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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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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라라가 탄 썰매마차가 눈덮인 들판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얼음궁전 2층의 창문을 깨고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는 유리의 안타까운 눈빛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기차는 떠나고 유리가 오지 않을 것을 이미 예견했던 라라는 빅토르에게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긴 회상의 장면은 다시 첫 장면의 타냐 코마로바로 돌아온다. 그녀는 극동 지방 어딘가에서 태어난 사실은 기억하지만 실종된 곳이 몽골리아인지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프그라프의 회상과 더불어 장면은 다시 플래시백.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스탈린 시대가 오고, 장군이 된 예프그라프는 어느 날, 가족이 있는 파리로 가지 않고 사랑하는 조국의 모스크바에 남아있는 유리를 발견한다. 그는 초라한 행색의 유리에게 새옷 한 벌을 사주고 병원에 일자리도 알선해 준다.

 

 어느 날 전차를 타고 가던 유리가 저만치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라라를 발견하고 황급히 다음 역에서 내려, 그녀를 부르려 하나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허공에 안타까이 헛손질하며 쫓아가지만 그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비틀비틀 따라가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유리…. 그것도 모르고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기 위해 기웃거리며 사라지는 라라의 뒷모습…. 안타깝고 처절하고 어쩌면 또 다른 잔인한 순간이다!

 

 유리의 장례식에는 놀랍도록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그의 시 작품이 정치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그 장례식장에 참석한 라라는 예프그라프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리의 딸을 낳았는데 그 후 몽골리아에서 백군이 이끄는 정부의 실각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서다. 그의 도움으로 수백 명의 고아들을 둘러보았지만 다 허사였다.

 

 그런데 라라는 그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때 사라져 버린다. 예프그라프의 말에 의하면 노동자수용소에서 죽었거나 어디론가 행방불명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공산주의의 잔혹한 비극사이다.

 

 이 얘기를 듣던 타냐 코마로바는 눈물을 흘린다. 예프그라프는 그녀가 어쩌다 길을 잃었는지를 다시 묻는다. "폭격에 집이 무너지고 불바다가 된 거리를 아빠와 함께 달리다가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말하자, 예프그라프는 '아빠'가 아니고 빅토르 코마로프스키라며 진짜 아버지는 시집의 사진에 나와 있는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라고 힘주어 말한다.

 

 예프그라프는 타냐가 유리와 라라 사이에서 난 딸이라는 믿음은 가지만 아직 확신을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타냐가 떠날 때 발랄라이카를 갖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것은 유리의 어머니가 즐겨 연주하던 악기로 유리가 라라에게 준 바로 그 악기였다.

 

 예프그라프가 타냐에게 연주할 줄 아느냐고 묻자, 그녀의 젊고 잘 생긴 댐 엔지니어(마크 에덴)인 약혼자가 타냐의 발랄라이카 연주는 '예술가의 경지'라고 치켜세우며 '혼자서 배웠다'고 대답한다. 이에 예프그라프는 "아, 그럼 타고난 재능이구먼!"이라고 말하면서 그때서야 타냐를 정말 유리와 라라의 딸임을 확신하게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註: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있는 알데아다빌라 댐(Aldeadavila Dam)이다. 그런데 댐 하류의 물보라에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장면이 롱샷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 소비에트 연방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댐은 2019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온다.]

 

 '닥터 지바고'는 800명의 기능공을 동원, 2년에 걸쳐 당초 예산보다 두 배가 넘는 1,400만 달러를 들여 완성했지만, MGM사 사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이후 두 번째로 많은 흥행수입을 올린 작품으로 기록된다.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록 감독상과 작품상을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 뺏겼지만, 다른 5개의 상을 휩쓸면서 린 감독 생애 최고의 대표작이 되었다.

 

 18개월에 걸쳐 크렘린 궁과 거리 그리고 전차 레일까지 세밀하게 재현해 낸 마드리드 인근의 카니야스(Canillas) 세트장, 그리고 왝스로 얼음궁전을, 대리석 가루로 설원을 창조한 소리아(Soria) 세트장 등을 만든 미술감독 존 박스(John Box, 1920~2005)가 미술감독상, 토냐의 분홍색 코트, 라라의 진홍색 드레스 등을 선보인 의상디자인상(필리스 달튼), 촬영상(프레디 영), 작곡상(모리스 자르), 그리고 592쪽 분량의 원작소설을 224쪽으로 각색한 로버트 볼트가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 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러시아의 대평원과 설원을 배경으로 혁명기가 만들어내는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을 통해 마치 러시아 혁명의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실감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전쟁과 혁명의 격동기 가운데 주인공 닥터 지바고의 기막힌 인생유전과 비련(悲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리 지바고와 라라 안티포바 사이에 여러 번의 이별과 만남이 있다. 간호사와 의사로 만나 전장을 누비다가 헤어지고,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서관에서 만났지만 빨치산에 붙잡혀 또 헤어진다. 탈출 후 다시 만났지만 비밀경찰의 추적 때문에 다시 떠나보내고, 마지막으로 모스크바에서 걸어가는 그녀를 뒤쫓다가 쓰러져 죽는다.

 

 한편 라라는 아름답고 열정적이며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으로 빅토르 코마로프스키의 욕망의 대상이었고, 파샤(스트렐니코프)의 아내, 그리고 유리의 정부(情婦)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운명적 사랑을 불태웠다. [註: 그런데 영화에서 라라의 어머니와 딸 카챠의 운명에 대한 얘기는 없다.]

 

 라라 역의 줄리 크리스티(Julie Christie·81)는 1960~70년대에 이름을 날렸던 영국 배우로, 화가인 아버지가 차(茶)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던,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아삼의 차부아(Chabua, Assam)에서 태어났다. 크리스티는 1965년 '달링(Darling)'에서 상류사회를 꿈꾸는 자유분방한 여성 다이애너 스캇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한 해 두 번 수상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같은 해 제작된 '닥터 지바고'에서는 수상을 못했다.

 

 최근에 캐나다 영화 'Away from Her(2006)'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피오나 앤더슨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음 호에 계속)

 

▲ 좌파 빨치산은 종군 의사가 필요해 무고한 유리 지바고를 강제 연행하여 입산시킨다.

 

▲ 2년 뒤, 지바고는 탈출에 성공하여 눈 덮인 설원을 걷고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의 라라의 집에 당도하는데….

 

▲ 유리는 비밀경찰을 피해 라라와 딸 카챠를 데리고 유리아틴을 떠나, 버려진 얼음궁전 같은 바리키노 별장으로 옮긴다. 이 장면은 왝스와 대리석 가루로 재현했다.

 

▲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생을 즐기며 의미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열기로써 서로를 데우는 유리와 라라. 그러나 비밀경찰에 쫓기는 그들의 표정은 초조하고 어둡다.

 

▲ 온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 밤, 한 무리의 늑대가 밤새도록 울어재끼는 얼음궁전은 음산하기만 한데… 둘에게 닥칠 어두운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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