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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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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크리스티 핏 공원(Christie Pit Park)의 폭동

 

1933년 8월16일, 현 코리아타운에 위치해 있는 크리스티 핏 공원에서 유태인으로 구성되어있는 “할볼드”(harbord)야구팀과 주로 이탈리아인으로 형성되어있는 "세인트 피터스" 팀과의 야구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가고 있을 시점, 주로 영국계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이 갈고리 십자장 모양의 "스와스티카"(Swastika) 기를 휘두르며 각목, 쇠 파이프, 벽돌 등으로 무장한 채 경기장에 난입하여 난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 난동은 폭동으로 번져 만 여명이 참가하게 되는 집단 폭동 거리 난투전으로 확대된다.

1933년, 당시 토론토시 인구는 82만명 가량이었고 그 중 80퍼센트가 백인들인 앵글로 캐나다인(Anglo Canadian)인이었다. 반-유태인 정서와 더불어 반-천주교(Anti-Catholic) 움직임이 있던 때였는데, 그 중심에는 나치성향인 일명 “스와스티카 클럽"이 있었다.

그 시점이 북미대륙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실업률이 35퍼센트까지 치솟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불평할 대상이 필요하였고, 눈엣가시였던 유태인들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탈리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등 다른 민족의 이민자들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유태인들이 가장 큰 마이너리티 그룹이었다.

하지만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계 토론토인들에게는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유태인들은 2등 시민 이었다. 특히 유태인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가 있던 시대였다. 그 한 예로 온타리오 호수가 수영장에는 유태인들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있을 정도였다.

영국계 개신교(Anglo Saxon Protestants)와 친 나치계 주도에 의한 유태인 및 천주교인이 대부분인 이탈리아인에 대한 공격은 양측 많은 부상자를 내었으나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한다. 하나 그 난동은 당시 캐나다에 심각한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산 증거였고, 그 당시 토론토 시장이었던 "윌리암스 스트와드"는 "스와스티카” 문장인 일명 나치기의 사용과 “인종 증오 스피치"(Hate speech)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난동은 세간에 잊혀진 사건으로 남아 있었으나, 1987년 이 폭동에 관한 책이 출간 되면서 다시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33년은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반 유대인 정책을 선포하기 시작한 때였다. "스와스티카"는 그 당시 나치 히틀러 정권이 사용하던 가치이며 문장인데, 반드시 히틀러 추종자들만이 사용하는 심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도 극우성향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상정적인 표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추종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당시나, 작년 1월말 캐나다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프리덤 콘보이(Freedom Convoy)의 시위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되었던 상징적인 단골 메뉴이다. (스와스티카의 본래 뜻은 행운 또는 복지를 나타내는 스바스티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한다. 하늘을 통과하는 태양의 이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였다 한다.)

지난 5월18일(목), 크리스티 핏 공원에선 8학년부터 10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크리스티 핏 공원의 난동"이라는 야외 연극이 상연 되었다. 이 야외연극에 스폰서 역할을 한 교육기관의 수장인 온주 교육장관 “스티븐 레체"에 의하면 일부 극우 세력의 증오 인종차별에 맞서 당시의 유대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은 당당히 맞서 투쟁 하였으며, 이를 거울삼아 모든 캐나다인은 인종차별에 결연히 대항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캐나다는 역사가 짧은 나라이다. 그러나 거대한 땅덩어리와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세계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가 1960년 중반부터 정식으로 이민을 받은 이후 많은 한국사람들도 정착하여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 유일이라 할 수 있는 모자이크 문화의 나라로 발전하며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캐나다 곳곳에서는, 특히 앨버타 등 서부지역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바람과 유사한 극우세력에 의한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한다. 프리덤 컨보이(Freedom Convoy)와 같은 극우세력의 저변에는 90년 전 크리스티 공원의 난동과 유사한 맥락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앞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이해된다고 하였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된 그 연극이 지향하는 목적처럼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 첫 번째 배워야 할 과제는 증오에 의한 인종차별의 항거이다. 그 길이 경제 균등과 빈부 차이의 조절, 노년연금, 건강보험, 교육비 지원 등 캐나다와 같은 사회보장제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들이 초석으로 삼아 병행해나갈 길이다. (2023.5.22)

 

참고:1931년 캐나다 주요 도시 인구.

 토론토: 810,477명

 몬트리올:1,023,158명

 밴쿠버: 351,491명

 오타와: 175,98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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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판도라 상자

 

2023년 2월말 글로벌 뉴스는 집권당인 자유당 소속 연방의원 중국계 “한동"(돈벨리 노스)현 의원이 2019년 연방총선을 앞두고 열린 자유당 경선에서 중국 총영사관의 도움을 받았다는 뉴스를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보도하였다.

그 익명의 소식통에 의하면, “캐나다 정부 보안국(CSIS)이 중국 정부의 개입정황을 파악하여 현 트르도 정부에 "한동"(Han Dong) 후보에 대한 후보 지명을 철회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트르도 수상이 이를 거부했다는 주장이었다. 결론적으로, “한동" 후보는 2019년 선거에 당선 되었고 2021년 조기 총선에서도 당선된다.

이 소식통은 그 후, 한동 의원이 토론토 주재 중국 총영사를 만나 중국에 2년 넘게 억류 되어 있던 두 캐나다인(Michael Spavor, Michael Kovrig)을 석방하면 야당인 보수당이 이득을 볼 것이므로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하였다는 폭로 기사를 발표하게 된다.

반면, 한동 의원은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며 자유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발표하게 된다. (현재 글로벌 뉴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 중이다.)

그 후 전반적인 여론은, 글로브 뉴스 매체를 통한 캐나다 정부 보안국내의 내부 고발자의 익명에 의한 제보의 폭로가 있었다 할지라도 중국 정부가 캐나다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야당 중국계 보수당 의원 “마이클 청"(Michael Chong)이 토론토 주재 중국 영사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중국 정부 개입설이 대두되며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마이클 청"은 제 1야당인 연방 보수당의 중국계 하원의원이다. 글로브앤메일 신문과 글로브 뉴스는, 신장 위그루 자치구 등 신장지역 인권탄압에 대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 온 "마이클 청" 의원을 중국 정부 당국이 공작의 대상으로 지목해 감시를 해왔다는 폭로 기사를 발표하게 된다.

특히 이 문제를 전담한 중국 담당자가 토론토주재 영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자오웨이"(Zhao Wei)라고 지명 폭로까지 하게 된다.

그 파동으로 캐나다 외무부 장관인 “멜라니 졸리" 장관은 중국 외교부 소속 외교관 "자오웨이"를 추방하게 되며, 중국 정부 또한 상해 영사관에 근무 중인 캐나다 외교부 소속 고참 외교관 “제니퍼 라론데”(Jennifer Lalonde)를 보복성 추방하게 된다.

그 이전, 집권당인 자유당의 당수이며 수상인 "저스틴 트르도"는 한 국가의 외교관을 추방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며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언급을 하였다. 특히, 외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이해상관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수출 대상국이며 수입 대상국이다. 카놀라 오일, 돼지고기, 밀, 콩 등 캐나다 주요 농산물 소비국이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경제적이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늦은 감은 있지만 중국 외교관의 추방은 옳은 일이다. 일상적인 개인 관계에서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특히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으로서 판도라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상징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지상으로 내려 가기 전에 남신들과 여신들로부터 선물을 받게 된다.

그녀는 제우스로부터 상자를 받았는데 절대 그 상자를 열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 지상에 내려온 판도라는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게 되며, 상자를 열자 그 속에 있던 모든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았고 맨 밑에 있던 희망만이 상자에 남게 된다. 상자 아래에 남은 희망,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헛되이 염원하는 헛된 희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희망은 마지막 카드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희망은 신의 함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희망은 어떤 압력과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좌절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중국과 같은 전제 독재국가 체제의 압력에는 민주주의 이름으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국민을 우선으로 하는 체제이며 민주주의의 수호 없이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14일)

 

<참고: 1)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는 2018년 12월 캐나다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중국 "화웨이"사의 부회장 "멍안제우"(Meng Wanzhou)를 체포한 데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1000여일 넘게 구금된 후 2021년 말 풀려나게 된다.

2)되는 대략 1.8리터, 말은 18리터로 10배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다"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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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교황의 칙서(Papal Bull)와 콜럼버스

 

“교황의 칙서"는 편지형식으로 구성된 교황의 증서 내지는 선언서를 이르는 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칙서는 이를 교황이 발표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표식으로 하단에 교황의 공식 도장을 찍는다. 이 칙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55년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침범하여 획득한 보물과 나포한 노예들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칙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후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의견이 엇갈리게 된다. 이때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이 교황의 칙서이다. 기독교인은 크리스천이 아닌 “비 기독교"인의 땅은 소유할 수 있다는 교황의 칙서를 등에 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새로 발견한 땅들을 차지하고 지배 했을 뿐만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교황의 칙서는 이후 등장한 유럽 식민제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며 잔혹한 학살 행위를 하는 도화선이 된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스페인 “가디스”를 떠나 대서양을 서쪽 방향으로 항해를 하여 10월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하게 된다. 그는 출항하기 전 지도 제작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개념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바다 서쪽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다른 대륙 인도나 중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하였다).

콜럼버스는 이태리 제노바 공화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인들에게는 위인이자 영웅적인 모험가로서 추앙 받아왔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 터전을 일군 신생 독립국가들은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콜럼버스의 항해에 관한 신화를 발굴하고 재창조하는 데에 엄청난 공을 들이게 된다.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본 관점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그곳의 원주민들은 후에 골럼버스에 의해 인디언으로 명칭 된다.) 실지로 잉카제국과 같은 고도의 문명과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며 학살자 일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지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은 인디언이라고 불려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가장 큰 과오는, 그 당시 유럽인들의 일반적인 관점인 이교도와 타인종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야만인 즉 원주민과의 약속은 당연히 어겨도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도의 정신적인 지도자 간디는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나 보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 비친 크리스천들은 그에게 너무나 딴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와 형식만을 따르며 탐욕으로 가득찬 세속적인 논리 앞엔 참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길은 무시 되고 만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동네북처럼 되는 것은 크리스천 스스로가 자초한 길이라 할 수 있다.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Aboriginal Residential School)는 1840년-1990년대까지 운영되었으며, 원주민 자녀가 6세가 되는 해에 강제로 부모의 품에서 떼어내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목적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말살시켜 캐나다 주류문화인 기독교에 동화시키겠다는 식민 동화 정책이다.

주로 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주도로 운영되었는데, 그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은 종종 학대, 체벌, 성폭력, 영향실조와 외로움에 시달렸다 한다. 그런데 옛 원주민 학교 터에서 어린아이들의 사체가 발견돼 캐나다 및 전세계를 경악에 빠트리게 한다. 이에 대해 프란시스 교황은 바티칸 방문 원주민 대표들을 접견하며 공식 사과하게 된다.

그 응답으로 2022년 7월, 당시 85세였던 프란시스 교황은 캐나다에 참회 방문을 하게 된다. 남미 대륙에서 배출한 사상 첫 교황인 프란시스 교황은 캐나다 방문시 과거 아메리카 식민시대 복음 전파 미명아래 저지른 악행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된다. 그 뿌린 씨앗의 결실로써 교황은 15세기에 쓰여진 “교황의 칙서”의 폐지를 금년 부활절 바로 전에 선언하게 된다.

또한 지난 4월 30일 프란시스 교황은 식민지 시대에 캐나다 원주민들로부터 획득한 유물들(Artifact)들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발표를 기자회견에서 하게 된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그리고 훔친 것은 주인에게 돌려주라” 십계명의 7째 조항(The Seventh Commandment)이다. (2023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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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2023-05-04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1971년 12월25일생인 “저스틴 트뤼도"는 어렸을 때인 1975년, 아버지인 전 수상 "피에르 트뤼도"와 함께 자메이카에 위치한 휴양지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코코넛 나무에 올라갔다 내려오지 못해 아버지의 도움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50여 년이 지난 후 저스틴 트뤼도는 겨울 휴가를 같은 장소에서 보내게 된다.

이 휴양지가 성수기 때에는 하루 $9000까지 경비가 든다는 워낙 고급 휴양지라 국회에서 질문 공세를 받게 된다. 야당, 특히 보수당 당수 "피엘 포일리에브르”부터 캐나다 국민들은 팬데믹 이후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빚어진 인플레로 고난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현실을 파악 못하는 그와 가족들은 사치스런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프로스펙트 에스테이트 빌라(Prospect Estates Villa)라는 명칭의 이 고급 휴양지는 “Green Family”로 알려진 캐나다인 소유로서 트뤼도 가족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저스틴 트뤼도 수상의 답변에 의하면, 자신의 아버지인 전 수상 피에르 트뤼도는 친구인 그린(Green)의 자녀 중 한 명의 "대부"(Godfather)이며, 그린 가족의 아버지는 자신의 형제 중의 한 명의 대부라 해명하면서, 두 집안은 50년간의 돈독한 친분의 집안이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전혀 어떤 정치적인 뇌물의 성격이 아닌 집안간의 초청으로 그 휴양지에서 머물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자신과 가족의 개인적인 비행기 대금은 여행 후 배상하였다.)

키가 188cm 장신인 저스틴 트뤼도는 금년 51세로 캐나다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총리이자 미남 총리로도 유명하다. 캐나다의 거물 정치인 피에르 트뤼도의 장남으로서 2015년에 독자적으로 캐나다 수상이라는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본인이야 자신의 정치적으로 성공한 삶을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지만 캐나다 근 현대사의 거물인 아버지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 당수인 피엘 포일리에브르가 자수성가한 소위 흙수저 출신이라 한다면 현 캐나다 수상 트뤼도는 금수저 출신이다. 하지만 준비하며 노력하는 금수저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 트뤼도는 문과 출신이다. 그런 그가 이론 물리연구소의 양자컴퓨터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문외한 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짧은 문장 안에 양자컴퓨터의 핵심을 모두 담아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주위의 물리학자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인기 가도를 달리던 트뤼도는 2018년 정치적인 직권 남용이라는 대형 악재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2015년 취임하자마자 내각의 구성을 남성, 여성 비율 50대 50으로 구성하였다. 이때 가장 잘 선택한 여성장관으로 알려진 원주민 출신 장관이 있었다.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죠디 윌손 레이벌드"(Jody Wilson Raybould)이다. 그런데 그녀가 2019년 초 사임을 하면서 더불어 트뤼도 수상의 인기도 하락세를 겪게 된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기반을 둔 “SNC-Lavalin”이라는 건설 엔지니어링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2001년부터 2011년 사이에 리비아에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건설계약을 따낸 혐의로 2015년에 기소되었다.

글로브앤메일의 보도에 의하여 알려진 바에 따르면, SNC-Lavalin은 형사소송을 피하기 위해 트뤼도 총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총리실 소속 관리들이 조디 윌슨 레이볼드 장관에게 압력을 가해 형사처벌 대신 벌금형을 받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주 연방정부는 “폭스바겐"(Volkswagen) 회사가 전기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온주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세인트 토마스"에 건설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회사가 70억 달러를 투자하여 매해 백만 개의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3천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되며, 3만 명 이상의 기업 분할 파생 직업이 더불어 창출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의 130억 달러 보조금과 공장 건축에 7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포드의 온주 정부도 5억 달러를 투자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당연히 야당으로부터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 액수의 돈이라면 12개 정도의 병원을 건축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 국민을 도울 수 있는 자금에는 분명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폭스바겐의 전기 자동차 배터리 공장은 미래를 향한 투자이며, 경제적으로 침체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청신호이다. 더 나아가 그린 에너지(Green Energy), 지구 온난화와의 싸움에도 도움이 된다.

 트뤼도와 야당 당수 포엘리에브르 사이는 캐나다에선 보기 힘든 견원지간이다. 온주 포드 수상은 주 보수당 당수이지만 당으로 놓고 보면 연방 야당 당수와 같은 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주수상 포드는 많은 경제적 측면의 투자 관점에선 트뤼도와 합승한다. (특히 팬데믹 당시 트뤼도와 포드는 어깨를 같이하여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접종에 전력투구를 하였다.) 온타리오주 주민, 아니 캐나다의 장래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다문화, 모자이크 문화를 지향하는 캐나다에서 극우 백인들 위주로 내각이 구성된다고 상상 해보라.)

 트뤼도 정부는 야당의 지적이 없어도 국내에서 여러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그것을 지구 온난화와의 싸움인 "Green Energy”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없다. 그것을 붙잡지 못했을 뿐이다.”

선거의 제일 큰 텃밭인 온타리오를 놓고 보면, 그 기회를 야당 당수 포일리에브르는 트뤼도에게 넘겨주고 있다.  

“태양은 태양을 찾아가는 사람들 앞에만 빛나는 것이다.” (2023년 4월30일)

 

 <참고: 1)캐나다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하고 있다. 2)교정협약(Remediation Agreement): 기업이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고 형을 면제받는 협약으로 SNC-Lavalin은 그 혜택을 누렸다. 벌금 대신 형을 선고 받는 경우 그 업체는 10년 동안 연방정부의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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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7
“피엘 포일리에브르”(pierre Poilievre)

 

지난 2월18일, 독일 극우 과격 정당의 일원인 "크리스틴 안델손”(Christine Anderson)은 캘거리 패트로레움클럽에서 거행된 “White Hat”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후, 캐나다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그녀를 따뜻하게 환영해준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그녀는 지난해 수도 오타와를 점거하여 난동을 부리고 캐나다와 미국과의 국경을 봉쇄하였던 "프리덤 콘보이"(Freedom Convoy)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신 나치"(Neo Nazi) 주의 독일 정치가이다. 그녀는 캐나다 방문기간 중 3인의 연방 보수당 국회의원과 회동하였다.

반 이민정책, 반 무슬림(Anti Muslim)등 극우성향의 그녀의 정치성향과 상반되는 캐나다 정치풍토를 감안할 때, 그들 3명 국회의원의 거취는 당연히 매스컴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공세에 보수당 당수 "피엘 포일리에브르"(P. Poilievre)는 3인의 보수당 연방의원이 크리스틴을 만난 것은 인정하나, 그들은 그녀의 정치성향을 모르고 만난 것이라고 해명하며, 어떤 징벌이나 징계가 없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야당 당수 포일리에브르는 프리덤 콘보이 등 극우 성향의 문제가 대두되면 갑작스러이 작아진다. 왜냐하면 그들 극우성향자 그룹들이 그의 철저한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포일리에브르 당수는 오타와에 선거구를 둔 정치인이지만, 전 총리 "하퍼" (Harper)와 마찬가지로 정치가로서 그의 뿌리는 앨      버타주 캘거리에 기반을 둔 서부지역에 있다.

그가 90년대 후반에 국제관계를 공부했던 캘거리대학에서 정치 철학의 씨앗이 심어졌다 할 수 있는데, 학창 시절에는 보수파 클럽의 학생 이사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동창들의 기억에는 탁월한 토론가이자 통찰력 있는 연설가로 정평이 나있었다.)

서부지역인 캘거리에서 동쪽인 온타리오주로 이주하여 2004년 오타와에서 연방의원으로 당선된 후, 하퍼 총리의 보수당 내각에서 일을 하였으며 하퍼 총리의 개인 비서 역할도 한 경력이 있는 전형적인 전 수상 “하퍼”맨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연방 보수당 대표경선에선 1차 투표에서 68%의 압도적 지지로 16% 지지를 받은 2위 “쟝 사레"를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경선에서 그가 가장 염두에 두었던 후보자는 프렌치 캐나다인 "장 사레”와 공동전선을 펼치던 현 브램톤 시장인 “패트릭 브라운"이었는데 그가 결격사유를 받아 탈락되면서 사실상 경선은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나게 된다.

그는 야당 당수로 확정된 후, ”캐나다인들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흔들리지 않는 생활과 안전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을 심어 줄 수 있는 총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보수당인 야당이 다음 번 선거에서 현 집권당인 자유당을 무너트린다면 캐나다의 차기 수상이 될 수 있는 포일리에브르는 그의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43세. 포일리에브르는 이름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프렌치 캐나다인이지만 그의 생모는 아이리쉬계의 캐나다인이다. 그는 어려서 동생 패트릭과 함께 학교 선생 부부인 다니엘(Daniel)과 마리엔(Marlene) 포일리에브르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의 정치적인 목표는 2015년에 치러진 연방선거 이래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트뤼도 정부를 차기 선거에서 무너뜨려 정권 탈취를 하는 것이다. 포플리스티(Populist)인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언행을 거침없이 토해내는 그의 정치 스타일은 선 공격 후 조절이다.

 캐나다의 공영방송인 CBC와 CBC-Radio를 트뤼도 수상이 그의 사유재산처럼 취급 한다며 정부의 재원 중단을 주장해온 포일리에브르는 지난주 트위터(Twitter)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에게 CBC를 정부의 지원 자금으로 운영되는 매스컴으로 분류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공영방송인 CBC를 현정부의 대변인 역할 하는 국영방송으로 레이벌(Label) 포장 해달라는 요청은 마치 러시아의 "스푸트니크”(Sputnik)나 중국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인민일보"와 같은 등급을 매겨달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일론 머스크는 나르시스트 경향의 자기 도취적인 미국의 억만 장자이다. 그와의 결탁은 인플레 해지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주장한 것만큼 위험한 발상으로 보여진다.

“당신이 어디서 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이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캐나다인의 꿈을 찾는 약속을 회복할 것이다"라는 야당 당수로 선출된 후 한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온타리오주와 퀘벡주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현재로선 퀘벡에서의 보수당 인기는 거의 바닥에 내려와있다. 그렇다면, "에린 오틀”과 "앤드르 쉬어”가 성공하지 못하였던 이민자들이 많은 온타리오주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해결책보다는 문제점을 더 많이 안고 있는 것 같다.

스포츠 팀으로 비유하면 공격은 우세하나 수비가 약하다. 그것이 자체내의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는 현 트뤼도 정권의 활로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없다. 그것을 붙잡지 못했을 뿐이다" (2023년 4월 23일)

 

<참고: 1)”White Hat”상은 앨버타주 캘거리의 관광사업에 기여를 한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공식 명칭은 “The Mayors’ White Hat Award”이다.

 2)CBC는 1936년 캐나다 방송법에 의하여 설립된 편집의 자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사이다. 1,200명을 대상으로 실행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성인 40%가 CBC는 정부의 선전기관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보수당을 지지한다고 표명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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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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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깨어지는 신화-신풍(가미카제)과 동장군(Frost General)

 

역사상, 다른 나라를 한번도 침략 한적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은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비록 여몽 연합군이라 하지만 해전에 약한 몽고군대신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대가 주력이 되어 일본을 침략하게 된다.

 원정군은 1274년 10월27일에 마산기지를 떠나 대마도를 점령하고 규슈의 하카타 에서 승리한 후 날이 저물어 퇴각하다 폭풍우를 만나 많은 전함이 파손되어 같은 해 12월27일 귀국하게 된다.

7년 후, 1281년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 1만5천명과 몽골군, 강남군 등 도합 10만여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2차 일본 침략을 시도하게 되나 태풍을 만나 철수하게 된다. 일본인들은 그때 불어온 태풍을 일본을 지켜주는 신의바람, "신풍" 가미카제로 부르게 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략하게 된다. 그러나 모스크바까지 진격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한파로 대부분 죽고 소수만 살아 귀국하게 된다. 그 당시 영국의 어느 신문이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진짜 영웅은 러시아 추위라고 하면서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동장군이라 번역하여 쓰여지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히틀러의 독일 군대가 러시아를 침공했으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혹한에 속수 무책이 되어 패전해 후퇴한다. 이쯤되면 동장군은 러시아군에게는 수호신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다.

"가미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포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가미는 신, 카제는 풍, 즉 바람이라는 뜻으로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을 내포 하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12월,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군은 연합군에 저항하기 위하여 가미카제 특공대를 결성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 조종사들은 천황을 위해 전사하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연합군 함대에 비행기와 함께 부딪치는 무모한 공격을 감행했다.

1945년에 들어서서는 오키나와를 방어하기 위해 천명이 넘는 특공대원이 가미카제 공격을 했다. 이런 공격을 감행하여 30척 이상의 연합군 군함과 350척 가량의 전함이 피해를 입었으나 막상 주요 목표물인 항공모함은 침몰시키지 못하였다.

 가미카제는 실질적으로 연합군에 입힌 피해보다는 미군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일본이 자국민과 조선인들을 무모하게 전쟁에 동원하는데 쓰여진 전시 효과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칼럼니스트 쥬리아 마르치(Juria Marich)의 토론토스타에 보내온 칼럼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이번 겨울은 비교적 온화한 편이었다 한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첫 번째 맞는 겨울, 러시아의 푸틴으로서는 러시아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는 "동장군"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의 신화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온난화는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의 편이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무자비한 미사일 공격을 포함한 공중 폭격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한 공격 작전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전력 시스템은 구소련 당시 핵전쟁의 대비로 지어져 있어서 복구를 빨리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의 전력보급으로 대부분의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하였다. 어렵고 힘든 고뇌의 날들이었다(서방으로부터 지원되어온 30만개 이상의 발전기(Generator)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들의 저항의지를 보여주었고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답을 스스로 찾아내었다.

가미카제 전술은 연합군에 대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목적보다는 궁여지책에 몰려 사면초가 된 일본군 수뇌부가 선택한 상징적 자해행위의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신의 바람이 불어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살 특공대를 "신풍", 가미카제로 부르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 또한 “제너럴 프로스트", 동장군의 신화를 염원하였을 것이다. 그 갈망을 부서트릴 수 있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답을 우크라이나인들은 스스로 찾아내었다. 그것은, 신화마저 깨뜨려버릴 수 있는 저항의 정신이었고 용기였다. (2023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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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매드, 매드, 매드 월드(Mad, Mad, Mad World)(2)

 

(지난 호에 이어)

지난 화요일(4월4일) 발표된 여론조사(Agri Food Analytics)에 의하면, 캐나다인의 31% 이상이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을 그로서리(Grocery) 가격의 인상에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 이전, 연방정부에서도 의회에 세 자이언트 회사의 최고경영책임자(CEO)를 국회에 호출하여 그에 대한 조사를 가진 적이 있다. 그들은 로블로(Loblaw) 갈렌 웨스턴 쥬니어(G. Weston Jr), 메트로(Metro) 에릭 프레체(Eric La Fleche) 그리고 엠파이어(Empire) 마이클 메드린(Michal Medline)이었다.

그들은 그로서리 가격을 부풀려 이윤을 쟁취하였다는 주장을 일축하였으며, 오히려 생산업자, 가공업자와 운송비 상승 등을 인용하여 공급업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캐나다가 G7 국가 중 인플레이션율이 제일 낮으며 인플레를 억제시키기 위해 최저의 마진(Margin)을 식료품 가격에 적용하였다는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캐나다인들은 그러한 그들의 주장을 신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기한 세 개의 거대한 공룡그룹인 그로서리 체인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내었기 때문이다.

특히, 로블로 그룹 총수(지주회사 George Weston LTD 포함) 갈렌 웨스턴은 $11.79 밀리언(Million)의 소득을 2022년에 얻었다. 이는 2021 회계연도 연봉보다 1.7 밀리언이 더 증가된 액수로 일반 그로서리 종업원의 평균임금 $2만7300의 431배에 달하는 금액이다(시간당 약 $5,679).

 거의 12 밀리언 연봉의 최고경영자(CEO) 갈렌 웨스턴 주니어는 누구인가?

갈렌 웨스턴 주니어는 1972년생으로 하버드 비즈니스와 콜롬비아 대학 출신으로 할아버지 조지 웨스턴에 이어 3대째 아일랜드계 캐나다인 사업가이자 저명한 웨스턴 가족의 일원이다. 2006년에 로블로 최고경영자에 취임하였으며 아버지 갈렌 웨스턴 시니어가 2021년 사망한 후 실질적인 로블로의 총수라 할 수 있다. 재산 규모는 $8.7 빌리언(Billion)으로 캐나다의 3번째 부자로 알려져 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해낸 비판 철학의 창시자이다. 따라서 인식의 틀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으나 인식의 내용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행동의 격률이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을 강조 하였다.

그러기 위해선 그 행동의 격식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게 행위 하라는 주장이다. 쉽게 풀이 하면 칸트는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고 하고 매일같이 사용하는 스마트 폰이나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수단이라고 보았다.

 인간만이 기계나 도구와는 달리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수단으로 보지말고 목적으로 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자본주의 생리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인류의 문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주의를 거쳐야 하였고, 그 이전엔 이미 상업자본이 농업자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형성되어 있었다.

상업 자본이 공간의 차이로 저렴한 곳에서 상품을 구입하여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여 이윤을 내어 파는 공간을 이용한 시스템이라 하면, 산업자본 주의는 새로운 제품을 발굴하여 생산하여 발전해나가는 시간의 차이를 이용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그 모든 종착역은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로 가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노동자가 소비자로 바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시간은, 자본에 고용되어 활동하는 노동시간과 비활동의 여가시간이 있다. 이 여가시간이 노동자가 소비자로 바뀌는 시간이다. 당연히 노동자 즉 소비자는 자본가의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땀의 대가 없이는 생산이 이루어 질 수 없고 소비자가 된 노동자의 소비가 없이는 자본가는 부를 축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였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팬데믹을 거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세계가 “Mad, Mad, World”에서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럴수록 사회의 지도자급들은 국민을 봉 취급하면 안 된다. (2023년 4월9일)

 

참고: 세 회사 CEO Income 비교.

1) Loblaw, G Weton($11.79 Million)

2) Metro INC, E. Lafleche($5,4 Million)

3) Empire Co.(Sobey) M. Medline 2021년 $8.65 Million(2022년 아직 보고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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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6
매드, 매드, 매드 월드(Mad, Mad, Mad World)

 

지난 3월 23일, 토론토스타 칼럼니스트 봅 헵번(Bob Hepburn)은 ‘왜, 사회의 지도층은 우리를 얼간이 취급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그 칼럼에는 7명의 정부, 비즈니스 등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명사들이 등장한다.

1)트르도 수상: 지난 수주간, 중국 정부가 캐나다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을 때마다 계속 무시해오다 정보기관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정보가 흘러나오자 서둘러 특별위원회 진상 조사에 착수할 책임자(Rapporteur)를 임명한다.

2)대법원 판사 러셀 브라운(R. Brown): 무기한 유급 휴직(An indefinite paid leave of absence).

3)Loblaw기업 총수 G. Weston: 인플레의 원인이 비싼 그로서리 가격의 폭리라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 세간에 알려진 만큼 큰 이익을 얻지는 못하였다면서 자신들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협조하니 믿어달라고 함.

4)온주수상 덕 포드: 자신의 딸의 결혼식과 ”Stag and Doe“ 파티에 참석한 택지 개발업자들은 그린벨트 택지분양에는 전혀 특혜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함.

5)야당 당수 포리에브레(P. Poilievre): 프리덤 콘보이(Freedom Convoy) 트럭커들과 자랑스러이 시위에 동참하여 함께 행진한 후, 그들이 평화적이며 법을 준수하는 트럭운전사들이라고 주장. (그들 대부분이 법의 심판을 받아 구금되었음).

6)볼스 와겐(Volkswagen) 밧데리(EV battery)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가 제안한 세금 면제와 자금지원의 특혜에 대한 질문에 온주와 연방정부 관계자들은 비밀사항이라며 그 디테일에 대해 함구함.

7)에어캐나다(Air Canada) CEO 마이클 로우시우(Michael Rousseau)는 팬데믹 후 여행이 자유로워졌을 때 승객들에게 큰 피해와 불편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책에 적절한 행위를 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항공사가 세계제일의 항공사 중에 하나라고 자랑함.

상기의 7명 중 6명은 이미 잘 알려진 명사이나 이 칼럼의 두 번째 인물인 러셀 브라운 대법원 판사는 대중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인사로 볼 수 있다. 과연, 러셀 브라운은 누구인가? 왜 그는 특별한 사유를 설명함이 없이 휴직을 하게 되었는가?

금년 57세인 러셀 브라운은 2015년 사임한 대법관 로스테인(M. Rothstein)의 후임으로 당시 수상 스테판 하퍼에 의하여 임명된 대법원 판사이다.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앨버타 법과대학교수, 앨버타 고등 항소법원 판사를 역임하는 등 캐나다 서부지역 법조계에는 잘 알려진 베테랑 법조인이다.

상법이 전공이며 특히 의료문제에 탁월한 전문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는 대법관 브라운은 올해 2월17일 일상적인 법원 뉴스에 무기한 유급휴직 공고가 나가면서 세간에 알려지나, 그때까지도 그 사유는 비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밀에 부쳐졌던 사유는 신문에 폭로되면서 드라마틱하게 공중에 알려진다.

사건경위: 2023년 1월28일, 미국 아리조나주의 고급 휴양지인 OMNI Scottsdale Resort가 위치해 있는 현지 지역 경찰보고(비디오 포함).

미 해병대 출신인 조나탄 크럼프(Jonathan Crump)는 50대 후반의 술 취한 장년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동생에게 성추행을 하며 호텔방으로 따라오는 장면을 목격하고 격분하여 치한의 머리에 주먹세례를 가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하여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여성의 목과 다리에 키스를 하며 추행을 하고 호텔방까지 따라온 그 술 취한 장년이 캐나다 대법원 판사 브라운이었다. 비디오의 판독에 의하면, 해병대 출신 크럼프와 그의 기사도적인 행위에 의하여 구출된 여성 동반자들은 그 위급한 상황하에서도 침착하였으나 유독 브라운 판사만이 징그러울(Creepy) 정도의 추태를 보였다 한다.

재판을 예로 들어 법정을 살펴보면, 재판 과정에는 반드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참여한다. 이 중 검사가 피의자에게 가급적 최고의 형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변호사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 피의자가 형벌을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판사는 이 과정을 주관하며 판결을 내리게 된다. 판사 특히 대법원판사는 최고 명예직 위치에 있는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회 지도급 인사다.

3월28일 토론토스타의 마틴 렉 콘(Martin Regg Cohn)의 칼럼에 의하면 작년 팬데믹 기간 중 실시한 여론조사(Abacus Poll)에 캐나다인의 삼분의 일이 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 빌 게이츠가 코비드-19 백신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인류를 감시하고 있다는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였다. 정보는 사실(Fact)이 아니다. 사실로 확인 되기까지는 하나의 정보일뿐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무수히 인터넷에 넘쳐나게 쏟아져 나온 정보의 홍수에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 보면 세계가 업사이드다운(upside down) 되는 것 같다. 매드, 매드, 매드 월드다. 그럴수록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국민을 잘 속는 바보스런 봉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는 인터넷 정보의 시대에 어쩔 수 없는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인터넷도 나쁜 면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음모(Conspiracy)의 그릇된 정보를 가려 낼 수 있는 선구안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옛말에 “약은 잘 쓰면 명약이 되나, 잘못 쓰면 독약이 될 수 있다” 하였다. (2023년 4월 3일)

 

*참고: 한국명 영화 매드, 매드 대소동(원명, It’s a Mad, Mad, Mad World)은 1963년 미국에서 제작된 코미디 범죄 영화이다. 감독은 스탠리 그라머, 주연배우는 스폔서 트레쉬로 숨겨진 돈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한 그룹의 사람들이 배신과 기만으로 돈에 환장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 미친듯한 모습들이 국민들을 기만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지도층들의 위선의 작태가 코메디 같아서 타이틀을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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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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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삼일 천하

 

1894년 3월28일, 김옥균이 묶고 있던 여관의 주위는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때 이 정적을 깨고 울리는 세발의 총소리는 김옥균을 이 세상에서 하직 하게한다. 이국 땅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에 의해 죽어간 김옥균, 과연 그는 누구이며 왜 같은 민족의 손에 의하여 죽어야만 했을까?

김옥균, 그는 신지식과 신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근대국가를 수립해보려던 개혁의 선구자였다. 당대의 명문 양반가문 출신이면서도 유교사상과 양반의 존재를 부정한 혁명적 기질을 가진 그는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비통하게도 수구파가 요청한 청군의 개입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일 천하 만에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비록 그 뜻은 웅대하였으나 절대적인 호응의 밑받침이 없었던 거사는 일장춘몽으로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히게 되었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 운명의 시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던 김옥균, 그래서 후대의 사가들은 그를 가리켜 혁명가라 호칭하기보다는 "개혁의 풍운아"라고 즐겨 묘사하게 된다.

나는 가끔 김옥균이 이끌던 개화당의 거사가 성사되어 우리 힘으로 자주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면 동방의 역사는 물론, 아니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해본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결국 대륙 진출을 포기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 조선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 일본과 대응하여야 한다 하였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4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그리고 서재필 등 이른바 급진 개혁파들의 주도에 의하여 청나라에 의존하는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던 근대적 개혁 운동이었고, 혁명적인 일종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신분제 폐지, 입헌군주제 등 근대국가에 맞는 정치, 사회 개혁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 그쳐 민초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신들과 대립하던 원세개의 청나라 군대에 수적으로 밀려 3일만에 끝나게 된다.

개혁은 무사 안일주의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부가 있으면 도려내서라도 제 방향으로 환원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이념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철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통학교에 다닐 때 듣던 정치 구호가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이다. 그러나 안일과 부정의 타성에 젖은 수구파에선 "갈아봐야 소용없다"고 반격한다. 새것을 거부하며 옛 것을 고집하는 사고방식에선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누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광속에 아직 좋고 오래된 술이 많은데 왜 새 술이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도 오히려, 아직 눈을 깜박거리며 숨을 쉬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가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구한말 우리 조상은 개혁을, 더 나아가 혁명을 두려워하였고 저항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의 특수층뿐이었다. 그들 만이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혜택을 받았을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주 독립을 원하였다.

북미대륙은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 후, 설립된 나라들이 캐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이다. 역사라 해보아야 500여 년 미만이다.

단기와 서기는 2,333년 차이가 있다. 금년은 단기 4,356년이다. 그 기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공존하였던 민족이 한국민족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장소에서 서로 각기 다른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면서 생존해왔다. 당연히 일본이라는 이웃을 가졌다는 것은 숙명이다. 그러나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다.

지난주, 세계 야구대회 결승전이 미국과 일본의 대결로 치러졌다. 같은 동양사람이면서도 일본을 응원하게 되지 않는다. 일본은, 적어도 지난 일세기는 공존하고 싶지 않은 이웃이었다.

김옥균은 지적하였다. "일본이 동방의 영국이 되려 한다. 우리는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 대응하여야 한다". 그는 129년 전 오늘 3월28일,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고종의 자객 홍종우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는 갑작스러이 잊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열을 올려왔다. 진정한 민족학의 자세는 무조건의 배척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에 대해선 냉철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기다리는 아침은 늦게 온다. 하지만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떠오른다. (2023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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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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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초라한 환국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 강산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물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나와 각원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완성을 위하여 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국가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지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만을 전합니다" - 1945년 11월23일, 김구.

 

1945년 11월23일, 중국 상해를 떠나 황해 바다를 건너 광복 강토로 돌아가는 하나의 정부가 있었다.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등 임시정부 요원 15명은 그날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귀국준비위원회 조차도 모르는, 아무런 환영도 없는 쓸쓸한 환국이며, 현실과 상상의 차이만큼 초라한 귀국이었다. 그리고 슬픈 조국의 운명이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 당시 중국 전구 연합군 사령관은 장개석 총통이었고 "웨드 마이어" 중장이 참모장으로 있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본의 항복이 빨라서 점령지인 한국에 진주할 육군병력과 수송 능력이 없는 중국 전구는 태평양 전구로 이전되어 "맥아더” 장군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이 관할권 이완으로 종래의 계획이 변경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기다리던 귀국길은 3달이 지난 11월이 되어서야 한국 주둔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보내준 비행기편으로 제1진이 귀국하게 된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임정의 영광스런 귀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서의 환국이어야만 하였다. 그 1진에는 평민의 자격으로 입국하는 김구 주석이 있었다. 그때 이미 한반도는 38선으로 분단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 후반, 미국은 단독으로 일본제국과 대치할 계획이었으나 1944년 말 작전상 소련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나치 독일과 대적하던 서부전선인 유럽에 전념하던 스탈린의 소련은 늦게 일본과의 전쟁인 동부전선에 참전하게 되었고, 그 참전 한 달도 되기 전에 1945년 8월15일 일본은 항복하게 된다. 어부지리로 승전국이 된 소련은 그때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물론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까지 진격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몫으로 한반도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 세력의 팽창화와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하여 이를 거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참전국으로서 그리고 승전국인 연합군의 입장에서 사상자와 부상자의 존재를 내세워 거듭 한반도 통치를 요구하였다.

 결국 미국과 소련은 1945년 8월25일 북위 38선 한반도 분할 점령을 발표하고, 미국 또한 서둘러 미군의 한반도 상륙을 결정한다. 1945년 9월8일, 하지 중장이 사령관인 24군단은 인천을 경유하여 해방군으로서 상륙하게 된다. 또한 하지 중장은 주한 미군 사령부와 군정장을 겸직하게 된다.

 군인 하지 중장은 패튼 장군과 버금가는 용감한 군인으로서 1차 대전, 2차 대전을 모두 참전한 역전의 노병이었다. 그러나 하지 장군은 전쟁의 수행능력에는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국제정세와 국내정세가 민감하게 얽혀있는 남한의 정세를 파악하기에는 적임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였다 한다.

당연히, 한국민족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음이 없이 독립국가를 형성해 왔을 뿐만 아니라 합병 당시도 오직 소수의 특수층만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혜택을 받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랫동안 독립을 열망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이해 하지도 못하였고 이해 하려 하지도 않았다.

페이스 북에 “미국 사는 한국인 그룹"이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글 중에 코스코에서 피자 먹고 있는 92살인 한국전 참전 용사를 소개한 글이 있다. 이름이 그렌(Glenn)인 그 노병은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해군병원 배에서 1952년과 1953년 근무하였다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가본적이 없다고 하여서 현재의 서울 사진을 보여주니까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의 인천은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으며 고아들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더욱 비참한 것은 미군 배에서 쓰레기를 버릴 때는 많은 사람들과 고아들이 쓰레기 안에 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한다.

육이오 전쟁 전 1949년 11월 정대위 박사는 화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귀국을 하고 있었다. 고베와 요코하마를 들려서 오게 됐는데 당시 그곳들은 황폐한 주검의 음산한 도시였다 한다. 그러나 부산항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건실하였으며 사람들의 표정도 일본사람들과는 다르게 밝고 명랑하였다 한다.

그러나 3년간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완전 폐허로 만든다. 반면 한국에서의 교훈을 거울삼아 일본의 적화 방지를 위해 미국은 일본의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며, "육이오"라는 전쟁의 특수 덕에 패전국이었던 일본으로 하여금 경제대국의 발판을 마련하여주게 된다. (본국과 지리상 먼 거리에 있던 미군의 식량 조달은 일본으로부터 공급받게 된다.)

역사는 한번 저지른 잘못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법이 없다. 태평양 전쟁의 승리는 미국의 힘이었지 소련의 도움은 거의 없었으나, 미국은 소련이 최대의 전쟁 피해국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결정적인 양보를 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의 명분 없는 양보는 자신도 모르게 적을 돕는 부도덕한 전례를 남기게 되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격전장이 된다.

 총 한번 쏘지 않고 대한민국을 일본에 넘겨준 못난 조상들의 과오를 되새기며, 이국 땅에서 순국하신 모든 애국 지사들의 숭고한 뜻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3년 3월19일)

 

에필로그: 하지 중장은 임정과 한국의 지식인들의 "신탁통치" 반대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재임기간 동안 김구 주석과 이승만 박사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게 된다. 이승만 박사로부터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비아냥의 소리까지 듣게 된다.

 

참고서적: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

정대위 박사: 한국 유네스코 대표, 건국 대학교 총장, 한국 신학대학 학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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