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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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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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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저문다. 귀 달린 빨간 항아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 선반에 늘어서 있는 내가 만든 도자기 중의 하나다. 매일 아침,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부터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게 쿵쾅거리는 발소리, 숨소리를 다 듣고 있는 항아리다. 거기에 일 년 내내 받은 엽서를 담아두었다.

연말에 엽서를 비우는 습관은 미국 LA의 신 박사님이 다녀가신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학회를 마치고 가는 길에 캐나다에 들른 박사님이 우리와 함께 며칠을 지내셨다.

생경한 땅에 뿌리내리기를 하면서 극심한 피곤에 시달렸지만 반비례로 늘어만 가던 마음의 허탈감과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던 때를 이야기하였다. 무디어지고 녹슬어가는 지성과 감성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탈피하기 위해 택한 첫 걸음이었노라고, 대학교 도예 방에서 흙먼지에 쌓여 진흙을 반죽하고 두드리고 구워내며 자신을 닦달하던 심경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았었다.

자신도 여러 해 동안 백혈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다 힘겹게 빠져 나온 박사님은 말없이 큰 한숨을 쉬시더니 귀가 후에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어느 멍청한 사람이 옹기점에 갔다. 항아리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하는 말. ‘무슨 항아리가 주둥이가 없지? 번쩍 들어보더니 어라! 밑도 빠졌네.” ㅎㅎ

따라 웃던 내 머리에 번쩍 번개처럼 꽂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엎어놓은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붓고 있는 멍청이가 아닌가. 주둥이가 있어야 할 곳, 밑이 받쳐야 할 곳도 분간 못하면서 향방 없이 허둥대기만 하는 어릿광대는 아닌지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로부터 마음속 항아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안간힘을 썼다. 새해의 맹세를 바닥에 깔고 받은 엽서, 카드, 그리고 상념의 낙서들, 그 항아리엔 유형무형의 나의 일 년이 담아졌다.

 시간의 순서대로 조각 소식을 꺼내면서 한 해 동안의 나를 정리하듯 항아리를 비운다.

바로 엊그제. 한 단체를 자신의 이익대로 운영하는 그를 못 마땅히 여기는 메모지. 그 며칠 전엔 한 사실에 대응하는 초점이 다르다고, 그리고 또 이치의 해석이 틀린다고 충돌한 마음조각들이 손에 잡혔다. 외부에서 온 엽서와 카드엔 한 결 같이 내 건강과 복락을 빌어주는 반면, 끄적거린 낙서들에서는 마음 문을 열지 못하고 불만에 차서 신경을 날카롭게 세운 자신을 발견하였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항아리 비우기가 묵중한 참회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오래 전 전면월식을 보고나서 줄곧 따라다니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밝은 달이 오른쪽 아래서부터 실낱 같은 검은 띠로 차츰 어두움에 가려져서 완전히 캄캄해지는 데는 1시간이 걸렸다. 한 순간이 지나 다시 왼쪽 위로부터 반대 순서로 검은 띠가 벗겨져서 밝은 달로 돌아오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왜 벗겨지는 데는 꼭 2배의 시간이 걸려야 하는 것일까. 항아리에 채운 물을 쏟아 붓듯 오히려 더 짧은 시간에 벗길 수도 있을 텐데.

해와 달과 별, 심지어 부는 바람과 바닷물의 파도까지 정확하게 운행되는 우주의 섭리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뜻은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섬광처럼 깨달았다.

시간의 흔적은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새해 첫 맹세, 초심이 어디에서 떨어져 나갔는지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는데 두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삶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곧은 심지를 깨끗이 비운 항아리에 채워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새 술, 겸손하고 현숙한 나를 항아리에 채우리라 다짐한다. 입술의 향기도 쉬지 말고 불어 넣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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