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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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텅빈 둥지에 다시
knyoon

 

 

 푸른 솔잎 냄새가 향기로워지는 어느 날 아침 창밖에 바람소리 같기도 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휘익~ 피익~피익

일어나서 베란다 문을 열고 손이 닿을 듯 가까이 서 있는 소나무를 내려다보고 깜짝 놀랐다. 다시 불어오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붉은 앞가슴이 볼록한 엄마로빈(Robin)이 놀라서 날아가 버렸다. 그 자리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게 나뭇가지로 둥글게 엮은 작은 접시만한 둥지 안에 세 마리의 아기로빈들이 주홍빛 부리를 열고 내다보고 있었다.

 서울 안암동 살 때 우리지붕 밑에 제비가 둥지 트는 것은 보았지만 칠층 높이의 이 아파트 베란다까지 솟아 올라온 소나무 가지 틈에 로빈의 둥지는 처음 보았다.

부지런한 로빈, 아침에 제일 먼저 노래하고 밤늦게까지 우는 새 중의 하나다. 수컷의 목소리는 높은 테너 음이라니 조금 전에 휘파람 소리는 분명 아빠 로빈인 모양이다.

 로빈의 알은 유난히 푸른색이고 부화하는데 2주일이 걸리는데 이미 새끼가 태어난걸 보면 지난 두 주일 동안 이미 로빈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빠 로빈과 엄마 로빈이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주면, 둥지 가에 입을 내밀고 기다리던 아기들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받아먹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빨간 베리 열매를 검은 오린지빛 나는 긴 부리에 물고 온 엄마 로빈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겨를이 없이 아기가 날쌔게 받아먹는다.

 사람의 자식도 오롱조롱이라는데 아기 로빈들도 서로 다르다. 두 마리는 열심히 받아먹고 보송보송 날개에 털이 나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잠만 잔다. 어미는 잠자는 아기를 부리로 쪼면서 끌어낸다. ‘날개가 튼튼해야 너의 세상을 맘대로 다니지’ 하는 듯이.

한 열흘 열심히 먹고 자란 아기 로빈들이 ‘틱 택’하면서 작은 피콜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빠, 엄마, 아기 로빈이 함께 노래할 때는 시끄러울 정도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봄을 알리며 ‘즐겁게, 즐겁게’(cheer up, cheer up) 함께 노래하자는 뜻도 있는 모양이다.

 변덕스런 초여름 날씨에 천둥이 치던 밤에 둥지가 걱정되어 내다본다. 어느새 어미 로빈은 그의 두 날개를 둥지 위로 좍 펴고 앉아있다. 빗물은 처마 같은 날개 끝으로 뚝뚝 떨어지고.

다음날 아침 날이 개이자 큰 아기 로빈이 어미를 따라 한 바퀴 공중제비를 하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첫 아이가 혼인해서 집을 나갔을 때처럼 서운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둘째 아기가 날아갈 채비를 하는 듯 둥지 안에서 서성대고 있다.

저 어린 새끼들을 혹시 다람쥐라도 기어올라와서 물어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새까만 다람쥐 한 마리가 가지 끝에 기어올라오고 있다. 놀라서 귤 껍질을 던지려고 하자, 나무 꼭대기에서 망을 보던 엄마 로빈이 쫓아 내려와 날개로 다람쥐를 휘젓자 바로 옆 나무로 훌쩍 뛰어 달아난다. 이제야 안심한 듯 둘째 로빈도 하늘을 맴돌다가 멀어졌다.

다음날 막내는 역시 부모를 떠나는 게 서운한지 어미와 함께 한참 공중제비 하더니 마당에 내려 앉는다. 나도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귀여운 막내 로빈이 잔디 가에 앉아있다가 내가 배웅해주기를 기다린 듯 ‘틱 택’ 소리 내며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까마득한 7층 난간 옆에 자기 둥지를 올려다 보는 듯 아니면 우리에게 인사하는 듯 잔디 위를 종종거리다가 아주 날아가 버렸다.

 잘 가거라, 아기들아. 좋은 세상 구경하고 이따금 고향 생각이 나거든 내 창가에서 ‘틱 택’하며 세상얘기 해다오.

집으로 다시 올라와 텅 빈 둥지를 내려다 보면서 찡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거의 두 주일 동안 베란다에 매달려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보낸 만큼 허전했다. 붉은 앞가슴을 가진 로빈이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전설이 생각난다. 하느님이 로빈의 앞가슴을 만들면서 말씀하셨단다.

“너는 용사의 붉은 훈장을 얻기까지는 평평한 잿빛 배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어느 날 로빈은 골고다 언덕에서 메시야가 고통 당하는 모습을 본다. 무리들이 예수를 놀려대는 것을 보고 날아가 그의 머리에 씌운 가시관을 벗겨낸다. 가시관에서 흐르는 예수님의 상처의 피가 로빈의 가슴위로 떨어지면서 그의 가슴은 용기의 훈장인양 붉은 앞가슴을 가지게 된 것이라 한다.

 며칠 후 우리부부는 미국 오스틴의 텍사스주립대학 교수로 있는 큰아들 집에 갔다. 넓은 평야의 더운 나라지만 바다에서 밀려온 소나기가 가끔 폭우처럼 내려 토론토처럼 심심찮은 기후였다.

열 살짜리 우리 손자 민규희에게 내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가지고 간 아기 로빈들이 입을 쫙 벌이고 먹이를 받아먹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규희는 이미 그 넓은 들판에 둥지를 튼 로빈들을 쫓아다니며 놀던 터라 내가 처음 본 로빈들 이야기엔 시큰둥했다.

 다시 토론토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베란다에서 소나무 위의 로빈 둥지를 내려다 보고 나는 소리쳐서 남편을 불렀다.

“여보, 빨리 와 봐요. 로빈이 알을 갖다 놓았어요.”

그이도 달려 와 난간에 거의 맞닿아 있는 둥지를 함께 들여다 보았다. 텅 빈 둥지에 로빈이 다시 찾아 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옥같이 푸른빛 나는 알을 세 개나… 우리가 알을 보지 못한 것을 알고 보여주려는 듯이.

너무 아름답고 신기해서 손자 규희에게 전화했다. 로빈은 둥지를 두 번 다시 쓰지 않는다는데 그동안 예쁜 알들을 또 낳았으니 어찌된 일일까? 했더니 “아마도 급했던 모양이지요?” 해서 웃었다.

저 예쁜 알들도 잘 부화해서 튼튼한 붉은 가슴을 지니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찾아가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보석같이 빛나는 로빈의 푸른 알들은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듯, 푸른빛 알이 붉은빛 가슴을 잉태하는 신비로움을 다시 맛보게 해주었다. 건너편 주차장을 덮은 큰 버드나무에서 또 다른 로빈 식구들과 참새들의 합창소리가 시원한 바람에 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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