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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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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
80년 후에 되새기는 교훈, 노르망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아이젠하워 장군(왼쪽)

 

 

"침공 이후, 24시간은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연합군에게나 독일군에게나 이 순간은 제일 긴 하루(The Longest Day)가 될 거야. 제일 긴 하루가"! -에르빈 롬멜-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에서(The Longest Day)]

 

1944년 6월6일 아침, 15만6,000명의 연합군이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진군을 개시했다. 이들 중 13만2,000명은 바다를 건너 상륙 하였으며 2만4,000명은 공수작전으로 강습, 투하 하였다.

 

-연합군, 육해공,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위대한 성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용맹한 동맹과 다른 전선의 전우들과 함께 독일의 군사력을 돌파하고 탄압 받고 있는 유럽시민들에 대한 나치의 폭정을 몰아내고 자유세계에서의 안보를 지켜낼 것입니다… 적들은 무자비하게 싸울 것 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1944년입니다…. 이제 전세는 역전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자유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에게 전능하신 신의 가호가 있기를!"  -드와이트 디 아이젠하워-

 

1944년 6월6일 당일 아침 프랑스로 진격하는 연합군 모든 장병에게 전달된 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명령서를 요약한 것이다.

 

연합군의 보병사단 및 기갑사단은 길이 80km 노르망디 해안 5개 구역(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침투작전을 시도하였다. 해변을 내려다보는 독일군 요새에서는 총탄이 빗발쳤고, 사상자는 절벽이 높은 오마하 해변에서 극심했다. D-day 당시의 날씨도 결코 이상적이지 못하였고 강풍으로 인해 일부 상륙선은 의도한 장소에서 동쪽으로 밀려났으며, 해안은 지뢰를 비롯해 나무말뚝, 철선 등의 장애물이 널려 있어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임무는 매우 어렵고 위험했다.

 

첫날, 전투 중 사망자는 독일군이 4,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연합군은 확인된 사망자만 4,414명을 기록했다. 연합군은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목표한 임무를 달성 하는 데 실패하였다. 상륙 첫날 서로 연결된 해변은 '주노'와 '골드' 두 장소뿐이었고, 다섯 상륙지점이 모두 연결된 것은 6일 후인 6월 12일이었다.

 

 

#사라져가는 노르망디의 노병들.

 

주노해변은 골드해변 동쪽과 소드해변 서쪽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서 제 3 캐나다 보병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1944년 6월6일, 디-데이 새벽 당시 19세였던 몬트리올 출신의 빌 로스(Bill Ross)는 전우들과 함께 해변가에 상륙하여 목표지점인 베르니에르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작전 개시 전의 해상 폭격과 공군의 폭격이 전투를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사전 폭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효율적이었으며, 거친 날씨 또한 상륙작전의 장애물로 작용하여 선발대의 진격은 07:35분까지 지연된다. 빌 로스가 소속되어 있는 상륙부대는 독일 제716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많은 전우들이 전사하며,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고 밟으며 돌진했다. 밤 9시가 되어 해가 떨어져 참호를 파고 지친 몸을 쉬게 되었을 때, 그가 소속되어 있는 보병사단은 어느 연합군 부대들의 디-데이 목표보다 더 큰 진군의 성과를 얻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2016년 91세로 노병 빌 로스는 이 세상을 하직하였으나, 80년 전 그의 전우들이 진군했던, 피로 얼룩졌던 12 킬로미터의 길을 회상하며, 또 기억하기 위해 현지의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노병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102세인 미국인 2차대전 참전 용사인 로버트 페르시치티 씨가 노르망디에서 열린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로 가는 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노병 페르시치티 씨는 장거리 여행의 위험을 감수하고 유럽을 찾았다가 중간 기착지의 노르망디로 가는 선박 안에서 응급 의료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항공편을 통해 독일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하였다 한다.

 

올해 100세로, 20세 때 캐나다공군 정찰기 조종사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노병 리차드 로멀(Richard Rohmer)은 디-데이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1944년 당시만 해도 히틀러 치하의 나치군대는 조직이 잘 되어 있는 군대였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을 때였다. “만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더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독일의 나치와 유사한 권위주의 정권이 활개치는 판도로 변모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번 방문이 매 10년마다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0년 전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흘린 전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염원은, 100세 노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로 향하게 하였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지 10여 년 후 1930년대 초, 유럽은 새로운 권위주의(Authoritarian) 정권의 출현을 목격하게 된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이태리의 무솔리니 그리고 제3 제국(The Third Reich)이라 불렸던 독일 히틀러의 나치(Nazi)정권이다. 나치독일은 정부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세계는 민주주의 체제인 연합국과 권위주의 정권인 전체주의 국가와의 격돌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이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인 나치 독일의 예봉을 꺾은 것이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그 후 11년이 지난 1945년 5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멸망하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그간 세계는 놀랄 만한 변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역사의 시계추를 돌려 놓았던 역사의 주역들인, 참전용사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참전용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노병은 죽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견한 최대의 정치 시스템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해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젊은 나이의 병사들과 그들의 전우였던 노병들을!

 

2024년 6월6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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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
창조 되어야 할 신화와 경계 하여야 할 신화, 모범적인 소수인종(Model Minority).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의 지원 아래 기독교 단체들이 설립하고 운영했다. 대략 130개의 기숙사학교가 있었다. 수용대상은 원주민 아이들로 한정되었고, 어린아이들은 6-7세경부터 시작하여 17세-18세까지 약 10년 간 강제로 기숙사에 머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콜롬버스가 인디언이라고 명명(命名)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였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야만족(Savage)인 원주민 아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문명화 시킨다는 미명 아래 아이들은 강제로 부모와 결별하게 했으며, 기숙사에 억류되어 있는 기간, 원주민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들만의 문화적 전통에 참여 하는 것이 절대 금지되었다.

 

솔 마마카와(Sol Mamakwa)는 원주민 출신 NDP소속 온타리오 주의원이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부모, 가족과 떨어져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10여 년을 보냈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던 기숙사학교의 선생들은 학생들이 그들의 고유언어를 말하다 발각되면, 금지된 야만족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하여 비눗물로 입을 씻게 하였으며, 형벌을 내렸다. 추운 겨울에는 장갑없이 문 밖으로 내쫓아 나무를 잘라 겨울 땔감을 만들게 하였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정신적, 신체적인 학대로 많은 원주민 어린아이들이 죽었고, 비밀로 매장되어, 그들은 죽어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숫자는 1만여 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신민당 소속 주의원 솔 마마카와가 발언을 할 때면, 고성과 야유가 오가는 정당간 토론 장소인 의사당 내에서도 신기할 만큼 조용해진다. 마마카와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 온타리오 주의원이다. 그는 지난 5월28일(화), 캐나다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캐나다의 공식 언어인 영어나 불어가 아닌 인디안 고유언어로 정기 질의시간에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영어와 불어로 통역되어 의사당 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인디안 토속어인 ‘오-지 그리(Oji-Cree)’로 한 발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던 언어, 그러나 금지된 언어였기 때문에 체형(體刑)까지 겪어 가며 보존하려 하였던 멸종위기의 언어는 그의 노력에 의해서 온주 의사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말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그날, 온주 의사당에는 그날이 생일인 79세의 그의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원주민 동료들이 초대되어 역사적인 순간을 의사당 발코니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원주민 출신 주의원 솔 마마카와는 현대판 신화의 창조자라 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으로 대변되는 북미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은 백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모범적으로 잘 따르고 있다는 칭찬처럼 쓰여지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라는 신용어가 있다. 이 용어의 요점은 아시아계는 흑인이나 라틴아메리카계 등 타 이민족과 달리 준법정신에 투철하고 근면 성실함으로써 성공한 이민자로 통하는 만큼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보는 인식이 비교적 적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일부 백인들이 자행하는 인종적인 차별대우를 정당화하기 위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라, 저 동양사람들을! 저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며, 일하니 잘살지 않느냐!"

 

마치, 흑인들이나 타민족이 비교적 빈곤한 것을, 게으르고 열심히 일하지 않은 그들의 잘못인 것처럼 간주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밤중에 습격을 받아 노예로 잡혀와 피와 땀을 흘려 백인들의 주류사회인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것에 큰 공헌을 한 흑인들에겐 억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씨네 컨비니언스’(Kim”s Convenience)는 캐나다의 시트콤(Situation Comedy)으로 캐나다 이민 2세 '최인수'씨의 연극 ‘김씨네 편의점’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CBC 텔레비전에서 2016년 10월11일부터 2021년 4월13일까지 방영된 히트작이다. 1974년 캐나다에 이민 와 우리 부부의 생존의 수단이었던 편의점이 주제가 되어 인기 시트콤으로 각광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를 상상해 보며 그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시트콤'에는 1970년대에 갓난 아이와 함께, 하루 14시간, 일년 365일을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전혀 컨비니언스하게 지낼 수 없었던 이민 초기의 우리 부부와 유사한 절실한 경험담은 설 자리가 없었다. 백인들의 관점에서 본 성공한 이민 케이스인 '모델 마이너리티'가 되어 있는 "김씨네 편의점"만 있을 뿐이었다. 

 

온타리오주 덕 포드 총리는 지난 5월25일(토) 아침 5시 노스욕 유대교 '퍼블릭 스쿨(Bais Chaya Mushka Elementary School)에 두 명의 괴한이 쏜 총알 흔적이 발견된 데 대해 이민자들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지적하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캐나다는 다문화 모자이크 사회다. 엄격히 말해 캐나다는 원주민 외에는 모두가 이민자가 되어 설립한 국가이다. 포드 수상 또한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가 말하는 이민자는 과연 누구를 뜻하는 것인가? 그 후, 누구보다도 이민을 장려하는 정치인이 포드 총리 자신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포드 수상의 이와 같은 이민자의 인식은 인종차별 주의자(Racist)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눈에 뚜렷이 보이지 않는 아시아계의 독특함은 표면상으로는 인종갈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민 1세대의 경우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점도 있지만 2세대에 들어 서면서 전문직 등 비교적 잘 적응하여 흑인들이나 타 인종에 비해 연봉을 더 받는 것은 사실 일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계 및 아시아 인들도 경제적으로 부유 하지 못할 수 있고, 학생들 또한 학업에도 부진할 수 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모범적인 이민 신화의 뒤안길에는 극복 되어야 할 특정 계급이나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이 숨어 있다. 그러한 편견에 자화자찬하여 안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계하여 인종의 우열을 가려 등급을 매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2024년 5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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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잊혀져 가는 전쟁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이상 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전선 돈바스(Donbas)지역에 주력하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하르키우(Kharkiv)주의 하르키우시를 향해 진격을 해오고 있다.(하르키우시는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이자 하르키우주의 주도다.)

 

지난 5월13일, 우크라이나 동북부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러시아군은 진격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의 '하루키우주' 9개 마을을 차례로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공세를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무기지원이 늦어지는 틈을 이용해 동북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에게 속수무책 밀리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레산드로 시루시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000KM에 걸친 전선에 얇게 배치했던 병력을 다시 빼내 북동부 하루키우로 지원을 보내는 등 최전방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기지원이 빨리 오지 않으면 현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우리는 매우 힘든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가장 용맹한 군인들과 대통령이 있다 할지라도 현대 전쟁은, 자금이 없어 무기가 바닥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몇 달 간의 지연 끝에 미국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지난 4월20일, 61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추가 예산안이 가결되었다. 미 하원에서 통과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상원의 승인을 거쳐 4월24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함으로써 법안으로서 그 효력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4월29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방분야 지원을 위한 1,000억(약 148조 원) 규모의 특별기금 설치 계획을 전달하였으며, "이제 우리의 책임은 이 같은 발표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무기 탄약 등이 우크라이나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러시아는 1945년 5월9일을 모스크바 시간으로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에 무조건 항복한 날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인 5월8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러시아와의 차이를 두고 있다. 지난 5월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에 올린 동영상에서 80여 년 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즘을 쳐부수기 위해 피를 흘렸고, 지금 우리들은 다시 악에 맞서고 있는데, 이 악은 '러시아 파시즘'이라며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여 비난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의 촬영 장소는 2년전 러시아군이 아이들을 포함한 약 350여명의 주민을 감금한 체르니우치 마을에 있는 지하실이라고 설명한 뒤, 빛이나 식량, 물도 없는 지하실에 갇힌 그들을 상상하면 푸틴의 러시아가 어떤 악의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불어 세계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반 푸틴 연합"으로 뭉치게 되면 "모스크바의 나치스"를 저지할 수 있고 새로운 악이 유럽 전체를 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결속을 호소하였다.

1952년 5월, 마크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쟁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던 당시의 미군 수뇌부의 분위기는 승리보다는 패하지 않는 전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던 시기였다. 클라크 장군은 자신이 미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는 휴전협정에 서명하면서도 승리 없는 휴전에 서명한 첫 미군 사령관으로서 휴전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생각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한국군과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은 중국 인민군의 참전으로 밀리면서 쌍방이 휴전선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 되고 있었다.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중공의 모택동과 같은 동맹국이면서도 은연 중 그와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스탈린은 미, 중 두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격돌함으로써, 특히 미국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기 원하였다. 치밀한 성격의 스탈린은 그렇게 함으로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 하고 싶은 복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갑자기 죽고 그가 숨진 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뀔 수 있었고, 그해 7월27일 휴전 협정이 성사된다. 그 후 소비에트 연방은 1990년 붕괴되고, 한국전쟁 휴전 71년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발판 삼아 동유럽의 지배자가 되어 대 러시아 제국을 꿈꾸게 된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우크라이나 침략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결사적인 항쟁과 서방세계의 군사지원에 밀려 예상 밖의 고전을 하게 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크라이나가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한국전쟁처럼 국토가 유실된 채 휴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트럼프가 오는 11월5일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렇게 될 확률은 아주 높다.

 

한국 동란 당시, 한국공군과 미국공군은 공산군의 기지가 있는 압록강 너머를 폭격할 수 없었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군 또한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서방국가가 제공해준 무기로는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 있는 러시아군대에는 공격을 가할 수 없다. 단, 러시아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오면 그때야 방어차원에서 서방세계가 제공해준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철저한 대리전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 인증(認證)되지만 현재에서 증명된다.

2024년 5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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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법과 정의

-누구나 살인범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편, ‘타임 투 킬’-

 

1984년, 존 그리샴이 미시시피 법대를 졸업한 후 애숭이 변호사로 있을 때였다. 그는 법원을 드나들며 법정에서만 느끼며 볼 수 있는 많은 법정 투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12세 소녀가 그녀를 강간한 남자를 상대로 법정 증언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그는 강간당한 소녀의 치욕적인 고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를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보게 되었으며 법과 정의에 대한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녀가 나의 딸이라면, 그래서 그의 딸이 공개법정에서 자신을 짐승처럼 능욕을 한 범인을 눈 앞에 두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서,그가 아버지라면 그 강간범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그가 아직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작가가 되기 전 3년 여의 변호사 일을 하며 여가시간을 이용해 그의 데뷔작 ‘타임투 킬’(A Time to kill)을 쓰게 된 동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하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주 포드군의 작은 도시에서 길을 걸어가던 10살짜리 흑인 소녀가 마약과 술에 취한 두 백인 남자에게 폭행 당한 후 강간을 당하게 된다.

 

범인들은 곧 체포되지만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고 흑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오히려 보석으로 풀려날 기미마저 보였다. 이에 분노를 참지 못한 소녀의 아버지 '칼 리'는 범인들이 구치소로 이송되는 틈을 타, 그의 딸을 유린한 두 백인을 총으로 난사하여 살해함으로써 복수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은 흑백간의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백인 브라이전스 변호사의 변호가 시작된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미시시피주 데소토 카운티에서 강간당한 12살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그 당시 존 그리샴은 재판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법정에 있었다 한다. 그는 그의 소설 '타임투 킬'을 통해 소녀의 아버지 "칼 리"로 하여금 살인범을 총으로 죽임으로써 흉악범에 대한 법의 심판이 아닌 직접적인 응징으로 범인들을 처벌한다. 잔혹한 인종차별의 폭력을 고발한 인간애가 담긴 작품으로 법과 인간의 관계와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지난 2021년 7월2일 이래, 잠복근무 중인 경찰을 죽인 1급 살인죄의 혐의를 받고 평생 감옥생활을 할 위기해 처해 있던 회계사 우마 자미엘을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게끔 배심원의 판정을 이끌어낸 배후에는 45세의 변호사 나달 하산이 있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노르웨이 출신 어머니가 영국에서 만나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옥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미국 하버드대학, 영국 캠브리지대학을 거쳐 2006년 토론토대학 Law school을 졸업 후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주로 사회적으로 승산이 적은 사건과 힘없는 대중을 위한 범죄사건을 많이 취급하였다.)

 

 

3년 전 7월2일 자정경, 토론토시청 주차장에는 주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복 경찰관 4명이 잠복 중이었다. 그 당시, 우마 자미엘은 캐나다데이를 즐기기 위해 다운타운에 나왔다가 임신한 부인과 2살된 아들을 동반한 채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갑작스럽게 그의 차에 접근하는 두 명의 괴한을 보고 강도라고 판단한 후 차를 후진하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근무 중이던 한 명의 경찰을 차에 치여 죽게 한다. 사건 발생 후 초기 수사에서 한 명의 근무 중이던 사복형사가 사건 현장에서 죽은 후, 경찰과 검사는 이 사건에서 뚜렷한 살해의 동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검찰은 사건의 방향을 무슬림 테러리스트 그룹이나 반정부 비합적 조직으로 연결하려 했으나 그 취지 또한 어떤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검찰 측 결론은 유일한 사건 목격자인 동료 사복경찰 3명의 증언에 기대를 걸고 사건을 1급 살인죄로 기소함으로써 귀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현장 증인의 논리는 하산 변호사 팀의 "레이저 기반 촉감 재 구현기술"(Laser reconstruction)의 입증으로 위증임을 밝혀내게 된다.(당시 숨진 경찰관과 함께 잠복 근무하던 경찰 리자 포브스는 사건 현장 증인 진술에서 죽은 노스롭 경찰관이 먼저 손을 들고 경찰이라는 것을 알렸으나 범인이 이를 무시하고 그냥 돌진하여 경찰을 죽였다고 증언하였다.)

 

법정에서 증인은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한다.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중언을 하면 위증죄가 성립된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사람이 시내에서 하루를 즐기기 위해 시청 지하실에 차를 남겨 놓고 나갔다가 집에 가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그것도 아무도 없는 심야에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접근한다면 누구나 겁에 질려 빠른 시간 내에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당연히 그가 잠복 중인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고, 그래서 내가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평생을 살인범으로 감옥에 억류된다고 상상해 보라.

 

법은 소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어야 한다.

 

살인범으로 누명을 뒤집어 쓴 회계사 우머에게 변호사 하산과 그의 동료 변호사 알렉산드라 헤인은 정의의 메신저였다.

 

법과 정의는 인권에 기반을 둔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한에서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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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56년 후, 그들이 돌아왔다

 

56년 전 1968년 4월30일, 미국 뉴욕시의 콜롬비아 대학생들은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위해 대학내의 해밀톤 홀(Hamilton Hall)을 점거했다. 경찰은 강경 진압을 통해 시위 인원 700명을 체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학생은 물론 경찰까지 포함해 총 100명 이상이 다쳤다. 미국 대학생들의 위와 같은 월남전에 반전 시위는 그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비판의식이 번지게 된다. 이에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반면, 월남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운 공화당 후보 닉슨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1968년 사회운동은 그 당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회분쟁으로 권위주의적 정권에 맞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인종주의를 비롯한 여러 차별들에 대한 반대 뿐만 아니라 핵이나 환경 오염, 월남 전쟁과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반대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칭해서 68혁명이라 불렀는데 미국에서는 콜롬비아대학 사태가 이 운동을 크게 확산시켰다.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확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면서 대선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요소가 되고 있다.(흡사 1968년의 유령이 되살아 온 것처럼 56년 전의 풍경과 너무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언론에 의하면 30일 밤 뉴욕경찰이 콜롬비아대 해밀톤 홀에 진입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을 체포했다고 보도하였다. 앞서 대학당국은 전날 오후 2시까지 천막 농성장을 떠나라고 통첩을 보냈지만 학생들은 투표를 통해 거부를 결의하게 된다. 이어 이튿날 새벽 일부 학생들이 해밀톤 홀에 들어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가자 학교 당국은 점거 학생들을 퇴학시키겠다고 위협하며 경찰에 진압 요청을 하게 된다.

 

 

해밀톤홀을 점거한 학생들은 그들이 점거한 이 건물을 ‘힌드의 홀’이라 명칭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학생들이 내건 대자보 사연은 이러하다.

‘힌드 라잡’은 팔레스타인 소녀로, 이 세상에서 보낸 햇수는 고작 6년 이었다. 지난 1월29일 힌드는 삼촌가족과 차를 타고 가자시티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녀는 이스라엘군의 총탄이 무서워 도망치려 하였으나, 그 총탄 때문에 영영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삼촌과 숙모가 먼저 죽임을 당했고 사촌언니도 죽었다. 이 몰살당한 차량에서 아직 죽지 않은 15살 라얀이 외국에 있는 친척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하였다.

“엄마 아빠는 벌써 죽었어요. 언니도 죽었고요. 저랑 힌드만 살아 있어요.” 

“걱정 하지마, 무서워 하지마, 바로 앰뷸런스를 보내줄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친척은 바로 이슬람권 적십자사에 구조를 요청했다. 라얀의 전화번호를 주고 연락하면 라얀이 받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라얀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에 이스라엘군의 탱크는 총격을 가했다. 둔탁한 총격소리와 라얀의 비명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2주 뒤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며 구조대원 2명도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다.)

전쟁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군산 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은 56년 전 1968년 콜롬비아대 상황과 여러모로 동일하다.

당시 해밀톤 홀을 점거하고 월남전 징집 반대와 이 대학의 군산 복합체(軍産複合體)와의 관계 단절을 주장하던 학생 700여 명을 경찰 1천여 명을 투입해 진압한 날도 또한 4월30일이었다. 시위 학생들이 이날 새벽 해밀톤홀을 점거한 의도의 배경도 4월30일이라는 날짜에 상징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날 밤 몇 명의 시위대가 홀에 들어간 뒤 이날 새벽에 문을 열어 많은 학생들이 대거 진입할 수 있게 하였다. NBC 방송은, 1968년 당시 같은 장소에서 데모에 참여했던 마크 나이손 역사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56년 전 당시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전하였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캐나다와 미국으로 대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반유대주의(Anti-semitic)와 반 팔레스타인에 대한 어느 한 쪽의 지지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발생한 집단 살해의 윤리적인 차원에 입각한 인권(Human Right)문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만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3만5천여 명의 시민이 이미 죽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가자지역에 남아 있는 생존자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기아 선상에서 고난을 받고 있다.

한편, 몇몇 유대인 학생들은 캠퍼스 분위기가 반 유대주의적인 정치적 동기를 포함하고 있어 신변의 안전 우려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시위대는 이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고 지적하며 유대인 학생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들 학생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 학살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지원하는 무기 제조산업 및 관련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기부금 투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의 학생들의 반전시위와 그때마다 요구하는 사항들은, 1960년대에도 70년, 80년대 그리고 현재, 2024년에도 옳았다. 지금은 학생들을 처벌하기 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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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나이

                       

재판관: ”자미얼 씨,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Mr. Zameer, you are free to go, sir.”) 당신이 여태까지 겪어 왔던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You have my …deepest apologies for what you have  been through".)

 

2021년 7월2일 자정께, 토론토시청 지하주차장에서 회계사 ‘Umar Zameer’는 임신한 그의 부인과 2살짜리 아들을 동반한 채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체격이 크고 험상궂게 보이는 남녀 두 명이 그의 차에 접근해 오고 있었다. 깊은 밤, 음침한 지하주차장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의 차에 접근 하는 두 명의 괴한을 보고 순간적으로 강도라고 판단한 그는 방어 차원에서 후진하던 차를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대로 차를 몰아 돌진시켜 한 명을 사망케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들이 아니었고, 시청 주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수사 중이던 사복 경찰관들이었다.

 

결국, 차에 깔린 경찰관(Jeffrey Northrup)은 순직했고, 회계사 우마 자미얼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1급 살인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숨진 경찰관 '노스롭'과 파트너로 함께 근무하던 여자 경찰관 '리자 포브스'(Lisa Forbes)는 재판과정에서 차량이 다가오자 노스럽 경관이 먼저 손을 들고 저항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우마 자미얼'씨가 그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하여 경찰관 '노스럽'을 사망케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후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 두 명의 정밀조사가 있었고, 그 증언이 거짓임이 밝혀져 함께 잠복 근무하던 다른 2명의 사복 형사들과 함께 위증의 혐의를 받게 된다.

 

'방안에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데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민감한,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아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다. 이 표현을 인용하면서 이 재판담당 판사 '앤 모리'가 피의자에게 명백히 드러나는 살해의 동기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검사 측에 설명하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인용한 관용어 영어 표현이다.

 

지난 3년 이상의 세월을 온타리오주정부 사법부의 검찰당국은 살인 범죄로 취급하기에는 살인의 동기가 불분명한 비극적인 사건을 가지고 한 사람의 죄 없는 시민을 1급 살인죄로 기소함으로써 과오를 범하게 된다. 회계사 ‘Jammer’는 죄 없는 선량한 시민의 위치에서 잠복 근무중인 평상복 형사 경찰관을 의도적으로 죽게 한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는 현행범으로 즉각 구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삭이었던 부인이 출산할 때에도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보석 청구 심사 당시에도 판사 '질 코프랜드'(Jill Copeland)는 검사의 기소의 이유가 논리적이지 않으며 살인의 동기가 불분명한 케이스를 기소를 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라 하며 보석을 허용한다. 그러나 그 보석 허용은 온주정부 포드 총리 당시 토론토시장 존 토리 그리고 브램튼 시장 패트릭 브라운 등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게 된다.

 

덕 포드: “근무 중인 경찰을 살해한 1급 살인죄를 범한 살인범이 보석되어 유치장 밖에서 활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법시스템의 정의는 희생자나 그의 가족을 범인보다 먼저 생각 해야 한다.”

존 토리(전 토론토 시장): “경찰을 살해한 1급 살인범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잘못된 일이다. 나를 구역질(disgusting)나게 만든다.”

패트릭 브라운(브램튼 시장): “1급 살해범이 보석으로 풀려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2021년 9월, 피고인의 보석신청 심리가 있었고 당시 판사 '질 코프렌드'(Jill Copeland)는 범인이 비록 잠복 중이라 하나 피해자가 경찰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뚜렷한 살인범죄의 동기가 없다고 하였을 때 검사는 이 사건을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검사 측은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비록 경찰이 근무 중 사망하였다 할지라도 검찰이 기소하기에는 살인의 동기를 사건 현장의 증거에서 찾아내기 힘든 케이스였다. 따라서, 배심원들을 납득시켜 범인을 1급 살인범으로 "판정평결"(Verdict)을 얻어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검찰은 그런 모든 정황을 무시하고 공판을 진행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잠복근무하다 순직한 베테랑 백인경찰이라는 사실(fact)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선 순직한 경찰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의리 또한 있어야 하였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범행의 동기는 자연히 풀릴 것으로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석을 담당하였던 재판관 '코프랜드'와 재판을 주재하였던 고등법원 판사 '앤 모리'의 사법의 정의에 의한 베심원들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계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코끼리가 방안에 있다"(Elephant in the room)는 비유를 현명하게 판단한 배심원들이 있었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살인 사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부와 경찰의 막강한 공권력에 대한 인권에 입각한 사법정의의 승리였다. 정부는 선량한 시민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순직한 경찰의 명복을 빈다.

 

2024년 4월27일.      

 

에필로그: 검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검사는 담당 사건이 충분한 Fact에 준하는 경우 계속 추진하나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기각시키라는 지침이 있다. 이 당연한 수순을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 또한 이와 유사한 조항이 있음에도 무시하였다. 심지어 경찰청장은 사실에 입각한 Verdict(배심원 평결)이 나온 후에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였다고 실망을 드러냈다. 이러한 태도는 공직자로선 하지 않어야 할 법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에 경찰총장, '마이론 뎀키브'는 태도를 바꿔 OPP에 경찰들의 위증(Perjury) 자체조사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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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다시 새겨 보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19세기 중엽,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 남부사회는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노동의 대가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반면, 대부분의 노예들은 한번도 자유를 누려 보지 못하였고 노예신분으로 남겨져 있었지만 그래도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려 했던 흑인 노예들이 그들 중에 있었다. 1800년대 미국 노예들 중 자유와 인권을 갈구하였던 흑인들의 꿈에 그리던 최종 정착지는 캐나다였다.

1830년대 초, '미주리주' 담배농장의 흑인노예 ‘존 안델센’은 7살 이전에 흑인노예였던 부모가 다른 주로 팔려가는 바람에 고아 아닌 고아로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타고난 근면함과 부지런한 성격의 안델센은 열심히 노동을 하여 비록 법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결혼이지만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 전보다 일을 게을리 할 것이라 생각한 그의 주인은 그를 다른 농장주에게 팔게 되고 그는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 부인과 의논 후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캐나다로 탈출을 시도하던 중 안델센은 추적자들 중 한 명에 생포되나 잡혀가기 전 단도로 그를 살해한 후 천신만고 끝에 디트로이트를 거쳐 온타리오주 윈저에 도착하게 된다. 브램튼 인근의 칼레도니아에 거주하던 1860년, 안델센은 그와 비슷한 처지의 흑인노예 친구를 알게 되었으며 그를 믿고 자신의 과거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라고 믿었던 친구의 고발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된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되어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미국 미주리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노예 폐지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의 도움으로 재심을 받게 되며 살인죄는 인정되나 ‘인신보호청원(헤비어스코포스) 요청’이 받아들여져 일단은 석방된다. 그후 1862년 크리스마스날, 존 안델센 은 미국 미주리주로 범인 인도 대신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리비에라로 본국 송환된다.

 

 

 

지난 2월1일, 토론토시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토론토의 Bright St. 와 St.Paul St. 사이의 골목을 ”Henry Box Brown Line"으로 명명(命名)]하였다.

‘헨리 박스 브라운'은 1849년 미국의 버지니아주에서,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다른 주의 대농원 (Plantation)으로 팔려가는 것을 목격한 후 그곳을 탈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우편나무상자였다. 그는 행선지가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로 되어 있는 우편나무상자를 한 백인 구두제조업자에게 83불을 주고 만든 후, 그 속에 들어가 ‘인간 화물’이 되어 27시간 만에 필라델피아에 우송된다. 필라델피아에 도착 후, 노예제도 폐지의 연사로서 활약을 하며 음악인, 마술사 등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1881년에 캐나다 토론토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토론토시의 Bright St.에 거주하며 2024년 2월1일, 그가 143년 전 살던 그 거리가 그의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BLM)’,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의 이 조직은 2012년 흑인 10대 ‘트레이브 마틴’을 총격사격으로 사망케 한 '조지 짐머만'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2013년 소셜미디어에 ‘BLM’이란 해시태그를 사용 후 대규모로 확산된 흑인 인권운동이다. 이후 흑인 범죄자에 대한 체포과정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사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분산된 네트워크로 운영되고 있어 공식적인 구조는 따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은 흑인들의 북미대륙에서의 역사와 문화적 공헌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매년 2월에 실행된다. 미국 또한 매해 같은 2월에 시행되는데 명칭을 '흑인 문화유산의 달'(Black Heritage Month)로 부른다. 캐나다의 흑인 역사의 달은 미국의 흑인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 구조의 틀은 다르다. 흑인의 북미대륙의 역사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가 되어 북미대륙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결국 그들 제국주의 산물로서 흑인의 역사는 시작되며, 흑인들의 흘린 피와 땀의 결실로서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남부는 영광과 영화를 누리게 된다. 반면 백인들의 비인도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흑인들의 필사적인 탈출은 19세기의 ‘노예 탈출 비밀조직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의 도움을 받게 된다. 비밀조직지하철도의 의미는 실질적인 철도의 의미가 아니라 비밀조직네트워크를 일컫는 말로서 탈출노예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까지 인도하는 조직적인 단체로 본부는 미국 '필라델피아'이고 그 종착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였다. 대략 3만명 내지 4만명이 국경을 넘어와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다. 특히, 1850년~1860년 사이에만 만오천명 내지 2만명가량의 흑인노예가 캐나다에 도착하게 된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 는 말을 자주하였다. 물론 시작이 좋다고 해도 끝이 좋으라는 법이 없지만 모든 일에는 처음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한밤중에 습격하여 노예로 나포하여 신대륙에서 노예로 둔갑시켜 사고 판 것은 분명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예탈출 비밀조직 지하철도"나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와 같은 움직임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모든 단추가 다 제대로 끼워졌다 할지라도 흑인인권 문제는 갈 길이 요원하다.

 

1960년대의 메이저리그 애틀랜타팀의 흑인 야구선수가 있었다. 동료들과 같은 식당에 갈 경우 그 흑인선수는 다른 좌석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백인선수가 ‘나는 자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하였다. 그때 그 흑인선수는 "아니, 자네가 흑인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 뿌리 깊은 치욕적인 감정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1963년 8월28일 '워싱톤 DC' 행진에서 행한 연설에 붙은 별칭이다. ”I have a Dream” 마틴 루터 킹의 꿈의 염원과 바람은 백인의 타인종에 대한 우월 인식의 의식구조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그냥 헛된 꿈이 될 수밖에 없다.

2024년 4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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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다시 쓰는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

여성복서 매기는 세계타이틀을 획득하게 되지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큰 부상을 당한다. 재활병원에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다리마저 절단하게 된다. 살아있지만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던 매기는 그녀를 딸처럼 생각했던 스승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환자가 겪는 고통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생각과 윤리적 판단에서 오는 갈등 속에 프랭크는 자신이 다니는 성당으로 신부를 찾아가 의논을 한다.

 

 

프랭키: 저는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고, 그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아이를 살리는 일은 그 아이를 죽이는 일과 같아요.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녀는 그 일을 저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신부: 하느님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합시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 결정은 오직 하느님만이 선택할 수 있는 신(神)의 몫입니다.

프랭키: 그런데 신부님, 그녀는 하느님이 아닌 나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설사 이 일이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그래서 영혼을 찾을 수 없는 깊은 어둠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는 신마저도 외면한 처절한 이 고통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안락사(존엄사)를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 제작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권투선수를 소재로 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소재를 중압감 있게 다룬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러닝타임 133분 중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명실공히 이스트우드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2005년, 제 7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5월6일, 53세의 ‘어스틴 바스타불’ 씨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불치병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고생하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하여 안락사가 허용되는 디트로이트로 가고 있었다. 다음 날인 5월7일 아침, 그의 시신은 국경을 넘어 '윈저' 근교인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찾던 바스타불 씨는 국경을 건너가서야 그의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 투쟁하던 생전의 그의 모습을 토론토스타는 1996년 5월9일자 1면 톱에 "무덤으로부터의 항변"이라는 타이틀로 게재하였다.

 

캐나다국회가 2016년에 제정한 안락사법(Medical Assistance In Dying, Bill C-14)은 의료적 조력자살을 허용하되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왔었다. 그러나 2023년 3월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하여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그 법을 허용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범위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거식증(拒食症), PTSD등 다양성을 띠고 있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례까지 열거하며 의학적으로 더 이상의 치료 가능성이 없는데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였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알버타주 에드먼턴 고등법원에서는 ‘코린피스비’ 재판장이 주관하는 안락사(MAID)에 관한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의 목적은 알버타주 캘거리에 거주하는 27세 여성으로서 안락사법에 의한 죽음의 권리를 요구하는 딸과, 딸의 선택을 저지해 달라는 아버지의 간청으로서, 부녀간의 절실한 생(生)과 사(死)에 관한 재판이었다.

 

아버지의 주장: 나의 딸은 자폐증과 주의력 결핍행동장애(Autism, ADHD)를 앓고 있으며, 한번도 부모와 떨어져 독립하여 살아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녀의 문제점은 신체적이라기보다는 우울증 정신적인 문제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안락사를 요청할 권리가 딸에게는 없다는 논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스비' 재판장은 비록 아버지가 딸을 잃는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딸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여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30일 안에 상소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근본적으로 안락사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는 말기환자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만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폄훼하여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위의 결정은 넌센스이며 인도주의를 가장한 쇼킹한 프로세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시 되는 현대사회라 할지라도 정신질환자를 안락사 관례법에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관례를 낳게 할 뿐이다.

정부는, 정신질환만으로는 조력자살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반드시 채택하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1996년 토론토 소재 일간지의 '징검다리'라는 종교란을 통해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이라는 칼럼을 기재한 적이 있다. 당시 캐나다에선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캐네디언들이 안락사의 허용을 요구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 해 1996년7월, "인간 생명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기에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글을 기고하였다. 28년이 지났고 1년반 후에는 80세가 된다. 이제 누가 내게 물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내 자신이 처절한 고통 속에 MAID를 요구하게 되어 내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안락사(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는 고통에 빠져 있는 회복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그 고통을 덜어서 마지막 가는 길의 죽음을 맞이 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존엄사여야만 하며 정신질환만으로도 안락사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2024년 4월6일.

참고: 마크 홀란드 연방보건부장관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력존엄사 실행일을 2027년 3월17일로 연기하는 법안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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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프로스포츠와 도박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영화 ‘워터프론트’는 1954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등 8개 부분을 수상한 작품이다. 

1948년, 뉴욕시 부두 근처 자동차 안, 동생 테리(마론 브란도역)와 형 찰리(로드스타이거분)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로권투 선수 출신인 동생 테리는 변호사인 형 찰리한테 전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복싱선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찰리: 너는 혜성처럼 나타난 프로복싱의 유망주였어! 너는 ‘제2의 빌리콘’과 같은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 그런데 매니저라고 구했던 그 거지 같은 놈이 너를 너무 심하게 다그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어.

테리: 문제는 매니저가 아니라 형 때문이었어. 그날 밤 경기 전,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형이 내게 말했어. “테리야, 오늘 밤 시합은 네가 이길 경기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상대 선수 윌슨한테 돈을 걸었어". 형! 오늘은 네가 이길 날이 아니라고 내게 한 그 말 생각 나? 그런데 형, 나는 윌슨을 묵사발로 만들 수 있었어. 그런데 어찌 되었지? 윌슨은 그후 챔피언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을 얻었지? 형이라면 내가 잘 되게 도왔어야지.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나를 희생시키지는 말았어야지.

찰리: 너한테 돈을 건 적도 있었지.

테리: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 형도 잘 알고 있잖아. 나는 이런 깡패 말고 권투선수로서 명예를 얻어 최고가 될 수 있었다고. 그런데, 형이 나의 장래를 깡그리 망쳐 놨어.

형 찰리는 동생 테리의 이야기를 듣고 동생 설득하기를 멈춘다. 동생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떤 일을 당할 지 이미 알고 있었던 형 찰리는, 위험할 때 쓰라며 동생 찰리에게 총을 건네 준다. 그 후, 형 찰리는 시체로 발견된다.

 

오타니 쇼웨이는 일본의 야구선수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포지션은 투수이며 외야수로서, 야구의 전설적 선수인 베이브 루스 이후 그를 능가할 수 있는 투수와 타자를 겸한 선수로 평가되고 있는 슈퍼스타이다. 그런데, 이 선수가 최근 불법 도박 연루설로 매스컴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미연방수사국(FBI)이 캘리포니아 불법 도박사 마튜 보이어를 수사하던 중 오타니의 은행 계좌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450만 달러의 돈이 송금된 사실을 확인한 뒤 오타니 측에 통보하고 'LA 타임스'가 보도하며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후, 2024년 3월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는 샌디에고 파드리스와 로스앤젤리스 다저스간의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LA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의 오랜 전속 통역사 '미즈하라이페이'가 자신의 불법도박으로 발생한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오타니의 돈을 절도했다는 이유로 그를 전격 해고하게 된다.

 

야구선수 피트 로즈는 1963년 데뷔 이후 1978년까지 19 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였고, 그 기간 평균 3할대를 넘는 타율과 신인왕, MVP, 등 여러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수 은퇴 후 신시내티 감독으로 재임 중이던 1989년, 감독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팀 경기에 베팅을 한 것이 발각되어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영구 제명된 것뿐만 아니라 야구 명예의 전당에 100퍼센트 입성할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후보 자격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 그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오타니 선수 통역의 불법 도박 혐의 관련 질문을 받고 "1970년~1980년대에 나에게도 통역 직원이 있었으면 나는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언중유골의 코멘트를 하였다.

 

비록 오타니가 그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번 불법 도박설 때문에 오타니는 그의 야구인생에서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알고서도 전 통역사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자금 450만 달러를 갚아줬다면 엄청난 징계를 받게 될 수도 있다. 10년 7억 달러($7 Billions, 약 9100억원) 규모의 세계 최대 계약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큰 의문점은 어떻게 그의 통역사가 오타니의 통장 계좌에 접근할 수 있었고, 몇 달에 걸쳐 50만불씩 9번에 걸쳐 450만불의 거액이 빠져 나가는 사실을 오타니 본인이 몰랐느냐는 것이다.

 

미국 서부 최대매체인 LA 타임스 기자 빌 플라스케는 그의 칼럼에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오타니와 그의 조력자들이 이 사태를 깨끗하게 정리한다 할지라도 이 모든 도박 쓰레기 속의 풍기는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다'고 강한 어조로 의구심을 표시했다. 

스포츠 도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스포츠 도박은 기본적으로 특정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그 스포츠 도박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팀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예측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 받으려는 심리로 도박에 참여하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한 중독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의 거의 모든 분야는 '스포츠 베팅 산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시한폭탄과 같은 이와 같은 엄청난 스캔들은 이미 예상되어 있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LA 다저스' 야구팀이 4월말 주말 경기에 로저스세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원정경기를 한다. 그 중 토요일 날 오후 경기의 경기표를 구매하였다.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 야구선수인 오타니가 그의 말처럼 결백하여 운동에만 전심하는 선수로서 경기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2024년 3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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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법과질서(Law and Order) 2

  -법은 좋은 질서를 의미한다- 아리스토 텔레스(Law means good orders)

 

1994년 6월12일, O.J. 심슨의 이혼한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보이프렌드인 론 골드먼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피해자들은 두 명 모두 백인들이었다) 경찰 현장검증 보고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보건대 O.J.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이 짙었다. 이에 검찰은 심슨에게 6월 17일까지 자진 출두할 것을 요청했고 심슨은 전처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러나 그는 6월17일, 자신의 친구에게 "전 처 니콜의 죽음과 관련해 그가 연관이 없다" 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뒤 잠적하여 연락이 두절된다. 심슨이 출석명령을 따르지 않자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긴급 수배령을 내려 이틀 뒤인 19일 O.J.심슨을 체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도주극이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 되었는데 9,500만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 사건은 미국에서 매우 화제가 됐으며, 대부분의 언론은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따라서 언론을 이미 읽은 사람이 배심원이 되면 법정의 정의에 위배된다 하여 여러 번의 배심원 교체가 이루어졌었고, 최종 결정으로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이 2명, 히스패닉이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95년 10월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여 무죄 평결을 내렸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영미법 체계 때문에 심슨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된다.

그 당시는 1992년 LA 폭동이 발생한 지 2년여 밖에 지나지 않아, LA는 흑인들이 경찰들한테 인종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로 알려져 있을 때였다. 결국 로스앤젤리스 폭동 직후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법 체계는 판사에 의해 유, 무죄 및 형량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대륙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시범적이기는 하지만, 2008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는 단지 권고와 참고일 뿐이지 판사가 배심원단의 유무죄 형량판단에 구속되지 않는다. 배심원단 제도는 시민이 참여하고 운영하는 재판이기에 밀실에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비전문성, 비용 등 효율적인 면에서 배심원제도가 아닌 법관 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캐나다헌법은 5년 이상의 징역 범죄에 배심재판이 선택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지리적 및 문화적 이웃이기 때문에 비슷한 법원 시스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미국 헌법은 민사사건에서도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캐나다는 민사분쟁에 있어서 배심원 재판은 없다. 사형제도는 미국의 연방법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들에서도 가능한 형사처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1976년, 사형제도가 전면 폐지되었다.

또한, 미국의 판사는 선출되지만 캐나다 판사는 주정부 및 연방정부에서 임명한다.

 

캐나다에서 시민권자로 살다 보면,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소환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 2014년, 당시 토론토시위원 덕 포드는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게 된다. 2014년 2월4일, 그는 법원에 출두하여  " 국민의 의무인 배심원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범죄자가 나를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는 이유로 배심원의 임무를 거절하게 된다. 그가 한 말 "내가 유죄판결을 내린 사람"(The person I convict”)이라는 말은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재판에서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언사였기 때문에 포드를 포함한 그곳에 소환되었던 예비배심원 모든 사람들은 담당재판관으로부터 견책을 받게 된다. 배심원제도는 한국인의 관점으로는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이 제도의 요점은, 재판관이 아닌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이 때 판사는 재판과정을 통괄하며 법을 해석하는 유일한 판단자 역할을 하는 반면 판결은 배심원의 업무가 된다.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누군가에게 죄를 물어 그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그 죄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 혐의자가 사건 당시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재판을 예로 들면, 법원의 재판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캐나다에는 배심원들이 있다. 검사가 피의자가 자유스런 결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면 변호사는 자유롭지 않은 다른 요소, 원인 때문에 피고인이 범죄행위를 하였다고 변호하게 된다. 결국, 재판의 행위와 목적은 피의자가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것을 판단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기득권층인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하면서, 법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선언은 가난하고 병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법(Law)이 질서(Order를 지켜주지 못하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법이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예수는 그가 사랑하던 인간들의 손에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였다.

잊지 말자! 사람이 먼저이고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을!

2024년 3월15일

참고1: O.J.심슨 배심원 선정 당시, 검찰 측도 흑인배심원들을 선호하였다. 그 이유는, 백인들로만 배심원들이 정해지면 설사 승소한다 하더라도 흑인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참고2: 그리스도인(영어, 크리스찬)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라고 기록한 문서의 복음을

믿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2천 년 전 대다수의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를 구세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의 길로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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