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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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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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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
한국의 성지 배론과 황사영의 백서(帛書)

 

비록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펴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 (시편 19:3,4)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동인회 회원들은 1년에 5, 6차례 국내 성지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런데 주말에만 떠나는 일정 때문에 회원이면서도 참가할 엄두를 못 내다가, 평소에 관심 있던 ‘황사영의 백서’가 있는 제천의 배론에 간다기에, 주일아침 예배도 빠지면서 기어이 따라 나섰다. (성지에서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배 밑바닥 같이 생긴 배론이라는 작은 마을의 한 토굴 속엔 ‘한국 근대사에 남긴 순교자의 마지막 유서’라고 할만한 황사영의 백서가 피맺힌 사연을 안고 의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사영은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사위이다. 일찍 진사가 되어 서울에 올라왔고, 처당숙 정약전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한국 최초의 청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사사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이리저리 피신하다가,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배론 산중에 토굴을 파고 숨어 지냈다. 그는 천주교회의 한국정착과 신앙의 자유를 실천시키려는 일념으로,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흰 명주 천에 1만자가 넘는 긴 백서를 깨알같이 써서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보내기 직전에, 백서를 함께 썼던 황심이 밖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토굴생활도 발각되고 말았다.

 

 백서의 내용은 1791년의 신해박해로부터 신유박해까지의 고난과 순교내용이며, 특히 이때 참수당한 주문모 신부의 행적과 이에 대한 방안이 적혀 있었다.

 

 그 방안은 서양 각국에서 자금을 각출해줄 것과, 교황이 청국황제에게 글을 보내 선교사를 받아드리게 해줄 것과,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조선을 감독하게 해줄 것과, 외국 배와 무기와 군사 5만-6만 명을 보내서 위협하여 선교사를 받아드리게 할 것을 청원한 내용이다.

 

 이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 사상, 종교, 사회에 걸쳐 세밀한 비밀자료를 보여주긴 했지만, 청국예속 청원부분은 사대주의 사상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백서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보다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행위로 이해하게 된다. 가로 62센티, 세로 38센티의 얇고 흰 명주천에 1만자의 글씨를 깨알같이 박아 쓴 그 백서가 세기를 거치면서도 연구과제로 남아있음도 하느님의 어떤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순교하고 약 50년 후 1815년에 바로 이 터에 한국 최초의 가톨릭신학교가 생겼다는 것도 물론 하느님의 역사임에 틀림 없으리라.

 

 황사영의 백서는 황사영, 황심 등이 참수를 당한 후 거의 1세기가 지난 1894년경에 포도청 의금부에서 고문서들을 태우다가 발견되었고, 그 당시 한국교구 책임자 뮈텔 대주교의 손에 들어갔다. 뮈텔은 그것을 로마교황 비오 XI세에게 한국 천주교 순교복자 시복기념으로 헌납했다. 지금 바티칸 교황청 고문서관엔 황사영의 피맺힌 명주편지가 보관되어 있고, 배론에 있는 것은 그 복사판이다.

 

 그토록 심한 정부의 탄압과 외세의 어두운 그늘에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알리고자 목숨을 내놓고 선교했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할 때, 편안한 여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행운이란 생각이 들기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설 뿐이다.

 

 황사영과 황심, 옥천희 등이 숨어있던 토굴로 올라가는 언덕길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걸어 올라가신 ‘슬픔의 길’ Via Dolorosa 처럼 14처에 세워놓은 예수님의 조각상 위에, 그들의 고난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번 여름엔,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지도자교육 과정의 마지막 날, 성지 배론에 또 한번 들리게 된다. 성스러운 고장, 제천에서 사회선교에 앞장선 명락교회의 이명선 목사님께서 노인학교지도자들을 초청해 주신 것이다. 배론 뿐만 아니라, 이 슬픈 역사를 달래주는 듯한 절경의 단양 8경과 옥순봉으로 페리호를 타고 구경할 일이 지금부터 마음 설레이며 기다려진다.

 

서울 <안동장로교회보> 47호 1994.7.24

 

(참고자료)

  • “신미년에 조선천주교 신자들이 북경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연구” -1811년 신미년의 서한- 주문모 신부의 죽음직후 현상에 대해 p. 53 (윤민구 신부)

 

  • “한국역사 사료가 전하는 강완숙 콜롬바” (조광 교수 강의; 2005년 7월 명동성당 코스트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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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2)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공주들은 그곳에서 세상에 더 바랄 게 없는 향락에 둘러싸여 그들이 바라는 대로 척척 시중들어 주는 시녀들 틈에서 세상과 격리되어 지냈어요. 기분 좋은 정원 산책, 진귀한 과일과 꽃들이 가득한 향기로운 작은 숲이며 향내 피우는 목욕탕까지 갖추어 있었죠.

 

그 성의 삼면이 온갖 종류의 가지각색 식물이 풍성하게 자라는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넓은 바다가 내려다 보였어요. 이렇게 좋은 기후와 맑은 하늘아래 멋진 거처에 살면서 세 공주는 빼어난 미인들로 잘 성장했어요.

 

모두 같이 자랐어도 그들의 성격은 제각각이네요. 큰 공주 자이다는 대담한 성격에, 세상에 나올 때처럼 모든 일에 동생들을 이끌어갔어요. 호기심이 많아 질문하기를 좋아하며 만사에 근원을 캐내곤하지요.

 

 둘째 공주 조라이다는 미적감각이 뛰어나, 거울이나 분수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기 좋아하고, 꽃이나 보석, 세련된 장신구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막내공주 조라하이다로 말하면, 온화하고 섬세하여 그가 아끼는 애완용 꽃과 새와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 그 다정한 성품을 잘 알 수 있어요. 공주의 즐거움이란 조용한 명상이나 공상에 잠겨 여름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거나 바다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발코니에 몇시간씩 앉아 있곤 할 때였지요.

 

그럴때면 어부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해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고, 때로는 돛단배에서 무어인들이 부는 풀류트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어요. 자연이 일으키는 작은 소란에도 깊은 낙심에 빠졌으며, 천둥이 한번만 울려도 기절 해버리곤 했지요.

 

  똑소리 나는 카디가의 충실한 보살핌 속에 이럭저럭 여러해가 탈 없이 흘러갔어요. 해안의 한 언덕위에 서 있는 살로브레냐 성 위에 감시탑이 있는데, 격자창을 달아 바닷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정자 같았어요. 공주들은 무더운 대낮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자이다가 정자의 창가에 앉아 있고, 동생들은 긴 의자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해안으로 노를 저어오는 돛단배가 자이다의 눈에 들어왔어요.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무어인 병사들이 기독교인 포로들을 끌고 좁은 해안에 상륙했어요.

 

호기심 많은 자이다는 동생들을 깨워 셋이서 함께 촘촘한 격자창살 사이로 조심스레 내다보았어요. 포로들 중엔 화려하게 정장한 히스파냐 기마병이 세 명이나 보이네요. 꽃다운 나이에 고상해 보이는 그 기사들은 적에게 둘러싸여 사슬에 매여 있음에도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군요.

 

세 공주는 숨막힐 듯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어요. 시녀들에게만 둘러 싸여 새장에 갇혀 살던 공주들은 해안의 어부나 흑인노예 밖엔 보질 못하다가, 그 당당한 젊은 용모와 남자다운 세 기마병의 등장은 가슴 뛰게 할만한 사건일수밖에요.

 

  “저 주홍빛 옷을 입은 기사보다 더 고상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저 자신만만한 태도를 좀 봐! 마치 주위엔 자기 노예들 뿐이란 듯 당당한 모습을 보라구!” 큰 공주 자이다가 동생들에게 소리쳤어요.

 

  “저 녹색 옷을 입은 이는 또 어떻구! 얼마나 기품이 있는지! 우아하구! 기백있어 보이구!” 둘째공주도 큰소리로 말했어요. 얌전한 조라하이다는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마음 속엔 하늘색 옷을 입은 기사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지요.

 

 세 공주는 포로들이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어요. 그리고는 무거운 긴 한숨을 내 쉬고 돌아서서 잠시 서로 바라보다가 긴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며 쓸쓸해졌어요.

 

 똑소리 나는 카디가는 이내 눈치를 챘어요. 세 공주가 그들이 본 기마병 이야기를 해주자 시녀장의 차가운 가슴에도 온기가 스며드는군요. “불쌍한 젊은이들이군요. 그들이 잡혀와 고향에 있는 아름답고 지체 높은 숙녀들은 아주 상심했을 게 뻔해요. 아, 공주님들, 그 기사님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마상시합 때의 그 짓궂은 모습! 숙녀들에 대한 한 없는 헌신! 그 멋진 구애와 세레나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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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26)-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2)

 

워싱턴 어빙 지음 Yunice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Nasid 건축양식으로 지은 왕녀의 탑

 

그 가운데 왕의 눈에 확 띈 것은 화려한 옷 차림으로 작은 노새 위에 올라타고, 옆에서 말을 타고 가는 시녀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울기만 하는 아름다운 한 아가씨의 모습이었어요.

 

그녀의 미모에 반해 버린 왕은 그 대열의 대장에게 물어서, 그녀가 국경요새에 있는 성주의 딸로 갑작스런 침입에 포로가 되었음을 알았어요. 모하메드는 그녀를 왕실이 차지할 전리품으로 치고, 알함브라궁에 있는 하렘에 데려갔어요.

 

그곳엔 침울해진 그녀를 달래줄 것이 모두 갖추어 있었고, 왕은 점점 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끓어올라 그녀를 그의 왕비로 삼고자 했대요.

 

이 히스파냐 (스페인의 라틴어발음) 아가씨는 처음엔 그의 구혼을 거절했어요. 왕은 이교도인데다 공공연한 적이었고, 더구나 늙은 노인네 같았거든요!

 

왕은 자신의 노력이 소용 없음을 알고, 그 아가씨와 함께 잡혀 온 시녀장에게 협력을 구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안달루치아 태생인 그녀는 기독교 이름은 이미 잊혀졌고, 무어인의 전례대로 아주 똑똑한 카디가라는 이름을 받았어요. 앞으로 그녀가 한 일들을 보아도 아주 ‘똑소리 나는 카디가’임이 분명해요.

 

무어왕과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고는 단번에 왕의 말에 수긍했어요. 그래서 그녀의 작은아씨 일은 왕이 원하는 대로 추진하기로 했지 뭐에요.

“그저 내 말대로만 하세요!” 카디가는 큰소리로 말했어요.

 

“이 일을 가지고 울고불고 할 게 뭐에요? 아름다운 분수와 정원이 있는 이 궁전의 왕비마마가 되는 게 작은아씨 아버님의 낡아빠진 성채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모하메드란 사람이 이교도이긴 해도 무슨 상관이에요? 작은아씨는 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이지 그의 종교와 결혼하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분은 늙어가니 작은아씬 곧 과부가 될거구, 이 궁전의 여주인이 된단 말씀이에요. 아무튼 지금은 그의 수중에 잡혀 있으니, 작은아씨는 왕비가 되거나 노예가 되는 수밖에요. 도둑에게 잡히면 강제로 모두 뺏기느니 좋은 값에 물건을 파는 게 낫다잖아요.”

 

이 똑소리 나는 카디가의 논리가 작은아씨를 설득했지 뭐에요. 히스파냐 아가씨는 눈물을 거두고, 왼손잡이 모하메드의 아내가 되었어요. 겉으론 충성스런 남편의 종교를 받아들인 듯이 보였고, 똑소리 나는 카디가도 바로 개종하여 이슬람 교리를 열심히 외워바쳤어요.

 

세월이 흘러 무어왕은 한꺼번에 셋이나 태어난 사랑스럽고 예쁜 공주들의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었네요. 아들들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나이에 왼손잡이인 자신에게 세 딸이 한번에 태어난 것만도 아주 괜찮은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삼았지요.

 

무슬림 왕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모하메드도 이 경사스런 일을 점치기 위해 점성술사들을 불렀어요. 그들이 세 공주의 탄생 천궁도를 펴 보더니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오, 폐하, 딸들이란 원래 애물단지들입니다만, 이 공주님들은 결혼할 나이가 되면 폐하께서 잘 감시하셔야 합니다. 그때는 공주님들을 모두 폐하의 날개 아래 모아 놓으시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호를 맡겨선 안됩니다.”

 

세 쌍동이의 탄생은 왕의 결혼생활에 얻은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왕비는 아기를 더 낳지 못하고 몇해 후엔 어린 세딸을 왕의 사랑과 카디가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공주들에게 위험한 시기라는 결혼 적령기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조심성 깊은 왕은 “그래도 미리 조심해두는 게 좋지.” 하면서 공주들을 살로브레냐 성으로 보내 키우기로 했어요. 그곳은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지은 막강한 무어식 요새로 지은 궁전이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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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26)-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아름다운 정원에서만난 캐나디언 부부

  

히스파냐의 재 정복시에, 무어왕의 아름다운 세 공주와 류트를 켜는 하신타가 살았던 ‘왕녀들의 탑’은 동쪽 외딴 곳에 포로의 탑과 거리모퉁이 탑 사이에 솟아 있다.

 

이 탑의 동편 누벽 아래로 바위를 뚫어 비밀통로를 만들어 놓았으나 지금은 흙더미에 많이 파묻혀 있다. 알함브라궁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면서 나스리드 왕조 예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아랍 왕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작은 궁전 탑이다.

 

이 탑에서 서쪽 외곽에 공주를 사랑하는 기독교인 기사들이 갇혀 있던 벽돌색 베르밀리온 탑의 높다란 외벽엔 무성한 아이비 덩굴이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궁전탑의 회랑을 지나 직사각형 중앙 홀에 들어서면 대리석 분수가 있는 정원이 나온다. 홀의 천장엔 종유석 같은 모카라베 세공으로 덮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기통 장식을 볼 수 있다. 연꽃잎 모양으로 조각한 그 천장이 저녁노을 빛으로 신비스럽게 빛나고, 세 개의 좁고 긴 직사각형의 공주들의 방이 중앙 홀을 싸고 나란히 붙어있다.

 

큰 반달문과 신비스런 꽃줄기 무늬를 세공으로 조각한 작은 아치들이 침실에 붙어있고,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게 이곳에 갇혀 살았던 공주들이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며 내다 본 창문이다.

 

옛날 옛적 이야기에 공주들의 슬픈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으리라. 19세기 낭만주의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쓰고, 한 편씩 우리말로 옮기면서 내 알함브라궁의 산책과 사진으로 엮어가는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 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는 이 탑에서 탄생한 것이다. (옮긴이)

 

이제 무어왕 모하메드의 아름다운 세 공주님, 자이다와 조라이다와 조라하이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옛날 옛적 그라나다에 모하메드라는 무어왕이 살고 있었어요. 그의 백성들은 그에게 ‘엘 하이자’라거니 ‘왼손잡이’라거니 별명을 붙여 불렀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왼손을 오른손보다 훨씬 능숙하게 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왕이 하는 일마다 그르쳐 놓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는군요.

 

분명한 건 왕이 운이 나빠서건 서투른 왼손잡이여서 건 힘든 일이 연달아 생긴 거에요. 세 번이나 왕좌에서 쫓겨나질 않았나, 어부로 변장하고 아프리카로 탈출하질 않았나… 그러면서도 서툰 만큼 용감하긴 해서 왼손으로 언월도를 휘둘러 맹렬한 전투 끝에 다시 왕좌를 찾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역경에서 지혜를 쌓기보다는, 고집스럽게 목을 꼿꼿이 세우고 왼팔에 더 힘을 주어 휘둘렀다는군요. 그라나다에 있는 아라비아 연감을 보면 모하메드가 자기 자신이나 왕국에 가져온 불행한 사건들을 단박 알 수 있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그의 집안에서 벌어진 이야기에요.

 

어느날 모하메드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엘비라 산 기슭에 말을 달리고 있었어요. 그 때 마침 기독교인의 땅을 약탈하고 돌아오는 말탄 병사들을 만났어요. 그 긴 행렬 끝엔 전리품을 잔뜩 실은 노새들, 수많은 남녀 포로들이 뒤따르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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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한국생명의전화 자선만찬회에 참여한 해위 윤보선과 도원 서영훈 이야기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25)

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9.끝)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두 사람은 사건현장 근처에서 오래 서성거리지 않았고, 힘겹게 행운을 가져다 준 보물을 사이 좋게 나누어 가졌어요. 그런 다음 무어인은 그의 고향인 아프리카의 탕헤르로, 가예고 식구들과 당나귀는 포르투갈로 갔답니다.

 

페레힐은 아내의 충고대로 아주 고귀한 인물로 변신해서 이름도 돈 페드로 힐이라고 격조있게 붙이고요. 작은 키와 안짱다리를 물려받은 그의 자식들은 명랑한 성격에 유복하게 잘 자라고요. 힐여사 역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이스와 술이 달린 긴 옷을 입고, 손가락마다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 다님으로서 천박하고 화려한 치장을 유행시켰답니다.

 

읍장과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오늘날까지 마법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저 높은 칠층탑 아래 갇혀있지요. 히스파니아 안에서 하챦은 이발사나, 욕심 사나운 형리나, 부패한 읍장나리가 필요한 날이 또 온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걸린 마법은 최후의 심판 날까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군요.

 


▲지하로 내려가는 7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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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의전화 자선만찬회에 참여한 해위 윤보선과 도원 서영훈 이야기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present comes from heaven; it comes down from God, the Creator of the heavenly lights, who does not change or cause darkness by turning.-James 1:17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우리를 외면하심으로써 그늘 속에 버려두시는 일도 없으십니다.)

 

▲1982년 한국생명의전화 자선만찬회. 만찬회에 출연(出捐)해준 해위 부부와 그날의 연사 김수환추기경, 준비위원장인 서영훈 총재(해위 뒤편), 소설가 윤남경-전상근(과기처 실장) 부부, 우측에 민석홍(효성엔지니어링사장) 장로와 윤경남(생명의전화 이사) 부부

 

생명의전화(LIFE LINE)은 1966년 호주에서 시작했다. 앨런 워커(Alan Walker) 목사가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를 도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사람이 자살을 선택한 것에 충격을 받고,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전화상담이었다.

 

그는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주제로,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하루 4교대로 24시간 전화상담을 통해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 이후 생명의전화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에는 1976년 9월에 도입하여 “선한 사마리안”을 실천하는 단체가 되었다.


 한국생명의전화 태동은 창립준비위원들 몇 명이 정기적으로 모인 다락방기도회에 이어, 1976년에 조향록 이사장과 이영민 목사가 많은 기관과 개인의 후원으로 설립했다.

 

생명의 전화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지만 종교를 초월하고, 초교파적인 시민단체이다. 개인이 겪는 고통의 문제, 특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자살 위기자들을 상담하기 위해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전국 18개 도시 19개 센터에서 2천여 명의 훈련 받은 상담봉사자들이 전화 앞에 앉아 상담해주는 시민봉사단체이다.

 

제7대 이기춘 이사장은 취임식에서 <자살>을 <살자>는 운동으로 펼쳐나가자는 실질적인 목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세계생명의전화 창시자인 알란 워커 목사님이 쓴 <LIFE LINE>을 <생명의전화>로 번역하여 상담원 교육 교재의 하나가 되었고, 한국생명의전화 창단 이사의 한 사람으로 11년 동안 상담원 봉사를 했다.

 

특히 홍보분과 담당 이사이신 서영훈 총재님과 함께 1982년과 1983년에 자선만찬회 준비를 하던 일이 어제일 같기만 하다.

 

그 당시 준비위원이던 내가 남편 민석홍 장로와 함께 생명의전화 자선만찬회에 서예작품을 내주시도록 해위에게 부탁 드리자, “무슨 유명한 글씨라고…” 하시면서 극구 사양하셨으나 자선만찬회의 정신에 동의하시고, 정치적으로 엄중한 견제와 감시를 받는 가장 힘든 시기인데도 두 번이나 출연(出捐)해 주셨다.

 

첫 해의 서예작품으로 <天長地久>천장지구를, 두 번째 자선만찬회엔 <淸泉洗心>청천세심을. 두 작품 모두 소장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나서게 되어, 예상보다 큰 후원금이 들어와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 주제강연을 해주신 김수환 추기경의 자애로운 모습도 잊을 수 없고, 사회자인 차인태 준비위원이 사례금을 후원금으로 돌려주신 것도 기억에 새롭다.

 

서영훈 총장님과의 오랜 인연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처음 알게 된 것은, 1951년경, 해위가 부산에서 적십자사 총재로 취임하셨을 때이다. 나의 아버지 윤택선 장로님(국회교통체신전문위원)이 적십자사 총재가 된 큰형님께 축하인사 하신 다며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때 양 갈래 머리를 곱게 땋아 내린 해위의 여비서가 경기여고 교복을 입고 비서직을 수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서영훈 씨의 부인이 된 어귀선 사모님이었다.

 

서 총장님은 나의 백부인 해위의 그 당시 여비서님과 결혼하셨기에 나에게도 잘 해주셨던 것 같다. 물론, 해위가 젊은 서영훈 적십자사 사무국장을 끝까지 여러 측면에서 발탁하고 추대(推戴)하신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후에 역시 적십자사 총재가 되신 서영훈 총재님이 흥사단 이사장직에 계실 때의 일이다. 1998년 4월 3일, 서울 YMCA강당에서 좌옹 윤치호문화사업회 창립기념식을 가졌을 때, 서영훈 이사장님께 축사를 부탁 드렸다. 서 이사장님은, 그분의 독특한 회심의 미소를 띄우고, “윤 선생이 왜 나한테 부탁하는지 잘 알지요.”쾌히 승낙하고 좌옹 사업회의 앞날을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해 어느 날 내게 전화해주신 일은 역사적인 에피소드로 잘 기록해두었다. 즉, "윤치호 선생님이 쓰신 애국가 친필에 '윤치호 작'이라고 써있는가요?”하고, 물으셨다. 나는 윤치호 친필 애국가 액자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맞습니다”고 했더니, "윤치호 선생님의 인격으로 보아, 친필로 ‘윤치호 작’이라고 쓰셨다면 윤치호 작이 맞습니다. 그런데, 흥사단 사람들이 애국가는 안창호 작이라고 계속 우겨서 미안합니다. 내 생각에도 도산 선생은 한번도 '애국가는 내가 작사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셨다. 

 

 생명의전화 제1회, 제2회 자선만찬회를 도와주신 분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지난 2017년에 서울에서 <좌옹윤치호평전>출간 시에 서영훈 총재님을 만나 뵈려고 했는데, 이미 그 해 2월, 98세로 별세하신 것에 새삼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하늘나라에서도 존경하고 가깝게 지내시던 해위를 만나 위기의 우리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리라.

 

아울러, <하나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는 <생명의 전화운동> 정신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그리고 귀한 후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리라 믿는다. (海葦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2020년 6월 소식지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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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24)-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8) 이야기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읍장은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무어인에게 다시 말했어요. “거 참, 기이한 이야기로구나. 그래도 직접 내 눈으로 증거를 봐야겠다. 오늘밤 너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주문을 다시 외우라. 만약 그곳에 그런 보물이 정말로 있다면 우리 모두 사이 좋게 나누어 가지게 되고 더 이상 추궁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너희가 나를 속인다면 내게 자비를 빌어도 소용없다. 그 때까지 너희를 감금해 두겠다.”

 

물지게꾼과 무어인은 그 조건에 기꺼이 동의하고, 그 사건이 그들의 진실을 증명해주리라 생각하며 안심했어요. 자정이 가까워 읍장과 형리와 염탐꾼 이발사는 모두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어요. 그들은 물지게꾼과 무어인을 포로로 앞장서게 하고, 보물을 잔뜩 실어오기 위해 물지게꾼의 튼튼한 당나귀도 함께 데리고 갔어요.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그들은 칠층탑에 도착하여 당나귀를 무화과나무에 묶어놓고 지하실 4층까지 내려갔답니다.

 

두루마리가 두루루 펼쳐지고, 노란 향초에 불이 당겨진 다음 무어인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어요. 먼저번처럼 땅이 흔들리고 우레 소리가 나며 바닥이 열리고 좁은 계단이 드러났어요. 읍장과 형리와 이발사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어서 내려가 볼 엄두도 못 내는군요.

 

무어인과 물지게꾼이 먼저 지하 동굴로 들어서고, 그들은 금화와 보석이 가득 들어있는 큰 항아리 두개를 옮겼어요. 물지게꾼이 양쪽 어깨에 지고 날랐는데, 등이 튼튼하고 짐 지는데 익숙한 페레힐 조차 그 무게로 휘청거릴 지경이었고, 당나귀 양 옆구리에 싣고 나자 더 이상 당나귀가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어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시죠. 우리가 발각되지 않고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고, 부자가 될만큼 엄청난 보물이니까요.” 라고 무어인이 말하자,

“보물이 더 남아 있단 말이지?” 읍장이 캐물었어요.

“제일 값나가는 것은 진주와 희귀한 보석들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상자인데, 쇠장식으로 묶여 있습지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상자를 가지고 가세.” 욕심 많은 읍장이 소리쳤어요.

 

“저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겠어요. 제정신이 있는 사람에겐 그만하면 충분하니까요.”

“짐을 더 실었다간 내 불상한 당나귀 등이 부러질 테니 나도 더 이상 가져오지 않겠습니다.” 물지게꾼도 합세해서 말했어요. 명령이나 위협이나 호소가 모두 소용없음을 알게된 읍장은 이제 두 부하에게 매달리는군요.

 

“나를 도와다오. 그 상자를 함께 들고 올라와서 그 보물을 똑같이 나누기로 하세.” 읍장이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자 형리와 이발사도 마지못해 그 뒤를 따라 내려갈 수 밖에요.

 

무어인은 그들이 땅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지체없이 노란 향초의 불을 꺼버렸어요. 바닥이 우레소리와 함께 닫히고 세 사람은 동굴 속에 묻혀 버렸지요. 그런다음 단숨에 나머지 계단을 빠르게 달려 올라갔어요.

 

땅딸보 물지게꾼도 짧은 다리로 당나귀를 끌고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올라간 것은 물론이구요. “당신, 무슨 짓을 한거요?” 페레힐이 숨을 몰아쉬며 웨쳤어요. “읍장이랑 세사람 모두 지하동굴에 갇혔잖나?”

 

“그건 알라의 뜻이라네!” 무어인이 신실한 어조로 말했어요.

“그럼 저들을 풀어주지 않겠단 얘기요?” 가예고가 다그치며 물었어요.

 

“알라께서 용서치 않으신다네. 그 운명의 두루마리에 적힌걸 보면, 장차 어떤 모험가들이 와서 마법을 풀어주기 전까지 계속 마법에 걸린 채 남아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네. 신의 뜻이 이루어진 거라네!” 무어인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어요. 그리고는 그 무성한 골짜기의 어두운 숲속에 향초를 내던졌어요.

 

 이젠 정말 풀어줄 방법이 없군요! 무어인과 지게꾼은 값나가는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를 끌고 성읍을 향해 행진했어요. 착한 페레힐은 다시 찾은 귀가 긴 그의 동료 보좌관을 끌어안고 수도 없이 입을 맞추었어요. 사실이지 이 순박한 남자의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것이 보물단지인지 당나귀인지 판가름이 안 서네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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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7)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아내가 좋아 날뛰는 모습이라니! 남편의 목을 감싸 안아 질식할 뻔한 남편도 벅찬 행복에 겨워 말했어요. “여보, 이제 무어인의 유산에 대해 더 할말이 없겠지요? 앞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을 돕는다고 나를 나무라선 안되오.”

 

 물지게꾼의 아내는 비밀을 지키기로 한 약속을 놀랍게 잘 지키고 있었지요. 하루 반나절동안은 동네 수다쟁이 마누라들에게 둘러싸여 지냈지만, 자기 옷이 너무 낡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금빛 레이스와 방울이 달린 새 옷을 주문해야겠다고 말해두었어요.

 

또 남편이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지게 지는 일을 그만 둘 생각이란 것도 슬그머니 말해두고요. 여름엔 아이들을 데리고 산 공기가 좋은 시골에 가서 지내련다는 말도 덛부치고요.

 

이웃 아낙네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그 불쌍한 여자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든 말든 페레힐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치장하기 시작 했어요. 누더기 옷차림에 목에는 동양의 진주목걸이를, 팔엔 무어인의 팔찌를, 머리엔 다이아몬드 화관을 쓰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깨진 거울쪽에 비친 자기 모습에 한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하구요.

 

운명의 장난인지, 길 건너 이발소에서 빈둥거리며 염탐하던 이발사 페드리요의 감시망에 그녀가 머리에 쓴 화관의 다이아몬드가 반짝! 걸린거에요. 다음 순간 그는 문구멍으로 물지게꾼의 아내가 동양의 신부처럼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을 잘 관찰하고는, 읍장에게 당장에 달려갔어요.

 

잠시 후엔 굶은 이리 같은 형리가 냄새를 맡아, 운 사나운 페레힐은 그날 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재판관 앞에 불려 왔어요. 드디어 읍장님의 호령이 떨어졌어요.

 

“어찌된 건 가, 이 악당같으니. 너는 내게 그 이교도가 텅 빈 상자 말고 남긴 게 없다고 말했겠다! 그런데 네 처는 누더기 위에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휘감고 있다니, 비열한 자로다! 그 불상한 희생자에게서 노략질한 걸 다 내놓아라. 그리고 너 같은 자를 기다리다 지친 교수대에 매달릴 준비나 하라.”         


 겁에 질린 물지게꾼은 무릎을 꿇고 그가 보물을 찾게된 사연을 자세하게 털어놓았어요. 읍장은, 주문을 외운 무어인도 잡아오라고 명령했지요. 무어인이 반쯤 겁을 먹고 들어와 탐욕스런 집행자들과 풀이 죽은 물지게꾼을 보자 사태를 짐작했어요.

 

그는 페레힐 곁을 지나가며 가만히 말했어요. “이 한심한 작자야, 네 마누라에게 떠버리지 말라고 경고한걸 잊었나?” 무어인의 진술은 그 동료의 진술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으나, 읍장은 엄격한 수사와 투옥을 들먹거리며 협박조로 나오네요. 그러자 평소 빈틈없는 무어인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어요.

 

“진정하십시오. 현명하신 재판관 나리. 우리 모두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느라 이 행운을 놓쳐선 안됩니다. 우리들 말고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비밀을 지킵시다. 그 동굴 안에 우리 모두 부자가 될만한 보화가 충분히 남아 있습죠.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약속만 해주신다면 그 문은 열릴 것이오, 아니면 그 동굴은 영원히 닫혀 있게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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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6)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들은 그날 밤으로 마법을 시험해보기로 합의 했어요. 박쥐나 올빼미 말고는 다니지 않는 어둔 시간에, 알함브라의 숲길을 올라 나무 숲과 전설 때문에 더 무서워 보이는 칠층탑에 다가 섰어요. 등잔 불빛에 관목 숲과 무너진 돌무더기를 파 헤치며 그 탑의 반달문 앞에 이르렀어요.

 

그들은 벌벌 떨면서 바위를 뚫고 만든 층계로 내려갔어요. 층계는 음습하고 텅 빈 방이 이어지고, 다시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졌어요. 네번째 방은 단단해서 더 내려갈 수가 없네요.

 

전설에 따르면 그 아래 세 개의 방이 더 있는데, 마법에 걸려 더 내려 갈 수 없다는군요.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인데 그때 마침 감시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그들이 노란 향초에 불을 당기자 몰약과 유향과 향나무 냄새가 진동을 하네요.

 

무어인이 급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지옥의 천둥 같은 우레 소리가 났어요. 땅이 흔들리고 바닥이 하품하듯 입을 딱 벌리자 다른 지하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왔어요. 벌벌 떨면서도 그들은 아라비아 글자가 벽에 잔뜩 써있는 다른 지하방에 온 것을 알았어요.

 

방 한가운데 쇠띠를 일곱겹으로 묶은 큰 상자가 있고, 그 양쪽에 갑옷 입은 무어 병정들이 마법에 걸려 동상처럼 서 있군요. 그 상자 앞에 숨은 보화가 가득 든 항아리가 여러 개 놓여있고요.

 

그들은 제일 큰 단지 안에서 무어의 금화와 황금 팔찌와 장신구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쉴 새 없이 끄집어내어 가지고 간 주머니에 가득 담았어요. 갑자기 회오리 바람 부는 소리에 겁에 질려 허둥지둥 계단을 뛰어 제일 윗방으로 다시 올라왔어요. 향초를 쓰러뜨려 불이 꺼지자 다시 우레소리가 나며 바닥이 닫혀버렸어요.

 

두 사람은 나무 숲 사이로 반짝이는 별이 보일 때까지 두 손으로 기다시피 그 탑에서 빠져 나왔어요. 그들은 잔디 위에 풀석 주저앉아 가져온 보물을 나누고 다음 번에 와서 단지를 더 털기로 했어요.

 

서로 신의를 지키자는 맹세의 표시로, 한 사람은 두루마리를 다른 한 사람은 초를 가지고 있기로 했구요. 그런 다음 두둑한 주머니를 차고 마음 가볍게 그라나다를 향해 떠났어요.

 

언덕을 내려오는 동안 치밀한 무어인은 소박하고 단순한 물지게꾼의 귀에다 충고하는 말을 연신 속닥였지요. “페레힐, 우리가 그 보물을 마저 챙겨오고 아무 탈이 없게 조치할 때까진 철저히 비밀에 붙여 둬야하네. 이 이야기가 읍장나리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린 끝장일세!” “그럼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페레힐, 자넨 지각 있는 사람일세 마는 자넨 아내가 있지 않나?”

“아내에게 한 마디도 않겠소.”

“그럼, 됐네. 자네의 신중한 성격과 약속만 믿네.”

 

그보다 더 확실한 약속은 없으련만, 아, 어떤 남자가 자기 마누라에게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요? 물지게꾼 페레힐 같이 사랑이 넘치고 유순한 남자에랴? 집에 돌아와 그는 침울하게 축 쳐져서 구석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았어요.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렇게 늦은 밤중까지 쏘다니다 오시니. 왜, 오늘은 집에 재워줄 또 다른 무어인은 안 데려오셨는가베?”하면서 자기 손을 비틀고 가슴을 치며 소리쳤어요. “나같이 불행한 여자가 어디 또 있을꼬! 내 팔자가 이게 뭐람. 우리 살림은 재판소에서 다 거덜내고, 남편이란 작자는 식구들 먹을 빵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밤이나 낮이나 이교도 무어인들 하고만 어울려 다니고. 아이구 내 새끼들아! 이제 우린 어떡하지? 우린 모두 길거리에 나가 구걸하게 생겼구나!”

 

성실한 페레힐은 아내의 비탄에 마음이 움직여 자기도 같이 훌쩍거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의 마음은 그의 주머니만큼이나 부풀어 올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어요.

 

그는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어 금화 서넛 잎을 끄내어 아내의 가슴에 넣어주었답니다. 불쌍한 아내가 놀란 입을 다물기 전에 땅딸보 가예고는 금 목걸이 한 개를 더 꺼내어 아내 앞에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어요.

 

“성모님, 우리를 도우소서! 페레힐, 당신 지금 무슨 짓 한 거에요, 설마 사람 죽이고 도둑질 한 건 아니겠지요!”

 

페레힐은 히스테리가 된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 동안 일어난 행운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줄 수밖에요. 물론 누구에게도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는 엄숙한 약속을 받아내고서 말이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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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21)-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5)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재수 없는 건 너를 본 그날이야! 아니면 네 상전을 내 지붕 밑에 쉬게 해 준 일이라구!” 하면서 말이지요.

내동댕이 친 상자가 활짝 열리더니 그 속에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거에요. 페레힐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혼자 생각했어요. “혹시 알아? 이 글이 아주 중요한 건지도. 그 무어 노인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지니고 다닌 걸 보면.”

 

페레힐은 그 두루마리를 집어 품 안에 간직했어요. 그 다음날 아침에 골목길을 돌며 물 사려! 를 웨치고 다니다가, 사카틴에서 향수와 장신구를 파는 탕헤르 출신의 무어인 가게에 들렸어요. 그리고는 그 두루마리 속의 아랍 글자를 읽어달라고 부탁했지요.

 

그 무어인은 두루마리를 다 읽더니, 자기 턱수염을 탁 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이 글은, 마법에 걸려 드러나지 않는 보물을 찾을 때 쓰는 주문이오. 아무리 튼튼한 빗장이나 걸쇠나 쇳덩이 같은 바위라도 이 주문 앞에서 열리고야 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요!”       

 

“에이, 여보시오! 그런게 다 나한테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나는 마술사도 아니고 숨겨 놓은 보물 따윈 알지도 못하는데.” 땅딸보 가예고는 그렇게 말하고 물통을 어깨에 지고, 두루마리는 무어인 가게에 맡겨놓은 채 물장사나 하려고 터벅터벅 걸어 나갔어요.

 

그날 해질 무렵, 그가 알함브라의 샘터에 오면 늘 그렇듯 사람들의 잡담을 듣고 있었어요.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의 화제는 의례껏 옛날 얘기와 초자연적인 전설을 들추어 내기가 일수였어요. 하나같이 가난한 동네사람들인지라 모이기만 하면 알함브라성 여기 저기에 무어인들의 마법에 걸린 보물단지에 대한 집착이 유난했어요. 특히 ‘칠층탑’ 밑에 깊숙히 묻혀 있을 굉장한 보화에 대해선 모두가 철석 같이 믿고 있었구요.

 

 

그 이야기들은 그날 따라 정직한 페레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는군요.

“아무튼, 그 탑 아래 보물이 숨겨있다면, 또 만약에 그 무어 노인이 내게 남긴 그 두루마리가 그 보물을 얻게 해준다면!” 갑자기 그런 환상에 빠지자 그는 물독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어요. 그날 밤에 그는 머리 속의 어지러운 생각 때문에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뒤척였어요.

 

새벽 동이 트기가 무섭게 그는 무어인의 가게로 달려가서, 자기가 생각한 계획을 모두 들려주었어요. “당신은 아라비아 글자를 읽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같이 그 탑에 가서 그 마력의 효과를 시험해봅시다. 실패한다 해도 밑질 건 없잖아요? 성공한다면 우리가 찾아낸 보물을 똑같이 나누면 되고요.”

 

“잠깐” 그 무어상인이 말했어요. “이 글만 가지고는 충분칠 않아요. 이것은 자정에 아주 특별한 향료가 든 초로 불을 밝히고 읽어야 하는데, 내겐 그런 재료가 없소. 그 향초가 없다면 이 두루마리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오.”

 

“더 말하지 않아도 되요! 나한테 그런 향초가 있어요. 당장 가서 가져오리다.” 땅딸보 가예고는 큰 소리로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뛰어가 백단향나무 상자 안에 있던 노란 초한자루를 달랑 들고 돌아 왔어요.

 

무어 상인이 그 초를 잡고 냄새를 맡았어요. “이 양초엔 아주 진귀하고 값비싼 향료가 들어 있네요. 이게 바로 그 두루마리가 말하는 향초요. 이 향초에 불이 붙어있는 동안엔 아주 튼튼한 벽이나 아주 은밀한 동굴이라도 열려 있게 된다오. 그러나 촛불이 꺼진 다음에는, ‘동굴에 남아 있는 자여 저주 받을지라!’ 그 사람은 마법에 걸려 보물과 함께 영원히 동굴 속에 남아 있게 될 터이니.”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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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20)

 

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3)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는 즉시 이 문제는 살인과 절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판단을 내렸어요. 그리고 틀림없이 풍부한 전리품도 있을 테고…한데 이것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문제였어요.

 

범인만 체포해서는 교수대만 좋은 일이고, 그 전리품을 손에 넣는 일만이 읍장이며 재판관인 자신을 풍성하게 해주는 일이므로, 그것은 그가 앞세우는 정의의 가장 위대한 목표가 되는 셈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가장 신뢰하는 형리를 불렀어요. 옛날 히스파니아 복장에 검은 망토를 어깨위로 펄럭이며 사람들에게 겁주는 가늘고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그 형리는 곧장 운수 사나운 물지게꾼의 뒤를 쫓았어요. 얼마나 확신에 차서 빨리 달려 갔는지, 페레힐이 자기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붙잡아 페레힐과 그의 당나귀까지 정의의 집행자 앞에 끌어 왔어요.

 

읍장은 아주 무시무시하게 찡그린 얼굴을 하고 그를 내려다 보며 고함을 쳤어요.

“너 죄인은 들어라!” 하고요. 땅딸보 가예고는 무릎이 덜덜 떨렸어요.

 

“내가 네 죄를 모두 알고 있으니 네 죄를 부인해도 소용 없을 줄 알아라. 네가 저지른 죄목은 교수대가 가장 합당한 벌이지만,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고, 네 사연을 들어보겠다. 네가 네 집안에서 죽인 무어인은 이교도이며 우리 신앙의 적인 건 사실이다. 그를 살해한 것은 틀림없이 네가 순간적으로 종교적인 열성에 빠져서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관용을 베푸노니, 그에게 훔친 물건을 모두 내놓으면 그 문제를 조용히 덮어 주겠다.”

 

불상한 물지게꾼은 자신의 결백을 증언해 주시라고 그가 아는 성인의 이름을 모두 불러 보았어요. 아, 비참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네요. 응답이 있다 해도 재판관은 믿지 않았을 거지만. 물지게꾼은 죽은 무어 노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네요.

 

“그렇다면 네 말은 그 무슬림이 네가 죄를 저지를 만큼 황금이나 보석 나부랭이를 갖고 있지 않았단 얘기냐?”

“그건 제가 살아 남기를 바라는 것 만큼이나 사실입니다요. 그 노인은 제가 보살펴 준 값으로 고맙다고 조그만 백단 향나무 상자 하나를 남겨준 것 밖에는요.”

 

“백단 향나무상자라! 백단 향나무상자란 말이지! 그럼 그게 어디 있단 말이냐? 어디에 그걸 숨겨 놓았느냐?” 읍장님은 그게 보물일거라 여기며 고함을 쳤어요.

“그걸로 나리의 자비를 받게 된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그건 제 당나귀 등에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습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리한 형리가 재빠르게 달려 나가 신기한 그 백단 향나무 상자를 단숨에 찾아 들고 나타났어요. 읍장은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급히 열어보았어요.

그 안에 담겨 있으리라 기대한 보물은 보이지 않고, 아랍어로 적힌 양피지 두루마리와 초 한 자루만 댕그러니 들어 있어 모두 실망했지요.

 

죄인에게 유죄를 판결해도 얻을 게 없으면 히스파니야 어디서나 공명정대한 판결이 나기 마련이지요. 읍장님은 전리품으로 얻을 게 없음을 알게 되자, 실망스런 얼굴을 감추고 물지게꾼의 설명이나 그의 아내의 증언조차 건성으로 들어 넘겼어요. 그의 결백을 확신하고 무죄방면까지 해주었어요. 무어인의 유산인 백단향나무 상자와 그 속에 든 것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져가게 허락하고, 물지게꾼의 당나귀만은 벌금으로 빼앗었답니다.

 

불상한 가예고는 이제 어쩔 수 없이 물독을 손수 져 날라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알함브라 성내의 우물터까지 무거운 물독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가예고를 생각해보세요. 한 여름 무더위 속에 힘겹게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페레힐은 본래의 밝은 성격이 사라져 가네요.

 

“개 같은 읍장 놈! 이 불쌍한 인간의 생계를 잇는 미물 일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친구마저 훔쳐 가다니! ”하며 소리소리 질렀어요. 그가 힘든 일을 할 때 함께 해준 다정한 친구생각에 그의 착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어요.

 

“아, 내 사랑하는 당나귀야! 너도 분명 이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너도 그 물독항아리를 그리워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아, 불상한 녀석!” 하고 소리치며 돌계단에 앉아 어깨를 쉬곤 했답니다.

 

착한 일을 하고도 혹독한 벌을 받는 이런 불상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운 사나운 페레힐은 마음도 몸도 시달려서 지쳤지만, 아내의 비난을 앉아서 듣고만 있을 수 밖에요. 마침내 어느 날 저녁, 아내의 비아냥이 또 시작하자 페레힐의 참을성이 바닥났어요. 그는 마치 그의 고통을 비웃는 듯 선반 위에 반쯤 열린 채 놓여있는 백단향나무 상자를 노려보다가 그 상자를 냅다 바닥에 내 던졌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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