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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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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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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4)-마드리드의 돈키호테

 

스페인의 수도이며 예술의 도시인 마드리드!

유럽 도시들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나그네에겐 숨이 차다. 1561년에 스페인 왕 필립2세가 역사박물관 같이 진귀한 도시 톨레도에서 이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겼다. 예술뿐만 아니라 음식문화, 밤의 세계, 수많은 호텔과 교통(지하철, 기차, 비행편 등) 인프라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마드리드의 봄은 겨울의 찬바람보다는 덜 하지만, 과다마라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모자를 날려버릴 만큼 불어대므로 모자끈을 꼭 조이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햇빛만큼은 우리나라의 따스한 오후를 생각나게 한다.

 마드리드에서의 제일 중요한 스케줄은 세계에서 제일임을 자랑하는 미술관을 순례하는 일. 고야의 동상 발치에 고야의 ‘The Naked Maja’ 조각상이 누워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중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수천 점 이상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고야의 작품이 제일 많은데, 사람들은 정치성향의 그림 ‘1808년 5월3일’이나 어두운 시대의 그림들보다는 궁정화가 당시 그린 선정적인 두 ‘마야’(‘옷입은 마야’와 ‘벗은 마야’) 그림 앞에 더 몰려 있었다. 그의 ‘검은 그림들’은 외면하고 싶은 내 그림자 같아서 발길이 가지 않는 듯했다.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충격적인 유명한 ‘게르니카’와 혼을 분리시키는 듯한 여인화들, 그리고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보았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보슈 등의 궁정화가들을 포함해서 이들이 모두 스페인의 화가라는 것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이 ‘잠자지 않는 도시’에선 플라멩고를 비롯한 음악회와 연극 프로그램 때문에 저녁식사는 어디가나 밤 여덟시가 지나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이스파뇨라 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곳에 바로 스페인의 한 걸작품이 서 있었다.

 바로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동상과, 그 밑에 그의 대표작이며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돈키호테’와 그의 충실한 종자 ‘산초’가 심통난 얼굴로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 그 옆엔 돈키호테가 짝사랑을 바친 연약한 여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광장 분수 앞에 서 있었다. 노란 튤립꽃들이 분수의 둘레를 따라 피어 있었고.

 올해 내내 마드리드나 세르반테스의 고향 알칼라와 다른 여러 도시에선 그의 대표적인 소설,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떠들썩하다. 마드리드시는 세르반테스(1547~1616)가 마드리드의 ‘예술인지구’인 전형적인 보헤미안거리에서, 그리고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프라도, 소피아, 티센) 근방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지냈고, 마드리드에서 ‘돈키호테’가 처음 출간됐으며, 그곳에서 힘겹던 생애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한날에 마친 것을 내세우며 홍보가 대단하다.

‘재치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챠’라는 제목의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돈키호테를 생각하면 그 시대의 어두운 사회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 당시 작가들은 성직자의 횡포와 종교개혁, 반종교개혁파운동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종교경찰과 교회법연구원의 눈을 피해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전통적인 산문과 설화형식으로 재미있는 모험소설같이 보이지만, 그 이면엔 17세기 초의 유럽의 향락주의를 비꼬아서 쓴 저의를 엿보게 한다.

 

 

‘돈키호테’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라만차 들판의 풍차를 향해 돌진한 돈키호테와 삐쩍 말라 불쌍해 보이는 그의 말 로시난테의 이야기다. 불의를 바로잡고, 불행한 이웃사람을 구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집념으로 두 번째 모험을 떠난 그는, 라만차 들판에서 30여 개의 풍차를 발견하고 악한 거인들로 착각한다.

“악의 씨를 뽑아 버리는 것이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는 일”이라면서, 산초가 말리는데도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에게 자신을 맡기고 위기에서 도와달라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전속력으로 공격한다. 그때 바람이 세차게 불며 풍차가 돌기 시작하자 창은 산산조각 부러지고, 우리의 용감한 기사도 휩쓸려 공중에 떠올랐다가 들판에 내동댕이쳐진다.

 온갖 기절초풍할 이야기를 남기며 돌아다닌 떠돌이 기사 돈키호테는 결국 그의 죽음만이 해결책이 되었고(죽은 자는 말썽이 없으므로) 현실적인 산초는 오히려 영웅으로 귀향하여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긴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꿈과 현실, 미치광이에 가까운 이상과 그 그림자를 상징한다. 

 이스파뇨라 광장의 튤립꽃들이 지는 햇빛에 오렌지색으로 물들 무렵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동상들을 올려다보았다. 돈키호테만큼이나 곡절이 많은 생애를 보낸 작가, 세르반테스의 얼굴은 놀랍게도 ‘비극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꼭 닮아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궁의 영혼의 산책’을 한 다음, 다시 마드리드로 오는 기차를 탔다. 기차가 라만차를 지날 때, 혹시나 그 평야를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말발굽소리가 들릴까 하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헌데 뜻밖에도 언덕 위에 세 개의 풍차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던진 창 대신에 내 카메라를 휘둘러 재빨리 언덕 위의 풍차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때 하늘엔 돈키호테가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리는 듯한 흰 구름마저 떠 있었고. 

 아마디스 데 다울라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게 보내는 시구의 한 구절로, “금발의 아폴로가 하늘 높이/ 말을 재촉하여 달려가는 동안에/ 필경 영생을 얻으리라”고 찬양한 것처럼 의로운 기사 돈키호테는 지금쯤 저 구름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으리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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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5
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3)

 

(지난 호에 이어)
 대성당은 주일이 아닌데도 정오 미사에 신자와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미사 시간 내내 옛 그레고리안 찬가의 파이프오라간 소리가 성인의 유해가 누워있는 은빛 납골당으로부터 온 회중 사이로, 향로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함께 예배당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높은 천장 돔에 매달려 흔들리는 보타후메이로 향로의 밑둥마저 야고보 성인의 상징인 해돋이 조가비를 닮았다.
 

 

미사가 끝난 후,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줄을 지어 사도 야고보 성인의 등 뒤에 조각해놓은 해돋이 조가비에 손을 얹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정다운 야고보 성인의 등에 키스를 하고 기도함으로써 순례자의 마지막 아멘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미사가 끝난 텅 빈 예배석에 다시 앉아 큰 눈망울로 내려다보는 야고보 성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살 배기 뚱뚱이 첫 손녀인 나를 늘 업어주시던 나의 할아버지 얼굴과 너무나 똑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 할아버지는 첫 손녀인 나를 예쁘다고 칭찬해준 친구에겐 우유를 담뿍 넣은 홍차를 대접하셨다. 그러나 ‘아기가 예쁘긴 한데 목이 좀 바트군요’라고 말한 눈치 없는 손님에겐 화가 나셔서 홍차도 냉수도 안 주셨단다. 새삼 그리운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야고보 할아버지, 샬롬!’인사드리고 나왔다.

 

 

우리 부부는 숙소인 히스토리아 콤포스텔라 호텔로 돌아와 보로스 신부님이 쓴 ‘죽은 후에는’의 끝머리를 묵상했다. “세상이 고독 속에 꺼져 버릴 위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겸손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사람. 허리가 굽어 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기력이 쇠약해져도 행복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세상의 운명, 하느님을 향해 길 떠난 사람의 삶이 그 사람 안에서 실현된 것이므로.”
 이제 나도 아까워서 다 나누어주지 못한 내 꿈 속의 ‘유리병 산호’를 마저 꺼내어, 영원한 길벗이 될 이웃들과 더불어 기쁘게 나누어 가질 때가 온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산티아고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제3의 성지인 스페인의 서북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의 길이란 뜻이다. 이 순례의 길은 황량한 들판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걸어가는 지역의 문제 때문에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마을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거나 포르투갈에서 여러 사람이 합류하여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마을 주변에 있는 성당과 수도원과 성인들의 유물 등을 만나면서 믿음에의 열정을 되찾는다. 금욕과 인내와 고행이 따르는 이 순례는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에 동참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속죄와 변화의 과정, 말하자면 자기실현의 과정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1천km 내지 2천km를 달려와 순례자의 사무실에서 무사히 도착한 인사와 인정서를 받은 후 매일 정오에 열리는 미사에 참석한다. 힘든 순례 길에서 병들거나 이 성지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는 병약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호스피스(병원과 동의어)가 있었지만, 이용하는 이가 줄어들어 지금은 화려한 호텔과 국제회의장으로 바뀌었다.
 한 별빛이 이베리아 들판의 동굴을 비추어 그곳에서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큰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사도 야고보의 이적을 믿고 묵상하는 고난의 긴 여정을 순례하는 사람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온 세상이 부익부 빈익빈의 경지에 이르자 그 그늘에 숨어있는 영성에 대한 갈망의 노출인지도 모른다.
 카미노 산티아고는 성서의 구절에서 딴 ‘일년이 천년 같은 순례’라고 그 긴 여정을 표현해왔으나, 요즘엔 ‘40일의 순례’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30여 일이 걸리는 여정 외에 떠나기 전의 준비과정과 돌아온 다음의 정리과정을 포함해서다. 그보다 40일이라는 성서적인 용어는, 예수의 40일 광야기도를 떠올리고, 성서적인 명상과 관련한 암시적인 숫자, 마침내 이루는 성공의 숫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현대 작가 코엘료가 1986년에 옛날 에스파냐인의 순례길인 이 카미노 산티아고를 따라 걸으며 힘겹게 체험하고 쓴 ‘순례여행’과 그 후에 쓴 ‘연금술사’ 이야기는 굉장한 인기로 번역출간 되고 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이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를 따다 붙인 건 좀 너무했지만, 그 연금술사도 사도 산티아고처럼 변용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묘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영혼의 연금술’이라는 평을 듣는다.
 3세기의 영지주의자이며 연금술사였던 초시모스는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한 연금술의 과정을 가톨릭교회 전례의 하나인 성체변화에 견주어 말했다. 예수의 성체의식에서 받는 떡과 포도주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환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현상으로 변화시키는 색다른 연금술사였다.

 

 

우리 부부는 토론토에서부터 비행기와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도보순례가 아닌 현대적인 순례를 했지만 우리도 여행 전후를 포함하면 ‘40일의 순례’를 한 셈이다. 파리와 레옹의 한적한 길목에서, 빠삐뇽의 옛날 성채 뒷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의길’이라고 쓴 이정표를 보는 순간, 우리도 순례의 길에 참여하는 감동의 순간을 맛보곤 했다.
 우리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11세기에 마태오 장인의 손에 다듬어진 성인 야고보라는 ‘모퉁이 돌’로 고이기 시작한 이 거대한 성당은 조각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정문에 있는 영광의 문엔 산티아고가 그를 둘러 서있는 모든 사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앉아 있고, 북쪽 시계탑 아래 반원형의 문 기둥 위엔 산티아고가 긴 지팡이를 짚고 나의 할아버지 같이 인자한 웃음을 띠고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머물던 나흘 동안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 산티아고의 별이 머문 언덕을 지나, 사도의 도시, 대학의 거리를 순례했다. 셋째 날 해가 질 무렵, 메뉴판이 요란한 라피도 식당에 들어갔다. 밤 10시30분 대성당에 불이 켜진다는 친절한 정보를 준 덕분에, 갈릴리바닷가 베드로 물고기보다 더 비싼 ‘산티아고의 해돋이조개찜’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주인은 우리가 먹고 난 빈조가비를 깨끗이 씻더니 새 조가비 두 개를 더 얹어 준다. 나는 ‘와-그라시아스!’하고 탄성을 올리며 선물을 받았다.

 

 

10시 반이 넘어 우리는 다시 밤의 순례를 계속했다. 대성당 주변이 갑자기 불을 당긴듯 밝아졌다. 여전히 온 누리는 신비스런 비와 안개에 젖어 산티아고 대성당은 야고보의 영적인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지하층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은 마치 사도 야고보의 시신이 있는 자리를 인도해준 금빛 별이 보내주는 듯 눈부셨고.
 다음날 산티아고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 단비를 맞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Alameda 공원에 걸어가 산티아고 대성당을 돌아다보았다. 산티아고가 우리의 떠남을 서운해하는 듯 더욱 회색빛 사색에 잠겨있었고, 빨간 철쭉꽃 같은 올린다 꽃잎이 간밤의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수북하다. 솔로몬 시대의 현인들이 그들의 성공을 기원했던 꽃피는 협죽도 나무가 산티아고 성당 동구 밖에 서서, 산티아고를 묵상하는 이들이 피곤치 않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진리를 실천하도록 기원해주는 듯 했다.

 

 

산티아고 기차역엔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성거리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이며 영원한 나그네 길을 함께 가려고 기차를 기다린다는 듯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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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2)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신비

 

구스타브 융이 쓴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개념’을 며칠째 읽다가 꿈을 꾸었다.
…동치미 담는 하얗고 투명한 유리병이 두 개 상 위에 놓여있다. 크고 둥근 유리병 속엔 빨간 꽃이 한 송이, 가늘고 긴 다른 유리병 속엔 같은 빨간 꽃이 가득 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그 꽃들은 바다에 피는 산호였다. 누군가 내게 그 산호를 좀 달라고 한다. 긴 병에 가득한 산호는 아까워서 못 주고 큰 병에 한 송이뿐인 산호를 내주었다. 그런데 그 붉은 산호를 꺼내어 그 사람의 손에 건네주는 순간 그 산호는 하얀 산호로 변해버렸다…
 분명히 하얀 산호가 붉은 산호보다 값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나누는 행위가 승화되는 현상일까? 아까워서 못 준 빈약한 긴 병의 산호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질료와 접촉하지 않는 한 그대로 초라하게 시들어 버린다는 것일까? 빈약한 긴 병 속의 산호에도 어떤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보자.
 꿈을 꾸고 반나절이 지나자 그 바다의 산호는 ‘어둔 밤을 항해한 요나’와 큰 야고보 성인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스페인어)를 연상케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맡은 일이 힘들어, 요나처럼 하느님의 눈을 피해 고래 뱃속에 틀어박혀 지옥같은 어둠 속이라도 그 속에 죽치고 있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결국 요나처럼 은총의 해안에 기어나오게 되었지만.
 요나가 그를 삼킨 바다의 고래 뱃속에서 어두운 밤 사흘을 지낸 후 다시 뭍으로 살아나오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내고(마태복음 12:40)’ 부활하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몇 해 전에 제3의 성지로 삼고 떠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주인공인 큰 야고보 성인도 갈릴리 바다에서 스페인의 갈리시아 근방 해안으로 어두운 밤의 항해를 했다. 야고보는 제베대와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큰 아들로,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무렵에 예수의 부름을 받는다.
 요한과 야고보 두 형제는 정열적인 기질이라 매사에 행동파다. 예수님에게, 하늘 나라에 가면 그들이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들을 대접하지 않는 불친절한 사마리아인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크게 야단치시고, 두 형제를 ‘천둥의 아들 보아네르게스’라고 별명을 붙여주신다.
 예수의 산 증인들인 사도들 가운데 묵시록을 기록한 요한과 야고보는 베드로와 더불어 특별한 영성의 은총을 입은 제자들로 키우신 것 같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신 장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모습, 특히 다볼 산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며 성령으로 변화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걸 보면.
 큰 야고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증인으로 성령 강림 이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전도여행을 하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에게 체포되어 주후44년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을 받아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된다(사도행전12:1).
 야고보의 제자들이 에스파냐에서 전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사도 야고보의 한을 풀어주려 했음인지, 그의 시신을 돌널에 담아 에스파냐로 운구하려고 해안에 이르자, 천사들이 옹위한 배 한 척이 나타나 그곳에 싣자 배는 지중해를 빠져나가 대서양을 북상하여 그 당시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이리아 프라비아에 닿았다고 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일화는, 밤에서 밤으로의 어두운 밤의 항해 중 요나가 탔던 배처럼 풍랑에 배가 뒤집혔는데, 그 후 다시 떠오른 사도 야고보의 시신은 해돋이 조가비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 산티아고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고보 성인의 상징의 하나인 해돋이 조가비의 내력이다. 이 조가비는 순례자들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로 ‘순례자의 길’마다 걸려있다. 큰 해돋이조개 그림이 걸려있는 순례자의 사무실에선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순례한 일을 감사하며 인증서에 큰 도장을 찍어준다.
 9세기에 들어와 수도사 페라요가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무렵 844년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는 기독교 재정복의 클라비로 전투에서, 흰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나타난 사도 야고보가 이슬람군을 무찔러버린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이 온 유럽에 전해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그에 대한 신심이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로마에 이어 제3의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
 이때 사도 야고보고는 또 하나의 별명을 얻는다. 예수님이 지어주신 천둥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마타모로스(무어인을 정복한 자)’. 클라비로 전투에서 국민들을 단합시킨 영적인 원동력이 된 그는 성인의 칭호를 받고 스페인·과테말라·니카라과의 수호성인이 된다. 중세기 때만은 못 해도, 여전히 야고보 성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에서 우러난 순례의 행렬이 지금도 산티아고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사도 야고보의 상징으로는 순례자의 이정표이며 순례 중에 모자로 쓰는 해돋이 조가비, 십자가를 새긴 나무 지팡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때를 알려주던 수도원의 종, 몽 주아(나의 기쁨)라는 이정표 돌무더기,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상징은 별이다.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의 한 지명이 ‘야고보 성인의 별이 머문 벌판’이라는 스페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부르는 것은, 사도 야고보에게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100년경 당시 스페인 국왕 알폰소는 그 영묘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대성당을 지었다. 요나가 고래의 입에서 나오고, 밤의 항해의 끝은 ‘네모난 영혼의 방(교회 의미)’의 ‘모퉁이 돌’이 됨을 보여준다는 15세기의 그림은(융 기본 저작집6), 사도 야고보가 밤의 항해 끝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퉁이돌이 되는 것과 부합이 된다.
 광야같던 험한 들판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생겨나고, 황량한 벌판은 활기찬 도시로 탈바꿈한다. 이 도시의 한복판 언덕배기에 우뚝 솟아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회색빛 화강암 대리석이 햇빛에 잠깐 눈이 부시다가도, 빗줄기에 씻겨 연보라색이 된다. 대성당과 마을은 안개와 비에 젖어 밤에도 신비스럽게 빛난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비롯해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사도의 흔적으로 인해 이 마을은 ‘사도의 도시’라고 부르며, 때도 없이 오는 비로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우산의 도시’, 그리고 이 도시인구(약 10만 명)의 반가량이 산티아고종합대학(USC) 학생이어서 어딜 가나 대학생들을 만난다고 ‘대학의 도시’ 라고도 부른다. 여기에,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붉은 소나무 마을’, 어딜 가나 마실 수 있는 ‘붉은 와인의 나라’도 덧붙일 수 있겠다. 이 ‘사도 야고보의 도시’는 1985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대성당은 예배당과 성소, 순례자를 위한 건물, 미술관, 호스피스 건물 등을 정교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복합건축물이다. 성당을 짓기 전 10세기부터 순례자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사도 야고보가 두루마리를 펼쳐 보이며 앉아있는 ‘영광의문’을 지나 지하경당에 내려가면,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신 금은 조각함과 사도 야고보의 시신이 묻힌 곳을 찾아준 금빛 별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대성당에서 언덕으로 빠지는 쪽문 사이로 종각 위에 조각해놓은 콤포스텔라가 더 실감나게 반짝이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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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

 

글 & 사진 유니스 윤경남

 

1. 산티아고 가는 길목, 파리의 센 강가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목표 삼아 도보순례를 하는 산티아고 카미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성지순례의 하나다. 마땅히 도보순례를 해야 하는 건데 기차, 버스, 비행기로 순례를 대신해야 했다. 우리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목에 있는 파리를 들러서 갔다.

 

 

꿈과 낭만의 도시로 생각하며 돌아 본 파리는 생각처럼 화려하진 않았다. 일곱 개의 언덕 아래, 한강보다 좁은 센 강이 시내 한복판을 흐르며 우리를 다정하게 맞아준다.

 시내 어디서나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에펠탑의 위용, 루브르 박물관, ‘우리의 귀부인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교회’ 노트르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사원들의 회색 실루엣, 화강암으로 육중하게 연이어 지은 집들의 창가에 핀 꽃들과 더 높이 짓지 못하는 고도제한 정책을 원망하는 듯 겉단장만 요란한 백화점들. 이 모든 것이 파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센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센 강가의 시테 섬 한가운데 서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단아한 모습에선 유고의 작품에 나오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 처절한 장면의 종각도 보수 중이어서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콰지모도가 매달려 울려 보내던 종소리는 여전히 저녁 미사 시간을 알려 주었다.
 성당 안에 들어가 파이프오르간에서 울리는 미사음악을 들으며 타오르는 촛불 앞에서 묵도를 했다. 영원한 어머니이신 ‘하얀 성모님’ 앞에서. 성모님에게 봉헌한 로즈윈도들은 모두 신비한 장미동산의 성모를 상징하며 스테인드글라스로 높이 장식해 놓았다.
 구약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남쪽 로즈윈도, 신약의 이야기가 담긴 북쪽 로즈윈도, 그리고 성모님과 아기예수를 한가운데 모시고 오르간에 반쯤 가려진 서편 로즈윈도. 그 서편 창에 비치는 노을빛 속에 하얀 성모님은 핑크빛으로 부드럽게 물들어 있었고, 발치엔 흰 백합화가 하얀 성모님의 일곱 가지 슬픔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사람의 자식을 낳은 어머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라 불러주는 이의 도움은 꼭 들어주는 어머니의 원형임을 말해주며.
 파리시민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이 노트르담 대성당 앞엔 두 개의 아치 밑으로 센 강이 흐르는 마리 교가 놓여있다. 그 다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하류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아름다운 미라보 다리를 지나 제일 오래된 상 마이클 혹은 퐁 뇌프라고 부르는 다리에 이르자 웬 젊은이가 보따리까지 들고 난간을 넘어가 발밑의 짙푸른 강물을 내려다보고 앉아있다.
 아폴리네르가 사랑하는 여인 화가 마리 로랭상에게 버림받고 읊었다는 시가 생각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 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 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

 아폴리네르가 읊은 미라보 다리도 아닌데, 역시 퐁 뇌프는 숱한 생명이 죽음의 유혹을 받는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저 젊은이가 미치게 아름답고 슬픈 센 강 물속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고 앉아 있는 품을 보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지만 그 젊은이를 불러내기 보다는 어떻게 강물에 빠지나 구경하려는 것 같았다. 좀처럼 인생의 연극이 막을 내릴 것 같지도 않고, 센 강에 젊은 목숨을 던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도 않기에 우리는 다시 하류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나루터에 내려가니 작은 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 소녀가 배에 오르기 전에 아버지와 이별을 하는 듯 끌어안고 서 있다. 소녀는 희망을 안고 떠나고, 흰 머리가 성성한 아버지는 외로움에 잠겨 쓸쓸해 보인다.

 

맞은편에 에펠탑 아치 아래 선착장에서 떠난 큰 배가 우리 앞을 지나며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우리도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After the Sunset’에서, 여섯 달 만에 다시 만난 두 연인이 이곳까지 노를 저어와 노을 속에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는 강둑으로 다시 올라와 보스크 아베뉴에 있는 호텔 길로 들어섰다. 그 뒷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 문 앞에서 주인남자가 내미는 하얀 사기접시를 행운의 표시로 땅 바닥에 던져 박살을 내면서 들어갔다. 저 멋진 에펠탑 꼭대기에서 파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와인을 들려고 한 계획이 틀어진 분풀이를 하듯이.  호텔로 돌아와 좀 쉰 다음 에펠탑이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간에 맞춰 알마 다리로 내려와 센 강변을 다시 걸었다.
 밤 아홉 시가 되자 푸른 하늘 밑의 우아한 형상의 에펠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파리의 온갖 예술과 문화를 선정적인 모습으로 단장한 에펠탑이 눈부시게 우리 앞에 떠올랐다. 우리는 에펠탑 전체가 잘 보이는 곳에 벤치를 차지하고, 밤의 요마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에펠탑에 홀린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올려다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센 강변을 사랑하는 남편과 걸었던 일은 모두 값진 추억이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며 오가는 길에 분에 넘치게 비싼 파리구경을 한 일도 또 하나의 은총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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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9.끝)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읍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포로를 넘겨주느니 그의 요새 주변에서 붙잡힌 첩자로 알함브라 성 안에서 교수형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요. 그들의 음모를 밤늦게 전해 들은 읍장은, 날이 새는 즉시 그 죄수를 알함브라 성안의 탑으로 옮기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그리고는 그의 하녀인 새침떼기 소녀에게 일렀어요. “얘야, 내일 새벽에 수탉이 울기 전에 내 방문을 두드려 나를 깨워다오. 내가 몸소 지켜봐야 하니까.”

날이 새고 수탉도 울었건만 아무도 읍장님 방문을 두드리는 이가 없군요. 태양의 산 위로 해가 높이 떠올라 읍장님 방안에 환히 비출 때쯤 해서야, 상등병이 공포에 질려 읍장님의 아침 꿈을 깨웠어요.

“그자가 없어졌어요! 그자가 사라졌어요!” 상등병이 숨이 넘어가게 소리쳤어요.

“누가 없어져? 누가 사라졌단 말이냐?”

“그 병사인지 강도인지 악마인지, 그 놈이 말씀이에요. 그가 있던 지하감옥이 텅 비었어요. 문은 잠겨 있는데, 어떻게 달아났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그자를 마지막으로 본 게 누구냐?”

“읍장 나리의 하녀입니다. 그자에게 어제 저녁식사를 갖다 주더군요.”

“그 애를 당장에 불러들여라.”

또 새로운 소동이 벌어졌네요. 그 새침떼기 소녀의 방도 텅 비어있었고, 침대는 간밤에 잠을 잔 흔적도 없고요. 지난 며칠 동안 그 죄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더니, 함께 달아난 것이 분명하군요.

이 보고는 늙은 읍장님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지만, 그런 일로 주춤거릴 새가 없었어요. 새로운 불상사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거에요. 읍장이 그의 밀실로 뛰어들어가 보았더니, 금고는 열려있고, 그 속에 넣어둔 병사의 가죽주머니와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가 모두 사라져버린 거에요.

하지만 그 도망자들이 어떻게, 어디로 달아난 것일까요? 한 늙은 농부가 시에라 산으로 오르는 길가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산에 오르는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라는군요. 그래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꽁무니에 여자를 태운 말 탄 기사만 간신히 알아보았다지 뭐에요.

“마구간을 뒤져라!” 망코 읍장이 소리쳤어요. 마구간을 온통 뒤졌어요. 말들은 그대로 다 있는데, 오직 아라비아 준마만 없군요. 말 대신에 단단한 몽둥이 하나가 구유에 비끌어 매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쓴 쪽지가 달려 있더래요.

“용감한 고참병이 망코 읍장나리에게 드리는 선물이오.”(끝)

 

 

 

 

 

 

수조 광장 앞, 알함브라성

0486 Alhambra Palac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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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8)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그가 누군지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 이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병사의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보압딜과 그의 군대가 산속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얘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아버지들에게서 들어 온 옛날옛적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들이었 거든요.

사람들은 그 병사가 말한 동굴을 찾아 태양의 산으로 올라가 깊이 모를 어두운 구덩이를 발견하고 들여다 보곤 했답니다. 지금도 그곳은 보압딜의 지하 거주지 입구로 알려져 있지요.

그 병사는 사람들 사이에 날로 인기가 높아졌어요. 히스파냐에서는 산적의 존재조차 하층민들에겐 기사도적인 인물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늙은 망코 읍장의 독단적인 조치에 불만을 터뜨리며, 그 포로를 순교자로 여기게끔 된 거에요.

그런데다 이 친구는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데가 있어서, 갇혀있는 창가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여성들에게는 부드러운 말씨를 건네곤 하질 않겠어요? 또 어디서 낡은 기타까지 구해 들여 창가에 앉아 이웃 여인들에게 민요풍의 사랑 노래까지 불러대는 거에요. 여인들은 저녁이면 그 창문 앞의 산책로에 모여들어 그 노래에 맞추어 볼레로 춤까지 추고요.

 

읍장님을 모시고 있는 새침 떼기 소녀도, 검게 그을은 병사의 얼굴에 찡긋 보내는 미소가 더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했어요. 애초부터 그의 이상스런 운명에 깊은 동정심을 지니고 읍장의 마음을 돌이켜보려다 실패한 이 마음씨 따뜻한 소녀는, 자기가 몰래 그의 가혹한 처지를 덜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소녀는 매일같이 읍장님의 식탁에서 주운 빵 부스러기나 치즈, 말라가 산의 향기로운 포도주까지 따라다 주는군요.

늙은 읍장님의 성채에서 이러한 작은 배신이 일어나고 있는 한편, 성채 밖에선 전쟁전야의 폭풍이 불고 있었답니다. 도둑으로 잡힌 인물에게서 나온 황금 보석이 든 주머니를 둘러싸고, 그 상황이 잔뜩 불려진 채 온 그라나다에 퍼진 거에요.

분쟁은 갈수록 치열해졌어요. 읍장님의 정적인 그라나다 총독은 그 죄수가 붙잡힌 곳이 알함브라의 관할구역 밖이며, 그 지역은 총독의 지배권 안에 있으므로, 그 죄수를 베르밀리온 탑에서 그라나다 시로 인계할 군사를 보내겠다고 위협하고, 종교재판장은 종교재판소의 포리들을 파견하겠다고 법석을 떨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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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0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7)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교회도 성소도 아닙니다요, 존경하옵는 신부님. 그 물건들이 성스러운 유물들이라면, 그건 제가 말한 옛날 이교도의 군대가 약탈한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려는데 읍장님이 제 말을 막으셨지요. 그 병사의 준마를 손에 넣었을 때, 안장 앞에 달려 있던 가죽주머니 끈을 풀어 내린 겁니다.”

“아주 잘했구나. 이제 베르밀리온 탑 안에 네 숙소를 잡을 결심이나 하거라. 마법엔 안 걸렸어도 마법에 걸린 무어인 동굴보다 훨씬 안전하게 너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곳이니라.”

“읍장님 처분대로 하소서. 저는 나리께서 성채 안에 어느 거처를 주시든 감사할 것입니다. 읍장님도 아시다시피 전쟁을 겪은 병사는 잠자리 투정을 안 하는 법 입지요. 다만 읍장님께 청을 드리는 것은, 나리께서 저에게 신경을 쓰시는 동안만이라도 이 성채를 철저히 감시하시라는 겁니다.”

 

 

그 장면은 이렇게 넘어가고, 포로는 베르밀리온 탑 지하감옥에 끌려갔어요. 아라비아 준마는 읍장의 마구간에, 무어 기사의 가죽 주머니는 읍장의 밀실 금고로 들어갔고요. 수도사는 그 주머니의 물건들이 교회에서 훔친 게 분명하니 그 성스러운 유물은 교회가 보관해야 한다고 우겼지요. 하지만 알함브라에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지닌 읍장님이 귓등으로도 안 듣자, 수도사는 그 논의를 신중하게 접는 대신, 그라나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겠다 결심했어요.

늙은 읍장 망코는 그의 성채에 붙어 다니는 오해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지금 자신이 그 무시무시한 무법자 중의 하나를 체포했다고 자부하고 있군요.

한편 그 이야기는 바람 따라 흘러 흘러 성채뿐 아니라 그라나다 도시 전체의 화제 거리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알푸아라를 덜덜 떨게 한 그 유명한 도적 미누엘이 늙은 망코 읍장의 손에 잡혀 베르밀리온 탑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떠들어댔으며, 그에게 도둑 맞은 사람들은 모두 그 약탈자를 확인하러 그리로 몰려들었어요.

병사가 갇힌 베르밀리온탑의 작은 방 창문은 단단한 쇠창살이 달려있고, 그 사이로 작은 산책로가 내다보이네요. 그 산책로에 그라나다 시민들이 동물원에 있는 야릇한 하이에나라도 구경하듯 모여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가 미누엘 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죄수는 쾌활한 인상에 찡긋 웃기도 하는 얼굴이 흉악범의 얼굴은 아니었거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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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6)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 난리와 혼란 속에 저는 바닥에 나가 떨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떤 언덕 꼭대기에 누워 있었고, 그 아라비아 말은 제 옆에 서 있는데, 제가 떨어지며 제 팔이 그 고삐 속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옛 카스티야로 달아나지 못한 것이지요.

“읍장 나리, 제가 주위를 둘러보고 놀란 것은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용설란과 무화과나무 울타리며, 남부지방에만 있는 풍경들과, 아래쪽에 보이는 탑들, 궁전, 큰 성당이 모여있는 대도시가 보였으니 말씀입니다. 저는 말을 끌고 조심스레 언덕에서 내려 왔습죠. 다시 녀석 위에 올라탔다가는 어떤 술수에 말려들런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내려 오다가 나리의 순찰대를 만나 제 앞에 펼쳐진 곳이 바로 그라나다이며, 알함브라 성채 안에 마법에 걸려있는 모든 무슬림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그 무서운 망코 읍장님의 요새 안에 있음을 알게 된 겁니다. 저는 곧장 나리를 만나 뵙고, 제가 본 모든 것을 말씀 드리고 나리를 둘러싼 알지 못할 위험에 대해 경고해드려야겠다 결심한 것입니다. 이 나라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적의 군대로부터 나리의 요새와 나라 전체를 지키실 조치를 미리 취하시도록 말씀입죠.”

“그렇다면, 친구여, 참전용사이며 군대 봉사도 많이 했을 테니, 그 재난을 막기 위해 내가 어찌하면 좋은지 충고 좀 해주게나.” 읍장이 말했어요.

“저 같은 일개 병사가 나리처럼 현명하신 지휘관을 가르쳐드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제 생각에 나리께서 산속에 있는 동굴과 그 입구를 모두 견고한 벽돌로 쌓아 막아버리신다면 그들은 지하 거처에 아주 갇혀 버리지 않겠습니까? 존경하는 신부님께서도 그 방책들을 축성해주시고 십자가들과 성물들을 걸어두신다면 이교도의 모든 마법의 힘을 막아내리라 생각합니다만.” 병사가 공손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읍장님이 톨레도 검의 칼자루를 한 손에 쥐고 병사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주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 내가 그 마법에 걸린 산과 무어인들의 황당한 얘기에 속아 넘어가리라 생각하고 있나? 닥쳐라, 이 죄인아! 네가 퇴역 고참병이라면, 네가 상대하고 있는 나는 한 수가 더위인 노병이며 그 따위 술책에 쉽게 넘어갈 사람도 아니다. 이 봐라! 경비병들! 이 자를 철창 안에 가두어라.”

새침데기 가정부가 포로를 위해 한마디 거들려고 하자 읍장님은 눈짓으로 말도 못 꺼내게 하는군요.

경비병 한 사람이 병사의 팔을 붙잡다가 불거져 나온 그의 주머니를 당겨보니 무거운 긴 가죽주머니가 끌려 나오네요. 경비병은 한 귀퉁이를 잡고 읍장 앞에 놓인 탁자 위에 모두 쏟아놓았어요. 어떤 산적의 노획물이 저렇게 찬란한 금은 보화를 지녔을까 싶게 반지, 보석, 진주, 묵주, 다이아몬드 십자가에 다양한 옛날 금화까지 쏟아져 나와 방구석 여기 저기로 구르는 거에요.

잠시 동안 재판은 중단되고 모두들 그 반짝이는 도망자들을 잡으려고 법석을 떨었지 뭐에요. 그나마 히스파냐의 자부심을 중히 여기는 읍장만이 엄숙하게 품위를 유지했으나, 그의 눈빛은 마지막 동전과 보석들을 다시 자루 안에 집어넣을 때까지 욕심으로 이글이글 했어요.

수도사는 별로 침착하지 못하군요. 그의 얼굴은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작은 눈은 묵주와 십자가에 꽂혀 번득였어요.

“성물을 훔친 무엄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다! 어느 교회와 성소에서 이 성스러운 유물들을 약탈했느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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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5)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수 천명이 넘는 무리들이 안으로 계속해서 몰려들어와 차례로 그 왕좌 앞을 지나가며 왕에게 절을 합니다. 어떤 무리는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있었고, 다른 무리는 곰팡이가 핀 남루하고 구멍 나고 녹이 슨 갑옷을 입고 있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나리도 아시다시피 군인은 임무수행 중에 질문을 해선 안 되는 법이기에 저도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요. 하지만 더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동무, 이게 도대체 다 뭐란 말이오?’ 했더니, ‘굉장히 불가사의한 비밀의식이오. 기독교인이여, 당신이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은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의 궁정과 군대란 말이오.’ 하지 않겠어요?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요? 보압딜과 신하들은 수 백년 전에 이 나라에서 쫓겨나 모두 아프리카에서 죽지 않았소?’하고 제가 소리쳤죠.”

“ ‘당신네 거짓투성이 연대기엔 그렇게 기록되었을 거요. 그러나 보압딜과 그라나다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던 전사들은 지금 아주 강력한 마법에 걸려 산속에 갇혀있소. 왕과 군대가 항복했을 때, 그라나다를 떠난 행렬은 단지 혼령들의 환상열차일 뿐이었소. 기독교도인 왕을 속이기 위해 그런 환영으로 나타나도 좋다고 악령의 허락을 받은 거요. 동무, 한 가지 더 말해줄 게 있소. 히스파냐 온 나라전체가 마법에 걸려 있다는 거요. 산 속의 동굴들, 들판에 서 있는 외로운 감시 탑, 언덕 위에 폐허가 된 성까지, 그 지하실에 여러 세대를 내려가며 마법에 걸린 병사들이 잠자고 있단 말이오. 그 마법은 알라께서 그의 신의로 백성들을 속죄하고 풀어줄 때 까지요. 해마다 성 요한의 축일에만, 그 전날 해 질 무렵부터 다음날 해 뜨기 전까지 마법에서 풀려나 이곳에 찾아와 왕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다오. 지금 동무가 보고 있는 무리들이 바로 히스파냐 전역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던 곳에서 찾아온 무슬림 전사들이란 말이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과 만난 옛 카스티야 다리 위에 폐허가 된 탑이 내가 수 백년 동안 겨울과 여름을 보냈고, 이제 날이 밝을 무렵엔 돌아가야 할 곳이오. 운명의 책에 보면, 그 마법이 풀리면 보압딜이 군대를 이끌고 산에서 내려가 알함브라에 있는 그의 왕좌와 그라나다 통치권을 되찾고 히스파냐 여기저기 흩어져 마법에 걸려있는 전사들을 불러모아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무슬림 통치시대를 회복하리라고 적혀 있소.”

“‘그렇다면 언제 그 일이 일어날까요?”하고 제가 물었지요.

“‘알라만이 아시지요. 그 구원의 날을 바라고 있지만, 현재 알함브라는 망코 읍장이라고 하는 빈틈없는 자가 지배하고 있소. 그런 전사가 최전방을 장악하고 산으로 들어오는 침입을 견제하는 한 보압딜 왕과 그의 군대는 무장한 채 조용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오.’“

이 대목에, 읍장은 거의 직각으로 벌떡 일어서더니 검을 바로 잡고 콧수염을 다시 꼬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 병사는 말에서 내리더니 말했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며 내 말을 지켜주시오. 보압딜 왕께 무릎 꿇어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나오겠소.”하고는 왕좌 앞으로 몰려들어가는 무리 틈에 성큼성큼 걸어 가더군요.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이교도가 돌아와 그의 도깨비 같은 말에 나를 태우고 신만이 아신다는 곳으로 데려가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회에 이 허깨비 무리 틈에서 달아날 것인가?’ 읍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군인의 결단은 빨라야 합지요. 더구나 그 준마로 말하자면 우리의 적인 이교도의 것이니 전쟁의 규칙에 따라 엄연한 전리품인 셈이고요. 그래서 매달려 있던 껑거리 끈을 떼어 버리고는 안장으로 옮겨 앉아 고삐를 돌리고 말 옆구리를 등자로 차서 말이 들어왔던 길로 최대한 빨리 달아나게 했습니다. 제가 말에게 등자 맛을 한 번 더 보여주자 속도가 두 배로 높아지는군요. 제 뒤에서 광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수천 개의 말발굽이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난 거에요. 헤일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지요. 그 압력으로 저는 동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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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0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4)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읍장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서 평소의 예절을 지키며, 별건 아니라도 제 음식을 나눠먹자고 불렀지요. 그런데 ‘먹고 마실 시간이 없군요. 날이 밝기 전에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거든요.’ 라고 말하더군요. ‘어느 방향으로 가시는데요?’ 물었더니, ‘안달루치아로 갑니다.’

‘내가 갈 길하고 똑 같군요. 나를 그 말에 태워 함께 가주실 수 없을까요? 당신 말은 아주 튼튼하게 생겨서 두 사람도 거뜬히 실어 나르겠는데요.’

“‘그러지요.’ 그 기병이 말하더군요. 거절은 군인답지 않은 일이지요. 더구나 제가 식사를 나눠주겠다고 제안까지 한 터에 말이지요. 그래서 그가 말에 오르자 나도 그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꽉 잡으세요. 내 말은 바람처럼 달려간답니다.’ ‘내 걱정일랑 마시오.’ 그렇게 우린 출발했지요. 말은 걸어가는 듯 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빠른 걸음에서 빠른 달리기로, 빠른 달리기에서 엄청난 질주를 하는 겁니다. 마치 바위와 나무들과 집들이 모두 우리 뒤로 허둥대며 날아가는 듯 했어요.

‘여긴 어딥니까?’ 하고 묻자, ‘세고비아요.’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세고비아의 탑들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과다말라 산으로, 에스코리알 옆으로, 마드리드의 성벽을 지나 라만차의 평원을 훑듯이 지나갔습니다.

병사는 갑자기 한 산등성이에 말을 세우더니, ‘여기가 우리 여행의 종착점입니다.’하는 거에요.

 

 

 둘러보니 사람 사는 데 같진 않고 동굴 입구 하나만 보이더군요. 제가 지켜 보았더니, 무어인 복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마치 사방에서 바람에 실려 오듯 몰려들더니 벌이 벌집에 들어가듯 동굴 속으로 사라지는 겁니다.  

내가 채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 병사는 긴 무어식 박차로 말 옆구리를 치더니 그 무리 속으로 달려가네요. 우리가 달려가는 동안 마치 여명 같이 희미한 불빛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지더니 주위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환해졌어요. 우리가 지나가는 양 옆 동굴엔 마치 무기고 동굴 구멍 같은데, 어떤 동굴엔 방패와 투구, 흉갑, 창과 언월도, 또 다른 동굴엔 전쟁군수품과 야영 장비 들이 바닥에 잔뜩 쌓여 있었답니다.

다른 동굴에 들어가 보니, 창과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출전하려는 기수들의 긴 대열이 보였어요. 그런데 모두가 동상처럼 안장에 앉은 채 꼼짝도 않는 겁니다.

“자, 이야기를 더 짧게 추리겠습니다, 나리. 우리는 마침내 아름다운 돌로 치장한 성 같은 큰 동굴 안에 들어갔는데, 벽은 금은으로 장식한 줄무늬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와 온갖 보석들로 번쩍번쩍 하는 거였어요. 높은 단 위의 황금옥좌엔 무어 왕이 앉아 있고 양쪽으로 귀족들, 언월도를 빼들고 서 있는 아프리카의 흑인 호위병들이 늘어서 있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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