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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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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다시 새겨 보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19세기 중엽,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 남부사회는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노동의 대가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반면, 대부분의 노예들은 한번도 자유를 누려 보지 못하였고 노예신분으로 남겨져 있었지만 그래도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려 했던 흑인 노예들이 그들 중에 있었다. 1800년대 미국 노예들 중 자유와 인권을 갈구하였던 흑인들의 꿈에 그리던 최종 정착지는 캐나다였다.

1830년대 초, '미주리주' 담배농장의 흑인노예 ‘존 안델센’은 7살 이전에 흑인노예였던 부모가 다른 주로 팔려가는 바람에 고아 아닌 고아로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타고난 근면함과 부지런한 성격의 안델센은 열심히 노동을 하여 비록 법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결혼이지만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 전보다 일을 게을리 할 것이라 생각한 그의 주인은 그를 다른 농장주에게 팔게 되고 그는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 부인과 의논 후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캐나다로 탈출을 시도하던 중 안델센은 추적자들 중 한 명에 생포되나 잡혀가기 전 단도로 그를 살해한 후 천신만고 끝에 디트로이트를 거쳐 온타리오주 윈저에 도착하게 된다. 브램튼 인근의 칼레도니아에 거주하던 1860년, 안델센은 그와 비슷한 처지의 흑인노예 친구를 알게 되었으며 그를 믿고 자신의 과거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라고 믿었던 친구의 고발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된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되어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미국 미주리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노예 폐지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의 도움으로 재심을 받게 되며 살인죄는 인정되나 ‘인신보호청원(헤비어스코포스) 요청’이 받아들여져 일단은 석방된다. 그후 1862년 크리스마스날, 존 안델센 은 미국 미주리주로 범인 인도 대신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리비에라로 본국 송환된다.

 

 

 

지난 2월1일, 토론토시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토론토의 Bright St. 와 St.Paul St. 사이의 골목을 ”Henry Box Brown Line"으로 명명(命名)]하였다.

‘헨리 박스 브라운'은 1849년 미국의 버지니아주에서,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다른 주의 대농원 (Plantation)으로 팔려가는 것을 목격한 후 그곳을 탈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우편나무상자였다. 그는 행선지가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로 되어 있는 우편나무상자를 한 백인 구두제조업자에게 83불을 주고 만든 후, 그 속에 들어가 ‘인간 화물’이 되어 27시간 만에 필라델피아에 우송된다. 필라델피아에 도착 후, 노예제도 폐지의 연사로서 활약을 하며 음악인, 마술사 등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1881년에 캐나다 토론토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토론토시의 Bright St.에 거주하며 2024년 2월1일, 그가 143년 전 살던 그 거리가 그의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BLM)’,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의 이 조직은 2012년 흑인 10대 ‘트레이브 마틴’을 총격사격으로 사망케 한 '조지 짐머만'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2013년 소셜미디어에 ‘BLM’이란 해시태그를 사용 후 대규모로 확산된 흑인 인권운동이다. 이후 흑인 범죄자에 대한 체포과정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사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분산된 네트워크로 운영되고 있어 공식적인 구조는 따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은 흑인들의 북미대륙에서의 역사와 문화적 공헌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매년 2월에 실행된다. 미국 또한 매해 같은 2월에 시행되는데 명칭을 '흑인 문화유산의 달'(Black Heritage Month)로 부른다. 캐나다의 흑인 역사의 달은 미국의 흑인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 구조의 틀은 다르다. 흑인의 북미대륙의 역사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가 되어 북미대륙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결국 그들 제국주의 산물로서 흑인의 역사는 시작되며, 흑인들의 흘린 피와 땀의 결실로서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남부는 영광과 영화를 누리게 된다. 반면 백인들의 비인도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흑인들의 필사적인 탈출은 19세기의 ‘노예 탈출 비밀조직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의 도움을 받게 된다. 비밀조직지하철도의 의미는 실질적인 철도의 의미가 아니라 비밀조직네트워크를 일컫는 말로서 탈출노예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까지 인도하는 조직적인 단체로 본부는 미국 '필라델피아'이고 그 종착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였다. 대략 3만명 내지 4만명이 국경을 넘어와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다. 특히, 1850년~1860년 사이에만 만오천명 내지 2만명가량의 흑인노예가 캐나다에 도착하게 된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 는 말을 자주하였다. 물론 시작이 좋다고 해도 끝이 좋으라는 법이 없지만 모든 일에는 처음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한밤중에 습격하여 노예로 나포하여 신대륙에서 노예로 둔갑시켜 사고 판 것은 분명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예탈출 비밀조직 지하철도"나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와 같은 움직임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모든 단추가 다 제대로 끼워졌다 할지라도 흑인인권 문제는 갈 길이 요원하다.

 

1960년대의 메이저리그 애틀랜타팀의 흑인 야구선수가 있었다. 동료들과 같은 식당에 갈 경우 그 흑인선수는 다른 좌석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백인선수가 ‘나는 자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하였다. 그때 그 흑인선수는 "아니, 자네가 흑인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 뿌리 깊은 치욕적인 감정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1963년 8월28일 '워싱톤 DC' 행진에서 행한 연설에 붙은 별칭이다. ”I have a Dream” 마틴 루터 킹의 꿈의 염원과 바람은 백인의 타인종에 대한 우월 인식의 의식구조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그냥 헛된 꿈이 될 수밖에 없다.

2024년 4월14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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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다시 쓰는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

여성복서 매기는 세계타이틀을 획득하게 되지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큰 부상을 당한다. 재활병원에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다리마저 절단하게 된다. 살아있지만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던 매기는 그녀를 딸처럼 생각했던 스승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환자가 겪는 고통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생각과 윤리적 판단에서 오는 갈등 속에 프랭크는 자신이 다니는 성당으로 신부를 찾아가 의논을 한다.

 

 

프랭키: 저는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고, 그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아이를 살리는 일은 그 아이를 죽이는 일과 같아요.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녀는 그 일을 저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신부: 하느님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합시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 결정은 오직 하느님만이 선택할 수 있는 신(神)의 몫입니다.

프랭키: 그런데 신부님, 그녀는 하느님이 아닌 나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설사 이 일이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그래서 영혼을 찾을 수 없는 깊은 어둠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는 신마저도 외면한 처절한 이 고통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안락사(존엄사)를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 제작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권투선수를 소재로 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소재를 중압감 있게 다룬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러닝타임 133분 중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명실공히 이스트우드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2005년, 제 7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5월6일, 53세의 ‘어스틴 바스타불’ 씨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불치병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고생하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하여 안락사가 허용되는 디트로이트로 가고 있었다. 다음 날인 5월7일 아침, 그의 시신은 국경을 넘어 '윈저' 근교인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찾던 바스타불 씨는 국경을 건너가서야 그의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 투쟁하던 생전의 그의 모습을 토론토스타는 1996년 5월9일자 1면 톱에 "무덤으로부터의 항변"이라는 타이틀로 게재하였다.

 

캐나다국회가 2016년에 제정한 안락사법(Medical Assistance In Dying, Bill C-14)은 의료적 조력자살을 허용하되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왔었다. 그러나 2023년 3월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하여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그 법을 허용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범위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거식증(拒食症), PTSD등 다양성을 띠고 있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례까지 열거하며 의학적으로 더 이상의 치료 가능성이 없는데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였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알버타주 에드먼턴 고등법원에서는 ‘코린피스비’ 재판장이 주관하는 안락사(MAID)에 관한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의 목적은 알버타주 캘거리에 거주하는 27세 여성으로서 안락사법에 의한 죽음의 권리를 요구하는 딸과, 딸의 선택을 저지해 달라는 아버지의 간청으로서, 부녀간의 절실한 생(生)과 사(死)에 관한 재판이었다.

 

아버지의 주장: 나의 딸은 자폐증과 주의력 결핍행동장애(Autism, ADHD)를 앓고 있으며, 한번도 부모와 떨어져 독립하여 살아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녀의 문제점은 신체적이라기보다는 우울증 정신적인 문제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안락사를 요청할 권리가 딸에게는 없다는 논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스비' 재판장은 비록 아버지가 딸을 잃는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딸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여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30일 안에 상소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근본적으로 안락사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는 말기환자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만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폄훼하여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위의 결정은 넌센스이며 인도주의를 가장한 쇼킹한 프로세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시 되는 현대사회라 할지라도 정신질환자를 안락사 관례법에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관례를 낳게 할 뿐이다.

정부는, 정신질환만으로는 조력자살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반드시 채택하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1996년 토론토 소재 일간지의 '징검다리'라는 종교란을 통해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이라는 칼럼을 기재한 적이 있다. 당시 캐나다에선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캐네디언들이 안락사의 허용을 요구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 해 1996년7월, "인간 생명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기에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글을 기고하였다. 28년이 지났고 1년반 후에는 80세가 된다. 이제 누가 내게 물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내 자신이 처절한 고통 속에 MAID를 요구하게 되어 내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안락사(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는 고통에 빠져 있는 회복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그 고통을 덜어서 마지막 가는 길의 죽음을 맞이 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존엄사여야만 하며 정신질환만으로도 안락사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2024년 4월6일.

참고: 마크 홀란드 연방보건부장관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력존엄사 실행일을 2027년 3월17일로 연기하는 법안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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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프로스포츠와 도박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영화 ‘워터프론트’는 1954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등 8개 부분을 수상한 작품이다. 

1948년, 뉴욕시 부두 근처 자동차 안, 동생 테리(마론 브란도역)와 형 찰리(로드스타이거분)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로권투 선수 출신인 동생 테리는 변호사인 형 찰리한테 전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복싱선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찰리: 너는 혜성처럼 나타난 프로복싱의 유망주였어! 너는 ‘제2의 빌리콘’과 같은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 그런데 매니저라고 구했던 그 거지 같은 놈이 너를 너무 심하게 다그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어.

테리: 문제는 매니저가 아니라 형 때문이었어. 그날 밤 경기 전,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형이 내게 말했어. “테리야, 오늘 밤 시합은 네가 이길 경기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상대 선수 윌슨한테 돈을 걸었어". 형! 오늘은 네가 이길 날이 아니라고 내게 한 그 말 생각 나? 그런데 형, 나는 윌슨을 묵사발로 만들 수 있었어. 그런데 어찌 되었지? 윌슨은 그후 챔피언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을 얻었지? 형이라면 내가 잘 되게 도왔어야지.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나를 희생시키지는 말았어야지.

찰리: 너한테 돈을 건 적도 있었지.

테리: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 형도 잘 알고 있잖아. 나는 이런 깡패 말고 권투선수로서 명예를 얻어 최고가 될 수 있었다고. 그런데, 형이 나의 장래를 깡그리 망쳐 놨어.

형 찰리는 동생 테리의 이야기를 듣고 동생 설득하기를 멈춘다. 동생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떤 일을 당할 지 이미 알고 있었던 형 찰리는, 위험할 때 쓰라며 동생 찰리에게 총을 건네 준다. 그 후, 형 찰리는 시체로 발견된다.

 

오타니 쇼웨이는 일본의 야구선수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포지션은 투수이며 외야수로서, 야구의 전설적 선수인 베이브 루스 이후 그를 능가할 수 있는 투수와 타자를 겸한 선수로 평가되고 있는 슈퍼스타이다. 그런데, 이 선수가 최근 불법 도박 연루설로 매스컴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미연방수사국(FBI)이 캘리포니아 불법 도박사 마튜 보이어를 수사하던 중 오타니의 은행 계좌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450만 달러의 돈이 송금된 사실을 확인한 뒤 오타니 측에 통보하고 'LA 타임스'가 보도하며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후, 2024년 3월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는 샌디에고 파드리스와 로스앤젤리스 다저스간의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LA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의 오랜 전속 통역사 '미즈하라이페이'가 자신의 불법도박으로 발생한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오타니의 돈을 절도했다는 이유로 그를 전격 해고하게 된다.

 

야구선수 피트 로즈는 1963년 데뷔 이후 1978년까지 19 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였고, 그 기간 평균 3할대를 넘는 타율과 신인왕, MVP, 등 여러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수 은퇴 후 신시내티 감독으로 재임 중이던 1989년, 감독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팀 경기에 베팅을 한 것이 발각되어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영구 제명된 것뿐만 아니라 야구 명예의 전당에 100퍼센트 입성할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후보 자격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 그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오타니 선수 통역의 불법 도박 혐의 관련 질문을 받고 "1970년~1980년대에 나에게도 통역 직원이 있었으면 나는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언중유골의 코멘트를 하였다.

 

비록 오타니가 그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번 불법 도박설 때문에 오타니는 그의 야구인생에서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알고서도 전 통역사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자금 450만 달러를 갚아줬다면 엄청난 징계를 받게 될 수도 있다. 10년 7억 달러($7 Billions, 약 9100억원) 규모의 세계 최대 계약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큰 의문점은 어떻게 그의 통역사가 오타니의 통장 계좌에 접근할 수 있었고, 몇 달에 걸쳐 50만불씩 9번에 걸쳐 450만불의 거액이 빠져 나가는 사실을 오타니 본인이 몰랐느냐는 것이다.

 

미국 서부 최대매체인 LA 타임스 기자 빌 플라스케는 그의 칼럼에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오타니와 그의 조력자들이 이 사태를 깨끗하게 정리한다 할지라도 이 모든 도박 쓰레기 속의 풍기는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다'고 강한 어조로 의구심을 표시했다. 

스포츠 도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스포츠 도박은 기본적으로 특정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그 스포츠 도박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팀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예측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 받으려는 심리로 도박에 참여하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한 중독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의 거의 모든 분야는 '스포츠 베팅 산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시한폭탄과 같은 이와 같은 엄청난 스캔들은 이미 예상되어 있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LA 다저스' 야구팀이 4월말 주말 경기에 로저스세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원정경기를 한다. 그 중 토요일 날 오후 경기의 경기표를 구매하였다.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 야구선수인 오타니가 그의 말처럼 결백하여 운동에만 전심하는 선수로서 경기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2024년 3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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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법과질서(Law and Order) 2

  -법은 좋은 질서를 의미한다- 아리스토 텔레스(Law means good orders)

 

1994년 6월12일, O.J. 심슨의 이혼한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보이프렌드인 론 골드먼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피해자들은 두 명 모두 백인들이었다) 경찰 현장검증 보고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보건대 O.J.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이 짙었다. 이에 검찰은 심슨에게 6월 17일까지 자진 출두할 것을 요청했고 심슨은 전처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러나 그는 6월17일, 자신의 친구에게 "전 처 니콜의 죽음과 관련해 그가 연관이 없다" 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뒤 잠적하여 연락이 두절된다. 심슨이 출석명령을 따르지 않자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긴급 수배령을 내려 이틀 뒤인 19일 O.J.심슨을 체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도주극이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 되었는데 9,500만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 사건은 미국에서 매우 화제가 됐으며, 대부분의 언론은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따라서 언론을 이미 읽은 사람이 배심원이 되면 법정의 정의에 위배된다 하여 여러 번의 배심원 교체가 이루어졌었고, 최종 결정으로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이 2명, 히스패닉이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95년 10월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여 무죄 평결을 내렸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영미법 체계 때문에 심슨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된다.

그 당시는 1992년 LA 폭동이 발생한 지 2년여 밖에 지나지 않아, LA는 흑인들이 경찰들한테 인종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로 알려져 있을 때였다. 결국 로스앤젤리스 폭동 직후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법 체계는 판사에 의해 유, 무죄 및 형량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대륙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시범적이기는 하지만, 2008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는 단지 권고와 참고일 뿐이지 판사가 배심원단의 유무죄 형량판단에 구속되지 않는다. 배심원단 제도는 시민이 참여하고 운영하는 재판이기에 밀실에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비전문성, 비용 등 효율적인 면에서 배심원제도가 아닌 법관 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캐나다헌법은 5년 이상의 징역 범죄에 배심재판이 선택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지리적 및 문화적 이웃이기 때문에 비슷한 법원 시스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미국 헌법은 민사사건에서도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캐나다는 민사분쟁에 있어서 배심원 재판은 없다. 사형제도는 미국의 연방법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들에서도 가능한 형사처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1976년, 사형제도가 전면 폐지되었다.

또한, 미국의 판사는 선출되지만 캐나다 판사는 주정부 및 연방정부에서 임명한다.

 

캐나다에서 시민권자로 살다 보면,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소환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 2014년, 당시 토론토시위원 덕 포드는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게 된다. 2014년 2월4일, 그는 법원에 출두하여  " 국민의 의무인 배심원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범죄자가 나를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는 이유로 배심원의 임무를 거절하게 된다. 그가 한 말 "내가 유죄판결을 내린 사람"(The person I convict”)이라는 말은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재판에서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언사였기 때문에 포드를 포함한 그곳에 소환되었던 예비배심원 모든 사람들은 담당재판관으로부터 견책을 받게 된다. 배심원제도는 한국인의 관점으로는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이 제도의 요점은, 재판관이 아닌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이 때 판사는 재판과정을 통괄하며 법을 해석하는 유일한 판단자 역할을 하는 반면 판결은 배심원의 업무가 된다.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누군가에게 죄를 물어 그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그 죄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 혐의자가 사건 당시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재판을 예로 들면, 법원의 재판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캐나다에는 배심원들이 있다. 검사가 피의자가 자유스런 결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면 변호사는 자유롭지 않은 다른 요소, 원인 때문에 피고인이 범죄행위를 하였다고 변호하게 된다. 결국, 재판의 행위와 목적은 피의자가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것을 판단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기득권층인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하면서, 법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선언은 가난하고 병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법(Law)이 질서(Order를 지켜주지 못하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법이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예수는 그가 사랑하던 인간들의 손에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였다.

잊지 말자! 사람이 먼저이고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을!

2024년 3월15일

참고1: O.J.심슨 배심원 선정 당시, 검찰 측도 흑인배심원들을 선호하였다. 그 이유는, 백인들로만 배심원들이 정해지면 설사 승소한다 하더라도 흑인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참고2: 그리스도인(영어, 크리스찬)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라고 기록한 문서의 복음을

믿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2천 년 전 대다수의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를 구세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의 길로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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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홍해 위기-솔로몬과 시바 여왕-

영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감독하여 잘 알려진 킹비더가 1959년 만든 영화이다. 율브린너가 솔로몬왕을, 이탈리아의 배우 "지나롤로브리지다"가 시바 여왕을 연기하였다. 솔로몬왕은 성경의 등장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시바여왕의 시바가 현대의 어느 장소인지는 또는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해서는 후대의 전승이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은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 끝인 예멘 지역의 고대국가 시바왕국을 지배했던 여왕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의 전승이다.(실제로 고대 시바지역의 메소포타미아 유적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수준으로 오벨리스크와 석재빌딩 같은 다양한 구조물들이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시바의 여왕은 성경에서는 단역에 지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에는 여왕과 관련된 많은 스토리가 내려오고 있고, 에티오피아의 전설에도 동시에 나타난다. 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대상 인물들이 동일하다는 것을 빼면 내용은 각각 달리 전달된다고 볼 수 있으며, 에티오피아에선 솔로몬왕과 시바여왕이 낳은 후손들이 오랫동안 왕조를 이어나갔다는 설이 회자되어 전승되어 왔다.

 

 

시바는 남부 예멘과 홍해 건너편 에티오피아를 다스리던 고대왕국의 이름이다. 그 당시 시바왕국은 홍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국가였으며 3천 년 전 시바여왕의 이스라엘 방문은 무역활동을 위한 것으로 사주된다. 그 지역이 3천 년 후 세계뉴스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게 테러 공격을 감행한 이후, 2023년 10월19일부터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수많은 적들 중 후티 반군으로 알려진 예멘의 반군단체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고 홍해를 지나는 배를 공격하면서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과거에는 중동전문가나 외교정책 전쟁 전문가에만 알려져 있던 후티반군으로 알려진 예멘의 반군단체는,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거리상 1700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증오하며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위대하다,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게 승리를" 

 

후티반군의 유명한 슬로건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종교적, 정치적 동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후티운동의 창시자는 후티운동 또는 스스로를 신의 조력자라고 부르는 후세인 알후티이며 명칭 또한 이 단체를 결성한 "후티"에서 따 왔다.

2004년, 후티 반군은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서서히 영토를 넓혀 2014년에는 수도 사나를 정복하게 된다. 현재 예멘은 후티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인구밀집지역 사나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지역과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정부가 통제하는 동부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후티반군은 시아파 무슬림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항하는 저항세력의 축에 중심인 이란과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지하드 테러단체,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과 동맹,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후티반군은 대담한 행동으로 국제적인 악명과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홍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결성하게 된다. 후티반군과 아랍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현 예멘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와 그 연루 세력들은 이스라엘의 동맹국이자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 연루된 국가일 뿐이다.

 

홍해는 구약성경에 의하면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구출했던 곳으로서,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를 나누는 좁은 해로이다. 또한 유럽의 지중해와 아시아의 홍해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명분 하에서 방상선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 지중해와 유럽으로 가려는 수많은 배들이 어쩔 수 없이 뱃머리를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원류와 물류대란으로 이어져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부품 없어 차 공장 멈추고, 신발, 옷, 가구배송지연 등 "물류 동맥경화 현상에 따른 피해 역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장 강력한 공습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후티반군일테지만, 시간이 경과될수록 더 아픈 쪽은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를 포함한 전세계 미국의 우방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죽어가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홍해상의 위험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딜레마는 아직도 100여 명 이상의 인질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이 승리 없는 휴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3천 년 전, 지혜의 왕 솔로몬이었다면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에드워드 핼릿카-

2024년 3월9일.

참고:이스라엘의 정보 당국에 의하면, 인질들은 Bobby trap(은폐 폭탄)된 지하굴에 갇혀 있으며 하마스 리더들의 방패막이로 이용되고 있어 설사 발견한다 해도 생명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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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법과질서(Law and Order)

-법은 좋은 질서를 의미한다- 아리스토 텔레스(Law means good order)

 

SNC-Lavalin은 1911년 설립된 퀘벡주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캐나다 국적의 엔지니어링 및 건설전문업체이다. 2만 2천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분야 세계10위권 안에 드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2001년-2011년 기간의 리비아 건설공사 수주를 획득하기 위해 리비아 정부관료들에게 4800만 달러를 준 혐의로 2015년부터 수사를 받아 왔다. 당시, 트르도 총리는 ‘에스엔씨라발린’이 기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무장관이었던 조디 윌슨 레이블드에게 부적절한 압력을 가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스캔들은 캐나다공직자윤리위원회가 “총리는 장관에게 부적절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법을 위반했다"고 하였으며  “라발린이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결말이 나게 된다. 해외입찰 수주를 위해 캐나다 회사가 해외의 공무원을 매수하기 위해서 상납행위를 하면 당연 불법이다. 허나, 연방법에 따르면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은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시설공사나 세계은행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그 당시, 트르도 총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책임을 지나, 캐나다인들의 일자리를 위해 옹호를 한 것은 사과할 수 없다" 하였다. 실질적으로 그의 주장은 많은 퀘백주의 주민으로부터 묵시적인 동의를 얻어 총선에서도 손실보다는 이득을 얻게 된다. 

 

온타리오주의 판사 임명은 온주 변호사 중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자로서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법관임명 자문기구(The Judicial Appointments Advisory Committee)의 추천으로 법무장관이 임명한다. 자문기구의 구성 인원의 조직은 대법원장의 추천에 의한 3명의 판사와, 변호사협회의 추천에 의한 3명의 변호사 그리고 나머지 7명의일 반 국민 중 법무장관의 지명에 의하여 임명된다. 지난 2월22일(목) 토론토스타에 의하면, 온주 총리 포드의 전 간부직원 두 명이 법관임명 자문기구" 위원으로 발탁되어 온주 판사를 추천할 수 있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보도를 하였다. 그 중 한 명 인 "메티유 본디(M.Bondy)는 지난 2월1일 이래 그 자문기구(JAAC)에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반면, 다른 포드의 국장급 간부직원이었던 브록 반드릭(Brock Vandrick)은 지난해 12월부터 이 위원회의 멤버였다.) 온주 포드 총리는 그 기사가 발표된 후, 대중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집중조명을 받게 된다.

 

"나와 보수당은 우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임명하라고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선출 되었고 나의 전 두 직원이 법관임명 자문기구에 지명된 것은 백퍼센트 잘된 일이다 .나는 절대로 신민당(NDP)이나 자유당(Liberal)의 사람들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뜻이 맞지 않으며 나는 우리와 뜻이 맞는 보수당(PC) 성향의 강한 판사를 선택해서 범죄자들을 감옥에 집어 넣어 예정된 형량을 살게 할 것이다. 사법기관에는 너무 동정심이 많은 재판관들이 있어 그들이 강력범들을 보석으로 풀어 주어 선량한 시민들이 공포로 떨고 있다." 
"나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명해서 나쁜 놈들을 감옥에 있게 할 것이다."(I am appointing like-minded people that believe in-keeping bad guys in jail). 지난 2월23일 브램톤에서 있었던 기자와의 면담과 그후에 온주의회에서 있었던 포드 주총리의 담화를 종합한 내용들이다.

 

2022년 6월, 온주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은 지난 한 해 그린벨트 스캔들로 곤경을 겪었다. 그러나,"아바커스데이타"여론조사의 보고에 따르면 포드 총리의 보수당은 지지율이 지난 1월보다 3% 오른 41%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유당은 변화 없이 27%로 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민당은 4% 하락한 19%, 녹색당은 8%를 보이고 있다. 포드 총리에 부정적인 응답이 47%로. 긍정적인 대답 30% 보다 높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포드 총리 외에 확실한 대안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포드 총리가 가끔 그의 기질과 감정을 대중 앞에서 폭발시키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그는 매우 유능한 정치가이다. 2014년 토론토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후 2018년 패트릭 브라운에 이어 온주 보수당 당수가 되기까지 그의 정치 역경은 절대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2018년 당 수 경쟁 전까지도 그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은 오직 조성준 의원뿐이었다.) 그러나 보수당의 새 당수가 된 후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두 번의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게 된다.

 

온타리오주의 법관임명자문기구는1988년 자유당 정부에서 기획되었고 1995년 신민당의 봅 레(Bob Rae) 정부 당시 완성된 초당적인 기구이다. 적어도 현 법무장관인 다우니 장관이 들어서기 전인 2021년까지는 그러하였다. 사법기관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법이 지니는 가치나 이념의 독립성이 침해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여야 하는데, 나와 코드가 맞는 "Like minded” 된 복제된 재판관들만이 법원에 배속된다면 시민들이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기관을 신뢰할 수 있을까? 글로브앤메일에 의하면, 2명의 전 포드 총리의 고위직 간부직원들은 온주정부에 정식 등록된 로비스트라 한다. 특히, 자문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된 "Mr. Bondy"는 무기류 취급회사의 로비스트이기 때문에 '이해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 소지가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법기관에 대한 정치적인 허세이며 도전으로 볼 수 있는 포드 수상의 법과 질서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그린벨트 보다도 더 심한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축구 경기에서도, 강팀의 무리한 공격은 전력이 약한 팀에게 역전의 기회를 열어 줄 수 있다.
2024년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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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사사오입 정부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은 1959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이다. 정치깡패 임화수가 제작하여 만든 영화로서 당시 인기배우가 총 출연하였는데, 일반 제작자였으면 불가능한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1960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관제영화이기는 하나 내용 자체는 이승만에 대한 특별한 과장 없이 어느 정도 사실에 입각했다. 이 영화가 제작되었을 당시만 해도 대한제국시대를 경험한 인물들이 생존해 있던 시대로서 당대의 복식이나 시대상, 어투 등이 잘 재현되었다고는 하나, 이승만이 완전무결한 선역으로만 그려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임화수: 어, 김희갑이? 너 잘 왔다. 이리와 이 새끼야.(그의 부하들이 김희갑을 끌고 와서는 무릎을 꿇린다.) 야 합죽이! 너 이 새끼야, 너 죽어야 알겠어?

김희갑: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임화수: 뭐? 뭐가 어째? 야, 이 새끼야! 너 지난번 내 작품에 바쁘다고 출연 거부했다면서? 그리고 이번 소집 때 왜 안 나왔어?

김희갑: 그거야 나도 사정이 있으니까 못 나오는 거 아닙니까?

임화수: 뭐라고? 사정? 너 이 새끼가!

김희갑: 도대체 왜 때리시는 것입니까?

 

김희갑 구타사건 또는 합죽이 구타사건은 제1 공화국 말기인 1950년대 말 제 4대 국회의원 선거 때로, ‘청년 이승만’ 영화 출연과 정치행사에 참여하라는 임화수와 동대문상인연합회의 요구를 김희갑이 거절하자 임화수가 김희갑을 폭행하여 전치 4주라는 큰 상처를 입혔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로 알려져 있는 임화수는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정치깡패로 악명을 날렸고, 권력을 이용해 영화제작에 관여하였으며, 연예계의 황제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연예계 밤의 대통령이었다. 

 

사사오입 개헌은 1954년, 제 3대 국회에서 정족수 미달의 헌법 개정안을 위헌으로 통과시킨 사건이다. 그 헌법개정의 주요 목적은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 집권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52년 발췌 개헌을 통한 직선제로 2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연히 1956년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면 더 이상 대통령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승만과 집권여당인 자유당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게 된다. 1954년 9월6일 136명의 의원의 찬동 서명으로 개헌안이 국회에 상정된다. 개헌안의 표결은 11월 27일 비밀투표에 부쳐졌다. 개헌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203명의 2/3이상, 135.33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그러나 표결 결과는 가결 135표, 부결 60표, 기권 7표가 나와 1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11월 28일, 자유당과 정부는 수학적으로 '사사오입'을 설명하면서 “소수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이 될 수 없으므로 반이 안 되는 소수점 이하는 삭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헌법개정안 가결 통과를 발표했다.

이 위헌이자 무효인 개헌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은 개국의 대통령으로 추앙 받을 수 있었던 위치에서 독재자로서의 이미지가 공식화 되고 반민주주의 상징이 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비록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고, 3.15 부정선거와 같은 수많은 오점을 남기었지만, 기본적으로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식 대통령중심제 정부를 확립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또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고, 미국에서 활동한 덕분에 국제정세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약소국가의 대표로 어떤 외교를 펼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1953년 6.25전쟁 막바지에 아이젠하워의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 의견을 무시한 채 단독으로 휴전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1953년 6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한다.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휴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연합국 측이나 스탈린의 죽음으로 맥이 빠져 있던 공산 측까지 모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예측 불허의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 당시, 동북아에서 일본 중심의 국제질서로도 얼마든지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선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와 국군 20개 사단으로의 증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된다.

 

한국동란 후,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론을 내세우며 강력한 반공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 하에서 정치는 혼란을 되풀이할 뿐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1960년 3월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에 학생과 시민들은 부정선거에 궐기하여 4 .19혁명을 성사시키게 된다. 4.19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뒤, 1960년 5월29일 이승만 박사와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하와이로 망명을 한다. 5년 후 1965년 7월23일 유해가 되어 말없이 돌아왔다. 4일이 지난 7월27일, 서울정동교회에서 영결식을 한 뒤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으로서 이승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건국 대통령으로서는 존경을 보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남 이승만 박사의 공적이 그의 과오에 의하여 퇴색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로가 과오의 면죄부가 되어서도 아니 된다.

2024년 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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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달리는 철도, 철마 이야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였던 36년간 많은 혜택을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예로 특히, 철도건설에 있어서 일본이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말한다. 시기상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무단통치가 문화통치와 겹치는 점이 있기는 하나, 일본제국은 절대 한반도의 한민족을 위해 철도를 건설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전쟁은 보급이라는 구호 아래 철도가 보급에 최우선책이라는 것을 각성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 덕분에 일제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여러 곳에 철도를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물자보급과 더불어 호남지방의 쌀을 수탈하기 위한 철도들이 많이 생겼으며, 호남선의 주된 목적은 호남지방의 곡물들을 빠르게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제일 목표였다.

 

1887년, 주미공사 박정양이 워싱톤 D.C에 부임하여 근무한 이후 고종과 한반도 철도산업을 논의한다. 1887년 2월9일에는 조선왕조가 임명한 뉴욕 조선영사 프레이저(E.Frazer)가 김윤식에게 ‘전등 및 철도신설 계획의 요청’ 공문을 보내고 이에 1888년 10월 경인선 설치를 미국에 제안하였다. 1892년 3월 고종은 주한 미국전권공사였던 제임스 모스(James R.Moss)와 철도창설 조약을 체결했으나, 일본정부의 지속적인 방해를 받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은 부설권을 가져오기 위해 조선이 정치적으로 어려워 철도 대금을 회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을 유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투자자들이 투자하였던 자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제임스 모스는 자금난을 겪게 된다. 설상가상, 기술적인 난제까지 겹쳐 공사는 중단된다. 1898년 5월10일, 경인선은 당시 1백만 달러(170만 52원75전)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양도돼 버린다. 뒤이어 경부선과 경의선의 부설권도 일본에게 넘어가며 일본의 의도대로 철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비록 무능한 통치자로 각인되어 있는 고종의 조선이었지만 그래도 철도산업을 시도한 1887년은 절대 늦은 출발이라 할 수 없다.  

 

서부개척시대(Wild West Period)는 1850년대부터 1890년경까지 미국이 서부지역 프론티어를 개척하던 시기를 말한다. 1848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가 그 개척을 부채질하며, 1869년에는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다. 이 철도의 개통이야말로 서부 개척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주민들이 황금을 찾아 나서거나 정착을 위해 자리 잡으려고 하던 땅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던 주인이 있는 땅이었다. 백인들이 정착한 초기부터 미합중국의 기틀이 튼튼해지기까지의 시간은 미국 원주민들의 공동체가 소멸해 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것은 철도건설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있어서 자연은 그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삶의 방편이었다. 당연히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두 집단의 충돌은 필연적인 비극을 불러오게 된다. 미국의 원주민들은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강탈하는 야만인들이 아니었으나 그 점이 그들의 약점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링컨은 젊은 시절 가게점원, 뱃사공, 우체국 일까지 온갖 고생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변호사를 했는데 변변한 학벌이 없는 상황에서 2류 변호사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가 오게 된다. 1857년 한 건설회사가 미시시피강을 건너는 철교를 건설했는데 증기선이 철교의 교각을 들이받아 불에 타 가라앉는 사건이 발생했다. 증기선 선장은 철도회사를 고소했고 이 재판에서 철도회사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링컨 변호사였다. 강물의 속도와 교각의 각도를 면밀히 조사한 뒤 배가 충돌한 이유는 조타수의 실수라는 그의 주장과, 또한 운하의 배를 위해 철교를 해체하게 되면 국가의 손실이라는 그의 주장이 배심원들에게 받아들여져 링컨이 변호한 철도회사가 승소하게 된다.
링컨은 철도가 신생국 아메리카를 세우는 가장 튼튼한 기초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1859년8월14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링컨은 아이오와주 블러프스에서 ‘닷지’라는 성을 가진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서부로 가는 철로는 위도 42도 그곳 블러프스에서 출발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사후 4년, 1869년,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다.

 

일본의 남만철도는 만주를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지나가고, 러시아의 동청철도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나갔다. 이 두 노선이 만나는 지점이 하얼빈역이었다. 이곳에서 1905년 초대 조선통감을 지내다가 추밀원 의장을 지내고 있었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 체프를 만나 만주지역에서 세력권을 분할하는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철도 문제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 회담은 시작하기도 전에 무산된다. 왜냐 하면, 그는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 아령지구 안중근 특파대장’에게 사살당하기 때문이다. 안중근 대한의군참모총장은 작전이 성공한 후 적군에 회부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그 날은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일본의 보호 아래에 있던 상태였다. 안중근 의사는 이 때 조선보호론 실현의 주역인 이등박문을 제거함으로써 을사조약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예정대로 1910년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였다.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과 일본이 한국에 가한 차이점은,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여 사회, 경제적 수탈과 함께 지구상에서 한국민족을 말살시키려 하였던 점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국가도 요구하지 않았던 창씨개명을 강요하였고, 한국어 사용을 억제하였다. 
일본은, 달리는 철도, 철마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무참히 짓밟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잊지 말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을!
2024년 2월11일.

 

참조: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 저서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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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이스라엘과 하마스, 삼손과 데릴라

 

1950년대 영화에서 ‘헤라클레스’ 하면 떠오르는 배우 ‘스티브 리브스’가 있다. 세계육체미대회 챔피언 출신으로 ‘세실 B. 데밀’이 감독한 영화 삼손과 데릴라에 오디션을 보았으나 그 후 ‘빅터 마츄어’가 삼손역을 맡게 된다.

삼손이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의 원주민인 블레셋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가자에서 피의 분쟁은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후,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이 지역에 세운 도시였다. 구약의 유대인 판관,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데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여인이었다. 판관은 재판관이라는 뜻으로, 사법관의 역할과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삼손은 그러한 판관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삼손은 아주 힘이 세 혼자 몇 천 명을 죽일 수 있는 괴력을 가진 장수였다. 힘으로 삼손을 제압할 수 없다고 느낀 블레셋인들은 미인 데릴라로 하여금 삼손을 유혹하게 한다. 삼손은 애인과 하느님과의 약속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데 아름다운 데릴라의 꼬임에 빠져 신과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저버리게 된다. 결국에는 눈이 먼 채로 적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게 된다.(그 후,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영웅이 되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신은 젖과 꿀이 흐른다던 가자지역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선택되었다는 의미의 선민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수단 무기가 되어 가나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과의 악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1월27일 새벽, 12명의 무장한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도시 제닌에 위치한 이븐시나병원에 여성과 의료진으로 위장하고 들이닥쳐 암살작전을 보였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CCTV 영상을 보면, 이 특공대원들은 이슬람 여성처럼 보이기 위해 히잡을 쓰거나 의료진 옷을 입고 병원으로 침입했다.(그들 중 일부는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장총을 들고 있었으며, 접이식 휠체어와 베이비시트를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코만도 작전’ 공격으로 지난 10월7일 이스라엘엔 1,200명을 살해하고 240명의 이스라엘인을 인질로 삼은 공격에 가담하였던 ‘바젤 형제’ 두 명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던 ‘모하메드 잘라네’를 제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 병원 대변인의 보고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3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표적 살해되었으며 지금까지 병원 내에서 체포와 폭행은 있었지만 이와 같은 암살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한다.

(제네바 협정 19항에 의하면 국제인권법은 병원의 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구약성서 아브라함 시대부터 등장하는 블레셋은 삼손의 판관시대까지 이스라엘 보다 우위에 서서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다윗 왕조가 등극하면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정복당하며, 그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한 왕국이 되었다.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였다. 로마는 본래 유대라 불리던 이 지역의 명칭을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블레셋의 땅이란 뜻의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 시초라 한다. 그 후, 유대인들이 쫓겨난 이 지역에 아랍계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현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7백만가량이며 그 중 2백만 정도가 가자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국제연합의 위임 통치국으로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주권을 주장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영토는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어떻든, 팔레스타인은 유엔회원국 136개국 중 하나로 승인되었으며 2012년 유엔총회 옵서버 국가임을 인정받은 상태이다.

 

가자지구에서 식량배급 등 인도주의적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직원 12명이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도움을 줬다는 구체적 내용이 담긴 이스라엘의 보고서가 공개돼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토론토스타’는 지난 29일 하마스와 연루된 의혹을 받는 기구직원 12명 중 6명의 10월7일 행적이 담긴 이스라엘 정부의 보고를 입수해 보도했다. 그들 6명 중 2명은 이스라엘인 납치를 도왔고, 다른 직원 2명은 이스라엘인들이 죽은 현장에 머물렀으며, 나머지 2명은 기습공격에 사용된 무기 등 물류조달에 협조했다.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직원은 약 3만 명이다. 이스라엘의 보고에 의하면 그 중만 2천 명이 가자지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 중 10%인 1,200명이 하마스 또는 이슬라믹 지하드에 연루되어 있고, 상당수 직원들이 무장단체에 가까운 친척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구호기구(UNRWA) 직원들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자 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는 캐나다와 미국도 포함되어 있는데 캐나다는 이 기구 1년 예산 $150억($1.5 Billon) 중 가자지역에 $40 million 지원 약정금액을 중단하고 유엔의 다른 기구인 유니세프, 적십자, 세계식량기구 등으로 자금지원을 전환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문화권인 캐나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은 것에 대한 동정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현재 강자인 이스라엘이 또 다른 억압자가 되어 약자인 팔레스타인을 괴롭히고 있다. 

 

안토니오 구테호스 유엔 시무총장은 연루된 직원들의 혐오스런 행동엔 대가가 따라야 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을 징벌해선 안 된다고 호소하였다.

음식과 물과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노약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도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서는 아니 된다. 현재로서는 가자지구에서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만한 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

2024년 2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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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미국의 25시

“카우보이 애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애리조나 카우보이/말채찍을 말아 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 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달려라 역마야 애리조나 카우보이/  -명국환 노래-
1950년대 어느 날, 작곡가 전오승은 서부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노래의 시초였다고 한다. 지금 들어보면 곡이야 어떻든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등 노랫말이 한국적인 환상이 어린 가사라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서부영화의 전성시대는 6.25동란 후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중반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 세대에 미군이 가져온 외국문화는 세계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하고 있던 시대였다. 당연히 케리 쿠퍼, 존 웨인, 아란랏드 등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한국동란 후, 당시의 미국은 우리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미지의 꿈의 나라였으며 위대한 나라였다.
미국의 서부지역에는 옛날 스페인에서 온 소들이 야생에서 살고 있었다. 이 소떼들을 붙잡아 기차역이 있던 동북쪽 도시 캔자스주의 도지시티(Dodge City) 등에 소를 몰고 오던 직업이 카우보이였다. 물론 운반된 소는 도축되어 동북부 도시들에 식육으로 제공되었다. 카우보이의 시초는 소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야생 소를 붙잡아서 팔던 상인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약 12명 정도의 카우보이가 팀을 이루어 2500마리 정도의 소를 몰고 다녔다 한다. 생활방식은 유목민에 가까웠는데 도지시티 등 지역신문에 르포기사로 나면서 카우보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며 그에 대한 로망이나 전설이 후대에 생겨나게 된다.

 

미국 개척시대 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카우보이, 인디언, 금광, 갱으로 대변되던 시절로서 19세기 중반인 1850년경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카우보이들은 주로 텍사스주에서 활동하며 야생 소들을 붙잡아 동북부 도시와 연결된 기차역으로 운반하던 역할을 맡았었다. 이후 서부개척에 따라 마을과 농장이 지어지자 카우보이의 역할도 운반에서 목축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개척지는 공권력이 미치지 않아 그들이 모여 사는 집단은 쉽게 악당들과 인디언의 표적이 되게 된다. 서부 개척시대 당시 가장 무서웠던 적은 공권력의 부재였다.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카우보이들도 보안관처럼 총을 들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호신용으로 사용되었던 총은 200여 년이 지나면서 미국을 ‘총의 천국’으로 만들게 된다. 미국의 큰 도시 다운타운은 해가 지면 총잡이들이 활개치는 신판 서부스타일 ‘와일드 웨스트’(Wild West)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어찌 보면 자승자박이라 할 수 있다.

아들: 아버지, 제 시계가 멈추었군요. 몇 시입니까?
아버지: 지금 25시다.
아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모르겠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25시다. 유럽문명의 시간이다. 이것은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된 시간이다. 메시야의 왕림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간이다. 이건 최후의 시간이 아니고 최후의 시간에서 한 시간 후이니까!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는 기계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주인공 모리츠를 등장시켜 고난 속에서도 인간적인 자유와 순결을 지켜냄으로써 기계문명에 항거하는 인간의 처절하고 끈질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25시’는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즉 신의 구원으로도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한다. 

트럼프: 우리들의 후손인 미국학생들은 교실에서 쫓겨나고 이민자들의 난민학교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미국을 최고로 만들려 하나 바이든은 이 나라를 최악으로 만들려 한다. 이민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
91가지 죄(Crimes)의 기소를 받아 역사상 알카포네 보다도 더 많은 죄의 재판을 기다리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말의 행보를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선거 구호이다.

 

미국이 한때 위대했던 적이 있었다. 노예해방 선언은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1월1일, 미국의 노예해방에 관하여 링컨 대통령이 발표한 선언이다. 그 당시 북부에 대하여 반란상태에 있던 남부의 여러 주의 노예를 즉시 전면적으로 해방한다는 내용이다. 노예해방의 본질적 실현은 종전 후 1865년에 미국 헌법수정 제13조가 비준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전쟁 전 미국 남부는 노예들의 피나는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농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하여 큰 부를 창출하게 된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주인들에 의한 신체적 폭행과 고문으로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 비록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흑인노예의 완전한 차별이 남부지방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노예해방을 이루었을 때 미국은 위대하였다.
여성의 투표권이 없던 1900년대 초 여성의 참정권 또한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위대하였던 것은 1965년 대까지 성행하였던 인종차별의 완전폐지이다.(그렇다 할지라도 아직도 흑인 인권은 무시당하고 있다.)

2021년 1월6일, 바이든 미국대통령 선거 인증일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지 3년 후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그가, 트럼프가 돌아왔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이 다시 백악관에 돌아온다면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미국의 해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쫓아내 없앨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의 말을 곱씹어 보면 나치의 히틀러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 1930년대 유럽의 ‘25시’가 재현되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구호의 이면에는 미국의 국익이 우선한다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함정이 있다.
파시즘(Fascism)이라는 단어가 2024년에는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기를 바란다.
2024년 1월26일. 

 

참고.
1. 전체주의: 국가 이념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
2. 미국의 여성 참정권은 주와 지방에서 20세기 초에 점진적으로 실현되었으며 1920년 미국 수정헌법 제 19조의 통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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