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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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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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아 교회는 밀라노 두오모 뒷길에 있다. 앞글에서 얘기한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선 성 베드로 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 그 두오모 옥상엔 마치 옥탑방과 같은 교회 Upper Church가 있고 그 뾰족탑 위에 마돈나상이 서 있다. 두오모에서 보면 그라치아 교회는 황금빛 마돈나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교회는 입구서부터 웬걸 캄캄하다. 더듬더듬 걸어 들어가자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최후의 만찬’이 나타났다. ‘최후의 만찬’은 인류에게 가장 사랑받는 벽화가 아닌가. 마침내 그 벽화 앞에 서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옛날 수도원 식당이었다는 공간의 넓은 벽면 전체를 차지한 벽화 앞에서 드디어 인류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마침 벽화를 복원하는 작업반이 카메라를 삼각대에 받쳐놓고 스피드그라프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니 이게 웬 횡재인가. 사진을 찍으려고 간 나를 위해 그들은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벽화에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지 않는가.
 곧장 액션에 들어가 카메라의 셔터를 마구 누르는데 작업 중인 카메라맨이 쳐다보며 뭐라고 소리 지른다. 사진을 못 찍게 하나 움찔했는데, 옆에 있던 사람 말이 빛을 어느 쪽으로 비쳐주랴고 묻는다는 거였다. “왼편에서 비춰주세요!” 나의 서슴없는 응답이었다.
 그러나 아뿔싸. 뜻밖의 행운에 정신이 없어 그만 어둠 속에 찍으려고 맞춘 카메라 노출을 그대로 두고 촬영했으니! 나중에 현상해 보니 내 사진은, 위대한 레오나르도가 시도한 스푸마토기법(공기원근법)인양 안개가 서린 환상적인 사진이 되고 말았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그 페르소나 즉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은 개인과 사회가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 데는 4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레오나르도는 작품의 주인공 예수의 얼굴을 닮은 모델을 먼저 찾아야 했다. 헤맨 끝에 부드럽고 숭고하며 강력한 영성이 풍기는 젊은이를 찾아냈다. 
예수의 얼굴을 그린 다음 유다를 뺀 나머지 열한 사도들을 그려 넣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예수를 은화 서른 냥에 팔아넘긴 유다의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영적인 모습과 대조적인 천박하고 교활한 배신자의 얼굴을 찾아 그는 또 몇 해를 헤매었다.
 어느 비오는 날 밀라노의 뒷골목에 있는 한적한 술집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맞은편 식탁에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에 흠뻑 젖은 초라한 사나이가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는 게 아닌가. 휑하니 뚫린 동굴 같은 두 눈동자. 그 음울한, 그러면서도 술 한 잔 얻어 마실까 하는 비열하고 교활한 눈매를 봤을 때 레오나르도는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찾는 유다로구나 하고. 
그는 그 ‘유다’에게 포도주와 음식을 사 먹이고 갈 곳조차 없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때 그 ‘유다’가 말했다. “당신은 왜 번번이 나를 모델로 삼으시우?”
 “뭐라구? 내가 언제 당신을 모델로 썼단 말이오?”
 “몇 해 전엔가, 당신은 나를 예수님의 모델이라며 이곳에 데려온 적이 있잖아요?”
 사는 게 순조로웠을 때 예수의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있던 그를, 파산 당한 후 몇 년 만에 사회가 ‘유다’라는 페르소나로 바꿔 쓰게 만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잡혀가시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같이 하셨다. “이 떡은 나의 몸이다. 이 포도주는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언약의 피다.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으리라(마가가복음14: 22)”는 말씀이 먼저 있었고, 이어서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팔아넘기리라”고 충격발언을 하신다.
 그 순간 제자들의 반사반응을 포착해 그린 게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이다. 레오나르도는 제자들의 만찬 자리를 재미있게 배치했다. 요한과 큰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간청한 자리, ‘하늘나라에서 나의 두 아들을 주님 양 옆에 앉혀 주소서’ 부탁한 자리에 앉힌 것.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요한은 믿는 구석이 있어선지 그 충격발언에 개의치 않고, 그 옆의 열정적인 베드로와 의심꾸러기 도마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멀리 앉은 마태오, 다데오, 시몬의 그룹은 상대적으로 덜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얼핏 보면 예수님의 발언이 충격파를 일으켜 양쪽의 제자들 몸이 물결에 휩쓸리는 형국이다. 
 열두 제자의 심리묘사 다음으로 예수님의 온유하지만 고뇌에 찬 표정과 몸짓을 보자. 양팔을 벌려 식탁 위에 놓은 자세와 식탁 밑에서 하나로 겹친 듯 모은 두 발(그림엔 보이지 않지만 왕립도서관 윈저에 그 스케치가 있다)의 모습은 곧 닥칠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최후의 만찬’ 벽화 맞은편에 몽또프라노가 그린 벽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있는데 예수가 그 다음날 십자가로 옮겨가는 역사의 연속 장면을 보는 듯했다. ‘최후의 만찬’이 완성되고 15년이 되기도 전에 그림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레오나르도가 물감에 오일을 섞어서 쓰는 템페라 화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1943년 2차 대전 폭격으로 교회가 무너졌을 때 그의 그림을 아끼는 교인과 시민들이 미리 흙더미로 그림을 덮어놓아서 그나마 복원이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그후 1977년 시작된 본격적인 복원작업은 22년이 걸렸고 1999년부터는 관람객들이 유리문전에서 소독을 한 다음에야 관람할 수 있게 격리보존하고 있다. 나는 운이 좋게 사진작업반 덕에 그 관문을 그냥 통과한 것. 
 지금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아 성당의 어두운 식당 벽엔 예수님 머리 위의 반원형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후광을 만들어주고 뒤편 세 개의 창문으로는 멀리 바깥 풍경이 보이리라. 그리고 왼편 창문으로 실제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면서 그린 그림의 3분의 1은 거의 어둠에 쌓였고 오른편 3분의 1은 반대편에서 들어온 빛으로 인해 안개가 흐르듯 여전히 그윽한 신비감에 쌓여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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