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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들이 추억 속에
leehyungin

 


 이 계절의 골프장은 상처투성이로 막을 내렸다. 일년 내내 푸르던 잔디밭이 14개 뭉치 쇳덩이에 모질게 파헤쳐진 상처로 범벅이다. 쇠못에 밟혀가며 안절부절 수 많은 흔적들을 견뎌내야 했다.


이젠 찬서리 눈보라 친 한겨울을 이겨내야 할 혹독한 계절을 피할 수 없이 견뎌야 한다. 예년에 비해 몇 주 정도 서둘던 계절의 변화가 요동치는 바람에 폭설과 함께 일찌감치 온 대지가 몸살을 견뎌내야 한다.


4월 어느날부터 초원을 누비기 시작해 연말까지 그런대로 7개월 동안 체력과 취미활동을 허락해준 자연의 섭리에 감사할 뿐이다. 골퍼들에게 싱그러운 풀내음은 섭리대로 사는 맛을 덤으로 안겨준다. 


피곤과 시름을 달래며 전심을 다해 땀 속에 환희와 함께, 아쉬운 실망과 기쁨을 범벅해가며 자연을 마음껏 벗삼았다. 5시간 후에 오는 갖가지 회한과 새롭게 꿈틀거린 도전의 신비한 육체적 용트림은 지칠 줄 모르게 육신의 활력을 부추겼다.


3백 야드를 날렸는데 좌우 숲 속으로 휘어져버린 티샷. 한두 번이 아니고 젊어 펄펄 끓는 체력의 뒷받침으로 휘둘러대는 스윙은 곧장 공을 두쪽이라도 내버릴 기세로 후려댄 결과다. 


2백 파운드 체격에 근육질로 훈련된 그의 호칭은 뉴클리어맨(Nuclear man)이다. 핵무기를 쏘는 것에 버금가는 위력을 휘둘러대는 젊은 패기가 펄펄 넘친다. 날아간 공은 Hometown을 향해 휘어져 버렸다, 오랜만에 가끔 방문한 곳도 고향 아니던가. 숲 속으로 휘어진 공을 home town을 향했다고 위로했다. 그의 마음속은 타든지 말든지.


숲 속을 기어들어 곳곳을 휘젓고 다닌 모습이 옛 고향 들녘을 헤매는 듯 안타까움의 순간이다. Home town에서 얻어버린 벌점일지라도 울렁이는 마음을 달래며, 세 번째 샷을 기가 막히게 홀 옆에 붙였다. 기적같은 par를 이뤄낸 것이다. 효자(dutiful son) par를 한 것이다. 고향길을 밟고 나니 효자 노릇 톡톡히 한 것이다. 함께 하는 골퍼들의 환성이 요란하다. 불끈 쥔 주먹끼리 마주치며 효자 par를 축하해준다.


 다음 홀의 티박스, 후려친 공이 하늘을 뚫는다. 엄청난 구질로 놀라운 거리를 가른다. 280의 어마어마한 장타다. 미스터 죠오지 모운의 샷이다. 핸디캡 +3으로 스크래치 골퍼의 환상적인 플레이다.


샷마다 엄청난 위력의 골퍼, 그의 골프장 호칭은 매직 모운이다. 12살 때부터 골프장에서 파트타임으로 고학을 하며 터득한 기량을 갈고 닦아 PGA프로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다듬어진 골퍼다. 


 그런데도 삐그덕 가끔 +2 더블보기를 하고는 붉으락 푸르락 클럽을 땅에 사정없이 내려꽂을 때가 있다. 잠시 후 슬쩍 옆을 접근하여 "클럽이 괜찮냐?”며  표정을 누그러뜨리려 그의 핏기를 달랜다.


태생적 골퍼들의 심술이지만 어쩌랴, 골프란 운동의 최대 약점인 그 버릇, 타이거 우즈도 달랠 수 없는 절망스런 비관적 순간들. 의사들 처방도 효력이 없는 병폐가 아닌가.


다음 샷의 골퍼, 드라이버 샷마다 후렸다 하면 페어웨이를 적중한다. 그의 호칭은 파이프 라인(pipe line)이다. 18홀의 골프장에서 한두 홀 삐걱거릴지라도 고향길이나 물속에 들어가는 공은 없다. 약간 휘어지는 파이프는 있을지라도 꺾여버린 파이프는 쓸모가 없잖은가. 


 그에겐 파이프 라인이란 호칭과 스카이 토커(Sky Talker) 둘이다. 어쩌다 실수를 저질렀을 땐, 하늘에 누가 있는 양 악을 쓰며 자초한 실수를 토해낸다. 지저스? 부다? 알라? 누가 위로해줄건가? 허둥대는 샷마다 하늘을 보고 하소연하는 고질적 습관성 병폐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병원에서도 치유할 수 없는 습관성의 괴팍한 병이다. 한뼘도 안 되는 퍼팅은 give, 바로 no charge다.


Gimmie의 억양은 Rule에 어긋난 선심 쓰는 뇌물 같은데, no charge는 정말 순수한 선물 같은 기쁨이 있다. 이 골프장의 홀 막대에는 50센티 마디마다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거리엔 no charge다. 4시간의 라운딩을 재촉하라는 매니지먼트의 호의(?)란다. 


 앙상한 숲 속에 자연의 순리가 다음해의 기약들로 부산하게 한겨울을 그려가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추억의 멜로디처럼 미스터 매직 모운, 홈타운의 뉴클리어맨, 파이프 라인인 스카이 토커, 2018년의 골프시즌은 이렇게 추억을 남기며 마지막 잎새처럼 홀로 남은 12월의 달력은 밝아오는 새해를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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