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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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노년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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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Couple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 Psalm 119:105”

 

 우리가 어릴 때 아버지는 어린 7남매를 위해 이따금 활동사진을 돌리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직접 찍은 8 mm 필름의 흑백 무성영화였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안채 댓돌을 내려와 산장으로 나가는 낮은 울타리 옆을 나란히 산보하신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후칠완보(食後七緩步) 하시는 중이란다.

중문 옆에서 증조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증조모님도 발길을 주춤하며 무슨 일인가 묻는 듯 쳐다보신다. 그때 증조부께서 증조모님의 머리를 정답게 쓰다듬어 주시자, 증조할머니는 망칙스럽다는 듯 증조부님 손을 홱 뿌리치시는 것으로 활동사진은 끝난다.

그러면 이때란 듯이 남동생들이 증조할머니 흉내를 내며 “에이! 여보 망신!” 하고 번번이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속으로는 ‘90노인들이 참 주책이셔!’하면서.

대학에 갓 들어가 신나게 돌아다닐 때였다. 급하게 책을 산다고 해야 용돈이 나오므로, 아버지로부터 그 비용을 꼭 타내도록 저녁나절에 어머니에게 부탁드렸다. 쪽마루가 붙어있는 어머니 침실에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란도란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쯤 내 얘기를 하시는 모양이구나 흐뭇해하며 내 방으로 건너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머니께 손을 내밀며 “어젯밤에 아버지한테 그 얘기 잘 하셨어요?” 했더니, “무슨 얘길?” 하고 감감해 하신다.

“아니, 엄만 내 얘기도 안하고 밤새 뭘 하셨수?” 하고 화를 내며 말하자, 어머니는 놀라며 얼굴을 붉히셨다. 그때의 어머니 연세는 42세였고, 나는 어머니의 그 나이가 지나서야 왜 어머니가 얼굴을 붉히셨나 깨달았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 <햄릿>에서, 햄릿도 그의 어머니 거드루드 왕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마하니 어머니가 사랑이란 말은 못하실 터, 그 연배엔 욕정의 불길도 숨 죽어 분별이 앞서야겠거늘, 물론 감각은 가지셨겠지요. 아니면 욕정이 일어날 리 없으니까.”

햄릿의 부왕이 돌아간 지 한 달도 안되어 어머니인 거드루드 왕비가 숙부인 현왕과 결혼해 버리자, 의혹과 분노에 찬 아들이 퍼붓는 억설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햄릿 어머니의 ‘그 연배’가 겨우 45세의 중년 여성임을 잊고 있었다는 역설도 되는데.

 

 

1953년 타임지 표지에 “비너스의 거울을 비춰주다”라는 제목의 알프렛 킨제이 사진과 그의 성생활연구보고서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연구소는 킨제이가 쓴 <남성의 성생활 방식>과 <여성의 성생활 방식>을 ‘98년에 다시 출간했고, 킨제이 연구소의 샌더 박사는 “성욕과 성생활에 나이가 따로 없다. 50세-80세 남녀의 성생활은 나름대로 성에 대해 그리고 성행위에 대해 열정적이었다.”는 그룹 스터디의 결과를 최근에 발표해서 또 한번 놀라게 했다.

노년기에 아름답고 따뜻한 부부생활을 원한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그 만족감이 찾아 오는 건 아니다. 젊어서 혹은 중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부부의 일치를 위한 훈련 (Marriage Encounter)을 쌓는다면, 노년의 사랑이 받으려고 하기보다 내주는 사랑임을 깨닫게 해준다.
 황혼의 부부는 따뜻함과 만족감을 더해주는 강열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노을 빛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필자 주 - 사진1 <안국동 안채의 격자무늬 돌담>은 아주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한 사유가 있답니다. 돌담 지붕 아래 격자무늬 보이시죠? 왜 격자무늬인가? 노령의 증조부모님이 살고 계신 사랑채를 자녀들이 가끔 드려다 보기 위해서랍니다. 그러니까 격자무늬 안쪽이 그분들 처소인데, 혹시 기동이 없으시면 일 난거니까(요즘 시니어 홈에서 48시간 기동이 없으면 비상벨이 울리는 격) 자주 드려다 보기위해 만든 격자창이랍니다. 지금도 잘 보존되어있고, 실은 두분이 걸으신 길은 마주 보이는 문살그림자 왼편길인데 알맞은 사진이 없어서 그분들이 거처하실 때 자녀들이 드려다 보았다는 돌담만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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