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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년, 그리고 노인
leed2017

 

 최용범과 이우현이 공동집필한 ‘한국 역사’를 보면 ‘청년’이란 말은 ‘만들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이전까지 청년은 젊은이로 불리다가 1893년 일본에서 조선청년 애국회가 결성되고 나서는 사회적으로 인기 유행어가 되었다 합니다. 기독교 청년회, 여자 청년회, 청년구락부 등 청년이란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조직은 1920년만 해도 250여 개에 이르렀다지요.

 한편 청년운동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어린이 운동입니다. 독립선언문을 쓴 육당(六堂) 최남선이 ‘어린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격식있는 단어로 ‘어린이’를 쓴 사람은 소파(小波) 방정환입니다. 소파는 천도교의 제3교주요 독립선언문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서명한 의암(義菴) 손병희의 사위로서 이런 전통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소파는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서 어린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린아이도 한울님으로 모셨으니 어린이를 절대로 학대하지 말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같이 그는 천주교 2대 교주 최시형의 말을 충심으로 따르는 어린이 운동가였지요. 방정환은 1922년 첫 번째 어린이 날을 제정하여 5월1일에 행사를 마무리 하고 이듬해에는 어린이 잡지 ‘어린이’와 색동회도 조직하였습니다.

 나는 ‘어린이 날’을 생각하는 중에 놀라운 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린이 날’은 1922년 5월 천도교 제 2교주 최시형이 “어린이는 한울님이니 절대로 때리지 말라”를 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시형은 학교 교육은 전혀 받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 인간 심성에 와닿는 이같이 절실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기야 예수그리스도, 부다, 마호메트 같은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가 학교에 다니면서 책을 읽고 인간 심성에 대한 통찰을 연마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와 통찰은 책을 읽거나 남의 얘기를 들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용암처럼 속에 차 있던 것이 줄줄 흘러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날이나 청년 운동과는 달리 노인운동은 누가 언제 시작하였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내 짐작으로는 노인들 자신이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근래에 들어 노인의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지요. 불어난 수가 하나의 정치세력이 되어 노인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확보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청소년 운동’이나 ‘어린이 운동’에 비해서 ‘노인 운동’은 노인들 자신이 “우리도 안정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야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구태여 ‘노인 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노인운동은 젊은이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독립과 노후를 풍요롭게 해 줄 여러가지 활동을 마련하자는 조용한 사회적인 삶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학교 가기 전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린이, 청년, 노년기로 옮겨온 과정에서 내 어린시절이 축복받은 삶이라 해야할지 아닌지를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산과 강, 그리고 나무 그늘 속에서 보낸 자연의 삶이었으니 도시 아이들 처럼 꽉 짜인 하루일과를 따라가는 삶이 아니고 내 마음 내키는대로 산 셈이라 축복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은퇴할 나이를 한국 E여자대학에 있을 때 맞았습니다. 한국에서 눌러살 생각도 해봤지만 안정을 보장해 주는 캐나다로 돌아와서 촛불이 목숨이 다하기 직전 불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것처럼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국 땅에서 31년을, 캐나다 땅에서 34년을 살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정(情)이고 캐나다는 안정(安定)입니다.

 요사이 세대 차이가 너무 크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대차라면 청년세대와 장년, 노인세대 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대간 차이를 메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노력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잘모르지요.

 나는 이런 데는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취합니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그래서 때가 오면 적절한 개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젊은이와 늙은이의 생각이나 생활 방식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할 것입니다.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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