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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희망찬 새해를!
namsukpark

 

대한(大寒)이가 소한(小寒)이 집에 다녀오려다 강추위 때문에 나갈 수 없어 조금이나마 콧바람 쐬며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거닐 수 있는 곳이 마땅찮다며 심술이 여간 아니다. 현대판 요술방망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소비자 성향을 분석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해주기 때문일까만 좀처럼 줄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는 대문짝만한 뉴스타이틀 <오늘도 신기록>에 미간(眉間)이 잔뜩 찌푸려진다.

 

 ‘손님은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더니 세월이 시위를 벗어난 쏜살같다. 웃자는 소리에 울고 싶은데 뺨때린다고 하지만, 불청객 COVID-19의 여파로 침체된 경제 회복과 성장의 열쇠는 백신이 거머쥐고 있다니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괴이(怪異)한 일이다. 신축(辛丑) 새해벽두에 우리 바라마지않기는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할 수 있어야 마땅하겠고, 아프지도 말고 ‘건강하 소, 행복하 소, 복 많이 받으 소’.

 

 저마다 알아서 살아가자는 멋쩍은 의견도 들리지만, 챙기고 다독이는 맘가짐으로 느리지만 뚜벅뚜벅 먼 길 내딛는 소걸음을 빼닮았으면 오죽이겠다. 어쩌면 훨씬 거센 파고(波高)가 높아질지라도 난관을 슬기롭게 이겨낸 줄기찬 삶이 아니었던가요. 창과 방패의 대결보다는 “세상풍경 중에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교훈을 되새기며 억지로는 안 되는 것이 피조물의 일인 것을 깨달으며 꿈이 현실로 이뤄지길 기원해본다.

 

 용(龍)의 머리에 붙어 있다는 짧은 나무막대기는 무슨 일이든 자(尺)처럼 잘 재고 판단을 한다고 해서 척목(尺木)이라 불렀다. 용(龍)이 이것을 잃어버리면 거리를 측정할 수 없고, 사리를 분별할 수 없어 하늘에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삼천둥절(KOSPI 3000 + 어리둥절)’ 시대를 맞은 주식투자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며 혼란스러워한다는 고국뉴스다. ‘풍년거지가 더 서럽다’는 속담대로 역사적인 상승장에서 투자손실을 입고 있어 더 서러운 투자자들의 주식계좌는 마이너스(-)라서 원금회복이 까마득하다니 글쎄 이를 어쩐다지요?

 

 누굴 탓할 것도 없이 맞닥트린 어려운 상황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덤벙거렸으나 함께 겪고, 함께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셈법이 극명한 곳은 따로 있겠지만, 원망과 불평·불만보다는 공감과 위로가 서로서로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키워드(key word) 검색으로 세상을 읽고 살피는 오늘날과는 달리 선현(先賢)들의 예지(叡智)는 예견(豫見)이라도 했듯이 ‘돛단배 무사하여 가을바람 맞아 높이 매어달았네’(“布帆無恙掛秋風”)라 하신 에두른 글귀를 곱씹어본다.

 

 아무렴 세월이 하수상하고 어려운 탓에 동(東)에 번쩍 서(西)에 번쩍 할 수 없겠고 ‘그림의 떡’으로 포만감을 누릴 순 없는 일이다. 너나없이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 바라마지 않지만, 오늘의 세간(世間)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수고로운 노력과 땀 흘림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테다.

 

“天有不測風雲 人有旦夕禍福

蜈蚣百足 行不及蛇 雄鷄兩翼 飛不過鴉

馬有千里之程 無騎不能自往

人有沖天之志 非運不能自通”

[ 여몽정(呂夢正)/北宋, 《파요부(破窯賦)》]

 

-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禍)와 복(福)이 있네. 지네(蜈蚣)는 많은 발을 지녔으나 뱀이 다니는데 미치지 못하고, 수탉은 두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갈 까마귀 나는 것을 앞지르지 못하고, 말(馬)은 천릿길을 달릴 수 있지만 사람이 타지 않으면 스스로 갈 수 없고, 사람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지만 운(運)이 없으면 스스로 통(通)할 수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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