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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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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애틀란타 최초의 한인, 윤치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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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남(전 애틀란타 한인회장, 연세대경제학과졸업)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3년 6월 14일, 애국가의 작사자인 윤치호 선생이 이곳 애틀랜타의 명문인 에모리대학을 졸업했다. 윤치호 선생은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에모리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리하여 윤치호 선생은 조지아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윤치호 선생은 또한 애틀랜타 한인 이민자 1호가 되었다(참고자료 <애틀랜타 한인이민사> p. 39).

1864년 한국에서 태어난 윤치호 선생은 일찍이 신사유람단의 일행인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활동했고, 감리교 선교사로서 한국 초기 감리교 선교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윤치호 선생은 에모리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여름방학이면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애틀랜타 농촌의 교회를 방문해 설교와 강연을 하며 기금을 모았다. 그런데 그가 졸업 당시에 모은 돈 2백 달러를 에모리대학 워렌 캔들러(Warren Candler) 총장에게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해 달라”고 맡겼다. 그것이 남감리교회 한국 선교의 시초였다. 

 

윤치호 선생은 귀국 후 독립협회에 가담했고, 서재필에 이어 독립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필자가 11년 전 편집위원장을 맡아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를 함께 집필할 때 일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애국가 작곡자를 안익태 선생으로 기재했고, 작사자는 윤치호 선생으로 소개했기에 책에도 그렇게 기록하려 했다. 그런데 한인들 사이에서도 ‘윤치호 애국가 작사’를 넣을지 논란이 많아 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결국 책을 마지막으로 감수하던 중 이를 삭제했다. 

 

그런데 2년 전 에모리대학을 방문했다가 운 좋게 대학도서관에 소장 중인 윤치호 선생의 일기와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독립신문 1895년 제1권에 “독립문 정초식 순서 중 불린 창가 중 ‘조선가’의 가사가 윤치호 선생의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필자는 에모리대학 도서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윤치호 선생의 문헌을 발견해 이를 확인 했다.
따라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다짐하기 위해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인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 선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처럼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의 최초 페이지를 장식하고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 선생이 에모리대학을 졸업한 지 올해 120주년이다. 이 같은 시기에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 선생이라는 사실을 애틀랜타에서 연구해, 한국에도 알리는 것이 애틀랜타 한인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치호 선생은 에모리대학의 한국인 학생 1호는 물론이고, 외국인 유학생 1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에모리대학은 오는 6월 윤치호 선생 졸업 1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치호 선생을 시작으로 에모리대학에는 수천 명의 한인 유학생들이 졸업했으며, 그 중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등 수많은 지도자들도 배출했다.

 

현재 LA에는 ‘한인 이민사 박물관’이 건립돼 운영 중이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역사의식을 갖고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에모리 대학에서 열리는 윤치호 선생 졸업 120주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애틀랜타에서 산다는 것> 이승남 수필집을 읽고

-유니스 윤경남-

 

 미국의 L.A.와 New York에 이어 미주 3대 한인사회의 큰 터전을 이룩한 애틀랜타시의 한인이민사 편찬위원회 위원장이며 칼럼니스트인 이승남 회장님으로부터 두 권의 귀한 책을 선물 받았다.
 한 권은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글쓴이 이전 교수)이며, 또 한 권은 지난 5월 17일에 개축한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출간기념회에 선보인 이승남 회장의 수필집 <애틀랜타에서 산다는 것>이다. <한인 이민사>는 남편 민석홍 장로가 열심히 읽고, 나는 <애틀랜타에서 산다는 것>에서 주로 궁금증을 풀었다. 

 

제1부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긴 고향’은 사랑하는 아내와 35년 만에 고국을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제2부 ‘애틀랜타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의 첫머리, ‘애틀랜타 최초의 한인’은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3년 6월14일, 애국가 작사자인 윤치호 선생이 (1865~1945) 이곳 애틀랜타의 명문인 에모리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야기이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윤치호 선생님이 에모리대학 졸업 후에 캐나다에 제일 먼저 입성한 분이란 생각만 해왔는데, 미주 제3의 한인 디아스포라의 도시인 애틀랜타에도 1호로 입성한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제2부에는 또한 ‘감옥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과, 사바나 인근의 스미스 주립 교도소에서 정기적인 교도소 선교 이야기를 담은 ‘God Bless You I Love You’ 이야기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실화이다. 

 

애틀랜타총영사관의 지원으로 경찰영사가 미국의 교도소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을 면담하고 배려해 주는 모습에, 필자는 애틀랜타총영사, 나아가 고국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배식이 끝나고 모두 앞에 나와 가스펠과 찬송가를 부르며 죄수들과 함께 춤 추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뜨거운 찬양과 기도와 함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부둥켜안기 시작했다. ‘God Bless You I Love You!’를 연발하며 헤어졌다…. 필자도 눈물이 났다. 왜 그럴까? 성경에는 옥에 갇힌 자, 주린 자, 소외된 자를 돌보고 사랑하라고 하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윤치호 선생님이 쓴 ‘대구감옥에서 보낸 편지’(1913.11.10.)가 생각났다.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4년 동안 대구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평생을 존경한 하디 박사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존경하는 하아디 부인께. 지난달 24일에 보내신 사모님의 성원의 편지를 30일에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에 네가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이번처럼 깨달은 적이 없었습니다…”(<윤치호 서한집>170페이지, 윤경남 옮김)

 

  제3부, ‘여행하는 즐거움’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천년성을 쌓는 듯한 가우디의 ‘성 가족 성당’은 필자에게 가우디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 가슴이 이끄는 방향으로 비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완의 작품으로 신화가 된 가우디는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완성은 없다. 삶은 미완성일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필자 부부가 그 환상의 가족성당 앞에 서서 아름다운 포즈로 사진 찍은 것을 보고, 십년 전에 우리 부부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던 사진을 찾아냈다. 왜냐하면 지난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에 토론토 Saint Giles Kingsway교회에서, 우리 결혼50주년을 기념으로 우리가족 12명이 20년 만에 모인 잔치자리에서, 가우디 작품의 성 가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제4부의 ‘살면서 한 번 더 생각나게 합니다’에 ‘영원히 젊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심한 부분이다. 필자는, 에모리대학에서 홍보하는 ‘에모리평생교육원’에 9월부터 참여하려고 등록하고, 낸시라는 미국 문학교수의 단편소설 클래스에 등록한다. ‘교재는 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앨리스 먼로의 <Dear Life>’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자랑스런 여성작가, 이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 82세라는 시니어가 된 필자 필생의 목표를 달성하게 해줄 모양이다. 

 

“최근 Homo Hundred(인간 수명 100세 시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이제는 100세까지 수명이 늘어나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학생으로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을 것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는 방법은 공부다’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 말에 질렸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도 해당 되는 말이어서 내 목표, 아니 모든 시니어들의 새로운 목표를 확인해주는 듯해서 즐거웠다.

 

 아직 만난 적도 없고 다만 이메일로만 인사를 주고 받은 사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승남 작가 부부가 만년 친구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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