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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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해설(12)-승리의 조건 5가지
samkang39

 

 손자병법에 승리를 예견하는 조건 5가지가 있다. 이를 예견하지 못한다면 승리의 길은 멀어져 가는 것이다.

 

(1)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자가 이긴다(知可以與戰 不可以與戰者勝, 지가이여전 불가이여전자승).

(2)병의 많고 적음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자가 이긴다(識衆寡之用者 勝 식중과지용자승).

(3)상하가 일치단결하는 쪽이 이긴다(上下同欲者勝 상하동욕자승).

(4)싸울 준비를 끝내고 적을 기다리는 자가 이긴다(以虞待不虞者勝 이우대불우자승).

(5)장수는 유능하고 임금은 개입하지 않는 쪽이 이긴다(將能而君不御者勝 장능이군불어자승).


 이 다섯 가지를 확실하게 예견하지 못하면 승리는 쉽게 이룰 수가 없다고 손자는 설파하였다. 이에 앞서 손자는 “싸움의 조건” 5가지: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을 확실하게 익혀 잘 알고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싸움의 조건은 곧 명령과 단결(道), 기상천문(天), 하달지리(地), 장수의 능력(將), 법제와 군률(法)을 의미하며, 절대적으로 중요한 조건이다. 이에 승리의 조건 5가지를 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승리의 조건 1: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자가 이긴다는 말은 곧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의 비아냥거림이나 히죽거림을 감수하면서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용기다.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하고, 지는 싸움이라면 아예 다른 방도를 택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의 신화를 남긴 분이다. 임진왜란 기간에 왜군과 크게 4차의 충돌을 하였는데 모두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4차 충돌 때에는 많은 생각을 하고 전투방법을 선택하였다. 이때에 마구 덤볐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경위를 한번 훑어보자. 


 제1차 충돌: 임진왜란이 터진 후 20일만이다.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이었다. 승승장구하며 서울까지 진격해 들어가는 왜군은 조선에 수군이 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던 때에 이순신 장군이 전격적인 기습작전을 한 것이다. 일본 수군들은 함대를 바다에 띄워 놓고 육지로 올라와 노략질을 하다가 갑자기 공격을 받아 몰살을 하였다. 완벽한 승리였다. 


 제2차 충돌: 제1차 충돌 이후 다시 20일이 지나 이번에는 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에서의 해전이었다. 이번에 달라진 것은 처음으로 거북선을 내세운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거북선의 모습에 왜군들은 무슨 괴물인 것으로 의아했다. 실전의 양상은 1차전 때와 비슷하였다. 무방비 상태의 왜군 수군은 두 번째의 기습으로 앉은 자리에서 괴멸 당했다. 


 제3차 충돌: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해전에 강한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차출되어 진두지휘하며 먼저 싸움을 걸어왔다. 결전 장소는 한산도. 왜군은 좁은 견내량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조선군의 판옥선(板屋船)은 튼튼하기는 하지만 덩치가 커서 좁은 곳에서는 아군끼리 부딪혀 배가 파손될 우려가 있었다. 


 이순신은 이 판옥선으로 왜군의 배들을 넓은 바다로 유인하였다. 그리고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적선들을 가두었다. 그리고는 포사격을 하여 적군에게 혼쭐을 빼놓으며 튼튼한 판옥선으로 돌진하여 적선을 쳐부숴 버렸다. 배와 배가 맞붙어서 백병전 칼싸움을 잘하는 왜군은 칼을 쓸 기회를 맞을 여유도 없이 배가 파산되어 버리니 아비규환으로 물에 빠지면서 아우성을 쳤다. 이번에도 대승이었다.


 제4차 충돌: 적군이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조선수군에 싸움을 걸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왜군들은 좁고 얕은 바다에 배를 정박시키고 나서지를 않았다. 조선의 판옥선은 무겁고 크기 때문에 얕은 바다에 있는 왜군과 접전을 할 수가 없었다. 


 조선의 수군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린 왜군은 이순신의 유인책에 속지 않았다. 그때부터 바다에서는 지루한 장기적 대치전이 시작됐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에서는 이순신도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왜군은 사기가 죽어 도망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그들이 도망치게끔 한 쪽 구석을 슬며시 열어 놓고, 달아나는 놈들을 섬멸시켰다.


 승리의 조건 2: 병력의 많고 적음을 적절히 쓸 줄 아는 자가 이긴다. 1)아군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으면 포위를 하든가 유도작전을 하여 항복을 이끌어 내야 한다. 2)아군과 적군의 숫자가 비슷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적의 전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3)아군의 숫자가 적으면 정면충돌은 피해야 한다. 이럴 때는 치고 빠지는 작전을 하든가 게릴라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승리의 조건 3: 상하가 일치단결을 해야 이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외쳤다. 전력의 집중은 권력의 집중에서 비롯되고, 권력의 집중은 뜻의 집중에서 이루어진다. 확실한 비전이 없는 권력은 분할통치로 나가기 쉽고, 분할은 곧 분열의 씨앗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광우병 사건, 세월호 사건, 종북이념, 사드배치 문제, 노동조합들의 이기적 행동, 이런 것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비전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우리를 지원하는 미국이나 UN에서도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뜻이 갈라지고 통합의 기회는 점점 요원해 지고 있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미국신문에는 “한국은 북한의 원자탄에 인질로 잡혀있는 나라다”라는 기사가 뜬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의 단결이 절실하다. 북한은 원자탄을 만들어 놓고 남한을 인질로 잡으려 하는데 국내의 여론이 갈라지고 통치이론이 분열되니 어찌할 것인가? 단결이 깨지면 모두가 깨진다.


 승리의 조건 4: 싸울 준비를 끝내고 적을 기다리는 자가 이긴다. 여기에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의 이야기가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이 지났을 때에 거란의 이진충이 당나라에 반발했다. 이때에 고구려의 유목민들이 한데 뭉쳤는데 그 가운데에 대조영이 있었다. 


 대조영은 새로운 도읍지 동모산(東牟山)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천문령(天門嶺)에서 당나라군을 기다렸다. 대조영은 유목민들을 산너머 뒤쪽에 대기시키고, 몇몇 날쌘 병사로 하여금 당나라군이 추격해 오도록 당군부대를 산골짜기로 유인했다. 대조영은 여기에서 20만명을 거의 다 전멸시켰다. 대조영은 동모산에 도읍을 정하고 발해를 건국했다. 그 당시에 대조영 군대는 당나라군에게 비록 쫓기는 입장이었지만 싸울 자리를 잡고 적을 기다렸기에 승리를 걷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승리의 조건 5: 장수는 유능하고 임금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임금과 장수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그 싸움판은 망하는 게 당연하다. 조선조 4대 세종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 두만강 근처에서 노략질을 하는 여진족들이 큰 골칫거리였다. 조정에서는 김종서로 하여금 이 지역의 6진을 개척하게 하였으나 15년간이나 수고를 계속해도 시원치가 못했다.


 김종서가 돈만 많이 쓰고 옳게 6진을 개척하지 않고 주지육림은 물론 여자관계까지, 다른 짓이나 하고 있다는 괴 소문이 떠돌았다. 이는 그를 시기 증오하는 자들의 조작된 헛소문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끝까지 김종서를 믿고 지원했다. 


 “비록 과인이 있더라도 종서가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고, 종서가 있더라도 과인이 없다면 이 일을 주장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종과 김종서는 서로 믿었기에 결국 여진의 6진은 김종서의 손에 의해 개척된 것이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201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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