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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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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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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4)

6.  허욕(虛慾)이 많은 개

 

 

개가 고기 한 덩이를 훔쳐 입에 물고 다리를 건너가다가,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고는 다른 개가 고기덩이를 물고 가는 줄 알고 빼앗으려고 짖다가 제 입에 물었던 고기마저 물에 빠쳤더라. 내 입 속에 있는 고기 한 덩이가 물 속에 있는 고기 두 덩이보다 낫다.

 

 

 엮은이의 글 

남의 것을 턱 없이 탐내면 모두 잃는다는 오래 된 격언이다. 물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제대로 알아차렸더라면, 입에 들어온 먹이마저 사라지고, ‘물에 빠진 강아지 신세’가 되진 않았으리라는 암시를 준다. 

심층분석심리학자인 구스타프 융이 말하는 ‘심혼이 깃든 내 그림자 원형’을 찾기까지는 어렵다고 해도, 평소에 자기 자신의 그림자의 원형을 인식할 줄 아는 내 인격의 개체화 과정이 필요함을 암시해 주는 듯하다.  

      

 윤치호 일기

“절제는 개인이나 국가의 필요한 덕목이다. 장기간 성실한 훈련을 쌓아야 한다.”- 1920년4월25일

“도덕은 ① 이기적이고, ② 변하기 쉬우며, ③ 잘난 체하거나 자만심에 빠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④ 침착하지 못하다. 

반면에, 하느님의 영성은 ① 겸허하고, ② 남을 배려하며, ③ 조용하고, ④ 변치 않는다”고, 캔들러박사님이 설교하셨다.”-1892년10월28일

  

7. 강한 놈의 경계(警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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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늑대가 냇가에서 물을 먹다가 배가 고파졌다. 그때 어린 양 한 마리가 아래에서 물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늑대가 트집하며, “이놈아, 나 먹는 물을 네가 감히 흐리느냐”

양 “영감은 내 물 위에서 자시고, 나는 아래에서 먹는데 내가 어찌 흐려놓을 수 있겠소?”

늑대 “작년 봄에 나 못 듣는 데서 네가 욕했지?”

양 “별 트집도 많소. 작년 봄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소.”

늑대 “그러면 네 형이 욕한 게지.”

양 “그게 무슨 망녕의 소리요 나는 형도 없고 아우도 없소.”

늑대가 할 말이 없어지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너희 집안을 보전해준 덕을 모르고 내 말마다 거역하다니, 너의 행복과 부강을 속히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너를 먹어야겠다.” 하고 그 양을 먹어 버리더라. 약한 놈은 경계도 없고 공법도 소용이 없다

 

 

 엮은이의 글 

폭군은 항상 자신의 폭정을 변명할 구실을 찾기에 바쁘다는 교훈이다. 따라서 부정한 폭군은 결코 결백한 사람의 사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조선이 일본이라는 강한 호구의 밥이 될 때, 일본이 이를 정당화하면서 여러 가지 조건을 내놓았지만 결국 먹히고 말았다. 

사악한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곳에, 결백과 청렴은 반드시 박해를 받는다. 잔혹한 악의가 권력과 결합되어 있는 곳에, 폭정과 부정행위를 행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1900년12월에, 윤치호가 외부협판에서 삼화 감리로 좌천되고, <愛民過泰罪(애민과태죄):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했다는 죄목>으로 봉고파직 (封庫罷職; 왕조시대 어사나 감사가 부정을 저지른 원을 파면하고 관고를 봉하여 직분을 파면시킴)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윤치호 일기 

“일본은 조선의 왕실이 재빠르게 파멸로 치닫는 일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일본 대표들은 조선의 제2의 파멸을 기다리며 관망하고 있다.”-1895년8월21일

“내가 일본인을 싫어하는 이유는; 일본이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수십 년 전에 유럽이 일본에서 농락했던 것과 똑같은 술책을 쓰기 때문이다.” -1895년9월7일

“독일인과 러시아인들이 여순항이나 만주에 대해서 강압적으로 점령한 것은 깡그리 잊은 채, 영국인이 토지를 수탈한다고 야유를 퍼붓는다. 진실은, 모든 민족은 도둑이고 거짓말쟁이고, 그 민족에 대한 비판자는 더 나쁘다는 사실이다.” -1902년 11월22일

“일본이 조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두 차례 혈전에 대한 보상으로 조선을 병합했다. 우리는 조선이 독립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고,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조선이 독립을 원한다면 우리와 싸워서 이겨 우리를 내쫓아라. 그때까지 우리는 무력으로 조선을 차지할 것이다.” - 1920년8월14일. 서울

 “폴란드는 세 마리의 늑대들에게 물어뜯긴 양처럼 세 나라로 갈라져 있어서 가엾어 보인다. – 1896년5월18일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가는 길에.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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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3)

 

윤경남 & 민석홍 엮음

 

4. 사슴의 뿔

 

 

 

하루는 사슴이 냇가에서 물을 먹다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뿔 그림자를 보고 좋아서 하는 말이, “멋진 뿔이로다, 훌륭하구나. 뿔을 보면 내가 천하일색인 것이 틀림없건만, 내 다리가 장대같이 길어서 분하구나.”하고 탄식하는데, 갑자기 사냥개가 쫓아왔다. 자신이 업신여기던 긴 다리로 나는 듯 뛰어서 위급한 경지를 면했으나, 그 멋진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버려, 달아나지 못하고 잡혀버렸다.   사슴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 “외면 치례만 하면 몸을 망치고 말지!”했다.

 

겉모습만 보고 친구 사귀지 말라.

 

  

엮은이의 글  

이 우화는 1905년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호소문과 상소를 고종황제에게 올린 윤치호의 상소문과 일맥 상통한다. 상소문 가운데는 물론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말하지만, 결국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손에 넘어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를 “외면치레”에 두었다.

즉, “황제 폐하께서 하찮은 소인들에게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에, 궁실을 꾸미는 데만 힘쓰게 되니 토목 공사가 그치지 않았고, 기도하는 일에 미혹되니 무당의 술수가 번성하였고, 충실하고 어진 사람들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니 아첨하는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 찼고, 심지어 최근 새 조약을 강제로 청한 데 대하여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끝끝내 거절하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따랐기 때문”등 임을 지적했다.

‘외면치레’가 많아질수록 태산 같은 장애물에 막힌 경우에 대한 경종이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요긴치 않은  겉치례는 열심히 꾸미고, 정말 중요 한 일은 돌아보지 않음을 빗댄 우화이다.

 

윤치호 일기

“조선인은 돈이 없어도 체면을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다. 겉만 그럴 듯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조선인의 민족적 결점이다. 사촌 치소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몇 년 전에 치소는 황우영(黃祐永)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황우영의 작은 초가집에 물이 심하게 새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옹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황우영은 왕자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입는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어마어마한 직함, 텅 빈 주머니에 현란한 복장, 의미 없이 거창하기만 한 표현은 모두 지난 조선왕조 시대의 특징이다. 조선왕조는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특징들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울 정도로 완강하게 조선 민족에 달라붙어 있다.”- 1920년 11월23일  

  

5. 강약부동(强弱不同)

 

   

 

사자와 송아지와 염소와 양 넷이 동무가 되어 동업산양을 시작했다. 넷 중에 누구던지 짐승 한 마리를 잡으면 네 동무가 고루 나누기로 약조했다. 하루는 염소가 놓은 덫에 사슴이 잡혔다.                            약속한대로 동무들을 청하자, 사자가 그 사슴을 네 몫으로 나누고 한 몫을 차지하며 말했다.

“내 이름이 사자이니 이건 내 몫이요, 내가 가장 힘이 세니 둘째 몫도 내 것이요, 내가 가장 담대하니 셋째 몫도 내 것이요, 넷째 몫도 누구던지 죽고 싶거든 건드려라.”하면서 다 먹어 버리더라.

 

강하나 의리 없는 놈과는 동업하지 말라.

 

 

 

 

 엮은이의 글 

1)1905년 치욕적인 조선의 운명이 시작되어 옴짝달싹 할 수없게 된 조선의 운명을 떠오르게 한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시모노세키 조약, 일명 일청강화조약(1895년)에 이어서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제국이 동양의 사자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본과 미국이 한국과 필리핀이라는 지역을 상호 특수 영역으로 인정하여 장래 양국 간의 충돌을 예방하고 타협하는 일본-미국(가쓰라-태프트)협약-> 영국-일본 동맹(8•12)? 러.일 포츠머드강화조약(9•5)을 거쳐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탈취하는 ‘을사보호조약’단계에 이른 것이다.  

 2) 계약할 때는 감언이설로 공평하게 나누자고 하지만, 이익분배는 힘 많은 자에게 돌아갈 뿐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어린이를 위해 지은 이솦의 우화, ‘동사 사냥’에는 사자, 송아지, 염소, 양 외에 여우도 등장한다. 꾀가 많은 여우는 사자의 제안이 폭군 같은 속셈임을 알아차리고, "수고는 함께 나눌 수 있지만, 그 상은 나누지 않겠다는 말이군!" 하며 먼저 떠나버린다. 우리도 여우 같은 계교와 상항 판단이 가끔은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윤치호 일기

 “이 세상의 강탈자들은 자기들끼리 합의한 권리가,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 약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이나 했을까?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약육강식이라는 냉혹한 법칙을 가진 이 세상이 생겼을 때, 위대한 존재가 약자의 이익도 ‘감안’했을지 의문이다.”-1903년 1월3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아래 건전한 양심과 상식만으로는 평화를 이룩할 수없다. 이쑤시개와 면도만 가지고 아프리카 정글에 갈 수는 없기때문이다.”- 1940년3월28일 

“물에 빠져 죽게 된 아이를 구한 사람에게 당신 아들이냐고 물었더니, 아니오, 그 아이가 우리 미끼를 모두 자기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라고 했다. 일본이 불쌍한 조선을 개혁하려고 하는 동기는 그 소년을 구한 엉클 모세만큼이나 무심해   보인다.”- 1894년1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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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2)

(지난 호에 이어)

“샤진 사가시오 우리가 잇지못할 기념물, 발매소 신한국”
이 사진은, 1909년10월26일에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토마스 애국의사의 사진엽서이다.
안중근 의사가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태극기 네 구퉁이에, 안중근이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동맹에서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쓴 직후의 사진과 여순감옥 내의 사진 등 4장을 부쳐놓았다.
<우순소리2 외양치례>는, 나라를 빼앗긴 이 암흑시대에, 안중근 의사같이 의로운 투사가 있는가 하면, 나라를 잃고도 자신의 권세와 사치에만 눈이 먼 궁내 대신들이 있음을 한탄하며 빗댄 글이다.  
      

 

윤치호 일기 

“조선조 역사상 가장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죄인과 반역자들은 1896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을 통치했거나 실정을 편 자들이다. 지금 젊은 세대 뒤에 오는 다음 세대는 민족의 구원계획을 세울 정도로 충분히 학습해야 할 것이다.”- 1905년6월20일
“호놀루루 감리교회와 영국성공회에서 교민들에게 강연했다. 강연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근검, 청결, 성실을 가르치시오.
2) 新朝新聞은 분쟁을 조장하지 말고 교민들의 실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보도하시오.
3) 역적이란 말로 모함하지 마시오.
4) 교파문제로 싸우지 마시오.
5) 목적 없이 돈을 걷지 마시오.
6) 일본인을 비롯하여 동양인들끼리 우호를 증진하시오.”-윤치호일기1905년9월18일


3. 고양이와 원숭이
  

  
고양이와 원숭이가 한 집에 정답게 살고 있는데, 이들의 장난이 비할 데 없이 심하다. 원숭이는 보는 것마다 훔치고, 고양이는 쥐 잡기에 마음이 없고 찬장만 들락거렸다. 
하루는 화로에 밤 굽는 것을 보고, 원숭이가 고양이를 불러 말하기를, “형님, 저 군밤을 꺼내면 우리 둘이 맛있게 잘 먹겠지요? 한데, 내 손은 형님 손처럼 재빠르질 못하니 형님이 꺼내시려오?”
그 말을 듣고 고양이가 화로의 잿더미를 헤치면서 밤을 하나씩 꺼내놓자, 밤을 꺼내놓는 즉시 원숭이가 벗겨 먹어버린다. 이때 주인이 들어오자 고양이는 발만 불에 데이고 밤은 맛도 못 본 채 도망 쳐버렸다.
외국인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매국賣國하는 사람들은 생각 좀 해보시오!

  

 


엮은이의 글 
 

정당하지 못한 뒷거래로, 개인의 이익만 챙기고 나라까지 팔아먹는 하수인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정치인을 빗댄 교훈이다. 
남에게 혹은 다른 나라에 바보같이 이용만 당하는 사람을 ‘고양이 앞발’ 이라고 부르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따라서1905년, 외교권을 뺏기고, 일본에 좋은 일만 초래한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빗댄 교훈이다.
 
윤치호 일기 
“유교는 왕을 국가에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아버지를 가정에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시어머니를 며느리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남편을 아내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남성을 여성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주인을 하인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어 가정과 국가에서 모든 자유와 기쁨의 정신을 말살했다. 유교는 폭정의 체계라고 불릴 만하다.”- 1904년 5월 27일.
 “조선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붓의 노예로 지내왔기 때문에 붓으로 강철과 물리력에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욕조와 칼이 일본 문명의 원천이라면, 붓과 한문은 조선의 정신과 희망의 무덤이다.” - 1905년11월 27일.
“최근 새 조약을 강제로 청한 데 대하여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끝끝내 거절하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따랐기 때문에 조정과 재야에 울분이 끓고 상소들을 올려 누누이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로 일치된 충성심과 애국심은 어두운 거리에 빛나는 해나 별과 같고, 홍수에 버티는 돌기둥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조약을 도로 회수해 없애버릴 방도가 있다면 누가 죽기를 맹세하고 다투어 나아가지 않겠습니까마는, 지금의 내정과 지금의 외교를 보면 어찌 상심해서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지금이라도 든든히 가다듬고 실심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종묘사직과 백성들은 필경 오늘날의 위태로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대한 광무 9년 양력 12월 1일자 5번째 기사.
1905년에 체결 된 을사늑약 조인에 결사반대하고, 12월 1일에 한성부 저잣거리에서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을사 보호 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처벌할 것을 고종황제에게 상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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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1)

1. 굴 송사 (訟事)

윤경남 & 민석홍 엮음

 

 

 

하루는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해변에 굴 한개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집으려 하자, 동행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여보게, 가만있게. 우리 둘 중에 그 굴을 누가 먹어야 옳소?” 

“아 그야 먼저 본 사람이 먹고 그 다음 본 사람은 구경이나 해야지요.”    

“그렇다면 내 눈이 훨씬 밝다오.” 

“당신은 보기만 했지, 나는 만져보기까지 했으니 어쩔 것이오?”         

서로 다툴 때 어떤 양반 한 사람이 지나가자, 행인 두 사람이 그에게 그들이 벌인 ‘굴 송사’를 판결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자 그 양반은 그 굴을 쪼개더니 속살은 자기가 집어삼키고 껍질만 한 쪽씩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면서 하는 말이,

“당신네들의 행위는 송사 비용을 물게 해야겠지만, 많이 봐 주어 굴 껍질 하나씩 주는 것이니 아무 소리 말고 가거라” 하더라.

송사(訟事)하여 다 잃는 것보다 송사자끼리 화해하여 반이라도 챙기는 것이 유리하다.

 

 

엮은이의 글  

윤치호는 <우순소리> 본문 끝에 한 줄의 교훈을 올렸다.   

윤치호의 <우순소리>는 고대 그리스의 현인이며 이야기꾼이었던 아이소포스(BC 6, 고대 그리스인)가 쓴 <이솝 우화집>과 프랑스 작가인 라퐁텐(1621 ~ 1695)의 <이소프 우화집>을 저본으로, 그 당시 나라 안팎 정세를 시사적이고 교육적인 에피소드로 창작한 풍자와 해학이 깃든 윤치호의 비유문학이다. 아울러, 1888년, 윤치호가 상해 중서서원 교사 시절에, 알렌 학장이 창간한 <만국공보 萬國公報>에 로버트 톰의<의습유언 意拾喩言> 의 우화들이 정기적으로 게재된 것도 참고했으리라 추측한다.       

<우순소리1. 굴 송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대한제국 정부의 내분과 러시아-중국-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획득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을사늑약을 빗댄 글이다. <굴 송사>는 가장 비참한 대한제국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윤치호일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과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상황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이노우에 백작이다. 그는 속담에 나오는 황새와 조개의 싸움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는 어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의 정치는 그들의 생활습관과 마찬가지로 불결하고 추악하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참으로 수치스럽다!!”-1895년 2월 16일.

“영 알렌 박사님께… 일본은 진실로 조선을 보호해준다는 명분 아래 예전보다 열 배나 더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인을 진정으로 도우려는 사람들이 모인 서양 남녀 선교회를 싫어합니다.

일본은 조선인이 배워서 개명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무자비하게 야비하고 잔인한 일본의 정책은 성실한 조선사람을 모두 일본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일본은 그들 나라에서 혹은 영국이나 워싱턴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천사로 보이겠지만, 조선 땅에서는 악한 인간들일 뿐입니다.”-1906년12월25일 조선 송도한영서원에서, 개정국역윤치호서한집 p.169)

 

2. 외양 (外樣) 치레

 

 

하루는 여우가 길을 가다가 한 곳에 이르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붉은 빛 나는 화강암으로 조각해 놓은 인형을 보고 모두 칭찬하거늘, 여우가 한참 드려다 보더니 돌아서 걸어가며 하는 말이, 

“외모는 멋지다만 속이 비어 걱정이로다.”

이 여우가 당시의 부귀영화로 겉치장한 대신들을 보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엮은이의 글 

외양(外樣)치레는 겉치레를 말한다. 겉치레는 더 나아가 화려한 가면무도회까지 아우른다. 가면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기 위해 얼굴에 쓰는 복면이다.

가면은 때로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나의 다른 인격체, 즉 사회가 원하는 페르소나, 혹은 친구에 따라 달라지는 페르소나로 위장할 때 내면을 위장하는 도구이다. 페르소나만을 중요시 하다가는 아트만(眞我)을 잃기 쉽다. 그래서 겉치레 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우화이다. 

윤치호는, 그 당시 조정대신들이 겉만 번지르하고 대책 없는 무뇌아(無腦兒)들임을 이 우화로 빗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편한 데도 화려하게 치장하는 조선 상류여성들의 옷차림과 장식에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첫 아기를 낳은 마 부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데도 불구하고, 부인이 결혼 후 처음으로 비싼 머리핀을 사달라고 하자, 겉치레보다 심성이 더 중요한 거라며 화를 냈다.

“아내가 머리핀을 사겠다고 $60을 달란다. 성경에 사치하는 것은 죄라고 했더니 아내가 화를 내면서 ‘$100 달라고 했더라면 지옥에 가야겠네요?’ 라고 반문했다.”(윤치호일기1898년12월28일) 

 

윤치호의 <우순소리>는 초판이 발행된 이듬 해 1909년 5월 5일, 출판법에 따라 ‘치안을 방해한다’는 구실로 발매가 금지된다.

그 후, 1910년 5월에 하와이 신한국보사(新韓國報社)에서 <우순소리>를 재간행할 때, 하와이 권업신문에 희한한 광고가 나온다. 

“교육 대가 윤치호씨 저작 定價金정가금 25전. <우순소리> 한다슨에 2원25전. 한번에 2다슨 이상을 청구하시는 의게는 특별렴가로 슈웃하겟삽고 특별히 義士안중근씨의 사진 일 쪽을5백권에 한하여 첨부할 터이니 속속히 청구하시오.

5月10日發行新韓國報社 內로지호”

바로 그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기사가 실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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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윤치호어록 (尹致昊語錄)을 올리면서,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부록 尹致昊 語錄’은, 개화기의 선각자 윤치호가 주권을 빼앗긴 대한제국과 일본 통감부를 비판하고, 윤치호 고유의 풍자와 교훈을 곁들인 비유문학 작품이다.

1908년에 <우순소리> 71편을 초간 발행했으나 통감부가 발매금지하였는데, 1910년에 하와이에서 증보판으로 발간한 것을 이번에 현대문으로 재구성하고, 윤치호 어록을 부록으로 넣어 펴낸 것이다.

 

책의 내용은 조선의 대중과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대한제국이 겪은 암울한 사례를 이솝우화를 인용하여 쓴 글이다.

윤치호일기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의 기노시다 다까오 (木下隆男)박사가 일본외교문서에서 검색한 바로는, “<우순소리> 내용이 (1) 일본통감부를 풍자한것 (2) 고종황제를 풍자한것 (3)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대신을 풍자한것 (4)무지몽매한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는 조선인민을 풍자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제12화 ‘보호국 保護國’내용은 일본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통감부가 발매 금지처분을 하게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09년5월4일자 통감부 문서10] pp 362.”

이 책을 발간하게 된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윤치호가 외부협판직을 다시 맡은 1904년에 나가모리 계획을 극력 반대 했고, 을사조약체결후 외부대신서리를 맡으라는 스티븐스 고문에게 일본의 처사를 비판하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지를 보내서 통감부의 미움을 샀다.

 

윤치호는 1906년10월에 한영서원을 개설했고 애국가를 포함한 찬미가를 만들어 교회와 학생들에게 보급했으며, “대한제국은 자강지술?을 강구하지 않고 인민은 우매하여 마침내 나라는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인민이 분발하여 자강에 힘쓰고 단체를 만들어 힘을 합치면 국권을 회복할 수있다”고 믿고 1906년에 자강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취임하였으나, 1907년에 통감부에 의해서 강제 해산당했다. 같은 해 국권회복 운동을 위한 신민회, 청년학우회 등을 조직했으며, 1908년에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그때 윤치호는 에모리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수여하겠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국내사정이 어려워서 사양했다. 자강회 활동도 중단되었다.

1910년 하와이에서  <증보판 우순소리>를 발행할 때와 미국 순회 중에도, 윤치호는 통감부 뿐만 아니라 일본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국내사정이 어려운데도 1910년1월에 하와이를 거쳐 미국 장기순회를 결심한 것은, 감리교총회 참석, 기독교 이상촌 건설을 위한 모금, 에든버러 선교대회에 참석하는 일 외에 하와이 교민을 방문하여 발매 정지된 <우순소리> 증보판을 재발행 하기 위해서였다.

 

이 증보판에 추가된 3편은 <음양가의 망태- (미신에 미혹된 미개한 사회 조명)>, <김도령의 아량(공익과 봉사정신이 없는 탐욕스런 고관들과 달란트의 교훈)>, <무식한 아버지와 아들 (잘못된 지도자와 이에 맹종하는 백성,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수 없다는 비유)> 이다. 이 3편은 이솝우화가 아닌 윤치호가 창작한 야담형식의 풍자적인 작품이다. 또한 한영서원시설을 위한 기금 마련 과 미국 각지(샌프란시스코,시카고, 보스톤, 워싱턴, 아틀란타등)의 교민을 격려하고, 알라바마의 터스키기 기술학교를 본딴 기독교 이상촌을 건설하기 위하여 부커 워싱턴박사를 만나서 자문을 구하고, 감리교평신도대회에 참석하였다.

윤치호는 마지막 일정으로 <에든버러1910년 세계선교대회>에 조선대표로 참석하여 외국선교사역과 토착교회의 역활에 대하여 연설하였다.  1,250명의 미국과 영국의 교회지도자들은 윤치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세계기독교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윤치호가 하와이에서 발간한 <우순소리> 와 <에딘버러 1910년세계선교대회>에서 세계기독교 지도자들이 윤치호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는 것과 1911년 7월 송도 한영서원에서 개최한 제2회YMCA 하령회는 일본이 윤치호를 위험인물로 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급기야는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조작하여 4년간 투옥시켰다.

 

기노시다 박사가 “일본외교문서 에서 확인한 바로는 윤치호 의 미국 순방 목적이 교육사업과 종교활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우찌다(內田)주미 대사는 윤치호가 출국하여 귀국할때 까지 모든 동정을 철저히 감시하여 고무라(小村壽太郞) 외무내신에게 보고하였다.(전 한국외부협판 윤치호 동정에 관한 건, [요시찰한국인 거동 3] pp 549.”

윤치호는 개화기에 동서양 문화와 학식을 겸비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기독교 지도자, 정치가, 교육자, 민권 운동가, 체육인, 자선사업가, 애국가 작사자이며, 발라드 시인이었다. 기독교정신으로 백성들을 자급자족, 근면, 봉사, 공익을 일깨우는 일에 힘썼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였다.

윤치호의 <우순소리>는 그가 학부협판, 외부협판, 지방감리등 공직과 독립협회장으로 활동하며 개혁을 추구했으나, 위정척사衛正斥邪 와 사대주의자 들의 저항에 부딛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했던 사례들과, 독립협회가 친러파와 고종황제에게 탄압을 받고 해산당한 일. 을사조약으로 주권을 상실한 절망과 비애, 자강회가 통감부에게 해산당한 일들을 망라하여 이솝우회에 비유하였고, 인민들이 자각하고 분발하도록 <증보판 우순소리>를 발간하여 대중들과 학생들에게 보급한 것이다.

<우순소리> 에 담긴 우화들은 , 대한제국이 고목枯木처럼 쓰러진 과정을 자조적自嘲的으로 비판하면서 요약한 사례들이다. 그가 추구했던 신념과 내면의 실상을 파악하려면 60년에 걸쳐서 쓴 <윤치호일기>와 <윤치호서한집>을 읽어야 이해할수 있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일기중에서   어록들을 요약 발췌하여 부록으로 올렸다.

현대문으로 재구성한 <우순소리> 와 <어록>은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한 것이며 현대시국에 대한 교훈이기도 하다.

끝으로 김동길교수님의 말을 인용하여.대한제국이여! 이게 뭡니까 ?”외치고 싶다.                                               2021.7. 토론토 파크누보에서 友史 閔 碩 泓(우사 민석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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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33.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달란트: 장병의 시간에

 

 

 

올 봄에 대학에 들어간 큰아이가 신입생은 누구나 받는 병영 집체훈련을 일주일 동안 받은 후 지난 토요일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입시 공부하느라 창백했던 얼굴이 검붉게 건강색을 띈 것을 보니 눈물이 나게 반가왔습니다. 보이스카웃 활동을 여러 해 동안 했고 지난 겨울 내내 운동을 한 덕분인지 처음 받는 군사훈련이지만 재미 있게 지냈다고 합니다.


옆자리의 뚱뚱이 친구와 홀쭉이인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그 중대에서 간첩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벌점도 많이 받고 익살도 꽤 부린 모양이에요.
어려웠던 일은 야영훈련보다도 내무훈련과 분, 초를 다투는 시간의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서 이 훈련을 받게 될 동생이 걱정인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으며 동생에게 훈련 받을 때 주의할 점을 일일이 알려 줍니다. 보이스카웃 활동을 싫어하고 늘 운동부족인 동생에게, 군사훈련 뿐만 아니라 대학생활을 이겨내려면 체력단련 밖에 없다고 다시 한 번 운동에 흥미 갖기를 권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형! 난 군대에 들어가면 무얼 배울까? 3년 동안 외국어 한 가지만 하긴 아깝고, 무전을 배워서 세계 햄의 타이틀을 딸까?” 하고 물었습니다. 얘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형도 김이 빠지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퉁명스런 대답을 던집니다.
“맘대로 해라. 그때쯤이면 난 우주선에 앉아 있을 테니까, 심심하거든 그리로 통신이나 보내렴!” 
그러나 동생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먼 훗날 군대 복무 중에 할 일을 계산해 보기에 바쁩니다.
“외삼촌은 양평에서 복무할 때 3년 내내 영어공부만 하더니 토플시험에 합격했지. 제대하고 석달 만에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돌아왔고…. 이모부는 야간 보초를 도맡아 하면서 남들이 자는 시간에 공부하여 제대 후 바로 사법고시에 붙었겠다. 3년이란 세월이 뭔가 만들어 주긴 하는 모양이야….”


어려선 너무나 활달하고 씩씩해서 엄마를 괴롭힐 지경이던 아이가 이제 벌써 고3이라는 핼쓱한 간판을 쓰고, 진저리 나는 고통의 훈련을 값진 것으로 바꾸려 애쓰는 것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마태의 복음서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은 적이 있으시지요?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가며 종들을 불러 각기 가진 능력대로 재산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은 5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겐 2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겐 한 달란트를. 5달란트 받은 사람과 2달란트 받은 사람은 곧 그 돈을 활용하여 배의 이익을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하자, 배의 이익을 남긴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라 칭찬하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고 하였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내민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욕하면서,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 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장로인 나의 남편은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 비유를 잘 해줍니다. 어젯밤에도 우리집에서 구역예배를 인도하면서 그 이야기를 또 했지요,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이며 영어로는 탤런트, 즉 재능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하나님의 적절한 탤런트를 받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얼만큼 자신의 노력으로 갈고 닦고 늘리느냐에 따라서 나의 탤런트는 축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이 달란트의 비유를 들으며, 나는 일선에서 혹은 후방에서 복무하고 있는 장병 여러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군인>이란 직업을 선택한 사람 외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각기 다른 탤런트를 발휘하게 되지요. 그 복무기간이 사회참여를 위한 준비기간이 될 것이라면 이 기간동안 나의 탤런트를 앞으로 어떻게 갈고 빛내며 늘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기간으로 삼는다면 어떨런지요.
고통스런 작업과 훈련도 나의 탤런트를 값지게 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장미를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34.  죽음을 꿈꾸는 나이

꿈 속의 일이었다. 나는 오른쪽 귀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진료와 검사를 마치더니, 내 귀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내 목숨은 올해 12월까지 밖엔 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놀랐으나 충격을 감추고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나는 좀더 좋은 약을 써서 12월을 지나 더 오래 살런 지도 몰라요. 그리고 설혹 낫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내 의지의 힘을 가지고 다가오는 내 마지막 날을 받아들이겠어요!” 하고. 생각지도 않던 말을 술술 하는 내가 퍽 가상하게 느껴지는데 문득 잠이 깨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듯 눈물이 나게 다행스러웠다. 이 꿈만이 아니라, 나는 지하의 미로를 헤매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일도 이따금 되풀이해 꿈꾸었다.
30대엔 중년부인이란 말이 제일 듣기 싫었는데, 이제 50대에 들어서자 노년기라는 낱말이 심심찮게 내 눈앞을 오락가락한다. 아무리 피하려고 몸부림해도 달랑 들어 올리면 끝나는 죽음의 고리를 밀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기왕이면 어떻게 아프지 않고도 값 있게 그 고리에 끼워지느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재작년에만 해도 밀라노에서 암부로스 교회의 지하묘실에 화려하고 자랑스럽게 안치된 암부로스 성인의 유해조차 외면하고 싶었는데, 그 다음 해 로마의 카타콤에서 받은 감동과 충격이 커서인지, 여행하는 곳마다 카타콤을 둘러보며 마치 죽음의 도시를 걷는 듯 짜릿함과 흥미마저 느꼈고, 잘 정돈된 공원묘지의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오기도 했다.
그 중에도 로마의 카나콤은 지상의 웅대한 콜로세움보다 더 깊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그곳 지하 속에서의 기독교인들이 드린 예배, 지하 속에서 피어난 예술, 지하 곳곳에 이룩된 삶들이 몇백 년을 이어내려 오면서 죽음의 문화까지 전수해 준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하묘실의 벽면엔 크고 작은 네모난 구멍들이 관의 길이 만큼씩 뚫려 있다. 지상의 공원묘지도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덮여 있었지만,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세워 준 십자가가 차지한 공간은 반 평도 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묘역과 대조적이었다.

꿈 속에서도 느껴지는 아주 다른 세계를 요즘 자주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올해 3월부터 우리교회(安洞敎會) 지역선교를 위한 노인학교 프로그램을 맡았고, 갑자기 맡게 된 이 프로그램을 잘 진행시키기 위해 이화대학의 첫번 <노인대학> 강의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인문제에 대해 학문으로 체계를 세운 노년학회Gerontology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죽음에 이르는 자기실현의 과정 및 죽음과 함께 오는 자기완성의 단계, 즉 인간욕구의 단계설을 들을 때는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는 폴 트루니에가 쓴 <노년의 의미>을 책장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들춰보았다. 내가 아직 젊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정한 의사 친구가 선물로 주었는데, 난 아직 이런 책을 읽을 나이는 아니라고 화를 내며 처박아 두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것은 노년기에 읽을 책이 아니라 내가 아직 늙지 않았다고 느낀 바로 그때부터 읽었어야 할 책이었다. 트루니에는, 우리의 노년기와 여생을 황혼처럼 아름답고 값지게 보내려면, 사십 대나 오십 대에 이미 마음의 준비와 함께 실제적인 계획의 실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길어진 노년기에 비해 빨리 다가오는 은퇴 후의 심리적 충격을 줄이려면, 젊었을 때 일만 하는 훈련뿐 아니라 여가를 지내는 방법의 훈련도 쌓아야 한다는 것. 즐거운 놀이나 취미도 노년기에 시작하기엔 힘에 겨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를 나의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영생을 믿음을 고백한다고 해도, 죽음을 꿈꾸는 나의 <죽음 타령>이 재빨리 하느님나라 컴퓨터에 입력되는 건 원치 않는다.
<노인학교> 교실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늙는다는 것은 인간의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임을 깨우쳐 드리고, 불행감 대신 기쁨을 주는 마음의 꽃을 피우도록 도와드릴 나의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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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9. 식물의 대화(Plant Talking)


“잘 잤니, 페디움? 어젯밤엔 혹시 찬바람이 몰래 너를 찾아와 괴롭히진 않았니?. .응, 그런 일 없다구 살랑살랑 고개 흔드는 것 좀 봐, 그럼 아주 잘 잔 게로구나…. 자, 이젠 물 좀 먹구 일광욕 하자… 뭐, 밖에 나가서 하자구? 아이, 아직은 저 샘둥이 바람 때문에 밖에선 안돼요. 이 유리문 앞에서도 충분하다구요…. 자, 이 창문으로 더 가까이, 옳지, 옳지, 그래야지 아유, 요 솜털 좀 봐, 감마선을 쏘였나? 어제는 푸른 빛이더니 오늘은 희뽀얗네… 너의 조상은 비록 머나먼 남쪽나라에 살고 있었다 해도 너를 키워주는 이 땅이 진짜 네 고향이란다. ‘낳아준 엄마보다 길러준 엄마!’란 말도 있지 않니? 그러니 투정 말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예쁘게 자라다오. 예쁘게, 꼭…”

 

이것은 마치 갓난 아기와 얘기하는 듯 하지만, 실은 아침마다 우리집 난초들과 내가 나누는 대화 한 토막이다.
말하자면 식물과의 대화, 즉 “Plant Talking”이다. 미국의 한 식물학자가 실험 끝에 지어낸 이름인데, 음악을 들려주면 닭이 알을 더 많이 낳듯이, 식물도 사람과 이야기하듯 대화를 나누면서 키우면,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식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심과 애정이 생기고 따라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어 무럭무럭 자라게 만든단다. 아기들도 가장 많은 영양을 섭취해야 될 시기에 엄마가 하루나 이틀만 소홀해도 그 아기는 곧 병이 나거나 심하면 성장기에 심리적인 장애마저 보이는 수가 있듯이, 식물도 그 초기의 섭생이 중요한 모양이다. 큰 나무보다 방금 옮겨 심은 화초나 갓 피어난 꽃이 더 손이 가는 걸 보면 수긍이 간다. 
나는 화초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아파트로 이사온 후 친구들이 난초 화분을 하나, 둘 선물로 갖다 주어 본의 아니게 많이 키우게 되었다. 난초를 길러 본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자식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남의 아기를 떠 맡은 것처럼 처음엔 겁이 났다. 그러나 식물도 성질에 따라 알맞는 조건대로 정성껏 맞춰주기만 하면 신기할 정도로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초 중에도 약간 거칠어 보이나 개성이 강하고 가장 내 맘을 끄는 풍란은, 이젠 어엿이 거대한 동굴(구멍 뚫린 작은 돌멩이동굴)에 뿌리를 박고, 마디를 늘이고 있다. 캐나다로 이주할 때 비실비실한 실난을 버리려고 했는데, 작은 며느리가 키운다기에 주고 온 지 십 년이 넘는다. 어제 내 생일축하사진으로 그동안 잘 키워 예쁘게 무성하게 잘 자란 실난 사진을 보내주어 놀랐다. plant talking 소통이 잘된 듯해서 더 기뻤다.
나는 그 대화법에 전적으로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아기가 말문을 열기 전부터 엄마와 아기는 대화가 가능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기가 말을 할 줄 몰라도 하루 종일 아기와 이야기한다. 아동 심리학에서 엄마와 아기의 대화가 주는 정신적인 영향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심리적인 것은 물론, 아기는 엄마에게서 직접 언어와 지혜와 사랑을 느끼고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방적이면서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얼마든지 더 있으리라. 

 

서울에서 어느 날, 우연히 K시인을 만나 함께 길을 걸었다. 우리를 버리고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떠난 극작가 암산 주태익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주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이 이태밖에 안되지만, K는 오랜 세월을 그와 함께 했을뿐더러 하루라도 서로 얼굴을 못 보면 몸살이 나는 친구의 하나였으므로 슬픔도 나보다 몇 배 더했다. 그는 말했다.
“내세라는 게 있다면 岩山(주 선생님 별호)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겠지?”
나는 그 말을 얼른 받아, “내세라니요? 영생을 믿는 우리 크리스찬이 내세라고 하면 되나요? 지금 주 선생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뿐 아니라 이 세상을 모두 내려다보고 계실 텐데요. 좁은 세상에서 살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보니 작품 소재도 마치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처럼 많을 텐데… 하늘나라에선 연극이 필요없다고 하면 참 가슴 아프시겠지요?”
나는 주 선생님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듯 깜깜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 선생님과 헤어질 때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 안녕… 다음에 또 만나 얘기해요…”
별들이 약간 흐려지는 모습이 암산이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 웃는 모습 같았다. 크리스찬은 인간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초월자 하나님과의 대화도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영적 생활을 체험하는 모양이다.

 

나는 가끔 어린이들이 기도할 때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새삼 느낄 때가 많다. 나의 작은 아들 동순이,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빠 생일 아침에, 그날의 기도를 동순이 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감았고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미안합니다. 오늘은 아빠 생신인데 선물을 못 샀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도 괜찮지요?. 아빠, 엄마 오래 살게 해주시구요. 우리도 더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이 솔직한 믿음이 그대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식물과의 대화.
인간과의 대화.
하나님과의 대화.
그 어느 것이든 ‘대화’는 서로에게 관심과 이해를, 희망과 믿음을, 사랑과 인내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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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8. 기다림

 

                                         케테 콜비츠의 <Self Portrqit>(Daum 카페에서)


 

산골의 밤은 빨리 저무나 보다. 이제 저녁 여덟 시 밖에 안 되었는데 창 밖은 이미 깜깜하고, 별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밤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남향으로 난 이층 창문턱에 두 팔을 괴고, 목을 길게 뺀 채, 멀리 고속도로 쪽에 들어왔다가는 옆길로 사라져버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눈으로 열심히 쫓아본다.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면서.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시골집에 내려온 지 일주일째 되는 데도 낮엔 몹시 무덥고, 밤엔 기온이 4-5도 가량 내려가서 유령이라도 나올 듯 썰렁해진다. 그래선지 낮엔 산골 물 길어 밥을 해 먹고, 낮잠 자고 돗자리 위에 뒹굴며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신선놀음 하느라 그이 생각은 까마득하다가, 어둠이 덮인 다음에야 기온이 변하듯 마음이 다급해져 그이를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은 그리움에서 시작되어 고독감마저 달콤하게 새기려 한다. 그러나 그이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 20분, 30분이 지나면, 오늘도 그인 안 돌아오는구나 하는 실망과 분노로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찌륵, 찌륵 미찌륵… 하는 쓰르라미의 차가운 음향과, 옆방에서 공부하며 딸 아이가 이따금 플루트를 부는 청아한 음율과, 그 멜로디를 듣고 지나가던 나그네가 박수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맞은 편에 검은 괴물처럼 누워 있는 산등성이가 꿈틀거리며 일어나 나를 덮어버릴 것만 같은 착각에 기절할 지경이다. 

 

작은 창문틀에 매달리듯 팔꿈치를 짚고, 발꿈치까지 쳐들어, 창 밑에 멀리 보이는 큰 행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그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왼편 벽 거울에 길게 비쳐왔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것이, 희화한 듯 서글프게 보인다.
그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독일 여류화가 콜빗츠가 그린 <기다리는 여인> 같기도 하고, 사뮤엘 베켙Samuel Becket의 <고도우를 기다리는> 두 방랑인 같기도 하다. 콜빗츠의 <기다리는 여인>은, 실제로 콜빗츠 자신을 그린 것으로, 전쟁터에서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 않는 외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인상적인 그림이다. 하루 종일 회한에 잠겨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은, 숙명적인 여인의 어떤 상황을 암시하기도 하고, 전쟁이 다시 없기를 열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도우를 기다리는> 두 방랑인 블라디미르와 디디는, 고도우가 나타나기로 약속한 시골 길가의 나무 밑에서, 곧 오리란 예언만 전하며 오지 않는 고도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 나무(tree=gross or God이라고도 부르는) 밑에서 희망과 고통의 기다림이 반복된다. 기다림 자체가 주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때문에 더 고통을 느끼면서. 그 둘은 ‘만나면 미워져서 헤어지고 싶고, 죽여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사이지만, 헤어지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이’다. 그러면서도 고도우가 꼭 오리란 확신 때문에 그들은 추울 때 이불을 덮어주고 배고플 때 먹이를 찾아 서로 보살펴 주는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블라드미르와 디디가 ‘고도우’를 기다린 것 이상으로 절실하게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상황에서의 기다림, 동상이몽 때문에, 남과 북의 형제가 함께 만나서 기다려야 할 구원의 나무, 즉 판문점의 그 미류나무는 이미 붉은 도끼 날에 무참히 찍혀버렸다. 우리는 그 나무가 다시 자라 잎이 무성해 질 때를 기다리고 미워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블라디미르와 디디의 운명처럼, 희극적인 연민 속에 남과 북은 손을 잡고 우리의 ‘고도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부엌데기 순이가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못생긴 개구리를 부엌 구석에서 눈물과 사랑으로 먹이를 주어 키우자, 그 추한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하여 순이를 왕비로 맞는다는 우리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갑자기 짧은 경적소리가 찌륵이를 놀라게 한 듯 더 깊은 정적이 스며들며, 헤드라이트가 앞마당에 들어선다. 그이가 온 것이다!
고도우처럼 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이가 돌아온 게 나는 몹시 기뻤다. 기다림의 고통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우리 국민들이 기다리는 ‘고도우’도 우리가 기다리면 오실 하느님(God고도우)의 상징은 아닐까. 오고야 말 희망의 서곡인 양 찌륵이의 노랫소리가 힘차게 다시 울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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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포토에세이)127. 톨레도의 엘 그레꼬와 십자가의 성 요한(하)

127. 톨레도의 엘 그레꼬와 십자가의 성 요한(하)

(지난 호에 이어)

 

 

엘 그레꼬는 오르가스 백작이 매장될 때 어거스틴 성인과 스테파노 성인이 그의 시신을 맞들어 무덤에 안치했다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 얽힌 전설을 살려서 그린 것이다. 그림은 하늘부분과 땅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늘엔 성모님과 세례자 성요한이 그리스도 양 편에 있고, 성모님의 발치엔 금발의 천사가 새 아기를 받아내고 있다.

 

오르가스의 죽음과 새아기의 탄생에 무언가 재생의 의미가 연관된 듯하다. 어거스틴 성인의 금관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엘 그레꼬 자신이며, 맨 앞에 횃대를 뒤로 쥐고 뭔가 설명하는 듯한 귀여운 소년은 엘 그레꼬의 아들 임마 누엘이란다. 엘 그레꼬가 작은 천사 같은 그 아들에게 신앙과 화가의 길을 전승하려 한 것 같다.

아홉 달 만에 완성했다는 이 대작을 보기 위해 톨레도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놀라진 않으리라.

십자가의요한의 ‘어둔밤’과 엘 그레꼬의 ‘겟세마니동산의 기도’ 에서 ‘아름다움의 주인이며 빛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아 뵈었다고 해서, 웅장한 톨레도 대성당의 에케호모 문을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는 없으리라.

1226년에 초석을 놓은 이래로 270년을 두고 지었다는 톨레도 대성당은 온 도시를 내려다보며, 스페인의 수석성당으로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다른 고딕형 대성당과 달리 고딕 종탑이 하나뿐이며 그 종탑에 잇대어 세 개의 아치형 문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한 가운데가 ‘면죄의문’, 좌측은 ‘지옥의문’, 우측은 ‘심판의 문’이다.

 

 

속죄의 은총을 기원하며 ‘면죄의문’을 들어서서 찬양대석이 있는 파이프 오르간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깜짝 놀라 섰다. 대리석으로 만든 중앙제단 위에 어디서 본듯한 미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옆에서 우리에게 자애로운 미소로 마음의 번뇌를 녹여준 ‘하얀성모님’이었다. 안고 있는 아기예수가 성모님의 턱을 어루만지는 것에 응답 하는 듯한 신비스런 미소, 모나리자의 미소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곳에서도 만나다니. 하긴 하얀성모님의 원형이 톨레도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갑자기 우리를 위해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신듯 기쁨이 넘쳤다. 루이 디아 델 코랄이 1564년에 조각을 했는데, 노트르담대성당의 하얀성모님은 그 이후에 모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도를 마친 우리부부는 넓은 성당 안에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다니다가 갑자기 환해진 빛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 발길을 멈추고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꿈에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루가복음서 9:28)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어느 날 예수님을 따라 다볼산에 오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기도하다가 겟세마니동산에서처럼 잠깐 잠이 든다. 깨어보니 예수님은 엘리야와 모세와 흰구름 속에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때 예수님의 모습은 하얗게 눈부시게 변모해 있다. 그들은 예수가 앞으로 맞게 될 고난과 부활을 얘기하고 있었다.

놀란 베드로는 그곳에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를 위해 초막 셋을 짓자고 제안하자 그들은 구름 속에 떠나고, ‘이는 내 선택 받은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음성만 들려오고 예수님만 그 자리에 남는다. 이 장면은 신학자들의 큰 논쟁거리이다.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예언의 대표인 엘리야, 그리고 구세주 예수는 그리스도교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천년의 세월이 지나 베드로가 원하던 대로 이 자리에 초막이 지어진 셈이다. 구름 속에서 다시 그 음성이 들려올 때, 이 지상(성당)의 아름다운 파이프 올갠과 합창소리가 구름 위의 그 세분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리라.

 예술작품으로 ‘변모’한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 놀라서 쳐다보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을 구름 위에 햇빛처럼 신비스럽게 만든 것은, 천정 꼭대기에 유리창을 내어 자연광을 유도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 앞의 인물들은 조각작품으로, 그리고 그 하얀빛의 은총이 온 예배실에 가득 넘치도록 만든 또메가 1721-1732년까지 11년을 두고 만든 걸작품인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엔 로즈윈도우가 서녘햇살에 붉게 물든 다음이었다.

다볼산 위의 영광과 묵시를 마음속에 심어두고 우리는 ‘까를로V’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타호강으로 둘러싸인 알카싸 궁을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밤이면 높은 첨탑들이 돛단배처럼 보인다는데, 그것은 네모 반듯한 건축물 네 귀퉁이에 뾰죽탑을 올려놓아서 그렇게 보이나 보다. 스페인 내란시의 접전장소로 무데하르 양식과 고딕양식의 조화가 이슬람문화와 가톨릭 문화를 잘 조화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아름다운 타호강으로 둘러싸인 적갈색 바위산 같은 톨레도 섬은, 마치 엘 그레꼬가 펼쳐놓고 들여다 보는 환상의 그림 “톨레도의 경관과 계획”과 똑 같았다. 엘 그레꼬는 이 섬 위에 자신의 예술작품과 성모님의 은총을 함께 계획하고 이룩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 톨레도 거리와 묵직한 동양화풍이어서 더 다정한 그의 그림은 엘 에스코리알 왕궁에서,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옛날 성서시대를 거닐며 십자가의 성요한의 ‘어둔밤’과 엘 그레꼬가 보여준 ‘빛’의 은총, 다볼산의 영광을 담뿍 안고 돌아온 기쁨, 그리고 주님이 우리부부에게 주시는 샬롬을 다시 한 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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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7. 톨레도의 엘 그레꼬와 십자가의 성 요한(상)

         

 

 

아, 밤이여 길잡이여

새벽도곤 한결 좋은 아, 밤이여

굄하는 이와 굄 받는 이를

님과 한 몸 되어버린 고이는 이를

한데 아우른 아하, 밤이여

 

이 시는 ‘십자가의 성요한’이 톨레도 수도원 감옥에서 쓴 ‘가르멜산의 어둔 밤5’(최민순 신부 옮김)이다.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온갖 박해를 무릅쓰며 일군 ‘가르멜수도원’. 그 이름은 엘리야의 신비가 깃든 가르멜산에서 온다.

몇 해 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올랐던 엘리야의 동상이 서 있는 가르멜산, 포도밭이 질펀하고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그 산 길을 밤중에 올랐다면, 십자가의 요한이 쓴 가르멜산의 영적인 ‘어둔 밤’을 체험했으리라. 예수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의 모습을 ‘엘리야의 우물’가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테고. 그곳이 바로 관상 수도회의 표지판 같은 가르멜수도회의 원천임을 이제야 알았으니.

 

‘십자가의 성요한’(1542-1591)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쇠양 배양한 모습과 종교개혁 운동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교회 내에 자성파 혁신운동을 벌인다. 그 선봉이며 그의 영혼의 길벗인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의 격려로 남성수도원 운동을 일으키고 개혁 가르멜에 적극 협력하지만, 보수교단 성직자들의 방해와 저항으로 결국은 그 보수교단에 납치되어 톨레도의 수도원에 9개월 동안 갇혀 지내면서, 신비스런 자신의 신앙체험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내 그 샘을 잘 아노니”,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 그의 그림 중에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뒤에서 내려다 보며 그린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십자가의 모습일까?                                       

 

 

‘십자가의 요한’은 ‘예수의 데레사’ 수녀의 요청으로 아빌라의 엔까르나씨온 수녀원의 고해신부로 1572년부터 5년 동안 영적 지도에 협력하기도 했다. 그때 후안 파비오 2세로부터 받은 친서와 황금빛 큰 성작이 지금도 그곳에서 오누이 같은 두 동역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했다.

십자가의 삶을 늘 외면하며 살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요한’은 ‘어둠과 빛, 고통과 기쁨, 희생과 사랑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그의 생애와 작품들을 통해 일깨워준다. 험한 파도 같은 그의 삶을 마감한 후에 시복되고, 교회박사로,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한다(1993). 예수의데레사의 고전적인 산문과 십자가의요한의 운문은 스페인 고전문학에 영성 분야의 쌍벽을 이루고 있고. 

 

이상하게도 십자가의요한이 갇혀있던 ‘수도원 감옥’은 톨레도 지도에 없고,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십자가의성요한 기념교회 앞에 이르렀다. 교회라기 보다는 뾰죽돌탑 같은 건물의 돌담 앞에, 한 손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엔 성경을 들고 마치 ‘어둔밤’을 겪은 감옥에서 빠져나와 둘레를 살피며 서 있는 듯한 그의 하얀동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십자가의요한은 그곳에 선 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가량 버스로 달려온 옛날 역사박물관 같은 톨레도에서 먼저 보고 싶은 것은 십자가의요한이 갇혔던 수도원감옥과 엘 그레꼬의 그림들이었다.

 

 

십자가의요한은 몰라도 엘 그레꼬를 물으면 아이들도 그의 미술관으로 우리를 끌고 갈 정도였다. 그리이스의 그레타 사람 임을 자부하는 이름을 가진 엘 그레꼬의 미술관으로 가는 골목길은 마치 서울의 인사동 길 같이 고풍스럽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담벽 위로 아름다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엘 그레꼬(1541-1614)는 그레타섬에서 초기 미술교육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청년시절을 보내지만, 1577년부터 마지막까지 톨레도를 제2의 고향처럼 지키며 궁정화가의 길을 걷는 한편 성화를 그려 신비와 예술의 극치감을 길이 맛보게 해준다.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에서 여늬 화가의 그림에 나타나는 달빛을 보여주지 않고,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사랑의 빛이 예수의 얼굴에 일직선으로 비추게 하였다. 고통을 사랑의 빛으로 승화시킨 이 상징은 십자가의요한이 ‘어둔밤’이기에 더욱 빛나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빛을 체험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의 생가와 붙어있는 엘 그레꼬 미술관을 압도하며 걸려있는 “톨레도의 경관과 계획”은 그의 말년의 그림이다. 한 소년이 톨레도의 지도를 펼쳐놓고 그의 계획을 꿈꾸는 듯, 하늘엔 성모님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내려오고 있고, 낯선 톨레도 시가지가 황토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엘 그레꼬의 화풍과 이론이 들어 있고 그가 작품을 남긴 성당과 앞으로 작업할 곳의 청사진이라고 한다. 톨레도는 엘 그레꼬의 환상과 현실 속에 이루어진 도시였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산또 또메성당에 전면벽화로 그려 놓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었다. 톨레도의 귀족인 오르가스 백작은 신앙심이 깊었으며, 교회의 재정을 떠맡아 헌신하는 한편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준 정말 ‘훌륭한 사마리아사람’이었다. 그 당시 계급의식이 강했던 대성당에 출입을 못하는 빈민층의 신자들을 위해 이 교회를 지었고, 그의 유해는 그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로부터 200년도 더 지난 후 교회가 엘 그레꼬에게 기념벽화를 의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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