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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내 뜻이요
leed2017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임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며 울며 가는고

 

 위의 노래는 조선 중기 송도 기생 황진이가 지은 노래로 전해온다. 조선 시대 때 남녀 간 사랑이나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노래는 남성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양반집 사모님들은 점잖은 체하면서 이런 노래를 짓고 싶어도 감히 지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남녀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상사의 노래는 기녀나 ‘막가는 인생’을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신분이 낮은 여성들의 몫. 대표적인 예로 송도의 황진이, 전라도 부안의 매창, 강원도 강릉의 홍잠, 함경도 종성의 홍랑 등이 꼽힌다.


 황진이는 얼굴이 미인인데다가(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한다.) 시를 짓는 재주 역시 뛰어났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고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 갖다 붙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죽기 전에 “내 시체는 관에 넣지 말고 동문 밖에 내버려서 날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여 방탕한 여인들의 귀감이 되게 하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풍류객 하나가 어느 날 밤 시체를 거두어 장단에 있는 어느 고개 위에 묻어주었다 한다.


 황진이는 마음에 끌리는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가 자기에게 접근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능동적으로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수작을 거는 대담성도 가졌다 한다.(나는 이런 여자가 좋다.) 왕족 벽계수를 유혹하려고 지은 다음 시조 한 수는 내가 초등학교 때 뜻도 잘 모르며 외웠던 시조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기억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푸른 산 속을 헤집고 흘러가는 시냇물아(이것은 종친 벽계수를 빗댄 말이다.) 빨리 간다고 자랑하지 말아라, 한 번 바다에 이르면 이 산골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지 않느냐. 휘영청 밝은 달이(황진이의 예명이기도 하다.) 빈 산에 가득하니 잠깐 쉬어가면서 천천히 간들 어떻겠느냐. 이 유혹에 안 넘어갈 조선의 사나이가 어디 있을까. 아무리 종친에다가 보통 여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소문이 자자한 벽계수라 한들 이 멋있는 황진이의 유혹에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황진이의 유혹 경력을 잠시 살펴보자. 그는 10년 동안 벽(壁)만 보고 수도하던 지족(知足) 선사를 찾아가서 유혹하고 드디어 그를 파계시켰다고 한다. 그 다음 먹잇감으로는 이름 높은 도학자 화담(花潭) 서경덕, 그를 찾아가 유혹하였으나 뜻을 못 이루고 두 사람이 선생과 제자 사이로 매듭짓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 서화담 유혹 사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유혹 사실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이를 처음 안 사람은 황진이과 서화담 두 사람뿐이다. 당시에 CCTV 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틀림없이 이 둘 중 하나가 세상에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서화담같은 도덕군자가 미스 황이 자기를 유혹해 왔는데 자기가 거절했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야기를 세상에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황진이였지 싶다. 자기가 서화담을 유혹했다 해도 미스 황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자기 몸값이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서화담에 있었다. 당시 서화담은 나이가 50을 넘었을텐데 옛날에 비해 낡은 연장,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낡은 가죽침을 가지고 어찌 황진이의 성난 파도같이 밀려오는 청춘을 감당할 수 있었으랴. 젖 먹던 힘을 다해 애를 썼으나 성공을 못한 화담은 “이제 그만 우리 선생과 제자 사이로 지내자”고 제안을 했지 싶다.


 화담같은 위대한 성현을 두고 연장이 낡았느니 가죽침이 어떻니 하는 말을 하고 말았는데 어느 삼류 붓쟁이의 잡담으로 봐주면 고맙겠다.


 황진이의 시조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도 5수가 넘지만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한 수만 여기 더 적는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물에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더라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산.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니 옛물이란 있을 수 없도다. 사람도 물과 같아서 한 번 가면 다시 오지는 않더라. 산과 물을 인간사에 비추어 노래한 황진이의 절창이다.


 화류계에 몸 담고 일생을 보낸 황진이의 과거 경험으로 보아 한 번 왔다가는 다시 오지 않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남자는 다 그런 것이라고 일반화 하는 것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한 번 가고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어찌 남자들 뿐이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 산봉우리나 강물, 대자연도 오랜 시간으로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 않는가.


 조선 성종-연산군 조의 선비 읍취헌(?翠軒) 박은의 시구처럼 ‘만사야 한바탕 웃음거리지. 영겁에야 청산도 뜬 먼지일 뿐(萬事不堪供一笑靑山?世只浮埃)’인 것을 (20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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