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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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8.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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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테 콜비츠의 <Self Portrqit>(Daum 카페에서)


 

산골의 밤은 빨리 저무나 보다. 이제 저녁 여덟 시 밖에 안 되었는데 창 밖은 이미 깜깜하고, 별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밤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남향으로 난 이층 창문턱에 두 팔을 괴고, 목을 길게 뺀 채, 멀리 고속도로 쪽에 들어왔다가는 옆길로 사라져버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눈으로 열심히 쫓아본다.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면서.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시골집에 내려온 지 일주일째 되는 데도 낮엔 몹시 무덥고, 밤엔 기온이 4-5도 가량 내려가서 유령이라도 나올 듯 썰렁해진다. 그래선지 낮엔 산골 물 길어 밥을 해 먹고, 낮잠 자고 돗자리 위에 뒹굴며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신선놀음 하느라 그이 생각은 까마득하다가, 어둠이 덮인 다음에야 기온이 변하듯 마음이 다급해져 그이를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은 그리움에서 시작되어 고독감마저 달콤하게 새기려 한다. 그러나 그이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 20분, 30분이 지나면, 오늘도 그인 안 돌아오는구나 하는 실망과 분노로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찌륵, 찌륵 미찌륵… 하는 쓰르라미의 차가운 음향과, 옆방에서 공부하며 딸 아이가 이따금 플루트를 부는 청아한 음율과, 그 멜로디를 듣고 지나가던 나그네가 박수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맞은 편에 검은 괴물처럼 누워 있는 산등성이가 꿈틀거리며 일어나 나를 덮어버릴 것만 같은 착각에 기절할 지경이다. 

 

작은 창문틀에 매달리듯 팔꿈치를 짚고, 발꿈치까지 쳐들어, 창 밑에 멀리 보이는 큰 행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그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왼편 벽 거울에 길게 비쳐왔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것이, 희화한 듯 서글프게 보인다.
그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독일 여류화가 콜빗츠가 그린 <기다리는 여인> 같기도 하고, 사뮤엘 베켙Samuel Becket의 <고도우를 기다리는> 두 방랑인 같기도 하다. 콜빗츠의 <기다리는 여인>은, 실제로 콜빗츠 자신을 그린 것으로, 전쟁터에서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 않는 외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인상적인 그림이다. 하루 종일 회한에 잠겨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은, 숙명적인 여인의 어떤 상황을 암시하기도 하고, 전쟁이 다시 없기를 열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도우를 기다리는> 두 방랑인 블라디미르와 디디는, 고도우가 나타나기로 약속한 시골 길가의 나무 밑에서, 곧 오리란 예언만 전하며 오지 않는 고도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 나무(tree=gross or God이라고도 부르는) 밑에서 희망과 고통의 기다림이 반복된다. 기다림 자체가 주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때문에 더 고통을 느끼면서. 그 둘은 ‘만나면 미워져서 헤어지고 싶고, 죽여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사이지만, 헤어지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이’다. 그러면서도 고도우가 꼭 오리란 확신 때문에 그들은 추울 때 이불을 덮어주고 배고플 때 먹이를 찾아 서로 보살펴 주는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블라드미르와 디디가 ‘고도우’를 기다린 것 이상으로 절실하게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상황에서의 기다림, 동상이몽 때문에, 남과 북의 형제가 함께 만나서 기다려야 할 구원의 나무, 즉 판문점의 그 미류나무는 이미 붉은 도끼 날에 무참히 찍혀버렸다. 우리는 그 나무가 다시 자라 잎이 무성해 질 때를 기다리고 미워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블라디미르와 디디의 운명처럼, 희극적인 연민 속에 남과 북은 손을 잡고 우리의 ‘고도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부엌데기 순이가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못생긴 개구리를 부엌 구석에서 눈물과 사랑으로 먹이를 주어 키우자, 그 추한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하여 순이를 왕비로 맞는다는 우리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갑자기 짧은 경적소리가 찌륵이를 놀라게 한 듯 더 깊은 정적이 스며들며, 헤드라이트가 앞마당에 들어선다. 그이가 온 것이다!
고도우처럼 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이가 돌아온 게 나는 몹시 기뻤다. 기다림의 고통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우리 국민들이 기다리는 ‘고도우’도 우리가 기다리면 오실 하느님(God고도우)의 상징은 아닐까. 오고야 말 희망의 서곡인 양 찌륵이의 노랫소리가 힘차게 다시 울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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