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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두 켤레
leed2017

 

 P교수는 나와 동갑내기로 그가 태어난 곳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 깊고 물 맑은 S고을입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내 수필집 한권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교수 휴게실 탁자 위에 놓여있던 내 수필집 ‘꽃피고 세월가면’을 우연히 집어들게 되어 내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시내 서점에 가서 나의 다른 책 한권을 사서 읽고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더군요. 대단한 영광입니다. 내가 인편으로 보낸 ‘꽃다발 한아름’을 읽고 난 후 그가 쓴 책 2권을 보내왔더군요. 그는 나에게 자기 아버지 어머니 묘비를 써달라고 하여 용비어천가체로 써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P교수가 보내온 책을 이리 뒤적이고 저리 뒤적이다가 우연히 정(丁)일권 장군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정(丁)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임과 동시에 충격적이라 그 얘기를 자세히 적지는 못하나 여기에 간추려 옮겨 보겠습니다.

 

 정 장군은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발꿈치에 큰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다녔답니다. 같은 반 여학생들이 이것을 보고 늘 놀리곤 했는데 어느 날 그 반 여학생 하나가 소년 정일권에게 양말 두 켤레를 선사했답니다.

 

 학생들은 졸업을 해서 교정을 떠났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학생들은 중학,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을 갈 때가 되었습니다. 양말을 선사한 여학생은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청년 정일권은 군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몇 년 후 6.25사변이 터져 정일권은 혁혁한 무공을 세울 기회가 오고 드디어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루는 그가 사무실에서 어딜 가려고 지프(jeep)를 타고 정문을 막 나가려는데 당시 보초를 섰던 병사가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답니다. 아주머니는 보초병에게 간절한 표정으로 무슨 부탁을 하는 것 같은데 보초병은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보초병 말이 “이 아주머니가 벌써 이틀째 계속 와서 총장님을 뵙게 해달라고 졸라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정 장군은 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와서 그 아주머니를 불러들였답니다. 정 장군 앞에 선 여인은 옛날, 옛날, 그 까마득한 옛날, 자기에게 양말 두 켤레를 준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지 않습니까.

 

 이 아주머니의 말이 자기 남편은 세브란스병원 의사인데 6.25 사변으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부상당한 인민군들을 그야말로 사명감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치료해 주었답니다. 이 일로 김일성으로부터 감사장도 받았다지요. 얼마 후 서울을 수복한 국군들이 의사의 사무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감사장을 발견, 빨갱이로 몰아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이틀 후면 사형을 집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정 총장은 당시 군에서 제1의 권력자로 꼽히는 김창룡 헌병대장에게 전화를 하고 양말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튿날, 김창룡 대장의 부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하는 말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의사는 죽여도 되고 안 죽여도 된다”며 남 말하듯 가볍게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의사는 아내의 품 안으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죽여도 좋고 안죽여도 좋다”는 것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지요. 내 생각에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목숨은 구하고 누구의 목숨은 구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인민군이라고 해서 병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의사라면 반공투사 애국자이기 전에 휴머니티를 잃어버린 사람이니 그는 의사로 불리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지요.

 

 의사는 치료를 받을 사람이 임금이건, 신하건, 주인이건, 노예건, 동지건, 적이건 간에 생명이 얼마나 존엄하다는 것을 알고 그 생명보전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톨스토이(L. Tolsstoi)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보면 침략군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를 포위하여 침략자와 방어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긴장 속에서도 배고픈 적군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휴머니티(Humanity)의 본질입니다.

 

 모스크바를 에워싸고 있던 프랑스 군대가 철수한지 10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배고픈 인민군에게 밥 한그릇이라도 줬다가는 적을 도왔다는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흑과 백이 갈라진 사회, 한번 실수를 했다가는 정황 참작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망치로 내려치는 형벌이 내리는 가혹한 사회에서는 위대한 예술작품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이토록 사상의 담장이 높고 엄격해서 잘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사회에서 어찌 위대한 소설, 위대한 시(詩)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양말 두 켤레가 아니었으면 이 세브란스 의사는 사형을 당했을 것이고 그 억울한 혼(魂)은 오늘도 구천(九天) 어디를 떠돌고 있을 것입니다.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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