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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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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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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한시(漢詩) 유감

 

 나는 한시(漢詩)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실력이 없다.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원문의 뜻을 이해하는 정도다. 그러나 한시를 무척 좋아한다. 같은 한시라도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다르게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을 보면 셋이면 셋, 넷이면 넷 다 다르지만 비슷해서 형제들을 만나는 것 같아 재미있다.


 나는 송시(宋詩)와 당시(唐詩)도 잘 구별 못한다. 송시(宋詩)는 인생에 대학 철학적 음미가 강하고 화려한 수식이 적다는 것. 이에 비해 당시(唐詩)는 산문적이고 웃음과 눈물이 있고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시라는 것은 안다. 


 송시가 머리로 쓴 시라면 당시는 가슴으로 쓴 시. 나는 이것을 내 나름대로 소화해서 동양의 연(軟)수필과 서양의 에세이 간의 차이로 생각한다. 나의 이러한 교과서적 설명도 어디에서 훔쳐온 개념적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것. 예를 들어가며 설명할 정도의 이해는 없다.

 

 한시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미친 듯 시에 대한 몰두와 집념을 가진 천재적 작가나 예술 애호가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을 보면 시인들 중에서는 미친 듯한 열정을 보인 기인(奇人)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예로 당나라 때 유희이(劉希夷)라는 시인은 “해마다 해마다 꽃은 비슷하건만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는 내용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이란 시(詩)를 지었는데 그의 장인 송지문이 위 시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기에게 줄 것을 간청하였다. 


 유희이는 그러마고는 했으나 끝내 주지는 않았다. 이에 격분한 송지문은 하인을 시켜 유희이를 죽여버렸다. 죽으면서까지 시를 주지 않는 유희이를 나무라야할지 사위를 눌러 죽인 송지문을 나무라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시에 대한 광적 애착으로 생긴 비극임에는 틀림없다.


 어렸을 때 집에서 들은 이야기다. 우리가 맨 처음으로 배웠을 천지현황(天地玄黃)이요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고 시작되는 천자문(千字文)을 지은 주흥사(周興嗣)는 죽을 죄를 지었다. 밤사이에 좋은 글을 지으면 살려주겠다 하여 밤사이에 ‘천자문’을 짓고 수염과 머리털이 하얗게 되어버렸다는 얘기가 생겨난다.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이런 기행과 광기를 보면 이들 시인에게는 시를 짓는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모양,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수필은 시(詩)와는 다른 것이지마는 나는 논문이고 수필이고 이런 광기를 부려가며 써 본 적도 없고 이 정도의 광기나 애착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옛날에는 시를 쓰는 사람들이 오늘에 비해서 무척 적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가진 높은 사명감 때문에 영혼의 고뇌를 참아 가면서 오직 시를 위해 인생의 심혈(心血)을 다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새는 날마다 새로 나온 시집(詩集)이 산 같이 쌓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시인 아닌 사람이 드문 세상.


 세상에 이름을 얻은 시인이든 아니든 오늘도 시(詩) 같은 시를 쓰는 시인은 자기의 시적 열정을 발산하려고 피를 말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끔 들여다보는 당, 송때의 시(詩)는 물론 우리의 옛 시는 덜 추상적이어서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안다. 그러나 요즈음 쏟아지는 시(詩)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랄까 추상적이어서 읽어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림으로 말하면 이 그림이 토끼를 그린 것인지 고슴도치를 그린 것인지 나 같은 사람 눈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토끼가 좋은지 저 고슴도치가 좋은지 판별은 말할 것도 없고…. (2011. 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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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늑대

 

 묵은 잡기장(雜記帳)을 뒤적이다가 다음과 같은 어느 전문가가 발표한 늑대의 특성에 관한 발표를 적어둔 것이 눈에 띄었다.


*늑대: 늑대는 한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을 사랑한다: 늑대 자신의 암컷과 새끼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우는 유일한 포유류(哺乳類)다: 늑대는 사냥을 해오면 암컷과 새끼들에게 음식을 먼저 양보한다: 늑대는 제일 약한 상대가 아닌 제일 강한 상대를 선택해 사냥한다: 늑대는 독립한 후에도 종종 부모를 찾아와 인사를 한다: 늑대는 인간이 먼저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 한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


 정말 그럴까? 평생 늑대를 관찰하고 그 행동을 기록한 사람의 보고이니 사실과 크게 빗나간 말은 아닐 것이다. 앞의 묘사를 보면 늑대는 집안에서 자기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자정(子情) 많은 아버지요 밖에서는 약한 상대보다는 강한 상대를 골라 사냥을 하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다. 또 독립한 후에도 부모를 찾아와 인사를 한다고 하니 효행(孝行)도 지극한 편.


특히 일평생 사모님 한 분만 모시고 산다 하니 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애처가가 어디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짐승 중에 부부간 사랑이 이 정도로 돈독한 것들로는 원앙새 밖에 없다. 원앙은 자기 배우자가 죽으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며칠을 울기만 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Hamlet)처럼 “상여를 따라가는 눈물도 마르기 전에” 또 다른 배우자를 찾는 인간의 모습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나는 앞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는 청춘 남녀의 결혼식 주례라도 설 기회가 있으면 “당신이 늑대라면 정말 늑대 같은 신랑이 되라”고 신부 옆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애숭이 늑대에게 당부하려고 벼르고 있다.


 이렇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늑대를 왜 그다지도 흉물스럽고 포악한 짐승으로 볼까? 내 대답은 잘못된 신념과 믿음 때문으로 볼 수 있지 싶다. 잘못된 신념은 복잡한 정보의 바다 속으로 유목화(類目化 , categorization) 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유목화는 우리가 세상을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하도록 간추려 주는 역할을 하는 개념 형성의 필수적 요소. 유목화 하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개념이 없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각종 자극에 방향에 잃고 정처없이 표류하고 말 것이다. 


 무수한 묘사들을 간추려서 ‘탈북자’니 ‘오렌지족’ ‘바람둥이’ 좌빨’ ‘학자’니 하는 개념 덕분에 얼마나 빨리, 그리고 쉽게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지. 잘못된 믿음이나 신념은 태도, 습관이나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과정을 밟아 형성 발달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 상태에서 늑대를 본 적이 없다. 늑대가 사람을 해치거나 다른 짐승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본 적은 더더구나 없다. 그러니 늑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이나 이야기를 듣고 ‘늑대는 포악 음흉한 짐승’이라는 잘못된 신념에 이르고 만다. 이 잘못된 신념이 변경될 기회가 없이 그대로 굳어진 신념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만일 늑대가 개나 고양이처럼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다면 늑대에 대한 우리 생각이나 믿음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늑대를 본 적이 없으니 늑대와 경험도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 간접적인 정보로 늑대라는 개념이 생기고 잘못된 믿음과 신념이 형성된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믿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믿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정보가 나와도 그 정보를 무시 혹은 지나쳐 버리거나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직접 경험으로 형성된 믿음이라고 해서 잘못된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늑대로 시작한 얘기가 턱없이 길어졌다. 한 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는 늑대에 대해 잘못 형성된 믿음이 이렇게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다른 믿음도 얼마나 허무한 근거 위에서 생겨나고 이 잘못된 믿음과 신념이 얼마나 끈질기게 오래 달라붙어 대를 물리는가를 알 수 있다. 신기하다기 보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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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성(性) 대결

 

 오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스페인, 과테말라, 세르비아 등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바쁘다. 행사내용도 가지각색.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홍보하는 세미나, 사진전, 강연 같은 비교적 조용한 행사를 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낙태 지지, 혹은 낙태 반대 같은 특정 이슈(issue)를 걸고 시끄럽고 격렬한 길거리 시위를 한다.


 여성은 자기 몸에 일어나는 일은 자기 스스로가 통제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고, 뱃속에 있는 태아(胎兒)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함부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입장이다. 특히 카톨릭 신자들이 많은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반대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어느 나라 행사를 봐도 행사의 골자는 하나같이 ‘여성은 남성에게 많은 권리를 빼앗겼으니 이것을 되찾아 남녀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리를 빼앗겼다니 애당초 그 권리를 다 가지고 있었는데 남성에게 빼앗겼단 말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잠시 태곳적 동굴 생활로 돌아가보자. 인간의 존재 목적은 자기의 유전자를 되도록 많이 뿌려놓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식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이 목적에 부응하는 것. 그러니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이성(異性)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 시절 인간사회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한 가지 자원(資源), 즉 이성(異性)과 이성을 차지하는데 도움이 될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성 대 남성 갈등에서는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갈등이 생길까?


 진화 심리학으로 보면 두 성(性) 간에 갈등은 남성과 여성이 쓰는 책략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남성과 여성은 성(性)적 욕구 만족에 대한 책략이 다르다. 그 중 가장 큰 책략의 차이는 남성은 성(性)적으로 적극적인 반면 여자는 소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남성은 성적 욕구를 비교적 짧은 시일 안에 만족하기를 바라고, 여성은 성적 욕구 만족을 연기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니 두 성(性)이 같은 욕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는 없다.


 만일 어떤 여자가 상대 남자가 자기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일 때까지 성적 욕구 만족을 늦추는 데 반해, 남자는 빠른 시일 안에 성적 욕구 만족을 서두른다면 두 책략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갈등은 성적 욕구 만족시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애(求愛) 중 남자가 자기 학력을 속이거나 자기의 결혼 사실을 속이는 것, 여자가 자기 나이를 속이거나 결혼을 하고 나서 배우자 아닌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도 책략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나 질투, 슬픔, 낙심이나 실망 같은 부정적 정서는 주로 이 책략 갈등 해소와 관련된 정서이다. 진화 심리학으로 보면 ‘성(性)대결’이란 이상한 말이다. 남성은 여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기네들끼리 경쟁을 하며 여성도 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하는데 성(性)대결은 무엇을 두고 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동굴을 떠난 지가 오래 되었다. 이제는 싸움의 형태도 그 원형을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 여성이 최고 권좌에 앉은 나라도 있고, 굵직굵직한 기업체의 CEO 자리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학 사회에서도 여성 교수의 비율은 해마다 높아간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져도 보통 달라진 게 아니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性)차별이란 성에 대한 편견과 퍽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녀평등의 만개(滿開)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조지 번스(George Burns)의 익살스런 말이 생각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에 성(性) 대결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원하고, 여성은 남성을 원하는 한…” (20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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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2
만고(萬古)의 진리

 

 나는 한국을 드나들 때마다 공항 세관원들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다. 그들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칠 때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공연히 겁이 난다. 조상대대로 시달려온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의 DNA가 아직도 내 핏속에 섞여 흐르고 있어서 그런가. “저 세관원들은 얼굴 한번 쓱 훑어봐도 내 짐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훤하게 알겠지…” 하는 나의 반신반의의 궁금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세관원들의 신통력을 알아볼 좋은 기회가 왔다. 매년 5, 6월이면 대구에 있는 D대학에 가던 김포공항 시절, 한 번은 대한항공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자기는 김포공항, 김해공항, 인천, 마산, 부산세관 등을 다니며 세관원으로 30년 넘게 일하다가 불과 몇 달 전에 만기 퇴직을 했다는 게 아닌가. “오냐, 너 잘 만났다”


 대뜸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질문, 즉 “선생님은 사람을 쓱 한 번 훑어보면 그 사람 보따리 속에 숨겨 가지고 오는 금지품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까?”를 물어봤다.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모르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가끔 내가 ‘여권 좀 봅시다’ 하면 깜짝 깜짝 놀라고 안절부절 못하는 승객 몇몇을 빼고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요”


 세관원이 당면하는 이런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겪는 인상(人象) 형성이랄까, 사람 지각(知覺)과 깊은 관계가 있다. 남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사회심리학의 오랜 관심거리의 하나. 재판정에서 증인 A를 처음 볼 때 우리 뇌(腦)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우리의 뇌는 비밀히 A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가(trustworthiness)를 거의 즉각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38밀리 세컨드 안에 판단해 버린다.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역들이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인 것처럼 ‘저 놈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사람인가’하는 것이 사람 지각 요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포터(Porter) 교수에 의하면 이렇게 지극히 짧은 순간에 형성된 A에 대한 인상은 일단 형성이 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으며 심지어 법정에서 A가 유죄냐 무죄냐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A의 표정을 잘못 판단하는 날에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큰 실수, 이를테면 법정에서 배심원들이 억울한 누명을 쓴 혐의자를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놓쳐버릴 수도 있고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포터 교수에 의하면 극히 짧은 순간, 즉, 단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뇌(腦)는 A의 얼굴을 보고 그가 믿음성이 높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다음 방법을 동원해서 판단한다고 한다.

첫째, 증인 A의 얼굴에 격렬한 사람들과 비슷한 점, 이를테면 얼굴에 풍기는 남성성 정도와 지배욕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남성성이 높은 사람은 얼굴이 넓고, 남성 호르몬이 많아서 어딘지 사나이다운 면이 많다. 이에 비해 얼굴이 어린 아이 같은 동안(童顔)은 지배적이지 않고, 어딘지 친절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다.


 둘째, 얼굴에 분노의 흔적이 있는지를 본다. 우리의 뇌는 얼굴이 모나고 눈썹이 거세고 입술이 얇고, 어딘지 분개한 감정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분노가 많은 점수를, 균형이 잡힌 동안(童顔), 즐거워 보이거나 웃음기를 띤 사람들에게는 낮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믿음성 평정을 낮게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죄(guilty) 판결을 더 많이 내린다.


 사람들은 살인용의자로 잡힌 사람들이 “진짜 살인자 같이 보인다”고 수군거린다. 도대체 진짜 살인자는 어떻게 생겼다는 말인가? 진짜 바람둥이는? 그리고 진짜 바람둥이요 동시에 진짜 살인자는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교사나 재판관, 의사나 경찰관 같이 사람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이 “나는 사람 한 번 척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자기의 사람 보는 눈을 뽐내는 것을 가끔 본다. 그것은 흔히 자기의 편견을 말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 삼성에서 십 수년간 몸담았던 사람이 화가 나서 삼성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경영방식을 마구 세상에 폭로하는 고위 간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 회사에서 충실하게 일하던 경리 직원이 수백 억의 회사 돈을 빼내서 해외로 잠적, 이 모두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 일은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만고(萬古)의 진리다. (20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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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5
‘난중일기’ 그리고 이순신

 

 내가 이순신 장군이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을까? 분명한 기억은 없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이니 하는 장군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읽은 기억이 나니 이순신 장군도 아마 그때 만화로 알았지 싶다.


 대학교 4학년 때 였던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기네 정권체제 유지를 위해 갑자기 구국(救國)의 영웅 이순신을 들먹였다. 박정희를 나라를 어려움에서 건진 이순신에 비유하란 말. 아무튼 나 같은 얼간이도 그 선전의 희생물이 되어 이순신이 전란 중에 쓴 ‘난중일기’를 한 권 구해서 읽다가 20쪽을 못 넘기고 덮어버린 적이 있다.

 

 

 


 저자에 따라 내용이 서로 다른 ‘난중일기’ 중 이번에 집어든 송찬섭 님이 엮은 것을 포함하면 이번이 두 번째 정독이다. 임진왜란 7년 동안에 쓴 ‘난중일기’의 친필 초고는 정조 19년 왕명으로 펴낸 ‘이충모공 전서’에 실렸다. ‘난중일기’란 책 이름도 이때 책을 편찬한 사람이 편의상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 오늘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난중일기’는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정황뿐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예로 당시 수군에는 천민이 많았다. 각종 무기를 만들고 거북선을 만들던 장인들. 이순신이 잠 못 이룰 때 거문고를 타고 피리를 불어주던 부하들에 대해서도 이순신은 꼼꼼히 기록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하가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벗어준 이야기도 있다.


 이순신은 날마다 전쟁 준비, 어머님 걱정, 자식, 부하들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불면증, 소화불량, 호흡기 질환으로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으나 이튿날 싸움에서는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를 외치는 표범으로 변하여 앞에 서서 부하들을 독전하였다. 철저한 준비와 정확한 정보 수집으로 적의 상태를 파악하여 수십 번이 넘는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명장 이순신(임진 8월15일).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들어 나그네의 가슴이 어지럽다. 혼자 배의 뜸 밑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달빛이 뱃머리에 들고 정신이 맑아져서 누워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느덧 닭이 우는구나… (19일)” “저녁에 광양 현감이 진주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부를 보내왔다.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본관이 덕수인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의 고향으로 잘못 알고 있는 아산은 이순신 어머니의 친정으로 소년 순신이 유년시설을 보낸 곳이다. 이순신은 풍채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순신과 같은 해에 무과에 급제한 고상안(高?顔)에 의하면 “순신은 말과 논리와 지모가 난리를 진압할 만한 재주이나 용모가 풍만하고 두텁지 못하여 관상도 입술이 말려 올라간 듯 뒤집혀 복장(福將)은 아니라고 여겼다”고 그의 ‘태촌집’에 적었다.

 

 

 


 이순신은 당시 영의정 서애(西厓) 류성룡의 천거로 정읍 현감에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다. 그러나 그가 동인(東人)의 추천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도 그중 한 사람. 이순신은 모함으로 직함, 계급을 모두 빼앗기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서애의 지극한 변호로 간신히 풀려나와 백의종군 하였다. 그것도 처음에는 수군이 아니고 육군에 배치되었다가 나중에 수군으로 옮겼다.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절도사가 된 원균은 무모한 전술을 구사, 칠천량 해전을 시작으로 대패에 대패를 거듭하다가 남은 것이라고는 전선 12척 뿐이었다.


 왜군에 대적해 싸울 의지도 용기도 없는 조선 조정은 아예 수군을 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통곡할 상황에서 이순신은 “신(臣)은 아직 살아있고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으니(微臣不死尙有十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 수군을 허술히 보지 못할 것입니다.” 라는 눈물의 장계를 올린 후 330척의 적선을 명량해전에서 대파하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충의는 요새 사람들도 감동의 눈물을 떨구게 한다. 이를 생각하면 그에게 성웅(聖雄)이란 말은 열번을 해도 모자란다.


 사가(史家)들은 당시 집권당이 이순신의 ‘죄’를 떠들고 죽이려고 한 것은 이순신을 추천한 남인 류성룡을 때려잡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장군들을 뒤에서 밀어주기는커녕 그들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의병을 일으켜 말할 수 없이 큰 공적을 세운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광주의 김덕령 장군 같은 사람들에게도 칼끝을 겨누었다. 


 김덕령은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 끝에 죽고, 곽재우는 모든 것에 실망하여 영영 세상을 등지고 숨어 버렸다. 그야말로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것으로 요긴한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도 쓸모가 없게 되면 쉽게 버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나랏일에는 관심이 없고 서로 밀고 당기는 당파싸움에만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인간 구더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중앙무대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 않는가.


 후세 사람들은 일본을 사신 자격으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이 보고를 서로 다르게 하여 전쟁준비를 소홀히 해서 임진왜란이 더 비참한 전쟁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헛말, 조선에서는 이미 왜가 침범해 올 것을 알고 그 전쟁준비의 일환으로 이순신, 이일, 신립 장군 같은 사람의 인사이동을 하지 않았던가. 무능한 선조도 나름대로 전쟁 준비를 했던 것이다.


 임금이 뒤에서 ‘이순신 장하다’고 칭찬해 줬던가. 재상들이 밀어 줬던가. 아니면 동료, 졸개들이 박수를 쳐 줬던가. 어디까지나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하던 이순신은 그가 가신 후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겨레의 큰 별이 되어 보석같은 빛을 내뿜고 있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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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1-24
저도 어릴 적! 60년대 초인 중 1때쯤에 '이순신과 그들' (최석남 저)이란 책을 읽고서 이순신장군에 대해 알게 됐지요. 저자 최석남은 당시 육군준장으로 논산훈련소 소장으로 재직 중! 저희 가친과 친우였기에 그 책을 증정 받은 걸 어린 제가 읽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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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1-24
검색해보니.....단기4294년 최석남(崔碩男) 李舜臣과 그들(이순신과 그들)....로 나와있군요. 4294년이면 서기 1961년! 김치맨 중2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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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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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제갈공명

 

 



 제트기가 태평양 바다 위를 날고 전자우편이 몇 초 사이에 대륙을 왔다갔다 하는 이 과학문명 시대에 무슨 죽은 지가 1,800년이 가까워오는 제갈공명이냐고 뜨악해하는 사람들이 많을게다. 제갈공명은 우리가 어려서 읽은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귀신도 부리는 병법의 귀재로만 알 뿐이지 그가 실제 인물이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언제고 실존 인물로서의 제갈공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인간성은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제갈공명으로 알려진 사람의 제갈(諸葛)은 성이요, 공명은 자(字), 이름은 량(亮)으로 181년 한(漢)나라 영제 때 지금의 산동성, 낭야군의 지방관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몸을 의탁했던 숙부가 죽자 융중이란 곳에서 초가를 짓고 농사를 지으며 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며 살았다.


 207년 훗날 촉(蜀)을 세운 47살 유비가 27살 공명을 세 차례 방문, 유비의 초빙에 응하여 그를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군사 장군, 승상 등의 크고 중요한 벼슬은 다 지냈으며 234년 12월8일 통일의 대업은 이루지 못한 채 오장원 싸움터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54살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위에 적은 것만으로 보면 제갈량은 어느 평범하고 유능한 정치가나 장군에 지나지 않는다. 후세 사람들이 제갈량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천하의 온갖 이치를 꿰뚫는 총명함과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비범한 책략은 물론 그가 유비 진영에 가담하고 나서부터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변함없는 충성심, 공명정대하며 검소한 자세와 부지런히 노력 실천하는 모습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서남지역의 카와족 사이에서는 제갈량이 자기들의 선조들에게 집 짓는 기술과 대바구니 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병이 들어 임종석에 눕게 된 54살의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내 자식 선은 노둔하기 짝이 없는 아이요, 만약 보좌할만 하거든 보좌하여 천하의 주인이 되게 하고 그렇치 않거든 그대가 나라를 차지하십시요”라는 요지의 간곡한 유언을 남겼다. 어리석기로 이름난 새 군주 유선 밑에서 제갈량은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어린 군주를 보좌했다. 


 227년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북쪽 위나라 정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라는 그의 충정을 쏟아 부은 장문의 의견서를 바쳤다. 천하명문인 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란 말이 나올 정도록 읽은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글이다.


 동양의 수필은 일반적으로 자기 신상에 대한 고백을 좋아하는데 공명의 출사표나 최남선의 독립선언문 같은 글은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글은 아니지만 워낙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라 수필 범주에 넣는 사람도 있다.


 “선제 창업이 반도 못되어 중도에 붕조하시고 천하는 삼분되고(촉, 오, 위) 익주는 피폐하니 참으로 위급 존망이로소이다.  ….신은 본래 벼슬이 없는 선비로서 남양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을 보전하려고 했을 뿐 세상에 나아가 벼슬을 쫓아 일신의 영달을 꾀할 생각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선제께오서 신의 비천함을 탓하지 아니 하옵시고 높으신 몸을 굽히어 세 차례나 거듭 신의 거처를 찾아오셔서 당세의 시무를 물으셨습니다. 신은 여기에 감격하여 선제를 위하여 일신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눈물 없이는 읽어 내려가기가 힘든 충정과 절개가 곳곳에 엿보인다. 인간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 군주가 살아있을 때는 충성을 맹세하다가도 군주가 죽거나 권력에서 밀려나면 바로 그 이튿날로 뒤돌아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제갈량처럼 본래 주인은 가고 명민하지 못한 새 주인이 들어섰는데도 끝까지 충성을 다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촉과 싸우던 위(魏)가 그렇다. 위를 세운 조조가 죽고 난 후 사마의의 세력이 날로 커져갔다. 그런데 이 사마의는 제갈공명과는 달리 처음부터 위나라 신하로서 위나라의 왕위를 빼앗을 야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를 깊이 숨기고 그의 아들들과 거짓 충성하고 거짓 복종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가. 결국 위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사마의와 그의 아들들이었다. 이에 반해 제갈량의 충성에는 한 점의 불순물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충성심이니 절개니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충성심이란 말과 가장 가까운 현대어는 정성과 신의라고 볼 수 있다. 정성과 신의는 현대 사회생활 어느 구석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덕목이 아닌가. 제갈량의 정치는 사심이 없이 공평하였다. 예로 자기 측근에 마속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런데 마속이 북벌 때 제갈량의 작전 명령을 어겨 전략상의 요충지를 잃게 되자 군법의 존엄성을 보이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처형하였다.


 고등학교 국어 고문(古文)시간 ‘두시언해’를 배울 때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가 제갈량의 사당을 찾아 지은 ‘촉상’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으리오/ 금관성 밖 잣나무가 울울한데로다/ 세 번씩이나 찾은 것은 천하를 위해서요/ 두 왕(유비, 유선)을 섬긴 노신(老臣)의 충성스런 마음이라/ 군사를 출동시켜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적시게 하누나(?相祠堂何處尋…長使英雄淚滿襟)”


 오수형이 편역한 ‘제갈공명: 난세를 건너는 법’을 보면 제갈량은 병이 심해지자 묘지의 선택과 장례 등 사후의 일을 일일이 지시하며 검소하게 치를 것을 부탁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는 유선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제가 전에 선제를 모실 생활 비용을 국가에 의존했었으므로 제 나름의 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성도에 뽕나무 팔백 그루가 있고 척박한 땅이나마 열다섯 경(頃)이 있으니 자식의 의식을 해결하기에는 넉넉합니다. 따로 수입이나 지출없이 입고 먹고 의식 문제를 모두 국가에 의존하면서 별 달리 재산을 증식하지 않았사오니…”


 1,7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 한국의 고등관리 중에 제갈량을 닮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신문 방송을 통해서 보면 없다. 모두가 탐관오리요 도둑놈 같아 보인다.

모두가 자기 재산 긁어모으기에 정신이 없고 이름 낼 기회라도 있으면 그 어떤 전향이라도 서슴지 않을 무리들… 이들은 제갈량 같은 좋은 본보기를 두고도 그 무엇을 찾으려는지 성경을 뒤지고 찬송가를 부르고 불경을 외운다.


 한자 문화권인 동양인에게 공명은 지혜의 상징, 충성스런 신하의 표상이다. 그의 이상은 원대하였고 실천은 근면하였다. 갈수록 황폐해가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제갈량이라는 이름 석 자가 흠모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본보기가 될만한 좋은 지도자가 없는 현실 때문인가?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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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자존감(自尊感)

 

 성탄절이 가까워오는 12월 어느 날, 두 늙은이밖에 없는 이 한적한 집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에드먼턴 얼음문학회의 K회장으로부터 온 장거리 전화. 내용인즉 오는 4월에 출간될 예정인 얼음문학회 회지(會誌)에 내 수필 한편을 싣고 싶으니 신작 수필 한 편을 보내주든지, 아니면 축하의 말 몇마디를 보내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겉으로는 “아이구 내가 뭘…” 하며 사양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여간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마치 마음속으로 애간장을 태우며 그리워하던 남자가 어느날 자기에게 접근해 오는 데 겉으로는 “이럼 안돼요.” “아이, 이러지 마세요.” 하는 극히 미지근한 저항을 하며 그 남자의 품속을 파고 들고 마는 어느 처녀와 같다고 할까.


 원고 청탁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나를 인정(認定)해 준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남의 인정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인정의 노예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맹렬히, 그리고 끈질기게 추구한다. 그런데 인정의 절반은 남에게서 오는 것. 그러니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상관치 않는다.” 따위의 말은 어릴적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 때 “나는 무섭지 않아” 같은 말을 해서 자기는 용감한 소년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거나 태산이 울어도 끄덕 않는 의연함을 보여주자는 것과 마찬가지. 이 모두가 인정을 최대화하려는 몸부림이라면 내가 너무 야박할까.


 인정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올 때도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의 자존감(自尊感) 혹은 자중감(自重感)이라고 한다. 자존감이 너무 높은 것도 탈이지마는 너무 낮은 것은 더 큰 탈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적으니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을 뿐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자기 능력을 스스로 비하(卑下)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불행감이나 열등감을 더 자주 느끼게 된다.


 1988년 미국의 저명한 인지 심리학자 테일러(S. E. Taylor) 교수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적적이고 좋은 쪽으로 착각을 더 많이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성격 면에서 자기 자신을 너무 아름답고 거창하게 포장을 하는, 말하자면 과대평가를 한다는 놀라운 주장을 발표하였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큰 착각을 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테일러 교수는 이 주장을 위해서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연구 결과를 끌어냈다. 착각이라 해도 자기를 긍정적인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니 그는 이를 긍정적 착각(positive illusion)이라 불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남들이 당신을 얼마나 정직한 사람으로 보는지 10점 만점으로 답해보라”면 남들의 평균은 6점인데 자기 자신은 이보다 더 많은 9점으로, 또 “남들이 당신을 얼마나 잔인한 사람으로 보는지 10점 만점으로 답해보라”면 남들은 평균 5점이나 자신은 이보다 5점이 더 적은 0점으로 평점을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긍정적인 특성에서 남들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은 더 많은 것으로, 부정적인 특성에서는 남들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도(道)가 탁월한 경지에 오른 어느 스님 한 분이 독재 대통령 C씨에게 “네가 누구인지 네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느냐? 네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려고 드느냐”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야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님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지 되물어 보고 싶다. 


 한 가지 더 스님의 말을 되씹어 보자. 자기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지 못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건강은 좋지 못해도 남의 건강은 잘 돌봐주는 의사도 많고 자기는 가난하지만 남의 돈을 잘 벌게 해주는 재정상담가도 있다.


 높은 도덕적 경지에 오른 고승(高僧), 저명한 학자, 사상가, 정치가들 중에는 남의 인정(認定)은 허무한 것이라고 이를 맹종하는 세상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들은 과거에 이미 남의 인정을 많이 받아서 소위 스타 반열(stardom)에 오른 사람들이 아닌가. 마치 어느 백만장자가 말년에 이르러 “돈, 지위, 명예가 한 조각 구름일 뿐”이라고 탄식하는 것과 마찬가지.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돈과 명예 그 어느 것도 뜬구름처럼 허무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허기진 사람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탐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허무한 것이라는 말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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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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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정상과 비정상

 

 생각과 행동이 정상이 아닌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신병자’ ‘미쳤다’ ‘돌았다’ ‘갔다’ ‘싸이코’ ‘비정상’ 등의 표현을 쓴다. 이 모두가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그럼 정상, 비정상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이 말을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말로 정의를 내리기는 무척 어렵다. 위궤양이나 전립선암 같이 ‘있다’ ‘없다’로 판정 내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100% 정직한 사람이 없고, 100% 부정직한 사람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과 비정상은 계속 선상에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두부 자르듯이 둘로 딱 잘라 얘기할 수는 없다. 예로 남편이 죽고 3년이 지나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을 정상이라 해야 할까, 비정상이라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정도가 매우 심한 비정상 혹은 정신질환 판결은 다음 세가지 증후가 나타나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환각(hallucination), 망상(delusion), 극단적 감정장애(extreme affective disorder)이다. 환각이란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고 듣는 감각기관의 장애를 말한다. 하늘에서 어머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린다는 것이 예다. 망상은 끊임없는 거짓신념, 이를테면 자기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자기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과 같은 생각, 믿음의 장애다.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감정 장애는 뚜렷한 이유 없이 심한 불안 공포에 휩싸이거나 감정이 ‘얼어붙은’ 상태, 즉 어떤 일에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말한다. 예로 가족이 죽었는데도 아무 슬픈 감정을 보이지 않고 끝내 무표정한 상태로 있는 것은 극단적인 감정장애로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소위 의학적 모델(medical model)이다. 이 모델에서는 정신적 장애를 위궤양이나 폐렴 같은 질병으로 본다. 그러니 정신병을 치료하자면 여느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진단을 먼저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주장하는 모델이다. 정신병의 ‘병’이란 말도 이 의학적 모델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는 유전-생리-심리-사회적인 모델로 모든 정신장애는 생리, 유전적 특성, 환경, 심리, 사회 문화적 요소의 복합적 영향에서 오는 적응문제로 보는 모델이다.


 로젠한(D. Rosenhan) 교수가 40년 전의 발표했던 연구를 소개한다. 당시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법학교수인 로젠한은 ‘정신병원에서는 (정신병이 없는) 정상인을 어떻게 볼까?’에 답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즉 12명의 가정과 직장에서 문제가 없는, 어느 모로 보나 정상인들이 제각기 가짜로 정신병 증세를 보고하여 12개의 정신병원에 흩어져서 입원을 했다. 입원수속을 끝내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이들 12명의 가짜 환자들은 일반사회에서 하듯 정상적인 행동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사람들이 가짜 증세를 진술하여 정신병원에 입원, 입원하고 나서는 병원 안에서 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이들 가짜 환자들이 의사들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어야 할까? 아마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사람인데 왜 여기를 들어왔어요?” 아니면 “당신은 완쾌되었으니 오늘 퇴원하시오” 같은 말을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12개의 병원 어디에서도 이런 말을 해준 곳은 없었다. 12명 중 11명이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평균 19일이나 병원에 환자로 갇혀 있었다. 이들 가짜 환자들은 병원 안에서 ‘실험’을 했다. 즉 이들이 “의사 선생님, 저는 지금 아무 탈이 없는 것 같은데 퇴원해도 될까요?” 같은 물음에 “어제 축구시합 퍽 재미있었지?” 하는 엉뚱한 대답뿐이었다.


 정신병이란 행동 자체보다도 정신병원이라는 주위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일단 정신병 환자라는 칭호가 붙으면 모든 행동이 정신병 증후 행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정신병 환자로 낙인이 찍히면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는다는 일종의 사회적 고발이다. 이같은 환자에 대한 동문서답식 대접은 정신과 의사가 제일 심했고 임상심리학자, 사회사업가, 간호원, 기타 직원 순이었다.


 많은 정신장애는 생리적, 유전적 요소보다는 사회, 문화적 요소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로 동성애는 옛날에는 북미대륙에서 정신질환으로 간주되었으나 1973년10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열띤 논쟁 끝에 정신질환 분류에서 빼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니 한 2천년 세월이 흘러 북미대륙 사람의 99%가 동성애자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때 가서는 이성(異性)을 사랑하는 것이 정신질환으로 간주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정상, 비정상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임상적 면도 고려되어야 하지만 사회-문화적인 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비정상’에는 늘 사회적 오명(汚名)과 편견이 붙어 다닌다. ‘바람끼’ 있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봤을 때 일어나는 묘한 생각의 지각변동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 생각의 확인적 편견(confirmatory bias) 때문이다. 확인적 편견이란 자기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 ‘그러면 그렇지’ 맞다는 것을 확인해줄 것만 골라서 보고 듣는 경향을 말한다. 이 확인적 편견은 특성이 모호하고 관찰결과에 대한 해석 범위가 넓을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재의 정신병 치료기술로서는 ‘완전’ 치유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완전’ 치유가 없는 한 비정상에 따르는 오명과 편견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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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가는 해의 취상(贅想)

 

 또 한 해가 저문다. 온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달력이 후딱후딱 넘어가더니 앞으로 몇 밤만 자면 새해란다. 


 10대, 20대 젊은 시절에는 나도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도 어른이 되어 술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어른이 누리는 복락은 다 누리고 싶었다. 예쁜 아내와 좋은 집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귀여운 자녀들을 거느리고 싶은 생각… 


 이런 생각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소원이겠지만 그때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이런 진부한 생각은 의대나 법대를 지원하는 아이들이 많이 가지는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치부해 버렸다. 큰 오산!


 그렇다고 나는 진보적이고 번듯한 일생을 꿈꾸는 젊은이도 아니었다. 그저 밥이나 먹고 하릴없이 이러저리 쏘다니기만 하는 거리의 건달. 대학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들 몇 명이 함께 손잡고 사회운동을 하자며 접근해 왔으나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대학교 3학년 때 4.19가 터졌다. 그날 수업은 모두 폐강이 되고 우리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교 공부가 지옥보다도 더 지루하고 싫던 나에게는 신이 내린 선물. 부정투표가 있었고, 마산 항쟁이 일어나고, 경찰 손에 죽은 김주열의 시체를 바다에서 끌어올렸다고 야단들이었으나 나는 별다른 의분도 느끼지 못했다. 


 참으로 시대의 지진아(遲進兒)요, 정의감이라든가 사회적 책임이나 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없는, 그저 하루 세 끼 밥만 축내는 ‘식충’이었다.


 그런데 우리 데모대가 경무대 가까이 갔을 때다. 경찰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쏴대자 경상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서 같은 반 학우가 된 조용한 친구 하나가 ‘무기고에 불 지르러 가자’고 내손을 잡아 끄는게 아는가. 나는 겁이 나서 “그런 위험한 짓은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내 모교의 영어교사 자리에 동렬이 너를 약속 받았다”며 그 고등학교 이사진과 두터운 교분을 은근히 뽐내셨다. 나는 한 마디로 이를 거절했다. 내 살 길은 내가 해결해야지… 그 대신 나는 두 가지 일에 정력을 기울였다. 첫째는 틈만 있으면 동방연서회에 가서 붓글씨를 익히는 일이요, 둘째는 가정이 불우하여 정규 중고등학교에 못가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서 1년 조금 넘게 봉사를 했다. 내가 바로 ‘상록수’의 주인공 같은 생각을 하니 속으로 우쭐해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운동에 예민한 감각을 가진 피 뜨거운 청년 같았으면 그 때의 경험이 시민 운동가로서의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리한 관찰력도 성의도 없는 그저 평범한 몽상가에 지나지 않았다.


 4.19때 무기고에 불 지르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던 친구는 어느 대학교에 평범한 교수로 있다가 나보다 1년인가 2년 먼저 은퇴를 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53년 전 무기고에 불 지르러 가자고 내 손을 잡던 녀석이 지금은 소위 극우로 완전 전향을 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가서 국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을 때 술집에서 인턴 아가씨와 술을 마셔 문제가 된 청와대 홍보실 Y씨의 실수도 좌파 종북세력이 쳐놓은 덫에 Y씨가 걸려든 것이라는 요지의 전자우편을 내게 보내 올 정도로 극우 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50년이 흐른 사이에 일가친척,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쩌다가 나만 찬바람 부는 캐나다에 남아 있다. 외롭다. 이 나이에 좌파 우파 따져 뭘 하겠다는 것일까.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 가슴을 데워 줄 따뜻한 일이라도 생길까. 


 목숨이 위태로워질수록 늙은 어부는 하늘의 별을 헤인다고 한다. 어디 우리도 몸을 건강하게 지키며 기다려 보자. 설사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줄 좋은 일은 오지 않더라도 기다린 덕분에 신체적 건강은 지킬 수 있었을 테니 큰 손해 본 것은 없지 않는가. (20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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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재채기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평생 재채기를 하지 않고 산 사람은 없지 싶다. 일단 재채기가 걸려서 ‘에취’가 터지는 순간, 그 순간이란 것이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지나지 않지마는, 그것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세계, 망아(忘我)의 경지다.


 생리적으로 재채기는 비강(鼻腔)에 있는 점액, 이물(異物) 등의 해로운 물질이 속기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콧속이 간질간질하다가 ‘에취’하고 큰 기운을 내뿜는 신체 동작에 불과하다. 재채기의 ‘즐거움’은 ‘에취’가 일어나기 전 십 분의 일 초, 아니 백분의 일 초 전에 시작되어 ‘에취’가 터질 때까지 이르는 쾌감이랄까 기대감이다. 이 재채기가 터지는 순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모든 세상만사는 배후로 들어가고 ‘에취’만 남는다. 


 재채기 하는 순간에 어찌 남북대화, 핵실험, 개성공단, 노무현의 대화록, 사대강 공사 같은 굵직굵직한 일을 걱정하며 성가연습, 딸에게 사준다고 약속한 강아지, 친구와의 약속같은 일에 신경을 쓸 것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잠수하고 마는 것을… ‘에취’ 하는 순간이야말로 아무 보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두려운 것도, 놀라는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경지, 찰나의 망아(忘我) 경지이다. 만일 천당에서 재채기의 ‘에취’ 순간을 무한대로 연장해 준다고 하면 나는 지금 당장 천당행을 자원하겠다.


 사람은 일생동안 재채기를 몇 번이나 할까? 내가 앞으로 할 재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재채기를 모아서 한꺼번에 해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재채기를 하는지 나는 모른다.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또한 아내처럼 재채기를 했다 하면 두 번 연달아 하는 사람을 보면 바로 옆에서 폭발음을 듣는 것이 좀 성가시긴 해도 속으로는 얼마나 시원할까 몹시 부럽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엄숙하게 행동해야 할 자리에서는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주례 앞에 선 신부가 갑자기 천정을 멍하니 노려보다가 ‘에취’하고 재채기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감정의 극을 경험하는 재채기 말고도 또 한 가지가 있다. 섹스를 할 때 사정 직전의 절정감, 영어로는 클라이맥스다. 섹스의 절정감과 재채기는 분명 비슷한 데가 있다. 


 첫째 둘 다 그것들이 일어나는 순간에 짜릿, 아득하고 구름 위를 둥둥 떠가는 것 같은 망아감(忘我感)이 존재한다. 재채기는 섹스의 절정감보다 시간으로는 더 짧지 싶다. 섹스의 절정감은 2~3초는 되지만 재채기는 0.1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콧속의 간질간질에서 거의 동시에 터지는 ‘에취’로 끝난다. 


 둘째, 둘 다 코카콜라를 마실 때처럼 뒤에 남은 여운이 그리 길지 않다. ‘에취’ 뒤에 오는 마음의 고요와 안정은 내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상시로 돌아온다. 이에 반해 섹스의 절정감은 여운이랄까 파장이, 특히 여자의 경우, 좀 더 길다는 주장이 있다. 


 셋째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나 섹스의 절정감이나 그것을 느끼는 감각적 쾌감은 이명(耳鳴) 처럼 본인 이외에는 느낄 수가 없다.


 조물주에 탄원서를 낸다고 하면 나는 인간에게 재채기의 ‘에취’ 시간을 10배로 늘려주고 섹스의 절정감도 20배 정도 더 늘려달라고 하고 싶다. 아, 섹스의 즐거움은 봄꽃 지듯 가버렸다. 늙어서 재채기가 줄어든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내 재채기 마일수(mileage)는 아직 좀 남아있지 싶다. 하루종일 앉아서 재채기를 하고 또 하고 평생 할 재채기를 한 자리에서 다 할 수는 없을까? 권투나 레슬링 같은 흥분과 긴장이 높은 운동은 늙은이들의 심장에 무리가 가니 가급적 피해라,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해라,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가. 


 옛날 같으면 이런 충고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천명(天命)을 거역하고픈 욕심 때문에 이런 충고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내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랴? 재채기나 하고 또하고, 재채기 하는 기분으로 살며 망아(忘我)의 상태로 살아가고 싶다.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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