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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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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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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사랑은 결심이다

 

우리 외할머님은 서울에서 강원도 두메산골로 시집을 가셨다. 집은 넓어서 하루 종일 종종걸음 해야하고, 대문 밖엔 비원의 춘당지 같은 큰 연못가에 지은 활래정이 돌아갈 줄 모르는 손님인양 차지하고 앉아있다. 여름이면 아기우산 같이 넓은 녹색 이파리 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분홍 연꽃들이 황혼녘에 불타는듯 하다. 그런데 그 멋진 정자엔 여름내내 외할아버님의 손님으로 들끓는다.

할머니는 찌는듯한 복날에도 화롯불을 끼고 손님 대접할 음식을 지지고 볶으며 땀을 흘리신다. ‘아이구 이 웬수야!’를 연발하시면서.

‘할머니, 웬수가 누구에요?’

‘너희 할아버지 말고 누가있냐?’

‘그 웬수를 위해 이 복날 두텁떡까지 만드셔요?’

‘아이고 이 웬수.’

‘속으론 아이구 내 사랑! 하시면서…’

얼마 전까지도 나는 사랑은 운명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이 있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결혼하는 이 과정에서 그 만남은 운명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운명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십 여년 봉사하던 샬롬노인문화원이 세계부부일치운동 프로그램(World Wide Marriage Encounter)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다. 이 운동을 옆에서 도와주신 서강대학교의 신성룡 신부님이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결혼준비교육> 특강에 우리 부부를 경험부부 강사로 실습하게 해주셨다.

 3 커플이 1주일에 22시간, 한 학기에 300시간을 준비해서 3학점 짜리 수업을 공동 강의하는 힘든 수업을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참여한 강사들이 더 열기에 휩싸여 인생의 신비를 새삼 체험했다.

 우리가 맡은 14개의 주제 가운데 가장 마음을 찌른 주제는 “사랑은 결심이다”였다. 사랑은 우연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고 다양한 과정을 통해 완성하는 필연의 결과란 것. 진정한 사랑은 내 배우자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늦게나마 깨닫게 했다.

 나의 배우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할 일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만 ‘당신이 좋아, 당신을 사랑해.’란 말을 하게 되면 그 수업은 우등급이다.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을수록 사랑이 깊어짐을 알게 된다. 우리도 새롭게 나눈 대화로 34년 동안 앙심을 품어 온 오해가 풀렸으므로.

부부대화 실천의 지름길로 우리는 아침마다 성경읽기를 시작했다. 한 사람이 기쁘게 읽는 동안 한 사람은 깊이 묵상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역사에 동참하는 감동마저 맛보게 되었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마음이 피곤하고 어지럽던 어느 날 아침에 전도서 3장을 읽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하느님은 모든 일이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남을 보여주신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과 함께.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겨야 함을 새삼 느끼면서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자, 그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번 주 나의 사랑의 실천계획은, 남편이 출근 할 때 한 번만 해주던 키스를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도 비록 먼지 묻은 얼굴이지만 반가운 입맞춤을 한번 더 해주기이다.

이렇게 배우자 사랑을 결심하며 사는 것은, 예수님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첫번째 원수는 먼데 사는 이웃이 아니라, 옆에 붙어 사는 내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외할머니의 웬수가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였듯이. 우리처럼 서로 ‘사랑해’란 말을 할 줄만 아셨어도 그 웬수와 앙앙불락으로 일생을 보내진 않으셨을텐데, 참 아쉽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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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사랑의 결심표, 봄의 크루즈

 

 

나는 배를 타기만 하면 요나 생각이 난다. 작은 보트이든 대양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이든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요나처럼 바다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 앉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선지자 요나가, 하느님의 니느웨 이방선교 명령에, ‘내가 왜?’하면서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달아나다가, 하느님의 진노로 폭풍이 그 배에 몰아치고, 요나는 바다의 고래 뱃속에서 어둔 밤 사흘을 지낸 다음 회개하고 살아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웬 사운드에 살 때, 우리집 3층 창밖에 한 길 건너 보이는 죠지안 베이 나루터엔 겨우내 회색 어름판 위에서 잠 자다가, 4월 그믐날 아침에,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며 봄의 크루즈를 떠나는 하얀 큰 배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 3년 동안 살면서 그 배를 꼭 타 보고 싶었다. 첫 해엔 몰라서, 두 번 째 해엔 한국방문으로 못 탔으나, 이번엔 남편이 내 생일을 축하하는 ‘사랑의 결심표’로 그 비싼 spring cruse 표를 한달 전부터 사놓고 기다렸다.

행복한 카누, Ms Chi-Cheemaun 이라는 귀여운 오지브웨이 인디안 이름이 붙은 이 배는, 죠지안베이의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 1930년엔 조그만 통나무배였다. 이제는 5대 호수에서 가장 큰 페리로 성장했다. 해마다 5월1일부터 추수감사절까지 부루스반도 북쪽 끝의 토버모리에서 매너툴린 섬 남쪽 끝에 있는 사우드 베이마우즈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미국 디트로이드에서 오웬사운드를 항해하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오웬사운드 운송회사가 이끄는 7500톤의 이 큰 배엔 6백 여명의 승객과 1백 여대의 자동차를 함께 실어준다.

사월 그믐 날, spring cruse 에 참가한 승객들은, 비록 오색 테잎을 날리진 않아도 소풍가는 학생들마냥 부푼 가슴을 안고 배에 오른다. 지금은 오웬사운드 미술관이 된 옛날 기차 정거장 앞 부두에서 떠나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흘러내려 병풍처럼 둘러쌓인 단층애를 끼고 토버모리를 향해 5시간 항해한 다음 내려준다. 그곳에 학교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웬사운드로 다시 데려다 주는 하룻배 나들이다.

갑판에 있는 작은 방에, 옛날 선장 모자를 쓴 부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하루 봉사자들로 커피와 와인, 그리고 그날의 인기종목인 복권을 파는 사람들이다. 복권 당첨자들이 차지할 선물들을 문 앞에 잔뜩 쌓아놓고 시선을 끈다. 그 수입은 이 배를 탄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 돕기 자선모금에 참여하므로써 이 배를 더욱 잊을 수 없는 캐나다 명물로 키워준다는 것.

 

겨우내 창밖으로 내다 본 이 배를 타고 우리 집 앞을 지날 때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뾰족탑 교회와 숲이 있는 언덕배기 아래 우리 집 빨간 대문과 작은 창문 세 개를 바라보며, 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비에 젖어드는 흥겨움이 일었다.

나이아가라에서 백 리 길이 넘는 부루스 트레일이 죠지안 베이와 만나는 곳에 빼어난 모습으로 높게 낮게 길게 누워있는 나이아가라 절벽. 빙하기 이전부터 나이아가라 강에서 흘러와 화강암과 이판암으로 층층이 쌓인 이 자연의 조각작품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면, 사람들이 모두 갑판으로 몰려나와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기암절벽 아래 물가엔 천 년이 넘는다는 레바논의 하얀 삼나무가 생명의 나무로 자라고 있고, 높은 절벽 위엔 캐나다 7 아티스트의 한 사람인 톰 톰슨이 넓은 붓으로 휘갈겨 그린듯한 짙푸른 전나무들이 강물을 향해 목메인 부르짖음으로 바람 속에 서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생태보호지역 공원이 된 나이아가라 단층애 끝에 허허로운 밤 물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보인다. 밤길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어두운 길을 지날 때도 밝게 비춰주겠다는 듯이 높이 지은 붉은 전망대가 아름다웠다. 외로운 등대지기의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이윽고 토버모리의 유명한 Flower Pot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이아가라 단층이 빚어낸 자연의 큰 바위조각상 같은Flower Pot은, 마치 “전능하신 우리 주님 얼마나 크시냐. 그 슬기 형용할 길 없구나.”노래 하는듯. 귓바퀴엔 귀한 종려수 가지를 꽂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화분Flower pot이란 속물이름이 웬 말인가?

 

명상에 잠긴 이 바위조각상을 보자 내가 만든 나이아가라 시편달력이 생각났다. 그 달력의 5월 사진이 바로 이 생각에 잠긴 바위조각상, Flower Pot이기 때문이다. 이 멋지고 행복한 카누의 선장님에게 선물하려고 ‘나이아가라 시편달력’을 한 벌 가지고 왔기에 선장을 찾았다.

세 번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뛰어다닌 다음에야 그 아담스 선장을 붙잡을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사진도 찍고, 방금 지나온 Flower Pot이 든 달력을 선물하자 아주 좋아한다.

우리는 코리안 캐나디언이라고 말하자 다시 놀라며, 하노버에 있는 자기 옆집에 가구점을 하는 한국인이 산다고 해서, 언론인 출신인 위재광씨 아니냐고 하니까 더 반가워한다. 겨울이면 서로 눈도 치워주는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담스 선장이 두 번째 만나는 한국인들인 셈이다. 그의 아버지도 오대양 항해선의 선장이었고, 삼촌은 우리가 조금 전에 지나 온 이 지역의 등대지기였다고 자랑한다.

두 전속 선장의 한 사람인 그는 항해가 없는 겨울엔 북미지역에 잘 알려진 오웬사운드 Georgian College에서 해양과학, 레이다, 선박조정 등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한다.

하얀 큰 배가 마지막 항로를 향해 S자로 멋지게 접어들자 부두에선 생선냄새 대신 향긋한 전나무 냄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듯 가까운 숲에서 풍겨온다. 종점인 토버모리 나루터에 이르자 다섯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낸 Chi-cheemaun 의 뱃머리가 입을 좍 벌리고 우리들을 밀어낸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본 Chi-cheemaun은 검은 고래가 아닌 하얀 상어가 거대한 입을 벌려 우리를 뭍으로 토해내고 있는 듯했다. 하긴 요나를 삼킨 바다의 물고기가 검은 고래가 아니라 하얀 백상어리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으니까…우리도 요나처럼 저 하얀 상어 같은 뱃속에서 우리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고 먼 수평선이 하늘과 만나는 무한대의 사랑을 다시 맛보게 해준 사랑의 크루즈에서, 오웬사운드로 돌아가는 버스에 가쁜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다음엔 이 토버모리에서 정기 운행하는 Ms Chi-Cheemaun을 타고, 마니툴린에도 가보아야지. 8월 시빅 공휴일에 열리는 원주민 예술제, 파우 와우Pow-wow에서 원주민 소리꾼과 춤꾼들과 소고를 치며 한마당 끼여보리라. 그리고 토버모리의 Flower Pot 섬에 내려, 나이아가라 단층 벼랑에 새겨진 그림들을 다시 한번 잘 드려다 보고싶다. 그곳엔 북미 인디언 원주민들이 때도 없이 우렛소리와 벼락치는 소리를 지르는 두려운 나이아가라 폭포를 잠재운 태고적 비밀의식秘密儀式 그림들이 수두룩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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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영국의 작은 베네치아(2)

 

(지난 호에 이어)

 

창가에 서있지 말고 이리 와봐요, 여보, 내게 오는구려, 마침내,

울적한 우리 작은 방안으로

우리가 함께 즐겁게 지은 작은 집 안으로. 하느님은 공평도 하시지.

프랑스 왕도 나를 용서해줄 거요. 밤이면 더 할거요.

우리 서로 사랑을 나누기로 해요. 왜 가려고?

당신의 사촌이 여기 또 왔소? 밖에서 기다린단 말이오?

당신을 꼭 만나려고 -당신은, 그럼 나와 함께 있지 않겠다고? 빚 때문에?

노름 실컷 해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당신은 그렇다고 미소 짓는구려?

좋아요, 미소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요! 조금만 더 함께 있어주겠소?

내 맘의 한 부분인 당신의 손과 눈마저 나를 떠나면

내 작품 서명은 어떻게 하며 또 무슨 값어치가 있겠소?

모두가 부질없는 공상일 뿐. 그저 당신 곁에 앉아있게 해주구려

내가 프랑스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단 한 장이라도, 꼭 한 장만 더 -성모님의 얼굴을.

지금은 당신을 그리고 싶지 않소!

그리고 그 자에게 다른 두어 가지 일에 끼어들게 해야 돼요

그가 당신 곁에 머물겠다면 말이오. 만사가 잘 풀리게 될 거요

당신 사촌이 종작없는 놀음을 계속한다면 말이오. 게다가,

내가 최선을 다해 걱정해줄 일은,

당신이 그 놀음에 열 세 번을 거는 일이오!

여보, 이제 만족하오? 아, 하지만 그 자가 무얼하던,

당신 사촌 오라비는 무얼로 당신을 보다 즐겁게 해주겠다는 게요?

나는 오늘 밤까지 평화롭게 성장해왔소.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소, 내게 변화가 올 터인데도 말이오.

나의 과거의 삶이 아직 펼쳐져 있는데 내 삶이 왜 바뀌어야 하나?

가장 잘못된 일은 프란시스 왕에게 간 일이었다오! 그게 사실이오

내가 그가 던져준 돈을 집어온 것은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소.

게다가 이 집을 지음으로 죄를 짓게 된 일이오. 사람들이 모두 말하더군요.

틀림없이 그 생활에 조화를 깨뜨리는 일이 생겼소. 그래요.

당신은 나를 나무랄게 없이 흡족하게 사랑했고, 오늘 밤에도 그렇게 보였소.

여기까지로 충분하다 생각하오. 그런데 한 가지 더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일까?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인연이, 한 번만 더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면 -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천사의 피리 소리에 맞추어 각자의 자리가 정해질 거요.

또 들려오는구려, 당신 사촌 오라비가 당신을 불러내는 저 휘파람소리! 이제 가 봐요, 내 사랑.” (<흠절없는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 윤경남 옮김)

 

 한 예술가의 영혼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뇌로 갈등을 겪는 이 시는, 267행의 긴 독백 극시로 끝난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그의 악처와 루크레치아를 연상하며 언거번거하다가, 결국은 사랑하는 여인을 놓치고 마는 마지막 장면엔, 참을 수없이 측은한 눈물이 난다.

로버트 브라우닝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 유심론적 정신주의 특성을 가진 시인이며 극작가이다. 실존한 역사적 인물이나 가상 인물을 모델로(통해) 사랑의 갈등과 고통스런 삶의 문제를 다룬 것이 그의 독백극 시의 특성이다.

 브라우닝은 목숨처럼 사랑하던 아내 엘리자베스와 15년 동안 꿈같이 아름다운 피렌체의 사랑의 둥지에서 부부가 작품생활을 함께했다. 그러나 병약한 엘리자벳은 아들 하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브라우닝은 엘리자벳이 없는 피렌체를 가슴에 묻고, 1861년에 영국에 다시 돌아온다.
 런던 운하 옆에 버드나무가 휘늘어진 강가에 보트들이 수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마을에 정박한다. 이탈리아의 추억을 연장하듯 작은 배들이 떠있는 그 운하마을을 마치 ‘작은 베네치아’ 같이 아름답다고 브라우닝이 말해서 그곳을 ‘리틀 베네치아’ 혹은 ‘브라우닝의 연못’이라고 부른다.

브라우닝은 이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귀부인 애쉬번 루이자와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었으나, 그녀의 애타는 청혼을 거절한다. 루이자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킨 루크레치아와 같은 악처가 될 것을 두려워한 건 아닐까?

 셰익스피어 로얄 극장에서 연극을 구경하고 나면 에이번 강 일대에 있는 중세기 시대의 성들을 둘러보게 되어있다. 그곳에서 가까운 유령의 성 같은 <케닐워드 성>-월터 스콧의 작품에 나오는 성을 지나면, 카디프 성을 구경한 다음에 워릭셔 에이번 혹은 셰익스피어 에이번이라고도 부르는 워릭성Warwick Castle이 나온다.

잔디위로 짙푸른 꽁지를 이 성의 왕자인양 길게 늘이고 산책하는 벼슬 높은 공작새도 만날 수 있다. 잔디 위의 깃털을 주워 셰익스피어의 펜대인양 모자에 꽂았는데 바람 결에 어느새 날아가 버렸다.

 이 워릭셔에 있는 작은 베네치아는 스트랫포드의 셰익스피어 극장 앞을 흐르는 에이번 강이 삼각주를 이루는 모퉁이에 있다. 가지각색으로 장식한 보트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보트 정박장은 마치 영국의 Canterbury Cathedral을 찾아갔을 때, 캔터베리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개여울에 작은 보트가 떠있는 것을 보고 놀라던 생각이 난다.

 그 보트 위에 한 남자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는 마치<흠절없는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부인 루크레치아를 창 밖에서 휘파람으로 유혹하던 남자 같기도 하고, 로버트 브라우닝이 마치 사랑하던 엘리자벳을 그의 보트에 태워주려고 기다리고 서있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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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영국의 작은 베네치아(1)

 


 

Robert Browning(1812-1889)은 그의 친구이며 연극배우인William Charles Macready 의 요청을 받고, 셰익스피어 로얄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여러 편 썼다. 스트랫포드의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5회의 공연을 하고 두 편의 극작품을 더 썼으나 그 2편은 공연되지 않았다고 한다. 
 공연한 독백극 시 <흠절없는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 독일의 하멜른 마을에서 피리부는 사람을 따라 마을을 떠난 아이들의 이야기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짧아서 외우기 쉬웠던 <피파의 노래>는 알고보니 3막짜리 연극 시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들의 시낭송 레파트와에 들어있다.
 <흠절없는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는 아내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면서 아내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한다.

“나 좀 봐요, 나의 마돈나!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요.
내가 하고자 한다면, 내가 아는 것, 
내가 본 것, 내 맘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어떤 것도
내 연필로 모두 그려낼 수 있다고요.
꿈? 
잘 그려 보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당신은 그 심정 모를 거요. 그 화가들이
당신이 지각없이 둥둥 떠다니며 옷자락으로 화판을 쓸어버리 듯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소박하게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떤 이는 말하지요,
아주 쬐끔만 더!
그래요, 적은 게 더 풍요로운 법, 루크레치아: 난 심판을 받고 말았소. 
그 친구들 가운데는 진정 하느님의 빛이 타오르고 있었소,
짜증내며 휘저어 채워넣은 물감들 속에 그리고 콱 막힌 그들 머리통 속에도 말이오, 
내 가슴은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재빠르게 형상화 되고 만다오. 
주저없이 돌진하는 이 기능공 같은 두 손 안에 낮은 박동 소리 울리면서.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 그 자들의 작품은 땅 바닥을 기고 있소만, 그 자들은 천국에 살고 있음을 나는 알지요,
나도 여러 번 그 천국 문 앞에 이르렀소만 천국 문은 언제나 내 앞에서 닫혀버리는구려, 
천국에 들어가 그 친구들의 자리를 차지할 능력이 넉넉하건만, 
내 작품들은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건만, 난 그저 여기에 앉아 있을 뿐.
이 친구들의 놀라 자빠질 활력이라니! 한 마디로 - 
그들을 찬양하라, 피가 끓어 오르네, 그자들을 모멸하라, 그래도 피가 끓어 오르네.
나란 인간은, 기껏해야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그림만 그릴뿐,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인간들의 비난에도 확고부동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들이 칭찬해주는 것도 알고 있소.
아, 그러나 인간의 성취는 그의 수중에 있지 않음이라,
아니면 하늘은 왜 존재하겠는가? 온통 뿌연 잿빛인데
차분하고 흠절없는 내 그림이여: 최악의 작품이여!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며 내가 건질 게 어떤 건지 다 알고 있소, 
알아도 이로울 일 하나 없고 한숨 지어도 소용없음을 나는 알고 있소.
내 안에 나 자신과 다른 나 - 두 개의 내가 살고 있었소.
우리들의 머리는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소! 맞는 말이오.
하지만 모두가 연극일 뿐이오, 그 통찰력 그 추진력-
그것이 내게는 없소, 내게서 빠져 나갔소! 어디로 빠져나갔느냐고요?
당신이 그것을 내게 불어넣어주었더라면, 내 영혼에 넣어주었더라면,
우리는 라파엘도 앞질렀을 텐데, 그대와 내가 말이오!
게다가 마치 새 한 마리가 참새 잡이의 피리소리 따라 덫에 걸려 드는 듯한— 
나지막한 그대 음성에 내 영혼이 귀 기울여 들었소.
당신이 이와 똑 같은 식으로 어떤 정신을 넣어 주었더라면!
정신을 넣어주는 그런 여인도 더러 있답디다. 이렇게 찬양하는 입술을 가진 여자도 있다고요.
돈 버는 일보다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지금 뿐 아니라 장래에 걸쳐 무엇을 얻게 될까요? 
이름을 떨치며 살아야지요, 미켈란젤로 옆에 바짝 붙어서!
라파엘이 기다리는 곳: 성삼위 하느님이 계신 그 높은 곳으로!”
나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런 작품 완성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다니까요.
아닐 수도 있겠네요. 만사가 하느님 뜻에 달려있으니까요.
게다가, 자극은 영혼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니까요, 
그러나 그 의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무엇인가 역시 능력이에요- 
그래서 우리 반쪽 짜리 인간은 늘 싸우는 거에요. 결국은, 
결론 짓자면, 하느님은 꼭 갚아주시고, 벌 주시고 하신다고요.
그 배경 속에서 내 작품이 완성하기를 고대하면서
마지막 보상의 면류관을 기다리면서 말이오!
내 인생은 너무나 환하게 빛이 나고 어두운 회색이 아닌 황금빛 천지였소. 
그런데 나는 밝은 햇빛이 아무리 유혹한다 해도 볼 수 없는 시력 약한 박쥐라오.
사방 벽으로 가두어 놓은 세상에서 창고 밖으론 나갈 수가 없단 말이오. 
내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완수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이 나를 이곳에 불러 냈고, 그래서 나는 당신의 가슴을 향해 집으로 돌아왔소.
승리의 월계관은-손을 뻗쳐 거기서 머물러버렸소; 그런데
승리 직전까지 달려왔소만, 얻은 게 무얼까요?
내 두 손이 당신의 황금 머리 결 속에 당신의 얼굴이나 만져보게 해주오. 
아름다운 루크레치아, 내 사랑이여!
왜냐면, 당신 이거 알아요, 루크레치아, 하느님이 살아계셔서
어느 날 그의 분신인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말하리란 것을.
라파엘에게, 내가 요 몇 해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아노라… 
아, 그러나 그 영혼은! 라파엘 그 자는 영혼을 파괴하고 말았다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게 놔두구려. 이제야 당신은 진심으로 미소 짓는구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말이오! 또 웃는구려?
루크레치아, 당신이 매일 저녁 내 곁에 이렇게 앉아있어만 준다면,
나는 일이 훨씬 잘 될 거요, 알겠소?
말하자면 내가 더 많이 벌어서, 당신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단 말이오.
이리와 봐요, 이제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있소. 별도 보이는구려,
모렐로는 떠나가고 등불만 벽에 비추는구려,
귀여운 부엉이들이 우리가 붙여준 이름을 불러주는구려. (다음 호에 계속)

 


Cardiff Castle에 산책하는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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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니콜라이 황제와 고종 황제의 선물

 

 

한국에 있을 때, 최종고 서울대학 교수님이 민 씨 집안에 혹시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때 받은 선물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흥미를 느끼면서, 시댁 어른들에게 수소문했더니 둘째 시숙 민수홍 교수(전 한라대 총장)가 소장하고 계셨다.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다녀온 민영환 공이 친척인 侍南 민병석 대신에게 준 것인데, 민수홍 교수를 양자로 삼으려했던 그분이 선물로 준 것이다. 황금빛 나는 스위스제 회중시계였다. 러시아 황실 문장이 새겨진 뚜껑은 낡아서 떨어져 있었지만, 시계는 작은 초침 원반까지 들어있고 숫자도 선명했다. 사진으로 잘 남겨두었다. 

니콜라이 황제가 대관식 기념으로 만든 시계는 천 개도 넘게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니까, 윤치호 선생도 틀림없이 받았으리라 여기지만 그의 손자인 윤승구 사장이 그 시계는 찾지 못하고 고종이 하사한 회중 시계만 보여주었다.

이 시계 외에 민영환 특사에게는 성 안나 일등 훈장을, 수행원 윤치호에게는 성 안나 2등 훈장을 수여했다는 이야기는 ‘해천추범’에 나온다. 아마도 윤치호는 황제의 선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심지어는 조선왕이 니콜라이 황제에게 바친 대관식 축하예물도 너무 초라해서 마뜩치 않았던 듯, 그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5월29일. 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에, 조선왕이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을 축하하며 보내는 선물을 전하기 위해 파스콤 장군과 함께 크레믈린 궁전에 가다. 선물의 내용은, 자수를 놓은 병풍 2개, 큰 대나무로 만든 창 가리개 발 4개, 수놓은 돗자리 4개, 진주조개로 장식한 자개장 1벌, 백동 향로(白銅 香爐) 2개이다. 

이 선물은 조선 사람이 사적으로 러시아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는 알맞다. 그러나 조선 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주는 선물 치고는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다. 선물을 보관하려고 받아 든 관리들의 옆얼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아, 가난한 우리 조선 나라여!“

그런데 실은 조선 군주가 보낸 선물 중에 두 개의 백동향로는 굉장한 예물이었다. 우연히 ‘궁중차의 맥을 이은 석조다로(石彫茶爐) 문화재’(2011. ‘차의세계’ 오병훈) 에서 현재 러시아 크레믈린 박물관에 대한제국 때 만든 두 점의 백동 향로가 소장된 사실을 읽게 되었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때 명성왕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 당하자 위협을 느낀 고종 임금이 러시아 공사 웨베르를 궁으로 부른다. 그와 상의한 끝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俄館播遷) 하여 지내면서 양국 간에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마침 러시아 황제 대관식 초청에 사절단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곁들어있다. 

그 백동향로(白銅香爐)는 원통형과 장방형의 두 점이다. 원통형 향로는 높이 22㎝, 지름 13㎝. 당초무늬를 조각한 투각 뚜껑 위에 둥근 손잡이 꼭지가 달려있다. 향로에는 진복(眞福)을 의미하는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장방형 향로는 길이 21.7㎝, 폭 16.5㎝, 높이 18㎝. 4개의 다리가 달린 기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 향로 뚜껑도 당초무늬가 들어 있고 정서(呈瑞)라는 글자를 새겼다. 뚜껑에는 당초 무늬를 조각했고, 동그란 손잡이 꼭지가 솟아있다. 화로 혹은 향로 이다.

정서呈瑞란 위아래로 솥이 붙어있는 상서로운 향로란 뜻이다. 이 장방형의 향로와 원형의 향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맞붙어 있었더라면, 정서呈瑞가 상징하는 향로진상의 목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즉, 땅을 상징하는 장방형의 향로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향로를 얹은 것이었다면, 조선 사절단의 애절한 밀명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솟는다. 

 

 

조선 임금이 러시아 정부에 요청한 다섯 가지 친서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원을, 땅은 네모를 의미한다. 옛날 중국인들의 우주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겨우 한 가지만 얻어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참여의 주목적인 고종 임금의 친서는 5종목인데(윤치호 영문일기 1896.6.5),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대목- 5.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갚기 위해 300만엔을 차관해줄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 대목은 민영환의 ‘해천추범’에도 올라있지 않다.

값 비싼 예물이 아니었어도,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선물이었으면 더 효험을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 윤치호 선생도 그 뜻을 알기에 가난한 게 아니라 불쌍한 조국을 생각하고 슬퍼한 것이 아니었을까?

 


2013년 영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 여왕에게 한국 전통음식을 담는 구절함과 최고급 인삼인 천삼을 선물했다. 영국 왕실에서는 박대통령에게 은쟁반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스 대십자 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Bath)을 수여했다고 한다. 120년 전에 러시아 황제와 조선 사절단이 주고받은 선물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데, 나라의 후광으로 인한 자격지심에서 오는 슬픔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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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7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톨스토이의 그림자, 리어왕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영국 해안의 기후 속에 태어난 셰익스피어와 긴 겨울에 눈보라 치는 대륙성 기후를 타고 난 톨스토이는 기후와 풍광에서 오는 차이가 작품에도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마다 아름답고 슬프고 여린 꽃들과 나무들을 등장시킨다. ‘햄릿’의 오필리아가 갈잎을 꺾어 들고 혼자 걷다가 삼색 비올라와 팬지꽃을 드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아, 여기에 팬지가 있네. 나의 생각이 모두 모여 있는 곳.” 

요정들이 좋아한다는 요정의 풀꽃, 레몬 자임들이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원한 사랑을 기억해주세요, 간청하는 분홍빛 여인의 뺨 같은 로즈마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강의 생가, 외가, 아내의 옛집 뜰 뿐만 아니라,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산에서도 향기가 진동한다. 

반면에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나무들이 많이 등장한다. ‘부활’에서, 네푸류토푸가 하녀 카추샤를 사랑하며 그를 유혹하려고 라일락을 들고 간다. 보다 더 상징적인 것은 동화 ‘세 그루의 사과나무’ 이야기이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새사람이 되려고 대부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의 대부는, 사과나무의 묘목을 세 개로 잘라서 태워 묻은 다음, 그 세 그루에서 싹이 날 때쯤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여러 가지 역경을 겪으며 세 가지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 세 그루의 묘목에서 세 그루의 사과나무 새 싹이 자란다는 기독교적인 교훈이다. 

톨스토이의 생가인 넓은 장원의 오솔길에, 그리고 흰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의 북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빛을 내며 서 있는 흰 자작나무들의 모습은 톨스토이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고 러시아의 자존심이며 러시아 국민의 나무답다. 

박애정신과 종교심이 강한 톨스토이에게도 그 나름의 검은 그림자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1903년, 75세의 인생 정돈기에 격렬하게 셰익스피어를 헐뜯는 ‘셰익스피어 예술 론’을 쓴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평생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셰익스피어는 천재가 아니고, ‘평균적인 작가’도 못되며, 그 대표적인 예가 ‘리어 왕’”이라고 했다. ‘리어 왕’의 주제는 바보스럽고 수다스러우며, 부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고, 과장되고, 조악하고, 지루하다는 것. 

그리고 터무니없는 사건에, 광적인 헛소리, 억지 농담, 시대착오, 부적절함, 외설, 진부한 무대 습속과 비덕적이고 미적인 결함으로 꽉 차 있다는 것. ‘리어 왕’은 어떤 무명작가가 이전에 쓴 훨씬 더 나은 희곡 ‘레어왕’을 표절한 것으로, 셰익스피어가 훔쳐다가 망쳐놓은 작품이라는 것. 

"셰익스피어는 독자가 바라는 어떤 존재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예술가는 아니었다"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은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은 저급하고, 솜씨가 깔끔하지 못하며, 한 순간도 진지할 줄을 모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그의 ‘예술론’을 편 것이다.

그 ‘셰익스피어 예술론’에 맞서 반론을 편 조지 오웰의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를 읽고 나서야 독자들은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 ‘리어왕’에 이렇게 깊이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이유는, 톨스토이의 말년이 ‘리어왕’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서 괴로워 미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호기 있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딸들에게 내어준 리어왕이 그 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위선의 댓가), 결국은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던 코델리아가 리어왕의 인격을 완성시켜주는(참회과정) 구세주이며 희생양이 된 것이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문학의 바이블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폭풍 속에 갈갈이 찢어 날려버리는 백발의 미치광이 톨스토이를 떠올린다. 그 모습은 폭우 속에서 어릿광대와 바보 같고 슬픈 대화를 나누는 리어왕의 모습이다. 그리고 괴테가, 악마인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자신의 그림자상에 자신을 내맡긴 파우스트의 행동은 “악을 바라면서도 선을 발견하려는 힘의 일부”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톨스토이도 말년의 가족관계의 갈등과 고통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자포지심으로 그런 광적인 예술론을 쓰게 된것이 아니었을까? 

리어왕이 고대의 신비스런 제단인 스톤헨지에서 딸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 바로 그 자리에서, 희생양이 된 코델리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 그의 몸이 차가운 시체가 된 것처럼, 톨스토이는 그가 사랑하던 아스타보 기차역의 차가운 역장 집에서 급성 폐렴으로 폭풍 같은 그의 삶을 마감한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남기면서.

셰익스피어가 톨스토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더라면, 문학의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이겼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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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톨스토이의 무위사상(無爲思想) Let it Be!

 

 러시아 작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터득하고 그의 작품에 반영한 무위사상無爲思想은 노자의 도덕경, 예수의 산상수훈, 캐나다 장로교회 찬송가 474장에, 그리고 Beatle & Beatles의 노래에도 들어있다.
 톨스토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아주 인색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 아니고 다만 운좋은 사나이로 만 묘사했다.”고, 파리의 나폴레옹 영묘원을 둘러 본 소감을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불가능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 없다’고 큰소리 치던 나폴레옹을 러시아 벌판에서 몰아낸 쿠투조프 장군은 아뭏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모스크바 강 근처 보로디노에서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처럼 매번 선봉장으로 지휘를 하지 않았다.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인물이었다, 밥 먹는 시간과 기도하는 때 외에는 야전 막사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쿠투조프는 톨스토이의 역사관과 인생 후반기에 심취했던 노자 탐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노자가 주장 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즐길줄 알았던 쿠투조프는, 아마도 자각몽 Lucid dreaming 속에서 뛰어난 전략을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예술과 농민을 위해 쉬지않고 움직이며 살았던 톨스토이는, 그의 말년의 작품인 民話의 주인공 ‘바보 이반’처럼, 우직한 바보들이 모인 나라가 건강한 나라이므로 폭력과 돈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무위개념(無爲槪念)은, 톨스토이가 인본주의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노자사상>에 빠져들어 <노자>를 번역하기도 한다.
 그의 無爲槪念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산상수훈을 생각나게 한다. 갈릴리 호수 북쪽 언덕위엔 아름다운 팔복기념교회가 서 있다. 예수님이 높은 바위산에 앉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을 누리게 되는가 이야기 해주신 곳.(마태복음, 누가복음)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자에게 여덟가지 천상의 행복이 온다는 교훈을 들려주신 곳이다.
 이 수훈 중에 첫째 행복은 ‘마음이 가난한 자’, 즉 마음을 비우고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자의 행복이다. Let it be! 
 다정한 내 친구가 환갑선물로 비단 풍뎅이가 달린 열쇄고리를 내 가방에 달아주면서, 환갑還甲은 갑충甲蟲인 풍뎅이가 신선으로 승화한다는 의미란다. 그래, 이제부턴 좀 철이 들어 신선같이 조용하게 살아볼께, 하며 지금까지 달고다닌다. 푸른 잔등에 오로라 빛을 내며 풍뎅이(Beetle)는 이따금 노래를 들려준다. Let it be! ‘나를 그냥 놔두세요! 나좀 가만 내비둬요!’하고.
경주시 황남대총의 마구장식馬具裝飾은 비단벌레 풍뎅이(metallic green beetle)로 장식되어 있다. 
얼마 전에 제임스가든 무궁화동산에 핀 분홍 꽃잎에, 오색영롱한 날개를 접고 행복 하게 無爲를 꿈꾸는 산 비단 풍뎅이를 만났다. 재빨리 내 카메라에 담아두고 나의 명상의 길라잡이로 삼았다. Let it be!
 이 풍뎅이의 영어말은 비틀Beetle이다. 세계 가요계를 휩쓸었던, 비틀즈 (Beatles)의 상징이다. 그들도 나의 행복한 무위의 풍뎅이가 부르는 노래를 불렀다. ‘Let it Be!’

<구름 덮인 밤일지라도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나를 밝혀줄 등불은 있답니다.
‘나를 그냥 놔두세요’ Let it be!
 음악소리에 잠을 깨니
 성모님이 내게 다가와
 지혜로운 말씀 해주시네.
 "그냥 순리에 맡기어라." Let it be!. >

 우연히도 지난 주일 예배 시간에 우리도 ‘주님 안에 무위한 삶’의 노래를 불렀다. 
<내 생명 붙드사 그 안에 살게 하소서. Let it be!
내 사랑 받으사 당신 발아래 퍼붓게 하소서. Let it be!. > 
 무위사상은 톨스토이나 노자만의 개념이 아니라 장군도 농민도 바보도 비틀즈도 비단풍뎅이도 부르는, 있는 그대로를 바치는 사랑의 노래였다. Let it b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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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톨스토이가 처음 만난 한국인

 

 

하얀 뭉게구름이 살같이 흘러간 가을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니콜라이 공작이 아우스테를리츠 벌판의 싸움터에서 러시아 깃발을 안고 쓰러졌다가 다시 살아나 쳐다본 ‘그 높고 영원한 하늘’이 저렇게 푸르렀을까!

 영화, <전쟁과 평화>는 니콜라이를 통해 삶과 죽음과 사랑의 본디 빛깔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죽음 직전에 다시 만난 나타샤에의 사랑의 빛, 꿈속에 죽음을 넘나들면서 본 죽음의 문턱이 그렇게 간단한 경계였음을, 그리고 죽음은 곧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며 얼마나 간단명료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니콜라이의 친구 피에르는 그의 꿈을 통해서, 참 사랑은 생명 그 자체임을 깨닫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敬天愛人)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게 된다. 그리고 프리메이슨 종파로 그에게 영혼의 눈을 뜨게 해준 이오시프 알렉셰비치의 환한 얼굴이 또 다른 꿈에 나타나,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 빛은 어둠 속에 비치고 어둠은 이것을 덮지 못하도다’라는 성경구절을 일러줄 때,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힘들게 얻는 행복은 죄 없이 받는 고통 가운데서도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작품과 인생관의 흐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는 빛과 사랑의 화신 같이 아름다운 여주인공 나타샤는 생명력 그 자체이다. 니콜라이와 피에르라는 두 남성의 교차로에 서서 강열한 욕망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아니무스가 아닌, 긍정적이고 선한 아니무스 상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제임스 조이스,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만 좋아하던 내가 올 여름에 러시아 문학의 진수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에 빠진 것은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가 처음 만난 한국사람은 윤치호”라고 박진영 교수(번역문학)가 쓴 글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에 민영환 공이 전권공사로, 학부협판이던 윤치호가 수행원으로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필자가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더욱 반가웠다.

 

 

민영환, 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손희영 등의 조선 사절단이 모스크바의 파바르스카야 42번지에 숙소를 정하고 발코니에 태극기를 올림으로써 러시아 초대공사관의 면모를 갖춘다. 그들이 황제 대관식에 참석할 당시에 윤치호는 틈틈이 톨스토이의 1873년 영문판 ‘전쟁과 평화’를 읽음으로써 톨스토이가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 된 셈이다. 

 ‘솔잎상투’(개화파인 윤치호는 단발이었는데, 러시아 사절단에 동행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사모를 쓴다. 이때 머리 모양이 솔잎으로 상투 짠 것 같아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필자 주) 쓰고 도포를 입은 윤치호가 모스크바의 도심에 앉아 1896년 7월11일 밤과 8월3일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북국의 백야를 밝히며 ‘전쟁과 평화’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윤치호는 미국 유학 중에 문학, 역사, 철학에 관한 책 200여권을 읽었다: 필자 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온갖 에피소드를 남기며 러시아 사절단 임무를 마친 후, 윤치호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 파리를 거쳐 귀국 길에 오른다. 파리에 머물며 불어공부를 하는 동안, 9월17일에 쿠크 관광단에 끼어 인발리드 호텔(Invalid Hotel)에서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된 석관을 관람하고 그의 영문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인발리데 호텔 안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한때 유럽에서 아주 심한 좌절감에 빠진 적이 있는-그의 유골함을 담은 석관을 보관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묘역 앞에 서있자니 그에 대한 존경심과 울적한 느낌이 일어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비해 그가 그리 위대한 인물이 아니고 단지 운 좋은 사나이로만 그려져 있어서 나폴레옹의 천재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유럽을 정복한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자신을 개척할 수 있었던 인간이며, 그의 죄악과 서투른 짓들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계몽할 만한 상상력과 애국심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황제에 오르게 한 그런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천재적인 인자를 소유한 사람이다.” 

 사절단이 러시아에 머문 동안 조선의 ‘독립신문’ 외국통신에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한 이야기가 나온다(1896.6.18.).

 “아라사 신문에 황제 즉위례 할 때 황제와 황후께서 네 나라 사신들을 불러 보시는데 크렘린 궁에서 불란서, 서반아, 일본, 조선 대사들이 폐현(陛見: 황제나 황후를 만나 뵘)을 하였더라. 이 네 나라 사신들이 황제와 황후를 뵐 양으로 대궐에 들어올 때에 궁내부에 있는, 금으로 채색한 마차를 타고 말 여섯씩 끌고 오른편으로는 궁내부 관원들이 따르고 뒤에도 다른 관원들이 많이 따르는데 마차를 어거하는 사람들이 대례복을 입고 말들을 이끌더라… 일본대사 후작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現) 씨는 백작 톨스토이씨가 맞고, 조선대사 민영환 씨는 친왕 배실칙코프 씨가 맞더라…” 

 일본 사절단을 영접한 사람이 백작 톨스토이라니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톨스토이 백작이란 말인가? 놀라서 그의 전기를 뒤져 봤더니, 그 시간에 그는 고향 농장에서 번뇌의 세월을 보내면서 새로운 작품 <하지 무라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드디어 구글 웹사이트에서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야마가타 일본대표를 영접한 다른 톨스토이를 찾았다. 그는 이반 이바노비치 톨스토이 백작(Ivan Ivanovich Tolstoy: 1858~1916) 이었다.

 정치가이자 고고학자이며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인 그는 1893~1905년 비데(Witte) 내각의 교육부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이 기간에 니콜라이 2세 대관식 행사가 열렸고, 그는 일본 전권공사 야마가타를 영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레오 톨스토이 백작이 쓴 ‘전쟁과 평화’에 나폴레옹과 싸운 러시아의 야전사령관, 그 유명한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증손자란 것. 

 ‘전쟁과 평화’로 인해 톨스토이가 처음 만나게 되는 한국인 윤치호와 그 작품에 나오는 제2의 성격배우인 쿠투조프 장군의 후손 톨스토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같이 흥미롭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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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6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강릉 선교장과 초당마을

  

 

대학시절 여름방학이면 달려가던 외갓집, 강릉 선교장에 가려면 종로 관수동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로 8시간 이상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갔다. 강원도 대관령을 넘는 해발 8백미터 고갯길을 정철의 관동별곡을 뇌이며 아흔아홉 고비마다 아찔하게 돌아 넘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가을에 찾아간 선교장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2시간 반 만에 들어섰다. 경주국제펜대회를 마친 손정숙, 송세훈 부부 회원과 우리 부부가 짧은 가을여행 길에 오른 것이다.

“이제 오냐?”하면서 반기시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님 음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외사촌 동생 이강백이 귀한 민속자료 5호가 된 선교장船橋莊을 지키는 의젓한 관장이 되어 바쁜 중에 우리를 위해 진수성찬으로 차린 점심식사에 초대해주고, 그곳에서 가까운 초당마을의 허난설헌, 허균, 허봉, 허성 등의 문장가 남매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후손 이내번이 1730년경에 이곳에 전설적인 터를 잡고, 살림집과 별장을 겸한 전원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한 곳이다. 관동지방에서 살림집으로 규모가 제일 크고, 한국건축양식의 원형을 잘 보존한 집이다.

 경포호수가 지금보다 넓었던 시절에 배를 타고 건넌 집이라 배다리집(船橋莊) 이라 불렀다. 선교장 입구의 활기찬 붉은 기둥문, 월하문을 들어서면 넓은 연못과 활래정 간판을 올린 정자가 보인다. 이 연당은 서울 비원의 부용정과 비슷하며, 자연의 품에 안긴 한국 특유의 아름다운 정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한 달만 일찍 이곳에 왔다면 저녁노을에 타는 듯한 분홍 연꽃과 얼굴보다 더 큰 초록 연잎을 보았을 텐데. 

 정문에 들어서면 중문(中門)에 잇대어 넌출문(네쪽으로 된 문)으로 바라지 창(窓)을 만든 문들이 보인다. 선교장엔 아름다운 문들이 첩첩이 서 있다. 여인들의 거처인 동별당에서 남정네가 머무는 서별당과 행랑채로 이어지는 세 개의 기와지붕 중문의 문턱은 남정네들이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었는지 활모양으로 휘어져있다.

 경주 양동마을의 이언적의 집 문턱을 넘으며 시선(詩仙)이 될뻔한 우리 국제펜클럽 회장 존 소울 박사가 함께 왔더라면 그의 멋진 여행철학기가 또 나올 뻔했다. 특히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소울 회장이 꼭 와보고 싶어 한 한국문인화의 산실이다.

 

 

다락같이 높은 이 건물에서 남정네 식구들과 많은 문객, 특히 40년을 이곳에서 보낸 차강(此江) 박기정 같은 화객이 모여 다정한 대화를 나누던 사랑방, 열화당이다.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친지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한다”는 부분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안에 새로 만든 ‘열화당 작은 도서관’에 손정숙 회원과 나의 책도 빽빽한 서가에 꽂아놓았다.

 문인화객들을 대접하던 선조의 대를 이었음인지 한국도서출판 단지 조성에 앞장서고, 아름다운 미술도서를 주로 출간하는 도서출판사 열화당의 사장은 이 댁의 자손인 이기웅이다. 

 무엇보다 내가 찾아가 보고 싶은 데는, 방학 때마다 뒷산에 올라 울창한 소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뒹굴던 동산이었다. 그 동산에 올라보니 소나무 숲이 더 우거졌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셰익스피어 정원 입구처럼 통나무로 층계와 외등까지 만들어 더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행랑채를 개조해서 자료실로 쓰던 방들은 한옥체험실로 200 여명이 체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식사는 바깥채에 ‘이통천댁 잔칫상’이라는 거창한 간판을 매단 식당에서 들 수 있다.

 우리는 보름 달밤이면 달이 다섯개  뜨는 경포대를 지나, 경포호수에서 가까운 초당 마을에 갔다. 간수 대신 바닷물로 두부를 만드는 초당두부의 원조이다.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생가로 알려진 이 터는, 공원이 있는 소나무 밭 사이로 초당 허엽과 그의 자녀 사남매, 허씨 5문장가의 다섯 시비(詩碑)가 바다소나무와 벗하며 나란히 서 있다. 허균의 ‘경포호를 그리워하며’, 난설헌 허초희의 ‘죽지사 3-나의 집은 강릉땅 돌 쌓인 갯가’가 적힌 시비 앞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온 미래의 난설헌 같은 소녀도 보였다.

 허균(1569~1618)은 한국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작가이며 파란만장한 정치인이다. 자유분방한 그는 유교국가에서 불교를 숭상한 사람이고, 1616년 1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게십이장'과 '한역서학지도'등 많은 돈을 들여 책을 구입했다. 누이의 작품 ‘난설헌집’을 중국시인에게 주고 번역하게 하여 유명해졌다. 기념관 안에 ‘난설헌집’과 허균의 ‘홍길동 전’ 목판본이 나란히 놓여있다.

  

 

강릉시 초당동 일원을 허균, 허난설헌 문학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공헌한 사람은 문인이 아닌, 전 서울대학교 공대건축과 이광로 교수이다. 1999년 강릉시의 문학공원 조성위원이었던 이 교수가 이 생가터를 매입하고 선양 사업회의 후원으로 많은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난초 향기 그윽한 난설헌 차방에서 따뜻한 오미자차 한잔과 강정 한 접시를 비우고, 슬픈 미소를 띠고 앉아있는 난설헌의 동상을 둘러보고, 경포 바닷가를 끼고 강릉 시내까지 이 관장이 차로 배웅해주었다.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이씨조선의 문향에 취한 오늘의 여정을 음미하며 사몽비몽간에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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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김동길 교수댁의 냉면잔치

 


 
우리 부부가 김동길 교수님께 한국 방문 중이란 것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고 계신다기에, 이왕이면 그 유명한 냉면 잔칫날에 초대해 주십사고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은 반가워하시고, 교수님의 누님인 김옥길 총장 제자인 내 친구 세 명의 합석도 쾌히 들어주셨다.
 우리 일행은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에 새로 난 연대동문길을 고불고불 돌아 큰 마로니에 나무가 보이는 허름한 이층집에 들어섰다. 우리를 반긴 교수님은 “민동연이도 잘 있느냐?”고 물었다. 그 기억력이라니, 이십 여 년 전에 우리 딸 동연이가 미국 보스톤에 유학할 때 추천서를 써주신 이야기이다. 김옥길 전 이화대학총장님이 1학년 교양과목인 기독교문학을 가르쳤을 때, 그 많은 제자이름을 다 외웠던 누님 못지않은 기억력이다.
 김동길 교수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휘트만, 브라우닝, 테니슨의 시를 지금도 외울 정도이다.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교수와 부총장 직을 지냈다. 링컨 숭배자이며 많은 책을 쓴 가운데 ‘링컨의 일생’, ‘대통령의 웃음’, ‘하늘을 우러러’ 등의 인기 저서에서 나온 인세로 그의 고향인 평안북도 맹산과 지형이 비슷한 고사리마을에 금란정과 행랑채를 짓고 두 남매가 향수를 달래곤 했다. 
김교수가 유신체제 반대로 옥고를 치를 때, 그리고 ‘링컨대통령’이 될 뻔한 기회를 잃고 상심했을 때, 무직자의 신세로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고사리마을 집으로 걸어 올라오는 동생을 맞아, 정자에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석양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시는 것 같다. 김옥길 총장이 그의 회갑연 때 ‘고사리 마을 집’을 몽땅 이화대학 수련원으로 기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는 교수님이 좋아할 친구 시인 서동희의 시집과 내 책도 드리고, 서울에서 예쁜 한지에 복사한 윤치호 친필 ‘애국가’ 사본을 보여드렸다. 그는 감개무량한 듯 글씨를 드려다 보면서, 이화여자대학교의 김활란 총장이 해주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해방이 되고 사회가 매우 어지러운 때, 개성에 은신 중이던 좌옹 윤치호 선생을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는 것. 그날 헤어질 때 윤치호 선생이 김활란 박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제발 애국가를 윤치호가 지었다고 말하지 마시오. 내가 지은 줄 알면 나를 친일파로 몰아대는 저 사람들이 부르지 않겠다고 할지 모르니까.”
 솔로몬이 한 아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갈라서 나눠주라는 명령이 내리자, 한 여인이 자기는 안 가져도 좋으니 제발 아기에게 칼을 대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간청한 여인의 심정이었으리라.
 


윤치호 선생은 세계에 둘도 없는 이 귀한 애국가는 작사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라 사랑과 하늘 사랑으로 역사의 수난기마다 우리 민족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애국가 자체의 안위를 더 걱정한 것. 세월에 묻혀도 빛나는 그 보석은 언젠가는 그분이 작사자임이 공인화될 날도 멀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김교수는 이보다 더 확실한 애국가 작사자의 증언은 없지만,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때 우리가 기다리던 그 유명한 평양냉면이 식탁에 올랐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기 강연회에 온 손님들 덕분에 우리도 함께 들었다. 계란이나 다대기 같은 고명이 없이 소박하게 육수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내온 메밀냉면 맛은 평양냉면의 진짜 맛을 알게 했고, 빈대떡은 더욱 별미였다. 쇠고기 육수에 담긴 이 메밀국수는, 교수님의 어머님 생존 시엔 메밀을 반죽하고 뽑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냉면 틀로 주방에서 쉽게 뽑아낸다고 한다. 


 
 

더 부러운 것은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이것이 내 고향 별미라면서 평양냉면과 빈대떡과 김치만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이다. 부럽지만 흉내 내려면 아직 멀었다. 
 김 교수에 대한 평가는 이념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중에 두 가지, 첫째 역사학자다운 철학과 기독교적인 신념이 몸에 밴 의연함과 자유로움이다. 
둘째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의 말 펀치! “이게 뭡니까?” 우리는 토론토에 살면서도 그가 매일 쏘아 올리는 칼럼 ‘Freedom Watch’와 지난 번 토론토의 ‘주간한국’에 올린 칼럼 ‘결혼식은 왜 합니까?’ 등의 사회정의를 위한 외침에 감탄하곤 한다.
 이제 짧아진 가을 해가 방안을 붉게 물들일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장까지 쌓아올린 책꽂이엔 링컨 이야기, 성경, KOREA, 데이빗 헤이만이 쓴 할리웃 최고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기 등이 눈에 띈다. 서가 앞에 사랑하는 어머님과 누님과 찍은 가족사진이 우리에게 더 놀다 가라는 듯 웃고 계셨다. 우리는 링컨을 닮은 김교수님의 해탈한 경지의 웃음 위에 친구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스토르게의 미소를 다정하게 나누고, 해 저문 신촌길을 벗어났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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