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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송이
leed2017

 

 작년 여름에 대구에서 내 강의를 들었던 Y로부터 몇 주 전에 긴 사연의 편지 한 장을 받았다. Y는 대구 시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으로 석사과정을 마치느라 하계 학교에 와서 내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이자 동시에 학생 신분의 이중 역할을 감당하느라 일 년 내내 하루도 쉴 날 없이 바쁘게 보내는 사람이었다. 절후 안부를 묻자 다음과 같은 사연을 늘어놓았다.


 “. 올해 새 문교부 장관이 들어서고부터 교사들 촌지(寸志)를 받는 데 강한 쐐기를 박고 있어요. 일부 교사들이 문책을 받기도 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잘한다 싶어요. 저희 학교는 스승의 날에도 학생들에게 일절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학생들이 주는 자잘한 선물들을 집에 와서 하나씩 풀어보고 적힌 메모를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제는 이런 재미는 없었어요. 그래도 작년에 담임했던 학생들이 교무실에 우르르 몰려와서 편지를 주고 가서 무척 고맙고 기뻐서 몇 번이고 읽었어요. ”


 나는 Y의 편지를 읽으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서울이나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 사람들 때문에 소도시나 농어촌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아직은 대도시같이 금전과 치맛바람이 교실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한 견해인 것 같다. 거기라고 금전이나 치맛바람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아직은 시골의 교육현장은 큰 도시처럼 오염이 된 곳이 아니다.


 대도시 몇 군데서 정도를 벗어난 교사와 학부모의 행위를 바로 잡는다고 스승의 날 선생님 가슴에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상식(常識)'에 어긋난,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의 어리석고 용렬한 짓이다.


 우리 사회가 썩었다지만 그 썩은 정도로 말하면 아직은 교육계가 가장 덜 썩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사 작은 도시와 농어촌이 큰 도시같이 금전과 치맛바람이 교정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를 허락하지 않는 그런 융통성 없는 시책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을까?


 부모 생일 날에 자식들이 선물한다. 그것을 받는 부모 마음은 선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무한히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것이다. 말로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니, 좀 낡은 말이지만 '사부(師父) 일체'를 내세우며 정작 스승의 날에는 꽃 한 송이도 선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린 머리 속에 일어나는 한 가닥 의문의 꼬리는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아동에게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비정상적인 교육이 되기 쉽다고 본다. 아버지 생일이 가까워져 오면 엄마가 "이틀만 있으면 아빠 생일이다" 하며 넌지시 선물 준비할 것을 귓속말로 일러주면서 정작 스승의 날에는 꽃 하나, 감사의 쪽지 하나 선생님께 드리지 못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어린이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이 썩었다, 교육이 썩었다 하는데 썩은 것은 교육이라기보다 어른사회인 것이다. 촌지(이 말이 무슨 말인가는 사전을 뒤져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를 주는 것도 어른이요, 받는 것도 어른이다. 가져온 선물을 받는 사람이 교사라고 해서 교육이 썩었다고 하면 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내가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사실로 크리스마스 때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께 초콜릿 같은 선물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한 학교가 있었다. 이유인 즉 선물의 단위가 점점 커지거나 초콜릿 상자 밑에 돈이 깔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혼으로 자기를 낳은 엄마와 살지 않는 아이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긍정적인 결정이냐 하는 것은 시빗거리가 되겠으나 어디까지나 불우한 환경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도 교육국에 따라 다른 것이지 "캐나다는 이렇게 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몇몇 학교에서 촌지가 왔다 갔다 하므로 시골 학교에서 꽃 한 송이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독재가 아닐까?


 나는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도 선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공문 대신에 그 날만큼은 선생님의 가슴에 큼직한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도록 하자는 권유를 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썩은 교육이 되는 것일까? (198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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