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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철 칼럼

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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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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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OHIP card or Credit Card

 

1974년 3월초 토론토에 왔다. 비록 몸은 캐나다에 영주권을 받은 이민자로 와있지만 동화되기 어려운 "아웃 사이더"와 같은 이방인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OHIP Card(온타리오주 건강카드)를 받으면서, 아! 나도 세계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무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캐나다 영주권자라는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일년 후 3월 31일, 토론토에 있는 "세인트 마이클" 병원에서 첫째가 태어났다. 병원비용은 모두 무료였다. 2년이 지났다.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 대학" 병원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온주에서 퀘벡주로 주가 바뀌었지만 모든 의료 비용은 역시 무료였다.

캐나다는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메디칼 시스템”(Medical System)은 사회주의 체제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의료 봉사자들은 국가 소속 공무원이다.

지난 1월 16일(월요일), 온주 포드 수상은 의료기관 적체현상(206,000 cases) 타개를 위한 3단계 해결책으로써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사설의료 시행을 발표하였다.

 

1단계:

a. 14,000 백내장(Cataract) 환자들을 대상으로 윈저, 키치너, 워털루, 오타와 사설기관과 협력.

b. MRI, CT 스캔

c. 산부인과 및 안과시술

 

2단계:

위, 장 내시경 등 위급하지 않은 시술 점차 확대

 

3단계:

골반, 무릎관절 수술 등으로 확대

 

2016년 7월 안면 좌측에 마비가 와 미시사가에 위치한 병원 응급실에 갔다. 십 년 정도 기간에 세 번째 온 안면 마비라 병원에서도 신중을 기하여 MRI, CT스캔 등을 포함한 많은 테스트를 받게 하였다. 그런데 병실이 부족해 3일간 응급처치실 복도에서 기다려야 하였다. 온타리오주는 그 당시 자유당 정부의 시절이었다.

의료기관의 인원, 시설부족 등으로 빚어진 전반적인 의료 정체현상은 온주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역의 고질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Covid-19 팬데믹"으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 포드수상의 언급처럼 무엇인가를 하여야 할 단계이며, 그 방안 중 하나가 언급된 사설 의료기관의 도입이었다. 이미 퀘벡주나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별 문제가 없을듯한 방안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윤창출이 주목적이 아닌 비 영리단체인 정부관할의 병원 등 공공기관의 의료기관에서 이윤창출이 주목적인 사설 의료기관으로 옮긴다는 것은 포드수상의 “온주 건강보험(OHIP)에서 전액 부담한다”는 언약에도 불구하고 많은 억측을 불러 일으킨다. 자연스럽게 공공 의료기관에 투자하는 대신 사설 의료기관에 투자하려는 의도의 투명성이 문제가 된다.

 

반대 의견의 분석:

  1. 비싼제품을 구입하게끔 유발하는 "업셀링(Up selling)"을 유발한다.

온주건강보험이 별표 4개의 스텐다드 호텔이라 하자. 전액이 무료인 별표 4개의 호텔에서 별표 다섯의 호텔로 구매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여기 슬픔에 잠긴 유족들이 있다. 장의사에 가서 매니저를 만나 관을 구입하려 한다. 담당자는 저렴한 가격의 검소한 관을 보여주고 점차 고급 고가의 관을 보여준다. 슬픔에 잠긴 유족들은 마지막 가는 길의 고인을 위해 불필요한 고가의 관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이 전형적인 업셀링(Up selling)이다.

2. 백내장 수술은 온주보험이 전액 지불해준다. 그러나 아직 안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업그레이드(Upgrade)된 수술을 추가 비용을 내고 받을 수 있다. 업셀링(Up selling)이다.

3. 공평하게 기다리는 대신 급행료를 내고 VIP 대우로 유도할 수 있다. 응급환자부터 우선 처리하는 형평의 규칙을 위반하게 된다.

4. 비영리 단체에 비해 투명도가 가려진다.

토론토 스타의 보고에 따르면 최악의 장기요양원(LTC) 20개를 조사해보니 20곳 중 17개의 요양원이 이익을 창출하는 사설 요양원이었다 한다. 이익을 내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사설기관 보다는 정부가 관할하는 공공기관이 더 신용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18년, 온주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한 보수당의 당수 포드 수상은 건축업자들과의 모임에서 그린벨트를 개방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가 그것이 여론화되자 Greenbelt를 절대로 훼손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시간이 흘렀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정든 고향, 고국을 떠나 캐나다에 둥지를 튼 이민 일세이다. 말이 좋아 이민이지 그것은 이방인의 아웃사이더의 삶이었다. 그 와중에도 삶을 헤쳐나가는 원동력 중 큰 비중이 캐나다의 건전한 선진 의료 시스템이었다. 이 귀중한 자산이 업셀링(Up selling)되어 부유층의 우선적인 기득권이 될 징조가 보여 우려된다.

만약에 그린벨트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여놓고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 일부 건축업자들과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지난 1월 21일 포드수상은 온타리오주 런던시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건축업자들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하였다.)

온주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는 1천70만 명이다. 지난 선거에서 40% 가량인 460만 명이 투표 하였다. 그 중 44% 가량이 보수당에 투표하였다. 610만명 유권자의 두 눈이 주시하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우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23년 1월 21일)

 

(참고: 이방인은 약간 배타적인 감정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하면 단순히 외국에서 온 사람을 말하지만 그는 이방인이야 라고 말하면 타지에서 왔고, 우리지역의 말을 별로 잘하지 못하고, 우리 지역의 지리나 관습을 잘 모르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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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선물의 한계

 

에피소드 1

 

친구 A: 미안하다 친구야, 쉬고 있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찝찝해 연락한다.

친구 B: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친구 A: 다른 게 아니고 지난번 내 결혼식 때 온 축의금 봉투에서 너의 이름으로 온 것을 보았는데 달랑 오천 원짜리 3장만 들었더라. 혹시 실수가 아닌가 해서. 친구야! 실수가 맞지?

친구 B: 실수가 아닌데.

친구 A: 어! 실수가 아니라고?

친구 B: 어! 절대 실수가 아냐.

친구 A: 그러면 일부러 그랬다고.

친구 B: 응! 누구는 종이로 된 청첩장을 정성껏 보냈는데 내게는 모바일로 왔더라.

 

친구 A에게 10년 지기 친구 B가 축의금 오천 원짜리 3장을 넣은 것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카톡 내용이다.

 

에피소드 2

 

선배: 결혼식에 와 줘서 고맙다. 그래, 음식은 맛있게 먹었니?

후배: 네, 맛있더라고요.

선배: 그런데, 목에 음식은 잘 넘어 가드냐?

후배: 어! 왜요!

선배: 왜요는 일본 노래야! 너 축의금 10만원만 넣었더라!

후배: 네, 근데???

선배: 10만원 내고 와이프랑 둘이 오순도순 먹으니 데이트하는 것 같고 기분이 아주 짱 였겠네.

후배: 그런게 아닌데!

선배: 내게 서운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쬐쬐하게 돈으로 장난하지 말고 남자답게 말로 해라!

후배: ~~~~~

 

한국 헤럴드경제에서 "축의금 오천 원짜리 3장 넣은 친구"라고 게재한 글을 구글에서 보고 내 나름으로 재구성하여 보았다. 마음의 전달인 선물이 사고 파는 물건으로 전락하여 상품화할 때 그곳에는 미성숙의 자본주의로 도금된 황금주의만이 있을 뿐이다.

저질 코메디의 비극적인 일면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씁쓸했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이곳 캐나다에 산지가 내년이면 50년이 된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아! 이민자가 아닌 이방인으로 산지가 반세기가 되어 가네. 나도 이제는 "아웃 사이더"(outsider)라는 벽을 무너트리고 이 감옥에서 나와 이민자의 대열에 당당히 끼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거부감을 주는 언어가 있다. "다이어스포라"(Diaspora)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민(immigration)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민이 자신의 문제를 이주하려는 국가에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는 기대감의 자유의지의 발현인 것에 비해 "다이어스포라"는 강제적이며 타의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그런지 재외동포 사회를 "코리안 디아스포라(영어로는 다이어스포라)라 불려지는 것을 듣게 되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캐나다에 정착하기 시작한 한국인들의 이민역사는 1960년대 후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타민족에 비해 정착하기 힘든 유전자(DNA)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피의 흐름 즉 혈통을 중시하는 단일민족이라는 "피의 형이상학"이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는 의미이다.

이방인이면서 그 이방인의 벽을 해체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이민자의 해방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사는 곳, 그곳이 어디인들 바로 여러분들이 있는 곳이 우리들의 꿈의 무대이며 무덤이다. 잊지마라. 인생은 결국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선택이라는 것을!

크리스마스 이브, 11명의 나의 가족이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졌다. 1974년 나와 처가 캐나다에 정착한지 50여 년, 두 아들, 두 며느리 다섯 명의 손자와 손녀 대 부대가 되었다. 그날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크리스마스 추리 아래에 놓여 있는 제각기의 선물을 열어보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 11명이 제각기 선물을 열 때마다 울려 퍼지는 기쁨의 함성과 고마움의 표시에 뒤따르는 사랑이 엉킨 포옹. 그 누구도 그 선물이 얼마짜리냐고 묻지 않는다. 거기엔 때묻지 않은 정성과 사랑이 있었다.

자 이제 우리는 해체 철학자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주어진 시간"에 나오는 선물에 관한 글을 음미하여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선물에 관해 우리의 허위 의식을 심오하게 파헤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선물은 주는 편이나 받는 쪽이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물로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하였다.

선물을 주기는 하였지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이야기이다. 덧붙여 설명하면 선물을 주었다는 의지만이 중요하지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의미이다.

당연히, 선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내가 주었으니까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체의 대가를 바램 없이 베풀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2023년, 아직도 당신에게 축의금을 준 사람의 방명록을 가지고 있다면 과감히 버려라. 그리고 잊어라! 수확의 기대 없이 심는 법을 배우자. (2023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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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2023-01-12
인권(Human rights)

 

2022년 12월 9일. 1948년 유엔이 제정한 세계인권의날(12월10일) 특집으로 토론토스타지가 ‘장소연’ 북한 인권운동가의 글을 게재하였다. "나는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는 인권이라는 말을 알지 못하였다"라는 타이틀의 글을 간략히 소개한다.

그녀의 고향은 함흥이며, 1990년대 북한 대 기근의 생존자이다. 그냥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었던 어머니와 그녀는 병든 아버지에게 열흘 후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두만강을 건너 친척이 사는 중국 땅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친척이 먹다 남은 밥을 개에게 주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한다. 북한에선 한 알의 옥수수 강냉이가 없어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에선 개에게 먹다 남은 밥을 먹게 하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24세였던 그녀는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되어 고초를 겪게 되며 탈출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의 7년여 중국생활은 그녀가 미국대사관으로 난민신청을 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으로 보내진 그녀는 탈북 난민들을 위한 ‘하나원’에서 생활 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북한인들의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라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인권이라는 개념, 인간에게 권리가 있다는 말은 그녀가 태어난 이래 처음 듣는 말이었다. 당연히 어불성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5년 후인 2011년, 캐나다 외무부는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 세계 인권과 자유상을 제정하였는데 북한인권단체가 받게 되며 그 역사적인 순간에 이 기고의 저자 장소연씨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오게 된다.

나는 캐나다에 50여 년을 살고 있다. 1975년 5월경 토론토에서 이사를 가 몬트리올 근교 피엘폰(Pierrefonds)이라는 지역에 거주하였던 적이 있었다. 내 처와 2달 된 큰애와 함께 필요한 생필품을 슈퍼마켓에서 사고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동양사람이 드물던 시대였다. 약 6세 정도의 백인 어린이가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였지만 “저 사람들이 차이니스들이냐”고 질문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젊은 어머니는 당황해 하며 그런 말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들, 우리보다 좀 일찍 캐나다에 정착하여 캐나다인들이 된 그들의 눈에 동양사람이면 다 중국사람으로 보였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들의 질문에 그렇게 당황을 하였는가? 차이니스라는 말이 동양사람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아들이 호기심으로 말한 것이 동양사람들을 업신여겨 한 말이라는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공기에 대해 "어, 공기 너 여기 있냐"고 묻지 않는다. 인권, 인간이면 자연히 누리게 되는 권리이며 자유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사실 별 큰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자유, 평등, 인권 등의 어휘들은 기독교 사회가 주축을 이루던 유럽에서도 18세기에 들어서야 등장하게 된다.

‘루소’, ‘몽테르’ 등 주로 프랑스의 계명주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주창되었으며, 인권탄압의 최고 악질의 표범인 노예제도의 폐지법안은 그에 영향을 받아 영국에서 1772년 처음 제정된 이후 1888년 브라질에서 재 제정될 때까지 100여 년을 요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법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남의 예속 하에 무신경한 ‘내로남불’의 무지막지한 정신까지 제거될 수 없다는 것을 남북전쟁 후 노예폐지 선언 후의 미국에서 우리는 적나라하게 발견하게 된다.

2023년의 시작이다. 1948년 12월 10일 2차 대전 후 더 이상 그런 무모한 전쟁에 의해 저질러진 무모한 살상과 호로코스트(Holocaust)와 같은 처참한 인권탄압을 막기 위해 제정된 세계인권의 날이 제정된 지 75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앞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이해된다고 하였던가?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며 무모한 전쟁을 막고 있는가?

아니다! 푸틴과 같은 전쟁광의 뒤틀어진 오산과 광기는 세계를 언제든지 광폭한 재앙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북한의 상황도 러시아의 푸틴 정권보다 못하면 못하였지 더 나을 것은 없다.

이제 우리는 "나는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는 인권이라는 말을 알지 못하였다"라고 절규하는 장소연씨의 말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북한주민들이 인권과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따라 김정은 일가가 그 기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북한정권의 핵무기화에 항거하게 하여야 합니다. 북한인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한 사랑의 그리스도교가 1800여 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인류에게 인권이 있다는 주장이 북한에서 일어날수 있기를 2023년 모두에 염원하여 본다.

오천 년 ‘한’을 담은 인내천(사람이 하늘이다) 세 글자를 일월 잿빛 하늘에 써본다! (2023년 1월 8일)

 

(참고)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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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5
개처럼 살았다(3)-개처럼 안 살기

 

(지난 호에 이어)

“무릇 동심이란 간절한 마음이다. ~~ 어린 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 ~~ 동심은 왜 갑자기 없어지는 것일까?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또 좋지 않은 평판이 추한 줄 알고 그것을 가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분서(태워버릴 책) 중 동심설 편-탁오 이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즉,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끊임없는 선택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적 소설 "말"에서 그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모든 행실에서 나무람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어렸을 때의 그를 회상해 보면 그를 총애한 할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삶이었지 진정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토로 하였다. 다양한 가면을 치장하여 가장된 삶을 살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다고도 하였다.

탁오 이지의 말을 빌리면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인데 이미 어른 같은 아이, 나이보다 성숙한 어린아이인 사르트르는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가 타인에 의하여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르트르보다 거의 5백여 년 전 유럽의 반대 반향인 동양이라고 불려지는 지역에 살았던 사상가 탁오 이지가 말하려는 속내를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처음 마음인 동심이 어찌 없어질 수 있겠는가? 견문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자라나서는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탁오 이지에게 있어서 그의 동심은 50세 이전에 나는 개처럼 살았다고 눈물어린 고백을 하는 순간 되살아나게 된다. 앞의 개가 짖으면 나도 덩달아 짖었다는 그의 고백이 어찌 그만의 고백일까.

공자는 마흔 살에 현혹되지 아니하였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 하였다. 자신만만한 공자에 비해 50십 이전에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중해야만 하는 지 몰랐다는 그의 고백은 너무나 인간적인 인문 정신이 배어 있다 할 수 있다. 오십이 넘은 어린아이, 어딘가 찰리 채플린 류의 코미디 한 점도 느끼어 지지만 바로 그 순간이 동심을 되찾은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1952년 봄 피난시절, 거제도 장승포 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마도 입학 첫날 이었는지 많은 참관인이 있었나 보다. 선생님의 질문이 밤에 자다가 소변을 누는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아이 저 아이들 대답이 요강이라 하였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아니요 깡통이요” 라고 대답하였다.

보통학교 일학년에 입학할 정도의 나이에 학생이 대답하여야 할 수준이 아닌 대답에 참관하였던 많은 학부모들이 웃음을 터드리게 된다. 팔십 즈음에 들어가는 지금도 단언컨대 그때의 나는 내가 본 것 그대로 요강대신 깡통이라 하였을 뿐인데 그래서 좀 모자라는, 나이에 맞지 않는 그 대답에 어른들이 웃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적이 있었다.

공자는 15세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 했는데 내 기억의 15세는 전혀 학문에 뜻이 없었다. 관심은 영화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런데 15세 즈음에는 선정적인 내용의 책을 선호하여 책 빌려주는 책방을 기웃거려 드나들며 빌렸던 기억이 있다. (벌레 먹은 장미, 10권으로 된 임꺽정 전, 데카메론, 차타레 부인의 사랑 등)

학창시절, 군대생활 그리고 일년 정도의 직장생활과 결혼을 끝으로 1974년부터 캐나다 이민 생활의 새 출발이 있었다. 공자가 30세에 들어 학문생활 기초를 두었다 했던 30 즈음의 나는 365일을 일하는 컨비니언스의 매니저였다. 그 당시의 나의 꿈은 일주일 하루만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게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다.

서양속담에 위험한 사십이란 말이 있다. 청춘과 작별하고 노숙한 시기에 접어드는 자칫 허영과 허무에 빠질 위험이 있는 나이라는 뜻일 것이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럴 위험은 없었는데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모아져 작은집을 살 수 있었고 일층 집이라 증축을 하고 싶어 2층도 올려 보았다. 돈도 있고 집도 생기니 5일만 일하고 싶어 그런 류의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찾다 보니 카페테리아 스타일의 경양식 식당을 하게 되었다. 그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민생활의 경제적인 내리막으로 치닫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오십대와 육십대쯤을 오가며 나는 눈물어린 빵을 먹는 경험을 듬뿍하게 된다. 80즈음에 가며 인생 정말이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내가 고국에 갔을 때 나의 친구들은 내가 학창시절이나 현재나 별로 변한 게 없다 한다. 80에 가까이 가면서 왜(?) 변한 게 없겠는가. 변한 게 있지만 다른 게 있다면 남의 눈치를 덜 보며 산 것은 사실이다. 탁오 이지의 말을 빌리면 남들보다 덜 개처럼 산 것 같다.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에서 매일 같이 선택하며 살았는데 남들에 비해 덜 때가 묻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탁오 이지가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개처럼 살지 않기 위한 방법이 시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쁨의 만남 보다는 슬픔이 많은 냉정한 현실에서 아이와 같이 놀이의 기쁨을 창조하며 기쁨의 만남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아이는 순결이요 망각이며, 새 출발이요 유희이며,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요 최초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니체가 말하였다.

이제 새해가 밝아왔다. 우리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타인에 의하여 지배 받으며 극복하는 과정을 밟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그린벨트의 훼손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자신의 삶과 감정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자. 그럴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우리들의 뒤에 올 세대들에게 덜 상처를 받는 사회를 꿈꿀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잊어버린 인문학 정신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들과 철학가들이 환대 받는 사회를 2023년에는 더욱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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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개처럼 살았다"(2)

 

(지난 호에 이어)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중 ~~ 왜 공자를 존중해야 ~~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속 분서(태워 버릴 책), 탁오 이지(1527-1602)

 실생활의 체험을 통해 고통을 경험한 탁오 이지는 입고 먹는 것을 떠나 인륜 논리를 논하는 것을 부질 없는 청담으로 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은 누구나 쓸모 없는 사람이 없다고 본 그는 유가가 지배하던 시대에 걸맞지 않는 평등정신을 주장한 시대의 이단자며 반역자였다.

특히, "이"를 근본으로 삼는 주자학의 일원론을 비판하고 "정"을 내세워 부부의 중요성과 남녀 평등을 역설한 것은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게 한다. 결국, 그는 76세의 나이에 음란 방종하고 혹세무인 하였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탁오 이지는,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지 않는 자들에게 죽음으로써 분노를 토하리라"고 예언했듯 자결을 함으로써 시대를 향한 분노를 토해냈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 편의점 매니저로 일하던 나는 친형님과 함께 몬트리올 서쪽 외곽지역에서 “Fruit Bowl”이란 상호의 가게를 인수하여 경영하였다. 당시 퀘벡주는 슈퍼마켓 규모의 상점에서는 주류(맥주, 와인)를 취급할 수 없었지만 컨비니언스 규모의 상점에서는 맥주, 와인 등을 팔 수 있어 경영에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1970년-1980년대, 캐나다에 정착을 하였던 한국인 이민자들의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을 경영하며 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형 슈퍼마겟 체인 등이 일요 영업 허용 획득 이후 매상 감소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2천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특히 담배 매상이 크게 줄어 그나마 복권 커미션에 의존하여 보나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던 어려운 시점에 도달하게 되는 그 시점, 혜성같이 나타난 정치가가 있었다. “덕 포드(Doug Ford)" 현 온타리오주 수상이다.

2018년 봄, 주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놓은 보수당의 당대표 "포드"는 주류 판매 자유화를 언급하기 시작 하였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인 업계는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포드"는 특정 슈퍼마겟에서만 맥주, 와인 등 주류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서 술을 팔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친 김에 결정한다는 말처럼, 그 해 3월말 경 조성준 의원과 함께 한인실업인협회를 방문한 포드는 보수당이 집권하게 되면 편의점에 주류판매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며 보수당의 주요 선거 공약 중에 하나가 되게 한다.

2018년 6월, 그 당시 시니어가 되어 은퇴를 하였어도 많은 한국계 유권자들은 편의점을 경영한 경험이 있고, 그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한국계 업주들의 고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수당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게 되며 한인 업주들의 실낱 같은 주류판매에 대한 소망은 또다시 물거품이 된다.

12월 16일(금), 컨비니언스 스토어 체인 7-일레븐(7-Eleven)에서 주류판매를 할 수 있는 면허를 온타리오주류게임공사(AGCO)로부터 획득하였다는 소식을 "한인 뉴스속보"에서 보았다. 유별나게 인내심이 많은 온주 편의점 업계에서도 4년 전 선거공약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시점으로 여겨진다. (컨비니언스 주류판매 허용 공약은 지난 온주 6월 2일 총선에서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포드의 유명한 좌우명이 있다. "약속하였고, 그 약속은 실행되었다"(Promise Made, Promise Kept). 투표 전 선거공약과 집권 후 많은 약속이 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게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컨비니언스 주류판매"였고 지난 11월 29일 통과된 "법안 23"의 그린벨트를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동물은(개는) 약속을 안한다.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지켜지기도 하지만 그 약속을 깨기도 한다. 하지만, 지도자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켜지지 못한 경우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뒤 따라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Leadership)이다. 실수는 할 수 있다. 알지 못해 실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산된 거짓은 허용될 수 없다. 하얀색은 하얀색이어야 하고 검은색은 검어야 한다. 백을 흑이라 우기고 흑을 백이라 할 수는 없다. (2022년 12월 17일)

 

(주: 지난 2015년, 자유당 정부는 450여 개 슈퍼마겟 매장에 맥주판매 등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The Beer Store”(Labatt, Molson, Sleeman)와 계약을 맺어 1억 달러를 투자하게 했으며 투자는 실행되었다. 만약 그 계약을 해약하는 경우, 10여 년간 10억 달러 상당의 해약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그 계약은 2025년 만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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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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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개처럼 살았다"

 

"나는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탁오 이지, 1527-1602)

중국 명나라 시대 당시의 기존 질서를 비판한 양명학의 좌파라 볼 수 있는 탁오 이지는, 76년의 생애 중 관직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기 시작한 쉰네 살부터 수많은 이론을 내놓게 된다.

그에 의하면, 공자는 자신만이 옳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맹자와 주자가 한통속이 되어 공자만 배우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한가지 논리에 집착하여 죽은 책을 전파하는 비극적 결과를 낳게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가난을 겪었던 경험 때문인지 그는 유가의 학자들을 부귀와 영광을 추종하는 집단으로 내몰아 분류하였다. "군자만 성인이 되고 벼슬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뼈있는 그의 말처럼 성자와 범부로 가리는 계급적 불평등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그는, 유가지만 도가와 불교에 심취하였고 "마테오 리치"의 서구사상을 습득한 시대의 반항아였으며 이단자였다.

그런 그도 오십 전에는, 금전과 재산이 인생의 슬픔과 즐거움, 순풍과 역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절감하여 관직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관직을 떠난 후, 나이 오십 이전에 자신은 앞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짖는다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고 토로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더욱 눈물겹게 느껴진다.

11월 28일, 법안 23(Bill 23)이 통과되기 전이다. 미시사가 주민들은 "보니 크롬비"(Bonnie Crombie)가 시장인 시로부터 온주 정부가 제안한 "법안 23"에 대한 반대의견을 지역구 주의원에게 전달해달라는 팸플릿을 받게 된다.

하기의 내용은 팸플릿의 내용을 요약한 번역문이다.

법안 23 내용

(1면)

1. 10년 안에 백오십만 주택을 건설한다. 그 중 12만 주택이 미시사가에 건축 예정.

2. 저소득층 주거 건설 자금 격감.(Less funding to build affordable housing)

3. 공원 대지 감소와 건축업자가 공원의 위치를 선정

4. 친환경, 문화유산, 그린벨트 토지 희생(Sacrifice environment,heritage,and greenbelt lands)

#지역 온주 국회의원에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내는 세금이 건축업자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십시오.

 

(2면)

여러분은 법안 23(Bill 23)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온주의 더 많은 주택을 신속히 건설한다는 법령은 여러분들의 인생의 질을 저하시키기 때문입니다.

1. 거의 $1 Billion의 손실로 새 도로와 산책길, 도서관, 소방관 그리고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는 공원과 녹지대를 위한 투자의 어려움.

2. 5%내지 10%의 주택세 인상예상. 예; 73만불 주택은 평균 $300 이상의 주택세 부담.

(주의; 그 이익금은 건축업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며 집을 짖는다는 보장이 없다.

세금 납부자들이여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미시사가 시장 크롬비는 지난 6월 온주선거 당시 포드를 지지하였던 시장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는 싸움에 도전장을 보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권당인 보수당 국회의원, 그 누가 당이 결정한 정책을 반대하면서까지 지역구 주민의 의견을 대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을까? 아니다. 미시사가 시장 크롬비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탁오 이지”가 50 이전에 하지 못한 일을 지역구 의원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도 믿지 않았다.

향후 10년 안에, 온주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포함한 지역에 백 오십만의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법안 23"을 지난달 28일에 이미 통과시킨바 있는 포드수상은 또 하나의 야심 작품인 법안 39(Bill 39, Better Municipal Governance Act. 일명 The Strong Mayors)가 통과된 지난 목요일 12월 8일, 브람톤 시장 "패트릭 브라운"이 “존 토리" 시장 다음으로 막강한 시장의 권한을 갖게될 것이라고 암시적인 시사를 하면서 한때 그와 견원지간이었던 현 브람톤 시장을 추겨세우기도 하였다.

반면, 우리와 함께 같은 배를 타려 하지 않는 시장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미시사가 시장이라 주장하면서 더 이상 칭얼거리지 말고 자신에게 동조하라고 한다.

미시사가 시장 크롬비도 포드 수상의 막가파 스타일에 대응하여 포드 수상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그녀 또한 시장으로서 미시사가를 위해 가장 필요한 당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임무를 한 것이라고 응수하였다. 80만에 달하는 미시사가시의 시장인 크롬비의 선구안적인 안목으로 볼 때 어쩌면 포드 수상의 한계를 보고 지금이 절연할 때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지난 6월 온주 선거당시, 온주 총 유권자 1070만명 중 40% 조금 웃도는 460만명만 투표하였다. 40퍼센트 가량 투표 참가율에 44% 대중 투표(Popular vote)로 다수당이 되어 정권을 잡은 정부보다는 60% 가량의 6백10만명이 침묵하며 주시하는 표심을 크롬비는 겨냥하였을 것이다.

낑낑거리며 칭얼거렸던 자가 누구인지 "키르케고르"에게 물어야겠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역사는 앞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이해된다" (2022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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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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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8
현재를, 지금 이순간을 즐겨라

 

장자: 물고기들이 조용히 잘도 논다. 물고기들이 매우 즐거워한다.

혜자: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들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줄 아는가?

혜자: 그렇지. 내가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알지 못하지. 그와 마찬가지로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름이 틀림없네.

장자: 근본으로 돌아가 이야기 하세. 처음에 자네가, 내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그런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물은 것일세. 나는 지금 이 호수의 다리 위에 있으면서 저 물 속의 물고기와 마음으로 통해서 그들의 즐거움을 안 것일세.

 

 대화의 논리 형식으로 치면 혜자의 승리이다. 그런데 장자는 논리학이 아니고 언어학이다. 또한, 논리적인 혜자에 비해 장자는 변신의 귀재이다. 장자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나비가 장자가 되기도 한다.

 소통과 연결의 전문가 장자에게 있어 존재의 경계선은 무수히 부서지고 변경된다.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는 조상을 간다. 그때, 장자는 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 자네는 부인과 함께 살면서 자식도 기르고 몸이 함께 늙어가다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은 혹 그럴 수 있겠으나 북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 그렇지가 않네. 그녀가 죽었을 때 내가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볼 때 원래 생명이 없었네. 그 뿐만 아니라 형태도 없었지. 기 또한 없었지. 흐릿하고 아늑한 사이에 섞여 있다가 기가 생기고 형체가 생기고 그것이 변하여 생명이 갖추어 졌네. 그것이 지금 또 바뀌어 죽음으로 간 것이네. 이것은 춘하추동 네 계절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과 같네. 그 사람은 천지 사이의 큰 방에서 편안히 자고 있네. 그런데 내가 큰 소리로 따라서 운다면 내 스스로 천명에 통하지 못하는 것 같음으로 울기를 그쳤네.

 

 장자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깨달아 죽음을 자연스런 변화로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가 백인들 사회에 속하면 그냥 "짐"(Jim)이라 불려진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외딴섬 파트산의 주민들에겐 그는 "로드 짐"(Lord Jim)으로 불려진다. "로드 짐"은 "조셉 콘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주인공이다.

 시대 배경은 1899-1900년 경이다. 영국의 1등 항해사 “짐"은 부상으로 자바섬에 머물며 치료를 받게 된다. 회복을 한 후, 화물선 파트나에 승선하게 된다. 메카로 가는 회교신자들을 잔뜩 때운 그 배가 항해 중 심한 태풍을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짐"은 선장과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승객들을 내버리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그런데 "짐"이 항구에 도착해 보니 아뿔싸, 그들이 내버린 배가 멀쩡히 정박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재판에 회부되고 승무원 자격을 박탈 당할 뿐만 아니라 겁쟁이, 비겁자로 낙인 찍힌채 버러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가 재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말레이지아 외딴섬 "파투산"에 정착하면서 이뤄진다.

 그는 이 섬의 주민들을 수탈하는 강도단 두목에 맞서 주민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여 승리를 하고 "로드"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강도단 두목 제너럴이 "짐"과의 약속을 어기고 촌락을 역습하면서 그 과정에서 촌장의 아들이 사망하며 "짐"은 그 책임을 지게 된다.

 촌장은 "짐”에게 마을을 떠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나 다시는 책임을 회피해 도주하지 않기를 맹세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을 향하여 간다. 자기를 더 이상 경멸하지 않는 자, 인간 말종이 되지 않기 위해 그것이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처럼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And if not now, when?).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조금만 믿어야겠다. 현재라는 시간의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안쪽은 과거가 되고 이제부터 미래가 시작된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야말로 모든 과거와 미래가 만들어지는 필연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도, 대부분의 인간은 현재라는 문에서 내일이라는 미래에 올 죽음을 느끼며 매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현재의 진행형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미래에 올 죽음에 대한 도전적 자세이며 긍정적 승부욕이 아닐까.

니체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그대의 육체로 살아라! 살아있는 이순간 잘 웃고 잘 먹고 살아 있음을 자축하라! 이것이 그대가 온 힘을 다해 이루어야 할 평생의 숙제다. (2022년 12월 5일)

 

*추신: 이미 월드컵 전반전에 4 대 0으로 끌려가며 지고 있는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필사적인 투혼을 보여 후반전에 한 골을 만회한 대한민국팀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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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2022-12-01
아미니(Aminie)

 

11월 21일, 이란과 영국간의 카타르 월드컵 1차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반 22분이란 응원석에서 "아미니"라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미니”는 지난 9월 23일 히잡(Hijab)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한 22세 여성의 이름이다. 전반 22분은 그녀의 나이를 의미하고 있었다.

22분전, 이란축구 국가 대표팀은 영국팀과의 경기 시작 전 국가가 흘러나오자 어깨동무를 한 채 굳게 입을 다물고 모두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에 연대하는 행동이었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한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고 여성, 생명, 자유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야유를 보내며 당국에 항의하였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입헌 군주제도를 무너트리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신정정치"나라이다. 이란 국가에는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공화국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 젊은 여성의 무고한 죽음은 여성 인권탄압에 대한 저항의 불씨를 지폈으며, 혁명으로 세워진 이슬람 공화국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번져가고 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 국가 연주시 침묵을 지킨다거나 거부의 표시를 보여준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49 얼스 풋볼팀의 쿼터백 "케펄니크"(Kaepernick)는 트럼프 정권시절 경기시작 전 국가가 울려 퍼질 때 한쪽 무릎을 꿇음으로써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무언의 저항을 표명하였다.

결국 그의 행위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프로 선수로서의 그의 경력은 팀에서 퇴출되며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란은 이슬람 혁명으로 이루어진 신권 정치국가이다. 공화국에 대한 도전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는 체제이다. 만약 북한선수들이 북한 국가가 연주될 때 단체로 항거하였다고 상상해보라. 아마도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용감하였다. 경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장 "하지시피"는 대표 모든 선수단은 이번에 희생된 이들을 지지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란은 2달여간 지속된 항거 운동에서 400여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6천명 가량이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한다.

오죽하면 운동선수들까지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목숨을 담보로 한 대형사고로 여겨져 안타깝다. 그들 선수단이 이란으로 귀국하였을 때 받을 고초가 눈에 선하다.

히잡은 옷, 말, 행동 등 무엇이든 덥고 감추는 것으로 정의된다. 물론, 여성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히잡의 가장 시각적인 표시는 머리카락을 감추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에 끌려가 죽은 “아미니"는 운이 나쁘게도 머리카락이 히잡 밖으로 찔금 나와 구금되었다 한다.

여성이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건 서구적인 사고방식이며, 이슬람의 가치, 문화적 전통에 위배된다고 한다. 그런 이란도 1979년 혁명 이전에는 성 분리정책이 없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학교에선 남녀가 서로 분리되어 생활했으며, 가족관계가 아닌 남성과 여성은 서로 함께 있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결혼하려면 처녀 증명서가 필요한 이란 여성들이었다.

몬도가네(Mondo Cane)다. 풀이하면 개 같은 세상이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 년대 한국에서는 미니 스커트, 장발이 미풍양속을 해친다 하여 단속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유치한 정치가들의 근시안적인 저질 코미디였다. 그래도 이란 사태와 비교하면 애교 있는 희극이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문화적 차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위선적인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남성적인 언어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인권 문제의 도전이며 박탈이었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사회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는 여성의 삶을 폭로하여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북한팀 선수에 정대세 재일교포 출신 선수가 있었다. 한국국적, 북한국적 그리고 일본국적 모두를 가진 선수로 북한팀 대표 주력선수로 출전하였다. 브라질과의 경기 전 북한 국가가 울려 펴질 때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수령님의 하늘 같은 은혜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자연히 눈물이 나왔다 한다.

비록 이란 국가팀의 대표선수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선수라 할지라도 인권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북한과 비슷한 수준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이란이라 더욱 걱정이 된다.

마산상고 합격자 김주열이 / 경찰에게 타살된 3월 / ~~ / 아무도 몰래 물에 던져진 뒤 / ~~ / ~~ / 그 주검에 매단 돌 풀어져 떠오른 뒤 / 거기서 4월혁명은 시작되었다 (고은 ‘김주열’ 중에서)

 

김주열 열사. 1960년 3월 15일 당시 15세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의 시신은 그로부터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게 된다. 떠오른 시신의 오른쪽 눈에는 최루탄이 박힌 끔직한 모습이었다.

4.19혁명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발단이 되었고, 침묵을 지키던 교수들이 4월 25일 학생들이 흘린 피의 보답인 공동성명과 데모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하게 되었다.

이란 선수단의 무언의 투쟁이 좋은 결실을 보기를 바란다. 한국 축구팀은 유독 이란에는 약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합 전까지는 내가 싫어하던 팀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 캐나다 그리고 이란이 내가 좋아하는 팀이 되었다.

이란 축구 대표팀은 경기에서는 영국에 졌지만 그들은 더 큰 싸움에서 이겼다. 자유를 지키겠다는 그들 선수의 장래가 정치적 제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2년 11월 23일)

 

*추신: 이란 국가 대표팀은 11월 25일(금),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두골을 넣어 2:0으로 승리하였다. 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란 국가대표 선수단이 귀국하면 반정부 행위자로 분류돼 징역 등 각종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심하게는 처형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460 명이 죽었고 1160명이 다쳤다. 이란 국가 대표팀은 두 번째 경기인 웨일스와의 경기에서는 국가를 따라 불렀다. (2022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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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2022-11-24
애국가와 오! 캐나다

 

 큰 아들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들: 아빠, 월드컵에서 16강에 안착하기를 원하는 3팀을 선정해 보내줘. 내 선택은 1. 한국 2. 캐나다 3. 영국이야.

 아빠(나): 나는 세 팀이 아니고 두 팀인데 제일 먼저 한국 그리고 캐나다 팀이야. 두 팀이 다 16강에 도달해 결승전까지 나란히 진출하기를 바란다.

 FIFA 월드컵은 1930년 첫 대회가 열렸으며, 4년마다 열리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축구대회이다. 솔직히 말해 한국과 캐나다가 나란히 월드컵에 진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고 떠났던 1974년, 이곳 캐나다는 아이스하키 종주국 나라라 할 수 있었다. 축구는 그 당시만 해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운동 종목이었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기존 캐나다인과는 달랐다. 특히 토론토 도시 곳곳에 모여 살던 이탈리아인들에겐 축구는 열광적인 스포츠였다. 우리 아이들이 7살, 5살이었던 1982년, 이탈리아인들의 밀집지역인 에그링톤과 더프린지역에 있는 이탈리안 슈퍼마켓을 운영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해 열린 스페인 월드컵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서독을 3대 1로 꺾고 우승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경영하던 가게 지역은 온통 열광하는 이탈리아인들의 환호의 물결이었으며, 우리 아이들도 이탈리아 삼색기를 들고 덩달아 "비바 이탈리아"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 이것이 대한민국 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4년 후, 1986년 멕시코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한국도 참가하였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 이후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대어를 낳게 된다. 10회 연속 본선 행을 이룬 국가는 한국 외에 다섯 국가 즉,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아르헨티나뿐이다.

 캐나다는 1986년 첫 출전권을 얻은 후 36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2022년에 들어서서야 카타르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하게 된다. 캐나다 팀에겐 축구변방 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역사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그래 바로 그거야, 한국사람은 한국에 살아야지! 그곳이 내 고국이고 나를 태어나게 한 고향인데.

 그런데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별일로 보이지도 않는데 척 하면 쉽게 미국이나 캐나다 등 지역으로 떠난다. 좀 이름 있다는 학자들을 보면 그 힘들다고 하는 입시지옥을 겪고 들어간 한국 대학 졸업장이나 학위보다도 미국 명문대학 학위를 들고 목에 뻑뻑한 힘을 주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느 때는 미국사람보다도 미국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처럼 느끼어진다.

 삼십 즈음에 이곳에 와 80을 바라보는 나는, 인생의 3분의 2를 이곳 외국 땅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도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묻는다면 한국인이라 한다. 이미 한국 국적상실이 되어 법적 지위에서 영락없는 캐나다인이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아니다, 단호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살아야지요."

 20년 후 2002년, 이탈리아인들이 살던 지역에서 그들과 섞여 “비바 이탈리아”를 외치던 우리 아이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쥐어 있었다. 한국은 연장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안착하게 된다.

 아, 대한민국!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스포츠가, 운동 경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6월 26일 오후 2시, BMO 경기장에서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과 캐나다 여자 축구대표팀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캐나다 메이플리프 국기를 든 1만6천여 명의 캐나다 축구팬들 사이에 나와 작은아들이 있었다. 양국 국가의 순서가 있었고 관례대로 방문국가의 국가가 먼저 연주되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내겐 한국인이 외국에서 듣는 대한민국의 국가였다. 곧이어 캐나다 국가 오! 캐나다 순서였다. 1만6천여 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타디움을 흔들었다. 그 중에는 캐나다 국가를 따라 부르는 내 아들도 있었다. 그때 그는 여지없는 캐나다인이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우루과이, 가나 그리고 포르투갈 팀과 예선전을 치르게 된다. 강팀들이다.

반면, 캐나다는 벨기에, 크로아티아 그리고 모로코와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 대전 중 상위 두 팀이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두 팀 다 힘든 상대들과 대전을 하게 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한국이 캐나다보다는 16강 진출 확률이 높다 한다.

 "공은 둥글고, 게임은 90분 동안 지속된다" 축구경기의 예측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이 둥글기 때문에 결과는 요행보다 실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말이다. 요행보다는 그래서 공이 둥글기 때문에 실력 있는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한국은 2002년 4강의 신화를 쓰면서 공이 둥글다는 숨겨진 진실을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은 운이 아니었다. 세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투혼의 노력이었다.

 옛날, 1950년대 축구코치들이 즐겨 쓰던 말이 있다. 개발에 땀이 나게 뛰라고!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혼을 빈다. (2022년 11월 20일)

 

(참고: 개는 땀구멍이 없다. 하지만, 약간의 땀샘이 있는데 그게 바로 개 발바닥이다. 개발에 땀이 나게 뛰라는 의미는 해내기 어려운 일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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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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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전사자를 추모하는 날(Remembrance Day)


지난 11일(금) 캐나다현충일에 브램튼 메도베일묘역에서 엄수된 한국 재향군인회의 추모행사 장면


 

어여쁜 소녀가 날 찾아오거든/ 멀리 전선으로 떠났다고 전해주오/

남긴 말이 없냐고 묻거든/ 없다고 전해주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거든/ 나도 울며 떠났다고 전해주오

(어느 학도병의 일기장에서)

 

그 병사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살고 싶다"

 

 1918년 11월 11일 11시경, 독일제국이 항복함에 따라 세계 1차 대전은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총성이 멎었을 때 살아남은 전우들은 꽃다운 나이에 죽은 동료들을 그곳에 묻은 채 산 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살아남은 전우들은 그날 그 시간을, 추모의 날로 추모의 시간으로 정하였다.

 하지만 인류는 아무것도 그 전쟁에서 얻어내지도 배우지도 못하였다. 전쟁의 비참함과 그 피의 뒤에 남겨진 전우와의 무언의 약속, 평화를 지키겠다는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다.

 30년 후, 세계는 더 많은 젊은이의 피를 흘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다. 왜 전쟁은 일어나야만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웠어야만 하였는가?

 꽃다운 젊은 나이에 죽어간 전쟁의 용사는 말한다. 뒤에 남은 여러분들이 우리를 기억해준다면 우리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저희를 잊을 때 우리는 두 번 죽습니다. 평화를, 전쟁이 없는 평화를, 그래서 우리는 전쟁터였던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이네/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잘 들리지 않네/

이제 우리는 유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낄 수 있었고 석양의 해짐을 바라보았다네/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었는데/ 이제 우리 플란더스 들판에 누워있다네/~~~

우리와의 신의 그대 저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

 (존 멕크레이 중령)

 

 멕크레이 중령은 1915년 봄 전사한 동료 "알렉시스 헬머" 중위의 무덤가에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꽃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숨을 쉬고 사는 동물 중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그 믿음이 깨어지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린다. 뒤에 남긴 우리는 당신들의 고귀한 피의 흘림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여야만 한다.

 리멤버런스데이는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전쟁 영웅 서사시의 노래가 아니다. 슬픈, 못다 핀 젊은이들의 피의 절규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을 잠들게 할 수 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 거기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 죽지 않았거든요/ 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그대 문 앞에 있을 거예요. (2022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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