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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곱던 양자
leed2017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 다 늙었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줄 알으실까

아모나 내 형용 그려다가 님의 손대 그리고저

 

 청춘에 곱던 내 모양이 임 때문에 이 꼴이 되었네(다 늙었네). 지금 임이 나를 보신다면 나인줄 알아보실까? 아무라도 좋으니 나의 이 꾀죄죄한 꼬락서니를 그려다가 임에게 드렸으면 좋겠네.

 

 위의 시조에서 님은 남녀 간의 애정 속의 님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자기의 주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싶다. 이를테면 물러간지가 오래되는 신하가 자기의 옛 주인, 임금님을 다시 만난다면 임금님이 자기가 누구인줄 알아보겠는가. 걱정하는 군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를 지은 강백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설봉()이다. 인조 5년에 과거에 급제, 정언, 장령을 지내다가 강빈옥사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하였다가 삭탈관직을 당했다. 2년 뒤 대사간이 된 후 다시 강빈의 신원을 상소했다가 이번에는 청풍군수로 좌천되었다. 재직 중에는 청백리로 이름을 남겼으며 온양의 정퇴서원, 청주의 기암서원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 ‘설봉집’이 있다.

 

 강빈옥사란 무엇인가? 강빈은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8년 동안 있다가 귀국, 아버지 인조의 미움을 받아 학질에 걸려 임금의 의사로부터 침을 맞다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의 부인 강씨를 말한다. 아무일 없이 그대로 있었으면 소현세자가 17대 임금이 되고 강빈은 왕비가 될 신분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은 그녀의 운명을 뒤틀어 놓았다. 청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있던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삼전나루에서 청에 항복을 하고 청은 그의 아들 셋(소현, 봉림, 인평)을 볼모로 청에 데려갔다. 인평은 그 다음해에 돌아오고 소현과 봉림은 7년을 더 있다가 돌아왔다.

 

 청에 가있는 동안 세자 소현은 청의 문물을 취하여 그 문물을 하루라도 빨리 조선에 도입하려는 욕심으로 많은 청의 지식인, 학자들과 만나며 친청정책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많이 했고, 부인 강씨는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을 조선으로 돌려 보내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 이 부부는 ‘조선의 대사관’으로 불릴만큼 청과 조선의 관계에서 여러가지 일을 도왔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 있던 김자점과 후궁 조씨는 짝이 되어 궁녀들을 잡아다가 국문을 했다. 아무 죄가 없는 강빈의 궁녀들은 강빈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 모두 14명이 죽었다.

 

 인조는 또 강빈의 궁녀 5명과 주방나인들을 죽도록 고문했다. 그 다음에 인조는 강빈과 강빈의 친정오빠 둘, 강빈의 친정 어머니, 그러니까 인조 안사돈까지 죄없는 죄를 씌어 모조리 사약을 내렸다. 소현세자의 세 아들도 제주도에 유배를 보내서 1년이 못돼 다 죽고 말았다. 며느리 강빈과 그녀의 주위 인물, 이를테면 친정 오빠들, 친정 어머니와 수많은 궁녀와 나인들을 죽인 것을 강빈의 옥사라고 한다.

 

 설봉은 인조가 자기 며느리 강빈을 죽이는 것에 용감히 반대 의견을 던진 것이다. 강빈 옥사 때 사약으로 죽은 강빈 주위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 사약은 어떤 약인가?

 

 사약()이란 “임금이 독약을 내린다”는 뜻이며 형법 교과서 형전(刑典)에는 나와 있지 않는 약이다. 왕족이나 고등관리, 혹은 사대부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신분을 생각해서 교수형 대신 독약을 내려 자살하게 하는 형벌이다. 주로 비상(砒霜)을 재료로 썼으며 생금(生金), 생청(生淸), 부자(附子), 게의 알 해란(蟹卵) 등을 섞어서 썼다 하나 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니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선인교 내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니

반천년 왕업(王業)이 물소리 뿐이로다

마이야 고국 흥망을 물어 무엇 하리오

 

 지은이 삼봉(三峯) 정도전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시조에서는 고려에 대한 일종의 아련한 향수마저 배어드는 것 같다.

 

 자하동은 개성 북쪽에 있는 경치좋은 산, 반 천년이란 고려 475년이 대충 500년이 된다 해서 쓴 말이다. 나라의 흥하고 망하는 것을 흐르는 물소리에 비추어 인생무상 내지 제행무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시조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흥하고 망하는 것이 운수가 정해져 있는 법. 고려왕조의 대궐터인 만월대도 이름없는 들풀로 덮혀 있구나. 475년(대략 500년) 이어온 고려왕업도 이제는 목동의 피리소리로 남아 있을 뿐이니 석양에 지나가는 객이 슬퍼서 눈물을 금치 못하겠구나. 무척 슬픈 회고의 시조다.

 

 위의 시조를 지은이는 고려 말, 조선초의 은둔지사 운곡(耘谷) 원천석으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고려가 망하자 원주 치악산에 들어가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전한다.

 

 태종 이방원이 임금이 되기 전에 운곡에게 배운 적이 있어 그가 왕위에 오르자 방원은 옛 스승 운곡에게 벼슬을 주려고 여러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정희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는 L씨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 이 인연을 끄나풀로 해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의 핵심에 어른거리는 것을 본 것이 생각난다. 운곡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품이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던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르르랴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눈에 쌓여 구부러진 대나무를 누가 굽었다고 하던고. 그렇게 쉽사리 굽을 절개라면 눈 속에서 푸른채로 남아 있을까. 아마도 추위를 이겨내고 절개를 지킬 이는 대나무 너 뿐인가 하노라. 원척의 작품이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위의 시조 작가는 본관은 한산, 목은(牧隱) 이색이다. 목은은 원나라에 가서 성리학을 공부한 후 돌아와서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고 우왕의 사부가 되었다. 명륜당에서 정몽주, 김구용 등과 학문을 강론했다. 태조 이성계가 여러번 불렀으나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故山)에 묻을 뿐’이라며 끝내 사양했다. 저서로는 ‘목은집’이 있다.

 

 위의 시조 3수에서는 고려에 대한 충절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는 야은 길재, 운곡 원천석,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이헌, 성여완 등은 국운이 다한 고려 왕조를 그리워하며, 왕조를 잃은 비분강개한 심사, 일사불란한 충절을 노래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선이 517년 동안 있다가 망해도 그것을 슬퍼하거나 그리워하는 노래는 무척 드물다. 이상한 일이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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