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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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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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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한 인간이 자기 상관보다 더 똑똑해선 안 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 각료는 웃으면서 나에게 어떤 새파랗게 젊은 신병 이야기를 했다. 그 신병은 6주간의 기초훈련을 받고 나더니, 그의 선임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전체과제라면, 하사님은 그 자리를 당장 물러나는 게 좋겠습니다. 이 정도는 우리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요.”


이 지점에 와서 나는 스트라우스 등 뒤에 도미니카 주간지인 도미니카 델 꼬레(Domenica del Corriere)에서 소년시절에 자주 본 프러시아 장군의 사나운 얼굴을 볼 수가 있다.


그는 끝이 뾰족한 투구를 머리에 쓰고 번갯불 같이 번쩍이는 빛을 내면서 어느 때보다 더 무섭게 상을 찡그리고 있다. 나는 그가 분개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도 그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라고 그 각료도 말했다. 


나는 뒷골목에서 훈련연습을 하고 있는 독일 신병들의 집단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은 십여 명의 프러시아 장군들의 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해 보였다. 스트라우스만 해도 내가 무조건 서술할 것이라 생각한 게 분명하다.


“우리 세대는 레이다와 원자핵과 자동화의 시대입니다. 인간이 로봇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는 우리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계 정세에 비쳐보고 군대 훈련에서 고려하는 두 가지 요소입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전체적인 사건입니다. 세계는 두 개의 대립된 진영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우리는 군인들이 국가를 방위할 뿐만 아니라 민간인은 파괴적이고 심리적인 전투에 대비하여 자신의 정신을 잘 분간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나는 이 점이 이탈리아에선 진실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공산당은 서독에서처럼 추방되지도 않았고, 민주주의 집단과 똑같이 뿌리를 내리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탈리아가 불행하게도 소련 침공에 대항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경우, 당신은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이 그 나라의 방어노력을 지지할 것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트라우스씨가 묻는다.


“일부는 그러겠지요.” 내가 대답한다. “단지 우리 마을의 빼뽀네 읍장 같은 가짜 공산주의자들만이 이탈리아를 방어할 것입니다. 당의 규율로 훈련받은 사람들은 창공을 날며 싸움을 도와주고 부추길 것입니다.”


그때 스트라우스써가 말하기를, 몇 년 존에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본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정치적인 인물들이, 돈까밀로의 저자인 과레스끼는 상당히 믿을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떤 비밀결사 공산주의 단체의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을 그렇게 말한 겁니다.” 우리는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하나 더 했다.


“스트라우스씨,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파시스트 시절의 ‘로마-베를린 추축(樞輔)’을 돌아다 보면서, 기독교 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두 개의 정당이 그와 똑같은 종류의 ‘로마-베를린 추축’을 다시 한 변 건설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이 말에 스트라우스씨는 명확한 대답을 한다.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럽 연합이라는 이상과 반대되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의 연결은 ‘추축국’ 시절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진실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런 종류의 또 다른 동맹을 하고자 하는 우리측 시도는 프랑스와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기대에 해를 끼칩니다.


아데나워 수상은 그의 외교정책 활동을 위해서 독일 전 국민의 지지를 헤아립니다. 경제분야에서 그는 에라르드(Ehrard)의 자유정책에 의지하고 있지요. 우리 정부는 참회의 정부가 아니니까요.”


스트라우스 각료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나는 한 번 더 질문을 해본다. “1900년 이래로, 이탈리언들은 그들이 애쓰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스트라우씨 생각에 떠오르는 이름을 3명만 말씀해 주십시오.”


그 각료는 좋게 시작을 한다. “말코니(Marconi) ,    데 가스페리(De Gasper i)…” 그리고는 잠시    주저한다. “그리고…?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소피아 로렌 중에 누구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크게 실망을 하고 떠나갑니다! 친애하는 국방장관 각하, 당신은 머리 속에 그런 혼란을 안고서는 유럽 연합을 건설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가 취할 첫째의 조처는    겉치레와 위선이랍니다.


내가 망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생각이 무한히 깊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끝내 당신은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당신은 근본적인 이념을 제외하고는 다방면에 명석한 두뇌를 가진 분입니다. 지나와 소피아 사이에서 느끼는    당신의 우유부단은 내가 참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카루소(Caruso)와 바르탈리(Bartali) ,    즉 전혀 한계가 없는 가수와 자전거    선수 사이에서 망설여진다고 말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려나 지금은 말이지요…


“소피아란 말입니다. 스트라우스씨, 소피아요!”


망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떠한 넌센스도 그의 앞에서 허용치 않는 좋은 가장이며 검소한 근로자입니다. 작가로서 결코 깨끗지 않은 말을 펜으로 쓴 적이 없습니다. 천박함이란 그의 글에서 결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볼프스부르그(Wolfsburg)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 3명의 이름을 말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 모습의 소피아 로렌, 옆 모습의 소피아 로렌, 뒷모습의 소피아 로렌이라고.” 그런 다음, 나는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부끄러움 없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4. 우울한 간주곡(間奏曲)


베세르강 입구에서 엘바강 입구 사이에 있는 사막지대의 심장부인 브레메봐르데(Bremervorde) 역에서, 나는 마침내 내가 일찍이 알고 있었던 독일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알레산드리아에서 1943년 9월 13일 오후 5시 반에 시작된 우리 포로들의 여로가 끝난 것은 바로 이 역에서다. 그 역에서 우리는 이탈리아 기차간과 조국에 대한 마지막 여운을 남기고 등에는 군용 배낭을 짊어진 채 이국 땅을 밟기 시작했다.


그날 9월 18일에 우리가 걸었던 7 마일은 얼마나 멀었는지…! 그곳엔 조그마한 묘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십분간 쉬게 된다고 들었고, 틀림없이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무덤 가까운 곳에서 한 여인이 어린 딸 아이가 발치에서 놀고 있는 동안 빨간 스웨터를 짜고 있는 모습이었다. 


독일의 묘지는 우리네처럼 높은 담을 둘러 쌓지는 않았다. 그곳은 죽은 자가 그들의 무덤에서 일어설 염려도 없고, 밝은 공기와 태양을 자유롭게 쏘이도록 남겨 두었으며, 낮은 울타리와 좁은 실개천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길에서 보면 정원이나 과수원 같이 보이는데 그것은 내내 묘지일 따름이었다. 샌드보스텔(Sandbostel)에서는 9월의 공기와 하늘과 전체적으로 황량한 분위기를 다시 맛본다.    


길엔 옛날처럼 사람이 없고    이끼 덮인 숲 사이로 서있는 이끼 덮인 지붕 밑엔 예전처럼 아무도 없다. 어느 집이나    낙수가 떨어지고 질퍽거린다. 라케르, 그곳을 찾는 일에 실수할 리가 없다.     수없이 많은 표지판이 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나무다리를 두 번 건너 깨끗이 씻겨나간 울퉁불퉁한 벽돌    포장도로가 뻗쳐 있는 끝에까지 차를 몰고 간다. 수용소 건물들은 옛날과 똑같이 낮고 길게 누워 있어서 음산하게 육박해 오는 하늘에 짓눌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 가지 새로운 특징은 돌로 지은 자그마한 교회다. 옛날엔 그곳에 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수용소 안에 사무실을 두실 만큼 관용이나 권리를 베풀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샌드보스탤에 있는 라케르 수용소는 아직도 관심이 가는 곳이다. 이제는 피난민 막사로 쓰고 있다. 운동장은 깨끗이 치워져 있어서 전과 달라 보인다. 전엔 이곳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감시탑과 탐조등, 그러고 도망자에게 언제나 기관총을 쏘아댈 준비가 되어 있는 무장 군인들이 철통같이 둘러 서있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그 때 품었던 생각들을 다시 발견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또 다른 죠반니노를 찾는 일은 아주 가망이 없다. 마치 내가 한 때 내 집이었던 곳에서 강제로 추방된 듯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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