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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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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7. 톨레도의 엘 그레꼬와 십자가의 성 요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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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밤이여 길잡이여

새벽도곤 한결 좋은 아, 밤이여

굄하는 이와 굄 받는 이를

님과 한 몸 되어버린 고이는 이를

한데 아우른 아하, 밤이여

 

이 시는 ‘십자가의 성요한’이 톨레도 수도원 감옥에서 쓴 ‘가르멜산의 어둔 밤5’(최민순 신부 옮김)이다.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온갖 박해를 무릅쓰며 일군 ‘가르멜수도원’. 그 이름은 엘리야의 신비가 깃든 가르멜산에서 온다.

몇 해 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올랐던 엘리야의 동상이 서 있는 가르멜산, 포도밭이 질펀하고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그 산 길을 밤중에 올랐다면, 십자가의 요한이 쓴 가르멜산의 영적인 ‘어둔 밤’을 체험했으리라. 예수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의 모습을 ‘엘리야의 우물’가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테고. 그곳이 바로 관상 수도회의 표지판 같은 가르멜수도회의 원천임을 이제야 알았으니.

 

‘십자가의 성요한’(1542-1591)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쇠양 배양한 모습과 종교개혁 운동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교회 내에 자성파 혁신운동을 벌인다. 그 선봉이며 그의 영혼의 길벗인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의 격려로 남성수도원 운동을 일으키고 개혁 가르멜에 적극 협력하지만, 보수교단 성직자들의 방해와 저항으로 결국은 그 보수교단에 납치되어 톨레도의 수도원에 9개월 동안 갇혀 지내면서, 신비스런 자신의 신앙체험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내 그 샘을 잘 아노니”,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 그의 그림 중에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뒤에서 내려다 보며 그린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십자가의 모습일까?                                       

 

 

‘십자가의 요한’은 ‘예수의 데레사’ 수녀의 요청으로 아빌라의 엔까르나씨온 수녀원의 고해신부로 1572년부터 5년 동안 영적 지도에 협력하기도 했다. 그때 후안 파비오 2세로부터 받은 친서와 황금빛 큰 성작이 지금도 그곳에서 오누이 같은 두 동역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했다.

십자가의 삶을 늘 외면하며 살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요한’은 ‘어둠과 빛, 고통과 기쁨, 희생과 사랑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그의 생애와 작품들을 통해 일깨워준다. 험한 파도 같은 그의 삶을 마감한 후에 시복되고, 교회박사로,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한다(1993). 예수의데레사의 고전적인 산문과 십자가의요한의 운문은 스페인 고전문학에 영성 분야의 쌍벽을 이루고 있고. 

 

이상하게도 십자가의요한이 갇혀있던 ‘수도원 감옥’은 톨레도 지도에 없고,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십자가의성요한 기념교회 앞에 이르렀다. 교회라기 보다는 뾰죽돌탑 같은 건물의 돌담 앞에, 한 손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엔 성경을 들고 마치 ‘어둔밤’을 겪은 감옥에서 빠져나와 둘레를 살피며 서 있는 듯한 그의 하얀동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십자가의요한은 그곳에 선 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가량 버스로 달려온 옛날 역사박물관 같은 톨레도에서 먼저 보고 싶은 것은 십자가의요한이 갇혔던 수도원감옥과 엘 그레꼬의 그림들이었다.

 

 

십자가의요한은 몰라도 엘 그레꼬를 물으면 아이들도 그의 미술관으로 우리를 끌고 갈 정도였다. 그리이스의 그레타 사람 임을 자부하는 이름을 가진 엘 그레꼬의 미술관으로 가는 골목길은 마치 서울의 인사동 길 같이 고풍스럽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담벽 위로 아름다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엘 그레꼬(1541-1614)는 그레타섬에서 초기 미술교육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청년시절을 보내지만, 1577년부터 마지막까지 톨레도를 제2의 고향처럼 지키며 궁정화가의 길을 걷는 한편 성화를 그려 신비와 예술의 극치감을 길이 맛보게 해준다.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에서 여늬 화가의 그림에 나타나는 달빛을 보여주지 않고,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사랑의 빛이 예수의 얼굴에 일직선으로 비추게 하였다. 고통을 사랑의 빛으로 승화시킨 이 상징은 십자가의요한이 ‘어둔밤’이기에 더욱 빛나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빛을 체험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의 생가와 붙어있는 엘 그레꼬 미술관을 압도하며 걸려있는 “톨레도의 경관과 계획”은 그의 말년의 그림이다. 한 소년이 톨레도의 지도를 펼쳐놓고 그의 계획을 꿈꾸는 듯, 하늘엔 성모님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내려오고 있고, 낯선 톨레도 시가지가 황토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엘 그레꼬의 화풍과 이론이 들어 있고 그가 작품을 남긴 성당과 앞으로 작업할 곳의 청사진이라고 한다. 톨레도는 엘 그레꼬의 환상과 현실 속에 이루어진 도시였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산또 또메성당에 전면벽화로 그려 놓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었다. 톨레도의 귀족인 오르가스 백작은 신앙심이 깊었으며, 교회의 재정을 떠맡아 헌신하는 한편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준 정말 ‘훌륭한 사마리아사람’이었다. 그 당시 계급의식이 강했던 대성당에 출입을 못하는 빈민층의 신자들을 위해 이 교회를 지었고, 그의 유해는 그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로부터 200년도 더 지난 후 교회가 엘 그레꼬에게 기념벽화를 의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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