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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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0)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그 사무실도 보드카를 저장해두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춤을 추기 시작했고, 돈 까밀로만이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피하여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 방 안엔 레닌의 초상화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듯 덩그러니 벽에 걸려 있었다.


카피체 동무는 마침내 기타도 집어 던지고 페트로프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신이 나서 그녀를 더욱 꽉 잡고 춤을 추었기 때문에, 빼뽀네가 말하는 것을 통역해야 할 때 그녀는 그의 팔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빼뽀네는 그녀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한 다음엔 재미있는 놀이를 즐겨야 마땅하지요. 만일 타롯치 동무처럼 흥이나 깨고 함께 즐기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녀는 즉시 대답했다.


“타롯치는 지도자의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소. 그러나 그의 가정엔 질투심이 많고 반동적인 아내가 그의 코를 꿰어 잡고 있거든요. 지금도 그는 집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건만 비밀이 탄로날 것을 걱정하고 있단 말이오. 그저 춤만 같이 추면 되는데 말이지요.”


“그 일은 내게 맡기세요!” 페트로프나가 말했다.


5분쯤 지나서 한 떼의 소녀들이 깔깔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가서 돈 까밀로를 큰 방으로 끌고 나와 춤판에 끌어들였다. 빼뽀네는 이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돈 까밀로가 제일 예쁜 아가씨와 춤추는 동안, 튜린 출신의 사진사인 빗토리오 페닷토 동무에게 손짓을 했다. 


페닷토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 가면서 굉장한 사진을 찍었다. 그런 다음에도 그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돈 까밀로와 춤추는 사진들을 찍고 싶어했다. 필름 한 통을 다 쓰고 나자 빼뽀네가 페닷토 동무에게 말했다.


“원판은 내게 줘야 하네, 잊지 않겠지?”


창문을 열어 담배 연기를 빼내고 새 보드카 병을 따고 있을 동안 잠시 휴식이 있었다. 아직도 환락의 열기가 가시질 않았다. 시실리 출신의 리 프리디는 하모니카를 꺼내 들었고, 사르디니아 출신의 꾸룰루 동무는 술 취한 사람이 밤늦게 자기 집에 돌아와 몰래 들어가려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맞춰 넣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투스칸 출신의 지뱃티는 가성으로 오페라를 불러대고 있었고, 제노아 출신의 바치까는 마술사 노릇으로 사람들을 온통 사로잡았다.


“조직화된 오락단과 텔레비전이 노동자 계급의 문화수준을 아주 높여줬구먼” 돈 까밀로가 숨을 헐떡이면서 빼뽀네에게 말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빼뽀네가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그림 엽서로 장식하는 것이 정치적인 성명서보다 훨씬 더 좋은 선전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무슨 그림인데?” 


돈 까밀로가 물었다.


“우리가 존경하는 교구 신부님이 변장을 하고 춤판에서 발꿈치를 차가며 춤추는 사진 말입니다.”


“알이 깨어나기도 전에 병아리부터 세어보진 마시오.” 그가 대꾸했다.


“자네 말대로, 우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오!”


춤판이 다시 벌어졌는데 40세 가량의 땅딸한 남자가 돈 까밀로에게 가까이 왔다. 그는 이태리어로 말했다.


“동무가 이 일행의 단장입니까?”


“아니오, 내 옆에 있는 이 멍청해 뵈는 친구가 단장이오. 난 오직 세포 지도자요.”


“그런데, 두 분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저기 있는 저 나폴리 출신의 친구가 저 아가씨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로마 출신의 친구가 뼈를 부러뜨릴 겁니다.”


이 낯선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태리 말로 얘기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생각도 미처 해보지 않고, 빼뽀네는 무슨 내분이라도 일어날까 봐 그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돈 까밀로가 좀 거북한 몸짓을 하자, 그 낯선 사람은 웃으면서 이해한다고 했다.


“보드카를 원하시죠, 안 그래요?” 그가 물었다.


돈 까밀로는, 그 사람이 자기나라 말로 이야기했던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면서 응수했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보드카가 저장된 곳이었다. 일단 그들이 그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저는 루마니아 사람입니다.”


그 낯선 이가 돈 까밀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나폴리 발음으로 이태리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원래 나폴리 출신이기 때문이죠. 1939년엔 항해사였습니다. 그런데 루마니아 소녀를 만나 루마니아까지 그 소녀를 따라온 셈이죠.”


“그래 그 여자를 움켜 잡았소?”


돈 까밀로가 물었다.


“맞아요, 제때는 아니었지만 잡기는 잡았지요.”


“무슨 뜻이지요? 너무 늦었었나요? 그 여자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든가?”


“아니요, 너무 일렀어요.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 다행히도 러시아 인들이 루마니아에 이주해 왔지요. 그 사람들이 농사꾼을 모집했을 때 제가 지원자로 나선 겁니다만…”


그 낯선 이가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빼뽀네는 페트로프나 동무를 붙잡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주르카 무도곡이 끝나자 그는 카피체에게서 페트로프나를 끌어내어 왈츠를 함께 추며 돌았다.


“여기 좀 봐요, 동무. 동무에게 내가 할 말이 좀 있소.”


“스카못지아 동무는 우리 당의 보배요. 하지만 아직은 정치적으로 성숙하진 못했다고 봅니다. 그 사람은 자본주의적인 실수를 잘 저지르는 게 문제요.”


“저도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페트로프나가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괜찮겠지요.”


“나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오. 하지만 오늘 밤엔 좀 심했소. 동무가 그 기타 연주자와 춤추는 걸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말썽을 일으키고야 말 거요. 난 동무를 빠져나가게 할 생각을 했소. 왜냐하면 동무는 이 잔치가 싸움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확신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그들은 왈츠가 끝나자 서로 헤어져서 빼뽀네는 창고 사무실로 갔고, 그곳에 있는 돈 까밀로에게서 나폴리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이 사람은 정치하고는 무관한 것 같소.”


돈 까밀로가 설명했다.


“다만 곤란한 처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오.”


빼뽀네는 어깨를 풀썩 해 보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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