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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칙서(Papal Bull)와 콜럼버스
kwangchul

 

“교황의 칙서"는 편지형식으로 구성된 교황의 증서 내지는 선언서를 이르는 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칙서는 이를 교황이 발표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표식으로 하단에 교황의 공식 도장을 찍는다. 이 칙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55년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침범하여 획득한 보물과 나포한 노예들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칙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후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의견이 엇갈리게 된다. 이때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이 교황의 칙서이다. 기독교인은 크리스천이 아닌 “비 기독교"인의 땅은 소유할 수 있다는 교황의 칙서를 등에 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새로 발견한 땅들을 차지하고 지배 했을 뿐만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교황의 칙서는 이후 등장한 유럽 식민제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며 잔혹한 학살 행위를 하는 도화선이 된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스페인 “가디스”를 떠나 대서양을 서쪽 방향으로 항해를 하여 10월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하게 된다. 그는 출항하기 전 지도 제작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개념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바다 서쪽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다른 대륙 인도나 중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하였다).

콜럼버스는 이태리 제노바 공화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인들에게는 위인이자 영웅적인 모험가로서 추앙 받아왔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 터전을 일군 신생 독립국가들은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콜럼버스의 항해에 관한 신화를 발굴하고 재창조하는 데에 엄청난 공을 들이게 된다.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본 관점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그곳의 원주민들은 후에 골럼버스에 의해 인디언으로 명칭 된다.) 실지로 잉카제국과 같은 고도의 문명과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며 학살자 일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지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은 인디언이라고 불려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가장 큰 과오는, 그 당시 유럽인들의 일반적인 관점인 이교도와 타인종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야만인 즉 원주민과의 약속은 당연히 어겨도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도의 정신적인 지도자 간디는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나 보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 비친 크리스천들은 그에게 너무나 딴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와 형식만을 따르며 탐욕으로 가득찬 세속적인 논리 앞엔 참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길은 무시 되고 만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동네북처럼 되는 것은 크리스천 스스로가 자초한 길이라 할 수 있다.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Aboriginal Residential School)는 1840년-1990년대까지 운영되었으며, 원주민 자녀가 6세가 되는 해에 강제로 부모의 품에서 떼어내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목적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말살시켜 캐나다 주류문화인 기독교에 동화시키겠다는 식민 동화 정책이다.

주로 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주도로 운영되었는데, 그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은 종종 학대, 체벌, 성폭력, 영향실조와 외로움에 시달렸다 한다. 그런데 옛 원주민 학교 터에서 어린아이들의 사체가 발견돼 캐나다 및 전세계를 경악에 빠트리게 한다. 이에 대해 프란시스 교황은 바티칸 방문 원주민 대표들을 접견하며 공식 사과하게 된다.

그 응답으로 2022년 7월, 당시 85세였던 프란시스 교황은 캐나다에 참회 방문을 하게 된다. 남미 대륙에서 배출한 사상 첫 교황인 프란시스 교황은 캐나다 방문시 과거 아메리카 식민시대 복음 전파 미명아래 저지른 악행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된다. 그 뿌린 씨앗의 결실로써 교황은 15세기에 쓰여진 “교황의 칙서”의 폐지를 금년 부활절 바로 전에 선언하게 된다.

또한 지난 4월 30일 프란시스 교황은 식민지 시대에 캐나다 원주민들로부터 획득한 유물들(Artifact)들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발표를 기자회견에서 하게 된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그리고 훔친 것은 주인에게 돌려주라” 십계명의 7째 조항(The Seventh Commandment)이다. (2023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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