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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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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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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8
백내장 수술과 의사들

 

 
1천 명에 한두 사람 백내장 수술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복잡한 수술절차의 설명서를 읽었다. 뭐 설마 나에게 그런 해괴한 일이야 일어날까? 관심밖에 일인 양 수술날짜를 맞추어 왼쪽 눈 백내장을 단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수술했다.


깨끗이 시력을 회복시켜 천지개벽된 세상을 불편없이 보며 산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 달이 넘어 수술 후 시력측정을 하는 과정에서 레이저로 손볼 곳이 있다고 단5분이면 된단다.


그 과정 역시 기다리고 애태우며 무사히 회복의 과정을 겪어 내야만 했다. 노스욕의 유명 안과병원 여성 전문의로 백내장 수술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그런데 이것 참 두 달이 넘었는데도, 다소 시력은 교정된 듯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어른어른(blurry vision)거리며 어지럼증에, 골치가 아프기까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했던 의사는 수술만 끝내고, 그 후엔 보조의사들이 필요할 때마다 상황을 점검해주고 있었다. 예약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잖은가. 갈 때마다 한 시간 반 이상 넋을 잃고 기다리는 여러 번의 시간들이 지옥 같았다. 병원 주차 역시 한 시간 반이면 하루 종일 주차 요금을 내야 했다.


처방한다는 보조의사들, 겨우 뜨거운 타월 마사지를 눈에 하란다. 베이비 샴푸로 약하게 눈꺼풀을 더운물로 닦아내란다.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의 변화에 직감하지 못한, 지극히 일방적 의사들의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처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가정의를 찾아 하소연 할 수밖에, 기댈 곳이 어딘가. 가정의의 어머니도 오래 전에 그런 상황이었다가 수술 후 6개월이 되니 정상이 되었다는 위로를 참고하란다.


수술 후 3개월이 지나니 머리 통증이 심하게 겹쳐와 예삿일이 아니었다. 가정의가 혈압을 체크한 후 혈압약을 복용하란다. 다행히도 일년 전에 다른 안과의사를 통하여 오른쪽 눈에 주사를 맞은 일이 있었기에 정기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마캄에 있는 안과 전문의사였다. 검진 결과 3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회복 상태가 완전치 않다는 진단이었다. 두 가지 안약을 계속 주입하란다. 2주일 후 회복의 진전 상태를 백내장 수술 담당의사의 진료실 상담과 더불어, 20/20 수술이 완벽한데, 안약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다소 피곤에 절은 퉁명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의사들의 고충이려니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마캄 병원 안과의사의 처방과 노스욕 병원 백내장 수술 담당의사의 처방이 다른데, 선택은 환자의 몫인가? 하나님의 몫일까? 


시야가 흐리고, 어지럼증과 아롱거린 상태는 어찌하라는가 물었다. 가정의와 상의하란다. 마치 눈 수술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듯한 처방이다, 


때마침 주위에 침술 한방에 능숙한 한의사가 있어 두 번 침을 맞았다. 고통스러웠던 머리 통증만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가셨다.


타이레놀이나 값 나가는 소염 진통제도 나몰라라 했던 머리 아픔이 말끔히 치유 된 것이다. 침술의 효능이 대단함을 실증할 수 있었다.


안절부절 MRI 촬영을 예약하니 8월 초에나 차례가 된단다. 3개월이나? 죽은 후에야 찍으려나? 암담했다. 벼라별 생각에 잠을 설치며 주위의 워크인 클리닉을 찾았다. 원인을 찾으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것 아닌가.


역시 진통제를 처방하면서 또 다른 안과 전문의를 찾아보란다. 평균 2천여 명의 환자들과 접견한다는 가정의도 워크인 클리닉 의사들도, 진통제나 처방하는가 싶었다. 의료보험 시스템의 허술함이 군데군데 엿보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쳐다볼 수 없는 최고 엘리트들의 학문적 수련의 인줄로만 착각하고 있었나? 6개월 후면 자동으로 회복되었다는 이들만 믿고, 한달 더 나른해져 가는 몸 상태로 그냥 흐물흐물 거리며 견뎌야만 할까? 1천분의 1의 환란 치고는 너무 심하다. MRI 결과만을 목놓아 기다려야 하나?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rambowon
원성구
2019-05-19
저도 눈이 안좋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도움되었습니다
74027
leehyungin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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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1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참으로 짧다. 어느 사이 이 한해도 벌써 훌쩍 5월이라니, 유수와 같은 세월이 번개불처럼 번뜩이는 찰라 같다. 이런 세월 속에 함께 숨쉬며 만나고 정주고 사랑주고 사는 이웃들, 친구들, 가족관계로 인연이 된 이들과 하루하루를 엮어간다.


 세월따라  허허벌판 들판에 피고지는 들꽃처럼 허락되는 이 하루 같겠지만 세상 사는 맛이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혼을 엮은 생명체로 부여받은 특별한 인격체를 구비구비 신비롭게도 정교하고 용이한 갖가지의 으뜸인 동물로 태어나 우리의 자랑스런 생명체가 누리는 천혜의 혜택을 골고루 실감하는 것이다. 


 어찌 이 한 순간인들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단 한사람이라도 스치는 옷깃에 인연들을 불성실히 모르는척, 적당히 그냥 그렇게 지나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형태의 글은 지난해 언젠가 언급했던 속편이다. “건강이 넘치시네요” “참으로 열정이 넘치네요” “평생 건강을 누리십시다” “You are excellent.” “Hello, Super man!”


 새벽을 열어준 헬스센터의 마주치는 눈길 속에서 건강미가 넘쳐 오붓한 미소속에  활기가 넘치는 인사들이다. 기쁨과 희망이 아침의 붉은 태양처럼 솟아 오르는 심신의 단련장에서 나의 열정을  쏟아내는 시작을 남녀 동료들과 공유하고 있다.


 힘찬 주먹을 마주대며 이글거린 눈빛 속에 서로를 격려하며 싱싱한 하루를 맞는 것이다. 아낌없이 듣기 좋고 들으면 기분좋은 말로만, 새벽 아침 인사말로 상쾌한 기분을 부추긴다.


 친구들과 저녁약속을 했다. 설렘으로 정겹고 반가움으로 가슴을 열어주는 의미로운 만남으로 첫 순간부터 사랑을 엮어내는 자리다. 


“좋아 보이시네요.” 


“목도리가 멋있고 잘 어울리셔요.” 


“모자를 쓰시니 훨씬 젊어보이시네요.” 


“언제 늙으시려는지, 뵐 때마다 더 젊어 뵈네요.” 


“옷색깔이 확 튀여 생기가 돋네요.”


 어느 한마디 기분을 잡친다거나 넘어트리며 씁쓸한 표현이 아니다. 돈 한푼 안쓰고 생색내는 말 역시 아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갈고 닦아온 스스로의  성품과 인품이 저절로 드러내보이는, 절대로 포장되지 않는 순수한 생명의 수식어들이다.


“확 주름이 늘으셨네요.” “아이쿠, 폭삭 늙으셨네요.”


“옷 매무세가 너무 크네요.” “바지가 너무 훌렁거리네요.”


“아니 모자는 왜 쓰시는가요.”


 쓰레기통 속에서 주워낸들 그런 주변머리 표현들이 있을까. 한이 없다. 상대편의 상황이야 계산할 필요없이 눈에 거슬리는 것만 꼬집어 내자면 대추나무에 연줄 걸린듯 눈에 뜨인다.


 그렇다고 기분 나뿐 말만 의도적으로 골라낸다면 친근함에 상처도, 가까스로 맺었던 우정의 파괴도 상상할 수 없는 상처로 이어질 것이다.


“저 친구 왜 저래? 기어나온 코털이나 정리하고 다니지. 면도 좀 정갈하게 할 일이지 원…” 


 되받아 처밀어 버리는 상대편과의 대화로야 끝장이 아닌가. 스스로의 모양세도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한 지저분한 처지에 상대편과 만남의 순간에 왠 비상식적이고 성숙치 못한 투정만으로 범벅인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잖은가. 좋아지고 다정다감하게 곁에 있어야 할 상대편의 의중을 각별히 챙기려든다면 분명히 기분을 북돋는 대화의 기본쯤, 보다 다듬어진 인간적 성숙함을 추스려내야 하지 않을까.


 쪼들린 시간들 속에서 틈바구니들 어렵사리 마련하여 만남으로 훈훈한 삶을 이어가는 귀한 인연들, 한마디라도 숙련된 격려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유도해내는 만남이어야 할 것이다.


 텃밭처럼 알뜰히 가꾸며 정성을 쏟아 부어야 모진 비바람에 흔들거린 자연 속에서도 곱게도 자라고 피어나는 꽃송이 향기들 만발하지 않던가. 살아온 과정들 모두 다 알고보니 좋은 말만 쏟아 부어야 인간적 토양이 풍성했던 것을…


 봄비를 맞으며 잔디밭의 푸르름 속에 반겨움으로 발걸음이 힘차고 날렵하게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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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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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목마른 계절

 
목마른 계절

 

 

 

이 땅 위에 봄은 
해도해도 너무 얄밉다
해마다 그랬겠지만
징하게도 너무 웅크린다

 

재촉하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의 핵폐기 북미대화처럼
김정은 동무 막무가내 
어디 해볼테면 어쩔건가

 

억세게도 휘몰아치는
한겨울의 눈보라가
매서웁던 찬바람과 함께
더 머물고 싶은가봐
무슨 미련이 그리 아쉬워서

 

개나리 꽃멍우리 맺힌지 언제인데
눈싸라기 야멸차게 
이 아침도뿌려대니
황홀하게 펼쳐지는 
고국산천 봄 향기는 
어떤 조물주의 특별한 배려일까

 

움추러든 꽃망울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직도 벌거벗은 이 땅 위에
꽃뿌리들마져 웅크리고
엉엉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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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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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8
꿈이여! 다시 한번

 

 


 
몇 달 동안을 하고많은 사연들 속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신랑신부의 날이었다. 호화로움과 낭만의 극치요, 하늘을 날아 오를 것 같은 세상사의 하모니였다. 늦은 나이에도 서로를 필요의 존재라 확신하였기에 맺어진 분명한 만남이라고 선포하는, 두 번 다시 없는 날이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음률에 흠뻑 취하여 40세를 넘겨버린 나이를 헤아릴 틈이 없었다는 처조카, 아내의 큰 오라버니 아들내미 결혼식이었다. 음악성 체질이 특출했던 신랑의 바이올린 선율의 섬세하고 감미롭고 감동적인 멜로디에 식장은 마치 음악회를 방불케 하는 엄숙하고 짜릿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결혼은 언제 할거냐고 다그치고 안달했던 부모 형제들의 성화가 일시에 사그라진 성년의 새 출발이 팡파레를 울리듯 새 출발의 의미를 과감히 다짐하는 날이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 너나 할 것 없이 필연의 과정을 거쳐 축복하신 절대자의 특별하신 배려의 은혜를 호화롭게 만끽하는 행사다. 최고의 모양새로 화려함과 함께 축하객들의 환호와 격려를 아낌없이 쏟아 붇는 날이기도 하다.


결혼식은 "꿈이여 영원하라" 노랫말 가사처럼 영혼이 깨어나고 양 어깨에 불끈 힘이 솟구치는 기쁨의 출발소리와 함께 뜨겁고 활기찬 화음을 노랫소리로 이어가는 것이리라. 


하고많은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천생연분이란 눈길을 맞추어 이제부터 둘이서 우리들 세상을 점령하련다고 결혼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은 친구들과 이웃들, 부모형제들의 축하객들로 분명하고 환상적인 새로운 시작의 출발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장대한 포부를 안고 북미주 유명 음악과정을 섭렵한 신랑의 뛰어난 재질이 아직 피지 않는 꽃망울처럼 시절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의 음악성을 닮아 내려는 수많은 문하생들이 그들의 부모들을 대동하고 예식의 축하연을 의미롭게 장식해주고 있었다.


올드밀 예식장의 세밀하고 확실한 결혼식 주례과정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게 했었기에, 흠잡을 데가 없이 섬세한 진행과정은 근대화된 기념비적인 절차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우리들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허락되는 혼례의 순서를 통한 성숙한 인간애의 모습을 오늘의 신랑신부가 마음껏 펼쳐 가리라고 축하객들 앞에서 선서식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다짐했다. 


세월을 어찌 비켜갈 수 있으랴. 반세기를 넘는 캐나다 이민사가 팽팽했던 낯익은 얼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모진 비바람에 시달려버린 가을 잎의 풍경처럼 으스스하게 잔주름과 흰머리들로 식장 안을 노년회장처럼 가득 채웠다. 


노년이여! 비켜가라. 소리친다고 세월이란 요망한 것, 그 소리를 못들은 척,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숙명적 주름살들로 많은 이들의 모습을 확 변질시켜버리지 않았는가.


무슨 소리여! 이 해도 벌써 4월의 마지막인걸, 너 혼자서만 헤아리고 있는가? 흘러만 가는 시절을 어찌하라고, 지체할 수 없이 격동하는 세월에 어떤 하소연 인들 머물게 할까?


 많은 이들의 눈빛 속에 다부진 신랑 신부의 새 출발을 불빛에 승화시키면서, 화려한 봄기운이 품어대는 자연의 섭리에 행복이 함께하길 염원하고 있었다. 


세월 속에 노년을 피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젊음으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고. 


유명인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살았던 이들은 물론, 연예활동으로 덤으로 세상사를 노래했던 이들까지도 고행이 빚어낸 상처들로 애처로웠던 과거를 치유할 길이 막막했다는 옛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고백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은 하고 싶다. 허튼소리라 할지도 "꿈이여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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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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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딸내미와의 추억

 
 
 
우리 딸이 오랜만에 여유롭게 엄마 아빠를 방문했다. 먼 곳에서 4시간 이상 비행하는 밴쿠버는 광활한 캐나다 땅 중에도 멀고도 먼 거리임에 틀림없다.


만나면 서로의 아쉬움을 달래면서도 부모자식 관계의 아련한 정에 이끌려 좀더 자주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그치듯이 부모의 애절함을 토로하는, 녹아드는 엿가락 같은 핏줄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학교수 생활에 억매여 별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이토록 먼 거리를 어찌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까. 백번 이해하지만 가는 세월 딸내미 생각뿐이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그런 과정에서도 짬을 내어 쌓여 있는 정을 쏟으려고 연륜에 찌들은 부모를 만나러 왕래를 해주니, 이 또한 어찌 감사하고 대견치 않으리. 엄마인 아내의 지극히 일방적으로 아빠와 딸들의 관계를 비약하고 속단해버린 성미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번에 방문한 막내딸에게 옛시절을 떠올려 행여 풀 수 있는 오해가 지금도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사리고 있다면 아빠의 피치못할 사연들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썩 내놓고 아빠노릇 잘했다고 기억할 일이 별로 없는 아쉬움과 회한이 가슴 한 귀퉁이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가 성장하여 사춘기 처음 운전을 배워 언니의 운전면허증에 기대여 시운전을 해볼 때다. 까짓 운전 별거 아니라고 씽씽 달리다가 오른쪽 턴을 속도조절도 없이 휘어 돌다가 그만 거덜을 내버렸다.


몇 천불의 사고였던 일 그렇다 해도, 아니 다친 데는 없는가? 멀쩡하단다. 그런데 어찌 속도조절을 그리했느냐는 물음에, 아빠처럼 씽씽 달리고 싶었단다. 천만다행이었지.


처음 배운 운전, 그때는 그랬었을 것을, 지금까지는 무사고 운전요령이 그때부터 익숙해졌나 보다. 어찌 생각하는가? 이 나라 정계에 진출할 생각은 없는가? 사회학과와 젠더 교육에 그녀는 심혈을 쏟아 후세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훌륭하고 대단하지만 이 나라를 위하여 직접 정계에 진출할 의사를 타진했던 몇 년 전 대화였다.


김연아 상원의원의 활약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딸내미의 한마디가 이해됨은 물론, 그녀의 소신이 분명하기에 뭐라 끼여들 틈이 없었다. 정계만이 아닌 여러 방면에 뛰어드는 인재양성이 스스로 감당해야 될 소신이란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편의점을 일궈나가야 하는 이민생활 일과는 지난 세월의 철저한 삶의 돌파구였음을 고백하며 노년에 접어들었다. 오후만 되면 아내의 순서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철저했기에, 체력단련이랍시고 잔디밭을 밟아야 삶의 가치를 창출하는 양 골프장을 거닐었었다.


그게 삶의 전부였던 이력서가 아닌가. 언제 한번 두 딸들 데리고 그들의 가슴속에 자상하고 정겨운 아빠의 베풂을 실감케 했을까? 별로 내놓을 것 없다. 엄마가 그들을 다 돌보는 게 당연한 철칙인양 아빠야 가게와 내일 새벽을 깨우고 난 후엔 잔디밭 기운에 취해야 하는 순서가 전부였음을 당연한 척 젊은시절을 전부 내 것인 양 즐겼으리라.


그렇게 사는 게 완벽하고 철저한 양 살아야 했다. 새벽을 깨워 돈을 거두어 들이고, 오후엔 신체조직을 단련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핑계를 주장했을 것이다.


딸내미와 며칠 동안 아침을 함께 했다. 채식과 과일 위주로 커피 향기를 맡으며 믹스넛도 준비해서 며칠 동안 아빠의 가슴을 열어 보였다. 평생 종달새처럼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난 아빠가 손수 챙겨주는 아침을 맛깔스럽고 곰살맞게 준비해 보였던 것이다.


매우 놀라운 표정을 숨기며 의연히 아침을 즐긴다. 흡족해 하는 표정을 확인한 아빠의 입장이 업그레이드 되는 듯이 가슴이 뿌듯했다. "아빠 내일 아침은 제가 할게요." 눈시울을 붉히며 아빠의 옛 시절을 충분히 이해한단다. 그때 그랬었기에 건강한 아빠로, 또한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잖느냐고 울먹이며 가슴에 안긴다.


늦게나마 옛적에 못다한 정겨움을 되살릴 수 있었던 값지고 뜻깊은 기회에 뿌듯함과 함께 눈가에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부녀의 정을 과연 몇 번이나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곰살맞게 따뜻하고 자상함 역시도 전혀 모르는 양, 인색하기 그지없이 빡빡했던 아빠 생활만을 전부인 척, 젊은 세월을 여위어 버렸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도 정성을 다해 딸내미를 위하여 아침상을 차려뒀다. 일찍 밖에서 특별한 약속이 있기에 그녀와 함께 할 수 없다니 아쉬웠다. Red heart shape memo지에 사랑스런 아침을 노래하듯. 

 

 

 

Hi! Darling
Good morning!
Enjoy Breakfast and
Have a great day.
I love you sweetie.


-Your A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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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그건 아니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겠다고, 손가락 내밀며 끼워주던 결혼반지 만지작거리며 죽으나 사나 함께 평생을 약속하겠다고 맹세했지 않았던가. 수많은 축하를 받으며 귓가에까지 입을 벌려 웃으며 출발했던 백년가약의 순간은 천지신명께 맹세한 혼의 결단이 아니었던가.


예쁘니 좋았었고 결혼이란 기쁜 것 한마디만이라도, 그 순간이야 그 하나밖에 몰랐었지, 그리고선 전부를 홀로 독차지한 지상천하에 누리는 황홀함으로, 눈부시게 정신 없었기에 언제 다른 생각할 틈이 있었으랴. 


그 순간이야 어찌 뒤틀린 것이 하나라도 눈에 보였을까? 젊고 싱싱하던 그 시절의 맹세 앞에 결혼생활은 그런대로 펼쳐져 가고 있었다. 하루 이틀 일년 십년 그러다 보니 아들딸 낳아 아옹다옹 알콩달콩 이젠 벌써 노년에 이른 한평생, 안 볼 수 없이 늙어가는 남편과 아내의 주름살들만 서로 쳐다보며, 남은 삶 위로 받고 살자고 눈가에 슬며시 미소를 어찌 또한 감출 수 있으랴.


그러다가도 끔뻑 실수나 헤픈 짓에 휘말리면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가 바로 "그건 아니지!" 투박스런 거부와 야박스러운 질타의 표출이다. 스스로의 교만은 자만이란 강성으로 감성을 마비시키는 결정적 오류인 것을, 반반 이해와 용서의 포대자루를 열어두고 애꿎은 옛 성품이 물속에 칼질처럼 덤벼드는 행패가 아닌가.


평안함과 자유롭다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교만이나 자만의 굴레에서 스스로의 과오임을 터득할 때만이 거둘 수 있는 수확이 아닐까?


아내의 불후의 잔소리 듣기 싫다고 먹던 밥그릇을 추켜들고 피해버린 남편의 너그러움과 지혜로움은 또다시 얼어붙은 가정사를 슬쩍 옆으로 비켜버린 순간이었다. 피하는 자의 여유로운 순발력으로 관계회복의 지름길을 닦으려는 순수한 인간적 속성 앞에 누가 뭐로 덤빌 것인가! 부부들의 토닥거림은 바로 줄넘기 같은 순서로 평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녁 약속이 되어 이웃 친구부부와 함께 했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얼마나 소중하고 정겨운 만남인가. 값지고 애틋함이 이웃친구들임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그토록 평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조잘조잘 있는 말 없는 말 쏟아내던 전화통의 사연들 속에 묻혀, 함께 하던 삶이었기에 만남의 기회야말로, 천금의 가치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이 뭣 때문인지 따로국밥을 차리고 있었다. “아니 형! 왜 그래요?” 아내의 잔소리에 귀가 아파서 자리를 피해야 한단다. “아니 함께 자리했다면 같이 식사를 해야지요.”


그들의 해묵은 사랑싸움에 뭘 들고 끼여들 수 있으랴. 그들만의 사랑의 회로도에는 그들만의 인간적 지평이 그려져 있을 뿐인걸, 함께 하던 정찬의 자리가 난감하고 불편함에 몸둘바를 모르게 어색함을 숨길 수 없었다.


무결점이란 주제로 평생 삶의 동반자를 억눌러 제압하려 함은, 살신성인인척 우쭐대는 배열에서 아직도 꿈틀대는 유전자의 반란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틀 삼일 뭐 그러다 뭉게구름 흘러가듯이 그 댁에 파아란 하늘이 또 청청하리라. 구름과 바람이 어디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던가. 먹구름 흔적 같은 부부다툼들, 그건 아니지! 란 절박하고 모난 성품의 표출, 한번 다시 제고하고 판단한다면, "아 참, 그야 그렇지!"


누그러뜨리고 수그러든, 결정적 포용과 이해함이 저 산등성일 넘나드는 따뜻한 봄바람 같을 것을, 아마 지금쯤 그 친구네, 그야 그렇지! 봄이 오는 소리에 껄끄럽던 관계 회복이 따스한 봄바람에 환하게 펼쳐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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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
2019-04-09
전문의사 진료실 풍경

 

오죽하면 몇 개월을 애태우며 기다리고 벼르며 서성거리다가 약속된 만남인가. 잔뜩 기대감에 도취되어 희망을 안고 찾아야 했던 전문의사와의 대면이다. 얼마나 바쁜 의사였기에 아침 8시부터 환자들을 접견한다는 꽉 찬 스케줄에 환자들로 가득한 안과 전문의사 사무실이었다.


아침8시 반 예약인지라 15분 일찍 진료실에 도착했다. 8시 예약손님이 벌써 턱을 늘어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중반일까? 남미출신 같은 젊은이로 보였다.


나 같은 사람이야 노안 때문에 각별히 찾는 전문 안과의사였지만, 저토록 젊은이가 안과 전문의를 찾는걸 보니 심각함이 도를 넘는가 보다. 내 눈 치료 보다는 젊은이의 눈에 생뚱맞은 관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루하고 따분함에 불안감마저 가슴을 짓눌러대니, 의사 사무실의 기다리는 적막함이야말로 속이 타 들끓는 소리가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아침8시 오픈 한다는 의사가 10시에 가까워서야 나타났다. 잔뜩 피곤기에 절은 모습이 그 역시 별로 기분 좋은 아침이 아닌듯 싶었다.


거의 2시간을 분, 초를 헤아리며 지쳐있는 환자들의 표정들이야 말해서 뭐하랴. 괴로운 눈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소위 의사라는 직업으로 환자들의 보살핌이 이토록 막무가내 갑질인가? 짜증과 불만으로 휘청대는 마음의 갈등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두 시간씩이나 지체하고도 목 빼는 환자들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들어서는 전문의사의 발걸음이었다. 의사와 거의 동시에 뒤따라 들어오는 중년여인이 직행으로 카운터를 향했다.


뭔가? 주절주절 손짓 발짓 하면서 카운터의 안내자와 심각한 한 순간이 지났다. 10여 명이나 기다리고 있던 대기자들을 팽개치고 금방 온 여인을 의사사무실로 안내해준다.


붉으락 푸르락거린 초조한 얼굴빛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난장판으로 돌변한 순간이. 8시부터 기다리던 중년의 남자가 삿대질과 함께 카운터의 진열품들을 확 쓸어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소리소리 야단 속에 들끓는 화풀이가 폭풍우처럼 몰아친 것이다. 이거야 원, 난리법석이다. 안절부절 안내인의 죽을 표정이다. 예견치 못한 천둥번개에 회오리 바람이 쑥대밭을 만들어버렸다.


악을 퍼부어대는 모습이 치열하다 못해 장관이다. 왱왱거린 경찰차가 들어 닥치고, 사건수습에 실마리를 찾기에 네 명이나 동원된 경찰들이 분주하다. 끌려나간 중년남자의 오색 빛 얼굴표정 속에 아직도 분을 억제하지 못한 듯 어깨를 들썩거린다.


몰아친 폭풍우는 마무리되었지만 예삿일이 아니었다. 끌려나간 젊은이는 무슨 죄목으로 사건 책임을 물을까? 그가 항변을 한다면 어떤 변호를 대신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업무방해, 아니면 소란죄, 그게 아니라면 악을 퍼부어 항의했던 죄를 묻는다면, 폭력죄일까? 2시간씩이나 스스로의 업무처리에 소홀했던 전문의사의 죄는 또 어떤 것일까?

간밤에 늦도록 진료한 때문인가? 아니면 몇 잔의 알콜에 취하여 골아 떨어진 잠자리 때문이라면, 과연 법정에 서면 무슨 법률에 저촉되려나?


세상사 분명히 천태만상인 것 틀림없다. 전문의사들의 진료실에 프린트된 유인물이 귀퉁이에 걸려 있다. 


"우리는 시간관념에 투철할 수 없음을 모든 환자분들께 통보하노라"라고, 그래서 요즘에도 병원마다 응급실 출구는 시장통처럼 와글와글 소란 속에 살아남기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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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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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

 

정 주고 마음 주고 오랫동안 절친한 관계를 친구라 했다. 영어의 Friend란 의미와 뭐가 다른가? 트럼프가 김정은이 보고 프랜드라고 너스레를 떨어대는 모습이 국어사전에 없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말이다. 


그들이 2년 여의 세월 동안 친구란 단어를 영변 진달래꽃밭 핵시설에 버무려 하늘을 날고 있지 않는가. 꼭꼭 숨겨뒀던 새로운 우라늄 농축 시설에 이제는 그 친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는 트럼프의 품세가 어찌될 것인가? 참으로 예측불변 이다.


만난 지 2년여 밖에 되지 않는 관계에서 얼마나 정과 마음을 주었다고 입 발림으로 친구, 친구라는 절실함으로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까? 친구란 의미가 무색하고 참으로 난감하다.


아마도 김 동무라는 호칭에 감염된 트럼프의 순발력으로 빚어낸 호칭으로 접근한 정치적 배려였다면, 김정은 동무 역시 “Hi Uncle!” 뭐 이 정도의 접근법으로 친밀함을 공유하면서 회담에 접근했더라면 응석부린 아이처럼 보살핌을 유도해냈을 것 같기도 했으련만. 기회가 좋았었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유만부득이지, 세상에나 가진 애교와 능청을 떨어가며 영구 핵폐기라는 문제를 결단케 한다니, 트럼프의 외교 전략이 거울 보듯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가.


아무리 시간을 끌어봐라, 우리가 굶어 죽나, 말라 죽나, 위대한 수령의 영도력이 지치고 쓰러질 수 있을까 보냐. 그의 눈빛은 대화 중 거의가 트럼프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려 깔고 특유한 바리톤 목소리로 내가 뭐 하러 60시간이나 열차를 탔겠는가?


할테면 해보라는 듯이 숨길 것 다 숨겨두고 적당히 어물거린 영변의 핵폐기란 그물로 트럼프와 악수한 손을 움켜쥔다. 김정은의 눈빛을 누가 읽을 것인가? 폼페이오의 질리도록 북한땅 방문으로 핵 문제를 아무리 털어내봐야 열매 없는 이파리만 무성해 버렸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멧돼지냐 하며 어린 뚱보의 체격을 빈정대며 으르렁거렸던 두 정상들의 국제 쇼의 퍼포먼스가 정말 볼썽사나워 이를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숨겨두고 속여보려 온갖 국제 쇼를 연출하고 있는 김정은 동무, 그의 흉악하고 몰지각한 핵시설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동창리며 분강 이제는 상음동 로켓 실험실까지 숨겨둔 핵창고들이 칡넝쿨처럼 엉켜들고 있단다. 


 “친구여! 우린 절대 재촉하지 않갔슈다. 얼마나 견디는지? 인민들의 배가 얼마나 쪼르륵 굶는 소리를 쏟아내는지, 두 손 들고 포기할 때까지 기다릴게, 김동무 서둘지 마시라요.”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일어나며 여유롭게 악수하고, 회담의 결과를 빈손으로 털어 버렸다. 정치인들의 친구란 바로 “김동무 더 굶어 보시라요. 내래 서둘지 않갔슈다”


트럼프에게 친구들은 모두 이런 사이들로 가득한가 보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마이클 코언이 그의 절친이었던 개인변호사였는데, 그마저 사기꾼이라고 등을 돌려버리지 않았는가.


트럼프 동무, 김정은 동무여! 제발 국제무대에서 쇼로 승부를 가려내려는 연출은 이제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 체제 보장과 경제부흥만 이뤄준다면 핵이 왜? 필요하겠는가?
김정은 동무는 이 순간도 이런 잠꼬대로 뒤척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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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크루즈(Cruise) 여행의 빛과 그림자

 

 

 

순항하다, 라는 배를 일컫는 크루즈, 듣기만 해도 환상적인 매력이 밀려오는 단어다. 크루즈 미사일이란 전쟁 무기도 있다지만, 대형 아파트가 연상되는 배가 광활한 바닷길을 거침없이 항해하는 여행의 길잡이가 요즘 휴가를 즐기는 세대로 여유롭게 삶을 향상시켜주는 경험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하리라, 한편으로 벼르고 뜸들여 끙끙거리며 공항의 철저한 관문을 통과했어야 했다. 혼란을 예방 정리하는 관문이 거미줄처럼 얽혀 펼쳐진 통관의 절차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살이 참으로 험악함이 감지되는 과정에 피곤과 짜증이 범벅이 되었다.


 긴 줄을 따라 서너시간의 차례를 묵묵히 차분하게 소화해내야 하는 공항의 검색대, 마약이나 총기소유를 가려내기 위한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야 하는 심각하고 예민한 과정을 죄인인양 마음을 사려야 하는 각별한 통관절차인 것이다.


하늘길은 비행물체의 고속도로다. 구름도 바람도 안개 속을 벗삼아 사쁜하고 과감하게 250여 탑승객을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현 세대 과학문명의 완성품이 아닐까!


 마이아미 항구에 위치한 크루즈 항구들, 7천 명의 승선 인원을 자랑한다는 Royal Caribbean cruise가 정박해 있는 같은 시간에, 승선인원 3천명의 C,EQ라는 크루즈 탑승 절차를 밟았다.


처음 크루즈 여행이 아닌데도 또다시 놀랍도록 완벽하고 정교한 여행선의 면모가 참으로 화려하고 경이로웠다. 아늑하게 바다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Veranda room을 배정받아 피곤과 짜증이 한순간에 물결치는 바닷물과 소슬한 흰 파도에 스르르 풀려가는 뭉클한 기쁨이 밀려왔다.


저 엄청난 양의 바닷물은 뭐가 그리 바쁘다고 어디로 저렇게 쉬지 않고 서둘러 흘러갈까? 높고 낮음에 순응하듯 흰 거품을 땀 흘리듯 파도에 밀리고 실려 둥근 지구의 목적지를 향해 줄달음치는 것일까?


시간이 행운일까? 아니면 돈의 위력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감사뿐인 건강이었음을 고백하며 진수성찬이 마련된 파도 위의 식당을 마주했다.


 있을 것은 다 갖춰진 음식들, 없는 것 없이 다 마련된 온갖 채소 과일들, 물론 이미 지불되었던 여행경비에 포함되었던 것이지만, 10여 곳이 넘게 마련된 식당 속에는 반 이상이 따로 음식값을 계산하지만 화려한 정찬 식당들이 즐비했다. 


일인당 30불에서 80불까지 풀코스 국제식당들이 완벽함을 뽐내고 있다. 그런 곳을 즐겨 이용하는 특수층 여행객들, 그 속에는 누가 포함될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끝나는 여행기간 2, 3일 전부터는 특별할인 값으로 고급식당을 출입할 수도 있었다. 


시간마다 꽉 찬 예능시간들. 특별한 영화나 댄스파티장, 음악회 역시 추가 요금을 부과하며 심지어는 방마다 물 한 병에 US $ 6.50씩이나 하듯이 강요된 결코 공짜가 아닌 치사스러움에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많았다.


헬스장이며 수영장의 풍경들, 수백 개씩이나 해변을 연상케 하는 안락의자들의 로맨틱한 장식들, 마사지용 스파 시설이 부족함 없이 들끓어대는 탕 속에 눈을 딱 감고 전신 물 마사지에 모두를 저당잡힌 인간 삶의 절정을 최고의 반열에 올려두고 있었다.


손에 손에 들려진 음료수들, 물론 모두가 별도로 계산되는 $ US 호주머니를 털어내야 한다. 환상적인 휴가의 의미를 바다 위에 물결처럼 들뜨게 출렁이게 하는 순간의 연속이기도 했다. 


일주일이 짧을 것이란 아쉬움과 더불어 쉬지 않고 파도 치는 바닷물결에 시간은 말없이 휩쓸려 지나가 버렸다. 들떠 흥분된 여행준비에 소홀했던 탓이었을까? 여행사의 실수였을까? 마이애미 항구에 새벽아침 7시 도착, 아침을 먹고 비행장을 향했다. 저녁 8시반 비행기의 예약은 1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지옥 같은 공항의 대기 시간이었다.


에어캐나다 비행일정이 그런가 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생각했었다. 어깨너머로 다른 탑승객들의 보딩패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12시에도 4시에도 비행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카운터에 마른침을 삼키며 빨리 좀 탑승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예약을 문의했다. 있단다. 4시반 비행기란다.


옳거니, 원칙적으로 추가요금을 부과하는데, 일기 불순으로 항공사 측의 특별요금을 부과하지 않겠다는 친절함에, 에어캐나다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사의 선처라면 아마 여유롭게 마이아미 공항근처를 즐기라고 특별히 설정된 일방적 배려였을까? 고객서비스에 만전을 다해야 하는 여행사의 무지에 씁쓸함을 달래며, 우는 아이에게 젖 먹인다는 말을 실감했던 여행이었다.


 폭염이 겉옷을 벗겨주던 곳에서 불과 3시간 차이의 하늘길은, 꿈이여 다시 한번, 얼어붙은 동장군의 토론토 땅에 사뿐히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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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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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이 겨울 찬가

 
이 겨울 찬가 

 

 

 

푹푹 빠진 폭설일랑 감당 못해 쩔쩔맸지
그럴거야 포기 하고 떨린 가슴 달래면서
이 겨울의 풍경 속에 애탄 가슴 잠재웠소


이제까진 심호흡에 이월 초반 맞았는데
누가 알까 별안간에 더 많은 눈 쏟아낼 걸
그럴 때면 꼬리 치며 앞마당에 재롱이들
소리 없이 하늘길에 그 사연 속 속삭임들
낭만이란 설레임이 사뿐하게 함께 하리


다정스런 팔장 끼며 좋아좋아 안겨들며
가는 세월 추억 속에 애뜻한 정 포근해라
산다는 것 꿈길마냥 그것보다 황홀한 것
즐겨야지 짧은 세월 너무귀한 한평생을


토론토에 이런 겨울 이거 정말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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