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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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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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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6. 아름다운 ‘빛의 도시’ 알리칸테

 
 

우리 부부의 스페인여행 후원자인 세 아들 딸 중에, 스페인에 회사일로 다녀온 적이 있는 작은아들 민동순이 우리에게, “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에서 가우디의 천재성과 신앙을 음미하신 다음에 알리칸테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꼭 타보세요”, 라고했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알리칸테를 왜 ‘빛의 도시’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은 그 기차를 타고 차창 밖을 내다보며 바로 해답을 얻게 되었다.
관광열차 창 밖으로 지중해 연안의 비취색 바다 위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빛, 알리칸테 시내에 높이 솟은 산타 바바라 성채 위의 전망대 탑 옆으로 나는 바다 위의 흰갈매기가 눈부셨고, 성채에 남아 있는 옛날 우물의 낡은 동판 뚜껑과 세월의 빠름을 알리는 화살촉 해시계마저 빛의 날개처럼 날아갈 듯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선착장에선 환상의 섬 마요르카로 떠날 손님을 기다리는 눈부신 하얀 돛배들, 햇빛과 바닷물에 젖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넓은 모래밭 길, 선창가 다르세나 식당의 멋진 반달창문으로 바다를 내다보며 맛본 왕새우 요리와 뿔뽀(문어) 복음밥 위에도 그 기막힌 맛과 더불어 은총의 햇빛이 비쳤다.
이 아름다운 빛의 도시도 옛날엔 전쟁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스페인 남동부 발렌시아 지방에 있는 이 항구도시 알리칸테는 기원전 201년 로마인이 정복했을 때, 빛의 도시라는 의미가 담긴 루센툼Lucentum이라 불렀다. 그후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알리칸트(Alicant)라 했고, 스페인 독립전쟁을 겪으면서 바다로부터 오는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던 천연요새인 산타바바라 성채는 무너지고, 지금은 알리칸테 시내를 굽어보는 광장요새가 되었다. 

 

이 성채는 입장료는 받지 않지만 터널을 한참 걸어 들어가서 타는 엘리베이터 요금은 받는다. 알리칸테를 굽어보고 싶어서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의 비싼 요금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는 없으리라.
이 성채에서 내려와 거리의 악사들이 클라리넷, 오보, 바순의 멋진 목관악기로 연주하는 이베리안 고대미술관 골목길을 지나면, 오랜 역사를 가진 산타 마리아 교회가 이슬람교회였던 푸른 모스끄지붕 건물 앞에 돌로 지은 바로크식 교회를 볼 수가 있다. 
알리칸테의 수호성인인 산타 니콜라스 대성당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게 지은 바로크식 건물이다. 우리는 알리칸테 시내를 굽어보며 우뚝 서있는 산타 니콜라스의 검은 대리석 동상과 회랑을 지나 예배실에 들어서자 마주치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하얀 성모님’의 눈 부신 모습 앞에서 묵념에 잠기기도 했다. 우리의 긴 여정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실 것을 기원하면서. 
스페인의 8대도시의 하나이며 인구 26만 명이 넘는 고색창연한 이 도시가 급성장을 하는 것은 지중해안의 온화한 기후로 여름 겨울 휴양지가 되고 있고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에서 오는 관광객의 수입이 적지 않기 때문이란다.
비행장이 시내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이미 1851년부터 마드리드와 직결된 철도가 생겼고, 이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가는 낭만열차가 관광객을 실어 나른 덕분이다. 게다가 비싸지 않은 호텔요금과 풍성한 어류로 인해 싸게 먹을 수 있는 해물요리, 올리브 오일, 포도주, 야채, 섬유수출이 이 도시의 경제발전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가 어렸을 때 맛있게 먹던 누가라는 과자도 이곳에서 나온다고 한다.

 

 

깊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한 숨돌리고 싶다 할 즈음에 우리는 큰 길가에 서 있는 실버 마그놀리아(목련나무 과에 속함)가 큰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 놓인 의자에 우리를 쉬게 해주었다.
그곳에서 시작한 길은 7킬로미터가 넘는 코스타 블랑카 해안으로 우리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에 닿기도 전에 우리는 양쪽에 네 줄로 늘어선 야자수 밑에 파도 치는 모자이크 조각 보도에 놀라고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길은 바로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산책길’이라는 엑스플라나다 산책로! 1957년에 만든 기하학적 무늬의 포장도로- 알리칸테의 빛깔인 붉은빛, 우유빛, 검정빛 작은 타일조각을 오십만 개나 파도처럼 깔아놓은 산책길이었다. 휴일엔 음악회도 열린다는데 아마 무도회도 함께 하는 것이 더 어울리리라. 

 

   우리는 바다로 나가기 전에 손에 손을 잡고 ‘왈츠에의 초대’ 리듬에 따라 그 길 위에서 파도타기하며 하늘 위의 흰구름도 바라보고, 둥둥 떠다니는 듯 걸었다. ‘아름다운 그 이스파뇨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름다운 그 이스파뇨라, 빛나는 그 얼굴에는, 사랑의 웃음 찼네.’ 젊은 시절에 부르던 그리운 그 노래는 분명 이 빛의 도시에서 지은 것이리라.
스페인의 작가인 후안 알버트의 말대로 “알리칸테를 맛보려면 엑스플라나다 산책길에 서 보라”는 말이 실감난다. 스페인의 자유로움과 풍성함, 꿈속 같은 코스타 블랑카 해안의 황금 모래밭을 향해 가는 바로 이 길 위에. 아, 이 자유와 환상의 길 위에서의 파도타기를 어느 도시에서 맛보랴. 
우리는 해질녘의 눈부신 모래밭을 뒤로 하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웹사이트 엑스페디아expedia에서 우리가 순례하려는 제3의성지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곳의 위치, 특성, 대중교통, 호텔의 품격에 이르기까지 남편 민 장로가 치밀하게 조사하고 떠난 보람이 컸다. 알리칸테에서도 코스타 블랑카에 가까운 그랜 솔호텔의 친절한 지배인 호세가 잡아 준 전망이 좋은 방에 돌아와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밖에 멀리 어두워진 밤바다와 최근에 새로 단장 하는 이 지역의 ‘트램(tram)역 뉴디자인 프로젝트’ 공사현장이 보였다. ‘박스 안쪽에 조명등을 설치하고 박스 표면에 8백 개의 둥근 구멍을 내어 밤이면 빛이 바깥으로 비쳐 나와 색다른 라이팅 구조물로 변신하는 공법’으로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이 트렘역은 2007년 9월 15일에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한다. ‘빛의 도시 알리칸테’는 이제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환한 빛의 도시가 될 모양이다. 2007.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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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포토에세이)125. 엘 에스코레알궁의 돈 까를로(Don Carlo de El Escorial)(하)

 

우리 부부는 이미 ‘죽음을 꿈꾸는 나이’를 지나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삶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헤아릴 나이가 되었다. 육신으로 매장(埋葬)해도 뼈만 남고, 화장(火葬)을 해도 뼛가루가 남는다면, 봉분을 만들어 좁은 땅에 산소자리만 넓게 차지할 것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작은 경당을 만들어 화장한 상자를 대대로 한 군데에 안치한다면 자손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리라. 
남편 민 장로의 선산(충남 홍산)도 판테온 만큼의 세월에 좋은 명당자리였으나 국토 개정으로 산소가 여러 조각이 났다. 이젠 우리 다음 대부터는 들어설 산소자리가 없다. 이런 기회에 7남매 중의 한 사람인 우리 부부가 우리 터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 해마다 추석날 한 번이라도 모여 예배도 보고 자손대대로 그곳에 작은 유골상자를 안치 한다면, 엘 에스코레알의 판테온이 부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의논 중이다.
 

우리의 영혼이 보이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로 강을 건너가, 흩어진 뼛가루를 모아 재조립해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세상의 자손들이 부모, 조부모를 기억하며 모이는 일은 가정의 화목과 전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부부가 교회당 앞에 서서 귀여운 들러리 소년들을 앞세우고 사진 찍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나, 우리는 잣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을 걸어 나왔다. 숨막힐 듯한 역사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자연의 품으로.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로 마음의 준비를 다짐 하면서.
 
영원하신 말씀이신 주님, 오직 하느님의 아들로 나신 이여
저에게 진실로 관대함이 무엇인지 가르치소서.
당신이 기뻐 받으실 만큼 당신을 섬길 수 있게
값을 헤아리지 않고 줄 수 있게
상처를 돌보지 않고 싸울 수 있게
안식을 구하지 않으며 일할 수 있게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지혜만을 구하게 가르치소서. 아멘.(윤경남 옮김)
 

<후 기>


   우리가 서울에서 출석하던 안동교회의 유경재 원로목사님이 얼마 전에 내게 책 두 권을 보내주셨다. ‘삶과 꿈’에 실린 나의 포토 에세이를 빠짐 없이 읽어 주셨는데, ‘엘 에스코리알’의 판테온에 대한 나의 의견에 대한 답이다.
유 목사님이 은퇴기념으로 쓴 ‘출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목회교육 연구원 출간 2004)를 우리도 열심히 읽으며 죽음에 대한 명상에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것으론 아무래도 나의 ‘영혼’,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알폰스 데에켄 신부님이나 최민순 신부님의 글을 좋아하는 걸 아신 듯, 라디 슬라우스 보로스 신부(김진태 옮김)의 “죽은 후에는…”과 로핑크 신부의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신교선 이석재 옮김)를 보내셨다.
 
놀랍게도 이 책들의 공통점은,  ‘천국, 지옥, 연옥은 죽음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나와 함께 존재한다’는 것.
‘죽은 후에는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인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죽음과 함께 내 세계에 속한 모든 이와 함께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
‘부활은 죽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결단의 순간 즉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순간이 부활의 순간이며, 만물의 영광된 변모를 의미한다’는 것.’
‘세상이 고독 속에 꺼져 버릴 위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겸손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사람. 허리가 굽어 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기력이 쇠약해져도 행복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세상의 운명, 하느님을 향해 길 떠난
사람의 삶이 그 사람 안에서 실현된 것이므로.’(‘죽은 후에는’ p.123)
 

유경재 목사님의 죽음관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20-34); 출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127페이지)’를 얻기 위해 본향을 향해 준비하고 떠나는 나그네와 같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계속적인 성장으로서의 죽음’을 맞음에 따라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구약시대에 율법으로 오신 하느님이 신약시대의 사랑의 하느님으로 오셨으므로, 결국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 하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랑이 있기에 능동적인 죽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을 느끼긴 했지만, 라디슬라우스님이 쓴 ‘형제애, 이웃사랑‘의 장에서 더 새롭게 느꼈다.
그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 (요한I서4:19)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아 그 사랑을 실현하는 길은, 우리가 죽은 후 내세에서 내내 함께 하게 될 이웃이란 것. 이 사랑이 신앙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 나의 유한한 희생은 애초부터 이미, 그리고 항상,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고 동시에 신앙이기도 합니다. 이 사랑만이 하느님 안에 항상 머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사순절 묵상시간에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다시 읽었다. 결국 예수님께서 그 시대에 이미 다 들려주신 얘기들이다. 몇 십 번은 더 읽었을 이 구절들을 그 동안 색안경을 멋지게 쓰고 읽었나 보다. 투명한 영성이 드려다 보이는 맑은 안경으로 바꿔 쓰고,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아야지.
지금껏 오직 ‘살아가는 용기’ 만을 생각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죽음과 대면하는 용기’ 다시 말해서 ‘수동적인 죽음이 아닌 능동적인 죽음’을 생각해 봐야겠다.
하느님께선 내가 ‘영혼의 이야기’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겪을 일들을 준비하도록 배려해서 이런 책을 받게 하신 모양이다.
사도 야고보의 신비가 파스카의 신비로 이어지는 듯 비에 젖은 산티아고의 대성당 무지개문 앞에서, 우리 순례자들을 반기던 야고보 성인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지혜만을 구하게 가르치소서!’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는 기도를 올리며,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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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5. 엘 에스코레알궁의 돈 까를로(Don Carlo de El Escorial)(상)

 

 

마드리드 북쪽 샤마르틴역에서 기차로 41킬로미터 서북을 향해 달려가다 엘 에스코리알 역에 내리면, 과다마라의 웅대한 산자락에 휩싸인 듯한 큰 궁전이 나타난다. ㄷ자로 앉은 큰 건물 앞뜰에 활짝 핀 라일락꽃이 보랏빛 향기로 우리를 반긴다. 수도원, 교회, 미술관, 도서관, 왕궁과 왕릉 판테온이 들어선 합스부르크왕조의 상징인 이 복합건물은, 스페인 왕 필리페 2세가 1557년에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봉헌한 엘 에스코레알의 산 로렌조 수도원이다. 산 로렌조의 축일인 8월10일에 전투를 시작하면서 수호성인인 산 로렌조의 도움으로 승리할 것을 믿었고, 승리한 후에 약속대로 21년에 걸쳐 이 수도원을 지었다. 필리페 2세는 마드리드 왕궁보다 이곳을 더 사랑했고 화려한 삶을 이곳에서 마감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1984년)인 판테온이 있는 이 건물엔 교회와 수도원과 왕궁을 잇는 회랑에 전투 및 성화를 그린 벽화가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만들어주고 있다.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교회당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로마 시스티나 교회당 천장에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생각나게 한다.

 

미술관에 어거스틴 성인의 초상화가 그의 어머니 산 모니카와 나란히 걸려 있다. 헨리 코레이가 쓴 소설,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깊은 감동과 눈물에 젖은 나머지 ‘옮긴이의 글’도 넣지 못한 기억이 난다. 다시 정리해서 출간할 때 그 소설에 나오는 가톨릭교회의 서열에 따른 인명과 지명을 자상하게 알려 주신 정의채 신부님께도 큰 인사의 말씀을 드리리라.

 

 

 

전에 책에서만 보았던 16세기 화가 한스 부록마이어의 ‘사도요한이 환상 속에 묵시를 받는 모습’을 이곳에서 볼 줄이야. 디미티아누스 로마황제의 박해로 바트모스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이 동굴 속에서 묵시록을 쓸 때 본 환상의 빛을 돌아다보는 모습이다. 이냐시오 성인이 만레사 동굴에서 본 하늘의 빛,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둠과 탈혼의 경지에서 본 하늘의 빛처럼, 어둠 속이기에 더 환하고 강렬한 은총의 빛이었으리라.

 

그런데 톨레도에서부터 기대한 엘 그레꼬의 그림이 단 한 점뿐인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 에스코리알궁을 지을 때, 엘 그레꼬는 프레스코 벽화를 몇 점 냈다고 한다. 그러나 필리페2세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점만 계약하게 된 것이 ‘성스러운 동맹의 승리’라는 중세기의 정치성을 띈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후에 그린 톨레도 대성당의 ‘예수그리스도의 붉은 옷을 벗기심’처럼 그리스도에의 뜨거운 신심과 자유로운 예술의 혼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미술관을 지나 반원형 천장에 그림이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섰다. 필리페 2세 자신이 수집하고 저장한 책이 4만 권을 넘는다고 한다.

 

50미터나 되는 긴 복도에 10미터 높이의 밤색 나무장식장이 양편에 서 있다. 천장의 그림들은 이탈리안 티발디가 중세 인문과학의 일곱 분야-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을 그린 프레스코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도서관이 아니라, 부드러운 이성의 향기가 물씬한데, 마름모꼴의 대리석 바닥마저 모자이크그림 같아 밟기가 송구스러웠다.

 

이곳에 예수의 성 데레사가 쓴 ‘완덕의 길’ 원본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 책장 앞에 가까이 가려니까, 들여다볼 수 없게 제한로프를 매놓았다. 이곳에 있는 ‘완덕의 길’ 원본은, 1562년에 개혁의 보금자리로 세운 성 요셉 수도원의 수녀들을 위해 쓴 것이고, 톨레도에 있는 원본은 재출간을 예상해서 ‘주의 기도’를 포함해 다시 쓴 것이라고 한다. 비록 이곳에 와서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당신의 천상 진리로 우리를 길러주시는’ 예수의 데레사의 기도를 마음속에 뇌이며 발을 옮겼다. 

 

 

 

작은 분수가 요정처럼 서 있는 이 수도원의 아름다운 바실리카에서, 지난 1992년에 베를린 필하모닉 유로피안 콘서트가 열렸다. 서곡 ‘운명의 힘’으로 시작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까를로’를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돈 까를로의 노래를 아름다운 테너로 청중을 뒤흔들었다. 돈 까를로라는 주인공은 바로 이 엘 에스코리알을 지은 필리페 2세의 아들이어서 그 열기가 상상할 만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같은 왕실의 이 비극적 실화는 5막으로 이어지는 1570년경의 스페인이 무대다. 

 

1막은 1568년의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 스페인의 왕자 돈 까를로가 프랑스의 공주 엘리사베타를 만나자마자 둘은 사랑에 빠진다. ‘Mio figlio!’로 두 사람의 아리아가 시작되지만 곧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프랑스 왕이 엘리자베타 공주를 까를로의 아버지인 필리페 2세에게 출가 시키기로 허락했다는 것. 둘은 절망의 아리아를 부른다.

 

2막에 돈 까를로는 플랑데르로 망명할 결심을 하고, 친구 로드리고에게 이젠 계비가 된 엘리자베타를 한번 만나보고 떠날 수 있게 전갈을 보낸다. 둘은 만났지만 엘리자베타는 왕비로서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돈 까를로의 애정을 거절한다. 필리페는 눈치를 채고 질투하며 혼잣말 같은 베이스로 아리아를 부른다.

 

3막은 마드리드의 왕비 궁전뜰. 돈 까를로를 짝사랑하는 에볼리 공주의 모함과 반역 음모와 폭동이 이어진다.

 

4막, 필리페2세의 거실. 왕은 수도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로 번민과 명상에 잠겨있다. 그때 종교재판관이 들어와, 돈 까를로와 로드리고의 반란음모를 알린다. 두 사람을 체포하고 투옥하는 와중에 로드리고가 돈 까를로 대신 총에 맞아 죽는다.

        

가장 인상적인 5막의 마지막 무대는 산 주스토 수도원의 달밤이다. 까를로 5세를 위해 부르는 합창이 울리고, 돈 까를로를 사랑하지만 그의 계모가 되어버린 얄궂은 운명의 엘리자베타가 돈 까를로의 조부인 까를로 5세의 봉분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 플랑드르로 망명하는 돈 까를로의 보호를 빌고 자신도 죽고 싶은 심정을 아리아로 부른다. 그때 돈 까를로가 망명길에 엘리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찾아 왔는데, 마침 부왕 필리페 2세가 들어선다. 두 사람이 밀회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돈 까를로를 그 자리에서 잡아 가두려고 하자, 무덤에서 망토를 두른 한 수도승이 나와 돈 까를로를 안전하게 도망시킨다. 왕과 종교 재판관은 그 유령이 돈 까를로를 사랑했던 할아버지인 까를로 5세의 영혼이라고 믿는다는 아리아로 막이 내린다.

 

 

 

 

오페라의 왕, 음악 애호가의 영원한 연인인 쥬세뻬 베르디가 1867년에 내놓은 이 오페라 ‘돈 까를로’는 해마다 이 슬픈 연인들을 위해 잘츠부르크 등 여러 곳에서 연주가 이어진다. 

 

돈 까를로를 위험한 지경에서 구해준 그의 조부 까를로 5세의 무덤은, 스페인 왕조의 무덤이 있는 이 엘 에스코레알 수도원 지하실의 웅장한 판테온궁 안에 자리잡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기도가 돈 까를로의 조부의 도움을 받게 만든 현장이다.

 

웅장한 황금장식으로 팔각천장을 뒤덮은 판테온은, 스페인의 자랑스러운 왕조들의 뼈가 묻힌 왕릉이며 화려할수록 더욱 허망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현재 왕의 조부인 알퐁소 13세까지의 유골이 지하실 벽에 차곡차곡 큰 서랍 속에 안치되어있다. 

필리페 2세가 말년에 마드리드에서 여러 날 걸려 타고 왔다는 붉은 꽃가마를 보면 판테온의 화려함의 극치와 더불어 죽음을 나르는 상여가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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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4. 만레사 동굴의 이냐시오 성인

 

 


만레사 동굴 앞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적극적인 명상’을 생각하며-                           
스페인, 만레사의 거친 바위 동굴 속. 성모님이 성자와 더불어 성부님께 간구하는 신비한 환상을 보고 참회와 시험 받는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는 이냐시오 성인의 모습이 작은 제단 위 돌벽에 조각되어 있다. 이 동굴은 이냐시오의 ‘영성수련’Spiritual Exercise의 산실이기도 하다.
문 닫기 전 겨우 십오 분의 시간을 남겨놓고 들어갔기 때문에, 더 깊은 묵상의 기도를 할 새가 없이 이냐시오의 초기 마음처럼 허둥대고 망설이다가 짧게 주의 기도만 드리고 나왔다. 그 대신 동굴 밖의 벽화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기념카드를 살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만레사의 까르도네르 강물이 흘러 내리는 강둑 위에 기대서서 한숨 돌리며 멀리 몽세라 산의 연푸른 산봉우리들을 바라 보았다. 검은 성모님과 아름다운 소년합창단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 몽세라에서 다시 전차를 타고 이곳 종점까지 15킬로미터, 그리고 이냐시오 성인의 동굴 위에 세운 교회를 찾아 10분정도 걸어 왔으니까 그리 먼 곳은 아니다. 
그러나 이냐시오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몽세라의 성모님 발치에서 참회의 밤샘 기도를 올린 후에 이 만레사까지 험한 산길을 걸어오긴 쉽지 않았으리라.
십자가가 서 있는 이 근방 어딘가에 앉아 그는 까르도네르 강물을 내려다 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일생을 두고 배우고 실천하게 될 영성에의 깊은 이해가 마음 속에 섬광처럼 비추어왔다고 한다. “그의 이해심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그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주어진 듯 밝아진 빛의 사건”이었다. 이어서 그는 동굴로 돌아와 계속해 뱀의 환시로 시달리면서도 ‘영성수련’의 틀을 이곳에서 완성한다.

 

후에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이 된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는, 스페인 바스크 귀족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행복한 젊은 시절을 기사도로 성장한다. 전쟁 중에 다리를 다쳐 로욜라성에 돌아와 쉬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들의 생애’를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데 이 시기에 그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누린 영예와 영웅심의 허무감에 빠져,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 받으려는 자각심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결심한다. 
이 시기는 그가 만든 영성수련 Spiritual Exercise에서 ‘영성식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522년 2월,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기 전에 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앞에 그의 단검과 군복을 벗어서 바치고 참회의 기도로 밤을 지새운다. 몽세라 산길을 오르는 중에 종교논쟁을 벌이던 회교도를 찔러 죽이고 싶었던 그가 단검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서약한다.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의 시기이다.
그는 만레사의 동굴에서 까르도네르 강을 내려다 보며 ‘영적일기’와 그의 영혼이 주님과 일치하는 경험을 ‘영성수련’에 쓴다. 1529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이냐시오는 동료들과 ‘예수회’ 수도회를 만들고, 종신 총장에 선출되어 ‘영성수련’을 주로 가르치고 설교한다. 영성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그는 선종 후 1622년에 시성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그의 영성수련의 기도 방법 중에 ‘적극적인 명상’ Active Contemplation, 즉 상상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에 마음이 끌린다. 20세기 스위스의 심층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 의사인 구스타브 융이 이 원리를 기초로 ‘적극적인 상상’Active Imagination 이라는 새로운 학설에 적극 활용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커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극적 명상이란, 무의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기는 심상mental image에 대해 철저히 의식을 집중하고 내적인 상에 주의를 기울여, 의식에 유효한 정신에너지 libido가 무의식으로 이행하여 무의식의 리비도가 증가하고 이를 자극하여 일련의 연관된 상이 내안inner eyes에 나타난다. 이때 의식적 자아가 이 무의식적 상에 적극적으로 참여 함으로서 상호간의 대면이 이루어지고 이 양자를 통합하는 개성화 과정에 이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이런 현상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 와서부터 해마다 부활절 아침기도에 촛불을 켜고 성경읽기-기도-묵상-적극적 명상을 통해 성취감을 맛본다. 꼰솔라따 수도원의 스테파노가 보내주는 ‘사순절묵상집’ 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부활 아침까지 그날의 말씀들을 묵상했다. 지금은 텍사스대학의  큰아들 민동하 장로가 완벽한 LENT 묵상집을 사순절 메시지로 매일 보내주어, 사방에 퍼져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기도한다.
 융의 적극적인 명상은 강한 대면이 아닌 경우 ‘어둠’을 겪게 되지만, 이냐시오의 명상은 참회의 단계-조명의 단계(깨달음과 환상의 신비체험)-일치의 단계에 이르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적극적인 헌신을 한다.
이 두 가지를 가능한대로 도입하여, 영성이 불타는 계절인 부활절 특히 수난절의 기도에 적극 참여시켜본다. 

 

오감(五感)으로 마신다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물 끓이는 소리 귀로 듣고, 눈으로 다구를 보며, 입으로 차 맛을,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그리고 코로 향기를 맡듯이, 부활절 새벽 뿐만 아니라 어느 때라도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해서 ‘그의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다 하고,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며 그 안에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이냐시오의 다음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 저를 택하시어 받아주소서.
저의 모든 자유로움, 모든 추억, 모든 지식 그리고 나의 모든 의지를,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부름 받은 나 자신을.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을 주신 분, 
주님, 당신께 그 모든 것을 돌려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써 주소서.
오직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총만을 내리소서.
이 몸은 그것으로 만족하나이다.  (이냐시오의 기도/윤경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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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3. 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올해엔 이화문인회 원고를 안 쓰려고 했으나, 원고를 보내기로 마음을 고친 것은 올해 원고의 주제가 ”어머니”라서다.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육친의 어머니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어머니, 사랑의 원형이며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서다.

장로교 신자인 내가 성모님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 전에 이스라엘 성지와 튀르키예, 에페소에 있는 성모님의 집을 찾고 나서부터다. 내 친어머니를 모르고 살아온 듯한 허망함이 늦게 알게 된 성모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의 성상 Image표현이 검은 피부의 성모상과 하얀 피부의 성모상으로 전승되어 왔음을 요즘 와서야 알았다. 장로교 신자인 나의 늦깎이 사랑의 대상인 성모님의 유래가 단순치 않음을, 스페인 카탈로냐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몽세라 산에서 검은성모님을 보고서야 안 것이다.

 우리 부부는 바르셀로나에 들린 다음 그곳에서 동북쪽 30km 거리에 있는 몽세라에 갔다. 몽세라 역에서 전차를 내리면 수도원까지 끌어주는 케이블카를 만난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우리는 숨을 돌릴 겸 드높은 몽세라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오, 하느님!” 하는 탄성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잡았다. 신기하게 그 산봉우리도 나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은 1235m 높이에 온갖 모양을 다하고 솟아있는 이 산봉우리들은 천사들이 내려와 톱질해 놓은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산을 “기도하는 산 Praying Mountain”이라 부르고 싶었다. 바위산 절벽에 세운 수도원에서 더 높은 곳에 이름마저 붙어있는 봉우리들—미이라 같지만 내게는 그리운 할머니 얼굴, 코끼리, 고양이, 성 살바도르 봉우리 등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세라에서 많은 전설을 안고 주후 718년에 발견된 검은성모상 원형은 산 위의 동굴경당에 보존하고, 12~13세기 사이에 흑단목으로 화려하게 조각한 검은성모의 모형은 지금 이 성당에 있다.
 
   

(위에서부터)파리 노트르담성당의 하얀 성모님/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이스라엘 성모기념성전의 푸른 성모님

 

검은성모는 구약성서의 아가서에 솔로몬이 연인으로 노래한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다. 성서학자인 마이클 두레이시는, 검은성모님이 발견된 기독교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가서Song of Songs를 즐겨 불렀다고 말한다. 이 시에 나오는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영적인 신부이며 그 여인이 “I am black but beautiful”이라고 노래한 것에 연유해서 검은성모님이 탄생한 것이라고.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black의 아람어는 sorrowful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연민하는 마리아를 통해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몽세라 성당에서는 매일 오후 1시에 미사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합창단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몽세라에 울려 퍼진다. 그래선지 평일에 천여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매일 함께 미사를 드린다.
 
 검은 흑단의 성모님은 제단 위 높은 곳에 작은 우주를 손에 쥐고 있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계셨고, 예수님의 십자고상은 제단 중앙에 높이 걸려 있다. 미사 후엔 사람들이 제단 뒤로 줄을 지어 성모님을 만져보며 지나가게 했다. 덕분에 나는 기도하면서 검은성모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찍을 수 있는 은총을 입었다.
 
 우리는 일정상 오며 가며 파리에 들렀다. 세에느 강가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이 성당의 특이한 구조와 로즈 윈도우에 매료되어 찬양대석 입구 우편에 서 있는 하얀성모님 상의 존재를 잘 몰랐다. 그러나 몽세라의 검은성모님 덕분에 이곳이 톨레도 대성당의 하얀성모님과 더불어 그분의 본산임을 알고, 여행의 마지막 길에 다시 들렸다.
 
 Notre-Dame de Paris 대성당은 13세기에 “우리의 귀부인, 성모마리아” 에게 봉헌한 교회이다. 프랑스 혁명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사연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듯한 세에느강 옆에 서 있는 현란한 교회의 모습에선 유우고의 “노트르 담의 꼽추”를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 처절한 종각도 보수 중이어서 밖에선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콰지모도가 매달려 울려 보내던 종 소리는 저녁 미사시간을 알려주었다.
 
 서녘의 해가 붉게 물드는 로즈윈도우의 여명 속에, 하얀성모님은 핑크빛으로 부드럽게 물들어 있었고, 발치엔 흰백합화가 하얀성모님의 일곱 가지 슬픔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사람의 자식을 낳은 어머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라 불러 주는 이의 도움은 꼭 들어주는 어머니의 원형임을 말해주며.
 
   신비스런 안개 속을 헤치고 다닌 듯 한달 만에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맞은 편 벽에 걸린 푸른성모님 사진이 나를 새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몇 해 전 이스라엘, 나자렛의 성모영보성전에서 내 카메라에 담아온, 푸른옷에 흰백합화 마저 푸르게 빛나는 ‘축복 받은 동산’의 성모님이었다.
 
   검은성모상과 하얀성모상에 가려 잠시 잊었던 푸른성모상의 마리아께 미안한 인사와 여행담을 해드렸다.
 
   사람들이 검은성모님과 하얀성모님께 신실한 마음 보다는 물리적인 의지를 더 지나치게 앞세우는 듯해서 송구스러웠다는 이야기도. 
영보성전에서의 성모님의 노래야 말로 ‘노래중의 노래’ Song of Songs가 아닐까요? 이 노래 하나 만으로도 나는 예수님의 어머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충분한걸요. 하면서 다시 일어나 앉아, 몽세라의 검은성모님의 원형인, 푸른성모님이 그곳에서 부르던 순명과 소명의 아름다운 노래를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불러 보았다.
 
   “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이제 아기를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루가복음서 1:2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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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포토에세이)122.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교회당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2)

 

(지난 호에 이어)
교회라기 보다 울창한 숲같이 보이는 외벽을 타고 십자가 모양으로 우뚝 솟은 큰 전나무위로 나르는 흰 비둘기떼가 ‘이 땅에 평화!’를 외치는 듯하다.  비둘기가 보여주는 평화의 상징 외에, 성 가족 교회는 포도열매로 ‘기적의 종교’를, 성가족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나팔수의 힘찬 고적으로 ‘승리’를, 로우즈윈도우로 ‘영원의 종교’를 상징하고 있다.
교회를 둘러싸고 높이 솟은 12개의 종탑 중에 여덟 개의 탑은 완성되어 유난히 반짝이는 카탈리안 햇빛을 받고 서 있다. 예수의 열두 사도를 상징하며 세운 종탑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적혀있다. “HOSANNA!”   “GLORIA!!”   “INEXCELSIS DEO!!!”라고 써있는 송가를 따라 부르다 보면 내 시선은 어느 듯 그 영광의 보좌를 향해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다.

 

가우디가 가장 높이 헌양하려고 한 곳은 교회의 중앙 돔이다. 170미터 높이에 아직 미완인 이 돔 위엔 크고 빛나는 십자가가 들리워지리라. 그 옆엔 예수님 살아계실 때처럼 ‘성모 마리아의 탑’이 가까이 서게 되며, 또 그 옆엔 ‘네 명의 복음전도자탑’이 서게 되리라.
또 하나 미완의 탑, 영광의 정면은 기도와 구속으로 얻는 은총의 과정--죄, 덕행, 죽음, 천상--을 보여주며,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를 상징하는 일곱 개의 기둥이 문 앞에 서리라고 한다. 탑 꼭대기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작품을 얹어줄 가우디의 후예 건축예술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우디는 본당의 중앙회중석을 이십 년에 걸쳐 완성했다. 크기가 모두 다른 기둥들 사이로 빛이 들어와 마치 숲 속에 앉아 있는 듯이 느끼게 하고 싶었던 그는 그 기둥들이 온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교회들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달팽이 모습을 닮은 나선형 층계로 성전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면 둥근원형으로 덮인 천장에 찬양의 노래가 하늘까지 들릴 듯 가우디 특유의 음악적 에코의 효과를 느끼게 한다. 층계를 빙 돌며 하늘을 우러러 순례자의 여정을 체험할 수도 있고. 꼭대기에 올라가 다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내 옛날 이야기가 들려 오는듯한 창문의 불빛들이 내려다 보인다.

 

한 작가의 숭고한 정신이 작품 속에 완성 되려면 주위의 많은 후원자 그리고 그 지방의 협조가 중요한 것 같다. 속죄의 뜻으로 짓는 이 교회는 헌금과 기부금으로만 건축하느라, 여러 번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찾아 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일년에 1백만 명가량의 방문객과 순례자들이 줄을 이어 헌금하는 것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교회 지하층의 박물관에서 ‘성 가족교회당’을 스틸화로 그린 성경책 꽂이를 식구들과 교회 친구들에게 주려고 많이 사왔지만, 후원 헌금을 미처 생각 못한 것이 가우디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조각한 정면 양 옆으로 난 울타리 위엔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자라는 과일-포도, 석류, 귤, 호두 열매들을 색색으로 조각해서 먹음직스럽게 얹어놓았다. 그리고 지중해에 사는 생물들-자라, 뱀, 올빼미, 다람쥐들이 조각작품이 아닌 진짜 생물처럼 주위를 돌아다니고 그 사이사이로 따뜻한 나라의 나무와 꽃들이 향기를 전하며 자연의 교향악을 울리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가 교회중심의 대지를 공원으로 마련 해준 ‘성가족교회 공원’ 푸른 잔디엔, 진달래와 장미꽃들이 화려한 무대장식처럼 이 조각작품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한낮의 찬양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밤도 낮처럼 환하게 빛내 주는 교회당의 야경이다. 낮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밤의 성가족 교회당은, 황금빛 사도의 옷을 입고 온 세상에 궁극적인 평화를 알리려고 하얀 비둘기들을 하늘 높이 날려보내고 있었다.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시편139)고, 노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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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포토에세이)122.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교회당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옛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상, 오며 가며 프랑스 파리에
 들렀으나, 스페인에서 제일 먼저 발을 내디딘 곳은 바르셀로나이다.
(이 도시는 원래 주전 1세기엔 바르키노 마을이었고, 4세기에 들어와 바르셀로나라 부르면서 인구가 2백만을 넘는 스페인 제2의 대도시가 되었다.   이 Gotico지구엔 대성당 및 의사당, 시청, 왕의 광장, 로마 시대의 성벽, 피카소의 미술관등이 예술의 거리임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에 들어서자, 어머니인 대지에서 솟아나와 아버지인 하늘을 향해 가슴 떨리는 기도를 올리는 듯한 교회 모습이 먼저 눈에 띄는데, 그것이 바로 ‘속죄하는 바르셀로나 성가족교회당’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몽 세라 수도원에 갔을 때, 기도하는 두 손을 닮은 산봉오리를 보고 놀랐는데, 그곳에서 자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는 가우디가 몽 세라에 은둔하며 성 가족 교회당을 구상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사백 년을 두고 짓는다는 이 교회로 인해 세상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만드는 이 교회 설계와 건축을 맡았던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는, 세공업으로 대를 잇는 아버지의 성 Gaudi와 어머니의 성 Cornet를 이어받아1852년 레우스에 태어나 아르누보 건축의 거장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 관절염을 오래 앓았던 그는 학창시절에 학문에 몰두하기 보다는 치료를 위해 걷기운동을 하면서 동물, 식물, 자연의 모습들을 늘 가까이 관찰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레우스에 있는 Escola Pia에서 공부할 때 기하학과 시와 그리이스어에 뛰어났다. 그의 종교적인 성품과 ‘성 가족교회당’같은 작품은 이곳에 있는 학자 신부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희생의 역사와 성모 마리아의 세계를 배운 데서 비롯한 것이란다.

 

 


가우디는 1873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사하여 주립 건축대학에서 공부할 때, 스케치와 기획에서 그의 광적인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 후로 그의 ‘천재성’과 ‘광기’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명성에 부수적으로 따라다닌다. 그는 중세기의 고딕양식의 예술에 영감을 받아 자연 속에서 구조의 형태를 발견한다. 또한 몽세라, 토우로우세, 피레네 산맥 등지를 찾아가 선배 건축가들과 함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연구하고 조각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무척 사랑하여 ‘성가족교회당’ 내부에 에코를 전달하는 둥근 천장을 올렸고, 교회당 외벽엔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하는 듯 수금과 비파와 나팔 같은 악기로 찬양하는 모습들을 실물처럼 빚어 놓았다.
영국 미술비평가인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교회장식은 건축의 기원”이란 신념으로 교회당 안팎의 장식과 조각작품에 마음을 쏟았다.
성스러운 가족인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에게 바친 이 성당에서, 1883년부터 설계 및 건축의 정식 감독을 맡아 43년 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 하다가 74세에 어느 날 새벽길에 전차에 치어 운명하고 만다. 그의 유해는 교황청의 배려로 그가 짓다 만 지하경당에 편안히 모셨고.
그는 짧은 인생의 덧없음을 미리 알고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남길 작품이 아니라 몇 세대 후손들과 제자들이 이어갈 ‘영원한 도성’같은 성전건축으로 기획했기에 그가 가고 없는 지금도 그 교회는 가우디의 이름으로 앞으로 백 년 이상 건축작업이 계속 되리라 한다.
성가족 교회당은 그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아주 많은 성서적 상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듯 동편을 향해 서 있는 ‘그리스도 탄생의 정면’엔,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과 하느님의 어린양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생명과 기쁨을 상징하는 이곳에 성 가족의 생애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인이 걸어 들어가야 할 세 개의 문-‘믿음의문’, ‘희망의문’, ‘사랑의문’ 이 활짝 열려 있고, 서편 정면엔 ‘그리스도의 수난’이 아무런 장식도 없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 서 있다. 그 앞에 앙상한 가시나무가 예수님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십자가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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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포토에세이)121. 알함브라궁의 영혼의 산책?Spiritual Walk in the Palace Alhambra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 위엔 흰 눈이 그대로 있는데, 사월의 훈풍에 라일락 향기가 이역에서 찾아 온 우리부부에게 다정하게 스며든다. 참 멀리도 찾아왔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 치고는 많은 시간을 이곳에 나누고 있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며 알함브라궁은 붉은 성채를 의미한다.  이 성을 붉은 에머랄드 성이라고도 하는데, 그곳에 가보면 알게 된다. 낮에는 올리브나무와 전나무, 아이비 덩굴로 덮인 에머랄드 빛 성채가 밤이면 붉은 횃불같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므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후보에 든 스페인 땅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성. 그나마 호텔에서 예약해주지 않았다면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다.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는 3,300명, 오후엔 2,100명, 저녁엔400명만 입장시키기 때문이다.

 1492년, 기독교국토회복운동의 기치를 든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왕과 이사벨라 여왕부부가 알함브라성에 무저항으로 입성했고, 성채 입구엔 그들의 손자인 카를로스5세가 지은 궁전이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마치 비싸게 주고 산 불후의 명작 그림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덧칠해 놓은 듯 어울리지 않았다.

기독교문화에 젖어 살아 온 우리에게 이 알함브라궁은 완전히 이질적인 무슬림 문화의 환타지에 빠지게 했다. 보라빛 등꽃이 신부의 화관처럼 늘어진 무지개문을 들어서자 맑은 하늘에 슬프게 울려오는 타레가의 클래식 기타가 내 마음의 줄을 타고 들려온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 받고 이곳에 와서 달밤에 작곡하여 부른 <알함브라 궁의 추억>은 이 궁의 뜰을 거니는 동안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고.

가슴이 떨리게 하는 타레가의 트레몰로 조(비브라토, 진동음조)는, 이 궁의 여름 별장인 헤네랄리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네바다 산꼭대기에서 지하수로를 따라 흘러 온 물들이 양편에서 열두 줄기의 분수로 내뿜는 대리석 십자가길 위에 넘쳐 흐르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 가에 핀 온갖 꽃들과 새들의 교향악에 타레가의 기타 음율이 춤추는 듯 흐느적거린다. 

트레몰로, 샘물의 트레몰레!

 

 

     

이 영원한 샘물은 또한 이 나라의 성녀 데레사가 쓴 <영혼의 성>에 나오는 제일궁실 같다. 그 궁실에서 올리는 묵상의 적극적인 기도의 고뇌가 마치 수원지의 물을 이 먼 곳에 있는 물통에까지 끌어들여야만 하는 힘겨움에 비길 만 하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물가에 피고 지는 꽃과 풀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트레몰로, 허무한 꽃들의 트레몰레!

 

그 고통을 이기고 수동적인 관상의 세계를 보이는 곳은 바로 ‘정의의 방’을 지나자 활짝 트인 긴 연못이다. 사막 시절에 그리던 오아시스를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들여 만든 것으로, 직사각형의 못 둘레에 심은 낮은 키의 관목에서 이름한 ‘관목숲의 뜰’ 혹은 ‘코마레 궁전의 연못’이라고도 부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못 주위를 거닐어도, 궁전의 지붕과 야자수가 비취는 데도, 이슬람 전통건축으로 대칭과 비례를 정확하게 측정해 지은 건물이 다 들여다 보여도 수면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오아시스에 물을 끌어들인 환희와 자만을 감추고 관상의 기도 속에 잠겨 있는 듯.

트레몰로, 기도의 트레몰레!

 

 

 

성녀 데레사가 겪은 ‘영혼의 어둔 밤’은 열두 지파의 상징인 열두 사자의 입에서 각 궁실로 이어진 수로에 물을 대주는 사자궁의 분수를 지나 방마다 분수가 설치된 방들을 돌아볼 때이다. 한 귀퉁이가 헐겁게 흘러 내릴 듯 버티고 있는 아벤세라헤 궁실의 둥근 천장엔, 팔각형의 별을 두 개 겹쳐 놓은 벌집모양의 원형천장. 우주와 같은 둥근 천장에 박힌 보석들이 어둔 밤의 희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트레몰로, 별들의 트레몰레!

  

 

 

성벽 종탑 위엔 기마병 조각상의 풍향계가 적이 오면 방향을 알려주었다는 곳, 그 외에도 한없이 많은 전설을 다음에 풀어보기로 하고 알함브라궁을 나섰다. 너무 아쉽지만 저녁 티켓까지 구입하기엔 너무 비싸다. 그래도 어둠 속에 서 있는 알함브라궁의 모습을 보려고 해가 저문 후, 맞은편 알바이신 마을로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  

   알함브라 궁은, 낮의 에머랄드 빛 옷을 붉은 빛으로 갈아입고 더 화려하고 처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타는 듯한 알함브라궁을 바라보며, 이 신비에 쌓인 예술작품 같은 궁성을 떠나야 했던 나시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의 마지막 한숨’이 들려온다. 보압딜은 왜 불타는 듯한 밤 사진처럼 이 궁성을 불태워 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까?  

하기야 불꽃 속에 사라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붉은 영혼의 성을 산책할 수 있었고, 너무나 맑아 달빛처럼 슬픈 타레가의 기타 소리도 듣긴 했지만. 

영혼의 트레몰레, 영혼의 성 알함브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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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0. 기도하는 산 PRAYING MOUNTAIN, 몽 세라에 오르며

 

 지난 봄에 미국을 방문 중인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다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한국교회를 나가면서 성경공부반에 참여한 얘기를 들었다. 한국보다 앞서야 할 미국에서의 성경공부는 10년 전쯤의 교재로 틀에 박힌 이론과 목회스타일이더란 것이었다.
이곳 토론토의 종교계 칼럼에도, 북미에서 만든 성경공부 교재를 한국에서 재편성한 것을 역수입해 가르치고 있는 한심한 현상에 대해 쓴 것을 보았다.

크고 작은 이민교회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얼마 후 나는 남편 민석홍 장로와 함께 스페인을 두루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바르셀로나를 들른 다음 그곳에서 30km 거리에 있는 몽세라Montserrat의 베네딕트 수도원을 먼저 찾아갔다.

몽세라역에서 전차를 내리면 수도원까지 끌어주는 케이블카를 만나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우리는 숨을 돌릴 겸 드높은 몽세라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오, 하느님!” 하는 탄성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잡았다. 신기하게 그 산봉우리도 나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어떤 시인은 1천 미터가 넘는 이 산꼭대기에 여러 가지 자태로 솟아 있는 이 산봉우리들은 천사가 내려와 톱질해 놓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산을 “기도하는 산” Praying Mountain이라 부르고 싶었다. 바위산 절벽에 세운 수도원에서 더 높은 곳에 이름마저 붙어 있는 봉우리들-- 엄마봉우리, 코끼리, 고양이, 성 살바도르 봉우리들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세라에서 많은 전설을 안고 주후 718년에 발견된 ‘검은 성모상’ 원형은 산 위의 동굴경당 Holy Grotto에, 그후 12~13세기 사이에 흑단목으로 화려하게 조각한 검은 성모님의 모형은 지금 이곳 성당에 카탈로니아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검은성모님은 구약성서의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연인으로 노래한 슐람여인의 모습이다. 성서학자인 Michael Duracy는, 검은성모님이 등장하던 기독교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가서Song of Songs를 즐겨 불렀다고 말한다. 이 시에 나오는 아름다운 슐람여인은 솔로몬의 영적인 신부이며, 그 여인이 “I am black but beautiful”이라고 노래한 것이 검은성모님의 유래라고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사랑의 원형이며 순명과 소명을 받아들인 지혜의 어머니를 늦게 나마 뜨겁게 만난 것은, 몇 해 전에 성지 이스라엘의 성모영보성전과 터키, 에베소에서 성모님의 집을 찾았을 때부터이다.  
천주교에서는 성모님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스럽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장로교에서는 너무 제쳐 놓는 분위기여서 절름발이 신앙생활을 해온 듯한 느낌이었다. 

 

몽세라 성당엔 매일 오후 1시에 미사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합창단의 청아한 산울림 같은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선지 평일에 천여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매일 함께 미사를 올린다.
신비스럽게 빛나는 검은 흑단의 성모님은 제단 위 높은 곳에 작은 우주를 손에 쥐고 있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계셨고, 예수님의 십자고상은 제단 중앙에 있었다. 미사 후엔 사람들이 제단 뒤로 줄을 지어 성모님을 만져보며 지나가게 했다. 덕분에 나도 성모님의 아름다운 영보송을 외우며 검은성모님의 프로필을 가까이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은총을 입었다.

“기도하는 산” 속에 하룻밤이라도 머물며 내 영혼에 그 산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Manresa에 들를 시간이 없어질세라 급히 산을 내려왔다.

돌아보고 또 올려다보며 마음에 짚이는 것은, 기도 만이 우리들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살 길이란 것이었다. 몽세라의 산봉우리들처럼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는 양떼들이 속세에서 천방지축 헤매지도 않을 것이며, 오직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성이 깃든 교회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기독교회의 부패는 처참한 암흑기를 겪었으며 동시에 많은 영성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영성운동의 기치를 들었던 사람 중 하나인 로욜라의 이냐시우스는 이 몽세라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떠나기 전날 밤 1522년 3월25일에 성모님상 앞에서 참회의 지샘을 했다. 그리고 그가 차고 있던 검을 성모님 앞에 바치고, 앞으로는 국가의 군대가 아닌 십자가의 군사가 될 것을 서약했다. 그는 Manresa로 돌아가 성모님으로부터 은사를 받는 환시를 본 다음, 예수회를 창설했다. 그가 만든 ‘영성수련’ Spiritual Exercise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훈련의 기틀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이냐시우스 수도원이 있는 곳엔 이 영성수련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토론토의 성 이냐시우스 수도원에서도 4주간의 이 훈련을 받는 목사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점점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많은 개신교회들이 앞으로 닥칠 마귀의 암흑기에 대비하려면 이러한 ‘영성수련’을 쌓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나아가 내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 관상 기도의 경지를 맛보게 될 때, 양떼를 인도하는 섭리와 방법은 절로 해결되리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예배와 하느님 사랑, 그리고 이웃사랑을 펴나가는 새로운 길이 열릴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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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포토에세이)자연의모자이크를따라서-119. 공평한 간칭(桿稱)과 명칭(皿稱)


 
   
                                                           

요즘 나의 남편은 개역성경에 나오는 기묘한 한문 수색전에 골몰해 있다. 그이는 시력이 약해지신 94세 어머님을 위해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시편과 복음서 중에서 붓글씨로 성경구절을 써 드리기 시작하다가, 어려운 한자들을 수 없이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몇 번씩이나 읽었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구절들이 실제로는 어려운 라틴어나 다름 없는 한문자에 가려서 뜻도 모른 채 덧없는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 중에도 생전 처음 보는 재미있는 한자를 만났다. 그것은 잠언서 16장11절의 말씀이었다.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표준새번역엔, “정확한 저울과 천평은 주님의 것이며,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고, 알기 쉽게 번역되어 있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자인 정하은 박사는 인간의 고통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로 물리적인 아픔(Pain), 두 번째로 감정적인 슬픔(Sorrow), 세 번째로 재난과 전쟁에서 오는 비극(Tragedy), 그리고 운명의 장난 같은 아이러니(Irony) 단계로 고통이 심화하는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승화된 고통이 네 번째의 아이러니인데, 이것이 바로 욥의 고통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닉한 고통을 본다. 그는 좌옹 윤치호 선생님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현행 애국가를 작사한 분이며, 한국남감리교회를 이 땅에 들어오게 한 분이며, 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육과 선교에 백년대계를 세우고 실천한 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 숨겨진 한문자처럼 그분의 뜻을 헤아리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그를 친일파로만 몰고 있다.
나는 올해 들어서야 창립한 좌옹 윤치호문화사업회의 한 임원으로서, 교회사적으로나 우리 역사의 인물로 보나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그의 존재를 밝혀내는 일을 작은 일이나마 거들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문제다. 이제야 깨달은 것은 묵묵히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간하는<윤치호의 생애와 사상>(윤치호 선집2)를 비롯해 60 여 년을 두고 쓴 그의 세기적인 영문일기 12권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는 날은, 예수님과 욥처럼 아이러닉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좌옹 선생을 새롭게 제대로 평가하는 기회가 되리라 굳게 믿는다.
주님은 언젠가 “정확한 저울, 천평(桿稱)과 명칭 (皿稱)으로” 역사를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지는데, 영어의 Scale과 Balance가 그것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저울은 모두 밸런싱 기능을 가진 것들인데, 쉽게 말하자면 긴 막대기 중앙에 끈을 매고 양쪽의 밸런스를 맞추는 원리이다.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맞저울인데, 막대기 양쪽 끝에 접시를 하나씩 매달아 이 쪽에는 물건을 올리고 저 쪽에는 추를 올려서 표준 추 무게로 물건의 무게를 재는 방식이다. 이 맞저울을 천평칭(天平秤)이라 하고 줄여서 천칭(天秤)이라고도 하는데, 천장에 끈을 매달고 막대가 평평해지는 것을 보고 무게를 재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저울 ‘펠레쓰’는 ‘평평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천칭의 이러한 기능을 한마디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천칭은 BC 5000년 무렵의 이집트 분묘에서 출토된 적이 있고, BC 3000년 무렵의 파피루스 그림에서도 저승 사자가 영혼(심장)의 무게를 다는 모습으로 나온다.
천칭(천평칭, 맞저울)은 매우 정확하게 무게를 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분동(分銅)이라는 무거운 추(錘)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고 또한 짐과 추를 함께 들거나 천장에 매달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개량된 것이 상명천칭(上皿天秤) 즉 윗접시 천칭이다. 이것은 막대기 중앙에다 지렛대를 받쳐 저울을 땅에 놓고도 무게를 달 수 있도록 개량된 것이다. 
간단하게 명칭(皿秤, 그릇명-저울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저울은 공정한 접시나 추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속이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천칭은 더욱 발전하여 간칭(杆秤) 즉 대저울 또는 막대저울이라 불리는 ‘로마저울’을 탄생시켰다. 저울대 1개와 추 1개만 있으면 웬만한 물건을 다 잴 수 있는 편리한 저울이다. 막대기 한쪽 끝에 물건을 걸 수 있는 갈고리나 접시가 달려 있고, 그 부근에 저울을 드는 끈이 달려 있다. 그리고 끈 반대편의 긴 막대기에는 눈금이 그려져 있으므로 추를 움직여 수평을 이루는 지점의 무게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공의 또는 심판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저울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한 곳들이 나온다. 바벨론 벨사살 왕은 저울에 달려서 모자랐고(단 5:27, 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 계시록 6장 5절에는 “검은 말을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라고도 나온다.
성경에는 저울이라는 단어가 매우 어려운 중국 단어들로 번역되어 있고, 번역 내용도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잠언 16장 11절의 ‘펠레쓰’와 ‘모젠’이 여러 가지 다른 말들로 번역되었고, 동일한 단어가 이사야 40장 12절에서는 서로 뒤바꾸어 번역되기도 하였다.

인간이나 저울이나 정확하게 자기 자신의 무게를 알 수 있는 것은 간칭이나 명칭이나 내 마음의 저울눈과 일치할 때일 것이다. 그리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우선 순위를 하나님과 그 말씀과 하나님 나라에 두고, 영혼이 그 은혜의 말씀에 충만해지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으로, 거룩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저울추)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라.(잠언 16:11)
누가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이사야 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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