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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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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5·끝)

 

(지난 호에 이어)

• 1939년 12월 15일 애틀랜타에서 첫 시사회가 열렸을 때, 주지사가 주공휴일로 지정했다. 티켓 가격은 보통 가격의 40배가 넘었다. 마틴 루터 킹 시니어도 초대받아 참석했으며 이때 유명한 주니어도 함께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이 시사회에 스칼렛의 유모 역을 맡아 열연했던 흑인 여배우 해티 맥대니얼(Hattie McDaniel, 1895~1952)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같이 연기했던 클라크 게이블이 만약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맥대니얼의 시사회 출연은 끝내 무산되었다. 이때 애틀랜타의 흑인들은 영화관 밖에서 이 영화의 인종차별성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 1940년 2월, LA의 엠버서더 호텔에서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티 맥대니얼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최초의 흑인 오스카 수상자였다. 엠버서더 호텔은 흑인 출입금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해티 맥대니얼은 특별히 허가된 흑인 손님으로 입장하였다.

 

 맥대니얼은 수상 연설에서 자신의 수상은 자신의 인종과 아울러 영화산업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맥대니얼의 소망과는 반대로, 80년대에 접어들 때까지 흑인 아카데미 수상자는 단 한 명이 더 나왔을 뿐이었다. 우피 골드버그가 '사랑과 영혼(The Ghost·1990)'의 '오다 메이 브라운' 역으로 두 번째로 아카데미 흑인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51년이 걸렸다

 

• 남북전쟁이 선포되기 전 바베큐 장면에서 해시계에 쓰여있는 글 ―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형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Do not squander time, for that's the stuff life is made of.)" - 벤자민 프랭클린

 

• 미국영화연구소(AFI)가 2007년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GWTW가 6위 차지.

 

• 2015년 4월 19일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에서 진행된 헤리티지 옥션에서 주연배우 비비안 리가 입었던 회색과 검은색으로 된 드레스가 13만7천 달러에 팔렸다. 또 그녀가 썼던 밀짚모자가 5만2,500달러,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입었던 정장 바지와 재킷이 5만5천 달러에 팔렸다. 그리고 비비안 리와 멜라니 윌크스 역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모두 썼던 검은색 보넷은 3만 달러에 팔렸다. 이날 경매에 나온 물품들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분장 책임자였던 제임스 텀블린(James Tumblin)의 개인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비비안 리가 걸쳤던 콜세트가 18인치(46cm)로 유명한데, 그후 니콜 키드먼이 '물랑루즈(2001)'에서 입었던 것 외엔 대부분 배우들이 실패했으며, 예컨대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Olivia de Havilland, 1916~2020)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8년 뒤인 1947년 'To Each His Own'으로, 또 1950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드 하빌랜드보다 한 살 아래인 여동생 조운 폰테인(Joan Fontaine, 1917~2013)도 오스카상을 탄 스타다. 그런데 둘은 어려서부터 성장해서까지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보인 앙숙지간이었다. 라이벌인 둘은 지난 1942년 공교롭게도 헐리우드 사상 전무후무하게 자매가 나란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드 해빌랜드는 드라마 ‘Hold Back the Dawn(1941)’으로, 폰테인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심리 스릴러 ‘의혹(Suspicion·1941)’으로 각기 후보에 올라 동생이 언니를 누르고 상을 받았다.

 

 둘의 라이벌 의식은 폰테인이 2013년 12월 15일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2020년 7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104세로 타계했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 비비안 리(Vivien Leigh, 1913~1967)는 GWTW에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1951년 일리어 카잔 감독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가족을 잃고 빈궁에 빠진 남부의 여인 블랑슈 뒤부아(Blanche DuBois) 역을 연기해 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비안 리는 세계적인 미인이었지만 진작 자신은 아름다움이 진정한 배우의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1940년 유명한 영국배우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1907~1989)와 재혼하여 1960년 이혼할 때까지 황금기를 누렸지만 극심한 조울증과 정서 불안 때문에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평판을 얻으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만성결핵으로 향년 53세로 타계한 비운의 영국 배우였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GWTW'의 제작자인 데이빗 O. 셀즈닉은 비비안 리를 전격적으로 캐스팅하였지만 그 후 악연(?)이 이어진다. 비비안은 '애수(Waterloo Bridge·1940)'에서 로이 역에 올리비에를 원했지만 그는 로버트 테일러로 교체했는가 하면, 올리비에 출연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940)'에 비비안과 공연하기를 원했으나 역시 셀즈닉에 의해 그리어 가슨으로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출연배우 중 애슐리 윌크스와 멜라니 해밀턴 사이의 외아들인 보 윌크스 역을 맡은, 당시 6세의 아역배우였던 미키 쿤(Mickey Kuhn, 1932~2022)은 1957년 은퇴한 이후, GWTW 및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출연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지난 11월 20일 90세로 타계했다.

 

 크레디트를 받진 못했지만 윌크스 집 바베큐 행사 때 그리고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가 춤을 추었던 바자회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캐런 마쉬 돌(Caren Marsh Doll·103)과 갓난 애기 보 윌크스 역의 패트릭 커티스(Patrick Curtis·83)가 아직 생존해 있다. 커티스는 그의 삼촌인 유명 감독 빌리 와일더에 의해 캐스팅됐다.

 

 숱한 일화를 남긴 추억의 명화 GWTW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또다른 예술적 검열로 인해 바람과 함께 사라졌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영원한 오늘로 살아있으리라. (끝)

 

▲ 목재소에서 애슐리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본 미드 부인(레오나 로버츠)과 동생 수엘렌의 오해를 풀기 위해 버틀러의 등에 밀려 마지못해 애슐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스칼렛(비비안 리).
 


▲ 술에 취한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머리 속에 든 애슐리의 생각을 지우겠다며 스칼렛의 머리를 조인다.
 


▲ "우린 신사도 아니고 지킬 명예도 없어. 당신은 날 내쫓고 애슐리를 쫓아다녔어. 하지만 오늘밤엔 안 될 거야!"라며 스칼렛을 덥썩 안고 침실로 올라가는 레트 버틀러.
 


▲ 레트 버틀러와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날 아침 스칼렛은 행복에 겨워 노래까지 부른다. 유모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중얼거린다.
 


▲ 스칼렛은 레트가 곁을 떠나자 "타라에서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는 마지막 낙관론의 명대사를 남긴다. 그리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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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4)

 

(지난 호에 이어)

 북군이 떠나자마자 그들은 그동안 출혈이 심한 애슐리를 응급치료한다. 그 와중에 멜라니는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준 버틀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반면 스칼렛은 남편 케네디의 생사 여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애슐리만 보살피는데….

 

 어느날 밤, 멜라니의 감사 편지를 받은 매춘부 벨 와틀링이 남몰래 찾아와 남의 시선을 피해 마차 안에서 대화한다. 멜라니는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남편을 도와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와틀링이 "케네디 부인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며 "케네디 씨는 그 부인이 직접 쏴 죽인 거나 다름없어요"라고 얘기하자 멜라니는 "내 시누이를 욕하지 마세요"라고 타이른다.

 

 와틀링이 "부인과는 질이 다르다"며 "윌크스 부인은 저를 길에서 만나더라도 제게 말을 걸지 마세요"라고 하자 오히려 "당신에게 신세진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다정하게 말하는 멜라니. 참 심성이 곱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 뒤 드디어 스칼렛이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한다.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있었고, 스칼렛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그녀는 살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한 것이지 그때까지도 애슐리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트 버틀러에게 안길 때도 스칼렛은 그것이 애슐리였으면 하고 생각하는 지경이었으니 결혼 생활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들의 첫딸인 보니 블루 버틀러(캐미 킹 콘론)가 다섯 살의 나이에 낙마해 죽는 사건이 결정적으로 파국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註: 멜라니는 보니의 눈빛이 당시 남부 국기인 '보니 블루 국기(Bonnie Blue Flag)'처럼 푸르다고 언급했다. 당시 남부 국기는 1861년 미합중국으로부터 탈퇴한 조지아 주에서 파란 바탕에 하나의 하얀 별(single white star)을 그린 것이었는데 나중에 미합중국기를 모방한 7개의 별이 있는 'Stars And Bars'로 대체되었고 X 자 모양의 전투깃발(Battle Flag)이 남부연합군의 깃발이 되었다.]

 

 곧 뒤이어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가 사망하는데, 스칼렛은 멜라니의 죽음으로 비로소 그녀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은 사랑을 갈구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동시에 자신이 레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참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슐리에게 집착하는 스칼렛에게 이미 정이 떨어져버린 레트 버틀러. 스칼렛은 남편을 향해 처음에는 “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징징 울어댄다. 이에 버틀러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한 마디 ― "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난 당신 일에 전혀 관심 없어(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라는 말을 남기고 타라 농장의 그녀 곁을 떠나 찰스턴으로 가버린다. [註: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에 ‘damn’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은 검열기관에 5천 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썼고 가톨릭으로부터 금지딱지를 받았다. 이 대사는 미영화협회(AFI) 명대사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가 떠나자 실의에 빠지지만, 항상 절망적인 일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그랬듯이 "전부 다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그땐 견딜 수 있을 거야.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고 앙칼지게 다짐하는 명대사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註: 이 말은 가공스럽기까지 한 억척스런 낙관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는 번역으로 더욱 유명해진 대사로 AFI 명대사 부문에서 31위를 차지했다. 이 열린 대사 때문에 속편들이 등장했지만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스칼렛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여성으로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존의 교본과도 같은 여자다.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같은 정열적인 성질을 지닌 여자로 어떤 난관과 패배에도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와도 같다." (LA한국일보 박흥진 영화칼럼니스트의 멘트.)

 

 그러나 그녀는 살기 위해 돈만을 밝히며 질투심과 오기로 결혼하는 등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레트 버틀러의 헌신적인 도움과 사랑을 여자라는 무기로 위장하여 무례하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런 여인이 결코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멍청하기까지 하여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관점도 있다.

 

 이제 GWTW에 얽힌 여담(餘談·Trivia)을 언급하고 끝을 맺을까 한다.

• GWTW는 컬러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첫 케이스.

•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의 비비안 리는 영화 속에서 총 2시간 23분 32초에 달하는 가장 긴 출연의 기록을 남겼다.

• 비비안 리는 125일간 일하고 2만5천 달러를 받은 반면, 클라크 게이블은 71일 일하고 12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 GWTW는 원래 88시간 분량의 길이를 6,100미터(2만 피트)로 줄였으며, 한마디라도 말하는 역이 50명인 반면 말 한마디 없는 엑스트라 2,400명이 동원됐다.

• GWTW의 인터미션의 막간음악(Entr'acte)에서 헐리우드 영화사상 처음으로 일렉트릭 신세사이저 노바코드(Novachord)로 연주한 음악이 사용되었다.

• 데이비드 O. 셀즈닉은 같은 해 "이별(Intermezzo: A Love Story)"에서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주연했던 레슬리 하워드를 GWTW의 애슐리 역으로 캐스팅하기 위해 개런티 외에 공동제작권의 뇌물까지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 레트 버틀러가 막대한 재산가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서 돈을 구해올 생각으로 애틀랜타로 향하기 전에 자신의 얼굴을 깨진 거울에 비춰보고 야윈 모습에 실망하는 스칼렛.
 


▲ KKK단에 관계하고 있던 프랭크 케네디는 스칼렛의 성추행 보복을 하러 갔다가 살해당하고, 목재소에서 함께 일하던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는 총상을 입고 레트 버틀러와 닥터 미드에 의해 구출돼 집으로 돌아온다.
 


▲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무릎을 꿇고 스칼렛(비비안 리)에게 정식 청혼을 한다. 드디어 결혼을 하지만…
 


▲ 첫딸 보니 블루를 애지중지 하는 레트 버틀러. 그러나 보니 블루(캐미 킹 콘론)가 다섯 살 때 낙마해 죽음으로써 둘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파국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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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3)

 

 (지난 호에 이어)

집이 불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집에는 옥수수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 엘렌은 장티푸스로 죽었으며, 아버지 제럴드 오하라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

 

 스칼렛은 여동생 둘과 의지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 거기에 멜라니와 그녀의 아들뿐만 아니라 주인집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남아있던 유모(해티 맥대니얼), 포크(오스카 포크), 프리시(버터플라이 맥퀸) 등 흑인 하인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그러나 "하느님이 증인이야! 나는 결코 지지 않는다. 나도 내 가족도 절대 배고프지 않을 거야! 거짓말, 도둑질, 사기, 살인을 해서라도 다신 굶주리지 않을 거야!"라고 맹세하는 스칼렛!

 여기까지가 1시간 44분. 약 5분여의 중간휴게시간이 있다.

 

 '타라'는 기아와 패배의 지옥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 부분에서 스칼렛은 단독으로 빈집털이를 하러 가택침입한 북군 탈영병을 직접 쏴죽이기도 하고, 북군이 두 번째로 타라를 덮쳤을 때 불타는 저택을 스칼렛과 멜라니가 가까스로 구해내기도 하는 등 갖은 시련을 겪는다.

 

 결국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인물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만신창이가 된 군인들이 돌아온 고향. 한때는 풍요롭고 평온했던 그 곳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또 다른 침입자는 전쟁터의 상대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하였으니 그들이 바로 북부 뜨내기들이었다.

 

 어느 날 북군에 포로로 붙잡혔던 애슐리가 살아 돌아온다. 멜라니가 달려간다. 이를 본 스칼렛이 덩달아 뛰쳐나가려고 하자 유모가 멜라니의 남편임을 상기시키며 극구 말린다.

 

 스칼렛은 전쟁이 끝나고 애슐리도 왔으니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른바 '재건 시대(Reconstruction Era)'로 불리는 북군에 의한 군정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완전히 잃고 만다.

 

 타라 농장도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하층민 에미 슬래터리(이사벨 주얼)와 결혼한 조나스 윌커슨(빅터 조리) 부부가 찾아와 오만한 태도로 타라 농장을 넘보자 분개하여 말을 타고 그들을 쫓아가던 아버지 제럴드 오하라가 그만 낙마하여 사망한다. 64세였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가 막대한 재산가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구해올 요량으로 애틀랜타로 향한다.

 

 그러나 레트 버틀러는 공교롭게도 북군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여서 돈을 줄 수가 없었다. 실망하고 나오던 스칼렛은 마침 여동생 수엘렌(에벌린 키이스)의 애인이자 지난 크리스마스파티 때 타라에서 같이 보냈던 프랭크 케네디(캐롤 나이)와 마주치곤 대신 그를 꼬여낼 결심을 한다.

 

 스칼렛은 수엘렌이 새 애인을 사귀고 있다는 거짓말로 프랭크 케네디를 속이고 결혼한 뒤 그의 재산으로 타라를 지켜낸다. 스칼렛은 남편 프랭크가 잡화점을 경영하는 방식이 영 못마땅하자 그가 인수할 예정이던 목재소를 자신이 가로채서 인수한 뒤 직접 경영에 나서고, 찰스가 유산으로 남긴 땅에 술집을 지어 임대하는 등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리고 취직된 뉴욕 은행으로 떠나려던 애슐리를 꼬드겨 목재소 경영에 참여시키는데….

 

 그러나 경영일에 바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몸으로 나다니던 스칼렛은 흑인 슬럼가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마침 과거에 타라 농장에서 일하던 빅 샘(에버렛 브라운)이 도와줘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스칼렛. 그러나 KKK단에 관계하고 있던 프랭크 케네디는 스칼렛이 성추행 당한 것을 보복하러 갔다가 오히려 살해당하고 만다. [註: 미국 남북전쟁 이후 테네시주 펄래스키(Pulaski)에서 6명의 퇴역군인에 의해 탄생한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은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반가톨릭주의, 반동성애 성향의 사이비 종교 및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줄여서 KKK단이라고 불린다. 이름의 의미는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집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 'clan'을 합성하여 총소리 의성어와 비슷한 어감이 나는 명칭으로 만든 것. 이름대로 흑인 척살이 주된 활동이었다.

 

모임의 대표는 대마법사(Grand Wizard)라고 하고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전사한 남부연합군 병사들의 혼령임을 자처하여 상징적으로 흰옷을 입고 하얀 고깔두건을 쓰는 등의 차림새를 했다. 그후 이 이미지가 KKK단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앨라바마, 미시시피 주에는 KKK단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다음 타깃은 아시아계와 무슬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영화에서도 스칼렛이 그녀의 남편 프랭크가 비밀리에 KKK 활동을 하던 중 머리에 총을 맞고 죽게 되자 그 용기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등 '간악한 북부 양키와 그 수하인 흑인들에게 핍박받는 남부를 지키는 용감한 사나이들의 집단'이란 식으로 미화되었다.]

 

 한편 프랭크 케네디와 함께 목재소에서 일하던 애슐리도 복수전에 참여했다가 어깨에 총상을 입는다. 그러나 레트 버틀러와 닥터 미드(해리 데이븐포트)의 기지(機智)로 알리바이를 위해 애틀랜타 유곽에 있는 매춘부 벨 와틀링(오나 먼손)의 도움을 받아 술에 만취한 양 집으로 돌아와 이미 체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북군을 교묘히 따돌리고 위기를 모면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스칼렛과 갓 출산한 멜라니와 아이를 위해 애틀랜타를 탈출하여 타라 근교까지 데려다 주는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 감사의 말은커녕 타라 집까지 데려다 주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는 스칼렛 오하라에게 레트 버틀러는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는 남부 연합군에 입대하러 떠난다.
 


▲ 흑인노예 프리시(버터플라이 맥퀸)와 함께 마차를 몰아 멜라니와 갓난 아이를 싣고 타라로 향하는 스칼렛.
 


▲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한 어머니 엘렌 오하라(바버라 오닐)의 모습을 보고 놀란 스칼렛(비비안 리)이 비명을 지른다.
 


▲ 스칼렛은 멜라니와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몇 명의 흑인 노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 "하느님이 증인이야! 나는 결코 지지 않는다. 난 절대 배고프지 않을 거야!"라고 맹세하는 스칼렛(비비안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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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2)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마가렛 미첼의 소설 제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국의 요절한 탐미주의 시인 어니스트 다우슨(Ernest Dowson, 1867~1900)의 유명한 시 "시나라(Cynara)"에서 따온 것이다.

 

 "I have forgot much, Cynara! gone with the wind,
 Flung roses, roses riotously with the throng,
 Dancing, to put thy pale, lost lilies out of mind;
 But I was desolate and sick of an old passion, …"

 (나는 잊었다, 시나라여!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백합을 기억에서 지우려 춤추며 남 따라 야단스러이 장미를, 장미꽃을 던졌으나 그래도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조지아주 클레이턴 카운티 존스보로 근처에 있는 타라 농장을 소유한 대농장주인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의 장녀로,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 16살 소녀이다.

 

 그러나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따로 있었으니, 이웃 윌크스 집안의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였다. 그러다 애슐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스칼렛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애슐리는 "스칼렛의 삶에 대한 열정은 높이 사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한 결혼이 될 순 없다"고 타이르며 "결혼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멜라니와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말한다. 화가 난 스칼렛은 평생을 증오하겠다며 애슐리의 뺨을 철썩 때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마침 서재에 있던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본의 아니게 모두 훔쳐보게 된다. 버틀러는 애슐리에게 차인 스칼렛을 놀리고, 그녀는 화가 나서 뛰쳐나간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보란듯이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 해밀턴(랜드 브룩스)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얼마 안 가 남북전쟁이 터지고 애슐리와 찰스도 의용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찰스는 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폐렴으로 죽어버려 스칼렛은 졸지에 딱 6주 동안 결혼 생활을 한 뒤 애까지 딸린 미망인이 된다.

 

 그 후 스칼렛은 애틀랜타에 있는 죽은 찰스와 멜라니의 고모인 피티팻 해밀턴(로라 호프 크루스)의 집에 가서 지낸다. 아직 상중(喪中)인 스칼렛은 남부군 지원을 위한 바자회에 참석하여 모금운동을 돕는데, 멜라니와 스칼렛은 그들의 결혼반지를 헌납한다. 버틀러가 즉석 제안하여 상복을 입은 채로 무도회 춤을 추는 스칼렛에 대한 주위의 눈총이 따갑다.

 

 그 후 버틀러로부터 스칼렛에게 편지가 온다. "해밀턴 부인, 남부 연합이 남자들의 피는 요구할망정 부인들의 소중한 정표(情表)마저 빼앗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인의 결혼반지를 찾아서 돌려 드리며 파리에서 돌아가는 즉시 부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추신 - 윌크스 부인의 반지도 동봉합니다."


 자막을 통해 계속되는 전쟁의 상황을 보여준다. 전쟁은 북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남부는 갈수록 피폐해져가며, 북군이 애틀랜타까지 밀어닥친다. 북군이 애틀랜타를 포위공격해서 애틀랜타가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 스칼렛은 갓 출산한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인 타라 농장으로 피신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찰스턴 출신의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젊은 시절 일으킨 모종의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도박으로 연명하다가 남북전쟁을 기회로 삼아 밀수무역 및 필수품의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스칼렛은 그를 싫어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현실주의적 성격에 은근히 끌리기도 한다. 이미 한참 전부터 스칼렛 일가를 보살펴주던 그는 스칼렛과 출산한 멜라니와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군대 마굿간에서 훔친 말과 마차로 불바다가 된 애틀랜타를 탈출하여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타라 근교까지 데려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말은커녕 타라 농장까지 가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는 스칼렛에게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는,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남부 연합군에 입대하러 떠나는 레트 버틀러!

 

 막상 타라에 돌아왔으나 그 곳은 더 이상 스칼렛이 알던 평화롭고 안락한 집이 아니었다. 농장은 황폐해지고, 가축은 모두 도둑맞고, 노예들은 죄다 도망치고, 3년 동안 수확해서 쌓아둔 15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목화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애틀랜타 포위전 동안 이 근처에서 북군과 남군의 주력이 맞붙는 전투가 벌어졌는데, 북군의 원래 방침대로라면 저택을 모조리 불태워버렸겠지만, 스칼렛의 어머니 엘렌 오하라(바버라 오닐)와 여동생들이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에 불태우는 대신 사령부로 징발,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저택은 보존될 수 있었다. [註: 애틀랜타를 불태운 건 1864년 8월 31일~9월 1일 이틀간 벌어진 존스보로 전투(Battle of Jonesborough)에서였다. 존스보로는 타라(Tara)에서 8km 남쪽에 위치한다. 남부군의 유명한 테네시 군을 이끌던 존 후드(John Bell Hood, 1831~1879) 장군이 북군에 패배해 9월 1일 애틀랜타에서 퇴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81량이나 되는 열차에 실려 있던 대량의 탄약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철도역 부근의 시설이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애틀랜타 전체가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진짜로 피해를 준 것은 같은 해 11월 북군의 윌리엄 T. 셔먼(William T. Sherman, 1820~1891) 장군의 명령으로 전쟁관련 시설만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는데, 여기서 '전쟁관련 시설'이라는 것은 철도나 막사, 군수공장뿐만 아니라 제재소, 방앗간, 민간 작업공방, 심지어는 창고나 막사로 쓸 수 있는 집이나 마차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러니 애틀랜타시 전체가 불타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컨대 애틀란타를 불태운 건 북군의 셔먼 장군과 남군의 후드 장군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다음 호에 계속)

 

▲ 찰스 해밀턴(랜드 브룩스)과 결혼식을 올리는 스칼렛(비비안 리)에게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이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하지만 6주 후 찰스는 전장에 나가기도 전에 폐렴으로 죽는다.

 


▲ 남부군 지원 바자회에서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즉석 제안으로 상복을 입은 채 춤을 추는 스칼렛. 주위의 눈총이 따갑다.
 


▲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스칼렛(비비안 리)에게 파리에서 사온 최신 유행 모자를 선물하지만…
 


▲ 스칼렛이 키스를 하려 하지만 레트 버틀러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정한 키스가 아니라며 거절하는데…

 


▲ 멜라니의 출산을 위해 닥터 미드(해리 데이븐포트)가 있는 역에 간 스칼렛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의 참상을 보게 된다. X 자 모양의 남부연합군의 깃발이 흔들리고, 배경음악으로 스티븐 포스터 작곡의 '스와니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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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3
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

 

 1928년 개관하여 미국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Orpheum Theatre)은 1984년부터 여름 특선 영화제에서 헐리우드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GWTW)'를 매년 상영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34년간의 전통을 깨고 2018년부터 여름특선작 목록에서 GWTW를 퇴출시켰다.

 

 그리고 2020년 5월 25일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시위 확산 영향으로 GWTW가 미국 스트리밍서비스 HBO맥스의 방영 목록에서도 삭제되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949)의 1936년 동명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1939년 제작된 GWTW는 남북전쟁 기간 중 조지아 주 애틀랜타 목화농장을 배경으로 농장주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겪는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에서 5만여 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스칼렛 역에는 베티 데이비스, 캐서린 헵번, 마거릿 설리번, 라나 터너, 노마 시어러, 수전 헤이워드 등 당대 내로라하는 32명의 헐리우드 스타들이 경합을 벌여 결국 비비안 리가 선정됨으로써 남북전쟁과 재건시대, 인간의 사랑과 야망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10개 부문(정기상 8개, 명예상 1개, 기술상 1개)을 휩쓸었다. [註: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는 사실이 시상식에서 발표도 되기 전에 신문사가 발표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그때까지 수상 결과를 미리 신문사에 알려주었던 관행이 사라지고 수상 결과는 시상식에서 발표자가 호명할 때까지 엄중하게 관리하게 되었다.]

 

 1939년 개봉 이후 4년 동안 당시 미국 인구의 절반가량인 6천만 명이 관람함으로써 국내 흥행수입도 당초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3억9천만 달러(현재가치 약 16억달러)라는 헐리우드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2012년에 GWTW의 총수입은 44억135만8,555달러. 개봉 후 50년간 총 관객 12억명을 달성한 명작 중의 명작.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흑인노예에 대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백인 노예주를 영웅적으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백인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노골적인 묘사나 차별요소 부분은 거의 삭제하고 등장 인물에 대해서도 일부 흑인 노예를 생략하였다. 그러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미국 남부의 문명, 남부 사회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고, 따라서 '미국 남부 사회의 가치관과 전통을 위협하는 것' 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현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남부의 전근대적 낭만주의와 귀족주의보다 북부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평등주의가 훨씬 정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반면, "영화는 영화일 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당대 사회에 대한 풍속화 같은 작품이고, 변화하는 사회상을 보여준다"며 "시대적 분위기에 따른 또다른 예술 검열"이라는 지적도 있다.

 

 1939년 Loew's사 배급(MGM의 모회사).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와 셀즈닉 프로덕션이 제작한 총천연색 영화의 서사시적인 대작 드라마로, 제작비와 광고비에 거액을 쏟은 효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빅터 플레밍(제작자 셀즈닉이 동성애자였던 조지 쿠커 감독을 교체했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David O. Selznick, 1902~1965)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 배우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천여 명의 인원을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음악감독은 맥스 스타이너로 당시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가장 긴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 주제가는 ‘My Own True Love’(www.youtube.com/watch?v=DTsruEkaKHA)라는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출연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토머스 미첼, 해티 맥데니얼 등. 러닝타임 238분(서곡, 인터미션, 마지막 음악을 제외하면 222분).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수도극장에서 최초 상영되어 8만5천 명의 관객을 모았다. 1972년 중앙극장에서 재개봉하였다. [註: 수도극장은 1935년 서울 중구 충무로 29에 약초좌(若草座)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1946년 수도극장으로 재개관하였고, 1962년 스카라극장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건물 철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도 유명하고 방대한 작품이라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다. 여기서는 '나무위키'에서 잘 요약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픈크레디트에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사는 '타라농장(Tara Plantation)', 애슐리 윌크스가 사는 '열두 참나무(Twelve Oaks) 농장' 그리고 '애틀랜타'로 나눠 캐스팅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막이 뜬다. "남북 전쟁 전의 미국 남부. 그 곳은 신사도와 목화밭으로 상징되는 곳이었다. 이 아름다운 지방은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으로 용감한 기사와 우아한 귀부인 그리고 지주와 노예가 함께 존재하는 곳. 책 속에서나 있음직하고 꿈처럼 기억되는 과거가 오늘로 살아있는 곳.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 1967년 70mm 재개봉 영화포스터
 


▲ 아버지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는 "일하고 싸우고 죽을 가치가 있는 건 오직 땅뿐이다!"며 딸 스칼렛(비비안 리)을 다독이는데…
 


▲ 유모(해티 맥대니얼)가 꼭 붙잡고 배를 당기라며 스칼렛의 콜셋을 도와주고 있다. 이 콜셋은 18인치(46cm)로 유명하다.

▲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가 결혼할 사촌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을 소개받는 스칼렛.
 


▲ 윌크스집 바베큐 파티에 참석한 16살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데…
 


▲ 스칼렛과 여동생 수엘렌(에벌린 키이스)이 남자들에 대해 언쟁하자 "파티에 나올 나이를 먹었으면 조신하게 처신 해야죠"라며 나무라는 유모(해티 맥대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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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5.끝)

 

(지난 호에 이어)

   [註: 앞에서 언급한 해리엇 터브먼은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의 와그너 요새 공격을 도왔으며, 그의 마지막 식사도 그녀가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터브먼은 당시의 전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때 우린 번개를 보았고, 곧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둥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더 큰 총들이었다; 그리고 빗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겨우 수확을 하러 갈 때가 되었을 때, 우리가 거둔 것은 시체뿐이었다.”]

 이에 기수가 되기를 거부했던 트립 일병이 54연대기를 들고 계속 전진한다. 하지만 곧 저격되어 죽는다.

 

 포브스 소령과 롤린스 상사가 돌격하여 와그너 요새 방어선을 뚫는다. 승리가 가까워질 무렵, 포브스, 롤린스, 시얼리스, 샤츠와 또 다른 상사 두 명이 남부군의 집중적인 포격을 맞는데…. [註: 토머스 시얼리스 상병은 이때 사망했다. 27세였다. 한편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장남 루이스도 와그너 요새 공격에 참여했는데, 쇼 대령 사망 후 곧바로 부상을 당했으나 다른 병사들과 함께 후퇴하여 살아남았다.]

 

 다음 날 아침, 해변은 북부군인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하지만 요새 위에는 남부연합기가 펄럭이고 있다. 요새 함락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장면이다. 남부군에 의해 전사자들은 대량 집단 매장으로 처리된다. 쇼 대령과 트립 일병의 시신이 나란히 묻힌다. [註: 남부군 장군 존슨 해구드(Johnson Hagood, 1829~1898)는 전쟁이 끝난 후 관례대로 다른 북군 장교들의 시신은 돌려보냈으나 쇼 대령의 시신은 흑인병사들 시신과 함께 묻었다. 해구드 장군은 포로로 붙잡힌 북군 의사에게 "그(쇼 대령)가 백인군의 수장이었다면… 시신을 돌려보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모욕적인 언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의 군대와 함께 묻힌 것은 군인으로서 자랑일 뿐만 아니라 노예 해방의 십자군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쇼의 부친 프란시스가 54연대 외과의사였던 링컨 스톤(Lincoln R. Stone, 1832~1930)에게 쓴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용감하고 헌신적인 병사들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아들의 시신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보디가드처럼 함께 있는 그 곳이야말로 더 성스럽고 더 안락한 곳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북부 연방군은 집단 매장지에 묻힌 유해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포트 국립묘지에 재안장했으며 묘비명은 '무명의 묘(Unknown)'로 표시했다. 쇼 대령이 쓰던 군도(軍刀)는 첫 집단매장지에서 없어졌으나 1865년에 찾은 후 가족에게 인도됐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2017년 6월에 쇼의 누이동생 수잔나의 후손들이 우연히 다락방에서 발견하여 매사추세츠 역사학회에 기증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간다 ― 메사추세츠 54연대는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반수 이상이 희생했다. 나중에 온 백인부대들도 많은 희생을 내고 철수했다. 요새 함락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들의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흑인 부대의 결성을 정식으로 인가했으며 이후 흑인 자원병을 꾸준히 모집하는 계기가 되어 그 수가 18만여 명까지 이르게 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들 흑인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세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에 "로버트 굴드 쇼와 매사추세츠 제54연대 기념동상"이 나온다. [註: 이 동상은 미국 조각가 아우구스투스 세인트 고던스에 의해 1897년 5월 보스턴 중심가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보스턴 코먼(Boston Common)' 내에 매사추세츠 주의사당과 마주보는 곳에 세워졌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영웅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시민들의 성금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동상이란 점에 의의(意義)가 있다. 조각은 1863년 5월 28일 쇼 대령과 제54연대가 전투를 치르기 위해 남부로 떠나기 전에 보스턴 비콘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을 부조(浮彫)했다.]

 

 끝으로 두 사람만 더 언급한다. 1863년 7월 18일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이 죽은 후 54연대 깃발을 끝까지 사수하여 반납한 사람은 윌리엄 카니(William Harvey Carney, 1840~1908) 상사였다. 그 공로로 37년이 지난 1900년 5월 23일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포드에 살고있던 카니는 최초로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존 롤린스 상사는 카니 상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공인물이다.

 

 버지니아 주 노예 출신인 카니는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퇴각하여 수많은 부상 때문에 다른 흑인병사에게 깃발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 난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야. 이 낡은 깃발은 결코 땅에 떨어진 적이 없다네!" 그가 했던 이 말을 제목으로 딴 노래 "Boys the Old Flag Never Touched the Ground"가 카니의 시상식에서 불려졌다.

 

   캐리 엘위스가 연기한 캐보트 포브스 소령은 에드워드 핼로웰(Edward Needles Hallowell, 1836~1871) 중령에 바탕한 가공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 핼로웰 중령은 와그너 요새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1865년에 54연대가 해산될 때까지 연대와 함께 했다.

 

핼로웰은 쇼 대령이 죽자 54연대를 계속 지휘하여 여러 전투를 겪으며 결국 2차 전투 때 실패했던 와그너 요새를 함락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공격했던 남부군의 포로들을 54연대가 감시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쇼 대령의 원한을 갚았고 54연대의 위상을 우뚝 세운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상 그를 깊이있게 다루지 못한 게 아쉽다.

 

 아무튼 핼로웰 중령은 1865년 12월에 보스턴에서 치러진 전승기념행사에 54연대를 이끌고 참석한 후 퇴역하였다. 다음해 1월 13일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공훈을 인정하여' 1865년 6월 27일자로 소급하여 명예 준장으로 승급시켰다. 그러나 전쟁에서 입은 많은 부상이 원인이 되어 필라델피아 고향에서 1871년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2차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전사한 노예폐지론자 로버트 굴드 쇼의 용감한 순교에 대한 명예훈장 추서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는 인종 차별 문제 때문에 수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드햄 대학의 군사과학부가 이 노력을 적극 추진 중이다. 그리고 로버트 쇼는 하버드대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학내 기념당 회랑에 새겨져 있다. (끝)

 

▲ 매사추세츠 제54보병연대의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부대의 결성을 정식 인가했고 약 20만 명의 지원자를 모집하는 계기가 되어 전세를 바꾸었다.
 


▲ 현대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이지만 잔인하고 참혹한 아비규환의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 
 


▲ 왼쪽부터 토머스 시얼리스 상병(안드레 브라우어), 롤린스 주임상사(모건 프리먼), 주피터 샤츠 일병(지미 케네디), 포브스 소령(캐리 엘위스), 연대기를 든 트립 일병(덴절 워싱턴). 방어선을 뚫고 승리가 가까워질 무렵 포격을 맞고 모두 전사한다.
 


▲ '로버트 굴드 쇼 기념동상'. 1897년 5월 미국 조각가 아우구스투스 세인트 고던스에 의해 보스턴 중심가에 있는 공원 '보스턴 코먼' 내에 매사추세츠 주의사당과 마주보는 곳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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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0
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4)

 

(지난 호에 이어)

 다음 날, 쇼 대령과 포브스 소령이 여단장 사무실을 찾아간다. 하커 여단장과 몽고메리 대령의 불법적인 행동을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위협한 결과 54연대는 드디어 전투 참여를 허락받게 된다.

 

 그런데 쇼 대령의 구체적인 불법 사례 언급 중에 "몽고메리 대령 지휘 하에 '콤바히'로 가는 도중에 34개 저택이 약탈됐고 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실상이 왜곡된 것 같아 여기 부연 설명을 늘어놓자면 이렇다.

 

 1863년 6월 2일 제임스 몽고메리 대령이 이끄는 북부 연방군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콤바히강 근처의 여러 플랜테이션을 습격, 이른바 '콤바히 강 습격(Raid at Combahee Ferry)' 작전을 수행했는데, 노예해방 인권운동가이자 여전사인 터브먼의 활약과 도움으로 해안 상륙 후, 플랜테이션에 불을 질러 남부동맹군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수천 달러어치의 식량과 보급품을 손에 넣었다. 이것은 오히려 그의 공적 중 하나로 기록된다.

 

 '콤바히 강 습격' 때 터브먼은 남북전쟁 중 무장 군대를 이끌고 공격 작전을 수행한 첫 번째 여성으로, 세 척의 증기선을 남부동맹 영역으로 인도하여 그 지역의 노예들 700여 명을 태워 구출했다. 남부군이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 증기선은 이미 노예들을 싣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보포트를 향해 출발한 후였다. [註: 메릴랜드 주 도체스터 카운티의 노예출신이었던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1822~1913)은 필라델피아로 탈출 후, ‘지하철도’라는 반노예 운동가 네트워크와 아지트를 통해 노예 70여 명을 구하였고, 1850년부터 1860년까지 '지하철도'의 차장으로서 남부에 들어가 300명이 넘는 흑인들을 북부로 탈출시킨, 별명이 '모세'인 전설적인 여장부이다. 자유인이 된 많은 흑인들은 대부분 연방군에 합류하였다.]

 

 1863년 7월 1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제임스 섬 전투(Battle of James Island). 54연대는 그들의 첫 전투에서 남부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이 전쟁 중 시얼리스가 트립 일병을 구하다가 부상을 입는다. 쇼 대령은 트립 일병에게 전투 중 연대깃발을 사수하는 영광된 임무를 부여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 이유는 전쟁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곤 롤린스 상사에게서 들었던대로 "우리 몫을 다하고 죽는 일뿐이겠죠."라고 말한다.

 

 장면이 바뀌어 조지 스트롱 장군(제이 O. 샌더스)이 쇼 대령에게 찰스턴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모리스 섬을 공격하고 그 방패막인 와그너 요새(Fort Wagner)를 먼저 점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와그너 요새는 10인치 콜롬비아드 포를 비롯하여 박격포, 곡사포 등 막강한 화력과 약 1천명 가량의 수비군이 진을 치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유일한 접근로는 모래로 된 좁은 언덕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한번에 한 부대씩 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선봉이 겪을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격은 내일 해질녘에 정면 기습을 감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스트롱 장군. [註: 조지 크로켓 스트롱(George Crockett Strong, 1832~1863) 장군은 버몬트 태생으로 1857년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 출신이다. 1862년 11월에 54연대를 포함한 자원부대의 여단장이 되어 1863년 7월 18일 2차 와그너 요새 공격을 리드하던 중 부상을 입어 뉴욕시로 후송되었으나 파상풍에 걸려 그 해 불과 30세로 사망했다. 사후 준장에서 소장으로 승급됐다.]

 

 이에 쇼 대령이 54연대가 선봉에 서겠다고 자원한다. 전투가 있기 전날 밤, 흑인 병사들은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개중에는 트립 일병도 있다.

 

 먼저 샤츠가 기도한다. "내일 우리는 전투에 나갑니다. 하느님, 제가 한 손으로 소총을 들고 다른 손엔 성경을 들고 싸우게 해주세요. 제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죠. 물에서든 땅에서든 죽는 건 상관없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전능하신 예수님의 축복이 나와 함께 하리라는 것을요. 두려움은 없습니다. 아멘."

 

 다음은 주임상사 롤린스가 기도한다. "주님, 당신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오늘밤 당신 앞에 섰습니다. 당신의 은총과 축복에 감사합니다. 저는 도망쳤지만 제 가족과 친척은 아직 노예 신분입니다. 오늘 밤 당신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내일 저희가 죽게 된다면 가족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모든 압박의 굴레에 저항해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밤 아버지 당신 앞에 섰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같은 축복이 있기를, 아멘!"

 

 이번에는 롤린스의 간청에 못이겨 트립 일병이 일어선다. "… 난 가족도 없고 엄마를 죽였는데… 좀 우스꽝스럽네… 음, 난 너희들을 알아, 너희들 모두를! 너희들은 내 유일한 가족이야! 그리고 너희들과 54연대를 사랑해!"라며 떠듬거리는데, 그의 눈과 시얼리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내일 무슨 일이 있던 큰 문제는 아닐꺼야. 왜냐면 우린 남자니까, 그렇지? 우린 남자야… 제기랄!"

 

 그러나 비로소 동료들을 배려, 포용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전투에 나서는 54연대 병사들은 사기충천하고 밤은 깊어만 간다.

 

 날이 밝았다. 1863년 7월 18일. 정장을 한 쇼 대령이 출격에 앞서 하퍼스 위클리의 에드워드 피어스 기자에게 개인 편지와 물품 등을 맡기며 "내가 쓰러지더라도 자네가 여기서 봤던 걸 잊어선 안되네!"라고 비장하게 말한다.

 

 그리고 "기수가 쓰러지면 누가 연대기를 들고 이동하겠나?"고 묻자 토머스 시얼리스가 자청하고 나선다.

 

 이제 말에서 내려 함께 걸어서 진군하는 쇼 대령. 와그너 요새 진격에 앞장 선 54연대는 모래언덕에서 은폐, 엄폐를 하며 서서히 이동했다가 땅거미가 깔릴 무렵 공격을 개시한다. 하지만 쇼 대령은 부하들의 전진을 독려하던 중 수많은 총격을 맞고 사망한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앞으로! 54연대 앞으로!(Forward! Fifty-Fourth, Forward!)"였다.  (다음 호에 계속)

 


▲ 격전을 앞둔 전날 밤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롤린스 주임상사(모건 프리먼)가 기도한다. "하느님, 모든 압박의 굴레에 저항하여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 와그너 요새의 유일한 접근로는 모래로 된 좁은 언덕 길밖에 없기 때문에 한번에 한 부대씩 진입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선봉이 겪을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 1863년 7월 18일. 2차 와그너 요새 공격 직전에 대열을 갖추고 쇼 대령을 기다리고 있는 매사추세츠 제54보병연대의 늠름한 모습.
 


▲ 쇼 대령은 부하들의 전진을 독려하던 중 수많은 총격을 맞고 사망한다. 그의 마지막 말은 "앞으로! 54연대 앞으로!"였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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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
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3)

 

(지난 호에 이어)

 피어스 기자는 제54연대가 전투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미 전역의 백만인 독자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고 말한다. [註: 에드워드 L. 피어스(Edward Lillie Pierce, 1829~1897) 기자도 실존인물에 바탕한 인물로 전기작가이며 정치가였는데 하퍼스 위클리 기자는 픽션인 것 같다. 브라운대와 하버드 법과대학 출신으로 1860년 남북전쟁 초기에 매사추세츠 제3연대 일병으로 참전하여 다음해 7월까지 복무할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것이 인연이 되어 1861년 12월 미 재무성 요원으로 Sea Islands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실태를 조사하여 다음해 2월에 미 정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곧바로 3월에 자유인 흑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6월 2차 보고서를 제출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까지 알려지자 피어스를 미국 전쟁부로 배치하여 아프리카계 흑인에 대한 조사 연구 업무를 계속시키려 하였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후 세금징수원, 지방검사, 주 자선이사회, 의회 및 공화당 멤버로 지내다가 1878년 12월 러드퍼드 헤이스 19대 대통령으로부터 재무성 차관 임명을 받았지만 사양했다. 1883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사는 흑백 미국인들을 위한 800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그가 살던 매사추세츠 밀턴(Milton)시에 공공도서관을 설립했다. 한편 유럽의 감옥소, 감화원, 보호시설 등을 조사하기 위해 유럽 출장을 자주 갔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68세로 사망했다.]

 

 이에 쇼 대령이 백만인에 한 명을 더해야 한다며 롤린스를 호명하자 포브스 소령이 말한다. "애초에 이 부대는 임관한 백인 장교만 부대를 이끌 권한이 있다는 약속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임관하지 않은 장교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기에 (연대장의 직권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귀하의 솔선수범을 인정하고 부대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귀하를 주임상사에 임명한다."고 발표한다.

 

 롤린스는 쇼 대령에게 "제가 이 직분에 적합한 지 모르겠습니다. 대령님"이라고 말한다. "자네의 기분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네."라고 격려하는 쇼 대령. [註: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계급이 주임상사였다.]

 

 1863년 6월 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보포트(Beaufort) 마을을 지나면서 롤린스 상사는 흑인 아이들에게 "얘들아!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어!"라며 "우린 노예로 도망쳤지만 군인으로 되돌아왔다! 마을 사람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거라."고 말한다. 마을사람들은 행군도, 말하는 것도 백인군인들처럼 한다며 경탄을 감추지 못한다.

 

 54연대는 찰스 하커 여단장(밥 건턴) 소속으로 배치되고 사령관은 캔자스 출신인 제임스 몽고메리 대령(클리프 드 영)이다. [註: 찰스 개리슨 하커(Charles Garrison Harker, 1837~1864)는 뉴저지 출신으로 1858년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뉴욕항구 수비대를 맡다가, 나중에는 오레곤 주, 워싱턴 주까지 관장했다. 그는 고속승진을 하여 1861년 11월에 대령이 되었다. 남북전쟁 기간 중 수차례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며 특히 조지아 주 치카마우가 전투(Battle of Chickamauga)에서 승리하여 1863년 9월 20일부로 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1864년 6월 27일 윌리엄 T. 셔먼 장군이 이끄는 북부군과 테네시 남부군 사이에 벌어진 조지아 주 케네소 마운틴 전투(Battle of Kennesaw Mountain)에서 말을 탄 채로 총을 맞고 전사했다. 당시 나이 26세였다. 영화 속에서는 약탈과 부패를 일삼는 늙은 여단장으로 묘사되었다.]

 

 1863년 6월 11일 조지아주 데어리엔(Darien) 마을을 지날 무렵 몽고메리 대령에 의해 식량을 징발하기 위해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쇼 대령은 처음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이라 따르기를 거부했으나 '상관 명령 불복종'이라고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2소대 1분대에게 불을 지르는 임무를 부여하는데…. 한 흑인병사가 백인여자를 겁탈하려 하자 그 병사를 쏘아 죽이는 몽고메리. [註: 몽고메리는 이때 쇼에게 "우리는 무법자다. 따라서 정규전 수칙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1814~1871)는 오하이오 출신이며 캔자스로 이주한 '진지한 노예폐지론의 사악한 열광자'로 1854~1861년 사이에 일어난 '피의 캔자스(Bleeding Kansas)' 사태 때 노예제 찬성론자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 게릴라 전사였다. 1863년 1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제2 사우스캐롤라이나 보병연대를 맡아 조지아 주, 플로리다 주 등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그의 임무는 북군의 전략에 따라 남부군에 대한 식량 및 보급품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전략은 주효하여 남부군으로 하여금 훨씬 빨리 항복하게 함으로써 인적, 물적 손실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굴드 쇼는 앤드류 주지사와 워싱턴 장성참모들에게 편지를 보내, 54연대는 사역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전투에 참여시켜 줄 것을 계속해서 로비해 왔었고, 아버지에게 '링컨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전달하면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다.'고 편지를 보낸다.

 

 한편 보초를 서고 자러 들어온 시얼리스가 자기 잠자리로 들어가려는데 트립이 삐딱하게 나오며 길을 비켜주지 않고 시비를 걸며 싸움을 유도한다. 이에 뚜껑이 열린 시얼리스가 맞붙으려는 찰나에 롤린스 상사가 만류하며 트립을 호되게 나무란다.

 

 "증오심만 가득 차서 넌 모든 사람에게 시비야. 채찍질 당하고 도망다녀서 그런 거야? 그건 사는 게 아니지. 그렇다고 죽어서도 안되는 거야. 전쟁기간 동안 백인들이 계속해 왔던 게 죽는 일이었어. 수 천명에 의해 죽게 되고 너 자신을 위해 죽기도 하는 거야, 이 멍청아!

 

 난 무덤을 파봤기 때문에 잘 알아. 무덤을 파는 동안 난 자문했지. '하느님, 우리 시대는 언제 오는 겁니까?'… 우리가 우리 몫을 다 할 때만 그 시간은 오는 거야. 우리 몫을 하고 인간답게 죽는 거야, 인간답게! 네가 말하는 '깜둥이'가 네 앞에 있다. 여기 주위에 '깜둥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너야! 잘난 주둥이에 멍청한 돌대가리, 늪지를 헤매는 깜둥이! 멍청하게 행동하면 네 과거를 벗어나지 못해!"

 

 주임상사이기 이전에 어버이같은 상당히 설득력있고 추상(秋霜)같은 충고이다.

(다음 호에 계속)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쇼 대령은 '하퍼스 위클리' 특별취재 기자 에드워드 L. 피어스(크리스천 바스쿠스·중절모 쓴 이)를 만난다.

 


▲ 보포트 마을을 지나면서 롤린스 상사(모건 프리먼)는 흑인 아이들에게 "우린 노예로 도망쳤지만 군인으로 되돌아왔다! 마을 사람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거라."며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 몽고메리 대령(클리프 드 영)은 식량을 징발하기 위해 조지아주 데어리엔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백인여자를 겁탈하려는 흑인병사를 쏘아죽인다.
 


▲ 54연대는 그들의 첫 전투인 '제임스 섬 전투'에서 남부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쇼 대령(매튜 브로드릭)이 오른손에 군도(軍刀)를, 왼손에 콜트 권총을 들고 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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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2)

 

 이윽고 흑인병사들은 주임상사 멀케이(존 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멀케이는 특히 시얼리스에게 더욱 가혹한 훈련을 시키는데,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실전에 대비하여 여려빠진 그를 단련시키기 위함이었다. 쇼 대령도 이를 알지만 묵과한다.

 

 사격연습 중 샤츠가 백발백중이다. 그러나 사냥 경험이 있어서라며 우쭐하는 샤츠의 등 뒤에서 콜트 권총을 계속 쏘며 화약 재장전 시간을 권총만큼 단축하라고 닥달하는 쇼 대령! [註: 콜트 권총은 장교에게만 지급되는 Colt Navy 1851 모델로 6발 연발이 가능하다.]

 

 한편 이 무렵 남부연합은 1863년 1월 1일자로 링컨 대통령에 의해 선포된 '노예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북군 군복을 입은 모든 흑인들과 흑인 부대를 이끄는 백인 장교는 처형될 것이며, 귀향하는 흑인들은 노예로 삼는다는 포고령을 선포한다. [註: 실제로 남부군들은 포로로 붙들린 북부군 흑인군인들을 군인으로서 포로수용소로 보내는 대신 노예로 팔거나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1864년 4월 12일 테네시주 필로우 요새 전투(Battle of Fort Pillow)에서는 항복하는 수백명의 북군들, 특히 흑인들을 남부군 소장 네이선 포레스트(Nathan Bedford Forrest, 1821~1877)의 명령에 의해 총검으로 학살하였다.]

 

 다음 날 아침, 남부연합의 포고령에도 불구하고 전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훈련소에 남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드디어 소총이 지급된다. [註: 57구경 인필드 머스킷 소총(57 calibre Enfield Pattern 1853 rifle-musket)으로 총신이 길며 단발이므로 화약을 재장전해야 하는 총이다.]

 

 쇼 대령의 비정(非情)한 처우에 대해 지금까지 '친구'로서의 조언을 서슴지 않던 포브스 소령에게, 그리고 참기 어려운 혹독한 훈련을 받는 '친구' 시얼리스에게도, 군인으로서의 위계질서를 바로잡고 전투에 대비하는 군인정신을 기르기 위해 친구간의 정리(情理)와 안면을 몰수하고 상관으로서 명령하는 쇼 대령!

 

 다음 날, 무단 이탈한 트립 일병이 붙잡혀온다. 쇼 대령은 본보기로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체벌을 명령한다. 웃옷을 벗기니 그의 등에는 수많은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채찍을 맞으면서도 꿈쩍도 않는 트립!… 드디어 이를 쳐다보는 쇼 대령의 눈에서, 입을 악다물고 고통을 참는 트립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데….

 

 그러나 그날 밤에 롤린스를 통해 트립은 군화를 구하기 위해 병영을 잠깐 이탈한 것이었음을 알고, 다음 날 쇼 대령은 인종차별주의자인 사단병참장교 켄트릭(리처드 릴)을 찾아가 상관인 대령의 직급으로 협박하여 2주 전에 신청했던 군화 600켤레와 1,200켤레의 양말 등을 구해온다.

 

 어느 날 육군성에서 전갈이 온다. 쇼 대령은 상부 지시에 의거하여 (백인)정규군의 한 달 급여는 13달러인 반면 흑인의 봉급은 10달러라고 공표한다. 이에 트립 일병이 "흑인 군인도 백인들 하고 똑같이 총 맞아 죽는데 왜 돈은 적게 주는 거야!"라며 차별 대우에 항의하여 급여명세서를 찢어버린다. 모든 부대원들이 따라서 보이콧을 놓자, "자네들이 급여를 받지 않겠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며 그의 명세서를 찢어버리는 로버트 쇼 대령! 이들의 불평등 대우 항의에 무언으로 동조한 연대장에게 환호를 보내는 병사들…. [註: 불평등 급여 문제는 쇼 대령이 사망한 1863년 7월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심지어 앤드류 주지사가 3달러 차이를 타주(他州)에서 차입해서 지불하겠다는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4연대의 이 사례는 다른 연대에까지 확산되어 급기야 1864년 4월에 제55연대에서 75명이 즉각적인 해결을 위해 링컨 대통령에게 항의하겠다며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의회는 그해 여름에 차별대우 정책을 중지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명령에 불복종하고 연대장을 두 번이나 폭행한 55연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때 드디어 군모, 군복 등이 지급된다. 앤드류 주지사와 프레드릭 더글러스, 로버트 쇼의 부모님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스턴 시내를 행진하는 제54 보병연대의 보무(步武)가 당당하다. 시민들이 꽃가루를 뿌리며 정규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흑인 부대를 크게 환호한다. [註: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로버트 굴드 쇼의 기념동상을 그대로 재현한 씬이다. 1863년 5월 28일 전투를 치르기 위해 남부로 떠나기 전에 보스턴 시내 비콘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쇼 대령은 '하퍼스 위클리' 특별취재 기자 에드워드 L. 피어스(크리스천 바스쿠스)를 만난다. [註: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지는 1857년 하퍼 & 브라더즈가 뉴욕에서 창간하여 1916년까지 약 60년간 발행한 정치 잡지이다. 이 잡지는 전쟁에 대한 많은 사건의 삽화를 포함하여 남북 전쟁에 대한 방대한 규모의 기사를 보도했다. 특히 토머스 내스트의 정치 시사만화, 펠리체 베아토의 사진, 그리고 찰스 디킨스, 윌리엄 새커리 등 지명도 높은 작가들의 글과 저명한 삽화가들을 이용하여 명성을 쌓아 발간 3년만에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변경하여 발행부수가 20만부에 달하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하퍼스 위클리' 1871년 9월 9일자를 통해 보도된 조선 최초의 사진들이다. 1871년 6월 1일, 제너럴셔먼호 사건(조선 고종 3년, 미국 앤드류 존슨 대통령 2년인 1866년 8월 21일 미국 상선 General Sherman호가 대동강에서 평양 관민들에 의해 소각된 사건)의 보복을 위해 미국 해군이 조선에 원정을 하여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이때 종군 사진기자였던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 1832~1909)가 촬영하여 보도한 사진은, 전멸한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의 조선군 시체들, 점령 당한 강화 덕진진(江華 德津鎭), 또 신미양요에서 전사한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수(帥)'자가 쓰인 장군기가 미해군 콜로라도함에 실려있는 사진 등이었다. 이 장군기는 전리품으로 가져가 미국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136년이 지난 2007년 10월 22일에 장기대여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반환되었다. 여담이지만 신미양요 이후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다음 호에 계속)

 

▲ (왼쪽) 주임상사 멀케이(존 핀)는 여려빠진 시얼스에게 가혹한 훈련을 시킨다. (오른쪽) 쇼 대령은 콜트 권총을 쏘며 샤츠(지미 케네디)에게 화약 재장전 시간을 권총만큼 단축하라고 닥달한다.


▲ 롤린스(모건 프리먼)가 57구경 인필드 머스킷 소총을 총번호와 수신자 이름을 호명하며 지급한다.

 

▲ (왼쪽) 채찍으로 체벌을 받지만 꿈쩍도 않는 트립 일병(덴절 워싱턴). (오른쪽) 롤린스(모건 프리먼)로부터 트립이 군화를 구하기 위해 병영을 잠깐 이탈했다는 사실을 듣는 쇼 대령.

 

▲ 소총과 군화, 군모, 군복으로 정식 군인이 된 제54보병연대는 앤드류 주지사와 프레드릭 더글러스, 로버트 쇼의 부모님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스턴 시내를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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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1)

 

 남북전쟁 배경 영화의 두 번째로 '영광의 깃발(Glory)'을 꼽아보았다. 1989년 트라이스타 픽처스 배급. 감독은 '가을의 전설(1994)' '라스트 사무라이(2003)' 등으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70). 출연 매튜 브로더릭, 덴절 워싱턴, 캐리 엘위스, 모건 프리먼, 안드레 브라우어 등. 러닝타임 122분.

 

 음악감독은 '꿈의 구장(1989)' '가을의 전설(1994)' '브레이브하트(1995)' '아폴로 13(1995)' '타이타닉(1997)' '뷰티풀 마인드(2001)' '아바타(2009)' 등으로 유명한 제임스 호너(1953~2015). 그는 '쇼트 투카노(Short Tucano)' 터보프롭 자가용 비행기 사고로 애석하게도 61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는 앞의 '남북 전쟁 개요'에서 설명했듯이 남북전쟁 당시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들로 구성된 북부군 '제54 매사추세츠 자원 보병연대(54th Massachusetts Volunteer Infantry)'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미리 얘기지만 주요 인물들 중 주인공 로버트 굴드 쇼(Robert Gould Shaw, 1837~1863) 대령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의 실명(實名)이 나오는데, 솔직히 사실인지 픽션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 부분은 그때그때 주석(註釋)으로 설명을 하려고 한다. [註: 필자도 이 기회에 상당한 인내심을 갖고 남북전쟁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학교 다닐 때 남북전쟁에 대해 배웠지만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을 위한 내전 정도로만 알았지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대단한 전쟁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아무튼 '영광의 깃발'은 1990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프레디 프랜시스), 음향상, 남우조연상(덴절 워싱턴) 및 골든 글로브 최우수 남우조연상(덴절 워싱턴)을 수상하였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자막에 "로버트 굴드 쇼는 보스턴의 부유한 노예폐지론자의 아들로 23세에 남북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입대했다. 그는 자주 부모님께 포토맥(Potomac) 병영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하버드 대학에 있는 휴톤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설명한다.

 

 타이틀이 뜨고 쇼 대위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아버지에게 쓴 편지의 내용으로 에머슨의 시(詩)가 언급된다. "심지가 굳은 사람에게는 사악함도 다가가지 못한다. 그 마음의 축복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고, 그 사랑이 모든 불화를 잠재울 수 있다." [註: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미국 보스턴 태생 시인이자 사상가로 하버드대 신학부를 졸업했다. 자연과 신과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범신론적인 초월주의 철학을 전파하고 노예제 폐지와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링컨 대통령은 그를 ‘미국의 아들’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중, 1862년 9월 17일 메릴랜드주 앤티텀 크릭(Antietam Creek) 전투에서 로버트 굴드 쇼 대위(매튜 브로더릭)는 1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싸우다가 포격을 맞아 쓰러진다. 시체를 처리하던 한 흑인 농부가 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죽일 수도 있었지만 괜찮으냐고 묻곤 그냥 돌아간다. 이 사람이 나중에 나오지만 존 롤린스(모건 프리먼)다. [註: 전투 이름에 남북 간에 차이가 있다. 북군은 강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남군은 도시 또는 땅의 이름(地名)을 따서 붙였다.]

 

 이때 입은 목 부상으로 병가를 받아 보스턴 집으로 돌아온 쇼 대위는 아버지 프란시스 쇼(피터 마이클 괴츠)가 주최한 파티에서 흑인 지도자 프레드릭 더글러스(레이몬드 생 자크)와 존 앤드류 매사추세츠 주지사(앨런 노스)를 만난다. 이 두 사람은 천대받던 흑인들에게 자긍심과 명예를 심어주기 위해 최초로 흑인들로만 구성된 매사추세츠 제54 보병연대를 창설했다며, 대령으로 승진하여 연대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자 이를 수락하는 쇼 대령! [註: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7~1895)는 미국 남부 메릴랜드 주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나 12살 때 농장주의 부인으로부터 글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의 저명한 노예제 폐지 및 여성인권 운동가, 신문 편집인, 연설가, 저술가, 정치인, 외교관, 그리고 개혁가로서 20세기 직전까지 미국 흑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창설된 제54연대에 자신의 세 아들 중 장남 루이스와 막내 찰스를 가장 먼저 입대시켰다. 존 앨비언 앤드류(John Alvion Andrew, 1818~1867)는 변호사 및 정치가로 1861년에 메사추세츠 주지사로 선임되어 1866년까지 역임하면서 제54연대 창설에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주 경찰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던 인물이다.]

 

 쇼 대령은 그의 절친한 친구 캐보트 포브스 소령(캐리 엘위스)에게 부연대장으로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는데, 또 다른 친구 토머스 시얼리스(안드레 브라우어)가 첫 번째로 자원한다. 토머스는 별명이 '책벌레'로 자유인 인텔리 흑인이었다. 그 후 전장에서 만났던 농부 존 롤린스(모건 프리먼), 주피터 샤츠(지미 케네디), 트립(덴절 워싱턴) 그리고 10대의 북치는 벙어리 소년(론리코 리) 등이 자원했다.

 

 1862년 11월 27일 메사추세츠주 레드빌 훈련소. 백인 병사들이 "깜둥이보다 돼지가 더 좋은데… 돼지는 먹을 수는 있잖아. 이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지네."라며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신출내기 흑인 1,000여 명을 깔본다. 하기야 군화, 군복, 소총 등 아무것도 군대로서 갖춘 것이 없었으니….

 

 포브스 소령이 부관인 찰스 모스 대위(도노반 리치)와 함께 오는데 토머스 시얼리스가 친구 포브스를 보고 반갑게 대하며 악수를 청한다. 아직 상관과 졸병 관계의 군대라는 현실 인식이 없는 탓이다. [註: 여기 잠깐 등장하는 찰스 모스(Charles Fessenden Morse, 1839~1926)는 보스턴 출신으로 1858년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며 남북전쟁 때 매사추세츠 '제2 자원보병연대'에 지원, 시더 마운틴 전투, 앤티텀 전투 등에 참여하여 대위로 진급했고, 게티스버그 전투 후 중령으로 승진하여 예편했던 인물이다. 영화 속 54연대 소속으로 나중에 와그너 요새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픽션이다. 대학 동창인 로버트 굴드 쇼와는 쇼가 죽을 때까지 거의 매일 서신을 교환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으며,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은 이 영화 제작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했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영광의 깃발’(Glory·1989) 영화포스터.


▲ '앤티텀 전투'에서 목에 부상을 당한 쇼 대위(매튜 브로더릭)가 치료를 받고 있다.


▲ 병가 중 파티장에서 만난 흑인지도자와 주지사가 흑인으로만 구성된 매사추세츠 제54 보병연대를 창설했다며 대령으로 승진하여 연대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자 이를 수락하는 쇼 대령!


▲ 쇼 대령은 절친한 친구 캐보트 포브스 소령(캐리 엘위스·왼쪽)에게 부연대장으로 참여해줄 것을 부탁하고, 또 다른 친구 토머스 시얼리스(안드레 브라우어·가운데)가 첫 번째로 자원한다.


▲ 오른쪽부터 54연대에 자원한 신병 존 롤린스(모건 프리먼), 트립(덴절 워싱턴), 토머스 시얼리스, 주피터 샤츠(지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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