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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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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만나와 흰 돌’을 약속받은 버가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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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터키시대에 서머나라고 불렸던 이즈미르에서 북쪽으로 80km를 버스로 달려간 곳에 신전같이 생긴 버가모 교회 터가 나온다. 사도요한이 “만나와 흰돌을 받으리라”고 묵시한 교회 터이다.

 유다 전승에 의하면 모세와 아론이 성막에 모신 계약의 궤 속엔 십계명 돌판과 함께 만나도 기념으로 간직했다고 한다. 그 만나는 세상 마지막 날 메시아 재림 시에 다시 받아 먹게 되리라는 것. 광야에서처럼 하느님의 왕국에서 먹을 양식으로 생각하는 전승이다. 

그리고 고대 유다의 축제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하얀 조약돌을 입장권으로 주었다고 한다. 회의 진행 중에 의사표시로도 썼는데 찬성이면 흰돌, 반대면 검은 돌을 보였다. 이를테면 버가모 교회에 묵시한 만나와 흰돌의 상징은 현세에서의 축제만이 아닌 하늘나라 잔치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있다.

기원전 1~3세기 경의 버가모는 정치, 경제, 문화, 의료 등이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앞섰고, 그 당시 셀수스 도서관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3개 도서관 가운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버가모 도서관은 서로 경쟁하며 책을 수집했다. 

터키의 아탈루스 1세 왕이 버가모 도서관을 위해 책을 만드는 규모가 커지자,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파피루스 종이 수출을 금지한다. 아탈루스왕이 그때 궁여지책으로 발명해낸 것이 세계 최초의 양피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화재로 불타버린다. 이 도서관을 아끼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이 일로 상심하자 용감한 안토니우스 장군이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력으로 버가모 도서관에서 장서 20만권을 탈취해 아름다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쳤다는 ‘도서관 전쟁’의 이야기가 있다. 

도서관 못지않게 유명한 아스클레피온 종합의료센터 자리엔 대리석 주랑이 길게 줄지어 있고, 이 대리석 기둥 꼭대기와 부서진 기둥 밑둥에도 아스클레피온의 상징이며 의사와 의료의 상징인 뱀머리 조각이 보였다. 

황폐한 들판에 여기 저기 피어난 노란 들국화들은 그 당시 치료의 요정들이 피어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 환했다. 아폴론과 코로니스의 아들이며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병원은 특별한 치료방법으로 유명했다. 병원 안에는 일반 치료실, 도서실, 진흙 욕실이 있었고, 음악치료를 위한 넓은 야외음악당이 남아 있다. 

명상 치료를 하는 어두운 긴 터널에서는 지하에 흐르는 세리노스 개울물에 발을 적시고(물의 치료), 맨발로 이 터널을 걷기 시작하면서(마음의 치료) 이미 치료는 시작된다. 의사가 환자를 처음 만날 때 묻는 말은 “꿈 꾸셨어요?”이다. 환자가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하면 의사는 이에 대한 해석을 희망적으로 말해주는데, 이것이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래도 낫지 않을 때 약물을 썼다고 한다. 세계적인 건강센터 역할을 했던 이곳과 버가모 도시가 발레리우스 황제 당시(주후 253-260) 지진으로 황폐해지고 만다.

 페루 현장에 있는 남편과 시간이 맞질 않아 나 혼자 끼어든 성지순례단 관광버스에는 여러 층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에서부터 함께 동행했다. 우리는 서울-터키-그리스를 잇는 열하루 동안 초대교회의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며 아름다운 친교시간도 가졌다. 

솔직히 말해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단체로 먼 길을 함께 다닌다는 것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애가 없이는 힘드는 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차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리고 제일 늦게 올라타는 나에게 승차거부를 하는 '검은 돌'을 보여주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버가모에 이르러서야 버스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버가모 병원의 이 명상터널 앞을 지날 때 정신과 의사인 신상철 박사는 심층심리학적인 정신치료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건축과 교수인 김문환 장로는 한국의 황토 진흙의 효과와 개발을 얘기하고, 기원전에 이미 버가모에서 실시한 진흙요법의 효과를 설명했다.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약 65킬로미터 지점에, 지금은 악히사르(Akhisar)라고 하는 옛 두아디라 교회터가 나온다. 교회는 없지만 이 도시는 지금도 직물과 염직이 발달한 중요한 상업도시이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에서 맨 먼저 입교하고 바울을 극진히 영접한 사람이 바로 이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옷감 장수 루디아이다(사도행전 16:14). 

그녀가 만들어 팔았던 비단옷감은 꼭두서니 뿌리에서 뽑아낸 자줏빛 물감으로 만든 비단 옷들로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만 입었다고 한다. 그 자줏빛 옷은 귀한 마음씨를 지닌 루디아의 모습 같이 아름다웠으리라. 

그러나 사도요한은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주는 훈계와 소망을 들려주었다. 음란과 술수의 상징인 이세벨 같이 타락한 두아디라에서, 이세벨의 술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승리의 샛별을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 삼바데라고 하는 무당 숭배가 성행한 이 상업도시에의 훈계였다. 

 비잔틴 시대에 동방의 일곱 교회 중 하나로 크게 활동했던 샛별 같은 두아디라 교회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에 지은 버가모 교회의 옛 터를 거닐면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감추어 둔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고 한 그분의 약속을 마음에 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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