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수 있다네"
                                                                         -백만송이 장미-심수봉 노래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어린아이들은 일본말이 아닌 한국어로 수업을 받게 된다.  우리 해방둥이들은 초등학교 명칭이 아닌 국민학교로 입학하게 되며 같은 이름으로 졸업했다. 
국민학교란 명칭은 1941년 일제 칙령에 의하여 제정되었고, 중앙청이라 불리던 구 총독부 건물 철거와 함께 1996년 3월1일부터 그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게 된다.
피난지였던 거제도에서 입학하고 서울로 돌아와 청량보통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때 집 부근에 있던 교회를 다니며 주일학교에 열심히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주일학교 행사가 있으면 상도 많이 받고 칭찬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열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였다. 육이오전쟁 이후라 교실은 적고 학생 수는 많아 한 반에 70여 명 이상 학생들이 있을 때였다. 대개 해방둥이었던 학급에 우리들보다 나이가 많고 체격이 큰 학생들이 있었다. 
당연히 쉬는 시간에는 그 덩치 큰 아이들 주위로 동급생들이 모였는데 주일학교 다니던 내 교회 친구들은 따돌림을 당해 구석에서 따로들 얌전히 놀고 있었다. 나는 그때 교회를 다니지 않기로 결심하며 누군가 “너 교회 나가지” 하고 물으면 다니지 않는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이제 2년 후면 내 나이 80이 된다. 그 중 50여 년을 이곳 캐나다에서 보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꽤나 멀리 먼 길을 걸어온 느낌이다. 자연히 지나간 세상사를 회상해 보면 종교가 가르치는 진리는 마음에 새겨 평생의 좌표로 삼기에는 좋지만 자기 반성적인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어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실제 생활과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생활의 무게에 휘둘릴 때 종교에 의지하기보다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

개신교를 다니다 1995년부터 성당을 다니게 되었다. 1996년에 모 신문에 세례명으로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목 하나가 "하얀 순교"였다. 내용의 주제는 직접적인 박해가 없는 첨단 과학시대의 순교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 생활을 통해 피 흘리지 않는 하얀 순교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테마로 쓴 적이 있었다.
그 글에서 천주교인 대박해인 병인박해(1866년) 당시 생존수단으로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 정착하였으나 경술국치(1910년) 후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떠돌이 유랑인으로 살게 된 슬픈 민족의 후예인 교포3세 김재국 조선족 작가를 소개하게 된다. 

그는 1994년 3월부터 1995년 1월초까지 자신의 조상이 그토록 염원하고도 밞지 못한 조국땅을 두루 두루 살피게 된다. 그때 쓴 글이 "한국은 없다"였다. 그 책의 내용 중에 한국에 나왔던 교포 연수생들이 귀국하면서 되뇌인다는 말이 있다.
"이제 만약 한국에 전쟁이 다시 한 번 난다면 난 총을 들고 선참으로 달려와서 한국놈들을 쏴 죽이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 글만을 읽으면 김씨뿐만 아니라 200만 중국 조선족에게 한국은 없는 나라 혹은 잊어버리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그 당시 캐나다에 살며 조국이 점점 잘 살고 있는 현상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구절이었다. 그러니 그런 불평등이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물신주의와 이에 따른 인명 경시, 그리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소인배 근성에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교포 연수생들이 내뱉는 악설이라는 설명에는 수긍이 갈 수 있었다. 

왜냐 하면 문화의 발전과 부합되지 않은 채 인명을 무시한 물질의 팽창만을 우선할 때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의 사고방식이 사회 구석구석을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30여 년 전 1995년경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간 조국, 대한민국은 세계의 부러움을 받으며 더 많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 있는 고국을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나며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된다. 

한때, 동양은 서양의 관점에서 평가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은 이제 동양이라 대표되는 한국의 잣대에서 평가의 기준이 맺어지는 세대가 되었다 할 수 있다.

북미로 불리는 캐나다와 미국은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인 특유의 정체성(아이덴디티)을 유지한 채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생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로부터 가끔은 덜 한국적인 탈한국적 사고방식이 실지로 더 세련된 삶의 태도라는 주장을 듣게 된다. 
물론 고국의 경우이고 집단적으로 판단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유명한 탤런트가 명품 가방을 들었다든지 혹은 새로운 액세서리를 선보이며 드라마에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한다고 한다. 

TV나 패션잡지를 보는 듯이 잘 치장하고 나오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렇지 못한 사람을 세대의 감각에 먼 후진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속 빈 강정처럼 촌스러워 보이는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치장하는 것이 덜 촌스럽다는 주장이다.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B612라는 혹성에서 살았는데 우연히 만난 장미에게서 사랑을 느끼지만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그래서 더 큰 세상을 알면 장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을 결심하고 지구에 오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구에서 만난 수많은 꽃을 통해 세상에는 같은 장미가 있지만 어린왕자가 돌보며 아끼던 장미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장미를 파괴하려는 양에 대항해 가시 4개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기 별의 그 장미 꽃이 너무 안쓰러워 그 꽃을 돌보아 주기 위해 뱀의 독을 이용해서 지구를 떠난다.(죽게 된다.)

한 신부님의 강연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원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온 것이라기보다는 가장 버림받은 영혼인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오신 것이라 하셨다. 나는 어린 왕자에서 예수님의 피, 피, 선혈을 보았다.
사랑을 보았다. 직접적인 박해가 없는 첨단과학 시대이다. 한 사람의 일상 삶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의 모범이 될 때 그것이 하얀 순교이다.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줄뿐이다.
내년, 2024년에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되어 전쟁이 없는 세상을 그려 본다.
2023년 1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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