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서광철 칼럼

kwangchul
A69E62E1-091C-45D0-BAAF-DF98CF890356
93405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59
,
전체: 7,207
미시사가 거주
메뉴 열기
kwangchul
kwangchul
96669
19320
2022-06-23
어머니의 염원

 

 5월 8일, 고국의 어버이날이다. 캐나다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구분되어 있지만 한국은 매해 이 날을 어버이날로 고정시켜 부모님을 공경하게 한다. 한국에 외서 내가 거주하는 동묘역 부근의 황학교 다리 밑 청계천 길에서 종로 쪽으로 가다 보면 종로5가 부근 평화시장 쪽으로 ‘전태일 거리’가 보인다. 전태일, 순간적으로 많이 귀에 익은 이름이라 기억을 더듬는다.

 1960년대 말 재단사 모임을 이끌며 노동기준법의 개선을 호소하다 분신자살하였던 이름이 떠올랐다. 내가 74년 캐나다로 이민하기 전 일이었다. 구글을 검색해 보았다. 48년생인 전태일은 봉제 보조사로 평화시장에서 건습받던 2년 만에 재봉사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승진보다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봉 자체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성격이 매우 밝고 남달리 의협심이 강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성격의 전태일에게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시들어가는 나이 어린 여공들의 비참함을 그냥 대충 넘길 수는 없었나 보다.

 그는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현장에서 파악한 문제점들에 고심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살로 세상에 마지막 절규를 던진다. 그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2022년 5월 8일. 내가 한때 좋아하였던 시인 김지하가 이 세상을 떠났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중략)--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표 저항시인이었던 그는 1991년 5월 중앙일보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 하나’의 칼럼으로 진보진영과 적대관계를 갖게 된다. 당시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경찰에 맞아 숨지자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이어지고 있던 시절이다.

 고인은 생명사상을 강조하면서 목숨을 버리는 민주화 시위를 ‘저주의 굿판’에 비유하며 죽음의 찬미를 비판하였다.

 태평양 전쟁 자살특공대인 일명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출전명령만 기다리던 16명의 한인 학도병 출신 군인들이 있었다. 항공기로 적 군함에 충돌하여 타격하는 전술로 일본군부의 최악의 발악이자 인명경시의 역사상 최악의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들 16명은 총 24만 명에 달하는 강제징병 동포들과는 달리 한국과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버려진다. 왜냐하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도 한국인에게는 알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진실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1만8천여 명의 가미가제 특공대원 중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가 있었다. 장정부씨다. 장씨는 고등학생이었던 19살 때 차출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8명의 출격조로 명령을 대기하던 중 해방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가미가제, 그것은 일본군부의 광기가 저지른 저주의 ‘죽음의 굿판’이었다.

 2022년 5월 8일 김지하 시인은 81세로 고인이 되었다.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는 고인의 칼럼에 대해 10년 뒤 해명 아닌 해명을 한다. 실천문학 여름호에서 그의 칼럼과 관련해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고, 젊은이들 가슴에 아픈 상처를 준 것 같아 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며 사건의 기록이다. 따라서 상승과 하향의 끊임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든 어머니의 눈물어린 염원이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살아생전 이 말을 되풀이 하였다. "태일이의 죽음을 따르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 한다."

 엄마에겐 자식의 살아있음이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효도인 것을!

 2022년 5월 8일 어버이날 고국에서, 타는 가슴속 목마름으로 이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6428
19320
2022-06-16
천명

 

10,600Km. 서양으로 불리는 토론토공항에서 동양으로 대표되는 인천국제공항까지 비행거리이다. 한시간에 약 840Km씩 비행하면 13시간 소요된다. 토론토에서 반나절이면 세계 어느 공항보다 깨끗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세계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조국의 발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외국 것이면 모두 선진으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자랑스런 조국이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에 선두다. 50여 년을 외국에서 살며 외국인 국적을 가졌지만 아직도 한국인 티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조국의 눈부신 발전보다 타오르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고국에 와서 40여 일 가까이 묵고 있던 곳은 동대문 동묘역 부근이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약 3년간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당시 숭인동 부근에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어렸을 적이지만 당시에도 왜 관운장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곳이 동묘이다.

서울에서 주말에 사람이 가장 바글바글거리는 곳을 추천하라면 서슴없이 동묘역 구제시장을 추천하리라. 1천 원짜리 옷부터 모피, 골동품, 운동화, 각종 물건이 거리에 진열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발에 채이며 그냥 몰려다닌다. 그곳 한가운데 동묘, 관운장을 모신 사당이 있다.

관운장 하면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떠올리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적벽대전에서의 패망으로 도망가던 조조를 살려서 보낸 관운장의 내면의 끈끈한 인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촉의 재상 제갈량은 전장에서 패해 도망가는 조조를 화용도에서 기다려 죽이라고 관우에게 명했다. 하지만 관우는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를 그와의 과거 인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보냈다.

여기서 가장 큰 의문은 왜 제갈량이 하필 그런 인연이 있는 관운장을 화용도로 보냈을까 하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해 제갈량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그 후에 하늘의 지시를 기다린다는 뜻인 "수인사 대천명"으로 대답을 하였다. "진인사 대천명"과 같은 이 말의 진의는 뼈저리게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성공을 하면 그것도 결국 천명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최선을 다한 후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는 자세, 동양의 예지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따라서 천명이라 할 때 크리스천이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인 하느님에게 기원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동양은 확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한 후 기다리는 자세는 당연히 그 자신이 이미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선 초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양의 철학이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동양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늘의 명령을 기다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되새겨 볼수록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는 말로도 다가온다.

지난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며 외국 국적을 취득한 캐나다인이 되어 고국을 방문하였다. 50여 년을 외국 땅에서 살았지만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함께 자랑스런 한국인이라 자처하며 살아왔다.

한국인이라는 자체가 이민 1세로서 고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원동력이 되었다. 고국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비록 여행자의 입장이라 할지라도 그냥 한국사람이고 싶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고국을 보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허기진 느낌을 가졌다. 어떤 때는 내가 고국에 사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고국의 발전상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 위용보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그리운 태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 목소리를 관운장을 모셨다는 동묘 인근의 시장 인파 속에서 찾으려 했다. 밀려다니는 군중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80을 바라보는 또래 노인들의 목적 없는 방황이었다.

인생의 마무리에서 목적지 없는 방황. 그러나 종착지로 가는 담담한 자세. 어길 수 없는 하늘의 부름 천명. 그 천명에 버금가는 해답을 얻는 길은 죽을 때까지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실천인 사랑이든 자비든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요구하지 말자. 13시간 걸려 토론토로 돌아오며 열심히 또 열심히 다짐해 보았다. 수학여행에서 집에 돌아오는 기쁨을 간직한 어린 아이처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6286
19320
2022-06-09
여행자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기

 

 4월 27일 아침, 지난밤 밤새 기침을 하며 잠을 설쳐 덩달아 처도 잠을 못 자게 하였다.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닐까 걱정이 되어 Rapid Test를 하였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 한시름 놓았다.

 이곳 한국에서 만나기로 한 분에게 전화하여 아무래도 만나기가 힘들다고 전달하였다. 오후 3시쯤 전혀 차도가 없어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젊은 의사였는데 아주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한다. 이곳에 온지 5일 만이다. 청천벽력이다.

 4월 27일 오늘부터 5월 4일까지 정부 지침에 따라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4월 28일 2번째 날. 진료비 3만3580원, 조제약값 3만8400원, 한국의 우수한 방역 체계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의사의 신속한 정부에의 보고, 그에 따른 정부의 유효한 절차. 우선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구분하여 처리한다.

 Covid-19 확진 후 이틀째.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 일반관리군으로 나를 분류하여 주었다. 집중관리군보다는 나은 결과라 해도 외출금지는 마찬가지다. 신속하게 대응하는 보건소 직원들이 믿음직스럽다.

 고국에 가면 무엇을 하며 지내야 좋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까? 전염성이 창궐하고 있는 대도시에 여행을 와 확진자가 되는 것만큼 더한 추억거리가 있을까.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11층 창문을 내다보면 남산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갈 수 없다. 적어도 7일 이상은 격리되어야 하고 그때까지 회복이 안돼 PCR Test가 양성이면 음성이 나올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워낙 큰 빌딩들이 둘러싸여 있는 남산은 작게만 보인다. 그 남산도 내가 갈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귀신아 내 몸에서 훌쩍 나가라.

 Covid-19 격리 3일째. 좀 차도가 있는 것 같이 여겨져 Rapid Test를 해보았다. 예상했던대로 양성이다. 많이 회복된 것 같은데 아직은 전염병이 내 몸에서 나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흡사 기생충처럼, 코로나여 나 너 싫어한다. 내 몸에서 나가주렴.

 6일째, 내일이면 해방이다. 자신만만하게 Rapid Test를 했다. 아뿔싸, 아직도

양성이다. 오! 하느님. 우스갯소리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라 여기 써본다. 어떤 모임에서 바자회를 하게 되어 집에 필요없는 물건을 가져오라 하니까 모두들 남편을 데려왔다 한다. 남편들이여, 바자회에 실려가 팔리기 싫으면 Covid-19에 걸려라. 그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Covid-19 확진 후 10일째. 몸에 아무런 코로나 바이러스 증세가 없다. 그래도 Rapid Test 하여 보면 매번 그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다.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하면 매번 양성이 나올 것 같아 테스트하기가 두렵다.

 보건소에서도 매일같이 할 필요는 없고 며칠 후에는 음성으로 나올 것이라는 충고가 있었다. 기다리는 거다. 한국에 오기 위해 2년 반을 기다렸는데 그까짓 며칠이야. 헌데 아까운 시간이 간다. 이러다 그냥 캐나다로 돌아갈 것 같아 약간은 불안하다.

 11층 호텔 창문을 열어본다. 남산은 거기 그대로 서서 나를 부른다. 어서 음성 되어 나를 안아달라고. 청계천을 걷다! 아직은 Covid-19 양성이라 마스크를 하고 토론토 랩터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니 완전히 스타워즈 차림이다. 내가 있는 곳 동묘 근처에서 수표교까지 갔다 오면 약 만보가 된다.

 맑은 개천의 뜻인 청계천에는 고기들이 뛰어 논다. 낚시 금지구역이다. 팔뚝만한 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옛날 중학교 때의 청계천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다니던 학교가 동대문에 있어 매일같이 걸어 지나간 곳이었다. 그 때도 청계천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고 많은 서울시민의 생활 터전이었다. 비록 하꼬방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엔 모든게 있었다. 물론 헌 책방도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그때의 어린이들과 지금의 어린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물질적으로는 현대의 아이들이겠지만, 묻는 것 자체가 바보스럽지만 정말 그럴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어린이 날이 그 어떤 세대보다도 필요한 시대에 살았다. 하지만 시대의 요청대로 버려진 세대였다. 그러나 바쁜 어른들의 생존의 투쟁 틈에서도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끈질긴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승리자였다. 아스팔트가 귀한 황톳길에서 먼지 속에 피어난 민들레였지만 우리는 분명 생존자였다.

 ‘아빠, 엄마의 찬스’를 적게 받은 승리자였다. 5천 년의 황톳길의 비밀, 우리는 한정판 그렇게 살아온 마지막 세대다. 이제 마무리 단계다. 한정판답게 고고하게 얼굴을 들고 마지막 길까지 우리의 길을 걷자.

 (여행 중 일기장에서)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974
19320
2022-05-26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며 종교자유를 위한 버지니아 헌장의 필자, 그리고 버지니아대학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 여기에 묻히다." 미합중국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 묘비명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대통령이었다는 구절은 빠져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묘비명으로 대통령이었다는 것보다는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며 대학 창립자였다는 것에 비중을 둔 문장이다. 대단한 경력이다.

 미국은 캐나다와 달리 미국 속에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오면 용광로와 같이

한 덩어리로 용해시켜 영어권 문화로 흡수해버린다. 그러나 흑인과의 관계에서는 한 방울이라도 흑인 피가 섞여있으면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에게 있어 흑인의 존재 이유는 사고 팔 수 있는 노예여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인으로 태어난 혼혈 흑인은 생김새가 완전 백인 이더라도 백인 사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2천년 이상 서구사회를 지배하여 왔던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이다. 구세주인 예수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였지만 기독교 사회는 예수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그 평등이라는 단어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아우슈비츠의 팻말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가 시사하는 것도 유태인은 그리스도를 인정 안 하였기에 신 앞에서 평등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노동으로라도 그 자유롭지 않은 정신을 단련함으로써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억지 논리가 가능할 수 있었다.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계몽주의가 출연한 18세기 유럽에서는 노예제도를 금지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많은 노동이 요구되는 신대륙 미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비록 기반이 철저한 기독교 사회인 미국이라 할지라도 흑인 노예의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는 불문율이어야만 하였다.

 "셸리 헤밍스"라는 혼혈 흑인 노예여성이 있었다. 제퍼슨의 아내가 결혼할 때 데리고 온 몸종이다. 그런데 헤밍스는 제퍼슨 아내의 이복동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제퍼슨의 장인이 여성 노예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기 때문이다.

 제퍼슨의 아내는 10년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헤밍스는 집안일을 돌보게 되었다.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아무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 비밀은 1998년 11월 5일에 와서야 밝혀지게 된다. 유전자 검사결과 헤밍스 후손의 유전자와 제퍼슨가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전자의 출현으로 200년 묵은 수수께끼가 풀렸다.

 하지만 제퍼슨은 생전에 자기가 아이들의 아버지임을 인정한 사실이 전혀 없다. 죽기 전에야 이들을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었을 뿐이다.

 인권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주장한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자의 행보로는 실망스러움을 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리스나 이태리는 서방세계 문명의 발상지이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을 여행하면 곳곳에 아직도 많은 유적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그런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게 한 지혜의 결정체를 보면 경탄을 하게 된다.

 그런 한편 마음속으로는 변변치 못한 장비를 가지고 이런 기적적인 유적들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들은 노예들이었다. 수많은 전쟁의 포로들은 잡혀와 노예가 되어 주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짐승처럼 살게 된다.

 그렇다. 고대문명은 노예가 있어 피어날 수 있는 문명이었다. 그래서 강한 나라는 끊임없이 주위 국가를 침략하여 전쟁을 통한 전리품과 노예의 획득에 혈안이 되었다. 18세기 들어서야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노예폐지의 기미가 보였지만 그것은 유럽의 경우였고, 신대륙인 아메리카 지역은 노예시장의 천국이었다.

 잔인한 백인 노예상인들은 흡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듯 한밤중에 아프리카의 촌락을 습격하여 남녀노소 구별 없이 납치하게 된다. 그들은 주로 미국 남부지역으로 끌려와 팔고 사는 노예가 된다. 그들의 후손이 미국의 흑인들이다.

 켸펄니크(Kaepernick)라는 미식 축구선수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49ers 소속 쿼터백이었다. 시합 전 국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국가를 부르는 순서가 있다. 그는 경례를 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자세를 연상케 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말하였다. 나는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국에 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입니다. 트럼프 정권시절 초창기 2016년에 있었던 일이다. 부메랑 효과다! 미국이 지고 갈 문제고 풀어야 할 숙제다.

 

 *참고: 부메랑 효과는 어떤 계획이 의도한 목적을 벗어나 행위자 측에 불리한 결과를 미치는 것을 말한다. 사필귀정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776
19320
2022-05-19
프로 스포츠

 

 

 북미의 프로 스포츠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무대이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그리고 캐나다가 자랑하는 아이스하키 등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꿈의 무대이다.

 한번 이름이 난 선수라면 천문학적인 숫자의 보수를 주며 서로 영입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된다. 2년 전 "로스엔젤레스 다져스"(L.A. Dodgers)의 소속이었던 투수 류현진 선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 Jays)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1년에 미화 20억, 4년 80억의 대형 계약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국 팬들에겐 실망의 뉴스였지만, 토론토 교민들에겐 대박이었다. 세계적인 한국선수가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꿈과 같은 일이 실현되었다.

 2년이란 세월이 팬데믹과 함께 지났다. 토론토스타에 로지 디마노(Rosie Dimanno)란 66세의 여자 기자가 있다. 1975년 라이어슨대학을 졸업한 후 토론토스타에 입사하여 거의 50여 년을 한 신문사에서 근무한 토론토스타의 간판 기자다.

 주로 스포츠 기사를 담당하였지만 정치, 사회, 어느 분야 등 그녀가 쓴 칼럼은 권위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은 영향력이 있다.

 류현진 선수는 작년 시즌 초반 기록이 좋아 팀의 에이스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어가서는 기력이 쇠퇴했는지 성적이 많이 저하되었다.

 작년 9월이었던가 그는 양키스타디움 원정경기에서 7회까지 거의 완벽한 투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토론토스타 스포츠면 제일 상단에 그녀는 류현진 선수가 모든 사람의 우려를 종식시키는 경기를 펼쳤으며 류현진은 류현진다웠다고 극찬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모든 우려를 한방에 날리는 후련한 기사였다.

 지난 4월16일 류현진 선수의 금년 두 번째 등판 경기가 있었다. 더 많은 실점을 한 첫 번째 경기보다 내용면에서는 더욱 참담한 경기였다. 50여년 스포츠기자 경력이 있는 로지 디마노의 혹평을 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류현진은 찰리 몬토요 감독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며 앞으로 그는 팀에서의 필요없는 선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비쳤다. 언변도 면도날이지만 그녀의 펜은 더 날카롭다. 평창올림픽 때도 선수단이나 기자단의 픽업 운영시스템을 비평한 경력이 있는 기자이기도 하다. (10년 전, 2012년 캐나다올림픽위원회는 10번의 연속 올림픽 담당기자였던 그녀에게 공로를 치하하여 감사장을 수여하였다.)

 농구나 아이스하키가 1년에 80여 경기를 하는 반면, 야구는 162 경기를 소화한다. 오늘 날짜로 10경기를 치렀다. 아직 152경기가 남아있다. 계획대로라면 선발투수인 경우 30여 번 더 투구할 기회가 있다.

 금년같이 스프링 트레인 시간이 짧은 경우 시즌 초반 부진은 노장 선수들에게선 흔히 있는 일이다. 류현진의 주무기는 변화구다. 그래서 컨트롤이 생명이다. 그의 주특기인 변화구가 제때 스핀을 타지 못하면 가운데로 몰려 쉬운 타구가 되어 버린다.

 프로 스포츠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정글이다. 구단의 신임을 얻기 위해선 류현진 선수가 빨리 슬럼프를 벗어나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여야 한다.

 나는 스포츠광이다. 이민 초 아이스하키의 스피디한 경기에 심취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좋아하던 팀인 몬트리올 선수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요즘도 전설의 하키선수 "기이 라프레오(Guy Lafleur)"의 플레이를 기억에 떠올리기도 한다.

 몬트리올 엑스포 야구팀의 경기도 바쁜 생활을 하는 와중이었지만 빠짐없이 시청한 경험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많은 스포츠를 눈코 뜰새 없이 시켰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는 예외였다. 경기는 관전하기에는 매력이 있었지만 백인들이 독무대를 이루는 스포츠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적응을 못해 마음고생을 할 것 같은 노파심의 발상 때문이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응원을 간 아버지가 더 안달이다. 팀이 경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관심 밖이고 오직 우리애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 애를 응원하기 위해 바빠 같은 팀 동료선수들의 경기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열렬한 팬이다. 거의 모든 경기를 시청하거나 가끔은 경기장을 가기도 한다. 보통은 그냥 경기를 관전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데에 주력한다.

 그런데 류현진 선수가 토론토의 선수가 된 후로는 그 루틴이 변하였다. 그가 투구를 하는 날은 나도 몰래 초긴장을 하게 된다. 꼭 내 아들이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불안감이 앞서며 초미의 관심은 팀의 승리보다 그날 류현진 선수의 투구 성적이다.

 류현진은 베테랑 프로 선수다. 받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을 담보로 내건 생존경쟁의 싸움에 절반 정도되는 액수를 1년 만에 벌 수 있는 선수다. 가치가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투자를 해 데려왔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알파고가 아니다. 희로애락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 토론토가 자신의 고향인 인천처럼 여겨져 스트레스 덜 받고 잘하기를 바란다.

 잘 할 수 있는 선수고 반드시 잘 해야 된다. 150여 경기가 아직 남았다. 요원한 길이다. 류선수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30번은 더 던지게 된다. 절반만 이기면 대성공이다.

 류현진의 건투를 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619
19320
2022-05-12
코나투스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계속해 존재하려 한다. <스피노자(1632-1677)>

 

 스피노자를 모르는 사람도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어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의 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스피노자를 잘 아는 학자들의 의견은 그가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의지가 있고,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그 존재의지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 비옥한 토지에서 자라는 사과나무가 있다. 이 사과나무는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렇다 해도 사과나무가 배나 복숭아를 생산해낼 수는 없다. 간단한 얘기다. 사과나무의 본성은 사과만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스피노자의 유대인으로서의 미래는 매우 고무적이었고, 랍비로 유대인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리라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24세가 되던 1656년 그의 운명을 전환시키는 큰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신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한 범신론적 그의 생각은 유대교의 전통적 견해에 정면으로 거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 세계에서 파면당하게 된다. 그 당시 유대인이 그 사회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만큼 큰 사건이었는데 그 직후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된다. 다행히 화를 모면하기는 하였지만 입고 있던 외투가 단검에 많이 찢어졌는데 그 외투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고 한다. 엉뚱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세계가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문명 발달의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유한자인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순간 폭력의 파괴자라는 말이 있다.

 나 라는 인간 하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지구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감수하며 자연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였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많은 가축과 물고기와 식물들이 파괴되어 가며 나의 생명을 유지하여 주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아니면 무엇인가에 대해 본의 아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사랑과 기쁨을 가르치는 종교마저 수많은 증오와 슬픔과 전쟁을 불러일으켜 파괴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6백여 년 전 타인과의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되는 필요악과 같은 관계를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스피노자다. 그는 에티카, 윤리학 저서에서 지적인 차원은 물론 감성적인 차원까지 그 문제를 분석해 보았다.

 출퇴근 시간 러시아워(Rush Hour)다.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집에 와 생각해 본다. 분명히 많은 인파 속에 수많은 얼굴들을 보면서 지나갔지만 기억나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무의식 중에 스쳐간 얼굴은 당연히 떠올릴 수 없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어느 순간 우연한 마주침이 일어날 수 있다. 우연히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려진다. 친구와 걸어가면서 웃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얼굴이었어, 혹시 나를 보고 웃은 것이 아닐까? 내일은 재택근무라 출근이 필요 없지만 그녀를 만나보기 위해 출근해야겠다.

 마주침과 헤아림이 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마주침이 무엇인가를 관철하려는 헤아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이제 우리는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코나투스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힘이라는 의미의 코나투스는 살고자 하는 욕구라 할 수 있다.

 하루를 살더라도 노예의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 즉 주인의 삶을 살려는 의지이다.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만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온갖 역경을 헤치고라도 그것에 충실하려 한다. 기쁨의 충만감이다. 반대로 나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상대를 만날 경우 위축되는 느낌이 들 적이 있다. 슬픈 감정이다.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택하라. 기쁨과 보람 있는 일의 선택이다.

 슬픔을 몰고 오는 피곤한 순간들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슬픈 감정이다. 당신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려라.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9세기 말에 피어스(Peirce, 1839-1914)에 의해 제창되고, 제임스(W. James, 1824-1910)에 의해 보급되었고, 나아가 듀이(J. Dewey)에 의해서 전개된 철학으로서 미국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스는 "신이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의 영적인 문제보다는 만약 이런 종교적 관념이 최대의 정서적 만족 내지는 평화를 준다면 그것은 진리다”라 하였다. 교회에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것은 참 진리고 그렇지 않다면 버리라는 이야기다.

 이제야 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의 그리스도라 하였는지 알 것 같다. 삶에서 매일 만나야만 하는 타자와의 관계를 회피하지 말자.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인 오늘의 나의 사과나무를 심자.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450
19320
2022-05-05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는 태고의 수풀~~이 고장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이냐? 소망과 끈질긴 인내로 거룩한 사랑을 믿고 사는 이들아! 여인의 정결의 미와 힘을 믿고 사는 이들아! 들어보라, 아직도 이 수풀의 소나무들이 노래해주는 슬픈 전설을, 들어보라 행복의 고향 땅, 아카디아의 사랑의 말씀을!” -롱펠로(H.W. Longfellow)의 에반젤린 서문에서-

미국은 미국 속에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오면 용광로와 같이 한덩어리로 용해시켜 영어권 문화로 만드는 용광로 사회라 할 수 있다면, 캐나다는 모자이크 사회인 복합문화주의의 국가라 할 수 있다.

물론 개척 초기부터 모자이크 사회적인 구성 조직을 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프랑스계와 영국계통의 영어권 사이의 식민지 쟁탈 격전지였다. 복합문화주의 사회인 모자이크 시대는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세계대전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에반젤린의 배경 무대는 영국 세력의 영어권과 프랑스 개척민 사이의 분쟁이 한창이던 18세기 초의 대서양연안의 현 노바스코샤 지역인 아카디아로 불려지던 곳이었다. 미국이 아직 독립을 선포하기 전인 1755년-1757년경 북아메리카는 퀘벡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영국의 영향 아래 있던 시기였다.

1604년 프랑스 탐험가 샴플레인(Samuel De Champlain)이 이끄는 120명의 프랑스인들은 퀘벡주에서 동쪽으로 향해 대서양연안 현 노바스코샤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샴플레인은 이곳을 포트 로얄(Port Royal)이라 명명하며 유럽과의 무역 거점으로 삼았다.

 150여년 후 아카디아의 프랑스계 개척자들은 1만5천명 가량으로 불어났으며 자연히 이들은 영국계 정착인들의 눈엣가시가 된다. 선두주자였으나 식민지 패권전쟁에서 밀린 프랑스계 주민들은 자신들이 개척한 땅에서 추방되어 방랑자 신세가 된다.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이 있었다.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 날 그들은 영국군의 총칼아래 무참하게도 서로 헤어지게 되며, 그 후 40여년 동안 서로를 찾으며 미주 전역을 방랑하게 된다.

1793년 전염병이 휩쓸던 필라델피아의 요양소에서 수녀 에반젤린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연인 가브리엘을 만나게 된다.

나는 1974년 3월 토론토에 도착하여 작은 이태리라 불려지던 지역을 방문하였던 적이 있었다. 외국땅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활발히 캐나다에 뿌리를 내리는 이탈리아인들을 부럽게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3년 후 몬트리올에서 거주하며 Fruit Bowl이라는 그리스 계통의 주인이 경영하던 Fruit Market을 친형님과 함께 인수하여 운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미 몬트리올에는 Greek Town이 형성되고 있었다.

비록 퀴벡주가 레인 레벡(Rene Le Begue)이 이끄는 캐나다와 분리하여 독립하려는 분리주의의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그래도 그곳 몬트리올의 그리스타운에서 모자이크라 불려질 수 있는 복합문화주의의 불씨를 볼 수 있었다.

4년 전 Stan Cho라는 이민 2세 청년이 온주의원(MPP)으로 출마한다고 하였다. 그것도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의 텃밭인 윌로우데일서 출마를 결정하였다 하는데 승산이 힘든 싸움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당을 지지하는 나였지만 한인들에게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정치계에 우리 아들들과 비슷한 연배의 한국계 청년이 출마한다 하여 모임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PC(보수당)의 당수가 현 브램턴시장인 패트릭 브라운이었는데, 선거공약이 정통 보수당 정책과는 판이한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있어 진보적 경향성의 나에게 호감을 주었던 때이기도 하였다.

 한국선거, 고향이 한국사람인 한국사람으로서 당연히 관심가질 수 있다. 아니, 가져야만 한다. 방탄소년단, 너무 자랑스럽다. 하지만 잊지 마라! 여러분들의 생활의 근원이며 후손들의 재롱을 보며 죽어 묻힐 장소는 이곳 캐나다라는 것을! 출발점은 한국이었지만 종착역은 캐나다다.

 캐나다 이민의 한인 역사가 해를 거듭하면서 많은 교민 2세들이 활발히 캐나다 사회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정치권은 아직은 불모지이다. 다행히 여기 Stan Cho 조성훈이 있다.

 스스로 발벗고 나선 개척정신이 고맙다. 제2, 제3의 Stan을 욕심내어 본다. Stan의 분투를 기대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293
19320
2022-04-28
존 레논의 아들(Julian Lennon)

 

<달과 육펜스>는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 Maugham 1874-1965)이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하여 쓴 작품이다. 제목에서 시사하는 달은 예술가의 이상을 상징하고 육펜스는 사회 물질적인 의미를 함축하여 쓰여진 작품이라 알려져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성공적인 그러나 매우 소심한 주인공이 부인과 자식들을 버리고 가출을 한다. 가족들 입장에서 볼 때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성 문제로 바람이 나서 제나름의 영광의 탈출을 한 것으로 여겼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소심한 은행원으로 가족을 버릴 위인이 아니어서 동기 자체 운운하는 것이 싱거울 정도였다. 어떻든 그는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섬 "타히티"로 가 자신의 이상인 미술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곳에서 인상주의를 벗어난 강렬한 종합주의 색채론에 입각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거의 실존인물 고갱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현지 원주민 여자와 결혼을 하며 종국에는 문둥병에 걸려 죽게 된다. 죽기 전 최대의 걸작을 그가 살던 오두막과 벽에 그렸으나 유언으로 그가 살던 집을 불 질러 달라 하여 그 걸작은 재가 되어 버린다.

 그 그림을 본 사람은 의사와 부인 등 오직 세 사람뿐이라는 스토리다. (이 작품의 모델인 고갱은 나병이 아닌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한다.)

여섯 살의 소년이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부모의 보호 아래 사랑을 받으며 자랄 나이이다. 아버지는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1940-1980)이다. 그는 소년의 어머니와 자식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주해 일본계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와 결혼하게 된다.

 그때 소년은 결코 아버지를 용서치 않으리라고 결심하게 된다. 아이는 자라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며 가수, 사진작가, 프로듀서 등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된다. 가수가 된 그는 아버지가 작곡 작사한 노래 ‘이미지’(Image)는 절대 부르지 않으리라고 맹세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작사 작곡한 그 노래는 그에게 평화를 선사할수 없었다.

 “Imag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아버지 존 레논에게 버림받은 아들은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의 노래 가사 어느 구석에도 설 자리가 없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줄리안 레논(59세)이다.

 해방 후 민중 속에 회자되던 말이 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 사람은 일어나니 조선사람은 조심하라".

 칠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미국의 군정을 믿었으나 극동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과소 평가한 미국의 미지근한 대응책과 소련의 지정학적인 침투의 음흉한 속임수에 넘어가 한민족은 민족 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해방과 함께 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던 민족의 염원을 송두리째 뒤엎는 잔인한 역사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찾는 이들!

부디 남산에 오르지 마오!

한 많은 분이어요, 더더구나 오르지 마오!

가슴이 저리다 못해, 터질 것만 같구려!

 1953년 환도하던 날 노산 이은상은 남산에 올라 전쟁의 상흔으로 파괴된 서울 전경을 내려다 보며 민족의 슬픔을 이렇게 읊었다. 전쟁은 인명의 희생을 요구한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다.

 존 레논의 아들 쥴리안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강대국간 저울질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결국 그는 평화운동가 존 레논의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노래 이미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들의 치유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당연한 선택이라 여겨졌습니다.” (I felt compelled to respond in the most significant way I could)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은 그래서 아버지의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나를 드림어(Dreamer)라고 부르겠죠,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당신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래요. 죽음과 살인이 없는 모든 사람이 함께 평화를 누리는 세계”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전쟁이 되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136
19320
2022-04-21
너는 한국인이야

 

엄마, 오빠들이 한국말을 못해. 친구의 딸이 대학졸업 후 북미를 여행하는 도중 캐나다에 들러 우리집을 방문했던 때였다. 1987년 고국을 방문했을 때 그 친구 집을 들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 여자 아이를 본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큰애가 12살 작은애가 10살 때였다. 그 여자 아이는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요조숙녀로 자라 있었고 우리 애들은 30을 바라보는 청년들이었다.

첫째 애가 토론토, 둘째가 몬트리올에서 태어나며 우리 부부는 바쁜 젊은 부모로 변모되어 있었다. 70년대의 캐나다 이민자 삶은 글자 그대로 눈코 틀새 없는 생활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양육까지 돌보며 사업의 동업자로써 남편까지 챙겨야 하는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 부인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당연히 애들은 엄마 아버지가 집에서 쓰는 유일한 언어인 한국말만 듣고는 별 가르침 없이 한국말을 구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데이케어를 보내며 애들이 영어를 못 알아 들으니 집에서 간단한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40대 후반에 들어선 우리 애들은 그들의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며 손주 애들도 영어만을 구사한다.

70대 후반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는 은퇴하여 영어가 필요없는 세월 속에 살고 있다. 드라마도 한국드라마를 선호한다. 한데 우리가 하지 못하였던 코리언 캐나디안의 교육이 그들의 가정에서 싹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숙명적이다. 그래서 이선희의 인연은 애달픔은 있지만 사랑을 잃으리라는 조바심은 없다. 닮은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이라는 것을 인연은 알고 있기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거기에는 끊을 수 없는 숙명적인 사랑인 운명의 인연만이 있을 뿐이다.

 과연 사랑의 만남은 필연적인 숙명의 결과일까, 아니면 우연적인 만남의 연장선일까? 전자인 경우 상실에 대한 슬픔은 있지만 결국은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에 애타는 조바심은 없다. 하지만 우발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그들의 노력이 없이는 그들의 인연은 내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연 우리들의 사랑은, 혹은 타인과의 만남은 필연적인 마주침일까 아니면 우발적인 만남의 계속적인 이루어짐의 결과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어려운 질문이다. 거기에는 인간이 풀 수 없는 창조의 비밀이 있다. 하지만 필연성이 우선적인가, 아니면 우연한 우발성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은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서양 철학사를 들쳐보면 칸트, 헤겔 등을 포함한 플라톤류의 철학자들은 의미가 마주침에 선행조건인 필연성이 우선적이라 주장하였다. 물론 소수였지만 그에 반대하는 비주류의 철학자들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는 의미란 우연한 우발성의 마주침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다.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로써 사르트로, 들뢰즈, 마에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아등바등 악착같이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해도 어차피 숙명적인 운명적 사랑

인데 조바심을 낼 필요성이 없다.

길거리를 걷는다. 공원에 산책을 간다. 무수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인생살이 결국 이런 마주침의 연장 속에 나라는, 우리라는 인격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는 지금 어디메 있나~

낙조보다도 더 쓸쓸한 조국아!~

봄날 도라화 같이 활짝 한번 피어 주렴. -이은상(1903-1982)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은 이제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우뚝 서있다. 1970년대 이민초기 고국방문시의 귀국선물로 미제나 일제의 칼라TV는 필수 항목이었다. 그 당시 고국은 흑백TV 시대였다.

여러분들의 자식들의 집을 가보라. 아니면 여기 본토박이 캐나다인의 집을 방문해보라. 한국산 가전 제품은 필수 장만 아이템으로 자랑스러이 자리잡고 있다. 휴대전화, 자동차 등 심지어 드라마까지 캐나다인 생활 구석구석 한국문화는 쉽게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 2세, 3세는 자연스러이 자랑스러운 코리안 캐네디안으로써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너라고 불러보던 조국은 거기 그렇게 성장하여 우뚝 서있게 되었다.

나는 1974년 봄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을 등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현실도피였다. 젖과 꿀이 흐르리라는 빠다(Butter)를 향한 선택이었다. 좌절감도 있었고 이민자의 서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내가 선택한 여인인 내 처가 있었고 또한 내 처가가 선택한 그녀의 남편인 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자연스러이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어떤 만남의 연장선이었다. 너라고 불러보던 조국은 제 몫을 하였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뀐다.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뀐다. 인격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미국 철학자 ‘윌리엄제임스’(1842-1910)의 말이다. 바뀌어야 한다.

 아들아 "너는 한국인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이라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너는 이곳 캐나다에서 심어진 꿈나무인 한국계 캐나다인이기도 하다. 1967년 시작된 캐나다 이민 일세는 고령화 되었다. 거름이 되어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

변해야 한다. 한국인이 (이민으로) 캐나다 땅을 밟으니 Korean Canadian이 되었더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kwangchul
95007
19320
2022-04-14
역린(거꾸로 된 비늘)

 

동양계인 큰 며느리와 서양계인 작은 며느리가 있다. 지난 1월 76세를 지나면서 한국나이로는 77세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작은 며느리가 의아해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애야, 어머니가 임신을 하면 아기는 10달 정도 태아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머물러 있지 않니?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그 기간까지 계산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 그 시점을 한살이라고 하였단다.

약 2천5백년 전 동양에 공자, 서양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동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거대한 산맥을 연상하게 한다. 소크라테스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면 공자는 감성적인 면이 있으나 직관적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산파술’이라고 불려진다. 그 자신 스스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는 없으나 사람들이 지혜의 진의를 식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출산을 돕는 직업인 산파에 비유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대화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며 주장을 관철시키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가 풍기는 뉘앙스처럼 겸손한 느낌이 있으나 전혀 겸손치 않다.

반면, 공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조화의 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이다. 하지만 인을 꼭 집어서 무엇이라 한 적이 없다. 말은 잘하나 성격이 급한 제자가 물으면 말을 어눌하게 하라고 가르친다. 약삭빨라 장사를 잘하는 제자에겐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이익을 나중에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어찌 보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랑 즉 "인"이 있다.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 그것이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나 그 제자 플라톤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역린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글자 그대로 꺼꾸로 배열된 비늘이다. "용”이 있다. 용은 잘 길들여서 탈수도 있는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하나 용의 목에는 한 자 길이 정도의 "역린"이 있다. 이 꺼꾸로 배열된 비늘을 주인이 실수로 건드리면 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중국의 고사에는 신하가 군주를 설득할 때 군주의 치명적인 약점인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설득시킬 수 있다 하였다. 그렇다, 인간에겐 자신들만의 드러내기 싫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역린이 있다.

지난 3월 27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는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라가 시상식을 하던 코메디언 배우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다.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크리스 록"이 병으로 삭발을 한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에게 GI Jane(지 아이 제인)의 후속편을 기대한다며 스미스의 아내 헤어 스타일을 주제로 농담한 것에 대해 격분하였기 때문이다.

'지. 아이. 조'(G.I.Joe)혹은 G.I.Jane(지.아이.제인)의 지. 아이. 는 영어로 Govermant Issue 즉 정부에서 내어주는 관급품을 의미하기도 하고 보병대를 뜻하는 General Infantry의 약자이기도 하다.

1차 대전 이후 미국 군인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지. 아이. 제인은 1997년 데미 무어가 삭발하고 여자군인 "지 아이”로 출연하였다. 터프한 여자 군인으로 보이기 위하여 삭발을 하였다. 백인 여배우의 예쁜 얼굴이었지만 썬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분장이었다.

병으로 삭발한 자신의 부인을 두고 지아이 제인 2편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남편의 입장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분명 악의가 없는 농담이라 하더라도 뉘앙스가 있다. 역린이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논란거리가 되거나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말라는 비유이다. 인터넷에서는 누르면 발작한다고 해서 "발작버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었던가? 한때 동양철학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양의 철학은 과학을 발명시킬 수 있었지만 동양철학의 심요함과 그 감수성은 과학의 발전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하였다. 과학의 발달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이제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식상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현대는 인문학의 부재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현대는 밥상을 풍요하게 해주는 물질만능의 대명사인 사이언스가 대세인 시대이다.

노자에게 모든 만물의 근원인 '도’가 있다면 공자에겐 어질 '인'이 있다. 공자에게 제자들이나 어느 누가 그 '인'에 대해 질문하면 묻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글자 그대로 천양각색이다. 종잡을 수가 없다.

개념의 정의가 상황마다 달라지면 이성적인 논증이 요구되는 현대시대에는 제로이다. 아마도 공자가 수능시험을 본다면 영락없이 빵점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비논리주의자일까. 아니다.

 그가 중요시하였던 것은 인간사회에서의 갈등이 아니라 조화의 어울림이었다. 그는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존적인 변화에 이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윌 스미스의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폭력행사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미스런 행동이다. 전혀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인생사에는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아픈 상처 등등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관중을 재치와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유도할 의무가 코미디언에겐 있다. 그렇다 해도 타인의 비밀이나 아픈 상처를 건드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어쩌다 보니 인문학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공자의 수사학적 감수성이 그리워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