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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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야곱의 돌베개, 스쿤의 돌(The Stone of Sc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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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든버러 시내를 위엄 있게 굽어보며 화산암 위에 우뚝 서있는 에든버러 성! 그 성채의 역사박물관 안에 ‘야곱의 돌베개’가 있다니! 
 야곱은 이스라엘 땅 베델에서 하늘의 천사가 하늘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과 야훼의 임재를 꿈에 보지 않았던가.

 

 


그때 베고 잔 믿음과 승리의 상징인 ‘돌베개(창세기 28:10-17)’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한 번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 ‘운명의 돌’은 붉은 흙이 나는 스쿤 땅에서 난 ‘스쿤의 돌, 운명의 돌(The Stone of Scone, Destiny of Scone)’이란게 정식명칭이다. 
 스코틀랜드 퍼스에서 가까운 스쿤 궁전에서 스코틀랜드 왕들이 금관과 보검을 높이 들고 이 ‘스쿤의 돌’ 위에 올라서서 대관식을 올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에 나오는 맥베스 왕이 자기를 아끼던 덩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아 보위에 오를 때도 이 바위에 올라 선서했다.
 그 퍼스의 스쿤 궁전엔 영국 에드워드 왕이 스코틀랜드 국가의 상징인 이 대관식 바윗돌을 약탈해가기 전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모조품이 무트힐 채플 앞에 놓여있다. 
 테이강 상류에 자리잡은 픽트족의 수도였던 스쿤 궁전은 아이비 덩굴로 덮여있다. 가을이면 붉은 사암으로 지은 이 궁전이 붉게 물든 단풍으로 더욱 찬란해진다. 스쿤의 돌이 놓여있는 자그마한 무트힐 채플은 궁전 뒤편 언덕 숲 사이에 있다. 왕들의 사저였던 스쿤 궁전의 살림들이 화려한데 비해 이 무트힐 채플 안엔 16세기 영주, 데이빗 머레이 백작이 제단 위에서 기도하는 설화석고상만 눈에 띈다. 
이 작은 예배당 뒷마당이 원래 스쿤 사원자리로 알려진 곳. 기독교개혁 운동 때 던디의 폭도들이 들어와서 사원을 완전히 부숴놓았다고 한다. 뒤뜰엔 차마 쓰러트리지 못한 키 높은 돌 십자가, 머캣 크로스가 말없이 서있고, 
 



사원 돌담의 일부와 돌비석들이 뒷마당에 뒹굴고 있었다. 아름다운 유도화로 둘러싸인 옛 성문 같은 무지개문을 지나 푸른 공작, 흰 공작들이 이 성의 주인공인 양 우아하게 산책하는 무트힐 예배당 앞에 다시 섰다. 에든버러 성의 진품보다 말끔한 모조품인 이곳 스쿤의 돌은 다듬잇돌보다 약간 크고, 꼭지에 끌로 파낸 자국이 있으며 모서리마다 쇠고리가 매달려있다. 
무겁지만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42.5cm, 폭 27cm 크기의 볼품없는 돌이다. 1296년에 영국 왕 에드워드1세가 스코틀랜드에 쳐들어와 그 나라의 정통성을 말살하기위해 이 스쿤의 돌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져갔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이 돌을 자신의 의자 밑에 깔고 앉았다. 약탈해 간 후 700년이 지난 1996년, 영국 대처 총리의 역사적인 용단으로 ‘스쿤의 돌’은 에든버러 성에 귀환했다. 에든버러 수호성인 앤드루 성인의 날인 11월30일에 영국 앤드루 왕자의 호송 아래 스코틀랜드왕의 금관과 보검도 공식적으로 함께 돌아온 것이다. 
 2011년에 프랑스에서 145년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 ‘조선왕실 규장각 의궤’는 700년 만에 돌아온 스쿤의 돌만큼이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회를 탄압(병인박해)하자 조선에 있던 프랑스 신부와 신자들의 요청으로 외교적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했다. 이른바 병인양요(1866년)다. 프랑스의 지나친 대응은 한국 천주교회가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 했다.

 

 


이로 인해 쇄국정책만 더 강화됐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한 조선왕실 의궤와 은괴를 약탈해 갔다. 의궤(儀軌)란 국왕의 일생, 국가의 행사, 편찬 사업, 건축 등의 자료를 기록한 책인데, 현재 우리나라에 없는 유일본도 가져간 것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고종황제 즉위까지 꾸준히 적어 온 조선왕실 의궤의 가치는 국가행사의 의식절차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기록한 데 있다. 
 이두문자를 써서 활자본 의궤까지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여 국정운영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복식 제례와 장신구 등 전통적인 풍습제도를 상술한 것에 큰 의미가 있으며, 이 조선왕실 의궤는 이미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이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하나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데 비해 우리나라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일곱 가지가 기록문화유산으로 오른 세계최고의 기록문화유산 보유국이다. 
 조선왕실 의궤에 적힌 복식의전을 제대로 알아서 어느 때, 어떤 한복을 입고 출입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았다면, 신라호텔에서 우리나라 복장인 한복을 입고 쫓겨나진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요란하고 비싸 보이는 정장 한복은 만찬용이지 뷔페식사 초대용은 아니었으므로. 서양 여성들이 정식만찬에 입는 야회복을 입고 뷔페식당에 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스쿤의 돌’을 ‘야곱의 베개’라고도 부르는 것은, 영국왕실이 유대왕 다윗의 후손이라고 우기는 유대계 영국인들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 이후 사라진 열 부족의 한 부족이 ‘야곱의 베개’를 이스라엘 성지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 서부를 지나 영국에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951년에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대학생 네 명이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이 대관식 바위를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왕좌 밑에서 빼내어 원래 자리인 스코틀랜드로 몰래 가져다 놓으려다가 영국 경찰에 발각된 사건을 테마로 한 영화도 있다.
 글라스고우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에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꿈꾸는 그림이 있다. 큰 야망을 꿈꾸는 야곱처럼 이 그림을 본 글라스고우 대학생들도 민족애에 불타올라 그 상징물을 되찾아오려는 꿈을 꾸었으리라. 700년 만에 다시 찾은 국가의 상징처럼 언젠가는 스코틀랜드가 그들의 독립을 다시 이룰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부부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장로인 빌 앤더슨씨의 안내로 에든버러 성안에 있는 그 귀한 진짜 ‘스쿤의 돌’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빛을 내며, 마치 지난 역사의 실마리를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금관까지 쓰고 앉아 있는 듯한 ‘야곱의 돌베개’, 스쿤의 돌 사진을 두 번씩이나 다시 들어가서 몰래 찍는 데 성공한 나의 입에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야곱이 잠깨어 일어나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는 찬송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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