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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
kwangchul

 

10,600Km. 서양으로 불리는 토론토공항에서 동양으로 대표되는 인천국제공항까지 비행거리이다. 한시간에 약 840Km씩 비행하면 13시간 소요된다. 토론토에서 반나절이면 세계 어느 공항보다 깨끗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세계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조국의 발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외국 것이면 모두 선진으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자랑스런 조국이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에 선두다. 50여 년을 외국에서 살며 외국인 국적을 가졌지만 아직도 한국인 티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조국의 눈부신 발전보다 타오르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고국에 와서 40여 일 가까이 묵고 있던 곳은 동대문 동묘역 부근이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약 3년간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당시 숭인동 부근에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어렸을 적이지만 당시에도 왜 관운장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곳이 동묘이다.

서울에서 주말에 사람이 가장 바글바글거리는 곳을 추천하라면 서슴없이 동묘역 구제시장을 추천하리라. 1천 원짜리 옷부터 모피, 골동품, 운동화, 각종 물건이 거리에 진열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발에 채이며 그냥 몰려다닌다. 그곳 한가운데 동묘, 관운장을 모신 사당이 있다.

관운장 하면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떠올리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적벽대전에서의 패망으로 도망가던 조조를 살려서 보낸 관운장의 내면의 끈끈한 인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촉의 재상 제갈량은 전장에서 패해 도망가는 조조를 화용도에서 기다려 죽이라고 관우에게 명했다. 하지만 관우는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를 그와의 과거 인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보냈다.

여기서 가장 큰 의문은 왜 제갈량이 하필 그런 인연이 있는 관운장을 화용도로 보냈을까 하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해 제갈량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그 후에 하늘의 지시를 기다린다는 뜻인 "수인사 대천명"으로 대답을 하였다. "진인사 대천명"과 같은 이 말의 진의는 뼈저리게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성공을 하면 그것도 결국 천명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최선을 다한 후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는 자세, 동양의 예지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따라서 천명이라 할 때 크리스천이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인 하느님에게 기원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동양은 확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한 후 기다리는 자세는 당연히 그 자신이 이미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선 초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양의 철학이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동양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늘의 명령을 기다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되새겨 볼수록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는 말로도 다가온다.

지난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며 외국 국적을 취득한 캐나다인이 되어 고국을 방문하였다. 50여 년을 외국 땅에서 살았지만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함께 자랑스런 한국인이라 자처하며 살아왔다.

한국인이라는 자체가 이민 1세로서 고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원동력이 되었다. 고국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비록 여행자의 입장이라 할지라도 그냥 한국사람이고 싶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고국을 보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허기진 느낌을 가졌다. 어떤 때는 내가 고국에 사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고국의 발전상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 위용보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그리운 태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 목소리를 관운장을 모셨다는 동묘 인근의 시장 인파 속에서 찾으려 했다. 밀려다니는 군중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80을 바라보는 또래 노인들의 목적 없는 방황이었다.

인생의 마무리에서 목적지 없는 방황. 그러나 종착지로 가는 담담한 자세. 어길 수 없는 하늘의 부름 천명. 그 천명에 버금가는 해답을 얻는 길은 죽을 때까지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실천인 사랑이든 자비든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요구하지 말자. 13시간 걸려 토론토로 돌아오며 열심히 또 열심히 다짐해 보았다. 수학여행에서 집에 돌아오는 기쁨을 간직한 어린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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