나에게 며칠 간 볼 수 없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피나가 "여동생은 스스로 예술가라며 '굶는 노동자'인 우리를 창피하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나쁜 애는 아니고 좀 어리석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로레타와 함께 자란 사이라며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양철공 가게 가까운 곳에서 수위 일을 했기 때문이란다.

   한편 만프레디는 마리나를 안 지 4개월 밖에 안 됐다고 말한다. 그가 로마에 왔을 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공습경보가 울려 모두 대피했지만 자기와 마리나 둘만 남았는데,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밝은 웃음을 짓는 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여자가 아니라며 "만일 그녀가 더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이라고 말하는 만프레디. "여자는 변해요. 특히 사랑을 할 때는요."라며 그제서야 커피라도 한 잔 드리겠다고 제의하며 나가는 피나.

 

 

  한편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동네아이들의 축구시합 심판을 보고 있다. 마르첼로가 도착하여 누군가가 프란체스코 아파트에 찾아왔는데,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중요한 일이라며 빨리 가야한다고 보챈다. 아주 똑소리가 나는 영리한 아이다.

   마르첼로가 떠나기 전에 성당에 들러 인사하는데 너무 깜찍하고 귀엽다. 그런데 그는 신부님에게 '교리문답(catechism)' 할 시간이 없다며 자기들은 적들을 물리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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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오명(汚名·Notorious)"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해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탄 개발 계획)'의 상세한 내용이 공개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국가 최고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화의 비둘기는 깃털 하나 다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원자폭탄 투하 후 맨 처음으로 나온 우라늄 소재 첩보영화였으니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지만 '맨해튼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배우 도나 리드(Donna Reed, 1921~1986)에 의해서였다. 그녀가 아이오와 주 농촌 마을의 데니슨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인 1936년에 화학을 가르쳤던 에드워드 톰킨스(Edward R. Tompkins, 1927~1990) 선생이 학교를 떠나면서 그녀에게 준 책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오고 간 서신연락에서 선생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음이 밝혀지면서 원자탄 개발이 노출되는 단서가 되어 1947년 MGM에 의해 원자탄에 대한 첫 다큐멘터리 영화 "The Beginning or the End"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오명'의 스토리는 오래된 주제인 직업상 의무감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데블린의 임무는 앨리시아를 성적 미끼로 삼아 세바스천의 침실로 밀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진작 그녀가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이뤄냈을 때는 곤혹스러워 한다.

   데블린은 직업상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나치 세바스천은 오히려 매력 있는 인물로 비친다. 왜냐하면 그의 앨리시아에 대한 사랑은 데블린보다 더 순수하고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 바탕한 그의 신뢰가 결국 배반 당하면서 심원한 질투심과 격분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앨리시아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의해 냉정하게 조종 당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명을 남기는 성적인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녀의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도 자기를 그녀 아버지의 나치 일당들에 대한 스파이로 삼아 참기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한 연인으로부터 오히려 버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이러한 처사는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다름 아닐른지….

 

 

 

   요컨대 '오명'에서 여자는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며 남자는 스스로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데, '오명'은 이러한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첩보 영화에 절묘하게 뒤섞는 또다른 장르의 원류를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는 아들의 반려자를 죽이도록 무뚝뚝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는 세바스천의 어머니가 주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 히치콕 감독의 어머니는 1942년 9월에 사망했는데 4년 후인 '오명'에서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캐릭터로 내세운 것이다. 그 후 어머니의 등장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The Birds·1963)', '마니(Marnie·1964)' 등으로 이어진다.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고 가혹한 모성적 초자아(超自我)가 중요한 작품 배경을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히치콕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마치 밀로쉬 포르만 감독의 '아마데우스(1994)'에서 모차르트가 유명한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할 때 그를 쫓아 다니는 죽은 아버지의 환상을 테마로 했듯이, 분노와 원망, 죄의식과 슬픈 열망 등의 개인적 표상이며 동시에 모성애와 에로틱 러브가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치콕이 사용한 충격과 서스펜스 전략의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사이코'가 그렇다.

   또 '오명' 영화만큼 술 마실 때 술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표현한 영화도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술마시기가 주제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앨리시아가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첫 도입부 파티 장면에서 한 손님이 앨리시아에게 이제 그만 마시자고 하니까 "중요한 술마시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대답하는 것과 음주 운전 장면은 앨리시아를 '엽기적인 그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교통 경찰이 등장하고 데블린이 경찰에게 뭔가를 보여주자 아무 소리 안 하고 경례까지 붙이고 보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만든다. 아무튼 마지막에 독을 탄 커피를 마신 뒤에야 그녀는 아마도 음주는 훨씬 더 위험한 가치 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히치콕 감독에 대한 평가 중 귀담아 들을 내용은 그의 전성기와 일치하는 전쟁과 파시즘의 득세에 따른 이데올로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자신이 몸담은 시대정신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빚어진 고통에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메시지의 전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관객들을 공포와 두려움 속으로 몰아가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는 '휴머니즘의 부재(不在)'야말로 스릴러의 천재 히치콕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3월7일, 미국영화협회(AFI)가 히치콕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을 때 열린 축하 만찬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오명'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와인창고 소품 열쇠를 그에게 선물했다. 사실은 영화 촬영 후 캐리 그랜트가 갖고 있다가 몇 년 뒤 이 열쇠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며 버그만에게 행운의 기원으로 준 것이었다. 히치콕 감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도 행운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말: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열애로 헐리우드에서 추방되었을 때도, 그후 그와 이혼하여 헐리우드에 복귀했을 때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이는 캐리 그랜트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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