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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거꾸로 된 비늘)
kwangchul

 

동양계인 큰 며느리와 서양계인 작은 며느리가 있다. 지난 1월 76세를 지나면서 한국나이로는 77세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작은 며느리가 의아해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애야, 어머니가 임신을 하면 아기는 10달 정도 태아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머물러 있지 않니?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그 기간까지 계산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 그 시점을 한살이라고 하였단다.

약 2천5백년 전 동양에 공자, 서양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동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거대한 산맥을 연상하게 한다. 소크라테스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면 공자는 감성적인 면이 있으나 직관적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산파술’이라고 불려진다. 그 자신 스스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는 없으나 사람들이 지혜의 진의를 식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출산을 돕는 직업인 산파에 비유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대화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며 주장을 관철시키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가 풍기는 뉘앙스처럼 겸손한 느낌이 있으나 전혀 겸손치 않다.

반면, 공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조화의 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이다. 하지만 인을 꼭 집어서 무엇이라 한 적이 없다. 말은 잘하나 성격이 급한 제자가 물으면 말을 어눌하게 하라고 가르친다. 약삭빨라 장사를 잘하는 제자에겐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이익을 나중에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어찌 보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랑 즉 "인"이 있다.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 그것이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나 그 제자 플라톤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역린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글자 그대로 꺼꾸로 배열된 비늘이다. "용”이 있다. 용은 잘 길들여서 탈수도 있는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하나 용의 목에는 한 자 길이 정도의 "역린"이 있다. 이 꺼꾸로 배열된 비늘을 주인이 실수로 건드리면 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중국의 고사에는 신하가 군주를 설득할 때 군주의 치명적인 약점인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설득시킬 수 있다 하였다. 그렇다, 인간에겐 자신들만의 드러내기 싫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역린이 있다.

지난 3월 27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는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라가 시상식을 하던 코메디언 배우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다.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크리스 록"이 병으로 삭발을 한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에게 GI Jane(지 아이 제인)의 후속편을 기대한다며 스미스의 아내 헤어 스타일을 주제로 농담한 것에 대해 격분하였기 때문이다.

'지. 아이. 조'(G.I.Joe)혹은 G.I.Jane(지.아이.제인)의 지. 아이. 는 영어로 Govermant Issue 즉 정부에서 내어주는 관급품을 의미하기도 하고 보병대를 뜻하는 General Infantry의 약자이기도 하다.

1차 대전 이후 미국 군인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지. 아이. 제인은 1997년 데미 무어가 삭발하고 여자군인 "지 아이”로 출연하였다. 터프한 여자 군인으로 보이기 위하여 삭발을 하였다. 백인 여배우의 예쁜 얼굴이었지만 썬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분장이었다.

병으로 삭발한 자신의 부인을 두고 지아이 제인 2편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남편의 입장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분명 악의가 없는 농담이라 하더라도 뉘앙스가 있다. 역린이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논란거리가 되거나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말라는 비유이다. 인터넷에서는 누르면 발작한다고 해서 "발작버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었던가? 한때 동양철학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양의 철학은 과학을 발명시킬 수 있었지만 동양철학의 심요함과 그 감수성은 과학의 발전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하였다. 과학의 발달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이제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식상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현대는 인문학의 부재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현대는 밥상을 풍요하게 해주는 물질만능의 대명사인 사이언스가 대세인 시대이다.

노자에게 모든 만물의 근원인 '도’가 있다면 공자에겐 어질 '인'이 있다. 공자에게 제자들이나 어느 누가 그 '인'에 대해 질문하면 묻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글자 그대로 천양각색이다. 종잡을 수가 없다.

개념의 정의가 상황마다 달라지면 이성적인 논증이 요구되는 현대시대에는 제로이다. 아마도 공자가 수능시험을 본다면 영락없이 빵점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비논리주의자일까. 아니다.

 그가 중요시하였던 것은 인간사회에서의 갈등이 아니라 조화의 어울림이었다. 그는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존적인 변화에 이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윌 스미스의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폭력행사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미스런 행동이다. 전혀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인생사에는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아픈 상처 등등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관중을 재치와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유도할 의무가 코미디언에겐 있다. 그렇다 해도 타인의 비밀이나 아픈 상처를 건드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어쩌다 보니 인문학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공자의 수사학적 감수성이 그리워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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