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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살았다(3)-개처럼 안 살기
kwangchul

 

(지난 호에 이어)

“무릇 동심이란 간절한 마음이다. ~~ 어린 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 ~~ 동심은 왜 갑자기 없어지는 것일까?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또 좋지 않은 평판이 추한 줄 알고 그것을 가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분서(태워버릴 책) 중 동심설 편-탁오 이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즉,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끊임없는 선택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적 소설 "말"에서 그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모든 행실에서 나무람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어렸을 때의 그를 회상해 보면 그를 총애한 할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삶이었지 진정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토로 하였다. 다양한 가면을 치장하여 가장된 삶을 살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다고도 하였다.

탁오 이지의 말을 빌리면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인데 이미 어른 같은 아이, 나이보다 성숙한 어린아이인 사르트르는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가 타인에 의하여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르트르보다 거의 5백여 년 전 유럽의 반대 반향인 동양이라고 불려지는 지역에 살았던 사상가 탁오 이지가 말하려는 속내를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처음 마음인 동심이 어찌 없어질 수 있겠는가? 견문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자라나서는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탁오 이지에게 있어서 그의 동심은 50세 이전에 나는 개처럼 살았다고 눈물어린 고백을 하는 순간 되살아나게 된다. 앞의 개가 짖으면 나도 덩달아 짖었다는 그의 고백이 어찌 그만의 고백일까.

공자는 마흔 살에 현혹되지 아니하였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 하였다. 자신만만한 공자에 비해 50십 이전에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중해야만 하는 지 몰랐다는 그의 고백은 너무나 인간적인 인문 정신이 배어 있다 할 수 있다. 오십이 넘은 어린아이, 어딘가 찰리 채플린 류의 코미디 한 점도 느끼어 지지만 바로 그 순간이 동심을 되찾은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1952년 봄 피난시절, 거제도 장승포 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마도 입학 첫날 이었는지 많은 참관인이 있었나 보다. 선생님의 질문이 밤에 자다가 소변을 누는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아이 저 아이들 대답이 요강이라 하였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아니요 깡통이요” 라고 대답하였다.

보통학교 일학년에 입학할 정도의 나이에 학생이 대답하여야 할 수준이 아닌 대답에 참관하였던 많은 학부모들이 웃음을 터드리게 된다. 팔십 즈음에 들어가는 지금도 단언컨대 그때의 나는 내가 본 것 그대로 요강대신 깡통이라 하였을 뿐인데 그래서 좀 모자라는, 나이에 맞지 않는 그 대답에 어른들이 웃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적이 있었다.

공자는 15세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 했는데 내 기억의 15세는 전혀 학문에 뜻이 없었다. 관심은 영화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런데 15세 즈음에는 선정적인 내용의 책을 선호하여 책 빌려주는 책방을 기웃거려 드나들며 빌렸던 기억이 있다. (벌레 먹은 장미, 10권으로 된 임꺽정 전, 데카메론, 차타레 부인의 사랑 등)

학창시절, 군대생활 그리고 일년 정도의 직장생활과 결혼을 끝으로 1974년부터 캐나다 이민 생활의 새 출발이 있었다. 공자가 30세에 들어 학문생활 기초를 두었다 했던 30 즈음의 나는 365일을 일하는 컨비니언스의 매니저였다. 그 당시의 나의 꿈은 일주일 하루만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게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다.

서양속담에 위험한 사십이란 말이 있다. 청춘과 작별하고 노숙한 시기에 접어드는 자칫 허영과 허무에 빠질 위험이 있는 나이라는 뜻일 것이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럴 위험은 없었는데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모아져 작은집을 살 수 있었고 일층 집이라 증축을 하고 싶어 2층도 올려 보았다. 돈도 있고 집도 생기니 5일만 일하고 싶어 그런 류의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찾다 보니 카페테리아 스타일의 경양식 식당을 하게 되었다. 그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민생활의 경제적인 내리막으로 치닫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오십대와 육십대쯤을 오가며 나는 눈물어린 빵을 먹는 경험을 듬뿍하게 된다. 80즈음에 가며 인생 정말이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내가 고국에 갔을 때 나의 친구들은 내가 학창시절이나 현재나 별로 변한 게 없다 한다. 80에 가까이 가면서 왜(?) 변한 게 없겠는가. 변한 게 있지만 다른 게 있다면 남의 눈치를 덜 보며 산 것은 사실이다. 탁오 이지의 말을 빌리면 남들보다 덜 개처럼 산 것 같다.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에서 매일 같이 선택하며 살았는데 남들에 비해 덜 때가 묻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탁오 이지가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개처럼 살지 않기 위한 방법이 시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쁨의 만남 보다는 슬픔이 많은 냉정한 현실에서 아이와 같이 놀이의 기쁨을 창조하며 기쁨의 만남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아이는 순결이요 망각이며, 새 출발이요 유희이며,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요 최초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니체가 말하였다.

이제 새해가 밝아왔다. 우리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타인에 의하여 지배 받으며 극복하는 과정을 밟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그린벨트의 훼손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자신의 삶과 감정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자. 그럴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우리들의 뒤에 올 세대들에게 덜 상처를 받는 사회를 꿈꿀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잊어버린 인문학 정신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들과 철학가들이 환대 받는 사회를 2023년에는 더욱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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